미간을 찌푸린 두 순경은 현장 상황을 한번 슥 보더니 바로 수갑을 꺼내 서강빈에게 채우면서 차갑게 말했다.“저희와 함께 가시죠.”“저 사람들이 말하는 대로 다 믿습니까?”서강빈이 미간을 찌푸리며 묻자 그중 한명이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차갑게 말했다.“뭐가 됐든 일단 저희와 함께 가서 협조하시죠.”말을 마치고 두 순경은 신고의 진실 여부를 가리지도 않은 채 서강빈을 끌고 차에 태웠다. 순경의 차가 떠나는 것을 보고 얼굴에 서늘한 웃음을 띤 진기준은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걸어서 차갑게 말했다.“정명 형, 뭐 하나 좀 도와줘요.”“진 대표님? 무슨 일이에요?”송주 모 경찰서의 과장 사무실 내에서 유정명이 다리를 꼬고 의자에 앉은 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세상 무서운 줄을 모르는 놈 하나가 나한테 자꾸 시비를 거는 것도 모자라 오늘 저녁에는 제 예비신부에게 약까지 먹였어요. 형이 저 대신 혼쭐을 제대로 내주세요! 좋게는 남은 생을 감방 안에서 썩게 해주세요.”차갑게 말하는 진기준의 말투에는 분노가 가득 서려 있었다.“좋아요, 당연하죠. 그런데 이런 일에는 진 대표님도 알다시피 뒤를 좀 봐줘야 하는데.”웃음을 띤 유정명의 말에 진기준도 웃으며 대답했다.“정명 형, 마음 놓으세요. 규칙은 저도 알고 있습니다.”“그럼 문제없어요. 바로 해결해줄게요.”말을 마친 유정명은 전화를 끊었다. 그는 온 얼굴에 웃음을 띤 채 일어서서 사무실을 나가 취조실로 향했다.한편, 진기준과 양미란은 송해인을 데리고 호텔로 돌아왔다. 송해인이 정신을 잃었으므로 결혼식은 어쩔수 없이 중단되었다. 십여 분이 지난 후 송해인이 깨어나자 양미란은 걱정스러운 말투로 물었다.“해인아, 괜찮아?”일어나 앉은 송해인의 가슴에서는 아직 은은한 통증이 느껴졌지만, 그녀는 고개를 저의며 말했다.“괜찮아요.”송해인은 번뜩 생각이 들어 양미란의 손을 잡고 물었다.“서강빈은요?”“그 망할 자식 얘기는 하지 말아라!”양미란은 화가 나서 씩씩거리며 욕을 퍼부었다.“너는 모르지.
한편, 서강빈은 이미 취조실에 끌려가 의자에 묶였고 두 명의 남자가 들어와 문을 잠갔다. 그들은 서강빈의 맞은편에 앉아 담배를 피우면서 자백하는 내용이 적힌 문서를 던져주고는 차갑게 말했다.“사인해.”서강빈은 미간을 찡그리고 문서에 쓰인 내용을 보았다.‘강간?’서강빈은 낯빛이 변하여 퉁명하게 말했다.“나는 이 문서에 사인 안 해.”“사인 안 한다고?”그중 한 명이 차갑게 웃으며 몸을 일으켰고 담배를 입에 문 채 서강빈의 앞으로 다가가 냉랭하게 말했다.“야 이 자식아, 여기가 어딘지 생각해보지도 않고 말이야. 그 몸뚱어리가 고통받고 싶지 않다면 얼른 순순히 사인해!”“왜, 고문이라도 해서 사인하게 하려고?”침착한 표정으로 웃으며 묻는 서강빈을 보면서 그 남자는 표정이 굳어져서는 차갑게 웃으며 대답했다.“이놈이, 너 내가 누군지 알아?”서강빈은 고개를 저었다.“몰라.”“그럼 내가 직접 얘기해줄게. 나는 여기서 심문을 제일 잘하는 사람이고 송태성이라고 해. 사람들은 나를 염라판관이라고 불러.”거만하고 득의양양한 태도로 말하는 남자는 서강빈을 비웃는 듯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여기로 들어온 사람들은 말이야, 그게 누구든 내가 주는 죄명을 받게 되어 있어! 감히 사인을 안 해? 네가 먼저 사인을 하겠다고 빌도록 할수 있는 방법이 나한테는 많아.”서강빈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염라판관?’서강빈은 어딘가 살짝 귀에 익은 느낌이 들었다. 이 사람은 봐주는 법이란 없는 극악무도한 악인이었고 이 사람의 손에 들어온 사람은 좋은 결말을 맞은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하지만 서강빈은 실제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두려울 게 없었다. 아무리 험한 사람이라고 해도 아무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자신에게 죄를 뒤집어씌울 수는 없는 노릇이다.“그러면 뭐 어쩔 거야? 내가 하지도 않은 일에 대해 왜 사인을 해서 죄를 인정하라고 하는 거야? 당신들은 법을 집행하는 사람들이면서 함부로 법을 어겨도 된다는 거야?”덤덤한 태도로 냉랭하게 묻는 서강빈을
그 말을 듣고 서강빈의 표정이 어두워졌지만, 송태성도 서두르지 않고 태연하게 다리를 꼬고 앉아서 말했다.“급하지 않아. 천천히 생각해. 우리는 기다려줄 수 있어.”“설마 여기는 법이 없는 거야?”살짝 미간을 찌푸린 서강빈을 보며 송태성은 서늘한 웃음을 띤 채 말했다.“법? 야 이 자식아, 여기에 들어왔으면 우리가 바로 법이야!”송태성은 시간을 한번 보고 말을 이었다.“우리도 너랑 복잡하게 시간을 끌고 싶지 않아. 사인하고 죄를 인정한 다음 감옥살이를 하든지 아니면 이 양도합의서에 사인하든지 결정해. 우리 서로 필요한 것만 챙기고 각자 갈 길 가자고.”“네가 우리를 곤란하게 하지 않으면 우리도 너 난처하게 하지 않아.”말을 마친 송태성은 양도합의서를 한 장 꺼내서 다른 동료에게 서강빈한테 주라고 턱짓을 했다. 하지만 서강빈은 보지도 않고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내가 만약 사인 안 하겠다면?”이 말에 송태성은 책상을 치며 벌떡 일어나서는 화를 냈다.“야 이 자식아! 내가 지금 차근차근 너랑 상의하는 건 너를 도와주고 있는 거야! 피차 평화로운 방식으로 해결하려는데 호의를 무시해? 내가 화나면 그땐 네가 끝장나는 날이야!”“지금 나 협박하는 거야?”불만스러운 말투로 묻는 서강빈의 말에 송태성은 차갑게 대답했다.“그렇다면 어찌할 건데? 네가 누구든지 여기 들어온 이상 여기 법을 따라야지, 고개를 숙이라면 숙이고 무릎을 꿇으라면 꿇어야 해! 모든 건 나 송태성의 법으로 처리할 거니까!”송태성은 다시 담배 한 대에 불을 붙이고 조롱했다.“진 대표님이 우리한테 귀띔을 해줬어. 네가 실력이 좀 있는 놈이라고. 하지만 경고하는데 여기는 취조실이야. 네가 감히 허튼 수작을 부린다면 미안하지만 나는 바로 너를 쏴버릴 수가 있어!”말이 끝나자 송태성은 허리춤에서 총을 하나 꺼내서는 테이블에 쾅 내려놓았다. 이는 명백한 협박이었다.“여기서 당신들은 이런 식으로 심문을 진행하는 거네.”웃음을 짓던 서강빈의 표정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아주 끼리끼리 역
이 시각, 황규성은 자신의 개인 별장 내에서 부하와 단체에 관한 얘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하인 한 명이 달려 들어와서는 다급하게 말했다.“규성 어르신! 큰일 났습니다!”“무슨 일인데 그렇게 난리야?”불쾌한 기색으로 묻는 황규성에 그 하인은 얼른 대답했다.“제가 소식을 하나 들었는데 서 선생님이 잡혀갔다고 합니다!” “뭐라고?”황규성은 벌떡 일어서서 황급히 물었다.“무슨 상황이야? 누구한테 잡혀갔어?”“잘 모르겠지만 듣기로는 심문하는 사람이 송태성이라고 합니다!”그 하인이 하는 말에 황규성은 표정이 변했다.“송태성? 염라판관! 큰일 났다, 서 선생이 그자의 손에 들어간다면 아마도 십중팔구는 좋지 않을 거야!”초조한 황규성은 다른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부하에게 소리쳤다.“가서 사람을 구하게 당장 우리 사람들을 데리고 나를 따라와.”“네, 규성 어르신!”그 부하는 대답을 마치고 바로 달려나가서 사람들을 모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황규성의 사람들은 열 대가 넘는 랜드로버를 타고 서강빈이 있는 경찰서로 달려갔다....한편, 만물상점에서 깨어난 권효정은 서강빈이 보이지 않자 몇 번 불러보다가 전화도 걸었는데 받지 않았다. 초조해진 권효정은 바로 자신의 부하를 보내 알아보라고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부하 한 명이 차를 타고 만물상점 앞에 돌진해서는 차에서 내려서 다급하게 소리쳤다.“아가씨, 큰일 났습니다. 서강빈 씨가...”“무슨 일이야?”권효정이 다급하게 묻자 그 부하는 숨을 몰아쉬며 대답했다.“아가씨, 서강빈 씨가 잡혀갔습니다!”“뭐라고?”권효정은 깜짝 놀라 예쁜 미간을 찌푸리고 물었다.“어떻게 된 거야?”부하는 알아본 것들을 모두 얘기해주었고 권효정은 화가 나서 예쁜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분노를 쏟아냈다.“망할 진기준! 그래, 내가 지금 본때를 보여주러 갈 테니까 너 딱 기다려! 가자, 우리 사람들을 데리고 경찰서로 가서 강빈 씨를 데리고 오자!”씩씩거리며 말을 마친 권효정은 얼른 차에 타서 페달을 밟았다....이
서강빈은 담담하게 소리 내 웃고는 말했다.“나한테 사인을 받으려고? 좋아, 그럼 무릎 꿇고 나한테 빌어.”이 말을 들은 남자는 화를 내면서 합의서를 책상에 세게 내리쳤다.“젠장, 미친놈, 너는 정말 끝을 보지 않으면 포기하지 않는 놈이네. 제대로 고문을 당해야 얌전히 말을 들을 거야?”남자는 품에서 삼단봉을 꺼내 흔들거리면서 서늘한 미소를 띠고 말했다.“이 자식아, 이 몽둥이는 특수제작 된 거야. 몸에 맞으면 몹시 아픈데 흔적을 찾을 수 없단 말이지. 한번 맞아볼래?”서강빈은 눈을 가늘게 뜨고 냉랭하게 말했다.“감히 사사로운 폭력을 행하려고? 너희들 이렇게 해도 된다고 누가 그랬어?”“여기서는 우리가 바로 법이야! 감히 대드는 걸 보니 너는 정말 쓴 맛을 보지 않으면 뜻을 굽히지 않을 생각이구나!”그 남자는 화를 내면서 몽둥이를 휘둘러 서강빈의 팔뚝을 향해 내리쳤다. 하지만 서강빈은 한발 앞서 상대가 휘두르는 삼단봉을 잡았다.“젠장, 네가 감히 이걸 잡아?”그 남자는 크게 분노하며 발로 서강빈을 걷어차려고 했다. 서강빈은 차갑게 콧방귀를 뀌더니 손가락을 한번 튕기자 손가락 사이에서 은침이 발사되어 상대방의 무릎에 꽂혔다.“악...”상대는 비명을 지르며 무릎을 잡고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지금 그의 다리 전체는 무언가에 짓눌린 듯 아주 고통스러웠다.“젠장, 너 나한테 뭘 한 거야?”남자는 무릎을 잡고 분노하여 외쳤다. 서강빈은 차가운 표정으로 일어서서 한 걸음 한 걸음 그 남자를 향해 다가갔다. 이 모습을 본 남자는 크게 화를 내며 소리쳤다.“너 뭐하는 거야? 앉아, 당장 앉아! 여기는 취조실이야, 네가 감히 우리 경찰을 폭행하려고?”말이 끝나자 마자 서강빈은 남자의 뺨을 내리쳤다. 남자가 멀리 날아가는 바람에 취조실은 어질러졌고 남자는 바닥에 쓰러져 허리와 등을 움켜쥔 채 앓는 소리를 내며 고통스러워했다. 서강빈이 자신한테로 다가오는 것을 본 남자는 두려움에 떨며 힘겹게 문 앞까지 기어가서 소리쳤다.“너 오지 마! 나는 경찰이
송태성은 서강빈이 태연한 모습으로 앉아 있는 것을 보고 화를 냈다.“야 이 자식아, 너 무슨 뜻이야? 우리가 먼저 너를 배웅한다고? 헛된 생각을 하고 있어, 너는 네가 대단한 사람이라도 된다고 생각해?”“감히 여기서 경찰을 공격하다니, 너는 이제 죽었어!”으르렁거리는 송태성의 얼굴에는 분노가 서려 있었다. 그의 손에서는 아직 피가 흐르고 있어 그 고통이 가슴까지 파고들었다. 다른 남자도 비틀거리며 일어서서 두 눈에 분노를 가득 담은 채 철제 의자에 앉아 있는 서강빈 노려보며 소리쳤다.“젠장! 경찰을 공격하는 건 죽을죄인 거 몰라? 너는 그냥 사인만 하고 떠나면 됐어. 근데 이제 너는 가고 싶어도 못 가!”서강빈은 태연한 얼굴로 머리를 두 손에 댄 채 웃으며 말했다.“나를 꺼내줄 사람이 올 거야.”“아직도 무게를 잡고 있어? 오늘 누가 너를 꺼내러 오는지 내가 똑똑히 볼 거야!”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 송태성은 지금 당장 서강빈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은 마음이었다.이때, 밖에는 황규성의 차량이 도착했고 열 몇 대의 랜드로버가 줄지어 선 모습은 아주 장관이었다. 황규성은 화난 얼굴로 사람들을 데리고 차에서 내려왔는데 이는 순식간에 모든 경찰의 경계를 불러일으켰다.“유 과장을 만나러 왔어!”황규성은 정원에 서서 낮은 음성으로 성을 냈다.“규성 어르신?”그중 한 사람이 황규성을 알아보고 다가가서 웃는 얼굴로 말했다.“저희 유 과장님께서는 지금 손님을 접대하고 계십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눈빛이 사나워진 황규성이 불만스럽게 말했다.“급해! 당장 나오라고 해!”그 사람은 웃어 보이며 대답했다.“알겠습니다. 제가 들어가서 얘기하겠습니다.”말을 마친 남자는 정원을 떠나 빠르게 유정명의 사무실로 갔다.“유 과장님.”남자는 문을 두드렸다. 지금 유정명은 진기준과 한창 얘기가 무르익어 가고 있었는데 누군가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살짝 미간을 찌푸리고 물었다.“무슨 일이야?”“유 과장님, 규성 어르신께서 오셨는데 과장님한테 볼
“맞아!”황규성의 말에 바로 표정이 굳은 유정명은 망설이는 기색을 띠었다.“규성 어르신, 제가 주제넘게 여쭙겠습니다만 그 사람이 어르신과 어떤 사이입니까? 그 사람은 저희가 잡은 게 맞지만, 저희도 잡은 이유가 있습니다, 이 사람이 중대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되어 심문을 하고 있어요.”유정명의 말에 황규성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유정명을 쳐다보면서 차갑게 말했다.“유정명, 돌려서 말하지 않을게. 서 선생은 내 목숨을 구해준 은인이야. 나한테 세상을 계속 살아갈 수 있는 기회를 준 분이라고! 서 선생이 어떤 사람인지는 내가 충분히 잘 알고 있어. 당신이 말하는 서 선생이 용의자로 지목되었다는 사건은 정말 허무맹랑한 일이고 누군가가 모함하고 죄를 뒤집어씌우려는 거야! 지금 당장 사람을 풀어줘!”이 말을 들은 유정명의 표정이 조금 어두워졌다. 아무리 그래도 그는 여기 경찰서의 과장인데 누구를 잡고 누구를 풀어주고 하는 일은 그가 결정할 일이었다. 황규성이 아무리 송주에서 지위가 아주 높고 거느리는 사람들이 많아 평소에 황규성을 봤을 때는 굽신거려야 한다지만 오늘 밤의 상황은 달랐다. 특산품도 받았고 진기준도 위층에 있다. 이 사람을 오늘은 절대 풀어줄 수가 없다. 하여 유정명은 웃어 보이며 말했다.“규성 어르신, 어르신의 뜻은 제가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이 사람은 확실하게 중대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되고 있어 우리도 조사하는 과정에 있습니다. 규성 어르신께서 저희한테 시간을 좀 주시길 바랍니다. 만약 아무 문제가 없다면 우리도 무조건 사람을 풀어줄 겁니다.”이 말을 들은 황규성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차갑게 말했다.“유정명! 지금 내 앞에서 그딴 말로 시간 낭비하지 마! 서 선생이 어떻게 너희한테 잡혀 왔는지 잘 알아보고 온 거야! 한마디만 할게. 사람을 풀어줘. 그렇게 못하겠다면 결과는 너희들이 책임지는 거야.”이건 협박이다. 이 말을 들은 유정명은 기분이 상했고 불만이 가득 찼다. 그는 서늘한 눈빛으로 황규성을 보며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규성 어
권효정은 예쁜 얼굴로 냉랭한 표정을 지으며 차갑게 말했다.“유정명 유 과장님 맞죠. 서강빈 씨는 저희 권씨 가문의 귀인이에요. 지금 당장 사람을 풀어주기를 요구합니다.”표정이 일그러진 유정명은 망설이는 기색이 역력하였다. 권씨 가문의 따님이 사람을 데리러 왔는데 감히 풀어주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진기준이 바로 위에 있기에 사람을 풀어준다면 뭐라 할 말이 없다.“권효정 씨, 서강빈은 중대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되었습니다. 저희도 법을 집행하는 사람으로서 그를 여기로 데리고 와 심문을 하는 것입니다. 서강빈이 아무 문제가 없다면 저희도 당연히 사람을 풀어주겠죠. 그러니 권효정 씨가 좀 기다려주시길 바랍니다.”유정명은 고민하다가 뻔뻔하게 나가기로 했다. 그는 오늘 절대 사람을 풀어주지 않을 것이다. 이 말을 들은 권효정은 표정이 어두워져서는 불만스럽게 말했다.“유정명 씨, 지금 제 인내심을 시험하는 것입니까?”이 한마디 말에 유정명의 표정이 크게 변하였다. 그는 권효정이 지금 분노를 억누르고 있다는 것을 보아낼 수 있었다.“저기, 권효정 씨, 잠깐만 기다려주세요. 제가 들어가서 확인해보고 오겠습니다.”유정명은 웃어 보이고는 바로 뒤돌아 건물 안으로 들어가서 사무실로 향했다. 현재 진기준은 소파에 앉아 태연하게 차를 홀짝이고 있었는데 유정명이 허둥지둥 들어오는 것을 보고 웃으며 물었다.“무슨 일이에요, 정명이 형. 왜 이렇게 당황하시는 거죠?”“진 대표님, 일이 틀어졌습니다.”다급한 유정명의 말에 진기준은 살짝 미간을 찌푸리고 물었다.“왜 그러는데요?”유정명은 사실대로 다 말했다.“규성 어르신이 와서 사람을 내놓으라고 합니다. 우리더러 서강빈을 풀어주라고 해요.”“규성 어르신? 황규성이요?”이 말을 들은 진기준은 표정이 일그러졌지만 잠시 후 유정명에게 이렇게 말했다.“정명이 형, 황규성이 아무리 송주의 규성 어르신이라고 해도 형님은 과장이잖습니까, 설마 그를 무서워하는 거예요?”유정명이 한숨을 쉬고는 대답했다.“제가 이미 규성
만약 서강빈이 단지 의술이 대단하다고 하면 이선종은 이 정도까지 공경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의학은 도문에서 기원했지만, 지금의 의사 중에서는 도술을 아는 이들이 적었다. 그러나 서강빈은 의술이 대단할 뿐만 아니라 도술 면에서도 이렇게나 조예가 깊으므로 정말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서강빈은 다가가서 이선종을 일으키며 말했다.“선생님, 이러실 필요 없습니다. 선생께서도 어르신의 병세를 걱정하여 혹시나 돌팔이를 만날까 봐 그러신 거잖아요.”이선종은 이 말을 듣고 부끄러운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말했다.“서 선생, 선생을 보니 저는 정말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마음입니다. 선생은 저보다 의술이 대단할 뿐만 아니라 성품도 저보다 훨씬 훌륭하십니다.”서강빈은 이선종의 어깨를 토닥이고는 침대에 누워있는 임성진 어르신을 바라보았다.지금 임성진 어르신의 얼굴은 점점 혈색이 돌아오고 곁에 있는 기기에서도 몸의 각종 수치가 호전되고 있다고 나타나고 있었다.임호는 할아버지가 무사한 것을 보고 감격하여 눈물을 흘렸다.“서 선생, 우리 할아버지를 살려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저는 서 선생을 큰 형님으로 모시고 싶은데 서 선생께서 부디 거절하지 마시고 보잘것없는 이 동생을 거둬주십시오.”말하며 임호는 한쪽 무릎을 꿇고 서강빈을 향해 주먹을 모은 채로 성의를 표했다.서강빈은 임호에 대해 첫인상이 무척 나빴지만, 임호가 가게의 문 앞에서 무릎을 꿇은 순간부터 서강빈이 임호에 관한 생각도 180도 변하였다.하여 서강빈은 거절하지 않고 임호를 부축하여 일으키면서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할아버지를 잘 보살피세요. 내가 남긴 처방전을 따르면 어르신께서는 열흘이 지나지 않아 완치하실 것입니다.”임호는 고개를 세게 끄덕이며 말했다.“네. 감사합니다, 형님. 할아버지께서 상황이 좋아지시면 반드시 감사 인사를 올리러 직접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서강빈은 임호의 오른 다리를 한번 보더니 생각에 잠긴 채 말했다.“다음에 올 때 x 레이 사진을 함께 가지고 오세요.”임호는 영
이선종은 돋보기를 쓰고 자세히 살펴보았지만, 여전히 확신할 수 없는 듯 서강빈에게 말했다.“서 선생, 이 약재가 백 년이 되는지 한번 살펴보세요.”서강빈이 내린 처방을 본 이후로 서강빈을 대하는 이선종의 태도는 완전히 변하였다. 심지어 서강빈의 앞에서는 초보인 것 같은 모습까지 보였다. 서강빈은 상자 안에 들어있는 설련초를 한번 보더니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네. 맞습니다. 백 년 된 설련초가 맞아요.”서강빈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고 임호는 감격하여 말했다.“서 선생, 그 말은 우리 할아버지를 살릴 수 있다는 말씀이시죠?”“그렇다고 볼 수 있죠. 먼저 어르신께서 탕약을 드시고 난 후에 다시 살펴보죠.”서강빈은 고개를 세게 끄덕이며 말했다.“할아버지를 살릴 수 있다니, 너무 다행이에요. 서 선생, 우리 할아버지께서 무사할 수만 있다면 우리 임씨 가문에서는 서 선생의 큰 은혜를 절대 잊지 않을 것입니다.”말을 마친 임호는 서강빈에게 절을 세 번 올렸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뿐이니 도련님께서 이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만 이 설련은 줄기만 사용해야 합니다. 꽃잎은 사용하면 안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폐의 기를 상하게 하여 오히려 어르신께 독이 될 수 있어요.”서강빈은 다시 한번 당부했다.“알겠어요. 지금 당장 사람을 시켜서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임호는 설련을 곁에 있는 간호사에게 건네려고 할 때 손인수가 서둘러 다가오며 말했다.“도련님, 이런 일은 저에게 맡기세요.”이렇게 말하며 손인수는 고개를 돌려 서강빈을 바라보았다.서강빈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손인수의 의술로 보아 이 정도로 간단한 일을 처리하는 건 거뜬했다.손인수는 나무 상자를 받아들고 무척 공손하게 서강빈을 향해 인사를 건넨 다음에야 병실을 나섰다. 이선종은 살짝 미간을 찌푸린 채 물었다.“서 선생과 손 신의는 예전부터 알던 사이였습니까?”“그런 셈이죠.”서강빈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이 말을 들은 이선종은 그제야 자신이 병실에 도착
이선종이 듣기에 서강빈의 말은 지금 장난을 치는 것처럼 느껴졌다. 임성진 어르신은 천주 군사구역의 고위층 지도자였다. 만약 정말 병을 완치할 수 있다면 오늘까지 끌었을 필요가 있겠는가? 설마 천주의 모든 유명한 의사들이 다 서강빈보다 못하다는 말인가?서강빈은 침대에 누워있는 임성진 어르신을 살펴보았다. 어르신의 얼굴이 창백하고 호흡이 미약한 것을 보고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임성진 어르신의 상황이 그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복잡한 듯 보였다. 서강빈은 먼저 진혼 부적을 사용해서 총알 파편을 제거한 후 어르신한테 침을 놓으려고 했었다. 하지만 지금의 상태로 보아서는 반드시 임성진 어르신의 상태를 먼저 안정시켜야 했다.“임성진 어르신의 지금 상태로 보아 바로 총알의 파편을 꺼내면 안 됩니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먼저 기맥을 안정시켜야 해요. 선생님께서는 제 생각에 동의하시는지요?”서강빈은 고개를 돌려 이선종을 보면서 말했다.“흥! 자네는 말을 참 쉽게 하네. 나조차도 확신할 수 없는데 자네처럼 젊은 사람이 무슨 수로 어르신의 상태를 안정시킨다는 말인가? 그리고 임성진 어르신은 지금 폐 기능이 감퇴한 것뿐만 아니라 오장육부가 모두 망가지고 있다네.”이선종은 차갑게 콧방귀를 뀌며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말했다.“선생님, 그 말은 너무 극단적인 것 같은데요? 어떤 경우에는 당신이 못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도 못 하는 게 아니거든요. 의술을 놓고 말할 때도 누가 더 잘하고 못하는지는 지금 결론을 내기에는 이른 것 아닌가요?”서강빈은 말을 마치고 곁에 있는 책상에 놓인 종이와 볼펜을 들고 능숙하게 써 내려간 처방을 이선종에게 건네며 말했다.“선생님, 내 처방전이 어르신의 병세를 안정시키는 데 효과가 있을지 한번 보십시오.”이선종은 못마땅하다는 얼굴로 서강빈의 손에서 처방전을 건네받아서는 자세히 읽어보았다. 조금 전까지도 가소로운 표정을 하고 있던 이선종은 서강빈의 탕약 처방전을 보고 나서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이게... 이 처방
이선종은 성회에서 유명한 신의였는데 원장의 체면이 아니면 멀리서 임성진 어르신의 병을 봐주러 오지 않았을 것이다. 단지 임성진 어르신의 상황이 복잡하여 이선종도 연신 고개를 저었다.“주 원장님, 감사합니다.”임호는 먼저 원장한테 감사 인사를 하고 뒤에 있는 서강빈을 가리키며 말했다.“하지만 저희 할아버지의 병은 서 선생이 고칠 수 있을 것입니다.”서강빈의 일이 있고 나서 사람들을 대하는 임호의 말투와 태도는 큰 변화가 있는 걸 어렵지 않게 보아낼 수 있었다. 더는 예전의 거만함이 없었다.“뭐라고요? 서 선생? 무슨 서 선생이요? 하느님이 와도 어르신의 병을 고칠 수 있다고 장담하지 못할 것입니다.”이선종의 표정에는 분노한 기색을 띠고 고개를 들어 임호를 보며 말했다.“어르신은 폐에 총알의 잔해가 남아있기 때문에 병든 것입니다. 아무리 최고급의 기기를 사용한다고 해도 꺼낼 수가 없어요. 그 잔해가 남아있는 한 무슨 약을 쓰더라도 다 소용이 없습니다.”이 말을 들은 서강빈은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총알의 잔해일 뿐인데 그 정도까지는 엄중하지 않죠.”‘뭐라고? 총알의 잔해일 뿐인데?’이 말을 들은 이선종은 표정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자네가 의술을 정말 아는지 의심되네. 잔해가 체내에 남아있다는 건 무슨 의미인지 알고 있어? 장기가 쇠퇴하고 있다는 말일세! 그 어떤 사람이 와도 이렇게 엄중한 병은 치료할 수가 없다네.”이선종은 큰소리로 호통을 쳤다. 그가 보기에 서강빈은 아무것도 모르는 애송이었다. 하여 그의 말속에는 오만함이 다분했고 무례하기 그지없었다.“어르신의 폐 검사 결과를 가져와서 저 사람한테 보여주세요!”주 원장은 다급하게 곁에 있는 간호사를 불러서는 손짓을 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간호사는 임성진 어르신의 폐 검사 결과를 가지고 와서 서강빈에게 건넸다. 서강빈은 x 레이 사진 속의 음영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여기일 것이다.x 레이 사진 속의 거대한 음영을 보고 임호는 순간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을 느끼며 몸이 휘청
“서 선생, 잘못했습니다. 제발 저희 할아버지를 살려주십시오. 할아버지께서... 지금 더 버티기 어렵습니다.”이렇게 말하며 임호는 참지 못하고 다시 눈물을 흘렸다.그는 무릎을 꿇는 순간부터 서강빈이 승낙할 때까지 무릎을 꿇고 있으리라고 마음을 먹었다.사실 서강빈은 이미 우남기 어르신한테서 임성진 어르신의 상황에 대해 어느 정도 들어서 알고 있었다. 방금 그린 진혼 부적도 임성진 어르신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준비한 것이다.임호한테 그렇게 차갑게 대한 것은 임호에게 교훈을 주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임호의 행동은 서강빈의 마음을 동하게 했다. 대장부로서 무릎을 꿇는 일은 절대 쉽지 않다. 더욱이 임호처럼 도도한 사람이 할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가게 앞에서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그의 효심을 증명하기에 족했다.이렇게 생각한 서강빈은 손을 뻗어 임호를 부축했다.“서 선생.”임호는 감격한 얼굴로 서강빈을 쳐다보았다.“그래요, 도련님, 어르신한테 갑시다.”서강빈은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정말 저를 용서하신 겁니까?”임호는 눈물을 닦으며 빨개진 두 눈으로 말했다.서강빈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고 임호를 칭찬하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 자신의 가족을 살리기 위해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심지어 자신의 자존심까지 내려놓을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대장부였다.“정말 너무 감사드립니다. 서 선생, 이리로 오십시오.”임호는 이렇게 말하며 차 문을 열려고 했지만 조금 전 비를 맞으며 빗속에서 너무 오래 있은 탓에 예전에 다쳤던 무릎이 다시 말썽을 일으켜 임호는 비틀거리다가 바닥에 넘어지고 말했다. 서강빈은 손을 뻗어 임호를 부축하고는 은침을 하나 떠내 임호의 무릎에 있는 혈 자리에 꽂았다.은침의 위에 영기가 맴돌더니 바로 임호의 체내로 들어갔다. 이윽고 따뜻한 느낌이 몸에 퍼지면서 임호의 무릎에 있던 상처는 기적처럼 완치되었다.“이게...”임호는 깜짝 놀랐다. 대단한 한의사, 심지어 신의 손이라고 불리는 의사까지 다 찾아가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서강빈은 임호에게 눈길을 보내지도 않고 곁에서 청소하는 염지아에게 말했다.“그만하고 손님 보내드려.”염지아는 서둘러 손에 있던 걸레를 내려놓고 앞으로 다가가 냉랭한 표정으로 말했다.“돌아가십시오. 여기는 당신을 환영하지 않습니다.”염지아는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는 자세히 모르지만, 권효정한테서 어느 정도 맥락은 들어서 알고 있었다.임호처럼 자신의 출신을 내세워 다른 사람을 무시하는 사람들을 염지아도 좋게 보지는 않았다.천주에서 오면 어떤가? 그 누가 와도 주인님한테 병을 치료해달라고 하려면 공손한 태도로 부탁해야 한다.임호는 침을 삼키고 깊게 숨을 들이쉬고는 말했다.“서 선생, 어제의 일은 제가 잘못했습니다. 저한테 뭐든 시켜도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저희 할아버지께서는 앞으로 며칠 버티지 못하십니다. 제발 부탁입니다. 저희 할아버지를 살려주십시오.”임호는 말하면서 염지아를 지나치려고 했다.“왜 이러는 거예요? 말을 못 알아듣는 거예요? 당장 나가세요!”염지아는 앞으로 다가가서 임호의 길을 막았다.임호는 염지아를 한번 보더니 주먹을 꽉 쥐었지만 그래도 순순히 문 앞까지 물러났다.두 시간 동안 임호는 문 앞에 꼿꼿하게 서 있었다. 강렬한 태양에 임호는 땀범벅이 되었지만 조금도 방심할 수가 없었다. 해가 지고 하늘이 어두워지고 나서야 임호는 다시 돌아서서 서강빈에게 말했다.“서 선생, 제발 부탁입니다. 저희 할아버지를 살려주십시오. 제가 잘못했습니다. 무릎 꿇겠습니다.”말을 마친 임호는 문 앞에서 털썩 무릎을 꿇었다.“미안하지만 바빠서 시간이 없어.”서강빈은 여전히 임호에게 눈길을 주지도 않은 채 말했다.“서 선생, 만약 도와주신다면 그 은혜는 절대 잊지 않을 것입니다.”임호는 말하면서 연신 절을 올렸다. 눈가가 빨개진 임호를 보면서 염지아와 권효정도 마음이 좋지 않았다.물론 임호가 어제는 행동이 지나쳤지만, 그의 효심은 용서를 받을 만했다.바로 이때, 하늘에서 번개가 치더니 순식간에 비가 양동이로 퍼붓듯 쏟아졌다.임호는 비를
손인수는 서강빈의 의술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임성진 어르신이 잠시는 무사하게 할 수 있는 게 아닌가? 하룻밤 사이에 어르신께서 다시 위독해지는 것은 말이 안 된다.“손... 손 신의, 서강빈이 안 온다고 합니다.”임호는 이를 악물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도련님, 서강빈 씨는 그렇게 매정한 사람이 아닙니다. 얘기를 어떻게 하신 겁니까?”손인수는 미간을 찌푸리고 물었다.“그게...”임호는 그 물음에 마음이 찔렸지만, 할아버지를 위해 그때의 상황을 사실대로 말하는 수밖에 없었다.“뭐라고요? 도련님, 부탁하러 간 사람이 그러는 게 어디 있습니까? 그건 납치 아닙니까?”손인수의 마지막 말은 거의 호통치듯 했다.임호도 아주 자책하며 말했다.“손 신의, 제가 잘못했습니다. 하지만 저희 할아버지께서 지금 정말 위독하십니다. 제발 부탁합니다.”이렇게 말하는 임호의 강인한 얼굴에서 눈물이 몇 방울 흘러내렸다. 손인수는 난감하듯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도련님, 사실대로 말하면 제가 어르신을 살리고 싶지 않은 게 아닙니다. 저는 실력이 모자라서 그럴만한 능력이 안 됩니다.”손인수의 말에 임호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서 황급하게 물었다.“손 신의, 그 말씀은 신의께서도 방법이 없다는 말씀입니까?”지금까지 임호는 모든 희망을 손인수에게 걸었었다. 아무래도 5년 전에 임성진 어르신의 고질병이 재발했을 때, 손인수가 한번 살려준 적이 있었다.이번에 임호가 서강빈에게 그렇게 무례하게 대할 수 있었던 것도 손 신의를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하지만 손인수의 그 말은 그의 모든 신념을 한순간에 다 무너뜨렸다.어렸을 때부터 그는 할아버지의 곁에서 자라왔는데 군인이 된 이후로 항상 할아버지를 인생의 롤모델로 여겼었다. 할아버지가 곧 자신을 떠난다는 생각에 임호는 더는 눈물을 참지 못하고 통곡했다.“도련님, 제가 돕지 않으려는 게 아닙니다. 몇 년 전 그때는 운이 좋았던 것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임성진 어르신의 상태는 그때보다 더 심각합니다. 제
말을 마친 임호는 분노하여 콧방귀를 끼고는 병실로 들어갔다.“동진아, 도대체 무슨 일이야?”송주의 시장 허명수가 조용히 병실을 나서면서 방동진에게 물었다.“참나, 임호 도련님께서 너무 경솔하신 탓에 서 선생을 모셔오지 못한 것도 모자라 서 선생한테 손을 대려고까지 했어요. 우남기 어르신께서 중간에서 수습하지 않으셨다면 정말...”방동진은 여기까지 말하고 난감하듯 한숨을 내쉬었다.“아이고, 임호도 참.”허명수는 미간을 찌푸리고 복도를 거닐며 말했다.“서강빈이라고 하는 사람이 임성진 어르신의 병을 고칠 수 있다고 확신해?”“아주 확신합니다.”방동진은 이렇게 말하며 난처한 표정으로 허명수의 귓가에 몇 마디 속삭였다. 아무래도 남자인데 남자 구실을 하는데 문제가 생긴다면 입에 담기가 어려웠다.허명수는 말을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다가 입을 열었다.“그럼 당장 서강빈한테 전화해봐. 지금 당장 올 수 있으면 제일 좋고. 임성진 어르신의 상황이 그리 좋지 않으셔.”방동진은 침을 꿀꺽 삼키고 난감한 얼굴로 말했다.“시장님, 그때 상황을 보지 못해서 그렇게 얘기하십니다. 만약 그 사람이 저라고 해도 저는 오지 않을 것입니다.”“동진아, 임성진 어르신의 안위가 달린 일이야. 그 사람을 납치해오더라도 데리고 와야 해.”허명수는 명령하는 말투로 말했다.“시장님, 문제는 저한테 있는 게 아니잖아요. 서 선생이 나서주기를 원한다면 임호 도련님께서 직접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목마른 놈이 우물 판다는 얘기도 있잖습니까?”방동진은 서강빈의 성격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임호가 만약 예의를 차리고 정중하게 부탁하면 우남기 어르신의 체면을 봐서라도 서강빈은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하지만 문제는 임호가 아예 서강빈을 무시하고 심지어 서강빈의 몸에 손을 대려고 했다는 것이다.서강빈이 참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방동진조차 임호가 너무했다고 생각이 들었다.하여 방동진은 임호가 강효 그룹을 나서는 순간부터 이 일에 더는 관여하지 않으리라 마음을 먹었다.
서강빈은 차갑게 곽수철을 쳐다보며 얼음같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곽수철, 설마 오늘 여기를 살아서 떠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뭐라고?’곽수철은 이 말을 듣고 고개를 번쩍 들었고 서강빈과 눈이 마주쳤다. 서강빈의 눈빛에서 그는 섬뜩한 살기를 느꼈다.“너... 너 감히 나를 죽인다고?”곽수철은 서강빈이 감히 자신을 죽일 것이라고 절대 믿지 않았다. 곽수철은 자신이 킬러를 고용해서 서강빈을 죽일 수만 있지 절대 서강빈이 자신을 죽일 수는 없을 것이라고 단정 지었다.서강빈은 이 작은 송주의 별 볼 일 없는 작은 가게의 사장님일 뿐이다. 그런 서강빈에게 사람을 죽인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는 말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달빛이 비치지 않은 깊은 밤에 바람까지 세게 불면 사람 죽이기 딱 좋아. 네가 장소를 아주 잘 골랐어. 시간대도 잘 골랐고.”서강빈은 고개를 들고 고요한 숲을 한번 둘러보고는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아니... 서강빈, 너는 나를 죽이면 안 돼. 내가... 내가 이렇게 빌게. 제발 나를 놔줘. 내가 정말 잘못했어.”곽수철은 겁을 먹고 울음을 터뜨렸다. 그는 죽고 싶지 않다. 그렇게 많은 돈을 아직 다 쓰지 못했고 여자들과도 더 놀고 싶었다. 그리고...어찌 됐든 지금 그는 살고 싶은 생각뿐이었다.“말해. 저것들은 다 무슨 사람들이야?”서강빈은 곽수철의 가슴을 밟고는 차가운 목소리로 따져 물었다.“내가 말한다면 너... 너는 나를 놔줄 거야?”곽수철은 겁을 먹은 얼굴로 말했다. 서강빈은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했다.“곽 대표, 시간을 아껴. 지금 피가 빠져나오는 속도로 봐서는 5분 안에 죽게 될 거야.”말하면서 서강빈은 곽수철의 허벅지에 꽂힌 칼을 세게 휘저었다. 곽수철은 아파서 경련을 일으켰다. 곽수철처럼 곱게 자란 사람들이 이런 고통을 참아낼 수 있을 리가 만무하다.몇 초가 지난 후, 곽수철은 연신 애원하며 말했다.“서강빈, 말할게, 내가 다 말할게! 제발 나를 그만 괴롭히고 나 좀 놔줘!”“말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