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곧 옆에 서서 그 장면을 전부 지켜보고 있던 도정윤은 진기준과 양미란이 조금 지나쳤다고 생각했다.송해인을 구해준 사람은 분명 서강빈이었기 때문이다.그러나 조금 전 그녀는 말하지 않고 침묵을 선택했다.송해인이 자신을 구한 게 서강빈이라는 걸 알게 된다면 어쩌면 그에게 또 감정이 생길지도 모른다고 짐작했기 때문이다.도정윤은 그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서강빈 같은 인간쓰레기는 송해인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해 도정윤은 침묵을 선택했다.잠시 뒤 도정윤은 병실에서 나왔고 진기준이 그녀를 따라잡고 덤덤히 말했다.“도정윤 씨, 고마워요.”“뭐가요?”도정윤은 벽에 기댄 채로 불만스레 물었다진기준은 웃으며 대답했다.“송해인에게 그녀를 구한 사람이 서강빈이라는 걸 말해주지 않아서 고마워요.”도정윤의 예쁜 미간이 구겨졌다. 그녀가 차갑게 말했다.“나한테 고마워할 필요 없어요. 난 당신들과 다르니까요. 난 그저 송해인과 서강빈이 최대한 멀어지길 바라는 것뿐이에요.”말을 마친 뒤 도정윤은 커피를 마시고 싶어 병원 입구를 향해 걸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창백한 얼굴로 휴게실에 앉아서 식은땀을 흘리고 있는 서강빈을 보았다.“왜 아직도 안 떠났어?”도정윤이 언짢은 표정으로 물었다.서강빈은 도정윤을 힐끗 보더니 힘없이 대답했다.“안에 들어가서 해인이 얼굴만 보고 떠날게요.”말을 마친 뒤 서강빈은 자리에서 일어나 병실로 향하려 했다.도정윤은 미간을 구기더니 서강빈을 막아서고 차갑게 말했다.“안에 들어갈 필요 없어. 해인이 아주 멀쩡하니까.”서강빈은 눈살을 찌푸리며 차갑게 말했다.“당부할 말이 있어서 그래요. 안 그러면 앞으로 또 발작할 수도 있거든요.”말을 마친 뒤 서강빈은 병실로 향했고 화가 난 도정윤은 시끄럽게 떠들며 다급히 따라갔다.병실 안에는 진기준과 양미란 모자, 그리고 이세영이 있었다.갑자기 서강빈이 안으로 들어오자 송해인은 미간을 구기며 화가 난 얼굴로 차갑게 말했다.“여긴 왜 온 거야?”그녀가 아픈 걸 알고 잘 보이려고 찾
서강빈의 말투와 태도에 송해인은 불퉁한 표정으로 반박했다.“그러면 아니야? 언제까지 거짓말할 생각이야?”“예전에 네가 그렇게 말했다면 조금 의심했을지도 모르지만 날 구한 일은 우리 엄마, 동생, 진 대표, 그리고 이 비서, 도정윤까지 똑똑히 봤어.”“서강빈, 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날 속이려고? 너 정말 짜증 나는 거 알아?”그 말에 서강빈은 미간을 찌푸리더니 안색이 달라졌다.그가 입을 열기도 전에 양미란은 서둘러 그의 입을 막기 위한 것처럼 짜증을 내며 투덜댔다.“서강빈, 됐어. 우리 앞에서 큰소리치지 마.”“네가 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뻔뻔하게 송해인을 구한 사람이 너라고 할 줄은 정말 생각지도 못했다.”“정말 낯짝도 두껍지!”서강빈은 안색이 어두워지면서 차갑게 말했다.“여기 있는 사람들끼리 짜고 쳤다, 이거네요?”“짜고 치다니? 서강빈, 당신 말을 왜 그 따위로 해? 설마 이렇게 많은 사람이 합심해서 우리 누나를 속이기라도 했다는 거야?”송태호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이세영은 항상 서강빈을 아니꼽게 생각했기에 중간에 끼어들며 그를 욕했다.“서강빈 씨, 대표님은 서강빈 씨가 구한 게 아니에요. 우리 모두 똑똑히 봤다고요.”“김 신의님이 송 대표님을 구한 건데!”“그리고 잊지 말아요. 대표님은 서강빈 씨 때문에 화가 나서 이렇게 됐다고요. 이곳에 서 있을 자격이 제일 없는 건 바로 당신이에요. 내가 당신이었으면 이미 꺼졌을 거예요.”이세영의 비난과 질책에 서강빈의 안색이 점점 더 흐려졌다.병실 안의 사람들은 서강빈을 나무라기 시작했고 온갖 종류의 욕설과 비난을 퍼부었다.서강빈은 자조하듯 웃었다. 그것도 아주 차갑게 말이다.결국 그는 죄인이 되었다.“서강빈, 가! 난 널 보고 싶지 않아!”이때 병상에 앉아있던 송해인이 차갑게 호통을 쳤다.그녀가 보기에 서강빈은 영락없는 소인배였다.특히 전에 그녀가 위험을 무릅쓰고 그를 도우려 찾아갔을 때, 그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고 심지어 그녀가 쓸데없이 참견했다고 생각했다
“도정윤 씨, 신중하셔야 해요. 누군가에게 위협당하지 마세요!”진기준이 서둘러 말하면서 도정윤을 향해 끊임없이 눈치를 줬다.“그...”도정윤은 살짝 머뭇거리다가 결국 한숨을 쉬면서 결연한 눈빛으로 말했다.“윤아야, 널 구한 건 김 신의님이셔. 서강빈은 나타난 적도 없어.”그 말에 병실 안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서강빈의 표정 또한 굳었다. 그는 복잡한 눈빛으로 감히 자신을 직시하지 못하는 도정윤을 바라보았다.그는 도정윤처럼 도도한 여자가 진기준과 양미란 같은 소인배의 편에 서서 거짓말을 할 줄은 몰랐다.“도정윤 씨, 지금 자기가 무슨 말을 한 건지 압니까?”서강빈의 안색이 흐려졌다.양미란이 곧장 말했다.“서강빈, 들었지? 도정윤도 김 신의님이 우리 해인이를 구했다고 하잖아. 언제까지 거짓말을 할 셈이야?”진기준은 도정윤의 말을 듣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긴장하던 기색은 사라지고 조롱하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서강빈 씨, 무슨 말을 더 하려고요?”진기준은 냉소했고 병상 위 송해인은 실망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또 한 번 서강빈에게 속다니!“서강빈, 대체 언제까지 그럴 거야? 이젠 정윤이까지 네가 거짓말을 한다고 증언했는데, 이러면 됐어?”송해인이 화를 내며 말했다.서강빈은 미간을 구기고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쉬었다.“믿지 않는다면 나도 더는 할 말 없어. 해야 할 얘기는 다 했으니까. 처방전은 저기 있어.”서강빈은 고개를 저으며 몸을 돌려 자리를 뜨려 했으나 송해인이 외쳤다.“거기 서. 네 처방전은 가지고 가.”“맞아! 김 신의님이 계시는데 네 처방전을 누가 원한다고 그래? 우리 딸이 먹었다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얼른 가져가!”양미란이 처방전을 덥석 쥐더니 종이 뭉치로 만들어 서강빈의 얼굴에 툭 던지면서 파리 쫓듯 서강빈을 내쫓았다.서강빈은 차가운 얼굴로 종이 뭉치를 집어 들었다. 그는 자조적인 미소를 띠며 말했다.“그래요, 갈게요.”말을 마친 뒤 서강빈은 몸을 돌려 쓸쓸하게 떠났다.“잠깐!”갑자기
짝!뺨 때리는 소리가 병실 안에 울려 퍼졌다.송해인은 서강빈의 뺨을 힘껏 때렸다.병실 안은 순식간에 조용해졌고 사람들은 놀란 눈빛으로 송해인을 바라보았다.솔직히 말해 항상 단아하고 너그럽던 송해인이 오늘처럼 이렇게 난폭한 모습을 보이는 건 처음이었다. 심지어 다른 사람들 앞에서 서강빈을 때리다니, 예전이었다면 감히 상상도 못 했을 일이다.서강빈은 당황했다. 뺨이 화끈거려 손을 뻗어 만져본 그는 자조했다.송해인은 다른 남자를 위해 화를 내며 그의 뺨을 때렸다.예전에는 오해받아도, 비난받아도 그냥 미간만 찌푸리며 넘어갔었다.그러나 오늘 서강빈은 송해인을 위해 자신의 체내에 있는 영기 중 반을 써서 그녀를 구했는데, 송해인은 다른 사람들의 거짓말은 믿어도 3년간 부부로서 함께 산 전남편의 말은 믿지 않았다.허탈해진 서강빈은 쓴웃음을 지었다.송해인은 지금 무척 후회하면서 손을 떨고 있었다. 그녀도 자신이 왜 이러는 건지 알 수 없었다.그저 아주 화가 났을 뿐이다.“왜, 왜 지금까지도 거짓말만 해? 사과하는 게 그렇게 어려워?”송해인은 이를 악물더니 눈물이 그렁그렁한 얼굴로 서강빈에게 따져 물었다.그녀는 이해할 수 없었다. 예전에 그녀의 앞에 서서 온갖 풍파를 막아주던 서강빈이 이렇게 변했는지 말이다.지금의 서강빈은 아무짝에도 쓸모없고 진취적이지도 않고 마음도 좁았다. 심지어 거짓말을 하고 난동을 부리며 폭력적이기까지 했다.서강빈은 최악의 남자였다.“하하, 서강빈 씨. 감히 나랑 싸우려고요? 당신은 그럴 자격이 없어요!”진기준이 옆에서 입을 틀어막고 비아냥대며 냉소했다.조금 전 그가 달려든 이유는 서강빈이 자신을 때릴 거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이제 송해인은 서강빈을 때리고 그와 완전히 원수가 되었다.진기준은 자신의 목적을 이룬 셈이다.“잘 때렸어! 이런 놈은 때려야 해.”양미란이 말했다.“맞아, 누나. 정말 멋졌어. 나도 줄곧 뺨을 때리고 싶었다니까!”송태호도 거들었다.줄곧 말이 없던 서강빈은 차갑게 웃음을 터뜨렸다.3년
김하율이었다.“진 대표님, 진료비는 다시 돌려드릴게요. 저희 할아버지가 그러셨어요. 송해인 씨 병은 할아버지가 치료한 게 아니니까 진료비는 받을 수 없다고. 그리고 앞으로는 우리 할아버지를 다시 찾지 말아 달라고 하셨어요.”김하율이 현금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떠났다.병실을 나서기 전, 고개를 돌린 김하율은 바닥에 주저앉은 채로 의문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는 송해인을 바라보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송해인 씨, 조금 전에 하신 말씀은 다 들었어요. 안타깝게도 송해인 씨는 전남편을 오해하셨네요.”말을 마친 뒤 김하율은 떠났다.송해인은 얼이 빠졌다.병실 안의 양미란, 송태호, 진기준, 이세영 등 사람들도 전부 넋이 나갔다.거짓말인 게 밝혀지다니, 큰일이었다.진기준은 안색이 달라지더니 이내 반응을 보이며 호통을 쳤다.“저 계집애, 내가 준 진료금이 너무 적어서 그러는 건가? 저런 말을 한다니.”“해인아, 넌 푹 쉬고 있어. 내가 나가 볼게.”말을 마친 뒤 진기준은 그 틈을 타서 도망칠 생각이었다.양미란도 서둘러 말했다.“그, 기준아. 나도 같이 갈게. 김 신의님 진짜 뭐 하시는 건지 모르겠네. 손녀를 보내서 헛소리를 하다니 말이야.”이세영도 급히 말했다.“대표님, 전 회사에 다른 볼일이 있어서 먼저 가볼게요.”그들은 전부 도망치려 했다.그리고 바닥에 앉아있던 송해인은 곧바로 깨달았다.“다들 멈춰요!”송해인이 눈물을 흘리면서 소리쳤다.곧이어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난 그녀는 싸늘한 시선으로 사람들을 둘러보며 따져 물었다.“방금 저 말 무슨 뜻이에요?”“날 구한 사람이 대체 누구예요?”그녀의 목소리가 병실 안에 울려 퍼졌다.“그...”양미란은 머뭇거리면서 진기준을 바라봤고 진기준은 다급히 웃으며 말했다.“그, 해인아. 넌 괜한 생각하지 말고 푹 쉬어. 누가 치료했든 다 똑같지, 뭐.”“꺼져!”송해인은 진기준을 밀치고 매서운 눈빛으로 양미란을 바라보며 물었다.“엄마, 솔직히 얘기해 봐요. 서강빈이 날 구한 거예요?”양미
“미안하단 말이 무슨 소용이 있는데. 네 눈에 나는 거짓말만 하는 소인배잖아.”서강빈이 차갑게 말했다.그는 완전히 실망했다.신뢰받지 못하는 기분이 가장 괴로웠다.게다가 송해인은 그와 3년간 함께 살았던 여자였다.“난...”송해인은 우물쭈물했다. 그녀는 급한 마음에 서강빈의 손을 잡고 초조하게 말했다.“엄마가 날 속인 거였어. 그리고 너도 계속 해명하려 하지 않았잖아. 넌 항상 말하다가 말고 떠나는데 내가 널 어떻게 믿겠어?”그 말에 서강빈은 안색이 달라졌다. 고개를 돌린 그는 한껏 진지한 눈빛으로 송해인을 바라보며 자조했다.“내 잘못이란 말이야? 내가 충분히 설명하지 못해서 그렇다고?”“그... 그게 아니라. 그런 뜻은 아니었어.”송해인은 마음이 급했다. 그녀는 더 설명하고 싶었다.그러나 서강빈은 그녀의 두 손을 뿌리치며 차갑게 말했다.“송 대표, 더 설명할 필요 없어. 송 대표 어머니가 송 대표를 어떻게 속였든지 상관없어. 송 대표는 결국엔 그들을 또 믿을 테니까 말이야.”“사실 송 대표도 알고 있잖아. 송 대표는 애초에 날 믿을 생각이 없었어.”“3년의 감정으로도 신뢰 한 번 받지 못하는데, 내가 어떻게 설명하든 결국 결과는 똑같았을 거야.”말을 마친 뒤 서강빈은 몸을 돌려 차에 올랐다.“서강빈, 대체 뭘 어쩌고 싶은 거야?”이성을 잃은 송해인이 날카롭게 소리 질렀다. 그녀는 서강빈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말했다.“넌 처음부터 끝까지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다는 거야? 왜 나한테 이러는 건데? 넌 내가 이러고 싶어서 이러는 줄 알아?”“설마 내가 무릎 꿇고 사과라도 해야 날 용서해 줄 셈이야?”“그래. 넌 잘못이 없어. 다 내 잘못이지. 됐지?”서강빈이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너, 너 그게 무슨 태도야?”송해인은 화가 나서 말문이 막혔다.“송해인, 넌 영원히 네가 뭘 잘못했는지 모를 거야. 넌 항상 내가 뭘 하든 다 내가 잘못한 거라고 생각하니까. 그런데 왜 굳이 날 쫓아와서 나한테 사과하는
송해인은 멈칫하더니 천천히 고개를 들어 먼 곳을 바라보며 눈물을 훔쳤다.그리고 한숨을 내쉬고 일어나 흐리멍덩한 눈빛으로 말했다.“알아.”송해인은 방금 서강빈이 떠날 때의 눈빛이 얼마나 실망스럽고 단호했는지 잘 알고 있다. 마치 칼처럼 그녀의 가슴을 찔렀다.그리고 서강빈과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이전에 그녀는 성공적인 시업을 추구했고 송주 비지니스계의 여왕이 되길 바랐다.그래서 많은 걸 포기했어야만 했다.하지만 이혼 후 송해인은 자신이 서강빈을 떠날 수 없는 것 같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네가 지금 해야 할 일은 너의 꿈을 이루는 거야.”도정윤이 말했다. 그러자 송해인은 눈물을 글썽거리며 대답했다.“알아. 혼자 있고 싶어.”그리고 송해인은 돌아서서 혼자 덩그러니 엘리베이터를 타고 병원 옥상으로 갔다.병실 안의 사람들은 모두 초조했다.도정윤이 돌아오자 양미란이 물었다.“정윤아, 해인이는?”“옥상에 있어요.”도정윤은 덤덤하게 대답했다. 그 말을 듣자 양미란은 마음이 초조해 났다.“아이고, 해인이가 나쁜 생각을 하지는 않겠지? 가자. 빨리 올라가 보자.”그러자 도정윤은 양미란 등 사람들을 가로막으면서 말했다.“아줌마, 가지 마세요. 그냥 혼자 있게 놔두세요.”“아까 당신들이 속인 걸 잊지 마세요. 지금 올라가면 오히려 해인이한테 더 나쁜 자극이 될 거예요.”양미란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이 애는 왜 우리가 자기를 위하는 걸 모를까?”옥상에서.송해인은 가장자리에 앉아 두 손을 짚고 두 다리를 허공에 띄우고 있었다.그녀의 하얗고 초췌한 뺨에 눈물 자국이 가득했다. 찬바람이 스치면서 그녀의 눈물을 말리고 헝클어진 머리를 쓸어올렸다.그러다가 송해인은 다시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그녀는 무릎을 껴안고 머리를 파묻은 채 어깨를 들썩이며 울었다.....서강빈은 가게에 돌아가지 않고 권효정더러 자신을 가게 문 앞에 내려달라고 했다. 그리고 그는 택시를 잡고 이상한 할아버지네로 갔다.밤이 깊었다.
가게 안에서.잠시 앉아 있다가 서강빈은 떠날 준비를 했다.그러자 이상한 할아버지는 갑자기 문서를 꺼내 서강빈에게 던졌다.“한번 봐봐. 방금 찾은 네 어머니에 관한 단서들이야.”서강빈은 어리둥절해하더니 얼른 문서를 열어 훑어보았다.이상한 할아버지는 여유 있게 말했다.“네 어머니가 서씨 가문에서 쫓겨난 후 송주에 온 적이 있어. 왜 왔는지는 아직 조사해 내지 못했어.”“하지만 조사하다 보니 내 부하들이 하는 말에 의하면 어떤 사람들이 네 어머니를 죽이려고 쫓아다녔대. 네 어머니가 가지고 나오지 말아야 할 물건을 가지고 나왔다면서.”서강빈은 눈썹을 구기며 안색이 변했다. 그리고 살의가 솟구치는 목소리로 물었다.“그게 누군데요?”“아직 찾아내지 못했어.”이상한 할아버지는 머리를 저으며 말했다.서강빈은 눈살을 찌푸리고 문건을 꽉 쥐면서 말했다.“찾으면 제일 먼저 알려주세요!”그러자 할아버지는 부채를 흔들며 대답했다.“너는 말이야. 먼저 코앞의 문제부터 해결해.”서강빈은 한숨을 내쉬며 그의 뜻을 알아챘다.“될 대로 되라고 하죠.”서강빈은 슬프지도 기쁘지도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아참 그리고, 병을 치료하는 약재를 빨리 구해올게요.”그러자 할아버지는 한숨을 쉬면서 대답했다.“급하지 않아. 나는 이미 살 만큼 살았어. 죽든 살든 다 괜찮아. 다만 내가 죽은 후 이 천용전을 봐줄 사람이 없어 그게 걱정이야.”“젊은이, 아니면 자네가 내 천용전을 물려받게나.”서강빈은 미간을 찌푸리며 단칼에 거절하였다.“저는 싸우고 죽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요. 다른 사람을 찾으세요.”말을 끝내고 서강빈은 자리를 떠났다.할아버지는 멀어져가는 서강빈의 뒷모습을 보면서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이 자식아, 네가 싫어도 좋아도 다 네가 물려받아야 해. 이 천용전은 너 말고 다른 사람에게 줄 수가 없어.”말이 끝나자 몸매라인이 예쁜 검은 실루엣이 갑자기 뒤에서 나타났다. 그녀는 검은색 옷을 입고 포니테일을 묶은 채 문에 기대어 두 손을 가슴에 두르고 있었
만약 서강빈이 단지 의술이 대단하다고 하면 이선종은 이 정도까지 공경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의학은 도문에서 기원했지만, 지금의 의사 중에서는 도술을 아는 이들이 적었다. 그러나 서강빈은 의술이 대단할 뿐만 아니라 도술 면에서도 이렇게나 조예가 깊으므로 정말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서강빈은 다가가서 이선종을 일으키며 말했다.“선생님, 이러실 필요 없습니다. 선생께서도 어르신의 병세를 걱정하여 혹시나 돌팔이를 만날까 봐 그러신 거잖아요.”이선종은 이 말을 듣고 부끄러운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말했다.“서 선생, 선생을 보니 저는 정말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마음입니다. 선생은 저보다 의술이 대단할 뿐만 아니라 성품도 저보다 훨씬 훌륭하십니다.”서강빈은 이선종의 어깨를 토닥이고는 침대에 누워있는 임성진 어르신을 바라보았다.지금 임성진 어르신의 얼굴은 점점 혈색이 돌아오고 곁에 있는 기기에서도 몸의 각종 수치가 호전되고 있다고 나타나고 있었다.임호는 할아버지가 무사한 것을 보고 감격하여 눈물을 흘렸다.“서 선생, 우리 할아버지를 살려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저는 서 선생을 큰 형님으로 모시고 싶은데 서 선생께서 부디 거절하지 마시고 보잘것없는 이 동생을 거둬주십시오.”말하며 임호는 한쪽 무릎을 꿇고 서강빈을 향해 주먹을 모은 채로 성의를 표했다.서강빈은 임호에 대해 첫인상이 무척 나빴지만, 임호가 가게의 문 앞에서 무릎을 꿇은 순간부터 서강빈이 임호에 관한 생각도 180도 변하였다.하여 서강빈은 거절하지 않고 임호를 부축하여 일으키면서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할아버지를 잘 보살피세요. 내가 남긴 처방전을 따르면 어르신께서는 열흘이 지나지 않아 완치하실 것입니다.”임호는 고개를 세게 끄덕이며 말했다.“네. 감사합니다, 형님. 할아버지께서 상황이 좋아지시면 반드시 감사 인사를 올리러 직접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서강빈은 임호의 오른 다리를 한번 보더니 생각에 잠긴 채 말했다.“다음에 올 때 x 레이 사진을 함께 가지고 오세요.”임호는 영
이선종은 돋보기를 쓰고 자세히 살펴보았지만, 여전히 확신할 수 없는 듯 서강빈에게 말했다.“서 선생, 이 약재가 백 년이 되는지 한번 살펴보세요.”서강빈이 내린 처방을 본 이후로 서강빈을 대하는 이선종의 태도는 완전히 변하였다. 심지어 서강빈의 앞에서는 초보인 것 같은 모습까지 보였다. 서강빈은 상자 안에 들어있는 설련초를 한번 보더니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네. 맞습니다. 백 년 된 설련초가 맞아요.”서강빈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고 임호는 감격하여 말했다.“서 선생, 그 말은 우리 할아버지를 살릴 수 있다는 말씀이시죠?”“그렇다고 볼 수 있죠. 먼저 어르신께서 탕약을 드시고 난 후에 다시 살펴보죠.”서강빈은 고개를 세게 끄덕이며 말했다.“할아버지를 살릴 수 있다니, 너무 다행이에요. 서 선생, 우리 할아버지께서 무사할 수만 있다면 우리 임씨 가문에서는 서 선생의 큰 은혜를 절대 잊지 않을 것입니다.”말을 마친 임호는 서강빈에게 절을 세 번 올렸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뿐이니 도련님께서 이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만 이 설련은 줄기만 사용해야 합니다. 꽃잎은 사용하면 안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폐의 기를 상하게 하여 오히려 어르신께 독이 될 수 있어요.”서강빈은 다시 한번 당부했다.“알겠어요. 지금 당장 사람을 시켜서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임호는 설련을 곁에 있는 간호사에게 건네려고 할 때 손인수가 서둘러 다가오며 말했다.“도련님, 이런 일은 저에게 맡기세요.”이렇게 말하며 손인수는 고개를 돌려 서강빈을 바라보았다.서강빈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손인수의 의술로 보아 이 정도로 간단한 일을 처리하는 건 거뜬했다.손인수는 나무 상자를 받아들고 무척 공손하게 서강빈을 향해 인사를 건넨 다음에야 병실을 나섰다. 이선종은 살짝 미간을 찌푸린 채 물었다.“서 선생과 손 신의는 예전부터 알던 사이였습니까?”“그런 셈이죠.”서강빈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이 말을 들은 이선종은 그제야 자신이 병실에 도착
이선종이 듣기에 서강빈의 말은 지금 장난을 치는 것처럼 느껴졌다. 임성진 어르신은 천주 군사구역의 고위층 지도자였다. 만약 정말 병을 완치할 수 있다면 오늘까지 끌었을 필요가 있겠는가? 설마 천주의 모든 유명한 의사들이 다 서강빈보다 못하다는 말인가?서강빈은 침대에 누워있는 임성진 어르신을 살펴보았다. 어르신의 얼굴이 창백하고 호흡이 미약한 것을 보고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임성진 어르신의 상황이 그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복잡한 듯 보였다. 서강빈은 먼저 진혼 부적을 사용해서 총알 파편을 제거한 후 어르신한테 침을 놓으려고 했었다. 하지만 지금의 상태로 보아서는 반드시 임성진 어르신의 상태를 먼저 안정시켜야 했다.“임성진 어르신의 지금 상태로 보아 바로 총알의 파편을 꺼내면 안 됩니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먼저 기맥을 안정시켜야 해요. 선생님께서는 제 생각에 동의하시는지요?”서강빈은 고개를 돌려 이선종을 보면서 말했다.“흥! 자네는 말을 참 쉽게 하네. 나조차도 확신할 수 없는데 자네처럼 젊은 사람이 무슨 수로 어르신의 상태를 안정시킨다는 말인가? 그리고 임성진 어르신은 지금 폐 기능이 감퇴한 것뿐만 아니라 오장육부가 모두 망가지고 있다네.”이선종은 차갑게 콧방귀를 뀌며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말했다.“선생님, 그 말은 너무 극단적인 것 같은데요? 어떤 경우에는 당신이 못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도 못 하는 게 아니거든요. 의술을 놓고 말할 때도 누가 더 잘하고 못하는지는 지금 결론을 내기에는 이른 것 아닌가요?”서강빈은 말을 마치고 곁에 있는 책상에 놓인 종이와 볼펜을 들고 능숙하게 써 내려간 처방을 이선종에게 건네며 말했다.“선생님, 내 처방전이 어르신의 병세를 안정시키는 데 효과가 있을지 한번 보십시오.”이선종은 못마땅하다는 얼굴로 서강빈의 손에서 처방전을 건네받아서는 자세히 읽어보았다. 조금 전까지도 가소로운 표정을 하고 있던 이선종은 서강빈의 탕약 처방전을 보고 나서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이게... 이 처방
이선종은 성회에서 유명한 신의였는데 원장의 체면이 아니면 멀리서 임성진 어르신의 병을 봐주러 오지 않았을 것이다. 단지 임성진 어르신의 상황이 복잡하여 이선종도 연신 고개를 저었다.“주 원장님, 감사합니다.”임호는 먼저 원장한테 감사 인사를 하고 뒤에 있는 서강빈을 가리키며 말했다.“하지만 저희 할아버지의 병은 서 선생이 고칠 수 있을 것입니다.”서강빈의 일이 있고 나서 사람들을 대하는 임호의 말투와 태도는 큰 변화가 있는 걸 어렵지 않게 보아낼 수 있었다. 더는 예전의 거만함이 없었다.“뭐라고요? 서 선생? 무슨 서 선생이요? 하느님이 와도 어르신의 병을 고칠 수 있다고 장담하지 못할 것입니다.”이선종의 표정에는 분노한 기색을 띠고 고개를 들어 임호를 보며 말했다.“어르신은 폐에 총알의 잔해가 남아있기 때문에 병든 것입니다. 아무리 최고급의 기기를 사용한다고 해도 꺼낼 수가 없어요. 그 잔해가 남아있는 한 무슨 약을 쓰더라도 다 소용이 없습니다.”이 말을 들은 서강빈은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총알의 잔해일 뿐인데 그 정도까지는 엄중하지 않죠.”‘뭐라고? 총알의 잔해일 뿐인데?’이 말을 들은 이선종은 표정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자네가 의술을 정말 아는지 의심되네. 잔해가 체내에 남아있다는 건 무슨 의미인지 알고 있어? 장기가 쇠퇴하고 있다는 말일세! 그 어떤 사람이 와도 이렇게 엄중한 병은 치료할 수가 없다네.”이선종은 큰소리로 호통을 쳤다. 그가 보기에 서강빈은 아무것도 모르는 애송이었다. 하여 그의 말속에는 오만함이 다분했고 무례하기 그지없었다.“어르신의 폐 검사 결과를 가져와서 저 사람한테 보여주세요!”주 원장은 다급하게 곁에 있는 간호사를 불러서는 손짓을 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간호사는 임성진 어르신의 폐 검사 결과를 가지고 와서 서강빈에게 건넸다. 서강빈은 x 레이 사진 속의 음영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여기일 것이다.x 레이 사진 속의 거대한 음영을 보고 임호는 순간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을 느끼며 몸이 휘청
“서 선생, 잘못했습니다. 제발 저희 할아버지를 살려주십시오. 할아버지께서... 지금 더 버티기 어렵습니다.”이렇게 말하며 임호는 참지 못하고 다시 눈물을 흘렸다.그는 무릎을 꿇는 순간부터 서강빈이 승낙할 때까지 무릎을 꿇고 있으리라고 마음을 먹었다.사실 서강빈은 이미 우남기 어르신한테서 임성진 어르신의 상황에 대해 어느 정도 들어서 알고 있었다. 방금 그린 진혼 부적도 임성진 어르신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준비한 것이다.임호한테 그렇게 차갑게 대한 것은 임호에게 교훈을 주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임호의 행동은 서강빈의 마음을 동하게 했다. 대장부로서 무릎을 꿇는 일은 절대 쉽지 않다. 더욱이 임호처럼 도도한 사람이 할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가게 앞에서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그의 효심을 증명하기에 족했다.이렇게 생각한 서강빈은 손을 뻗어 임호를 부축했다.“서 선생.”임호는 감격한 얼굴로 서강빈을 쳐다보았다.“그래요, 도련님, 어르신한테 갑시다.”서강빈은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정말 저를 용서하신 겁니까?”임호는 눈물을 닦으며 빨개진 두 눈으로 말했다.서강빈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고 임호를 칭찬하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 자신의 가족을 살리기 위해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심지어 자신의 자존심까지 내려놓을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대장부였다.“정말 너무 감사드립니다. 서 선생, 이리로 오십시오.”임호는 이렇게 말하며 차 문을 열려고 했지만 조금 전 비를 맞으며 빗속에서 너무 오래 있은 탓에 예전에 다쳤던 무릎이 다시 말썽을 일으켜 임호는 비틀거리다가 바닥에 넘어지고 말했다. 서강빈은 손을 뻗어 임호를 부축하고는 은침을 하나 떠내 임호의 무릎에 있는 혈 자리에 꽂았다.은침의 위에 영기가 맴돌더니 바로 임호의 체내로 들어갔다. 이윽고 따뜻한 느낌이 몸에 퍼지면서 임호의 무릎에 있던 상처는 기적처럼 완치되었다.“이게...”임호는 깜짝 놀랐다. 대단한 한의사, 심지어 신의 손이라고 불리는 의사까지 다 찾아가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서강빈은 임호에게 눈길을 보내지도 않고 곁에서 청소하는 염지아에게 말했다.“그만하고 손님 보내드려.”염지아는 서둘러 손에 있던 걸레를 내려놓고 앞으로 다가가 냉랭한 표정으로 말했다.“돌아가십시오. 여기는 당신을 환영하지 않습니다.”염지아는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는 자세히 모르지만, 권효정한테서 어느 정도 맥락은 들어서 알고 있었다.임호처럼 자신의 출신을 내세워 다른 사람을 무시하는 사람들을 염지아도 좋게 보지는 않았다.천주에서 오면 어떤가? 그 누가 와도 주인님한테 병을 치료해달라고 하려면 공손한 태도로 부탁해야 한다.임호는 침을 삼키고 깊게 숨을 들이쉬고는 말했다.“서 선생, 어제의 일은 제가 잘못했습니다. 저한테 뭐든 시켜도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저희 할아버지께서는 앞으로 며칠 버티지 못하십니다. 제발 부탁입니다. 저희 할아버지를 살려주십시오.”임호는 말하면서 염지아를 지나치려고 했다.“왜 이러는 거예요? 말을 못 알아듣는 거예요? 당장 나가세요!”염지아는 앞으로 다가가서 임호의 길을 막았다.임호는 염지아를 한번 보더니 주먹을 꽉 쥐었지만 그래도 순순히 문 앞까지 물러났다.두 시간 동안 임호는 문 앞에 꼿꼿하게 서 있었다. 강렬한 태양에 임호는 땀범벅이 되었지만 조금도 방심할 수가 없었다. 해가 지고 하늘이 어두워지고 나서야 임호는 다시 돌아서서 서강빈에게 말했다.“서 선생, 제발 부탁입니다. 저희 할아버지를 살려주십시오. 제가 잘못했습니다. 무릎 꿇겠습니다.”말을 마친 임호는 문 앞에서 털썩 무릎을 꿇었다.“미안하지만 바빠서 시간이 없어.”서강빈은 여전히 임호에게 눈길을 주지도 않은 채 말했다.“서 선생, 만약 도와주신다면 그 은혜는 절대 잊지 않을 것입니다.”임호는 말하면서 연신 절을 올렸다. 눈가가 빨개진 임호를 보면서 염지아와 권효정도 마음이 좋지 않았다.물론 임호가 어제는 행동이 지나쳤지만, 그의 효심은 용서를 받을 만했다.바로 이때, 하늘에서 번개가 치더니 순식간에 비가 양동이로 퍼붓듯 쏟아졌다.임호는 비를
손인수는 서강빈의 의술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임성진 어르신이 잠시는 무사하게 할 수 있는 게 아닌가? 하룻밤 사이에 어르신께서 다시 위독해지는 것은 말이 안 된다.“손... 손 신의, 서강빈이 안 온다고 합니다.”임호는 이를 악물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도련님, 서강빈 씨는 그렇게 매정한 사람이 아닙니다. 얘기를 어떻게 하신 겁니까?”손인수는 미간을 찌푸리고 물었다.“그게...”임호는 그 물음에 마음이 찔렸지만, 할아버지를 위해 그때의 상황을 사실대로 말하는 수밖에 없었다.“뭐라고요? 도련님, 부탁하러 간 사람이 그러는 게 어디 있습니까? 그건 납치 아닙니까?”손인수의 마지막 말은 거의 호통치듯 했다.임호도 아주 자책하며 말했다.“손 신의, 제가 잘못했습니다. 하지만 저희 할아버지께서 지금 정말 위독하십니다. 제발 부탁합니다.”이렇게 말하는 임호의 강인한 얼굴에서 눈물이 몇 방울 흘러내렸다. 손인수는 난감하듯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도련님, 사실대로 말하면 제가 어르신을 살리고 싶지 않은 게 아닙니다. 저는 실력이 모자라서 그럴만한 능력이 안 됩니다.”손인수의 말에 임호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서 황급하게 물었다.“손 신의, 그 말씀은 신의께서도 방법이 없다는 말씀입니까?”지금까지 임호는 모든 희망을 손인수에게 걸었었다. 아무래도 5년 전에 임성진 어르신의 고질병이 재발했을 때, 손인수가 한번 살려준 적이 있었다.이번에 임호가 서강빈에게 그렇게 무례하게 대할 수 있었던 것도 손 신의를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하지만 손인수의 그 말은 그의 모든 신념을 한순간에 다 무너뜨렸다.어렸을 때부터 그는 할아버지의 곁에서 자라왔는데 군인이 된 이후로 항상 할아버지를 인생의 롤모델로 여겼었다. 할아버지가 곧 자신을 떠난다는 생각에 임호는 더는 눈물을 참지 못하고 통곡했다.“도련님, 제가 돕지 않으려는 게 아닙니다. 몇 년 전 그때는 운이 좋았던 것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임성진 어르신의 상태는 그때보다 더 심각합니다. 제
말을 마친 임호는 분노하여 콧방귀를 끼고는 병실로 들어갔다.“동진아, 도대체 무슨 일이야?”송주의 시장 허명수가 조용히 병실을 나서면서 방동진에게 물었다.“참나, 임호 도련님께서 너무 경솔하신 탓에 서 선생을 모셔오지 못한 것도 모자라 서 선생한테 손을 대려고까지 했어요. 우남기 어르신께서 중간에서 수습하지 않으셨다면 정말...”방동진은 여기까지 말하고 난감하듯 한숨을 내쉬었다.“아이고, 임호도 참.”허명수는 미간을 찌푸리고 복도를 거닐며 말했다.“서강빈이라고 하는 사람이 임성진 어르신의 병을 고칠 수 있다고 확신해?”“아주 확신합니다.”방동진은 이렇게 말하며 난처한 표정으로 허명수의 귓가에 몇 마디 속삭였다. 아무래도 남자인데 남자 구실을 하는데 문제가 생긴다면 입에 담기가 어려웠다.허명수는 말을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다가 입을 열었다.“그럼 당장 서강빈한테 전화해봐. 지금 당장 올 수 있으면 제일 좋고. 임성진 어르신의 상황이 그리 좋지 않으셔.”방동진은 침을 꿀꺽 삼키고 난감한 얼굴로 말했다.“시장님, 그때 상황을 보지 못해서 그렇게 얘기하십니다. 만약 그 사람이 저라고 해도 저는 오지 않을 것입니다.”“동진아, 임성진 어르신의 안위가 달린 일이야. 그 사람을 납치해오더라도 데리고 와야 해.”허명수는 명령하는 말투로 말했다.“시장님, 문제는 저한테 있는 게 아니잖아요. 서 선생이 나서주기를 원한다면 임호 도련님께서 직접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목마른 놈이 우물 판다는 얘기도 있잖습니까?”방동진은 서강빈의 성격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임호가 만약 예의를 차리고 정중하게 부탁하면 우남기 어르신의 체면을 봐서라도 서강빈은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하지만 문제는 임호가 아예 서강빈을 무시하고 심지어 서강빈의 몸에 손을 대려고 했다는 것이다.서강빈이 참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방동진조차 임호가 너무했다고 생각이 들었다.하여 방동진은 임호가 강효 그룹을 나서는 순간부터 이 일에 더는 관여하지 않으리라 마음을 먹었다.
서강빈은 차갑게 곽수철을 쳐다보며 얼음같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곽수철, 설마 오늘 여기를 살아서 떠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뭐라고?’곽수철은 이 말을 듣고 고개를 번쩍 들었고 서강빈과 눈이 마주쳤다. 서강빈의 눈빛에서 그는 섬뜩한 살기를 느꼈다.“너... 너 감히 나를 죽인다고?”곽수철은 서강빈이 감히 자신을 죽일 것이라고 절대 믿지 않았다. 곽수철은 자신이 킬러를 고용해서 서강빈을 죽일 수만 있지 절대 서강빈이 자신을 죽일 수는 없을 것이라고 단정 지었다.서강빈은 이 작은 송주의 별 볼 일 없는 작은 가게의 사장님일 뿐이다. 그런 서강빈에게 사람을 죽인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는 말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달빛이 비치지 않은 깊은 밤에 바람까지 세게 불면 사람 죽이기 딱 좋아. 네가 장소를 아주 잘 골랐어. 시간대도 잘 골랐고.”서강빈은 고개를 들고 고요한 숲을 한번 둘러보고는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아니... 서강빈, 너는 나를 죽이면 안 돼. 내가... 내가 이렇게 빌게. 제발 나를 놔줘. 내가 정말 잘못했어.”곽수철은 겁을 먹고 울음을 터뜨렸다. 그는 죽고 싶지 않다. 그렇게 많은 돈을 아직 다 쓰지 못했고 여자들과도 더 놀고 싶었다. 그리고...어찌 됐든 지금 그는 살고 싶은 생각뿐이었다.“말해. 저것들은 다 무슨 사람들이야?”서강빈은 곽수철의 가슴을 밟고는 차가운 목소리로 따져 물었다.“내가 말한다면 너... 너는 나를 놔줄 거야?”곽수철은 겁을 먹은 얼굴로 말했다. 서강빈은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했다.“곽 대표, 시간을 아껴. 지금 피가 빠져나오는 속도로 봐서는 5분 안에 죽게 될 거야.”말하면서 서강빈은 곽수철의 허벅지에 꽂힌 칼을 세게 휘저었다. 곽수철은 아파서 경련을 일으켰다. 곽수철처럼 곱게 자란 사람들이 이런 고통을 참아낼 수 있을 리가 만무하다.몇 초가 지난 후, 곽수철은 연신 애원하며 말했다.“서강빈, 말할게, 내가 다 말할게! 제발 나를 그만 괴롭히고 나 좀 놔줘!”“말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