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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4화

먼 곳의 소리가 갑자기 멈췄다. 하도 조용해서 서로의 숨소리마저 들릴 정도였다.

배건후는 엄지손가락으로 도아린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어머니 건강을 위해서 이혼하지 않기로 했어.”

도아린은 조롱 가득한 그의 두 눈을 빤히 보면서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건후 씨, 어머님을 핑계로 대지 말아요. 그때 일 때문에 화가 나서 일부러 날 못살게 구는 거잖아요. 난 그렇다 쳐도 손보미 씨를 이렇게 내버려 둘 거예요?”

그의 두 눈이 어찌나 깊은지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아예 알 수가 없었다. 그가 도아린을 밀어내고 옷을 정리하자 그녀도 재빨리 드레스를 여미고 화장을 수정했다.

도아린이 수정을 마친 후 배건후는 어디로 갔었는지 연회가 시작돼서야 다시 돌아왔다.

오늘 생일 연회의 주인공 나영옥은 육민재의 부축을 받으며 연설했다. 연설이 끝난 다음에 선물 증정식이 이어졌다.

재벌인 그녀가 못 본 게 뭐가 있겠는가? 돈으로 살 수 있는 것들은 속물이나 마찬가지였다. 하객들이 줄을 서서 선물을 주자 나영옥은 웃으면서 옆 카트에 놓으라고 했다.

배건후가 준비한 선물은 맑고 투명한 비취 목걸이였는데 평안을 뜻했다.

도아린도 재빨리 선물을 꺼냈다. 사실 두 사람이 선물 하나만 준비해도 됐었다. 이런 행동은 오히려 그와 관계를 끊고 싶어 한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십상이었다.

배건후의 표정이 어두워졌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영옥은 도아린을 보자마자 줄곧 차분했던 표정이 조금 환해졌다.

“아린아, 네가 만든 향낭이야?”

3년 전 도아린은 나영옥에게 향낭을 선물한 적이 있었다. 그 향낭을 몸에 지니고 다닌 후로 정신이 한결 맑아진 것 같았다. 나중에 그런 일이 있은 후에 향낭의 향이 옅어졌는데도 아까워서 버리질 못했다.

“할머니 만수무강하세요.”

도아린이 다정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이 향낭을 만드느라 그녀는 밤까지 새웠다. 밖의 자수는 평소 자주 보던 그런 평범한 무늬가 아니었고 3년 전에 나영옥에게 줬던 것과 같은 모양이었다.

나영옥은 기뻐하며 비취 목걸이와 향낭을 주머니에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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