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내가 나영옥 할머니와 관계가 좋은 걸 믿고 민재 씨한테 결혼을 강요하고 빚을 갚아달라고 강요한 줄 알아요. 해명해도 되고 부인해도 되고 심지어 모른 척해도 돼요. 근데 내가 매번 힘들게 빌린 돈을 가로막진 말았어야 했어요.”도아린의 눈시울이 붉어졌다.그해 겨울, 도아린은 돈을 빌리려고 뭐든지 다 했었다. 상대가 겨우 돈을 빌려주겠다고 해서 이튿날에 찾아갔었는데 갑자기 태도를 바꾸면서 절대 빌려주지 않겠다고 했었다. 이유를 설명하진 않았지만 육민재가 압력을 가하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육민재는 그녀의 말을 가만히 듣다가 안경을 닦고는 다시 꼈다.“너도 배후 조종자가 나라고 생각하는구나.”도아린은 침묵으로 답을 대신했다. 육민재의 두 눈에 취기가 조금 사라진 듯했다. 안경 유리알에 빛이 반사되어 눈빛을 가렸다. 도아린이 자리를 떠나려던 그때 육민재가 덤덤하게 말했다.“내가 그런 거 아니야.”육민재도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았고 도아린도 캐묻고 싶지 않았다. 아무런 의미가 없으니까.두 사람이 아무도 말이 없자 분위기가 삽시간에 어색해졌다.“먼저 가보겠습니다.”도아린이 한마디를 던지고 자리를 비웠다....손보미가 배지유를 살짝 잡아당겼다.“건후 씨한테 약 타 먹이지 마. 이건 좀 아닌 것 같아.”사실은 약을 먹였는지 확인하는 거였다. 배지유는 오빠가 근처에 없는 걸 확인하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아까 내가 일어나자마자 오빠가 앞에 있던 차를 바꿔버렸어요.”경계심이 정말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가족까지 경계할 줄은 몰랐다.‘이게 다 도아린 때문이야!’손보미는 몰래 이를 꽉 깨물었다. 이 결과가 그녀의 예상대로이긴 했다.“이게 다 도아린 그년 때문에 트라우마가 생겨서 그래요.”배지유가 음료수를 들고 물었다.“언니, 음료수 마실래요?”“너 마셔. 난 다이어트 중이라.”배지유는 약을 만지던 손가락을 잊은 채 잔을 만졌다. 그녀는 음료수를 벌컥벌컥 마시고는 인파 속에서 육하경을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다.“육하경의 외할머니한테 일이
하지만 두 사람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두어 마디 나눈 후 바로 헤어졌다.손보미는 계속 도아린을 따라다녔다. 도아린이 분수 쪽으로 걸어가자 빠른 걸음으로 따라갔다.“도아린.”도아린이 발걸음을 멈추자 손보미는 그녀 앞으로 다가가 조롱과 도발 섞인 웃음을 짓더니 돌아서서 가짜 바위에 쾅 부딪혔다.“으악!”부딪힌 순간 손보미는 본능적으로 잡으려다가 네일이 끊어졌고 팔도 긁히고 말았다. 하얀 드레스에 피와 물이 가득 묻어 꼴이 초라하기 그지없었다.종업원이 비명을 듣고 달려오더니 바로 다른 사람에게 알리러 갔다.나영옥은 손보미를 가볍게 지나치고 도아린의 손을 잡았다.“손 괜찮아?”“괜찮아요.”손보미는 화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저 할망구 눈이 삐었나? 넘어진 건 난데 도아린한테 무슨 일이 있겠어.’사람들이 거의 모여들자 손보미는 눈가가 그렁그렁해지더니 눈물을 뚝뚝 떨구었다.“아린 씨, 인터넷에 떠도는 기사 같은 거 믿지 마. 나랑 건후 씨는 진짜 그냥 친구야... 여러분, 내가 실수로 넘어진 거지, 아린 씨가 민 거 아니에요.”이해 능력을 테스트하는 때가 왔다.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지만 또 말한 듯했다.손보미가 울먹거리면서 가여운 척하는 모습에 사람들은 그녀가 도아린을 무서워해서 일부러 거짓말을 한 거라고 생각했다.구경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이 모여들었다. 배지유는 손보미가 넘어진 걸 보자마자 불같이 화를 내더니 인파 속을 뚫고 뛰어 들어갔다.“도아린 씨! 하루라도 보미 언니를 괴롭히지 않으면 어디 덧나기라도 해요?”“지유야, 그런 말 하지 마...”“오빠가 당신이랑 이혼하겠다고 했길래 망정이지, 이러다가 나한테까지 손을 대겠어요. 당장 보미 언니한테 사과해요!”배건후와 손보미, 그리고 도아린의 복잡한 관계는 재벌들 사이에서 부풀릴 대로 부풀려졌다.어떤 사람은 도아린이 파렴치한 수단으로 배건후에게 매달리고 있기에 인과응보라고 했고 또 어떤 사람은 배건후와 도아린이 부부인데 끼어든 손보미가 내연녀라면서 내연녀를 가만두면 안 된다고
배건후는 눈살을 찌푸리고 도아린을 쳐다보았다. 잘생긴 얼굴이 싸늘하기 그지없었다. 도아린의 행동에 대해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배지유 씨, 자기 주제부터 알고 나대든지 말든지 해요.”도아린이 손을 툭툭 털었다.‘어우, 속 시원해.’“오빠!”배지유는 화가 나서 발을 동동 굴렀다. 지난번에는 엄마에게 뺨을 맞았는데 오늘에는 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도아린에게 맞았다.앞으로 어떻게 얼굴을 들고 다닌단 말인가!“입 다물어.”배건후가 그녀에게 호통쳤다. 그는 한 손에 배지유를 잡고 다른 한 손으로 손보미를 끌어당기고는 밖으로 걸어 나갔다. 구경하던 손님들도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육민재가 걱정스럽게 말했다.“너희들 그동안...”도아린이 손수건으로 손을 닦았다. 그녀와 배건후 사이에 이혼 얘기가 오갔다는 걸 육민재가 분명 들었을 것이다.“그때 민재 씨한테 물어보고 결혼할 걸 그랬어요.”어쨌거나 오랜 친구이니 배건후를 더 잘 알 것이다.도아린이 배건후와 결혼한다는 소식을 들은 후 육민재는 사적으로 그녀를 찾아가 다시 한번 고려해보라고 했었다.친구들은 배건후의 마음속에 다른 여자가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무턱대고 결혼하면 좋은 결과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하지만 도아린은 다른 방법이 없었다. 배건후와 결혼하지 않으면 남동생을 살릴 수 없었다.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육민재가 오늘 같은 결과를 예상하고 그녀를 말린 것 같았다.“나랑 결혼하면서 누구한테 의견 묻는다는 거야?”갑작스럽게 들려오는 목소리에 도아린이 화들짝 놀랐다. 배건후가 다시 왔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손보미가 다쳐서 속상한지 배건후의 얼굴이 무서울 정도로 어두웠다.“어디 외국 가서 장기라도 팔라고 하면 팔 거야?”육민재가 입술을 적셨다.‘이건 나 들으라고 한 소리야?’“건후야, 그 뜻이 아니라...”배건후가 담배에 불을 붙이고 아래턱을 들었다.“손님들이 널 기다리고 있어.”육민재는 이 자리에 더는 있어서는 안 될 것 같아 연회장으로 들어갔다.도아린도 그만
다른 사람들의 인맥 관리는 술이었지만 나영옥과 함께하는 인맥 관리는 선물이었다.“내 성의니까 받아줘.”“급히 나오느라 좋은 건 준비 못 했어.”두 어르신이 하고 있던 팔찌와 목걸이를 벗어서 도아린에게 건넸다. 뒤에서 도아린을 욕하던 사람들은 질투가 나서 미칠 것만 같았다.‘도아린 아주 고단수야. 남자를 홀린 건 물론이고 할머니들까지 제대로 구워삶았어. 어르신의 친구들이 최고 재벌까진 아니더라도 그래도 실력 있는 자들인데. 선물 하나도 일반 직장인들이 몇 년은 살 수 있는 정도야.’도아린에게 쏠린 이목이 더 많아지자 배건후의 표정이 더욱 어두워졌다.‘남들한테는 저렇게 순진하게 웃으면서 왜 나한테만 날을 세우는 건데?’도아린은 거절하고 싶었지만 말하기도 전에 나영옥이 먼저 가로챘다.“주는 건 받아. 다들 네가 올 줄 모르고 미리 준비 못 했어. 나중에 보상해줄게.”이렇게까지 얘기한 이상 도아린도 거절할 수가 없었다.배건후와 이혼하면 돈이 많이 필요한 건 사실이었다. 이 주얼리들이 딱 봐도 값어치가 어마어마할 것 같았다.“예쁜 할머니들 감사합니다.”도아린은 달콤한 말로 어르신들의 기분을 즐겁게 해주었다. 연회가 끝났는데도 도아린을 보내기 아쉬워했다.“시간 되면 운진에 놀러와.”“영산도 오고.”“할머니가 해남에서 기다릴게.”도아린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가방에서 펜던트를 꺼냈다.“저도 미처 선물을 준비하지 못해서요. 어르신들 아프지 마시고 하는 일마다 잘되길 바랄게요.”펜던트 여러 개를 한데 모으면 작은 공이 만들어졌다. 정교하긴 했지만 그리 비싼 물건은 아니었다.하지만 도아린을 예뻐했던 할머니들은 값어치에 상관없이 아주 마음에 들어 하며 받았다.가기 전 나영옥은 선물 카트에서 선물 몇 개를 꺼내 도아린에게 주었다. 도아린이 한 아름 안고 차에 타자 성대호가 화들짝 놀랐다.“아린 씨, 뭘 또 이렇게 챙겨가기까지 해요?”성대호가 혀를 끌끌 차면서 고개를 내저었다.“아린 씨처럼 알뜰한 여자를 찾았더라면 우리 어머니도 날 뭐라 욕하지
도아린이 미간을 찌푸렸다.‘배지유가 어르신께 준 선물이라고? 내 물건으로 인심을 썼어? 그나저나 나 왜 화를 내지? 금고 안의 주얼리도 다 필요 없으니까 건후 씨더러 마음대로 처리하라고 했으면서. 이 물건이 어떻게 이곳에 나타났든 나랑은 아무 상관이 없어. 화내지 말자, 화내지 말자. 나만 몸 상해. 근데... 왜 하필 내가 가장 좋아하는 비취 팔찌란 말이야! 배건후 이 자식 일부러 그런 게 틀림없어!’도아린은 뒷좌석에 놓인 선물들을 전부 일일이 열어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안에 손보미가 선물한 배추 모양 옥도 있었다.손바닥만 한 크기였고 너무 맑고 투명하진 않았지만 일부러 영수증을 안에 넣었다. 가격은 60억이 넘었고 배건후의 카드로 산 것이었다.‘대박!’도아린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지어졌다.“건후 씨, 이혼하면 900억 달라고 했죠? 이 배추 모양 옥이랑 이 비취 팔찌 먼저 줄게요. 아마 백억 정도는 할 거예요. 나머지는 이혼 절차 마친 후에 줄게요.”배건후의 눈빛이 어두워졌다.“미쳤어?”“미쳤다니요? 아주 멀쩡해요.”도아린은 다른 선물들도 다시 박스에 넣었다.“너무 기뻐서 그러나 봐요. 곧 이혼할 수 있으니까.”배건후가 담배를 꽉 쥐었다.“네가 싫다고 한 거 지유가 그걸로 인맥 관리하는데 무슨 문제 있어?”도아린이 그의 두 눈을 빤히 쳐다보았다.“어르신이 준 건데 빚을 갚는 데 쓰면 무슨 문제 있나요?”배건후는 말문이 막혀버렸다. 화가 나서 담배를 꽉 쥐자 세 조각으로 부러졌다.“너 오늘 지유 때렸어.”도아린이 아래턱을 들었다.“유언비어 퍼뜨리면 감옥 가야 한다면서요? 뺨 한 대는 가벼운 거죠. 다음에 또 그랬다간... 우웁!”배건후가 갑자기 그녀의 입술을 막아버렸다.짙은 술 냄새가 풍겨왔고 그를 거절할 수가 없었다. 배건후가 그녀의 허리 지퍼를 내리려 하자 도아린이 소리를 질렀다.“배건후 씨! 날 건드렸다간 성폭행으로 고소할 겁니다.”도아린은 그를 확 밀어내더니 입을 닦고는 차에서 내리려 했다. 그런데 배건후가 그
남자의 눈이 싸늘해지더니 바로 배지유에게 전화를 걸었다.배지유는 휴대전화를 내팽개친 채 한 남자와 침대 위에서 뜨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배건후와 함께 호텔을 나왔을 때 왠지 모르게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도아린에게 맞아서 화가 난 게 아니라 다른 이유가 있었던 것 같았다. 경험이 많은 그녀는 배건후에게서 바로 벗어났다.“오빠, 뭐 좀 두고 나왔어. 먼저 보미 언니 병원에 데려다줘. 난 알아서 집에 갈게.”그러고는 바로 도망쳤다. 온몸의 열이 점점 더 뜨겁게 달아올랐다.마침 위층에 술집이 있었고 안에 호스트도 있다는 걸 배지유는 알고 있었다. 그녀가 카운터에 돈을 꺼냈을 때 이미 한시가 급한 상황이었다.한 남자가 나른해진 배지유의 몸을 끌어안고 귓가에 속삭였다.“룸 들어가요.”술집 사장이 호스트를 데리고 왔을 때 배지유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그냥 주는 돈이야?’배건후가 전화를 끊자마자 우정윤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손보미가 검사를 마치고 배건후를 만나겠다면서 울며 집에 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그가 손보미의 집에서 만나자고 약속하고 나서야 손보미는 집으로 향했다.그녀는 잠옷으로 갈아입었다. 팔에 붕대를 감고 있었고 눈물을 계속 뚝뚝 흘렸다.“건후 씨, 아린 씨를 계속 그렇게 내버려 두면 언젠가는 큰일 나...”손보미는 왼쪽 가슴을 움켜쥐었다. 의사가 가슴에 결절이 있어서 조심해야 한다고 했었다. 가뜩이나 작은 가슴에 문제라도 생기면 큰일이었다.배건후는 담배에 불을 붙인 후 소파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도아린이 밀었어?”손보미가 화들짝 놀랐다.‘지금 날 의심하는 거야? 전에는 내가 뭐라 하든 다 믿었었는데. 도아린이 민 게 아니더라도 그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나한테 돌을 던진 건 사실이잖아. 날 먼저 위로해야 하는 거 아니야?’손보미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얼굴이 하도 말라서 웃지 않을 때면 더 속상해 보였다. 그녀는 입술을 깨물면서 눈물을 뚝뚝 떨구었다.“귀국한 다음에 송 감독님의 작품을 하기로 했어. 관심도 많이 끌고 팬
담배가 아직 3분의 1이 남았는데도 배건후는 재떨이에 비벼껐다. 끓어오른 분노가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만 같았다.손보미는 새어 나오는 웃음을 애써 참으며 화제를 돌렸다.“건후 씨, 만약 아린 씨가 여전히 민재 씨와 함께하겠다고 하면 두 사람 축복해줄 거야?”사람의 가슴에 못을 박는 데는 참으로 선수였다.‘여전히’라는 단어로 도아린이 처음부터 지금까지도 육민재와 결혼하고 싶어 한다는 뜻을 표현했다.3년 전에는 어쩔 수 없었지만 이젠 버텨냈고 육민재도 귀국했다. 모든 게 도아린의 뜻대로 되었으니 이젠 함께할 때도 됐다.그 한마디는 배건후의 분노를 제대로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밀었는지 여부의 대답도 손쉽게 피해버렸다.배건후는 손보미의 휴대전화를 들고 사진을 자기 휴대전화에 전송한 후 돌려주었다.“만약이라는 건 없어.”“...”손보미의 표정이 확 굳어졌고 들은 게 맞는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이혼하는 거 아니었어? 왜 만약이 없다고 하는 거야? 도아린이 후회해서 이혼을 번복한 거야, 아니면 건후 씨가 이혼을 거절한 거야?’손보미의 머릿속에 무서운 생각이 떠오르면서 안색이 더욱 창백해졌다. 자신이 생각하는 게 아니길 간절히 바랐다.그녀가 나긋하게 말했다.“나영옥 어르신이 아린 씨를 엄청 좋아하더라고. 마치 아린 씨가 손주며느리인 것처럼 여기저기 자랑하고 다니셨어.”손보미는 배건후가 듣기 싫어하는 말만 골라서 했다. 배건후가 점점 더 싸늘한 기운을 내뿜었지만 과격한 행동은 하지 않았다.이 일이 그냥 이렇게 넘어가나 싶던 그때 배건후가 갑자기 말했다.“아린이한테 사과해.”손보미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뭐... 뭐라고?”휴대전화를 어찌나 꽉 쥐었는지 뼈마디가 다 하얗게 됐다.‘내가 왜 도아린한테 사과해야 해? 피해자는 난데!’배건후가 기다란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툭툭 쳤다.“네가 먼저 사과하면 도아린더러 사과하라고 할게.”손보미더러 사과하라고 한 건 사람들이 도아린을 의심하게 만들어서였고 도아린더러 사과하라고 한 건 손보미를 때려서였
배건후가 아무 말이 없자 손보미는 자신이 없었다. 더 완벽한 거짓말을 위해 바로 김지민에게 전화를 걸었다.“어떻게 이렇게 덤벙거릴 수 있어? 다른 영수증을 나영옥 어르신의 생신 선물에 떨어뜨리면 어떡해? 선물은 성의가 있어야 하는 거 몰라? 선물이랑 영수증이 맞지 않아서 하마터면 망신당할 뻔했다고.”손보미가 도통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지 못한 김지민이 변명하려는데 손보미가 계속하여 말했다.“건후 씨가 날 데리고 생신 연회에 갔어. 이러면 배씨 가문의 체면도 깎인다고. 알아? 그동안 널 믿고 다 맡겼더니 보답을 이런 식으로 해? 변명 듣고 싶지 않으니까 내일 알아서 사직서 제출해!”그녀는 전화를 끊고는 화가 나서 씩씩거렸다. 김지민이 다시 전화를 걸어올까 봐 꺼버렸다.“건후 씨, 오늘 일은 다 내 탓이야. 내가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어.”손보미가 화제를 돌렸다.“오늘 술 많이 마셨지? 내가 가서 해장국 끓여줄게.”“괜찮아.”배건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일찍 쉬어.”그의 단호한 뒷모습을 보며 손보미는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잠시 후, 손보미가 남자 친구와 데이트하는 사진이 인터넷에 올라왔다....주현정은 그 기사를 보고는 아들을 호되게 꾸짖었다. 설명하기 귀찮았던 배건후는 전화를 끊고 계속 서류를 처리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주현정이 문자를 보냈다. 식당을 예약했으니 배건후더러 도아린과 함께 밥 먹으러 가라는 내용이었다. 그러면서 사진도 찍어 보내라고 했다.도아린은 옷을 수선하다가 전화를 받았다. 어젯밤 일 때문에 너무도 화가 나 꿈에서도 배건후와 싸우고 있었다. 그러니 상냥하게 전화를 받을 리가 없었다. 전화가 연결된 후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도아린... 도아린?”배건후는 신호가 좋지 않은 줄 알고 끊은 후 다시 걸어왔다. 그 모습에 도아린이 코웃음을 쳤다.‘처음으로 이렇게 끈질기게 전화하네? 전에는 내 전화를 그렇게 잘 끊더니.’배건후가 세 번을 걸어서야 도아린의 싸늘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말해요.”“내 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