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아린은 손을 바꾸어 캐리어를 들었다.짝하는 소리와 함께 손보미는 따귀를 맞았다. 손보미는 도아린이 배건후가 보는 앞에서 자신을 때릴 줄 예상하지 못했다.“지금 나를 때렸어?”“건후 씨한테 보여주고 싶었어. 손뼉이 꼭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건 아니라는 걸.”“...”손보미는 도와달라는 눈빛으로 배건후를 바라보았고 배건후의 검은 눈동자는 도아린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도아린이 손보미를 때린 것에 대해 전혀 의외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고 그녀를 질책하려는 기색도 보이지 않았다.손보미는 마음속으로 분노가 치밀었지만, 겉으로는 계속 연약한 척을 해서 배건후의 동정을 사야 했다.“도아린, 이렇게 해서 너의 화가 풀린다면 더 때려도 나는 상관없어. 나는 절대 진희 선배님을 기분 나쁘게 할 수 없어.”도아린은 아무 말도 없이 또 손보미의 따귀를 때렸다.“...”손보미는 순간 눈이 빨개졌다.‘도아린 미친 거 아니야? 그냥 해보는 소리인 거 몰라?’배건후는 도아린의 손을 잡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그만해.”“보미 씨가 때리라고 한 거예요. 본인도 괜찮다고 하는데 건후 씨가 마음이 아파하네요.”도아린은 뒤돌아 떠나려고 했지만 커다란 손이 그녀의 어깨를 잡았다.“옷은 보미한테 주고 너는 나 따라와.”배건후는 서대은의 핸드폰에서 라이브를 봤고 오는 길에 검색을 해봤는데 욕하고 조롱하는 댓글들을 보고 사건의 경과를 알게 되었다.도아린은 이번 일과 상관이 없다는 것을 이미 증명했으니 다시 그 흙탕물에 들어갈 필요가 없다. 아현을 위해 자신까지도 다시 연루되게 하는 행동은 배건후가 보기에 멍청한 행동이었다.그는 상대한테서 루비를 구매한 적이 있기에 무척 고집이 센 남자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가 소중히 여기는 것을 망가뜨렸다면 반드시 복수할 것이다.배건후가 자세하게 얘기를 하지 않는다면 도아린은 그저 그가 손보미의 편을 들어서 공을 돌리려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도아린의 맑은 눈동자를 반짝이며 차가운 웃음을 띠었다.“옷은 임진희 선생님이 저한
임진희는 마음이 다른 곳에 가 있어 계단을 내려오다 발목을 삘 뻔했다. 그러다 도아린이 대기실 문 앞에 서 있는 걸 보고 눈빛이 반짝였다.“옷 수선은 다 됐어?”“수선 다 했습니다.” 도아린이 캐리어를 내밀며 말했다. “선생님, 여기서 바로 확인해 보시죠.”두 번째 멘토가 노래를 다 부르고 임진희가 드레스룸에서 나왔다. 그녀의 표정과 걸음걸이는 한층 가벼워지고 기분이 좋아 보였다.임진희는 마지막 무대였다. 무대에 오른 그녀는 평범한 듯한 하얀색 드레스를 입고 있었지만, 천장에서 조명이 비추자 치맛자락이 연한 파란색 별빛 패턴으로 변했다.시청자들의 채팅창에서 댓글이 폭발적으로 달렸고 프로그램의 신기록을 경신할 정도였다.손보미는 긴장한 채로 백스테이지에서 준비하고 있었기에 임진희의 노랫소리만 들었을 뿐 화면은 보지 못했다. 하여 무대 위에서 임진희가 ‘별들이 떠받들이는 달’ 콘셉트의 드레스를 입고 있는 걸 보고 머릿속이 하얘졌다. 노래 실력도 평범한 그녀는 긴장과 혼란으로 인해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다.그리고 도전자였던 소유정은 최고 점수를 받아 최저 점수 참가자를 탈락시키고 정식 참가자로 진출했다.거의 11시가 되어서야 프로그램이 끝났고 도아린은 소유정이 메이크업을 지울 때까지 기다렸다가 함께 집으로 갔다.임진희의 비서가 메이크업 룸으로 들어왔고 손보미는 자신을 찾는 줄 알고 바로 다가가 말했다. “선배님 인터뷰 끝났나요? 제가…”임진희의 조수는 손보미를 지나쳐 도아린에게 다가가 말했다. “도아린 씨, 선생님께서 식사에 초대하고 싶다고 하시는데 시간 되세요?”도아린이 잠시 망설이자 비서가 덧붙였다. “친구도 함께 오시죠. 함 선생님도 오실 거예요.”“알겠습니다.”손보미는 임진희의 비서를 따라가서 물었다.“선배님께서 저도 같이 오라고 하시지 않으셨어요?”비서가 머리를 치며 말했다. “아, 깜빡했네요.”손보미는 활짝 웃었다. 그렇지 않아도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다. 어떻게 도아린만 부르고 자기를 부르지 않을 수
“아무 뜻도 아니야. 그저 아현 선생님이 워낙 조용하고 겸손을 유지하는 분이라 내가 여러 사람을 통해 어렵게 그분을 모셔와서 ‘별들이 떠받들이는 달'을 수선하게 했는데 도아린은 이 업계에 들어온 지 고작 보름 만에 그분의 보조가 되고, 그분의 비법까지 배울 수 있다는 게 조금 의아해서.”...임진희가 예약한 식당은 유명한 레스토랑으로 한 번에 한 테이블만 받는 곳이었다.“카톡 추가해도 될까?” 임진희는 함예진과 도아린을 번갈아 보며 물었다.도아린은 함예진을 바라봤고 함예진은 요리를 집어 먹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도아린은 곧바로 휴대폰을 꺼내 들며 말했다.“선생님, 번호를 주시면 제가 추가하겠습니다.”임진희는 번호를 누르며 말했다.“선생님이라 부르지 말고 언니라고 해.”“얘는 나를 이모라고 불러.”함예진이 장난스럽게 말했다.“나이로 따지면 다르게 불러야지. 내가 언니보다 몇 살 어리잖아.” 임진희는 함예진의 목을 끌어안았다.소유정이 간절한 표정으로 물었다.“선생님, 저도 추가할 수 있을까요... 곤란하게 하지 않겠다고 약속할게요!”“그래, 추가하렴. 하지만 말한 대로 지켜야 해.”소유정은 자리에서 일어나 번호를 받으며 감격했다. 드디어 자신이 존경하는 사람의 번호를 받게 된 것이다.임진희는 먼저 소유정의 실력을 칭찬한 뒤 다음번 대회에서는 더 난이도 있는 곡을 선택하기를 바란다고 했다.소유정은 추천해 줄 곡이 있는지 물어보려 했지만, 임진희는 대화 화제를 돌려 도아린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오늘은 정말 네 덕에 살았어.”그녀는 말을 마치고 함예진을 힐끗 보며 덧붙였다.“내가 멘토 의자에 앉자마자 메시지가 와서 보는 순간 정말 정신이 아찔했어.”“표정은 꽤 행복해 보이던데?”“언니 연기만큼은 아니지만 나도 조금은 숨길 수 있어.” 임진희는 도아린을 보며 물었다.“그 사람이 라이브를 볼 거라고 어떻게 알았어? 혹시 그 사람과 친분이 있는 거야?”함예진은 테이블 아래에서 임진희의 다리를 가볍게 건드렸고 임진희는 급히
남자의 차가운 눈빛을 마주하니 도아린은 잠이 완전히 달아났다.“미안해요.” 그녀는 차 문 쪽으로 몸을 옮겼다.배건후는 눈을 가늘게 뜨고 그녀를 바라봤다. 관계를 정리하려는 행동이 문자 내용보다 더 그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서대은이랑 안 친해?”“그렇게.. 친하지 않아요.”“관계가 어느 정도길래 같이 어묵을 먹을 수 있는 건데?”“...” 도아린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봤다. 반짝이는 눈동자에는 놀라움이 가득했다. “당신 정말 날 미행했어요?”배건후는 손가락을 살짝 움츠렸다. 예전에는 자신이 도아린에게 미행당했다고 의심했었는데 지금은 도아린에게 의심을 받고 있었다. 인과응보라더니, 도망칠 수 없는 굴레였다.도아린은 비웃음을 터뜨렸다. “당신이 나보고 서대은한테 가서 바다 진주를 사 오라면서요. 그럼 당연히 친해져야죠. 안 그러면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드레스를 고칠 방법이 없잖아요.”“...”배건후는 애꿎은 바지만 매만졌다. 핑계가 너무 어색했다. 누가 어묵을 먹으며 친해지는 거냐 말이다. 그것도 편의점에서.성대호가 그에게 보낸 사진을 여러 번 확대해서 봤었다. 오늘 서대은의 태도까지 봐서는 둘의 관계가 어묵 한 접시로 쌓을 수 있는 단순한 우정이 절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배건후는 속이 울렁거리며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그래서 네가 나한테 가져온 어묵은 너희가 먹고 남은 거야?”도아린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그건 아니지.”배건후는 한숨을 내쉬었다.도아린이 말을 이었다. “당신 어묵을 안 먹어봤어요? 그거 따로 나눠진 국물 통에 들어 있는 거잖아요. 먹고 싶은 거 골라서 먹는 거라고요. 우리가 다 먹은 후에 몇 꼬치를 골라서 가져온 거예요.”‘그게 먹고 남은 걸 가져온 거나 마찬가지 아닌가?’배건후는 입술을 굳게 다물고 눈빛은 더욱 어두워졌다.차는 터널로 들어섰고 양쪽에서 밝게 비추는 조명이 차 안으로 들어와 남자의 냉랭한 얼굴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냈다.도아린은 그의 눈빛에 베일 것만 같았다. 서대은
하춘녀는 참지 못하고 말했다. “그 여자는 정말 독해. 그렇게 수모를 당했으면서도 경찰에 신고하다니. 네 아빠는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고 연락도 안 돼. 우선 나한테 몸을 숨길만 한 장소 하나 마련해줘.”“그 여자가 수모를 당했다고요?”“아마 그럴 거야. 내가 들어갔을 때는 그런 상태였으니까.”손보미는 차가운 미소를 띠며 지갑에서 두툼한 돈뭉치를 꺼내 하춘녀에게 건넸다. “위치를 보내줄 테니, 그곳에 며칠 머물러 있어요. 일이 잠잠해지면 다시 나와요.”하춘녀는 돈을 주머니에 넣고 문 쪽으로 향하다가 멈춰 섰다. “엄마는 갈아입을 옷이 없어.”손보미는 입지 않는 옷 몇 벌을 찾아 그녀에게 건넸고 하춘녀가 떠난 후 그녀는 온라인에서 도아린의 납치 사건을 검색해 보았지만 어떤 소식도 찾을 수 없었다.하춘녀는 받은 주소를 따라 싸구려 여관으로 찾아갔다. 요금은 저렴했지만, 환경이 무척 지저분했다. 근처에 더 나은 여관이 있나 둘러보려는데 골목에서 오토바이 소리가 들려왔다.그녀가 반응하기도 전에 손에 들고 있던 가방을 갑자기 빼앗겼다.“거기 서! 당장 물건을 돌려줘!”하춘녀는 다급히 쫓아서 뛰어갔지만, 오토바이를 따라잡을 수 없었고 숨을 헐떡이며 그 오토바이가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골목을 돌자 오토바이가 멈췄다. 방우진은 헬멧을 백미러에 걸어두고 가방 안에서 이십몇만 원을 찾아냈다. 그 여자가 입고 있던 옷을 보고 잘 사는 줄 알았는데 사실은 형편없는 신세였다.방우진의 마음엔 분노가 가득했다. 경찰이 그를 찾고 있어서 큰 병원에 갈 수도 없었고 성대호가 준 약은 잠시 고통만 덜어줄 뿐 전혀 치료되지 않았다. 성대호의 통제에서 벗어나려고 반년 월세를 챙기고 도망치려 했지만, 세입자가 돈을 주지 않는다면서 관리부에게 전화를 걸려고 했다.방우진은 신분이 드러날까 봐 세입자의 손가락을 부러뜨리고 그 틈에 도망쳤다.모든 게 배지유 탓이었다. 그녀는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한다.깊이 잠들어 있던 배지유는 전화 소리에 깼다.
복도에서 싸우는 소리가 들리자 잠에서 깬 손님들은 욕설이 퍼부었다.주인장은 소식을 듣고 급히 달려왔지만, 싸우는 두 사람을 떼어놓지 못하고 결국 경찰에 신고하기로 했다.경찰에 신고한다는 소리에 하춘녀는 즉시 당황하며 말했다. “돈 돌려줘, 그럼 더는 소란 떨지 않을게.”방우진은 그녀도 경찰에 신고하는 걸 두려워하는 걸 보고 자신감이 더 생겨 말했다. “내가 당신 돈을 빼앗았다고 증명할 수 있는 증거라도 있어? 이건 협박이야, 주인장 신고해.”“안 돼, 안 돼!” 하춘녀는 방우진을 노려보며 말했다. “그렇게 당당하면 도망가지 마. 내 딸을 불러서 네게 책임을 물게 할 거야!”“그 누가 온다고 해도 나는 맹세코 당신 물건을 안 가져갔어.”방우진은 침을 뱉고는 다리를 절며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하춘녀는 멍하니 서 있었다. 두 사람은 바로 옆방에 묵고 있었다....마이바흐가 에이트 맨션 앞에 멈췄다.도아린은 들어가서 신발을 갈아신었지만, 배건후는 차에서 내리지 않았다. 아마도 손보미에게 갈 예정인듯싶었다.그녀는 위층으로 올라가 옷을 갈아입고 물을 마시러 내려왔는데 배건후가 소파에 기대어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표정이 고통스러워 보였다.“위 아파.”“...”도아린은 못 들은 척 그를 지나쳐갔다.배건후는 미간을 찡그린 채 그녀를 쳐다보며 말했다.“도아린, 이혼하지 않은 이상 너는 내 아내야. 남편이 아프다는데 신경도 안 써? 4천억은 포기할 거야?”도아린은 차갑게 말했다. “내가 뭘 해줄까요?”“아직 밥을 안 먹었어.”“그럼 내가 해주는 대로 먹어요.”도아린은 부엌으로 갔고 배건후는 미간을 찡그리며 핸드폰을 꺼냈다.유럽 프로젝트가 무산되었고 에파이어 2기의 상가들은 해남의 스카이 빌딩으로 가려 하고 도아린은 계속 그에게 이혼을 강요하고... 최근 걱정거리가 하나둘씩 쌓여 그를 심란하게 했다.30분쯤 지나 따뜻하고 향긋한 쌀죽 한 그릇과 아삭한 반찬들이 배건후 앞에 놓였다.아주 간편하게 차린 느낌이었고 아주 무심했
도아린은 그가 어떻게 가게의 자리를 얻게 되었는지 궁금해 도정국을 따라갔다.병실 안에서, 도유준은 이어폰을 끼고 노래를 흥얼거렸다. 문 앞의 의자가 밀리는 소리가 들려서야 그는 급히 이어폰을 뺐다.“아빠, 누나.”도아린은 바로 도정국이 끌어놓은 의자에 앉았다.도정국은 표정이 어두워졌지만, 도아린에게 부탁할 일이 있어 화를 내지 않고, 다른 의자를 끌어와 그녀 옆에 앉았다.“말해 봐, 도대체 무슨 일이야?”도아린은 가방에서 핸드크림을 꺼내 손등에 짜서 바르고는 다시 가방에 넣으면서 몰래 핸드폰 녹음 버튼을 눌렀다.도유준은 아빠가 자신에게 눈치를 주는 걸 본 후, 일부러 이불 위에 붕대를 감은 손을 올려놓았다.“누나, 제가 친구한테 돈을 빌려서 새 가게의 장비를 샀어. 물건을 받는 날, 가게에 젊은 애가 한 명 왔는데 글쎄 집세를 받으러 왔다고 하더라고. 우리 도울 디저트에서 언제 집세를 낸 적 있었어? 내가 매니저를 부르자고 했는데 그 어린놈이 아무 말 없이 내 손을 부러뜨린 거야. 엠파이어 빌딩은 매형 거잖아. 그놈이 나를 괴롭히는 건 매형을 무시하는 거잖아!”도아린은 핸드크림을 문지르며 담담하게 말했다. “새 가게라니, 어디서 난 거야?”“우리를 속이는 게 재밌어?”도정국은 화가 나서 일어섰다. “유준이 재산을 포기해야만 준다는 거야? 도유준은 내가 인정한 아들이고 내가 인정을 했으면 책임을 질 거야!”도아린은 무심하게 도정국을 한번 쳐다봤다.“그럼 도유준한테 책임을 지겠다면서 왜 나한테 이러는 거죠?”도정국은 말문이 막혔고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 그는 도아린을 노려보다가 서랍에서 서류를 꺼냈다.사실 그들은 이미 준비를 해두었지만, 일부러 주지 않고 미루고 있었다.“도유준은 재산 상속을 포기하고 나를 보살필 의무까지 다하고 있어. 너는 얘랑 비교가 되기나 해?”도정국은 서류를 도아린의 품에 던졌다.도아린은 핸드크림이 모두 흡수된 후 서류를 집어 들고 천천히 살펴본 뒤 확인이 되자 말했다.“그럼 도장을 찍어주세요. 제가
“도아린, 네가 만족할 만큼 해줬잖아. 또 이런 식으로 나오는 거야?”도정국은 화가 나서 눈을 부릅뜨며 도아린의 휴대폰을 가리켰다. 목에는 핏줄이 선명하게 도드라졌다.“시장부에서 나한테 직접 전화했어. 그들이 허락하지 않았다면 내가 열쇠를 받아서 인테리어를 할 수 있었겠어? 지금 당장 그들에게 전화해, 내 앞에서!”‘전화라면 얼마든지 할 수 있지.’도아린은 시장관리 부문에 전화를 걸고 스피커폰을 눌렀다.“성 팀장님 사무실로 연결 부탁드립니다.”“성 팀장님은 휴가 중입니다.”비서의 태도는 다소 차가웠다.도아린은 문득 육하경이 성대호가 정직당했다고 했던 말을 떠올렸다. 그녀는 도정국을 바라보며 전화에 대고 말했다.“상가 관련해서 확인 부탁드립니다. 며칠 전에 절차를 밟으라고 연락을 받았는데 바빠서 못 갔거든요.”“성함이 어떻게 되시죠?”“도아린입니다.”상대방은 잠시 침묵하더니 의자가 움직이고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잠시 후, 비서는 전화를 다시 받으며 말했다.“죄송하지만 이쪽에 도아린 씨의 명의로 등록된 상가 기록은 없습니다.”도정국은 도아린의 휴대폰을 뺏으려 했지만, 그녀가 피하자 할 수 없이 휴대폰에 가까이 대고 말했다.“다시 한번 확인해 주세요. 며칠 전에 저에게 전화가 와서 절차가 진행 중이니 우선 사용해도 된다고 했어요.” 도정국은 상가 번호까지 불러줬다. 곧 비서는 해당 상가의 소유주가 손 씨라는 정보를 전했다.도정국은 포기하지 않고 재확인해 달라고 고집을 부렸지만, 도아린은 통화를 끊어버렸다.“이게 어떻게 된 거야? 이럴 리가 없어!”도정국은 얼굴이 창백해지고 입술은 하얗게 질리며 의자에 주저앉았다. 큰소리까지 쳤고 개업 날짜도 정해둔 상황에서 상가가 없다고 하니, 이제 친구와 친척들 앞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도유준도 당황해하며 말했다.“누나, 아무리 누나가 나를 싫어한다고 해도 아빠한테 이런 장난을 치면 안 되지. 장비랑 원재료를 이미 다 주문했어. 이제 어떻게 하란 말이야?”“그것들을
도아린은 변슬기를 데리고 연회장 안으로 들어갔다.배지유가 자신을 일부러 모욕하려고 그런 말을 한다고 생각했지만 정말로 이곳에 유명 스타들이 모여 있다는 걸 알게 됐다.스크린에서만 보던 유명인들을 실제로 보니 변슬기는 입을 다물지 못했고 두 눈으로는 전부 다 담을 수 없을 정도였다.그녀는 다소 어색하게 셔츠를 만지작거렸다.아버지가 친구를 만나러 가니 단정하게 차려입으라고 당부했지만, 변슬기는 또 소개팅 자리일 거로 생각하며 일부러 평소 입던 옷을 입고 왔다.그녀는 상대가 아버지의 돈이 아니라 자신의 평범한 모습을 좋아하길 바랐다.그러나 여기에서 음료를 나르는 여직원들조차 자신보다 더 격식 있게 차려입은 것을 보고 당황했다.“도 선생님, 저 이러고 있으니까 너무 볼품없는 거 아니에요?”도아린은 그녀의 셔츠 뒷면에 약간의 땀 자국이 있는 것을 보고 온화하게 미소 지었다.“제가 여분의 드레스를 준비해 놨어요. 갈아입어도 좋아요.”변슬기는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일단 아빠 친구를 만나고 나서 생각할게요.”멀리서 변우빈이 그녀를 보고 약간의 타박 섞인 눈빛을 보였지만, 곧 미안하다는 듯 설명했다.“우리 딸은 성격이 참 고집스러워.”그는 변슬기에게 손짓했고 딸이 곁에 앉자 말했다.“내가 단정하게 입고 오라고 했잖아. 그런데 일하는 옷을 입고 오면 어떡하니.”변슬기는 당황스러워 목을 만지작거리며 고개를 들었는데, 그 순간 주현정이 보이자 긴장한 표정으로 도아린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눈빛을 보냈다.‘큰일 났다!’문 앞에서 배지유와 다툰 것도 모자라 이번엔 배지유의 엄마까지 만나게 됐다.지난번처럼 자신에게 온화하게 대해줄 리가 없을 것이다.“...네 딸이구나?”주현정은 마치 이해했다는 듯 더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지난번에 봤을 때 어쩐지 낯이 익다 했어.”변슬기는 몰래 아버지의 옷자락을 꽉 잡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이분 배지유 엄마예요.”변우빈은 그녀의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하고 웃으며 소개했다.“이분은 주현정
배지유가 휠체어를 돌리자마자 누군가와 부딪힐 뻔했다.“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저... 배지유?”“변슬기?” 배지유는 그녀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말했다. “너 여기서 아르바이트하는 거야? 이 시간에 오다니, 연회가 거의 끝나가잖아.”변슬기는 공유 자전거를 타고 와서 온몸에 땀범벅이었고 앞머리가 하얀 이마에 붙어 있었다.그녀는 손으로 머리를 정리하며 숨을 고르면서도 자신감 있게 말했다.“아니야, 난 사람을 찾으러 온 거야.”이어지는 장면이 바로 도아린이 목격한 것이다.배지유는 휠체어를 움직여 변슬기의 주위를 맴돌면서 눈에 비웃음이 가득했다.“너희 집은 이번 생은 물론이고, 전생에도 이런 호화로운 사람들을 본 적 없을걸? 여기를 시장으로 착각한 거야? 아무나 데려와서 ‘내 삼촌, 내 이모’라고 하면 통할 것 같아? 여기는 모두 톱스타들이야! 너 콘서트 한 번이라도 가본 적 있어?”배지유는 입을 가리며 더 경멸하는 표정을 지었다.“생활비 벌려고 아르바이트까지 해야 하는 주제에 무슨 돈으로 콘서트를 본다는 거야! 연예인을 만나고 싶어? 기숙사로 돌아가서 기다려. 누굴 보고 싶은지 댓글 남기면 내가 대신 사진 찍어줄게. 미리 말해두는데, 나는 돈을 안 받아. 대신 너는 우리 기숙사의 1년 치 청소를 맡고 내 빨래도 다 해야 해. 속옷과 양말도 손빨래로!”변슬기는 차갑게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난 연예인 보러 온 게 아니야.”“올해 최고의 억지상은 바로 너네!” 배지유는 엄지를 세우며 비웃었다.“여긴 다 연예인들뿐이야. 네가 누굴 찾는다고 하면, 내가 직원한테 말해서 불러줄게.”변슬기는 그녀를 무시하고 가방에서 휴대폰을 꺼냈다.그러자 배지유의 눈빛이 갑자기 험악해지며 휠체어를 몰아 변슬기에게 돌진했다.거의 부딪힐 뻔한 순간, 휠체어가 갑자기 멈췄다.화가 난 배지유가 고개를 돌려보니 그녀가 표현할 말을 찾지 못할 정도로 매혹적인 도아린의 아름다운 얼굴이 보였다.“네가 왜...” 도아린은 왜 자신과 똑같은 드레스를 입고 있는 건가?
주현정은 이혼 얘기를 꺼내지 않았기에 그저 화났다는 의미일 것이다.그러니 그녀의 기분만 풀어주면 도아린이 그 자리를 넘보는 건 불가능해질 것이다.“현정아, 사람은 성인이 아니니 누군들 실수하지 않겠어?” 배석준은 화를 억누르며 말했다.“내가 증명해 보일게. 나와 지유야말로 네 뒤를 든든히 지켜줄 사람이라는 걸 말이야!”그는 배지유를 찾아 그녀를 데리고 주현정을 만나러 가려고 했다.세 식구가 언론 앞에 함께 나타나기만 하면 이혼 소문은 사라지게 될 것이고 도아린 같은 외부인은 배씨 가문의 재산에 끼어들 수 없게 될 것이다.하지만 그가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배지유가 사라진 후였다.“엄마, 화내지 마세요.” 도아린이 다정하게 위로했다.“배 대표님은 함부로 결단을 내리지 못할 거예요.”“차라리 저 사람이 결단을 내렸으면 좋겠네.”주현정은 도아린과 함께 인파를 지나갔다.소파에 앉아 있는 남자는 정장을 입고 있었지만,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그는 다소 어색하게 무릎을 문지르며 이따금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폈다가 다시 고개를 숙이고 생각에 잠겼다.주현정을 본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온화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내가 방해되지는 않았어?”“그 말은 내가 해야 할 말인 것 같은데. 그렇게 바쁜 와중에도 내 연회에 와줘서 고마워.”주현정은 도아린의 손을 잡고 다가갔다. 세 사람은 원형 소파에 앉았다.“이쪽은 내 딸 도아린이야. 이분은 변우빈이라고 하고 내 가장 친한 친구야. 아저씨라고 불러.”“아저씨, 안녕하세요.” 도아린은 무심코 상대방을 살펴봤다.변우빈은 이목구비가 단정하고 배석준와 비슷한 체격이었지만 조금 말랐다. 그의 얼굴과 손에는 노동으로 살아온 사람이 가진 강인함이 배어 있었다.두 사람이 대화하는 동안 변우빈은 계속 주현정의 눈을 바라봤고 주현정의 미소는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 진심이 담겨있었다.“네 딸도 데리고 온다고 하지 않았어?”주현정이 뒤를 돌아보며 묻
석 대표는 멈칫하더니 그제야 앞에 휠체어 하나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 거기에 요란하게 치장한 여자가 앉아있는 것을 보았다.“이분은...”그는 주현정이 이혼한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고 첫 반응은 배석준이 다른 여자를 찾았다는 것이었다. 배석준의 새로운 연인은 주현정과 닮은 구석이 있었다.“석 대표님, 짓궂으십니다. 방금까지도 저희 딸을 카메오로 요청한다고 하셨으면서...”배석준은 말을 하면서 주변 사람들의 표정이 변하는 것을 발견했다.그들은 이상한 눈빛으로 배지유를 보고 있었고 의아해하는 사람도 있고 심지어 비교하는 사람도 있었다.배지유는 엄청 민감해서 의식적으로 치마를 잡았는데 그들이 자신의 얼굴만 보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그제야 천천히 손을 떼었다.“배 대표님 따님이 몇 명이세요?”석 대표가 물었다.“... 한 명입니다.”석 대표는 웃어 보이고는 볼 일이 있다면서 자리를 떴고 그가 떠나자 다른 사람들도 흩어졌다.“아빠! 저 사람들 무슨 뜻이에요?”“...”배석준은 대답하지 않았지만, 영문을 알게 되었다.배지유는 휠체어에 앉아있어 시선이 막혔지만, 배석준은 멀지 않은 곳에서 도아린을 데리고 인사를 나누는 주현정을 보았다.그들이 칭찬하는 사람은 배지유가 아니라 도아린이었다.“지유야, 여기서 아빠를 기대려. 아빠가 가서 엄마를 찾아볼게.”그는 배지유가 충격을 받을까 봐 그 자리에서 자신을 기다리라고 하고는 빠르게 걸어갔다.“주현정! 당신 지금 지유는 병원에 내버려 두고 도아린을 데리고 연회에 참가하고 있어? 당신 같은 엄마가 어디 있어?”손님들은 배석준의 표정이 안 좋은 것을 보고 자리를 피했고 주현정의 얼굴에 있던 웃음도 점차 사라졌다. 그녀는 입꼬리를 올리고 대답했다.“지유는 당신 같은 아빠만 있으면 돼요.”배석준은 목소리를 깔고 물었다.“앞서 당신은 외부인 하나 때문에 나랑 이혼하려고 했고 이제는 이혼 얘기를 하지 않으니 각종 방법으로 우리를 치욕스럽게 하고 있어. 당신이 다시 JS 픽처스를 운영하게 되었는데도 나한테 얘기
JS 픽처스의 고위인사는 배석준을 알고 있었기에 그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앞으로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배 대표님, 또 해외로 가신 줄 알았습니다.”“현정이의 몸이 나아진 지 얼마 되지 않아 좀 더 머물다가 가려고 합니다.”배석준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평소에 연회에 거의 참가하지 않는 연예인들이 참석한 것을 보고 주현정이 JS 픽처스에서 지위가 여전히 굳건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그들은 각종 이유를 찾아 함께 공식 석상에 나타나기를 거부했지만, 약속이나 한 듯 카메라 앞에서는 활짝 웃었다. 그들은 모두 주현정 덕분에 잘 되었기에 체면은 반드시 살려주어야 했다.“크흠.”배지유는 배석준에게 자신을 소개하라고 헛기침을 했다.“아, 우리 딸이 마침 해남대학교에서 대학원을 다니고 있어서 데리고 왔습니다.”배석준을 둘러싼 고위인사들의 표정이 이상해졌다.주현정은 배지유가 연예계의 나쁜 물을 먹을까 봐 현역일 적에 절대 배지유를 데리고 활동에 참석하지 않았다. 고위인사들도 그저 주현정에게 딸이 있다는 것만 알았지 본 적은 없었다.반응이 빠른 누군가가 술잔을 들며 공손하게 말했다.“따님은 주 대표님과 배 대표님의 우수한 점을 다 닮으셔서 단정하고 청초하십니다. 우리가 올해 새로 영입한 신인보다 예쁘신 것 같습니다.”“맞아요. 해남대학교의 대학원을 다닌다고 하시니 예쁘시고 학식도 많으시네요. 지금 업계에서는 이렇게 완벽한 인재를 제일 좋아합니다!”배지유는 칭찬을 듣고 얼굴이 발그레해졌고 그녀는 두 손으로 팔걸이를 잡고 살짝 몸을 앞으로 했다.“죄송합니다. 제가 발을 삐끗해서 일어서서 인사를 올리지 못하겠네요.”“별말씀을요. 발을 삐끗하면 잘 치료해야 해요. 젊고 예쁘신데 후유증을 남기면 안 되죠.”좋은 마음으로 한 말이지만 배지유의 마음속에서는 저주로 들렸다.그녀는 발 한쪽을 다친 게 아니라 다리 하나를 잃었다. 나머지 생은 장애를 안고 살아가야 한다는 말이다.배석준은 배지유의 성격을 알기에 그녀가 난리를 피울까 봐 얼른 다른 곳으로
주현정은 말투가 가라앉았고 표정이 엄숙했다.“남자의 내연녀로 이십몇 년을 있다가 아이까지 낳았는데도 결혼을 하지 못했으니 어른이 화병으로 돌아가지 않을 수가 있나. 도아린의 양아버지는 양어머니의 혼수를 가로챈 것도 모자라 목숨까지 위협했어. 이런 쓰레기 같은 놈은 딸의 효도를 받을 자격 없어!”현장에는 여자 연예인들도 많았다.같은 딸의 마음으로 이렇게 심란한 일들이 있었는데 어떻게 효도를 할 수 있겠는가?그들은 도아린이 매정하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오히려 도아린이 양어머니를 위해 복수를 했다고 여겼다.강홍련은 주위 사람들이 모두 도아린의 편을 드는 것을 보고 당황했다. 자신을 향해 손가락질하는 것은 견딜 수 있지만 방금 자신의 말이 강씨 가문에게 영향을 줄까 봐 두려웠다.그녀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을 때 도아린은 단호한 눈빛으로 목소리를 높였다.“강씨 어르신은 사적인 감정으로 공적인 자리에서 복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강씨 어르신께서 좋은 마음으로 당신을 받아주었는데 당신은 밖에서 어르신의 명성이나 흐리고 다니면 안 되죠. 농부와 뱀의 이야기를 재희 씨도 들어봤을 거로 생각해요.”도아린은 강씨 어르신의 편에 섰는데 강재희는 반박할 수 없었다.여론에서 아버지의 대회에 흑막이 있다는 일로 들끓던 것이 금방 사그라들었는데 강홍련 저 멍청이 때문에 다시 수면으로 올라왔다.주현정은 도아린이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조금도 용납할 수 없었다.“도아린은 제 딸이고 JS 픽처스의 후계자예요. 강씨 가문에서 이렇게 제 딸을 치욕스럽게 하다니, 저희 협력은 앞으로 계속하지 않을 생각입니까?”강재희는 눈썹을 꿈틀했다. 그녀는 도아린이 연회에 참가한 것은 단지 주현정과 예전에 시어머니와 며느리 정 때문이라고 생각했다.주현정이 도아린을 딸로 삼고 JS 픽처스의 후계자로 생각한다는 것은 예상치 못했다.만약 도아린과 모순이 격화된다면 앞으로의 협력에는 장애가 생길 것이다.“강홍련 씨, 사과해요!”강홍련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강재희는 지금 자신을
도아린의 표정은 아주 평온했다.진열대에 있는 다이아몬드의 빛이 꺾이어 그녀의 눈동자를 비춰 유독 눈부셨다.강홍련은 그녀의 앞으로 가서 섰다.강홍련은 도아린보다 머리 하나쯤 작아서 고개를 들어 도아린을 바라보았는데 도도한 척하는 모습이 광대 같았다.“네가 JS 픽처스에게 ‘봉황의 시대’를 광고하도록 넘겼는데 강씨 가문의 고급 주얼리들은 모두 JS 픽처스의 연예인들이 광고하고 있다는 것을 간과했어. ‘봉황의 시대’와 JS 픽처스의 연예인이 동시에 나타난다면 사람들은 당연하게 ‘봉황의 시대’가 강씨 가문의 것으로 생각하게 될 테지.”이게 바로 연예인을 찾아 광고하는 이유였다.예를 들어 어떤 톱스타가 운동화의 모델이 되었다면 그가 나타났을 때 팬들은 어떤 브랜드의 신발을 신었는지 알게 된다. 따로 브랜드를 찾아볼 필요가 없게 되는 것이다.도아린은 도덕과 재능을 겸비한다는 말로 강씨 가문에게 치욕을 안겨주었지만 결국은 강씨 가문이 이득을 보게 되는 것이다.“강씨 가문에서 이득을 보는 게 당신이랑 무슨 상관이죠?”도아린은 담담하게 대답했다.“나는 강씨 가문의 사촌이야!”강홍련은 불쑥 얘기했다.“강씨 가문에서 손보미를 밀어준다면 배건후와 결혼할 수 있어. 강씨 가문에서 안씨 가문을 지지한다면 내 아들은 안씨 가문의 딸과 결혼할 수 있는 거야!”“그래서요.”강홍련은 도아린이 모른 척할 줄 몰랐고 그녀의 코에 대고 얘기했다.“그래서 나한테 잘하라고. 그러면 강씨 가문에서는 네가 해남에서 살아나갈 기회라도 줄 수 있을 거야. 그렇지 않으면 너의 대회 성적을 조작하는 것은 물론 너를 디자인 업계에서 쫓아내는 것도 일이 아니지. 내 삼촌 강태식은 이 바닥을 꽉 잡고 있어. 내 삼촌이 뭐라고 하면 그대로 따라야 하는 거야. 너의 ‘봉황의 시대’도 잘난 척할 거 없어. 언론에서 만들어준 것뿐이야. 만약 삼촌의 학생들이 다 그게 별로라고 얘기한다면 너를 따르는 사람들이 모두 사라질 거야!”많은 손님이 주위에서 구경하고 있다가 강홍련의 지나친 말에 시선을 두
“아빠가 방법을 대서 가볼게. 너는 오지 마.”배석준은 배지유가 걱정되었다. 지난번에 배지유가 밖으로 나갔다 왔을 때도 돌아와서 다리가 아파 잠이 들지 못했다.배지유는 붉어진 눈으로 애원했다.“제 친구들은 제가 아직 안에 갇혀있는 줄 알아요! 아빠랑 제가 함께 엄마의 연회에 간다면 매체에서는 저희 세 식구의 화목한 모습을 찍게 될 것이고 소문들은 자연스레 사그라질 거예요!”배석준은 일리가 있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딸의 명성은 도아린 때문에 엉망이 되었다.돌이킬 방법을 계속 찾지 않는다면 배지유가 해남대학교로 돌아갔을 때 반드시 동기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조롱당할 것이다.“사람들을 데리고 와서 메이크업과 코디를 해줄게.”배석준이 데리고 온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김지민이었다.김지민은 연예계를 잘 아는 사람이라 참석하는 연예인들이 무슨 브랜드를 입었는지 알아냈다. 배지유는 똑같은 옷을 입으면 안 됐고 다리의 흉터를 가릴 수 있으면서 예쁘고 매력적이어야 했다.이 부분에서 김지민은 전문가라고 할 수 있다.배지유는 만족스럽게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 같았다.그녀의 치마를 들지 않는 이상 그녀가 다리 하나가 없다는 것을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다른 사람이 물어보면 발을 삐끗해서 휠체어를 탔다고 하면 될 것이다.이런 장소에 김지민은 절대 나타나서는 안 되므로 부녀가 떠나는 것을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연회장의 중심에는 도아린이 검은 드레스를 입고 나타났고 잘록한 허리에 긴 다리는 현장에 있는 연예인들의 시선을 끌었다.이 여자의 아름다움이 너무 지나쳤다.연예계의 스타들은 자주 레드카펫을 밟고 시상식에 참가하므로 어떻게 분위기를 휘어잡는지를 잘 알고 자신이 어느 각도에서 가장 예쁘게 찍히는지도 알고 있었다.도아린은 처음 보는 얼굴이고 업계에 대해 영향력이 큰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의 행동과 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다 자신감이 넘쳤다.그녀가 스크린 앞으로 가서 사인할 때 스크린에는 ‘봉황의 시대’의
도아린은 가슴이 철렁했지만, 표정은 여전히 아무런 감정의 변화도 나타나지 않았다.그녀의 덤덤한 눈빛은 ‘라윤주’의 이름을 듣고 초점을 잃었다.“뭐라고요?”“...”육하경은 입술을 깨물었다. 두 사람은 잠시 침묵하다가 육하경이 말을 이었다.“향 주머니로 화를 면한 것은 우연이에요. 정말 저를 도왔던 것은 세인트존스 호텔의 책임자가 되게 만들었던 것이죠.”육하경은 입꼬리를 올려 조롱하는 듯한 웃음을 지었다.“어르신들을 3일이나 괴롭혀서야 알아냈어요. LY에서 저를 후임자로 추천했다고 하더라고요.”육하경의 학업은 각 부분에서 다 뛰어났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고 육씨 가문에서 두각을 나타내려면 실력이 좋을 뿐만 아니라 빽빽이 필요했다.육민재를 예로 들어보면 능력은 가장 뛰어나지 않을지는 몰라도 맏아들의 장손 혈통을 이어받아 어렸을 때부터 최고로 좋은 자원과 경험을 쌓을 기회들을 누리고 있었다. 이변이 없다면 그는 육씨 가문의 후계자일 것이다.다른 사람들이 두각을 나타내려면 모든 게 알맞게 부합되어야 한다.육하경은 모든 것을 통찰하고 있었고 육씨 가문의 산업에 기대를 두지 않아 오랜 시간 밖에서 떠돌며 공부를 했고 자신의 사업을 하고 싶었다.세인트존스 호텔의 관리 권한이 그의 손에 들어갔을 때, 그는 기쁘기도 놀랍기도 했다.놀란 마음으로 육하경은 전임자를 찾아갔고 온갖 방법을 다 써서야 LY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육씨 가문 뿐만 아니라 많은 명문가가 LY와 관계가 있었고 그들은 인재를 추천하면서 한편으로는 그들을 도와주었기에 자연스레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었다. 육하경은 그때 손에 향 주머니를 들고 있었는데 전임자가 이상해하며 무늬를 찍어서 물어보았는데 그것은 ‘추천서’라고 하는 것이다. “무슨 얘기를 하는지 모르겠어요. 그리고 하경 씨가 말하는 그 이야기에도 관심 없습니다.”도아린은 책을 육하경에게 돌려주고는 차 문을 열었다.“도아린 씨!”육하경은 그녀를 잡고 싶었지만, 손을 허공에 멈추고 결국 그녀에게 닿지 않았다.육하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