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아린은 그가 어떻게 가게의 자리를 얻게 되었는지 궁금해 도정국을 따라갔다.병실 안에서, 도유준은 이어폰을 끼고 노래를 흥얼거렸다. 문 앞의 의자가 밀리는 소리가 들려서야 그는 급히 이어폰을 뺐다.“아빠, 누나.”도아린은 바로 도정국이 끌어놓은 의자에 앉았다.도정국은 표정이 어두워졌지만, 도아린에게 부탁할 일이 있어 화를 내지 않고, 다른 의자를 끌어와 그녀 옆에 앉았다.“말해 봐, 도대체 무슨 일이야?”도아린은 가방에서 핸드크림을 꺼내 손등에 짜서 바르고는 다시 가방에 넣으면서 몰래 핸드폰 녹음 버튼을 눌렀다.도유준은 아빠가 자신에게 눈치를 주는 걸 본 후, 일부러 이불 위에 붕대를 감은 손을 올려놓았다.“누나, 제가 친구한테 돈을 빌려서 새 가게의 장비를 샀어. 물건을 받는 날, 가게에 젊은 애가 한 명 왔는데 글쎄 집세를 받으러 왔다고 하더라고. 우리 도울 디저트에서 언제 집세를 낸 적 있었어? 내가 매니저를 부르자고 했는데 그 어린놈이 아무 말 없이 내 손을 부러뜨린 거야. 엠파이어 빌딩은 매형 거잖아. 그놈이 나를 괴롭히는 건 매형을 무시하는 거잖아!”도아린은 핸드크림을 문지르며 담담하게 말했다. “새 가게라니, 어디서 난 거야?”“우리를 속이는 게 재밌어?”도정국은 화가 나서 일어섰다. “유준이 재산을 포기해야만 준다는 거야? 도유준은 내가 인정한 아들이고 내가 인정을 했으면 책임을 질 거야!”도아린은 무심하게 도정국을 한번 쳐다봤다.“그럼 도유준한테 책임을 지겠다면서 왜 나한테 이러는 거죠?”도정국은 말문이 막혔고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 그는 도아린을 노려보다가 서랍에서 서류를 꺼냈다.사실 그들은 이미 준비를 해두었지만, 일부러 주지 않고 미루고 있었다.“도유준은 재산 상속을 포기하고 나를 보살필 의무까지 다하고 있어. 너는 얘랑 비교가 되기나 해?”도정국은 서류를 도아린의 품에 던졌다.도아린은 핸드크림이 모두 흡수된 후 서류를 집어 들고 천천히 살펴본 뒤 확인이 되자 말했다.“그럼 도장을 찍어주세요. 제가
“도아린, 네가 만족할 만큼 해줬잖아. 또 이런 식으로 나오는 거야?”도정국은 화가 나서 눈을 부릅뜨며 도아린의 휴대폰을 가리켰다. 목에는 핏줄이 선명하게 도드라졌다.“시장부에서 나한테 직접 전화했어. 그들이 허락하지 않았다면 내가 열쇠를 받아서 인테리어를 할 수 있었겠어? 지금 당장 그들에게 전화해, 내 앞에서!”‘전화라면 얼마든지 할 수 있지.’도아린은 시장관리 부문에 전화를 걸고 스피커폰을 눌렀다.“성 팀장님 사무실로 연결 부탁드립니다.”“성 팀장님은 휴가 중입니다.”비서의 태도는 다소 차가웠다.도아린은 문득 육하경이 성대호가 정직당했다고 했던 말을 떠올렸다. 그녀는 도정국을 바라보며 전화에 대고 말했다.“상가 관련해서 확인 부탁드립니다. 며칠 전에 절차를 밟으라고 연락을 받았는데 바빠서 못 갔거든요.”“성함이 어떻게 되시죠?”“도아린입니다.”상대방은 잠시 침묵하더니 의자가 움직이고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잠시 후, 비서는 전화를 다시 받으며 말했다.“죄송하지만 이쪽에 도아린 씨의 명의로 등록된 상가 기록은 없습니다.”도정국은 도아린의 휴대폰을 뺏으려 했지만, 그녀가 피하자 할 수 없이 휴대폰에 가까이 대고 말했다.“다시 한번 확인해 주세요. 며칠 전에 저에게 전화가 와서 절차가 진행 중이니 우선 사용해도 된다고 했어요.” 도정국은 상가 번호까지 불러줬다. 곧 비서는 해당 상가의 소유주가 손 씨라는 정보를 전했다.도정국은 포기하지 않고 재확인해 달라고 고집을 부렸지만, 도아린은 통화를 끊어버렸다.“이게 어떻게 된 거야? 이럴 리가 없어!”도정국은 얼굴이 창백해지고 입술은 하얗게 질리며 의자에 주저앉았다. 큰소리까지 쳤고 개업 날짜도 정해둔 상황에서 상가가 없다고 하니, 이제 친구와 친척들 앞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도유준도 당황해하며 말했다.“누나, 아무리 누나가 나를 싫어한다고 해도 아빠한테 이런 장난을 치면 안 되지. 장비랑 원재료를 이미 다 주문했어. 이제 어떻게 하란 말이야?”“그것들을
순간 도아린은 그가 자신을 구하러 온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도 한순간이었다.그녀는 배건후의 눈빛 속 깊은 의미를 이해하고 웃으며 그의 팔짱을 꼈다.“오래 기다렸죠? 아버지도 동생을 보러 오셔서 잠깐 이야기 나눴어요.”도아린은 배건후를 데리고 나가려 했다.그 상가는 분명 손보미의 명의였고 만약 시장부에서 도정국에게 열쇠를 주지 않았다면 그가 사용할 수 없었을 것이다. 분명 뭔가 수상한 점이 있었다.배건후의 마음속에서 자신보다 손보미가 더 중요한 존재라는 사실을 도정국이 알게 된다면, 그들에게 위협이 될 수 있는 수단이 사라질 것이다.도아린은 나가고 싶었지만, 도정국이 그녀를 가로막았다.“건후야, 잘 왔어...”도정국은 몇 걸음 앞으로 나서며 웃었는데 마치 교활한 여우 같았다.“엠파이어의 상가에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자네가 아린에게 준 상가가 왜 다른 사람 명의로 되어 있지?”침대 위의 도유준은 귀를 쫑긋 세우고 듣고 있었다.도아린은 힘껏 배건후의 팔을 꽉 잡았다.배건후는 지긋이 도아린을 한 번 바라보고는 도정국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내가 하는 일을 당신한테 보고해야 하는 거예요?”도정국의 가식적인 웃음은 순간 굳어졌고 두 손은 불안하게 주먹을 쥐었다.배건후가 3년 만에 처음으로 그에게 강한 태도를 보인 것이다.“우리는 한 가족 아니냐? 서로 잘 이야기하고 이해해야 오해가 없지 않겠나.”“내 아내에게 함부로 소리치는 사람은 가족이 될 자격이 없어요.”도아린의 마음이 찌릿했다.그가 얼마나 오래 있었는지, 얼마나 들었는지는 모르지만, 이 순간의 그의 보호가 지금까지 쌓였던 실망을 잠재웠다.만약 배건후라는 든든한 방패가 없었다면, 도정국은 벌써 도지현을 포기했을 것이고 그녀는 이렇게 편하게 살지 못했을 것이다.도아린은 고개를 숙여 눈에 맺힌 서러움을 감췄다.“대표님, 백 교수님께서 오셨습니다.” 옆에서 우정윤이 조심스레 알렸다. 배건후는 담담하게 말했다.“시장부에 통보해. 도울 디저트에 제공되던 모든 혜택은 즉
이때 누군가 지나가면서 도아린은 눈가에 맺힌 눈물을 들키지 않으려 옆으로 비켜서서 배건후에게 등을 돌렸다.배건후는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필요할 땐 달콤한 말을 내뱉으며 그를 방패로 삼더니, 이제 필요가 없어지니 쳐다보지도 않는다는 것이었다.그녀가 자신의 동기가 불순하다고 확신하니, 그 뜻대로 해 주기로 했다.“보미가 사과글을 올렸으니, 네가 아현에게 잘 말해줘.”“그렇게 할게요.”도아린은 마치 결과를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흔쾌히 대답했다.배건후는 말없이 돌아섰다.도아린은 내려가려는데 배건후가 위층으로 가는 걸 보고 서둘러 따라갔다.“동생 보러 가려는 거예요?”배건후가 병문안을 온 것은 두 번뿐이었다. 한 번은 도지현을 입원시키러 온 것이고, 또 한 번은 결혼 후 처음으로 집을 방문했을 때 도지현을 먼저 보러 왔을 때였다.우정윤이 도아린에게 다가와 조용히 설명했다.“대표님께서 도지현 씨를 위해 전문의를 모셨습니다. 백 교수님이 지금 병실에 계실 겁니다.”도아린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배건후를 바라보았다.남자는 반듯하게 선 자세로 오래된 복도를 걸어갔고 그의 고귀한 아우라는 이 공간과 어울리지 않았다.도아린의 마음속에 의문이 들었다.도지현이 입원한 지 1년이 넘었는데, 심지어 도정국마저도 병실 호수를 확인하려고 그녀에게 메시지를 보냈었는데 겨우 두 번 왔을 뿐인 배건후는 병실로 가는 길을 잘 알고 있는 듯했다.도아린이 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병실 문 앞에 서 있는 백 교수를 보았다.백 교수는 젊은 남자였고 배건후에게 공손하게 인사했다.배건후는 손짓으로 들어가라고 하고는 둘이 함께 병실로 들어갔다.조이서와 안혜진은 도아린에게 자리를 내주며 물러났다.도아린은 침대 발치에 서서 백 교수가 도지현에게 여러 가지 검사를 하는 모습을 한시도 눈을 떼지 않고 지켜보았다.결론은 주치의의 말과 다르지 않았다. 도지현이 깨어날 가능성은 작았다.해외에 뇌를 자극하는 기계가 있는데, 약물과 병행하면 확률을 높일 수 있다는 설명이 이어졌다.그
도아린은 차갑게 웃었다.손보미가 정말 미안함을 느낀다면, 당연히 열쇠를 자기에게 직접 주는 게 맞지 않나?그녀는 일부러 도아린을 건너뛰고 도정국을 찾아간 것부터가 음모가 깔려 있었다.하지만 배건후는 손보미의 의도가 좋다고 생각하니, 그녀의 악한 본성은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그래서 당신이 말씀하신 뜻은 뭔가요? 손보미가 나에게 상가를 쓰라고 하고, 내 동생 치료를 위해 의사까지 구해줬으니, 내가 그녀에게 감사하며 충성해야 한다는 건가요?”“도아린!” 배건후의 눈빛이 차갑게 번뜩였다.도아린은 차갑게 웃고는 손을 벌리며 말했다.“아니면 당신은 내가 더는 보육원 일에 관여하지 않고, 그냥 망가지도록 내버려 두길 바라시는 건가요? 어차피 나와는 상관없으니까?”“이해할 수가 없군.”배건후는 뒤돌아 나가버렸다.우정윤은 도아린에게 할 말이 있는 듯했지만, 대표님이 가버리자 얼른 뒤따라갈 수밖에 없었다....성대호가 비서의 전화를 받았을 때, 그는 어두운 지하실에 서 있었다.난간의 철근이 두 개 잘려져 있었고 방우진은 도망친 상황이었다.성대호는 짜증스럽게 머리를 쥐어뜯었다. 자신이 상가를 손보미 명의로 옮겨놓는 바람에 도아린 부녀 사이에 갈등이 생긴 것이었다.“찾아보라고 한 상가는 어떻게 되었어?”“팔려는 가게가 하나 있긴 한데 가격도 터무니없이 높고 위에서 사적으로 양도하는 걸 금지하는 통지까지 내렸어요.”비서는 서럽게 말했다. “성 팀장님, 언제 돌아오시는 거예요.”왕이 바뀌면 신하도 바뀌는 법이라, 새로운 팀장은 자신이 키운 사람만을 믿었고 전임자의 비서였던 그녀는 고립된 처지가 되었다.“지금 하는 일만 마치면 돌아갈게.”성대호는 비서를 달래며 자신의 이름으로 상대와 접촉해 도아린 명의로 빨리 매입을 마무리하라고 지시했다.그는 도아린에게 계속 빚을 지고 있는 상황이 싫었다.비서와의 전화를 막 끊자, 배지유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오빠, 나 한 번만 더 도와줄 수 있어?”“말해 봐.”성대호는 담배를 피우며 한 모금 빨
성대호는 입술을 살짝 깨물며 억지로 웃어 보였다.“누가 차를 긁어서 그 사람을 찾을 수 있을지 보려고 왔어요. 아린 씨는요?”“나는 A18 상가의 CCTV를 보러 왔어요. 누가 우리 아버지 양아들의 손가락을 부러뜨렸거든요.”도아린은 말하는 내내 성대호의 얼굴을 주시했고 그는 눈을 깜빡이며 시선을 마주치지 않았다.잠시 후, 성대호는 경호 팀장에게 담배 한 개비를 던지며 물었다.“A18의 CCTV는 연결됐어?”이렇게 명백하게 힌트를 주자, 경호 팀장은 성대호의 뜻을 알아차리고 대답했다.“그 상가는 아직 절차가 끝나지 않아서, CCTV가 연결되지 않았습니다.”도아린은 말없이 그들이 짜고 치는 것을 지켜보았다.성대호는 몇 마디 더 물어본 뒤, 도아린에게 설명했다.“아직 절차가 끝나지 않은 상가는 CCTV 영상이 본사에 연결되지 않아요. 그래도 근처 가게 CCTV를 확인해 볼 수 있도록 도와줄게요. 근처 상가들은 자체 CCTV가 있어서 뭔가 찍혔을지도 몰라요.”성대호는 도아린과 함께 근처 상가 CCTV를 확인하러 가려는 듯했지만, 도아린은 여전히 앉은 자리에서 미동도 하지 않았다.“갑시다. CCTV를 확인하고 싶다면서요?”도아린은 눈에 웃음기 없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그 미소에 성대호의 등골이 서늘해졌다.그녀는 배건후의 기세를 흉내 내면서 가냘픈 몸에서 오싹한 압박감을 내뿜었다.성대호의 미소가 굳어질 때쯤,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늦어서 미안해요.”육하경은 성대호를 보고 살짝 멈칫하더니 의아하게 도아린을 바라봤다.도아린은 웃으며 일어나서 말했다.“잘 왔어요. 성 팀장님 차가 긁혀서 CCTV를 확인하려 한다고 해요. 도와줄 수 있죠?”그 말을 듣고 성대호의 표정이 굳었고 손에 들고 있던 담배가 떨어질 뻔했다.그는 어색하게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중요한 일이 아닌데 뭐. 내가 알아서 할 수 있어. 너는 뭐 하러 온 거야?”“난 아린 씨랑 함께 CCTV를 보러 왔지.” 육하경이 말을 마치자, 성대호는 그를 문밖으로 데리고 나
성대호는 옆에 있는 사람에게 눈짓했고 그 사람은 차를 준비하는 척하며 CCTV의 전원을 끊었다.“어? 이게 무슨 일이지?” 경호 팀장은 당황하여 말했다. “전기기사 불러서 누가 전기 차단기를 잘못 건드린 건 아닌지 확인해봐.”직원은 잠시 멈칫하다가 상황을 알아차렸다.CCTV 백업 컴퓨터는 옆방에 있었지만, 그는 상사가 자신에게 정확히 무엇을 하라고 하는지 알지 못했다.CCTV 실에서 도아린은 성대호가 메시지를 보내는 것을 보고 사태가 단순하지 않다고 짐작했다.육하경은 그녀의 눈빛을 주시하고 있다가 정수기 뒤쪽 전원이 꺼진 것을 재빨리 발견했다.그는 조용히 다가가 전원을 다시 연결했다.옆방의 CCTV 화면도 이곳에서 확인할 수 있었고 화면이 켜지는 순간 그 직원은 컴퓨터 앞에서 일어났다.성대호는 화면이 너무 많아 그 직원의 행동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것에 다행이라 생각하며 몰래 한숨을 내쉬었다.그러나 세심한 육하경은 그의 긴장과 안도감을 놓치지 않았다.“가요. 옆 가게 CCTV도 한번 봅시다.” 도아린은 일어나며 나갈 채비를 했다. 이제 더는 이곳에 있을 필요가 없었다.육하경과 성대호도 함께 따라 나왔다.성대호는 육하경에게 담배를 건네며 말했다.“CCTV 조사는 나에게 맡겨. 꼭 찾아줄게.”도아린은 고개를 돌려 그를 보며 말했다.“성 팀장은 자기 차 CCTV는 조사 안 하나요?”“그냥 긁힌 거라 괜찮아요.” 성대호는 복잡한 표정으로 도아린 옆에 다가섰다.“아린 씨 아버지는 양아들과 함께 길에서 아린 씨에게 치욕을 주었는데 아린 씨는 그 사람을 위해 CCTV를 확인해 주는 거예요? 나쁜 사람은 언젠가 벌을 받게 되어 있어요. 그 사람은 당해도 싸요.”“저는 그의 생사에 관심이 없어요. 저는 그저 누군가 뒤에서 음모 꾸미는 게 싫은 것뿐이에요.”도아린은 성대호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성대호는 바로 시선을 피하며 육하경을 보았다.“누가 감히 그래요? 여긴 엠파이어 빌딩인데 건후가 그렇게 두지 않을 거예요.”육하경은 도아
방우진은 한쪽 다리를 절뚝이며 A18 가게에서 나왔다. 그는 당황한 듯 주위를 둘러보더니 오토바이에 올라탔고 방향을 돌릴 때 차량 번호판이 드러났다.사흘 뒤 밤, 방우진은 경찰차 소리를 듣자마자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는 창문을 통해 탈출해 오토바이에 올라타고 도망쳤지만, 골목을 빠져나오자마자 체포당했다.같은 방식으로 창문을 통해 도망치던 하춘녀도 반대 방향으로 도망치다 방우진이 경찰차에 태워지는 것을 보고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도아린이 경찰서에 도착했을 때, 육하경과 배건후는 취조실에서 나오고 있었다.며칠 동안 배건후는 집에 돌아오지 않았고 도아린은 큰 계약을 따내며 돈을 버는 일과 도지현의 치료를 챙기느라 그를 완전히 잊고 있었다. 오랜만에 배건후의 모습을 보았는데 그는 많이 지쳐 보였다.“자백했어요?” 도아린은 육하경을 바라보며 물었다.배건후의 눈빛이 차갑게 식었고 얇은 입술이 굳어졌다.도아린의 태도는 자신을 무시하는 듯한 태도였다.육하경은 배건후를 잠시 바라보다가 망설이며 말했다.“아무것도 말하지 않으려 해요.”도아린은 배건후를 바라보았고 희망이 담긴 눈빛이 차갑게 식어갔다.“건후 씨, 상가는 당신이 손보미에게 줬는데, 왜 방우진이 임대료를 받고 있는지 설명해 줄래요?”배건후의 냉랭한 시선이 더욱 어두워졌고 주머니 속에서 손은 단단히 주먹을 쥐었다.그는 방우진이 잡힌 이유가 그 오토바이 번호판 덕분이라는 것, 그리고 그 번호판을 찾아낸 사람이 도아린과 육하경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배건후는 도아린의 팔을 잡고 반쯤 끌고 가듯 그녀를 휴게실로 데리고 갔다.“네가 육하경과 함께 CCTV를 조사했으면, 나한테 먼저 설명을 해야 했던 거 아닌가?”남자의 시선은 칼처럼 날카로웠고 도아린은 손목이 부러질 것 같은 고통을 느꼈다.아팠지만 그녀는 웃음을 지었다.“당신은 내 말을 절대 믿지 않으면서 무슨 설명을 바라는 거예요? 성대호 씨는 당신 사람이잖아요. 내가 CCTV를 조사하러 갔다고 말하지 않았다면, 당신에게 문제가 있는
도아린은 변슬기를 데리고 연회장 안으로 들어갔다.배지유가 자신을 일부러 모욕하려고 그런 말을 한다고 생각했지만 정말로 이곳에 유명 스타들이 모여 있다는 걸 알게 됐다.스크린에서만 보던 유명인들을 실제로 보니 변슬기는 입을 다물지 못했고 두 눈으로는 전부 다 담을 수 없을 정도였다.그녀는 다소 어색하게 셔츠를 만지작거렸다.아버지가 친구를 만나러 가니 단정하게 차려입으라고 당부했지만, 변슬기는 또 소개팅 자리일 거로 생각하며 일부러 평소 입던 옷을 입고 왔다.그녀는 상대가 아버지의 돈이 아니라 자신의 평범한 모습을 좋아하길 바랐다.그러나 여기에서 음료를 나르는 여직원들조차 자신보다 더 격식 있게 차려입은 것을 보고 당황했다.“도 선생님, 저 이러고 있으니까 너무 볼품없는 거 아니에요?”도아린은 그녀의 셔츠 뒷면에 약간의 땀 자국이 있는 것을 보고 온화하게 미소 지었다.“제가 여분의 드레스를 준비해 놨어요. 갈아입어도 좋아요.”변슬기는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일단 아빠 친구를 만나고 나서 생각할게요.”멀리서 변우빈이 그녀를 보고 약간의 타박 섞인 눈빛을 보였지만, 곧 미안하다는 듯 설명했다.“우리 딸은 성격이 참 고집스러워.”그는 변슬기에게 손짓했고 딸이 곁에 앉자 말했다.“내가 단정하게 입고 오라고 했잖아. 그런데 일하는 옷을 입고 오면 어떡하니.”변슬기는 당황스러워 목을 만지작거리며 고개를 들었는데, 그 순간 주현정이 보이자 긴장한 표정으로 도아린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눈빛을 보냈다.‘큰일 났다!’문 앞에서 배지유와 다툰 것도 모자라 이번엔 배지유의 엄마까지 만나게 됐다.지난번처럼 자신에게 온화하게 대해줄 리가 없을 것이다.“...네 딸이구나?”주현정은 마치 이해했다는 듯 더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지난번에 봤을 때 어쩐지 낯이 익다 했어.”변슬기는 몰래 아버지의 옷자락을 꽉 잡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이분 배지유 엄마예요.”변우빈은 그녀의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하고 웃으며 소개했다.“이분은 주현정
배지유가 휠체어를 돌리자마자 누군가와 부딪힐 뻔했다.“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저... 배지유?”“변슬기?” 배지유는 그녀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말했다. “너 여기서 아르바이트하는 거야? 이 시간에 오다니, 연회가 거의 끝나가잖아.”변슬기는 공유 자전거를 타고 와서 온몸에 땀범벅이었고 앞머리가 하얀 이마에 붙어 있었다.그녀는 손으로 머리를 정리하며 숨을 고르면서도 자신감 있게 말했다.“아니야, 난 사람을 찾으러 온 거야.”이어지는 장면이 바로 도아린이 목격한 것이다.배지유는 휠체어를 움직여 변슬기의 주위를 맴돌면서 눈에 비웃음이 가득했다.“너희 집은 이번 생은 물론이고, 전생에도 이런 호화로운 사람들을 본 적 없을걸? 여기를 시장으로 착각한 거야? 아무나 데려와서 ‘내 삼촌, 내 이모’라고 하면 통할 것 같아? 여기는 모두 톱스타들이야! 너 콘서트 한 번이라도 가본 적 있어?”배지유는 입을 가리며 더 경멸하는 표정을 지었다.“생활비 벌려고 아르바이트까지 해야 하는 주제에 무슨 돈으로 콘서트를 본다는 거야! 연예인을 만나고 싶어? 기숙사로 돌아가서 기다려. 누굴 보고 싶은지 댓글 남기면 내가 대신 사진 찍어줄게. 미리 말해두는데, 나는 돈을 안 받아. 대신 너는 우리 기숙사의 1년 치 청소를 맡고 내 빨래도 다 해야 해. 속옷과 양말도 손빨래로!”변슬기는 차갑게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난 연예인 보러 온 게 아니야.”“올해 최고의 억지상은 바로 너네!” 배지유는 엄지를 세우며 비웃었다.“여긴 다 연예인들뿐이야. 네가 누굴 찾는다고 하면, 내가 직원한테 말해서 불러줄게.”변슬기는 그녀를 무시하고 가방에서 휴대폰을 꺼냈다.그러자 배지유의 눈빛이 갑자기 험악해지며 휠체어를 몰아 변슬기에게 돌진했다.거의 부딪힐 뻔한 순간, 휠체어가 갑자기 멈췄다.화가 난 배지유가 고개를 돌려보니 그녀가 표현할 말을 찾지 못할 정도로 매혹적인 도아린의 아름다운 얼굴이 보였다.“네가 왜...” 도아린은 왜 자신과 똑같은 드레스를 입고 있는 건가?
주현정은 이혼 얘기를 꺼내지 않았기에 그저 화났다는 의미일 것이다.그러니 그녀의 기분만 풀어주면 도아린이 그 자리를 넘보는 건 불가능해질 것이다.“현정아, 사람은 성인이 아니니 누군들 실수하지 않겠어?” 배석준은 화를 억누르며 말했다.“내가 증명해 보일게. 나와 지유야말로 네 뒤를 든든히 지켜줄 사람이라는 걸 말이야!”그는 배지유를 찾아 그녀를 데리고 주현정을 만나러 가려고 했다.세 식구가 언론 앞에 함께 나타나기만 하면 이혼 소문은 사라지게 될 것이고 도아린 같은 외부인은 배씨 가문의 재산에 끼어들 수 없게 될 것이다.하지만 그가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배지유가 사라진 후였다.“엄마, 화내지 마세요.” 도아린이 다정하게 위로했다.“배 대표님은 함부로 결단을 내리지 못할 거예요.”“차라리 저 사람이 결단을 내렸으면 좋겠네.”주현정은 도아린과 함께 인파를 지나갔다.소파에 앉아 있는 남자는 정장을 입고 있었지만,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그는 다소 어색하게 무릎을 문지르며 이따금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폈다가 다시 고개를 숙이고 생각에 잠겼다.주현정을 본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온화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내가 방해되지는 않았어?”“그 말은 내가 해야 할 말인 것 같은데. 그렇게 바쁜 와중에도 내 연회에 와줘서 고마워.”주현정은 도아린의 손을 잡고 다가갔다. 세 사람은 원형 소파에 앉았다.“이쪽은 내 딸 도아린이야. 이분은 변우빈이라고 하고 내 가장 친한 친구야. 아저씨라고 불러.”“아저씨, 안녕하세요.” 도아린은 무심코 상대방을 살펴봤다.변우빈은 이목구비가 단정하고 배석준와 비슷한 체격이었지만 조금 말랐다. 그의 얼굴과 손에는 노동으로 살아온 사람이 가진 강인함이 배어 있었다.두 사람이 대화하는 동안 변우빈은 계속 주현정의 눈을 바라봤고 주현정의 미소는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 진심이 담겨있었다.“네 딸도 데리고 온다고 하지 않았어?”주현정이 뒤를 돌아보며 묻
석 대표는 멈칫하더니 그제야 앞에 휠체어 하나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 거기에 요란하게 치장한 여자가 앉아있는 것을 보았다.“이분은...”그는 주현정이 이혼한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고 첫 반응은 배석준이 다른 여자를 찾았다는 것이었다. 배석준의 새로운 연인은 주현정과 닮은 구석이 있었다.“석 대표님, 짓궂으십니다. 방금까지도 저희 딸을 카메오로 요청한다고 하셨으면서...”배석준은 말을 하면서 주변 사람들의 표정이 변하는 것을 발견했다.그들은 이상한 눈빛으로 배지유를 보고 있었고 의아해하는 사람도 있고 심지어 비교하는 사람도 있었다.배지유는 엄청 민감해서 의식적으로 치마를 잡았는데 그들이 자신의 얼굴만 보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그제야 천천히 손을 떼었다.“배 대표님 따님이 몇 명이세요?”석 대표가 물었다.“... 한 명입니다.”석 대표는 웃어 보이고는 볼 일이 있다면서 자리를 떴고 그가 떠나자 다른 사람들도 흩어졌다.“아빠! 저 사람들 무슨 뜻이에요?”“...”배석준은 대답하지 않았지만, 영문을 알게 되었다.배지유는 휠체어에 앉아있어 시선이 막혔지만, 배석준은 멀지 않은 곳에서 도아린을 데리고 인사를 나누는 주현정을 보았다.그들이 칭찬하는 사람은 배지유가 아니라 도아린이었다.“지유야, 여기서 아빠를 기대려. 아빠가 가서 엄마를 찾아볼게.”그는 배지유가 충격을 받을까 봐 그 자리에서 자신을 기다리라고 하고는 빠르게 걸어갔다.“주현정! 당신 지금 지유는 병원에 내버려 두고 도아린을 데리고 연회에 참가하고 있어? 당신 같은 엄마가 어디 있어?”손님들은 배석준의 표정이 안 좋은 것을 보고 자리를 피했고 주현정의 얼굴에 있던 웃음도 점차 사라졌다. 그녀는 입꼬리를 올리고 대답했다.“지유는 당신 같은 아빠만 있으면 돼요.”배석준은 목소리를 깔고 물었다.“앞서 당신은 외부인 하나 때문에 나랑 이혼하려고 했고 이제는 이혼 얘기를 하지 않으니 각종 방법으로 우리를 치욕스럽게 하고 있어. 당신이 다시 JS 픽처스를 운영하게 되었는데도 나한테 얘기
JS 픽처스의 고위인사는 배석준을 알고 있었기에 그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앞으로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배 대표님, 또 해외로 가신 줄 알았습니다.”“현정이의 몸이 나아진 지 얼마 되지 않아 좀 더 머물다가 가려고 합니다.”배석준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평소에 연회에 거의 참가하지 않는 연예인들이 참석한 것을 보고 주현정이 JS 픽처스에서 지위가 여전히 굳건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그들은 각종 이유를 찾아 함께 공식 석상에 나타나기를 거부했지만, 약속이나 한 듯 카메라 앞에서는 활짝 웃었다. 그들은 모두 주현정 덕분에 잘 되었기에 체면은 반드시 살려주어야 했다.“크흠.”배지유는 배석준에게 자신을 소개하라고 헛기침을 했다.“아, 우리 딸이 마침 해남대학교에서 대학원을 다니고 있어서 데리고 왔습니다.”배석준을 둘러싼 고위인사들의 표정이 이상해졌다.주현정은 배지유가 연예계의 나쁜 물을 먹을까 봐 현역일 적에 절대 배지유를 데리고 활동에 참석하지 않았다. 고위인사들도 그저 주현정에게 딸이 있다는 것만 알았지 본 적은 없었다.반응이 빠른 누군가가 술잔을 들며 공손하게 말했다.“따님은 주 대표님과 배 대표님의 우수한 점을 다 닮으셔서 단정하고 청초하십니다. 우리가 올해 새로 영입한 신인보다 예쁘신 것 같습니다.”“맞아요. 해남대학교의 대학원을 다닌다고 하시니 예쁘시고 학식도 많으시네요. 지금 업계에서는 이렇게 완벽한 인재를 제일 좋아합니다!”배지유는 칭찬을 듣고 얼굴이 발그레해졌고 그녀는 두 손으로 팔걸이를 잡고 살짝 몸을 앞으로 했다.“죄송합니다. 제가 발을 삐끗해서 일어서서 인사를 올리지 못하겠네요.”“별말씀을요. 발을 삐끗하면 잘 치료해야 해요. 젊고 예쁘신데 후유증을 남기면 안 되죠.”좋은 마음으로 한 말이지만 배지유의 마음속에서는 저주로 들렸다.그녀는 발 한쪽을 다친 게 아니라 다리 하나를 잃었다. 나머지 생은 장애를 안고 살아가야 한다는 말이다.배석준은 배지유의 성격을 알기에 그녀가 난리를 피울까 봐 얼른 다른 곳으로
주현정은 말투가 가라앉았고 표정이 엄숙했다.“남자의 내연녀로 이십몇 년을 있다가 아이까지 낳았는데도 결혼을 하지 못했으니 어른이 화병으로 돌아가지 않을 수가 있나. 도아린의 양아버지는 양어머니의 혼수를 가로챈 것도 모자라 목숨까지 위협했어. 이런 쓰레기 같은 놈은 딸의 효도를 받을 자격 없어!”현장에는 여자 연예인들도 많았다.같은 딸의 마음으로 이렇게 심란한 일들이 있었는데 어떻게 효도를 할 수 있겠는가?그들은 도아린이 매정하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오히려 도아린이 양어머니를 위해 복수를 했다고 여겼다.강홍련은 주위 사람들이 모두 도아린의 편을 드는 것을 보고 당황했다. 자신을 향해 손가락질하는 것은 견딜 수 있지만 방금 자신의 말이 강씨 가문에게 영향을 줄까 봐 두려웠다.그녀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을 때 도아린은 단호한 눈빛으로 목소리를 높였다.“강씨 어르신은 사적인 감정으로 공적인 자리에서 복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강씨 어르신께서 좋은 마음으로 당신을 받아주었는데 당신은 밖에서 어르신의 명성이나 흐리고 다니면 안 되죠. 농부와 뱀의 이야기를 재희 씨도 들어봤을 거로 생각해요.”도아린은 강씨 어르신의 편에 섰는데 강재희는 반박할 수 없었다.여론에서 아버지의 대회에 흑막이 있다는 일로 들끓던 것이 금방 사그라들었는데 강홍련 저 멍청이 때문에 다시 수면으로 올라왔다.주현정은 도아린이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조금도 용납할 수 없었다.“도아린은 제 딸이고 JS 픽처스의 후계자예요. 강씨 가문에서 이렇게 제 딸을 치욕스럽게 하다니, 저희 협력은 앞으로 계속하지 않을 생각입니까?”강재희는 눈썹을 꿈틀했다. 그녀는 도아린이 연회에 참가한 것은 단지 주현정과 예전에 시어머니와 며느리 정 때문이라고 생각했다.주현정이 도아린을 딸로 삼고 JS 픽처스의 후계자로 생각한다는 것은 예상치 못했다.만약 도아린과 모순이 격화된다면 앞으로의 협력에는 장애가 생길 것이다.“강홍련 씨, 사과해요!”강홍련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강재희는 지금 자신을
도아린의 표정은 아주 평온했다.진열대에 있는 다이아몬드의 빛이 꺾이어 그녀의 눈동자를 비춰 유독 눈부셨다.강홍련은 그녀의 앞으로 가서 섰다.강홍련은 도아린보다 머리 하나쯤 작아서 고개를 들어 도아린을 바라보았는데 도도한 척하는 모습이 광대 같았다.“네가 JS 픽처스에게 ‘봉황의 시대’를 광고하도록 넘겼는데 강씨 가문의 고급 주얼리들은 모두 JS 픽처스의 연예인들이 광고하고 있다는 것을 간과했어. ‘봉황의 시대’와 JS 픽처스의 연예인이 동시에 나타난다면 사람들은 당연하게 ‘봉황의 시대’가 강씨 가문의 것으로 생각하게 될 테지.”이게 바로 연예인을 찾아 광고하는 이유였다.예를 들어 어떤 톱스타가 운동화의 모델이 되었다면 그가 나타났을 때 팬들은 어떤 브랜드의 신발을 신었는지 알게 된다. 따로 브랜드를 찾아볼 필요가 없게 되는 것이다.도아린은 도덕과 재능을 겸비한다는 말로 강씨 가문에게 치욕을 안겨주었지만 결국은 강씨 가문이 이득을 보게 되는 것이다.“강씨 가문에서 이득을 보는 게 당신이랑 무슨 상관이죠?”도아린은 담담하게 대답했다.“나는 강씨 가문의 사촌이야!”강홍련은 불쑥 얘기했다.“강씨 가문에서 손보미를 밀어준다면 배건후와 결혼할 수 있어. 강씨 가문에서 안씨 가문을 지지한다면 내 아들은 안씨 가문의 딸과 결혼할 수 있는 거야!”“그래서요.”강홍련은 도아린이 모른 척할 줄 몰랐고 그녀의 코에 대고 얘기했다.“그래서 나한테 잘하라고. 그러면 강씨 가문에서는 네가 해남에서 살아나갈 기회라도 줄 수 있을 거야. 그렇지 않으면 너의 대회 성적을 조작하는 것은 물론 너를 디자인 업계에서 쫓아내는 것도 일이 아니지. 내 삼촌 강태식은 이 바닥을 꽉 잡고 있어. 내 삼촌이 뭐라고 하면 그대로 따라야 하는 거야. 너의 ‘봉황의 시대’도 잘난 척할 거 없어. 언론에서 만들어준 것뿐이야. 만약 삼촌의 학생들이 다 그게 별로라고 얘기한다면 너를 따르는 사람들이 모두 사라질 거야!”많은 손님이 주위에서 구경하고 있다가 강홍련의 지나친 말에 시선을 두
“아빠가 방법을 대서 가볼게. 너는 오지 마.”배석준은 배지유가 걱정되었다. 지난번에 배지유가 밖으로 나갔다 왔을 때도 돌아와서 다리가 아파 잠이 들지 못했다.배지유는 붉어진 눈으로 애원했다.“제 친구들은 제가 아직 안에 갇혀있는 줄 알아요! 아빠랑 제가 함께 엄마의 연회에 간다면 매체에서는 저희 세 식구의 화목한 모습을 찍게 될 것이고 소문들은 자연스레 사그라질 거예요!”배석준은 일리가 있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딸의 명성은 도아린 때문에 엉망이 되었다.돌이킬 방법을 계속 찾지 않는다면 배지유가 해남대학교로 돌아갔을 때 반드시 동기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조롱당할 것이다.“사람들을 데리고 와서 메이크업과 코디를 해줄게.”배석준이 데리고 온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김지민이었다.김지민은 연예계를 잘 아는 사람이라 참석하는 연예인들이 무슨 브랜드를 입었는지 알아냈다. 배지유는 똑같은 옷을 입으면 안 됐고 다리의 흉터를 가릴 수 있으면서 예쁘고 매력적이어야 했다.이 부분에서 김지민은 전문가라고 할 수 있다.배지유는 만족스럽게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 같았다.그녀의 치마를 들지 않는 이상 그녀가 다리 하나가 없다는 것을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다른 사람이 물어보면 발을 삐끗해서 휠체어를 탔다고 하면 될 것이다.이런 장소에 김지민은 절대 나타나서는 안 되므로 부녀가 떠나는 것을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연회장의 중심에는 도아린이 검은 드레스를 입고 나타났고 잘록한 허리에 긴 다리는 현장에 있는 연예인들의 시선을 끌었다.이 여자의 아름다움이 너무 지나쳤다.연예계의 스타들은 자주 레드카펫을 밟고 시상식에 참가하므로 어떻게 분위기를 휘어잡는지를 잘 알고 자신이 어느 각도에서 가장 예쁘게 찍히는지도 알고 있었다.도아린은 처음 보는 얼굴이고 업계에 대해 영향력이 큰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의 행동과 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다 자신감이 넘쳤다.그녀가 스크린 앞으로 가서 사인할 때 스크린에는 ‘봉황의 시대’의
도아린은 가슴이 철렁했지만, 표정은 여전히 아무런 감정의 변화도 나타나지 않았다.그녀의 덤덤한 눈빛은 ‘라윤주’의 이름을 듣고 초점을 잃었다.“뭐라고요?”“...”육하경은 입술을 깨물었다. 두 사람은 잠시 침묵하다가 육하경이 말을 이었다.“향 주머니로 화를 면한 것은 우연이에요. 정말 저를 도왔던 것은 세인트존스 호텔의 책임자가 되게 만들었던 것이죠.”육하경은 입꼬리를 올려 조롱하는 듯한 웃음을 지었다.“어르신들을 3일이나 괴롭혀서야 알아냈어요. LY에서 저를 후임자로 추천했다고 하더라고요.”육하경의 학업은 각 부분에서 다 뛰어났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고 육씨 가문에서 두각을 나타내려면 실력이 좋을 뿐만 아니라 빽빽이 필요했다.육민재를 예로 들어보면 능력은 가장 뛰어나지 않을지는 몰라도 맏아들의 장손 혈통을 이어받아 어렸을 때부터 최고로 좋은 자원과 경험을 쌓을 기회들을 누리고 있었다. 이변이 없다면 그는 육씨 가문의 후계자일 것이다.다른 사람들이 두각을 나타내려면 모든 게 알맞게 부합되어야 한다.육하경은 모든 것을 통찰하고 있었고 육씨 가문의 산업에 기대를 두지 않아 오랜 시간 밖에서 떠돌며 공부를 했고 자신의 사업을 하고 싶었다.세인트존스 호텔의 관리 권한이 그의 손에 들어갔을 때, 그는 기쁘기도 놀랍기도 했다.놀란 마음으로 육하경은 전임자를 찾아갔고 온갖 방법을 다 써서야 LY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육씨 가문 뿐만 아니라 많은 명문가가 LY와 관계가 있었고 그들은 인재를 추천하면서 한편으로는 그들을 도와주었기에 자연스레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었다. 육하경은 그때 손에 향 주머니를 들고 있었는데 전임자가 이상해하며 무늬를 찍어서 물어보았는데 그것은 ‘추천서’라고 하는 것이다. “무슨 얘기를 하는지 모르겠어요. 그리고 하경 씨가 말하는 그 이야기에도 관심 없습니다.”도아린은 책을 육하경에게 돌려주고는 차 문을 열었다.“도아린 씨!”육하경은 그녀를 잡고 싶었지만, 손을 허공에 멈추고 결국 그녀에게 닿지 않았다.육하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