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대호는 입술을 살짝 깨물며 억지로 웃어 보였다.“누가 차를 긁어서 그 사람을 찾을 수 있을지 보려고 왔어요. 아린 씨는요?”“나는 A18 상가의 CCTV를 보러 왔어요. 누가 우리 아버지 양아들의 손가락을 부러뜨렸거든요.”도아린은 말하는 내내 성대호의 얼굴을 주시했고 그는 눈을 깜빡이며 시선을 마주치지 않았다.잠시 후, 성대호는 경호 팀장에게 담배 한 개비를 던지며 물었다.“A18의 CCTV는 연결됐어?”이렇게 명백하게 힌트를 주자, 경호 팀장은 성대호의 뜻을 알아차리고 대답했다.“그 상가는 아직 절차가 끝나지 않아서, CCTV가 연결되지 않았습니다.”도아린은 말없이 그들이 짜고 치는 것을 지켜보았다.성대호는 몇 마디 더 물어본 뒤, 도아린에게 설명했다.“아직 절차가 끝나지 않은 상가는 CCTV 영상이 본사에 연결되지 않아요. 그래도 근처 가게 CCTV를 확인해 볼 수 있도록 도와줄게요. 근처 상가들은 자체 CCTV가 있어서 뭔가 찍혔을지도 몰라요.”성대호는 도아린과 함께 근처 상가 CCTV를 확인하러 가려는 듯했지만, 도아린은 여전히 앉은 자리에서 미동도 하지 않았다.“갑시다. CCTV를 확인하고 싶다면서요?”도아린은 눈에 웃음기 없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그 미소에 성대호의 등골이 서늘해졌다.그녀는 배건후의 기세를 흉내 내면서 가냘픈 몸에서 오싹한 압박감을 내뿜었다.성대호의 미소가 굳어질 때쯤,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늦어서 미안해요.”육하경은 성대호를 보고 살짝 멈칫하더니 의아하게 도아린을 바라봤다.도아린은 웃으며 일어나서 말했다.“잘 왔어요. 성 팀장님 차가 긁혀서 CCTV를 확인하려 한다고 해요. 도와줄 수 있죠?”그 말을 듣고 성대호의 표정이 굳었고 손에 들고 있던 담배가 떨어질 뻔했다.그는 어색하게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중요한 일이 아닌데 뭐. 내가 알아서 할 수 있어. 너는 뭐 하러 온 거야?”“난 아린 씨랑 함께 CCTV를 보러 왔지.” 육하경이 말을 마치자, 성대호는 그를 문밖으로 데리고 나
성대호는 옆에 있는 사람에게 눈짓했고 그 사람은 차를 준비하는 척하며 CCTV의 전원을 끊었다.“어? 이게 무슨 일이지?” 경호 팀장은 당황하여 말했다. “전기기사 불러서 누가 전기 차단기를 잘못 건드린 건 아닌지 확인해봐.”직원은 잠시 멈칫하다가 상황을 알아차렸다.CCTV 백업 컴퓨터는 옆방에 있었지만, 그는 상사가 자신에게 정확히 무엇을 하라고 하는지 알지 못했다.CCTV 실에서 도아린은 성대호가 메시지를 보내는 것을 보고 사태가 단순하지 않다고 짐작했다.육하경은 그녀의 눈빛을 주시하고 있다가 정수기 뒤쪽 전원이 꺼진 것을 재빨리 발견했다.그는 조용히 다가가 전원을 다시 연결했다.옆방의 CCTV 화면도 이곳에서 확인할 수 있었고 화면이 켜지는 순간 그 직원은 컴퓨터 앞에서 일어났다.성대호는 화면이 너무 많아 그 직원의 행동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것에 다행이라 생각하며 몰래 한숨을 내쉬었다.그러나 세심한 육하경은 그의 긴장과 안도감을 놓치지 않았다.“가요. 옆 가게 CCTV도 한번 봅시다.” 도아린은 일어나며 나갈 채비를 했다. 이제 더는 이곳에 있을 필요가 없었다.육하경과 성대호도 함께 따라 나왔다.성대호는 육하경에게 담배를 건네며 말했다.“CCTV 조사는 나에게 맡겨. 꼭 찾아줄게.”도아린은 고개를 돌려 그를 보며 말했다.“성 팀장은 자기 차 CCTV는 조사 안 하나요?”“그냥 긁힌 거라 괜찮아요.” 성대호는 복잡한 표정으로 도아린 옆에 다가섰다.“아린 씨 아버지는 양아들과 함께 길에서 아린 씨에게 치욕을 주었는데 아린 씨는 그 사람을 위해 CCTV를 확인해 주는 거예요? 나쁜 사람은 언젠가 벌을 받게 되어 있어요. 그 사람은 당해도 싸요.”“저는 그의 생사에 관심이 없어요. 저는 그저 누군가 뒤에서 음모 꾸미는 게 싫은 것뿐이에요.”도아린은 성대호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성대호는 바로 시선을 피하며 육하경을 보았다.“누가 감히 그래요? 여긴 엠파이어 빌딩인데 건후가 그렇게 두지 않을 거예요.”육하경은 도아
방우진은 한쪽 다리를 절뚝이며 A18 가게에서 나왔다. 그는 당황한 듯 주위를 둘러보더니 오토바이에 올라탔고 방향을 돌릴 때 차량 번호판이 드러났다.사흘 뒤 밤, 방우진은 경찰차 소리를 듣자마자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는 창문을 통해 탈출해 오토바이에 올라타고 도망쳤지만, 골목을 빠져나오자마자 체포당했다.같은 방식으로 창문을 통해 도망치던 하춘녀도 반대 방향으로 도망치다 방우진이 경찰차에 태워지는 것을 보고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도아린이 경찰서에 도착했을 때, 육하경과 배건후는 취조실에서 나오고 있었다.며칠 동안 배건후는 집에 돌아오지 않았고 도아린은 큰 계약을 따내며 돈을 버는 일과 도지현의 치료를 챙기느라 그를 완전히 잊고 있었다. 오랜만에 배건후의 모습을 보았는데 그는 많이 지쳐 보였다.“자백했어요?” 도아린은 육하경을 바라보며 물었다.배건후의 눈빛이 차갑게 식었고 얇은 입술이 굳어졌다.도아린의 태도는 자신을 무시하는 듯한 태도였다.육하경은 배건후를 잠시 바라보다가 망설이며 말했다.“아무것도 말하지 않으려 해요.”도아린은 배건후를 바라보았고 희망이 담긴 눈빛이 차갑게 식어갔다.“건후 씨, 상가는 당신이 손보미에게 줬는데, 왜 방우진이 임대료를 받고 있는지 설명해 줄래요?”배건후의 냉랭한 시선이 더욱 어두워졌고 주머니 속에서 손은 단단히 주먹을 쥐었다.그는 방우진이 잡힌 이유가 그 오토바이 번호판 덕분이라는 것, 그리고 그 번호판을 찾아낸 사람이 도아린과 육하경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배건후는 도아린의 팔을 잡고 반쯤 끌고 가듯 그녀를 휴게실로 데리고 갔다.“네가 육하경과 함께 CCTV를 조사했으면, 나한테 먼저 설명을 해야 했던 거 아닌가?”남자의 시선은 칼처럼 날카로웠고 도아린은 손목이 부러질 것 같은 고통을 느꼈다.아팠지만 그녀는 웃음을 지었다.“당신은 내 말을 절대 믿지 않으면서 무슨 설명을 바라는 거예요? 성대호 씨는 당신 사람이잖아요. 내가 CCTV를 조사하러 갔다고 말하지 않았다면, 당신에게 문제가 있는
도아린은 밀쳐내려 했지만, 소용이 없자 그의 입술을 세게 깨물었다.“악! 도아린, 너 개야?”도아린은 손등으로 입을 닦으며 말했다.“여기 경찰서예요!”그녀는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갔고 복도에서 육하경을 보자 다시 입을 닦았다.뒤따라 나온 배건후는 도아린의 허리를 감싸 안고 그대로 그녀를 품에 가둬 버렸다.그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육하경이 들을 만큼 충분히 컸다.“집에 가서 얘기하자.”“...”분명 그가 잘못했는데 마치 그녀가 쩔쩔매는 것처럼 상황이 흘러갔다.육하경은 잠시 당황한 표정을 지었지만, 금세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방금 화장실에서 나왔는데 대호와 지유가 왔다는 얘기를 들었어.”도아린은 흥미로운 구경거리를 예상하며 눈썹을 치켜들었다.잠시 후, 성대호가 배지유를 부축하고는 나오면서 다정하게 달리고 있었다.배지유는 입을 막고 울다가 육하경을 보자마자 성대호의 품에서 재빨리 벗어났다.성대호는 잠시 멍해 있다가 이내 깨닫고 눈에 자조적인 기색이 스쳤다.“왜 온 거야.” 배건후는 차갑게 물었다.“저는…” 배지유는 도아린을 한 번 바라보고는 마음속 분노를 억누르려 애썼다.모두 도아린 탓이다. 그녀가 아니었다면 방우진이 잡히지 않았을 것이다.“왜 아린이를 쳐다봐.” 배건후는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배지유는 그 말에 깜짝 놀라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오빠, 집에 가서 얘기하면 안 돼요?”성대호는 배지유가 꾸짖음을 당할까 봐 함께 가고 싶었지만, 배지유는 육하경 앞에서 그와의 관계를 끊으려 애쓰고 있었다.결국, 성대호는 육하경의 차를 타고 먼저 떠날 수밖에 없었다.배지유는 차에 오르면서 도아린에게 말했다.“새언니, 나 오빠랑 단둘이 할 얘기가 있어.”“아린이도 우리 집 식구고 네 새언니야.” 배건후는 도아린을 안고 뒷자리에 탔고 배지유는 못마땅했지만 할 수 없이 천천히 조수석에 앉았다.그들은 주현정의 기분을 건드리지 않기 위해 에이트 맨션으로 향했다.배지유는 사실대로 다 말하지 않고 일부만 말했다.그녀는
도아린은 밥을 짓고 고기 요리 하나와 채소 요리 하나를 준비했다.막 앞치마를 벗으려던 참에 배건후와 배지유가 얘기를 마치고 식사실로 들어왔다.식탁 위에 놓인 청경채 찜과 소고기볶음을 보자 배지유는 못마땅한 듯 입을 삐죽 내밀었다. 오빠는 재산이 수십조인데 도아린은 이렇게 초라한 음식이나 만들다니, 돈을 엄청 많이 빼돌린 게 분명했다.“오빠, 난 엄마랑 같이 먹고 오후에 다시 올게요.”배지유는 가방을 들고 가려고 했다.“다시 올 것 없어. 당분간 특별한 일 없으면 외출하지 마.”배건후는 한마디 당부하고는 의자를 끌어당겨 앉았다.도아린이 혼자서 밥을 퍼서 먹기 시작하자 배건후는 눈살을 찌푸리며 그녀를 쳐다봤다.“내 밥은?”“다이어트 식단으로 배달시켰어요. 곧 도착할 거예요.”“...나 방금 비행기에서 내렸는데 배달음식을 먹으라고?”배건후의 목소리가 싸늘해졌다.도아린은 젓가락으로 식탁을 가리켰다.“내가 만든 밥을 안 먹을 거라면서요? 그럼 나더러 어쩌라는 거죠?”“아린아, 적당히 해. 하루라도...”“하루라도 이혼하지 않으면 난 배씨 가문 사모님이겠죠.”도아린은 그의 말을 가로채며 비웃었다.“어느 부잣집 사모님이 삼시 세끼를 직접 차려요? 나중에 에이트 맨션에 정착하면 최고급 요리사를 고용해서 식사를 책임지게 할게요. 괜히 배 대표가 아내를 홀대한다는 소문이 돌면 안 되잖아요.”배건후는 원래 위가 아팠는데 지금은 화가 나서 머리까지 아파 오기 시작했다.도아린은 더 이상 그에게 관심을 주거나 비위를 맞추지 않았고 말하는 태도는 담담했으며 눈빛에는 안쓰러워하는 기색이라곤 전혀 없었다.그는 손가락을 움츠렸다 펴기를 반복하더니 젓가락을 들어 음식을 한두 입 맛보았다...밥을 반 공기쯤 비운 뒤에야 배건후는 젓가락을 내려놓았다.오늘 반찬은 기름기가 많아 다소 느끼했지만, 경련을 일으키던 위는 한결 편안해졌다.몸이 편안해지자 말투 또한 부드러워졌다.“치료비와 영양제 비용 외에 도유준에게 보상금으로 2억을 더 줄게.”도아린은 씹던 동
걱정하지 마세요. 좋은 며느리로 만들어 드릴게요.”“...”육하경의 온화하고 준수한 얼굴은 굳어졌고 마음속으로 도아린에게 미안한 감정이 일었다.그날 저녁, 형제들은 클럽에서 술을 마셨다.성대호는 담배를 돌렸지만, 아무도 피울 생각이 없어 보이자 스스로 담배에 불을 붙였다.“예전 고객과 연락이 닿았는데, 그분도 스카이 빌딩 사람들이 어떻게 자신을 찾았는지 궁금해하더라고.”자신의 결백을 밝히기 위해 성대호는 방우진의 의식주를 해결해 준 후 직접 찾아갔고, 마침내 단서를 찾아냈다. “그래서 뭐래?”육하경이 어색한 분위기를 깨고 물었다.“스카이 빌딩 측에서는 그들 대표 여자 친구가 정보를 제공했다고 하더라.”성대호는 이 단서가 자신의 결백을 증명해 줄 거라고 확신했다.자료를 빼낼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의 비서 아니면 배건후의 비서였기 때문이다.배건후는 자리에 앉자마자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명문가 자제들 사이에서 늘 술자리가 많았지만, 그의 주량은 좋지 않았다.와인 한 병이면 취할 정도였다.테이블 위의 와인이 반쯤 줄어들자, 육하경은 와인 병을 자기 앞으로 가져가고 배건후에게 차를 따라주었다.약간 취기가 오른 배건후는 소파에 기대앉아 물었다.“증거 있어?”“두 사람은 정표로 나눈 루비 목걸이가 있대”배건후는 눈을 뜨지 않았지만, 이마에 힘줄이 불끈 솟았고 팔걸이에 올려놓은 손은 주먹을 꽉 쥐었다.성대호는 잠시 침묵하다가 배건후에게 주동적으로 해명했다.“그날 아린 씨가 CCTV 확인하러 왔을 때, 난 급한 일이 생겨서 함께 조사하지 못했고 나중에도 너에게 말하는 걸 깜빡했어. 지유는 아직 어려서 장난이 지나쳤던 거야. 애가 이번엔 진짜 반성했어.”성대호가 육하경의 발을 차자 육하경은 맞장구치며 말했다.“내일 나도 고소 취하할게.”술자리가 이어지는 가운데 배건후는 피로가 몰려와 우정윤에게 전화를 걸어 데리러 오라고 했지만, 뜻밖에도 도아린의 목소리가 들렸다.주현정의 옷 치수를 재고 있던 도아린은 전화를 받아 귀에 댄 채 말했다.
배건후는 약간 취해서 테라스로 나가 술을 깨고 있었다.이전 사업 파트너 두 명이 마침 옆 테라스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가 그를 보고 낮은 담을 사이에 두고 말을 걸었다.“배 대표님, 엠파이어 빌딩의 상인들을 스카이 빌딩에서 많이 빼앗아 갔다면서요. 아무리 라윤주의 행운이 있다고 해도 관리가 따라가지 못하면 엠파이어를 이길 수 없죠.”“라윤주의 행운이라는 건 정말 신기하더라고요. 손보미가 라윤주와 한 번 만난 적이 있다고 밝히더니 그 후로 출연 제의가 끊이지 않잖아요. 차라리 그 운을 빌려 엠파이어의 광고 모델로 쓰는 건 어때요?”“그건 자네가 잘 몰라서 하는 말이야. 손보미가 빌린 건 라윤주의 행운이 아니라 우리 배 대표님의 총애지.”둘은 서로 묘한 눈빛을 주고받았다. 뭔가 내막이 있다는 걸 아는 눈치였다.배건후는 담배에 불을 붙이고 클럽 앞 도로를 응시했다. 10시가 넘은 연성은 막 밤 문화가 시작되는 시간이었다.대도시의 번화함 속에서 젊은이들의 열정은 네온사인이 켜지는 순간 쾌락을 즐기거나 혹은 타락하기 시작했다.그는 이 두 사람과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지만, 눈치 없는 그들은 계속해서 말을 걸어왔다.“배 대표님과 손보미 씨가 빨리 결혼 날짜 잡으셔야 딴 마음먹은 것들이 헛짓거리 못 할 건데.”“누가 감히 배 대표님을 괴롭혀요? 그 여자는 간이 배 밖으로 나왔군요! 배 대표님께서 손을 더럽히실 필요 없이 제가 쓰레기를 치워 드릴게요.”“어이쿠,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왔네요.”두 사람은 테라스 입구에 서 있는 도아린을 보고 비웃었다.배건후는 담배꽁초를 끄고 성큼성큼 도아린 앞으로 걸어가 그녀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갔다.“대표님이 저를 부른 건 일부러 망신 주려는 건가요?”“난 아무 말도 안 했어.”배건후는 불쾌해했다.그는 정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도아린의 신분을 인정하지도, 그들의 비방을 부인하지도 않았다.침묵은 귀가 먹먹할 정도로 강렬했다.엘리베이터가 도착하고 도아린이 발을 들여놓자마자 배건후는 그녀를 벽으로
그의 거친 손길이 그녀의 등을 타고 올라와 능숙하게 후크를 풀고 그녀의 몸을 돌아 가슴을 덮었다.“아!”도아린의 신음이 터져 나왔다.“건후 씨, 만지지 말아요!”“그럼 누구한테 만져달라고 할 건데?”남자는 그녀의 귓불을 깨물며 뜨거운 숨결을 불어넣었다.“민재한테? 민재가 외국에 있을 땐 그렇게 큰 억울함도 참아내더니 이제 돌아오니까 네 인내심도 바닥났나 보지? 민재가 널 안 받아주니까 하경이한테 눈을 돌렸어? 아린아, 넌 꼭 그렇게 비참하게 육씨 가문에 시집가야겠니?”도아린의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서럽고 억울했다.육민재가 외국에 있을 땐 입도 뻥긋 안 하더니 이제 돌아오니 싸울 때마다 그를 들먹이니 말이다.도대체 누가 육민재의 귀국에 신경 쓰는 건지 모르겠다.징징.배건후의 바지 주머니 속 휴대폰이 진동하자, 도아린은 재빨리 운전석으로 도망치듯 돌아가 차를 몰고 떠났다.그가 아무리 나쁜 사람이라도 운전 중에는 무슨 짓을 하지는 않을 것이니까.“왔어.”배건후는 전화를 받으며 도아린을 흘끗 보곤 말했다. “너희도 적당히 마셔. 난 먼저 간다.”전화를 끊자, 배건후는 예상대로 더 이상의 행동은 하지 않고 의자에 기대 눈을 감았다.맨션에 도착하자, 배건후는 먼저 차에서 내려 집으로 들어갔다.침구를 세탁하고 나가려던 안미자는 도아린에게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사모님, 대표님께서 위층으로 올라가셨는데, 표정이 안 좋아 보이시던데요.”도아린은 신발을 갈아 신으며 무심하게 대꾸했다.“주기적으로 신경이 예민해지는 것이니 괜찮아요.”안미자는 감히 대꾸하지 못하고 조심스럽게 문을 닫고 나갔다.배건후가 안방에 없다는 사실에 도아린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안미자에게 새 침구 세트를 사 오라고 해야겠다고 생각했다.만약 배건후가 정말 여기서 계속 살 거라면, 매일 서재에서 잘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러니 그에게 손님방을 내주면 안방을 두고 다툴 필요도 없을 것이다.도아린은 잠옷으로 갈아입다가 옷에 밴 담배와 술 냄새를 맡고 욕실로 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