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뜻도 아니야. 그저 아현 선생님이 워낙 조용하고 겸손을 유지하는 분이라 내가 여러 사람을 통해 어렵게 그분을 모셔와서 ‘별들이 떠받들이는 달'을 수선하게 했는데 도아린은 이 업계에 들어온 지 고작 보름 만에 그분의 보조가 되고, 그분의 비법까지 배울 수 있다는 게 조금 의아해서.”...임진희가 예약한 식당은 유명한 레스토랑으로 한 번에 한 테이블만 받는 곳이었다.“카톡 추가해도 될까?” 임진희는 함예진과 도아린을 번갈아 보며 물었다.도아린은 함예진을 바라봤고 함예진은 요리를 집어 먹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도아린은 곧바로 휴대폰을 꺼내 들며 말했다.“선생님, 번호를 주시면 제가 추가하겠습니다.”임진희는 번호를 누르며 말했다.“선생님이라 부르지 말고 언니라고 해.”“얘는 나를 이모라고 불러.”함예진이 장난스럽게 말했다.“나이로 따지면 다르게 불러야지. 내가 언니보다 몇 살 어리잖아.” 임진희는 함예진의 목을 끌어안았다.소유정이 간절한 표정으로 물었다.“선생님, 저도 추가할 수 있을까요... 곤란하게 하지 않겠다고 약속할게요!”“그래, 추가하렴. 하지만 말한 대로 지켜야 해.”소유정은 자리에서 일어나 번호를 받으며 감격했다. 드디어 자신이 존경하는 사람의 번호를 받게 된 것이다.임진희는 먼저 소유정의 실력을 칭찬한 뒤 다음번 대회에서는 더 난이도 있는 곡을 선택하기를 바란다고 했다.소유정은 추천해 줄 곡이 있는지 물어보려 했지만, 임진희는 대화 화제를 돌려 도아린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오늘은 정말 네 덕에 살았어.”그녀는 말을 마치고 함예진을 힐끗 보며 덧붙였다.“내가 멘토 의자에 앉자마자 메시지가 와서 보는 순간 정말 정신이 아찔했어.”“표정은 꽤 행복해 보이던데?”“언니 연기만큼은 아니지만 나도 조금은 숨길 수 있어.” 임진희는 도아린을 보며 물었다.“그 사람이 라이브를 볼 거라고 어떻게 알았어? 혹시 그 사람과 친분이 있는 거야?”함예진은 테이블 아래에서 임진희의 다리를 가볍게 건드렸고 임진희는 급히
남자의 차가운 눈빛을 마주하니 도아린은 잠이 완전히 달아났다.“미안해요.” 그녀는 차 문 쪽으로 몸을 옮겼다.배건후는 눈을 가늘게 뜨고 그녀를 바라봤다. 관계를 정리하려는 행동이 문자 내용보다 더 그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서대은이랑 안 친해?”“그렇게.. 친하지 않아요.”“관계가 어느 정도길래 같이 어묵을 먹을 수 있는 건데?”“...” 도아린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봤다. 반짝이는 눈동자에는 놀라움이 가득했다. “당신 정말 날 미행했어요?”배건후는 손가락을 살짝 움츠렸다. 예전에는 자신이 도아린에게 미행당했다고 의심했었는데 지금은 도아린에게 의심을 받고 있었다. 인과응보라더니, 도망칠 수 없는 굴레였다.도아린은 비웃음을 터뜨렸다. “당신이 나보고 서대은한테 가서 바다 진주를 사 오라면서요. 그럼 당연히 친해져야죠. 안 그러면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드레스를 고칠 방법이 없잖아요.”“...”배건후는 애꿎은 바지만 매만졌다. 핑계가 너무 어색했다. 누가 어묵을 먹으며 친해지는 거냐 말이다. 그것도 편의점에서.성대호가 그에게 보낸 사진을 여러 번 확대해서 봤었다. 오늘 서대은의 태도까지 봐서는 둘의 관계가 어묵 한 접시로 쌓을 수 있는 단순한 우정이 절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배건후는 속이 울렁거리며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그래서 네가 나한테 가져온 어묵은 너희가 먹고 남은 거야?”도아린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그건 아니지.”배건후는 한숨을 내쉬었다.도아린이 말을 이었다. “당신 어묵을 안 먹어봤어요? 그거 따로 나눠진 국물 통에 들어 있는 거잖아요. 먹고 싶은 거 골라서 먹는 거라고요. 우리가 다 먹은 후에 몇 꼬치를 골라서 가져온 거예요.”‘그게 먹고 남은 걸 가져온 거나 마찬가지 아닌가?’배건후는 입술을 굳게 다물고 눈빛은 더욱 어두워졌다.차는 터널로 들어섰고 양쪽에서 밝게 비추는 조명이 차 안으로 들어와 남자의 냉랭한 얼굴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냈다.도아린은 그의 눈빛에 베일 것만 같았다. 서대은
하춘녀는 참지 못하고 말했다. “그 여자는 정말 독해. 그렇게 수모를 당했으면서도 경찰에 신고하다니. 네 아빠는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고 연락도 안 돼. 우선 나한테 몸을 숨길만 한 장소 하나 마련해줘.”“그 여자가 수모를 당했다고요?”“아마 그럴 거야. 내가 들어갔을 때는 그런 상태였으니까.”손보미는 차가운 미소를 띠며 지갑에서 두툼한 돈뭉치를 꺼내 하춘녀에게 건넸다. “위치를 보내줄 테니, 그곳에 며칠 머물러 있어요. 일이 잠잠해지면 다시 나와요.”하춘녀는 돈을 주머니에 넣고 문 쪽으로 향하다가 멈춰 섰다. “엄마는 갈아입을 옷이 없어.”손보미는 입지 않는 옷 몇 벌을 찾아 그녀에게 건넸고 하춘녀가 떠난 후 그녀는 온라인에서 도아린의 납치 사건을 검색해 보았지만 어떤 소식도 찾을 수 없었다.하춘녀는 받은 주소를 따라 싸구려 여관으로 찾아갔다. 요금은 저렴했지만, 환경이 무척 지저분했다. 근처에 더 나은 여관이 있나 둘러보려는데 골목에서 오토바이 소리가 들려왔다.그녀가 반응하기도 전에 손에 들고 있던 가방을 갑자기 빼앗겼다.“거기 서! 당장 물건을 돌려줘!”하춘녀는 다급히 쫓아서 뛰어갔지만, 오토바이를 따라잡을 수 없었고 숨을 헐떡이며 그 오토바이가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골목을 돌자 오토바이가 멈췄다. 방우진은 헬멧을 백미러에 걸어두고 가방 안에서 이십몇만 원을 찾아냈다. 그 여자가 입고 있던 옷을 보고 잘 사는 줄 알았는데 사실은 형편없는 신세였다.방우진의 마음엔 분노가 가득했다. 경찰이 그를 찾고 있어서 큰 병원에 갈 수도 없었고 성대호가 준 약은 잠시 고통만 덜어줄 뿐 전혀 치료되지 않았다. 성대호의 통제에서 벗어나려고 반년 월세를 챙기고 도망치려 했지만, 세입자가 돈을 주지 않는다면서 관리부에게 전화를 걸려고 했다.방우진은 신분이 드러날까 봐 세입자의 손가락을 부러뜨리고 그 틈에 도망쳤다.모든 게 배지유 탓이었다. 그녀는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한다.깊이 잠들어 있던 배지유는 전화 소리에 깼다.
복도에서 싸우는 소리가 들리자 잠에서 깬 손님들은 욕설이 퍼부었다.주인장은 소식을 듣고 급히 달려왔지만, 싸우는 두 사람을 떼어놓지 못하고 결국 경찰에 신고하기로 했다.경찰에 신고한다는 소리에 하춘녀는 즉시 당황하며 말했다. “돈 돌려줘, 그럼 더는 소란 떨지 않을게.”방우진은 그녀도 경찰에 신고하는 걸 두려워하는 걸 보고 자신감이 더 생겨 말했다. “내가 당신 돈을 빼앗았다고 증명할 수 있는 증거라도 있어? 이건 협박이야, 주인장 신고해.”“안 돼, 안 돼!” 하춘녀는 방우진을 노려보며 말했다. “그렇게 당당하면 도망가지 마. 내 딸을 불러서 네게 책임을 물게 할 거야!”“그 누가 온다고 해도 나는 맹세코 당신 물건을 안 가져갔어.”방우진은 침을 뱉고는 다리를 절며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하춘녀는 멍하니 서 있었다. 두 사람은 바로 옆방에 묵고 있었다....마이바흐가 에이트 맨션 앞에 멈췄다.도아린은 들어가서 신발을 갈아신었지만, 배건후는 차에서 내리지 않았다. 아마도 손보미에게 갈 예정인듯싶었다.그녀는 위층으로 올라가 옷을 갈아입고 물을 마시러 내려왔는데 배건후가 소파에 기대어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표정이 고통스러워 보였다.“위 아파.”“...”도아린은 못 들은 척 그를 지나쳐갔다.배건후는 미간을 찡그린 채 그녀를 쳐다보며 말했다.“도아린, 이혼하지 않은 이상 너는 내 아내야. 남편이 아프다는데 신경도 안 써? 4천억은 포기할 거야?”도아린은 차갑게 말했다. “내가 뭘 해줄까요?”“아직 밥을 안 먹었어.”“그럼 내가 해주는 대로 먹어요.”도아린은 부엌으로 갔고 배건후는 미간을 찡그리며 핸드폰을 꺼냈다.유럽 프로젝트가 무산되었고 에파이어 2기의 상가들은 해남의 스카이 빌딩으로 가려 하고 도아린은 계속 그에게 이혼을 강요하고... 최근 걱정거리가 하나둘씩 쌓여 그를 심란하게 했다.30분쯤 지나 따뜻하고 향긋한 쌀죽 한 그릇과 아삭한 반찬들이 배건후 앞에 놓였다.아주 간편하게 차린 느낌이었고 아주 무심했
도아린은 그가 어떻게 가게의 자리를 얻게 되었는지 궁금해 도정국을 따라갔다.병실 안에서, 도유준은 이어폰을 끼고 노래를 흥얼거렸다. 문 앞의 의자가 밀리는 소리가 들려서야 그는 급히 이어폰을 뺐다.“아빠, 누나.”도아린은 바로 도정국이 끌어놓은 의자에 앉았다.도정국은 표정이 어두워졌지만, 도아린에게 부탁할 일이 있어 화를 내지 않고, 다른 의자를 끌어와 그녀 옆에 앉았다.“말해 봐, 도대체 무슨 일이야?”도아린은 가방에서 핸드크림을 꺼내 손등에 짜서 바르고는 다시 가방에 넣으면서 몰래 핸드폰 녹음 버튼을 눌렀다.도유준은 아빠가 자신에게 눈치를 주는 걸 본 후, 일부러 이불 위에 붕대를 감은 손을 올려놓았다.“누나, 제가 친구한테 돈을 빌려서 새 가게의 장비를 샀어. 물건을 받는 날, 가게에 젊은 애가 한 명 왔는데 글쎄 집세를 받으러 왔다고 하더라고. 우리 도울 디저트에서 언제 집세를 낸 적 있었어? 내가 매니저를 부르자고 했는데 그 어린놈이 아무 말 없이 내 손을 부러뜨린 거야. 엠파이어 빌딩은 매형 거잖아. 그놈이 나를 괴롭히는 건 매형을 무시하는 거잖아!”도아린은 핸드크림을 문지르며 담담하게 말했다. “새 가게라니, 어디서 난 거야?”“우리를 속이는 게 재밌어?”도정국은 화가 나서 일어섰다. “유준이 재산을 포기해야만 준다는 거야? 도유준은 내가 인정한 아들이고 내가 인정을 했으면 책임을 질 거야!”도아린은 무심하게 도정국을 한번 쳐다봤다.“그럼 도유준한테 책임을 지겠다면서 왜 나한테 이러는 거죠?”도정국은 말문이 막혔고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 그는 도아린을 노려보다가 서랍에서 서류를 꺼냈다.사실 그들은 이미 준비를 해두었지만, 일부러 주지 않고 미루고 있었다.“도유준은 재산 상속을 포기하고 나를 보살필 의무까지 다하고 있어. 너는 얘랑 비교가 되기나 해?”도정국은 서류를 도아린의 품에 던졌다.도아린은 핸드크림이 모두 흡수된 후 서류를 집어 들고 천천히 살펴본 뒤 확인이 되자 말했다.“그럼 도장을 찍어주세요. 제가
“도아린, 네가 만족할 만큼 해줬잖아. 또 이런 식으로 나오는 거야?”도정국은 화가 나서 눈을 부릅뜨며 도아린의 휴대폰을 가리켰다. 목에는 핏줄이 선명하게 도드라졌다.“시장부에서 나한테 직접 전화했어. 그들이 허락하지 않았다면 내가 열쇠를 받아서 인테리어를 할 수 있었겠어? 지금 당장 그들에게 전화해, 내 앞에서!”‘전화라면 얼마든지 할 수 있지.’도아린은 시장관리 부문에 전화를 걸고 스피커폰을 눌렀다.“성 팀장님 사무실로 연결 부탁드립니다.”“성 팀장님은 휴가 중입니다.”비서의 태도는 다소 차가웠다.도아린은 문득 육하경이 성대호가 정직당했다고 했던 말을 떠올렸다. 그녀는 도정국을 바라보며 전화에 대고 말했다.“상가 관련해서 확인 부탁드립니다. 며칠 전에 절차를 밟으라고 연락을 받았는데 바빠서 못 갔거든요.”“성함이 어떻게 되시죠?”“도아린입니다.”상대방은 잠시 침묵하더니 의자가 움직이고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잠시 후, 비서는 전화를 다시 받으며 말했다.“죄송하지만 이쪽에 도아린 씨의 명의로 등록된 상가 기록은 없습니다.”도정국은 도아린의 휴대폰을 뺏으려 했지만, 그녀가 피하자 할 수 없이 휴대폰에 가까이 대고 말했다.“다시 한번 확인해 주세요. 며칠 전에 저에게 전화가 와서 절차가 진행 중이니 우선 사용해도 된다고 했어요.” 도정국은 상가 번호까지 불러줬다. 곧 비서는 해당 상가의 소유주가 손 씨라는 정보를 전했다.도정국은 포기하지 않고 재확인해 달라고 고집을 부렸지만, 도아린은 통화를 끊어버렸다.“이게 어떻게 된 거야? 이럴 리가 없어!”도정국은 얼굴이 창백해지고 입술은 하얗게 질리며 의자에 주저앉았다. 큰소리까지 쳤고 개업 날짜도 정해둔 상황에서 상가가 없다고 하니, 이제 친구와 친척들 앞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도유준도 당황해하며 말했다.“누나, 아무리 누나가 나를 싫어한다고 해도 아빠한테 이런 장난을 치면 안 되지. 장비랑 원재료를 이미 다 주문했어. 이제 어떻게 하란 말이야?”“그것들을
순간 도아린은 그가 자신을 구하러 온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도 한순간이었다.그녀는 배건후의 눈빛 속 깊은 의미를 이해하고 웃으며 그의 팔짱을 꼈다.“오래 기다렸죠? 아버지도 동생을 보러 오셔서 잠깐 이야기 나눴어요.”도아린은 배건후를 데리고 나가려 했다.그 상가는 분명 손보미의 명의였고 만약 시장부에서 도정국에게 열쇠를 주지 않았다면 그가 사용할 수 없었을 것이다. 분명 뭔가 수상한 점이 있었다.배건후의 마음속에서 자신보다 손보미가 더 중요한 존재라는 사실을 도정국이 알게 된다면, 그들에게 위협이 될 수 있는 수단이 사라질 것이다.도아린은 나가고 싶었지만, 도정국이 그녀를 가로막았다.“건후야, 잘 왔어...”도정국은 몇 걸음 앞으로 나서며 웃었는데 마치 교활한 여우 같았다.“엠파이어의 상가에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자네가 아린에게 준 상가가 왜 다른 사람 명의로 되어 있지?”침대 위의 도유준은 귀를 쫑긋 세우고 듣고 있었다.도아린은 힘껏 배건후의 팔을 꽉 잡았다.배건후는 지긋이 도아린을 한 번 바라보고는 도정국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내가 하는 일을 당신한테 보고해야 하는 거예요?”도정국의 가식적인 웃음은 순간 굳어졌고 두 손은 불안하게 주먹을 쥐었다.배건후가 3년 만에 처음으로 그에게 강한 태도를 보인 것이다.“우리는 한 가족 아니냐? 서로 잘 이야기하고 이해해야 오해가 없지 않겠나.”“내 아내에게 함부로 소리치는 사람은 가족이 될 자격이 없어요.”도아린의 마음이 찌릿했다.그가 얼마나 오래 있었는지, 얼마나 들었는지는 모르지만, 이 순간의 그의 보호가 지금까지 쌓였던 실망을 잠재웠다.만약 배건후라는 든든한 방패가 없었다면, 도정국은 벌써 도지현을 포기했을 것이고 그녀는 이렇게 편하게 살지 못했을 것이다.도아린은 고개를 숙여 눈에 맺힌 서러움을 감췄다.“대표님, 백 교수님께서 오셨습니다.” 옆에서 우정윤이 조심스레 알렸다. 배건후는 담담하게 말했다.“시장부에 통보해. 도울 디저트에 제공되던 모든 혜택은 즉
이때 누군가 지나가면서 도아린은 눈가에 맺힌 눈물을 들키지 않으려 옆으로 비켜서서 배건후에게 등을 돌렸다.배건후는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필요할 땐 달콤한 말을 내뱉으며 그를 방패로 삼더니, 이제 필요가 없어지니 쳐다보지도 않는다는 것이었다.그녀가 자신의 동기가 불순하다고 확신하니, 그 뜻대로 해 주기로 했다.“보미가 사과글을 올렸으니, 네가 아현에게 잘 말해줘.”“그렇게 할게요.”도아린은 마치 결과를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흔쾌히 대답했다.배건후는 말없이 돌아섰다.도아린은 내려가려는데 배건후가 위층으로 가는 걸 보고 서둘러 따라갔다.“동생 보러 가려는 거예요?”배건후가 병문안을 온 것은 두 번뿐이었다. 한 번은 도지현을 입원시키러 온 것이고, 또 한 번은 결혼 후 처음으로 집을 방문했을 때 도지현을 먼저 보러 왔을 때였다.우정윤이 도아린에게 다가와 조용히 설명했다.“대표님께서 도지현 씨를 위해 전문의를 모셨습니다. 백 교수님이 지금 병실에 계실 겁니다.”도아린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배건후를 바라보았다.남자는 반듯하게 선 자세로 오래된 복도를 걸어갔고 그의 고귀한 아우라는 이 공간과 어울리지 않았다.도아린의 마음속에 의문이 들었다.도지현이 입원한 지 1년이 넘었는데, 심지어 도정국마저도 병실 호수를 확인하려고 그녀에게 메시지를 보냈었는데 겨우 두 번 왔을 뿐인 배건후는 병실로 가는 길을 잘 알고 있는 듯했다.도아린이 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병실 문 앞에 서 있는 백 교수를 보았다.백 교수는 젊은 남자였고 배건후에게 공손하게 인사했다.배건후는 손짓으로 들어가라고 하고는 둘이 함께 병실로 들어갔다.조이서와 안혜진은 도아린에게 자리를 내주며 물러났다.도아린은 침대 발치에 서서 백 교수가 도지현에게 여러 가지 검사를 하는 모습을 한시도 눈을 떼지 않고 지켜보았다.결론은 주치의의 말과 다르지 않았다. 도지현이 깨어날 가능성은 작았다.해외에 뇌를 자극하는 기계가 있는데, 약물과 병행하면 확률을 높일 수 있다는 설명이 이어졌다.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