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그녀가 느낀 유일한 모성애는 오직 주현정에게서였다.하지만 어쨌든 그녀는 배건후의 어머니였다.두 사람이 이혼한 후, 도아린은 주현정에게 효도하고 싶었지만 배건후의 새 아내가 집안에 외부인이 드나드는 것을 허락할 리 없었다.만약 윤명희와 인연을 맺는다면 해남으로 가서 도아린은 배건후의 삶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도 있었다.윤명희는 그녀의 마음이 약간 흔들리는 것을 보고 다급히 말했다.“우리는 해남에 정착해 있어요. 우리를 잘 모르니 서두르지 말고 시간을 갖고 지켜보세요. 우리에게 기회를 줘요.”그때 복도에서 갑자기 다급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성대호의 목소리도 섞여 있었다.“너무 걱정 마세요. 제가 금방 지유에게 전화해서 나오라고 할게요...”“지유 어느 병실에 있어?”주현정은 딸이 연락이 안 된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경찰에 신고하려 했다.하지만 성대호는 혹시 배건후가 알 수도 있으니 먼저 물어보고 오해로 체면을 깎는 일을 피하라고 했다.시어머니의 목소리를 듣고 도아린은 바로 일어나 문을 열었다.“어머님, 어떻게 오셨어요?”“아린아...”주현정은 급히 그녀의 손을 붙잡고 말했다.“지유는? 지유가 보이지 않는구나.”“지유는 집에 있어요.”배건후가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그는 문 밖에 있는 성대호를 보며 냉랭한 시선을 보냈다. 그러자 성대호는 자신의 잘못을 자각하며 고개를 숙이고 감히 배건후를 쳐다보지 못했다.“지유 정말 집에 있는 거 맞아? 내가 전화를 걸었는데 받지 않더구나...”원래도 건강이 좋지 않던 주현정은 걱정이 커지면서 안색이 더욱 나빠졌다.배건후는 고개를 끄덕였다.“어제 연회에서 사고를 쳐서 지유에게 집에서 반성하라고 했습니다.”“사고라니? 지유가 전화로 자신이 어떤 대단한 분을 구했다고 하던데... 무슨 사고를 쳤다는 거야?”“어머님, 아가씨가 구한 분이 바로 이 사모님이세요.”도아린이 웃으며 설명했다.그녀는 배지유의 편을 들려는 것이 아니었다.배건후가 말하는 사고가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 건지는 알 수
“우리 아린 씨는 뭐든 다 좋은데 집안 배경이 조금 안 좋죠...”윤명희는 잠시 멈추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아린 씨가 배씨 가문에 어떠한 가치도 창출하지 못했으니 외부에서는 배건후 대표님께서 결혼한 사실조차 모르는 것이죠.”주현정과 배건후는 할 말을 잃었다.곧 웃음이 터질 것 같았지만 도아린은 애써 참고 있었다.윤명희는 자신의 정신 문제를 핑계 삼아 거침없이 말을 이어갔다.“제가 인터넷에서 보니까 배건후 대표님의 첫사랑이 손보미 씨라고 하더군요. 그리고 그분이 귀국했다고 들었어요. 저는 진심으로 배건후 대표님의 행복을 바랍니다. 만약 아린 씨와의 이혼을 고려 중이라면 진씨 가문이 최고의 변호사를 고용해 아린 씨에게 최대의 이익을 보장해 줄 겁니다.”윤명희는 도아린을 향해 자애로운 눈빛을 보였다.“아린 씨가 필요로 한다면 지금이라도 손보미 씨를 상대로 상간녀 소송을 진행해서 부부 공동 재산을 지키도록 도와줄 수 있어요.”도아린은 문득 윤명희가 정말 사랑스럽다고 느껴졌다.그녀는 단순히 수박 겉핥기 식으로 조사를 한 것이 아니라 도아린의 가정 배경뿐만 아니라 배건후와의 혼인 관계까지 철저히 조사했다.이건 단순한 쇼가 아니었다.그녀는 정말로 도아린을 양딸로 삼고 싶어 했다.주현정이 배건후를 비난하며 자신을 돕긴 했지만 윤명희의 직설적인 발언은 도아린에게 훨씬 통쾌한 느낌을 주었다.“사모님, 사실 저와 건후 씨는...”“저희는 절대 이혼하지 않을 겁니다.”그때 배건후가 냉정하게 말했다.그의 눈빛은 한층 더 깊어져 있었다.그러자 비웃는 듯한 표정으로 배건후를 보며 도아린은 생각했다.‘그 말을 건후 씨 당신은 정말 믿는 거야? 본인은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냐고.’주현정도 맞장구쳤다.“그래요. 그래. 절대 이혼할 일 없을 겁니다. 전 아린이만 제 며느리로 인정할 거예요. 다른 여자는 우리 배씨 가문에 발 들일 생각하지도 말라고 해요! 건후가 감히 아린이를 배신하면 전 아들로도 인정하지 않을 겁니다!”이 말에 윤명희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그러면 사돈 말씀대로 하죠.”윤명희는 도아린을 볼수록 만족스러웠다.그녀는 이제 친자 확인이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도아린이 바로 자신의 딸이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윤명희는 도아린의 귀가 빨갛게 된 것을 눈치채고는 반 농담 반 불만 섞인 말투로 주현정에게 말했다.“모건 그룹이 대단한 명성을 자랑하지만 산하에 보석 가게는 없는가 봐요. 우리 아린 씨 귀가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켰네요.”주현정은 체면을 중요시하는 성격이라 바로 기분이 상했다.반박하고 싶었으나 도아린의 귀를 보고는 할 말이 없었다.도아린의 귀가 실제로 붉어져 있었고 귓불도 부어 있었다.“너 이 녀석... 마음은 온통 일에만 쏟고 여자에 대해서는 전혀 몰라?”배건후는 꾸짖음을 듣고 입을 꾹 다물었다.그때 진범준은 슬며시 아내의 손을 잡았고 윤명희는 그 뜻을 알아챘다.“아린 씨, 간호사에게 가서 치료 좀 받아요. 곪아진 후에는 귓불이 쉽게 아물지 않거든요.”“괜찮아요. 저 귀걸이 잘 안 하고 다녀요.”“우리는 안 껴도 되지만 언제든 낄 수 있을 정도는 되어야 해요.”윤명희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도아린을 이끌고 간호사실로 갔고 도아린도 할 수 없이 따라갔다.윤명희의 지시에 따라 완전히 소독하고자 주사를 맞고 피를 뽑았다.주현정과 윤명희, 두 사람 모두 병원 신세를 지는 환자였고 큰 기쁨과 슬픔을 겪은 후라 피로해 보였다.그렇게 그들이 잘 쉬도록 하기 위해 모두 자리를 떠났다.마이바흐는 밤하늘을 가르며 화살처럼 질주했다.도아린은 차창에 기대어 졸고 있다가 갑자기 누군가가 건드리자 깜짝 놀라며 깼다.“뭐 하는 거야?”“피가 났어.”배건후는 티슈 한 장을 건네주었다.도아린의 귓불에는 핏방울이 맺혀 있었으나 이미 굳어 있었다.두 번 문질러도 닦이지 않자 배건후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잡아 가까이 당긴 후 조심스럽게 닦아주었다.“진씨 가문이 너를 보호해준다고 해서 내가 쉽게 이혼할 거라 생각하나 본데 그 사람들은 그저 말뿐이지 실제로 800~1000억을 너에게 줄 일은
도유준은 부모님과 식사를 마친 후 그들을 온천으로 데려갔다.그는 도정국에게 풀 서비스를 준비해주었고 밤이 되어서야 나왔다.남자는 남자를 잘 안다고 하지 않는가. 도정국은 준비된 서비스에 매우 만족해했다.이때를 틈타 도유준은 말했다.“아빠, 엄마는 한결같이 아빠를 위해 헌신하며 어떤 요구도 한 적이 없어요. 요즘 날씨가 추워지면서 지병이 다시 도진 것 같습니다. 제가 지점을 맡고 나면 이제 자립할 수 있을테니 엄마를 모셔와서 제가 돌보고 싶습니다. 괜찮으시겠어요?”도유준은 그동안 몇 번이고 돌려서 말하며 강홍련을 데려오고 싶다는 뜻을 밝혔지만 도정국이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가게의 중요한 일은 여전히 배건후와의 관계에 의존하고 있었고 도아린을 자극하면 오히려 불이익을 받을까 봐 걱정되었던 것이다.며칠 전 도정국과 강홍련을 마주치면서 도아린은 반대 의사를 표했지만 결국 그의 요청대로 엠파이어 빌딩의 최고 점포를 얻어냈다.이 말은 도아린의 반대가 겉치레에 불과하다는 의미였다.도정국이 고개를 끄덕이려는 찰나, 차가운 여자의 목소리가 앞에서 들려왔다.“안 돼요.”도정국은 걸음을 멈추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불쾌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네가 왜 여기 있어? 내 일은 네가 간섭할 게 아니야.”도아린은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저는 아빠의 유일한 가족이에요. 아빠가 병원에 누워 계셨을 때 응급 수술 동의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저뿐이었죠. 그런데 제 일이 아니라고요?”도정국의 얼굴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강홍련은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도정국의 팔에서 손을 떼어냈다.“됐어요, 정국 씨. 저 혼자 잘 지낼 수 있어요. 허리가 아프면 도우미를 불러서 밥을 해 먹으면 되죠. 한 끼 굶어도 문제없으니...”도아린은 그녀를 한 번 훑어보고는 조언하듯 말했다.“조금 덜 먹는 게 좋겠네요. 몸매가 망가질 정도로 살이 찌셨는데... 혹시라도 아빠가 떠나지 않을까 걱정되지 않으세요?”강홍련은 아들이 도정국의 방에 여자를 들여보낸 것을 떠올리며 얼굴이 파랗
“도아린! 우리 엄마를 그렇게 모욕하지 마!”도유준은 결국 속에 쌓인 화를 억누르지 못하고 소리쳤다.“우리 엄마는 아빠와 약혼까지 했어. 너희 어머니가 틈을 타 들어오지만 않았어도 우리 엄마가 당당히 도씨 가문 사모님이 됐을 거라고!”짝짝짝.도아린은 천천히 박수를 쳤다.‘드디어 본심을 드러냈구나.’“네 엄마가 도씨 가문 사모님이 됐으면 지금쯤 널 데리고 공장에서 나사나 조이고 있었겠지. 아빠는 작은 시골에서 택시나 운전하고 있었을 테고. 최소 소비 20만 원에 달하는 온천? 너희 같은 사람들은 꿈에서도 못 꿀 거야...”도유준은 자신이 실수한 것을 깨닫고 도정국을 힐끗 보며 고개를 떨구었다.도정국의 관자놀이가 뛰는 게 보였다.아무리 똑똑해도 도유준은 이제 갓 졸업한 대학생일 뿐이었고 노련한 도아린을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그녀는 몇 마디로 진실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상황이 이쯤 되니 도정국도 더는 숨길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고 단호하게 말했다.“도아린, 나와 이 사람은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였다. 하지만 난 네 엄마를 만난 후에는 충실하게 살았다. 이제 네 엄마도 세상을 떠났고 이 사람도 혼자니 우린 다시 가정을 꾸릴 거야.”도정국은 강압적인 태도로 상의가 아닌 통보하는 말투로 이어갔다.“내일 당장 이 사람을 집에 데려와 지낼 것이고 좋은 날을 잡아 혼인신고를 할 거다. 앞으로 너도 아줌마에게 존댓말을 쓰고 예의를 갖춰라.”그 말을 듣자 도유준과 강홍련은 서로 손을 꼭 잡고 기뻐서 금방이라도 날아오를 듯한 표정을 지었다.그토록 기다려온 순간이 드디어 온 것이다.혼인신고만 하면 도씨 가문의 모든 것이 그들 모자의 것이 될 테니 도아린이 무슨 소리를 해도 소용없게 될 것이었다.도아린은 그런 두 사람을 차가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아줌마와 결혼해서 평생 함께하고 싶으면 그냥 도씨 가문에서 나가요. 그럼 전 전혀 간섭 안 할 겁니다.”“내가 도씨 가문의 주인인데 네가 뭔데 간섭하는 거지?”“아린이는 배씨
“당신, 나랑 커플 목욕이라도 하고 싶은 거야?” 배건후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도아린은 이를 드러내며 웃더니 작게 말했다. “꿈 깨요.” 배건후의 눈빛이 순식간에 차가워지더니 그는 냉정하게 말했다. “그렇다면...” 도아린은 갑자기 그의 팔을 꽉 붙잡고는 뒤에서 보고 있던 도정국에게 들키지 않으려 눈을 빠르게 깜빡였다. 지금 이 순간 배건후가 협조해 주지 않으면 도정국은 저 여자를 데려와 결혼할 것이 분명했다. 도아린의 복수가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그녀의 친정 모든 것이 타인의 손에 넘어갈 것이다. 둘의 시선이 마주쳤다. 도아린은 배건후의 눈에서 간절히 부탁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배건후의 입가에 얕게 그려진 비웃음의 곡선을 발견했다. 도아린은 발끝을 살짝 들어 올려 그의 뺨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집에 가서 같이 씻어요.” 배건후는 차가운 웃음을 지었다. “꿈 깨.” “...” 도아린이 그 말에 당황한 순간, 배건후는 그녀의 턱을 살며시 들어 올려 입술을 스치듯 가볍게 입을 맞췄다. 그저 잠깐의 입맞춤이었다. 배건후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차갑게 도정국을 바라보았다. “장인어른께서 상황의 이점을 이미 아신 것 같으니 더 말하지 않겠습니다.” 그는 도아린의 허리를 감싸안고 차로 돌아갔다. 도정국과 두 사람은 그 자리에 남아 당황한 표정으로 바람 속에 서 있었다. 도유준은 분노로 몸을 떨며 말했다. “아버지, 누나가 매형 앞에서 아버지의 체면을 조금도 세워 드리지 않네요. 배씨 집안이 우리 집안을 우습게 보잖아요!” 강홍련도 옆에서 부추기듯 말했다. “저야 도씨 집안에 들어가지 못해도 상관없어요. 이렇게 오래 참고 살았으니까요. 하지만 아린이는 벌써부터 당신을 이렇게 우습게 보다니... 나중에 병원에 입원해서 딸의 서명이 필요할 때 어떻게 당신을 괴롭힐지 모르겠어요.” 도정국은 두 사람의 말에 부추김을 받아 마음속에 분노가 치솟았다. 배건후가 없었더라면 그
“어느 역할인데?” 손보미가 눈을 감은 채 물었다. “금희.” 손보미는 머릿속으로 대본을 떠올렸다. 그녀가 연기하는 여자 주인공은 궁에 들어온 첫날, 남을 도와줘서 총관의 칭찬을 받는다. 같이 들어온 궁녀 두 명이 그녀를 질투하고 괴롭히는데 그중 한 궁녀의 이름이 금희였다. “연기할 때 적당히 하라고 해.” 손보미는 팔을 누군가가 살짝 밀자 무심하게 말했다. “오늘 몸 상태가 안 좋으니 물 뿌릴 때 따뜻한 물로 해줘.” 연기라는 건 많은 게 진짜가 아니었다.예를 들어, 채찍에 맞는 장면도 실제로는 바닥에 채찍을 휘두르며 마치 맞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또한 주삿바늘도 손가락으로 살짝만 찌르는 식으로 연출한다. 그녀는 주연배우였고, 배건후의 이름을 입에 올리지 않지만 촬영장 사람들은 그녀에게 강력한 후원자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아무도 그녀를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연기라는 건 사실감이 중요하지 않나?”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손보미는 깜짝 놀라 눈을 번쩍 뜨자, 화장을 해주던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당황해서 작은 브러시를 그녀의 눈에 찌를 뻔했다. “죄송해요, 보미 씨...” 손보미는 화를 참지 못하고 메이크업 아티스트를 밀쳐내며 티슈로 얼굴을 닦았다.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이미 자리를 떠 있었다. 김지민이 고개를 끄덕이며 손보미의 추측이 맞았다는 것을 확인해 주었다.‘도아린이 어떻게 날 괴롭히는 궁녀 역할을 오디션 보게 된 거지? 분명 황후의 시녀 역할을 본다고 하지 않았나?’손보미는 잠시 생각한 뒤,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고 의상실로 향했다. 문을 두드리고는 안에서 답이 오기도 전에 안으로 들어갔다. “나가 있어요. 내가 옷 입는 걸 도와줄게요.” 손보미는 부드럽게 덧붙였다. “우린 친구예요.” 도아린을 데리고 온 사람은 도아린을 바라보았고, 도아린이 고개를 끄덕이자 밖으로 나갔다. 사람이 나가자마자 손보미의 표정이 변했다. 그녀는 도
손보미가 떠난 후, 메이크업 아티스트는 방금 있었던 일을 SNS 블로거에게 보냈다. 거울이 산산조각 난 의상실 바닥 사진까지 첨부하면서 말이다. 그 대가로 커다란 현금 봉투를 받았다. 블로거는 즉시 상황을 상상해 300자짜리 짧은 글을 작성해 게시했다. ‘충격! 인기 여배우가 신인에게 괴롭힘을 당하다?’‘알려진 제보에 따르면 인기 여배우와 신인은 어린 시절 친구였으며 두 사람은 함께 연예계에서 노력하기로 약속했었다. 하지만 인기 여배우는 스폰서를 만나 승승장구했고 친구는 여전히 제자리걸음이었다. 수년 후, 두 사람은 다시 만나게 되었고 그사이에 생긴 차이가 결국 우정을 완전히 무너뜨렸다.’손보미의 팬들은 글을 읽고 댓글과 공유를 남겼다. ‘우정이 이익 앞에서 이렇게 무너질 줄은 몰랐다’며, 부모도 없이 자라온 손보미가 유일한 친구마저 잃은 것에 대해 안타까워하고 그녀를 더 많이 응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런 댓글들 속에서 몇몇 사람들은 의구심을 표했다. [손보미는 스폰서가 있는 배우고 연기도 별로인데 어떻게 송 감독의 신작에서 주연을 맡았을까? 신인을 괴롭히지 않은 게 다행이지, 누가 감히 손보미를 괴롭히겠어? 아마 신작 홍보를 위해 꾸며낸 가짜 소문일 거야.]블로거는 예상보다 훨씬 좋은 반응을 보자, 메이크업 아티스트에게 연락해 만약 손보미가 괴롭힘당하는 장면을 찍어온다면 보상을 세 배로 올려주겠다고 제안했다. 메이크업 아티스트는 선금까지 받고는 화장 도구 상자를 챙겨 손보미에게 가서 메이크업을 수정해 주기 위해 서둘렀다. 현장에서는 스태프가 도아린에게 대본을 건네주었다. ‘이게 준비가 다 됐다는 뜻인가?’함예진이 그녀를 바라보며 부드러운 눈빛을 보냈다. “송 감독님이 네 폭발력을 보고 싶어 하셔. 이 배역은 비중은 크지 않지만 이야기 전개에 중요한 역할을 해. 잘해봐.” 함예진은 또 작은 목소리로 송 감독에게 무언가를 말했고, 도아린을 보는 감독의 눈빛이 조금 변했다. 잠시 후, 손보미가 부축을
“아린아, 나 찾았어? 의사랑 지유 상태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었거든... 무슨 일이야?”신지훈은 유리 너머로 도아린을 바라보고 있었고 바로 떠나지 않았다.도아린은 코를 긁는 손짓으로 입을 가리며 조용히 물었다.“어머님, 건후 씨가 죽었을 때 장례식에 갔어요?”“난 안 갔어...”주현정은 후회와 죄책감이 가득한 말투로 말했다.의사가 수술실에서 나와서 최선을 다했다고 했을 때 주현정은 그 자리에서 기절해 버렸다.그녀가 다시 깨어났을 때, 배건후의 장례식은 이미 끝나 있었다.우정윤은 배건후가 누명을 썼다는 것과 회사에 내통자가 있다는 사실을 주현정에게 모두 알려주었다. 그리고는 그녀에게 배건후의 사망 소식을 일단 숨기고 회사를 안정시킨 후에 발표하자고 조언했다.주현정은 아들의 마지막을 보내주고 싶었지만 그의 얼굴은 심하게 부서져 있었다. 수술로 다소 복구되었지만 사망 후에는 변형이 심해져서 보기만 해도 심장이 멎을 것 같았다.그래서 대부분 우정윤이 나서서 처리했다.“그 말은...”도아린은 깊은숨을 쉬며 점점 더 창백해졌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그말인즉 주현정도 배건후의 시체가 온전한지 확신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우 실장님이라면 뭔가 알고 있을 거야.’도아린이 잠깐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주현정이 물었다.“아린아, 하고 싶은 말이 뭔데?”그녀는 조금이라도 진정하려고 다리를 움켜잡으며 말투를 조절했다.“제가 확인한 후에 말씀드릴게요.”“아린아, 어떤 어려운 일이 있어도 스스로 잘 챙겨야 해...”“네, 알겠어요.”전화를 끊자마자 눈물이 도아린의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더 이상 전화를 끊지 않으면 더 이상 감정을 참을 수 없을 정도였다.신지훈은 차기 차 쪽으로 돌아가며 계속해서 돌아보았다.그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도아린을 바라보며 차 문을 열었다. 그리고는 쇼핑백을 안쪽으로 던졌다.차를 몰고 돌아가려 할 때, 갑자기 누가 그를 부른 것만 같이 발걸음이 제자리에 멈춰 섰다.신지훈은 잠시 얼굴을 찡그리며 차 안을 둘러
하지만 서대은은 계획한 것대로 말하지 않았다. 청룡과 주작이 반대했기 때문에 현무와 백호의 의견이 일치하더라도 상황을 바꾸기는 어려웠다.그래서 강재민은 그냥 순순히 동의하는 척하면서 더 기다려보자는 선택을 했다.서대은 때문에 그들의 계획이 완전히 바뀌게 되었던 것이다.서대은은 발밑에 있는 유리컵을 한번 훑어보며 차분하게 말했다.“육청아 씨, 저랑 정면으로 싸울 생각이세요?”육청아는 손에 위스키 한 잔을 들고 의자에서 내려왔다.잔을 흔들릴 때마다 얼음이 찰랑거리는 소리가 들렸다.“아린 씨가 대은 씨를 믿고 있을 줄은 몰랐네요. 그쪽 아버지 병이 갑자기 나았다는 걸 아린 씨가 알면 어떻게 될 거 같으세요?”서대은은 시선을 내리며 타오르는 분노를 감추었다.“제 아버지의 몸으로 협박할 생각 마세요!”육청아는 혀를 차며 서대은의 모습을 비웃었다.“대은 씨 아버지가 받은 장기가 누구 것인지 알아요? 그쪽은 모르겠지만 제가 살짝 입을 열기만 해도 아린 씨는 금방 알아낼 수 있을 거예요!”“뭐라는 거죠?”서대은은 경계심을 드러내며 물었다.그는 넥타이를 잡아당기고는 펜던트를 티셔츠 안에 숨겼다.서대은은 도청 장치를 끈 것이었다. 도아린은 이어폰을 뺐다.‘대은이 아버지가 퇴원할 수 있었던 이유는 장기 이식을 받았기 때문이었어? 청아 씨말에 따르면 나랑 연관 있는 사람인 것 같은데...’심장이 거세게 뛰기 시작했고 손끝이 바들바들 떨려왔다.‘그럴 리 없어!’그녀는 가방에서 휴대폰을 꺼내려 했지만 손끝이 너무 떨려서 그만 놓쳐버렸고 휴드폰은 미끄러져서 틈새로 떨어졌다.도아린이 몸을 숙여 휴대폰을 주울 때, 누군가가 전화를 받으면서 그녀 곁을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정말 세상이 넓어서 그런지 별 사람이 있더라고... 상황만 괜찮다면 내가 본때를 보여줄 텐데!”“신 대표님!”도아린의 목소리에 신지훈이 뒤를 돌아보았다.해남시 쇼핑몰 지하 주차장에서 도아린을 만날 줄 몰랐는지 그는 잠시 멈칫하고는 말을 이어 나갔다.“도아린 대표를 만났어. 다음
꽃 모양으로 된 테이블에 네 개 조직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비어 있는 자리는 ‘라윤주’의 자리였다.도아린은 서대은의 오른쪽에 앉았고 옆에는 현무 조직의 강재민과 육청아가 있었다.육청아는 도아린이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부터 가끔 그녀를 힐끗히 쳐다봤다. 마스크를 통해서도 그녀의 질투와 혐오를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마주 앉은 청룡과 ‘라윤주’는 오랜 친구였다. 온라인에서의 대화를 나눌 때는 익숙한 패턴이었지만 만나게 되니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그녀는 ‘아현’이라는 이름으로 비밀조직 LY에 들어왔을 때부터 이미 네 명의 최고 책임자들을 만났었다. 그때 청룡은 지금과 다른 느낌이었지만 말이다.청룡은 그녀에게 할 말이 많아 보였지만 타이밍이 맞지 않는 듯했다.“이렇게 오랫동안 연락이 끊긴 상태인데 이제 새로운 책임자를 뽑아야 되지 않나요?”백호가 청룡을 보며 말했다.“어떻게 하실 생각이에요?”청룡은 도아린을 바라보던 시선을 거두고 입을 열었다.“조금 더 기다려보자고 제안하고 싶어요.”그의 목소리는 아주 낮았다. 유럽식 더블브레스트 코트를 입고 가죽 장갑을 끼고 있는 그는 여전한 옷차림에 여전한 목소리였지만 도아린은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느낌을 받았다.“3년을 기다렸어요.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는 거죠?”백호는 주작을 보며 말했다.“그쪽 의견은 어때요?”주작은 손으로 턱을 받친 채 부드럽게 말했다.“다들 알거라 생각하지만 저는 당연히 ‘라윤주’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해요.”서대은의 대답은 이전에 육청아와 약속했던 것과 달랐다. 그녀가 살짝 움직이며 입을 열려고 했지만 강재민이 책상 아래서 그녀의 발을 차며 입을 다물게 했다.육청아는 화가 치밀어 올라서 혐오스러운 눈빛으로 도아린을 노려보았다.백호는 그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은 듯, 손가락을 책상 위에서 튕기며 강재민을 바라봤다.“현무 쪽 의견은 어때요?”강재민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이렇게 바꾸는 건 명분도 없고 순서도 맞지 않으니 기다리는 게 좋을 것 같
그녀는 갑자기 육하경이 차에 도청 장치를 설치했다면 집에도 분명히 설치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도아린은 급히 일북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빌라 안에 핀홀카메라랑 도청 장치가 있는지 확인하라고 말이다.그녀가 메시지를 보내자마자 강재민이 문을 두드렸다.“아린 씨, 쉬고 있어요?”“아직이요.”도아린은 문을 열며 잠옷을 들고 있는 손을 보여주었다. 마치 갈아입으려는 모습이었다.“무슨 일이죠?”“육하경 그 자식이 방에 핀홀카메라를 설치했어요.”강재민은 손에 뜯어낸 장비를 들고 화가 난 얼굴로 말했다.“제가 방을 확인해 볼게요!”도아린은 놀란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뭐라고요?”그녀는 이렇게 말하며 =그를 방 안으로 들였다.강재민은 핸드폰에 설치되어 있는 앱으로 벽을 점검하고 콘센트도 살펴봤다. 마지막으로 화장실과 드레스룸도 꼼꼼히 점검했다. 그러고는 굳은 얼굴로 문 앞에 서며 말했다.“아린 씨 방에는 없어요.”도아린은 살짝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제가 처음 하경 씨를 만났을 때, 하경 씨는 도둑 잡는 걸 도와주고 있었는데 제가 하경 씨를 도둑으로 오해했었어요. 하경 씨는 좋은 일도 많이 했거든요. 그러니까 결론은 하경 씨는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거죠.”“그럼 아린 씨는 제가 자작극을 하고 있다는 건가요?”강재민은 자신이 육하경에게 속았다고 느꼈다. 일부러 핀홀카메라를 발견하게 내버려두고 도아린에게 고자질하도록 유도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하지만 실패하고 오히려 도아린에게 의심을 받게 된 것이다.“그런 뜻은 아니에요. 그냥 재민 씨가 오해한 걸 수도 있다는 거죠.”“저는 오늘 하루 종일 아린 씨와 함께 있었어요. 이런 걸 할 시간이 없었다고요!”강재민의 손에 들린 장비가 증거였다.도아린은 그것을 한 번 보고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그럼 그냥 하경 씨가 한 거라고 칩시다. 별일 없으면 저는 샤워하러 가야겠어요.”‘그냥이라니 무슨 뜻이지? 그래도 여전히 내가 의심스러운 건가? 분명히 육하경 그
“미안해요. 주 대표님과 약속을 했어서 말할 수 없어요.”강재민이 한쪽 눈썹을 올리며 알겠다고 했다. 그녀의 대답을 받아들인 듯했다.도아린이 휴대폰을 꺼내서 일북에게 연락했다.“일 끝나면 도씨 가문 옛날 본가로 와. 내가 도착하면 위치 보내줄게. 택시 타고 와.”“알겠습니다!”일북은 간단하고 명확하게 대답했다.전화를 끊은 도아린은 육하경에게 다시 연락했다.“옛날 집 말이에요. 열쇠 바꿨어요?”“도어락으로 바꿨고요. 비밀번호는 아린 씨 생일로 했어요.”육하경은 부드럽게 말했다.“간단하게 리모델링했는데 혹시 마음에 안 드는 부분 있으면 제가 다시 손볼게요!”“괜찮아요. 제가 필요한 건 재민 씨가 해결해 줄 거예요.”그녀는 일부러 육하경 앞에서 강재민을 언급하고 강재민 앞에서 육하경을 칭찬했다.“하경 씨 너무 친절하시네요. 이건 단순히 리모델링이 아니라 완전 새로 꾸민 거잖아요! 가구도 다 바뀌었고... 모두 제가 좋아하는 스타일이에요!”이전에 도정국이 살던 침실은 도하린의 방으로 리모델링되었고 옆 객실은 벽을 허물어 한쪽은 옷장, 나머지 한쪽은 작업실로 만들었다.옷장 안에는 일상적인 옷, 액세서리, 신발, 가방이 준비되어 있었고 작업실에는 그녀가 필요한 테이블, 모델, 다리미, 다양한 실크들이 벽에 정리되어 있었다.“하경 씨가 세인트존스 호텔만 관리한다는 게 시간이 너무 아깝네요...”도아린은 둘러보며 감탄했다.“하경 씨를 모건 그룹으로 데려오는 건 어때요?”“육씨 가문 사람이에요.”강재민은 두 손을 주머니에 넣고 어두운 표정으로 그녀 뒤를 따랐다.도아린은 뒤를 돌아보면서 말을 이어 나갔다.“육민재 씨는 별로 신경 쓰지 않을 같은데요?”강재민의 눈빛이 위험하게 좁아지며 불만스럽게 말했다.“육씨 가문 사람들은 너무 야망이 커요. 하경 씨를 모건 그룹에 보내면 회사가 육씨가문한테 먹혀버리지 않겠어요?”“야망이 큰 건 육청아죠.”도아린은 차갑게 웃으며 강재민의 표정이 변하는 걸 봤다. 원래 독하던 눈빛에서 살기 서린 눈빛으
도아린이 말을 마치자 강재민은 금세 기뻐하며 억누를 수 없이 즐거운 표정을 드러냈다.반면 맞은편에 있던 신지훈은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그는 주먹을 쥐고 손가락 마디를 소리 나게 꺾으며 한층 차가워진 목소리로 직원에게 말했다.“들으셨잖아요? 빨리 처리해 주세요.”그의 차가운 포스에 겁을 먹은 직원은 알겠다며 황급히 자리를 떠났다....집으로 가려던 길에 강재민은 한술 더 떠서 말했다.“아린 씨, 저 호텔에서 자기 싫어요. 집에 가서 지낼 생각이면 저도 같이 가고 싶은데... 겸사겸사 아린 씨가 어릴 때 어떻게 살았는지도 보고 싶고요.”“그건 좀 어렵지 않을까요?”“경호원분도 집에서 자잖아요. 저도 절대 규칙 어기지 않을게요.”“도 대표님.”신지훈이 뒤에서 따라오며, 다소 비꼬는 어조로 말했다.“비록 이혼했다고 해도 배 대표님은 본인 명의의 지분과 자산을 전부 도 대표님에게 넘긴 사람이에요. 감정이 남아 있지 않더라도 배 대표님이 병에 걸린 와중에 배 대표님이 준 돈으로 다른 남자를 먹여 살리는 건 좀 아니지 않습니까?”그 말에 도아린은 소리 내어 웃었다.그녀는 신지훈을 조롱하는 듯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신 대표님, 그 말은 틀린 것 같네요. 건후 씨가 지분과 자산을 저한테 준 건 자발적인 결정이에요. 제게 준 이상 제가 어떻게 쓰든 제 권리고요. 게다가 사고 나기 전부터 건후 씨는 제가 재민 씨와 사귀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그런 상황에서도 전부 제게 줬다는 건 제가 재민 씨와 잘 지내지 못할까 봐 걱정됐던 거겠죠. 이렇게까지 저를 아껴주는데 저도 건후 씨가 편히 요양할 수 있도록 재민 씨와 행복하게 살아야죠!”도아린에게 반박당하자 신지훈은 가슴이 답답해졌다.그는 턱을 꽉 깨물고 강재민을 조롱하는 시선으로 바라봤다.“보아하니 강재민 씨는 남의 돈으로 사는 게 익숙한 사람이군요. 실례했습니다!”강재민은 원래 반박하려 했지만 신지훈의 기색이 심상치 않아 보이자 오히려 능청스럽게 말했다.“제 외모가 아린 씨 이상형이라서
“집을 남겨둔 게 맞는 선택이었네요!”도아린이 반응하기도 전에 육하경이 가볍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자기 집에서 사는 게 호텔보다 편하고 안전하잖아요.”순간, 도아린은 제자리에 굳어버렸다.‘애초에 이런 날이 올 걸 예상하고 있어서 집과 차를 남겨뒀다는 건가? 오늘 있었던 모든 일까지 다 계획한 것이었을까?’에스컬레이터에 손을 올려둔 도아린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렸고 심장도 조여드는 느낌이었다.하지만 그녀의 얼굴에는 전혀 동요하는 기색이 없었다. 그녀는 옆으로 고개를 돌려 육하경에게 말했다.“그것도 맞네요. 그러니까 제 차도 돌려줘요. 괜히 새로 사면 해남으로 돌아갈 때 다시 팔아야 되잖아요..”고개를 돌려서 두 사람이 대화하는 걸 본 강재민의 눈빛에는 질투가 가득했다.마침 에스컬레이터를 다 내려왔고 그는 다시 도아린을 품 안에 가뒀다.“육하경 씨, 그럼 우린 이만 가볼게요. 안녕히 계세요.”육하경은 도아린을 향해 옅게 미소 지으며 주머니에서 차 키를 꺼내 그녀에게 내밀었다.“주말에 차량 정비 예약해 놨어요. 그때 다시 연락해요.”“그래요.”도아린이 차 키를 받아들였다.강재민은 뭐라 더 말하고 싶었지만 도아린이 자신의 손을 살짝 쥐는 걸 느끼고 입을 다물었다.육하경의 모습이 쇼핑몰 안으로 사라지자 강재민은 불만스럽게 말했다.“제가 차 사줄게요. 해남으로 돌아갈 때면 사람을 시켜서 가져가게 하면 돼요.”“괜찮아요.”“괜찮긴 뭐가 괜찮아요.”강재민이 단호하게 말했다.“내 여자는 남이 베푸는 거 받을 필요 없거든요.”그 말을 들은 도아린은 그저 코를 문지를 뿐, 별다른 해명은 하지 않았다. 그러고는 강재민에게 이끌려 옷 몇 벌을 사고 나왔다.“이 차를 회사로 몰고 가세요. 전 아린 씨를 데리고 드라이브하다가 올게요.”강재민이 고개를 끄덕이며 일북에게 차를 가져가라는 신호를 줬다.일북은 도아린을 바라보며 그녀가 거절하기를 바라는 눈빛을 보냈다.하지만 그녀는 차 키를 그에게 건네며 말했다.“차는 전에 육하경 씨가 타던 거야.
“저기 있는 공룡 캐릭터가 가지고 싶은데... 괜찮을까요?”도아린이 농구대와 가장 가까운 인형뽑기 기계를 바라보았다.“한번 해보죠.”두 사람은 각각 게임 코인을 바꿨다.도아린은 두 사람의 반응을 살피면서 누가 자신을 시험하는 건지 판단하려 했다.강재민이 연성까지 찾아온 것, 그리고 육하경과의 예상치 못한 만남... 그녀는 이제 더 이상 우연이라는 말을 믿지 않았다.만약 강재민이 그저 배건후를 없애려 했다면 이렇게까지 큰 판을 짤 필요가 없었다. 3년을 기다려 배건후의 집안을 완전히 엉망으로 만들 필요도 없었다.육하경은 그녀의 USB를 몰래 본 적이 있었으니 분명 배건후의 적이었지만 배건후의 죽음이 그에게 어떤 이익을 가져다주는지 알 수 없었다.‘반대로 생각해 보면 배건후가 살아 있는 것을 가장 두려워하는 사람은 누구지?’‘재민 씨는 내가 건후 씨랑 다시 이어지는 걸 두려워했으니 당연히 원하지 않겠지. 그러면 하경 씨는? 목적을 알 수 없어서 더 무서워.’도아린은 육하경을 바라보았다. 그는 모든 신경이 인형 뽑기 기계에 쏠려 있는 것 같았다. 간신히 인형을 집었지만 떨어뜨리고 말았다.“하...”육하경이 한숨을 쉬며 다시 게임 코인을 넣었다.“나이스!”그 소리에 도아린은 정신을 차렸다. 강재민을 보자 그가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눈썹을 치켜올리는 것이었다.그는 빨리 칭찬해달라는 듯 눈을 깜빡이고 있었다.“정말 대단해요!”도아린은 강재민 옆으로 가서 그가 들고 있던 농구공을 받아들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골대에 들어가지 않았다.“이렇게 던져야 해요. 손목에 힘을 주고요.”강재민이 도아린의 뒤에 서서 그녀의 두 손을 꼭 감싸 쥐고 그녀를 품 안에 가뒀다.“그대로 던져요!”도아린은 그의 말대로 손끝의 힘을 모아 공을 던졌다. 공은 링을 맞고 한 바퀴 돌더니 결국 골대를 통과했다.“들어갔어요! 제가 넣었다고요!”도아린은 흥분해서 소리쳤다.옆으로 고개를 돌리자 그녀는 순간적으로 감정을 숨기지 못한 육하경의 차가운 시선을 마주했다.그의
“괜찮으세요?”그 남자의 목소리는 배건후와 똑같았지만 생김새는 전혀 닮지 않았다.도아린의 목소리에 약간의 떨림이 섞여 있었기 때문에 의아한 표정을 지은 것이었다.“괜찮아요! 미안해요. 슛 던지는데 제가 방해했네요.”도아린이 쑥스럽게 웃으며 사람들 속에서 한 걸음 물러났다.“아린 씨!”육하경이 그녀를 찾아왔다.그녀의 표정이 평소와 다르다는 걸 눈치챈 그는 주변을 둘러본 뒤 다시 그녀를 바라보았다.“왜 혼자 나왔어요? 아는 사람이라도 만났어요?”“아뇨.”도아린은 빠르게 마음을 다잡았다.“너무 오래 걸리길래 그냥 나와봤어요.”육하경은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미안해요. 괜히 다툴 게 아니라 그냥 재민 씨가 고른 보호대로 샀을 걸 그랬네요.”“아린 씨!”강재민도 그녀를 찾아왔다. 그의 손에는 커다란 엉덩이 보호대를 들고 있었다.“괜찮아요?”“괜찮아요. 얼른 스케이트 타러 가요.”도아린은 보호대를 받아 허리에 찼다.스케이트를 타기 시작하자 두 남자는 또다시 경쟁을 벌였다.누가 도아린을 가르칠지 다투면서 각자의 실력을 뽐내기 위해 한 명은 앞으로 돌고, 다른 한 명은 뒤로 돌면서 묘기를 펼쳤다.하지만 도아린은 방금 있었던 일을 곱씹느라 다른 생각에 빠져 있었다.그날 밤 양식장에서 만난 남자, 그리고 방금 만난 남자, 두 사람 모두 체형이 배건후와 놀랍도록 닮아 있었다.단순히 체형만 비슷한 것이 아니라 목소리도 같았다. 게다가 농구를 하는 모습까지 똑같았다.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말이 안 될 정도였다.‘건후 씨가 정말 죽었다면 왜 계속해서 날 시험하는 걸까?’다른 사람들은 다들 그녀가 주현정과 함께 병문안을 가서 배건후를 확인한 줄로 알았다.그 병실에 있는 사람이 정말 배건후였다면 도아린이 그를 닮은 사람에게 관심을 가질 이유도 없었을 것이니 말이다.그렇다면 그들은 그녀의 반응을 통해 배건후가 정말 죽었는지 살아 있는지 확인하려는 것이었다.도아린은 주먹을 꽉 쥐었다.방금 그녀의 반응으로 인해 상대는 이미 배건후가 병원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