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아린의 안색이 좋아 보이지 않자 성대호는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오늘은 아무것도 못 본 거로 해주세요. 가게를 내놓는 사람이 없는지 잘 알아봐 드릴게요. 그리고 제가 인테리어도 해주기로 약속했잖아요. 저는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에요.”성대호의 목소리는 점점 더 작아졌다.도아린은 그의 말을 채 듣지도 않고 가버렸다.문 앞에서 녹음하고 있던 소유정은 도아린의 눈시울이 붉어진 것을 보고 녹음을 끄고 따라서 룸으로 돌아갔다.“건후 씨가 네 가게를 손보미한테 준 거야?”“내 거 아니야.”도아린은 메뉴판을 보면서 음식을 주문하기 시작했다.‘내 물건은 아무도 뺏어가지 못해.’도아린은 가게를 원한 적도 없었다. 그저 욕심많은 도정국이 동생의 치료를 핑계로 협박했기 때문이다.도아린은 진수성찬에 맥주까지 세 병 마시게 되었다.술을 마실 수 없는 소유정은 옆에서 도아린의 기분을 맞춰주기로 했다.맥주 한잔을 마실 때마다 옆에서 생수를 따라 마셨다.똑같은 속도로 생수를 마시자니 메스껍고 머리가 어지러워 화장실을 자주 들락날락했다.“나 화장실 좀 다녀올게. 돌아와서 계속 마셔.”속을 비우고 돌아왔을 때, 도아린은 룸에 없었다.어질어질한 상태로 택시를 타고 에이트 맨션으로 돌아간 것이다.요 며칠 도아린이 운전해서 들락날락하자 경비 아저씨는 그녀가 로또에 당첨된 줄 알고 대놓고 비웃지 못했다.그런데 오늘 택시 타고 돌아온 것을 보고 또 참지 못하고 비아냥거렸다.“왜요. 대표님이 차를 몰수하셨나 봐요? 대표님 성격을 좀 맞춰주시지 그러셨어요.”도아린은 억지 미소를 지으면서 걸어 들어갔다.3년이나 바쳐서 배건후의 곁을 지켰지만 돌아오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도아린은 잔디 위에 세워져있는 그레이색 마이바흐를 보고 발로 걷어찼다.“제기랄! 나쁜 자식!”차 경적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집 안에 있던 사람들이 밖으로 나왔다.“도아린, 미쳤어?”배건후는 비틀거리면서 술 냄새를 풍기고 있는 도아린의 모습에 미간을 찌푸리고 말았다.도아린은 뒤돌아 차에 기대어 앉
“보미 씨는 손님인데 맨발로 집에 들어올 순 없잖아.”배건후는 도아린이 무엇 때문에 화를 내는지 몰랐다.“집에 손님용 슬리퍼가 따로 있어요.”“보미 씨가 발을 상해서 딱딱한 슬리퍼를 신지 못해.”배건후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이런 사소한 일까지 따져야겠어?”손보미는 배건후가 보지 않는 틈을 타 무언의 협박을 보내고 있었다.오늘 주동적으로 배건후한테 잘못을 인정하러 온 것이다.계약서를 잠깐 빌리기로 했는데 성대호와 계약할 때 일부러 모호하게 말했고, 성대호도 배건후와 확인해 보지 않은 바람에 손보미가 계약서에 사인하게 되었다.손보미는 모든 책임을 철없는 부모님께 넘겼고, 부모님이 돌아가면 무조건 도아린에게 명의를 돌려주겠다고 약속했다.사과하는 의미로 인테리어 비용을 대겠다고 했고, 또 도울 디저트더러 먼저 입주하라고 했다.그러면서 급히 달려오느라 발을 삐끗하여 딱딱한 슬리퍼를 신지 못하겠다고 했다.배건후는 도아린이 이렇게 일찍 돌아올지 모르고 그냥 도아린의 슬리퍼를 신으라고 했다.그런데 도아린이 고작 슬리퍼 하나로 난동 부릴 정도로 밴댕이 소갈딱지일 줄 몰랐다.“건후 씨는 저한테 가게를 줄 마음이 없었잖아요.”도아린은 초롱초롱한 두 눈으로 웃고 있었다.이와 반대로 배건후는 전혀 상냥하지 않은 눈빛에 어두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네가 무능해서 드레스를 해결하지 못한 거잖아.”“제가 무능한 거예요. 아니면 어떤 사람이 멍청해서 드레스를 망가뜨린 거예요?”“건후 씨, 그런 말 하지 마. 다 내 잘못이야…“손보미는 이 복잡한 상황에서 끼어들려고 했다.“아린 씨, 저는 사실 그 드레스를 구매하고 싶었는데 판매하지 않는다길래요. 여자는 누구나 다 예뻐지기를 원하잖아요. 저는 그저 생일날 예뻐 보이고 싶었어요. 그런데 폭죽이 전부 다 안 터졌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어요…”손보미는 도아린이 인기 검색어를 봤다는 거에 한 표를 던졌다.배건후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생일날 몇억 원에 달하는 폭죽을 터뜨렸다는 기사가 인기 검색어에 6
‘왜지? 도아린을 되게 싫어하지 않았었나?’배건후는 몸을 살짝 틀어 도아린을 내려다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내 말 거역하면 이혼할 생각은 평생 꿈도 꾸지 마.”“건후 씨가 날 놓아주지 않으면 나도 건후 씨 가슴을 아프게 만들 거예요.”‘누가 겁 낼 줄 알고?’도아린의 짙은 속눈썹은 마치 깃털처럼 배건후의 심장을 간지럽히는 듯했다.그는 숨을 내쉬며 고개를 숙여 그녀의 입술을 삼켰다.그러자 도아린은 그의 가슴을 밀어내며 애써 벗어나려 했다.하지만 배건후는 그녀의 입안에서 술 냄새를 느끼고 분노를 실어 더 진하게 키스했다.결국 더 참지 못한 도아린은 구역질이 날 것 같아 그를 세게 깨물었다.“쓰읍...”혀끝이 깨물려 피가 맺혔다.남자가 입술을 핥는 모습은 치명적이고 매혹적이었다.손보미는 마치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그녀가 기억하는 배건후는 언제나 신사적이고 차분하며 어느 자리에서나 존경받는 존재였다.손보미는 배건후가 일 외에는 아무 관심도 없는 사람이라 믿었고 아무리 예쁘고 뛰어난 여자라도 그가 거들떠보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손보미가 배건후와 가장 가까웠던 순간은 그의 팔짱을 끼고 행사에 참석했던 것뿐이었다.온라인에 떠도는 친밀한 사진들은 모두 배건후와 체형이 비슷한 사람을 섭외해 찍은 것이었고 사진이 퍼져도 배건후는 아무 말이 없었다.덕분에 그녀는 점점 대담해졌다.‘건후 씨는 분명 나를 좋아할 텐데... 왜 도아린이랑 키스하는 거지?’손보미는 두 사람을 떼어놓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아린 씨! 정말 잠시 그냥 점포를 빌리려는 것뿐이야. 빼앗을 생각은 없어! 점포에 내 명의에 있긴 하지만 아린 씨네 아버지 디저트 가게가 먼저 입점할 수 있도록 할게!”도아린은 고개를 기울이며 손보미를 바라보았다.질투를 애써 감추며 순진한 척하는 그녀의 모습이 우스워 더 이상 저항하지 않고 도아린은 배건후 품에 편안하게 기대었다.“난 보미 씨처럼 너그럽지 않아.”그러더니 배건후의 가슴을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내 명의의
“하경이가 깨어났대.”배건후가 냉정하게 말했다.도아린이 계속해서 육민재를 잊지 못하는 것에 비해 이 뜨뜻미지근한 존재인 육하경이 배건후를 더 불쾌하게 만들었다.“네.”도아린은 무심하게 답했다.“옷 갈아입어.”배건후는 그녀를 강하게 끌어당겼다.“건후 씨 친구 보러 가는데에 내가 왜 가야 하죠?!”하지만 배건후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를 옷방으로 끌고 갔다.“이혼하지 않는 한 너는 내 부인이야. 그리고 이건 정당한 사회 활동이야.”“당신은 내가 사회생활 하는 거 싫어하잖아요.”도아린은 소파 의자에 느긋하게 앉아 말했다.“내가 무례하게 말해서 누군가를 기분 나쁘게 할 수도 있잖아요.”옷 한 줄을 쓱 훑어보더니 배건후는 그녀를 바라보았다.스타일을 맞추라는 암시를 주는 것이었다.하지만 도아린은 피식 비웃으며 자기가 입을 옷을 집어 들고 나가버렸다.전에는 속옷까지 배건후가 좋아하는 거로 입었지만 이제는 뭘 입든 신경도 쓰지 않겠다는 태도였다.더 이상 굴복할 마음은 없었다.배건후는 냉랭한 표정으로 짙은 파란색 셔츠와 어두운 바지를 골랐다.그가 옷방을 나섰을 때 도아린은 이미 옷을 갈아입고 긴 머리를 간단히 땋아 어깨에 살짝 걸쳐 놓고 있었다.도아린은 그에게 한 번도 눈길을 주지 않고 먼저 밖으로 나섰다.하지만 문을 열자마자 손보미가 깜짝 놀란 듯 외쳤다.“아!”배건후가 도아린을 안고 침실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질투로 미쳐가던 손보미는 음료수를 가져다주겠다는 핑계를 댔지만 최신형 주스 기계라 사용할 줄 몰라 결국 물을 두 잔 떠왔다.“두 사람... 어디 외출해?”손보미의 시선이 도아린에게서 배건후로 옮겨갔다.두 사람은 커플룩처럼 입고 있었다.“좋은 말로 할 때 비켜.”도아린이 차갑게 말했다.“...”그러자 손보미는 애써 감정을 숨기며 배건후를 바라보았다.“건후 씨, 우리 기사님이 볼일이 좀 있어서 그러는데 나 좀 같이 태워줄 수 있어?”도아린은 배건후의 답을 듣고 싶지 않았다.그가 어떻게 말할지 뻔히 알기 때문이다.
도아린은 손가락을 오므리고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배건후도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며 두 사람은 마치 서로 영원히 말을 섞지 않을 사람들처럼 병실 앞에 도착했다.배건후는 냉랭한 얼굴로 팔꿈치를 굽혔고 도아린은 자연스럽게 그의 팔짱을 끼었다.“한 모금 마셔봐. 엄마가 방금 끓인 닭고기탕이야.”황은숙은 떨리는 손으로 숟가락을 그의 입가에 가져갔다.“엄마, 제가 할게요.”육하경은 그릇을 받아들고 물었다.“제 옷은 어디 있죠?”병실 문이 열리며 낮은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깨어났네.”두 사람이 팔짱을 낀 모습을 보자 육하경은 눈빛이 흔들리더니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띠었다.“응.”그는 다시 황은숙을 향해 물었다.“엄마, 제 옷은요?”“네 옷은 세탁하러 보냈어. 그런데 향낭이 찢어져서 네 아버지가 불길하다고 해서 버렸어.”이 말에 육하경이 불쾌하다는 듯한 태도를 잠시 내비쳤다.그는 잠시 침묵한 후 물었다.“제 주머니에 있던 핸드폰은요?”“여기 있어.”황은숙은 급히 침대 옆 서랍을 열어 핸드폰 두 개를 꺼냈다.육하경은 몸을 돌려 그중 하나를 집어 들고 도아린을 바라보았다.“이 핸드폰 아린 씨 것 맞아요?”“맞아요. 내 거예요.”도아린은 배건후의 팔을 놓고 다가가 핸드폰을 받으며 말했다.“고마워요. 정말 찾았네요? 이 안에 중요한 게 많거든요.”점차 눈빛이 밝아지더니 육하경은 그릇을 옆에 두고 담담하게 말했다.“휴지통에서 주웠어요. 근데 내가 이미 닦아놔서 괜찮을 거예요.”말을 마친 후 그는 문가에 서서 얼굴이 어두워진 배건후를 바라보았다.“아린 씨가 감금되었던 휴게실 밖 휴지통에서요.”배건후는 한 손을 주머니에 넣고 차분하게 물었다.“그래서 네가 계단을 이용한 이유가 핸드폰 때문이였다는 거지?”“응. 나를 때린 사람은...”쾅!갑자기 병실 문이 세게 열리더니 한 남자가 숨을 헐떡이며 들어왔다. 그의 눈에는 경계심이 가득했다.도아린은 그를 무심하게 한 번 쳐다봤다.“왜 그래?”육하경이 비꼬듯 물었
“진 대표님, 죄송합니다. 이쪽에 약간 문제가 생겨서요. 저녁에 직접 두 분께 설명하겠습니다.”육하경은 도아린을 바라보며 잠시 멍해지다가 이내 눈빛이 밝아졌다.“마침 여기에 있습니다...”곧 육하경은 핸드폰을 도아린에게 건네며 말했다.“사모님께서 아린 씨랑 얘기하고 싶다네요.”도아린은 의아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받아들었다.그러던 와중 그녀의 손이 육하경의 손을 무심코 스치자 육하경은 손가락을 살짝 오므렸다.“안녕하세요. 도아린입니다. 그냥 아린 씨라고 부르셔도 돼요... 네, 알겠습니다.”이내 도아린은 핸드폰을 돌려주며 무심하게 말했다.“저녁에 같이 가죠.”“은혜라도 갚으려는 건가? 그럼 내가 지유한테 전화할게요.”성대호가 핸드폰을 꺼내 들었지만 육하경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단호하게 말했다.“사모님이 보고 싶어 하시는 사람은 아린 씨야.”그러자 성대호는 분노가 서려 있는 눈으로 도아린을 바라보며 말했다.“아린 씨... 설마 진 대표님께 뭐라고 말했어요?”도아린이 차가운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자 성대호는 그녀가 묵인하는 줄 알고 말했다.“지유는 아린 씨의 공을 가로채려고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아린 씨가 먼저 응급처치를 했다는 걸 알고는 바로 카드를 돌려줬어요. 그런데 지금 아린 씨는 지유의 노력을 전부 부정하네요?”“무슨 카드?”지금까지 침묵하고 있던 배건후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성대호는 잠시 멈칫하다가 비웃듯이 말했다.“진 대표님께서 사모님을 구해준 지유에게 감사의 뜻으로 준 블랙 카드 말이야.”배건후의 눈빛이 어두워졌다.진범준은 그들의 면전에서 도아린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물었었다.그러자 도아린은 잃어버린 딸을 끝까지 찾아달라고 요청했었다.배지유는 119에 전화를 한 것만으로도 모든 사람에게 자랑하며 자신의 선행을 알리려고 한 반면, 도아린은 조용하고 겸손했다.진범준이 의문을 품고 육하경이 증인이 되지 않았다면 배지유는 아마도 인정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그제야 배건후는 자신의 곁에 있던 도아린을 제대로 이해해주지
‘진씨 가문과 배씨 가문이 협력하기 위해선 반드시 지유가 함께 해야 해. 지유의 공로가 무시되면 안 된다고.’한편 도아린의 마음속에 따뜻함이 스며들었다.언제나 오해받고 억압만 당하던 그녀에게 오랜만에 누군가가 공정한 말을 해준 것이다.배건후는 도아린을 곁눈질로 쳐다보았고 도아린은 고개를 돌려 다른 쪽을 바라보았다.이내 배건후의 시선이 육하경에게로 향했다.“푹 쉬어. 저녁에 데리고 갈테니까.”그러자 육하경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제가 드레스를 잃어버렸으니 책임져야죠.”“그냥 드레스 한 벌 갖고 뭘 그래? 굳이 건후한테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어.”성대호가 무심하게 말했다.“네가 드레스 때문에 얻어맞았으니 치료비도 건후가 내야지.”황은숙은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채고 육하경을 붙잡고 물었다.“네가 맞은 게 그 드레스 때문이니?”“아니에요.”“대호야, 아줌마에게 말해봐. 그 드레스 누구 거였니?”황은숙은 아들이 다치고 나서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며 혹시나 아들이 깨어나지 않을까 두려워했다.육하경은 유일한 아들이자 집안의 희망이었다.그동안 많은 일을 겪으며 겨우 집안이 일어섰는데 또 이런 일이 터진 것이다.남편인 육영수가 아들이 여자 문제로 다쳤다고 했을 때는 믿지 않았지만 지금 성대호의 말을 들으니 황은숙은 확신이 생겼다.“그 천한 여자가 누구야? 우리 아들을 거의 죽일 뻔했잖아!”“대호야, 그 향낭도 그 여자가 준 거 맞지? 사람 목숨을 구해줘? 웃기지 마! 전부 거짓말이야.”“난 그 여자가 누구든 상관없어. 우리 집 문턱은 절대 넘지 못하게 할 거야! 다시 만나기만 해 봐. 내가 죽어버릴 테니까!”“그만해요!”육하경이 단호하게 외치자 황은숙은 순간 조용해졌다.그녀는 눈물을 글썽이며 분노를 억누른 채 성대호를 노려보았다.성대호는 자신이 경솔하게 말해 황은숙이 흥분하게 된 것을 깨닫고는 당황했다.그는 향낭을 준 사람이 누구인지는 몰랐지만 육하경이 도아린을 특별히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그러니 드레스
육하경이 더 설명하려 했지만 배건후는 핸드폰을 한 번 확인하더니 말했다.“우린 먼저 간다. 저녁에 같이 가자.”육하경의 시선이 도아린에게 향했다.도아린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그를 바라보았고 그 미소는 육하경에게 묘한 안정감을 주었다.10분 후, 성대호가 다시 돌아왔다.“아줌마는 먼저 돌려보냈어. 건후는 신경 안 쓸 테니 걱정 마.”성대호는 의자를 끌어와 느긋하게 앉으며 말했다.“오해받은 건 아린 씨인데?”육하경은 불만스럽게 말했다.“아린 씨여도...”그러자 성대호는 비웃으며 말했다.“별일은 아니잖아.”병실 안은 갑자기 조용해졌다.분위기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낀 성대호는 곧 고개를 들었다. 육하경이 그를 특별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는 것이었다.어딘가 불편한 듯 성대호는 목 뒤를 긁적이며 물었다.“왜 그래?”“이미 CCTV 확인했어. 배지유가 아린 씨를 휴게실에 가두도록 지시했더라.”성대호는 짜증을 내며 말했다.“그건 도아린이 먼저 지유가 좋아하는 드레스를 가져갔으니까 그렇지. 지유의 친구들이 화가 나서 저지른 일이야. 지유랑은 상관없어.”“그래? 만약 내가 그날 사건 당사자에게 직접 물어봤다면?”성대호는 깜짝 놀라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누구?”“나한테 주스를 끼얹은 사람.”그날 밤의 일을 떠올리자 성대호의 얼굴이 점점 일그러졌다.배지유가 다른 여자와 질투 싸움을 벌였던 그 장면이 떠오른 것이다.“네가 왜 갑자기 여자의 선물을 받아들였는지 알겠다. 일부러 그런 거였구나?”“도아린 편을 들기 위해 일부러 지유를 자극하고 지유가 실수를 저지르게 만든 거지?”“지유는 우리 가족이나 다름없는 동생이야. 너 이거 너무 하는 거 아니야?”성대호의 비난에 육하경은 차분하게 답했다.“입장을 바꿔서 생각해봐. 만약 핸드폰을 빼앗기고 휴게실에 갇힌 사람이 배지유라면 넌 지금처럼 말할 수 있겠어?”성대호는 멍해졌다.그는 한 번도 그런 가능성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배지유는 언제나 특별한 대우를 받았고 자신감 넘치고 완벽한 존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