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아린은 손가락을 오므리고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배건후도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며 두 사람은 마치 서로 영원히 말을 섞지 않을 사람들처럼 병실 앞에 도착했다.배건후는 냉랭한 얼굴로 팔꿈치를 굽혔고 도아린은 자연스럽게 그의 팔짱을 끼었다.“한 모금 마셔봐. 엄마가 방금 끓인 닭고기탕이야.”황은숙은 떨리는 손으로 숟가락을 그의 입가에 가져갔다.“엄마, 제가 할게요.”육하경은 그릇을 받아들고 물었다.“제 옷은 어디 있죠?”병실 문이 열리며 낮은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깨어났네.”두 사람이 팔짱을 낀 모습을 보자 육하경은 눈빛이 흔들리더니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띠었다.“응.”그는 다시 황은숙을 향해 물었다.“엄마, 제 옷은요?”“네 옷은 세탁하러 보냈어. 그런데 향낭이 찢어져서 네 아버지가 불길하다고 해서 버렸어.”이 말에 육하경이 불쾌하다는 듯한 태도를 잠시 내비쳤다.그는 잠시 침묵한 후 물었다.“제 주머니에 있던 핸드폰은요?”“여기 있어.”황은숙은 급히 침대 옆 서랍을 열어 핸드폰 두 개를 꺼냈다.육하경은 몸을 돌려 그중 하나를 집어 들고 도아린을 바라보았다.“이 핸드폰 아린 씨 것 맞아요?”“맞아요. 내 거예요.”도아린은 배건후의 팔을 놓고 다가가 핸드폰을 받으며 말했다.“고마워요. 정말 찾았네요? 이 안에 중요한 게 많거든요.”점차 눈빛이 밝아지더니 육하경은 그릇을 옆에 두고 담담하게 말했다.“휴지통에서 주웠어요. 근데 내가 이미 닦아놔서 괜찮을 거예요.”말을 마친 후 그는 문가에 서서 얼굴이 어두워진 배건후를 바라보았다.“아린 씨가 감금되었던 휴게실 밖 휴지통에서요.”배건후는 한 손을 주머니에 넣고 차분하게 물었다.“그래서 네가 계단을 이용한 이유가 핸드폰 때문이였다는 거지?”“응. 나를 때린 사람은...”쾅!갑자기 병실 문이 세게 열리더니 한 남자가 숨을 헐떡이며 들어왔다. 그의 눈에는 경계심이 가득했다.도아린은 그를 무심하게 한 번 쳐다봤다.“왜 그래?”육하경이 비꼬듯 물었
“진 대표님, 죄송합니다. 이쪽에 약간 문제가 생겨서요. 저녁에 직접 두 분께 설명하겠습니다.”육하경은 도아린을 바라보며 잠시 멍해지다가 이내 눈빛이 밝아졌다.“마침 여기에 있습니다...”곧 육하경은 핸드폰을 도아린에게 건네며 말했다.“사모님께서 아린 씨랑 얘기하고 싶다네요.”도아린은 의아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받아들었다.그러던 와중 그녀의 손이 육하경의 손을 무심코 스치자 육하경은 손가락을 살짝 오므렸다.“안녕하세요. 도아린입니다. 그냥 아린 씨라고 부르셔도 돼요... 네, 알겠습니다.”이내 도아린은 핸드폰을 돌려주며 무심하게 말했다.“저녁에 같이 가죠.”“은혜라도 갚으려는 건가? 그럼 내가 지유한테 전화할게요.”성대호가 핸드폰을 꺼내 들었지만 육하경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단호하게 말했다.“사모님이 보고 싶어 하시는 사람은 아린 씨야.”그러자 성대호는 분노가 서려 있는 눈으로 도아린을 바라보며 말했다.“아린 씨... 설마 진 대표님께 뭐라고 말했어요?”도아린이 차가운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자 성대호는 그녀가 묵인하는 줄 알고 말했다.“지유는 아린 씨의 공을 가로채려고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아린 씨가 먼저 응급처치를 했다는 걸 알고는 바로 카드를 돌려줬어요. 그런데 지금 아린 씨는 지유의 노력을 전부 부정하네요?”“무슨 카드?”지금까지 침묵하고 있던 배건후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성대호는 잠시 멈칫하다가 비웃듯이 말했다.“진 대표님께서 사모님을 구해준 지유에게 감사의 뜻으로 준 블랙 카드 말이야.”배건후의 눈빛이 어두워졌다.진범준은 그들의 면전에서 도아린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물었었다.그러자 도아린은 잃어버린 딸을 끝까지 찾아달라고 요청했었다.배지유는 119에 전화를 한 것만으로도 모든 사람에게 자랑하며 자신의 선행을 알리려고 한 반면, 도아린은 조용하고 겸손했다.진범준이 의문을 품고 육하경이 증인이 되지 않았다면 배지유는 아마도 인정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그제야 배건후는 자신의 곁에 있던 도아린을 제대로 이해해주지
‘진씨 가문과 배씨 가문이 협력하기 위해선 반드시 지유가 함께 해야 해. 지유의 공로가 무시되면 안 된다고.’한편 도아린의 마음속에 따뜻함이 스며들었다.언제나 오해받고 억압만 당하던 그녀에게 오랜만에 누군가가 공정한 말을 해준 것이다.배건후는 도아린을 곁눈질로 쳐다보았고 도아린은 고개를 돌려 다른 쪽을 바라보았다.이내 배건후의 시선이 육하경에게로 향했다.“푹 쉬어. 저녁에 데리고 갈테니까.”그러자 육하경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제가 드레스를 잃어버렸으니 책임져야죠.”“그냥 드레스 한 벌 갖고 뭘 그래? 굳이 건후한테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어.”성대호가 무심하게 말했다.“네가 드레스 때문에 얻어맞았으니 치료비도 건후가 내야지.”황은숙은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채고 육하경을 붙잡고 물었다.“네가 맞은 게 그 드레스 때문이니?”“아니에요.”“대호야, 아줌마에게 말해봐. 그 드레스 누구 거였니?”황은숙은 아들이 다치고 나서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며 혹시나 아들이 깨어나지 않을까 두려워했다.육하경은 유일한 아들이자 집안의 희망이었다.그동안 많은 일을 겪으며 겨우 집안이 일어섰는데 또 이런 일이 터진 것이다.남편인 육영수가 아들이 여자 문제로 다쳤다고 했을 때는 믿지 않았지만 지금 성대호의 말을 들으니 황은숙은 확신이 생겼다.“그 천한 여자가 누구야? 우리 아들을 거의 죽일 뻔했잖아!”“대호야, 그 향낭도 그 여자가 준 거 맞지? 사람 목숨을 구해줘? 웃기지 마! 전부 거짓말이야.”“난 그 여자가 누구든 상관없어. 우리 집 문턱은 절대 넘지 못하게 할 거야! 다시 만나기만 해 봐. 내가 죽어버릴 테니까!”“그만해요!”육하경이 단호하게 외치자 황은숙은 순간 조용해졌다.그녀는 눈물을 글썽이며 분노를 억누른 채 성대호를 노려보았다.성대호는 자신이 경솔하게 말해 황은숙이 흥분하게 된 것을 깨닫고는 당황했다.그는 향낭을 준 사람이 누구인지는 몰랐지만 육하경이 도아린을 특별히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그러니 드레스
육하경이 더 설명하려 했지만 배건후는 핸드폰을 한 번 확인하더니 말했다.“우린 먼저 간다. 저녁에 같이 가자.”육하경의 시선이 도아린에게 향했다.도아린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그를 바라보았고 그 미소는 육하경에게 묘한 안정감을 주었다.10분 후, 성대호가 다시 돌아왔다.“아줌마는 먼저 돌려보냈어. 건후는 신경 안 쓸 테니 걱정 마.”성대호는 의자를 끌어와 느긋하게 앉으며 말했다.“오해받은 건 아린 씨인데?”육하경은 불만스럽게 말했다.“아린 씨여도...”그러자 성대호는 비웃으며 말했다.“별일은 아니잖아.”병실 안은 갑자기 조용해졌다.분위기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낀 성대호는 곧 고개를 들었다. 육하경이 그를 특별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는 것이었다.어딘가 불편한 듯 성대호는 목 뒤를 긁적이며 물었다.“왜 그래?”“이미 CCTV 확인했어. 배지유가 아린 씨를 휴게실에 가두도록 지시했더라.”성대호는 짜증을 내며 말했다.“그건 도아린이 먼저 지유가 좋아하는 드레스를 가져갔으니까 그렇지. 지유의 친구들이 화가 나서 저지른 일이야. 지유랑은 상관없어.”“그래? 만약 내가 그날 사건 당사자에게 직접 물어봤다면?”성대호는 깜짝 놀라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누구?”“나한테 주스를 끼얹은 사람.”그날 밤의 일을 떠올리자 성대호의 얼굴이 점점 일그러졌다.배지유가 다른 여자와 질투 싸움을 벌였던 그 장면이 떠오른 것이다.“네가 왜 갑자기 여자의 선물을 받아들였는지 알겠다. 일부러 그런 거였구나?”“도아린 편을 들기 위해 일부러 지유를 자극하고 지유가 실수를 저지르게 만든 거지?”“지유는 우리 가족이나 다름없는 동생이야. 너 이거 너무 하는 거 아니야?”성대호의 비난에 육하경은 차분하게 답했다.“입장을 바꿔서 생각해봐. 만약 핸드폰을 빼앗기고 휴게실에 갇힌 사람이 배지유라면 넌 지금처럼 말할 수 있겠어?”성대호는 멍해졌다.그는 한 번도 그런 가능성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배지유는 언제나 특별한 대우를 받았고 자신감 넘치고 완벽한 존재
“난 먼저 갈게요. 저녁엔 혼자 병원에 갈 거예요.”도아린이 발걸음을 떼려 하자 배건후가 그녀의 손목을 잡아 멈춰 세웠다.“얼마를 원해?”“뭐라고요?”“점포, 원하는 보증금이 얼마냐고.”도아린은 눈썹을 치켜세웠다.“당신 점포값이 얼마인지 내가 어떻게 알아요? 굳이 알고 싶으면 마음대로 부를게요. 우선 20억만 줘 봐요.”배건후는 그녀의 손목을 꽉 쥐었다.“돈은 네 계좌로 보낼 테니까 아현 씨에게 드레스를 넘기라고 해.”이 말에 도아린은 미소를 지었다.“전 단지 일개 직원일 뿐이에요. 내가 어떻게 대표님한테 지시를 내려요?”“드레스 수선이 끝났다고 했잖아.”“그건 내가 건후 씨 속인 거예요. 문제를 만들어놓고 책임 회피하는 걸 누가 참아주겠어요?”배건후는 분노에 찬 눈으로 그녀를 쳐다보며 말했다.“도아린, 정말 역겹군!”그러자 도아린은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역겨우면서 왜 이렇게 꽉 잡아요?”배건후는 그녀를 거칠게 밀어내고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이더니 깊게 한 모금 들이마셨다.하도 세게 잡은 탓에 빨갛게 자국이 남은 손목을 풀며 도아린은 병원으로 향하는 걸음을 재촉했다.당당하게 걸어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배건후는 마음 한구석이 답답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얼마 뒤 택시에 타자마자 도아린은 20억이 입금되었다는 알림을 받았다.그녀는 냉소를 지었다.이 돈은 배건후가 보낸 것일 게 뻔했다.하지만 돈이 어디서 오든 이제는 그녀의 것이었다.배건후와 이혼할 때 재산을 분할받기는커녕 오히려 1000억 원을 갚아야 하는 상황에서 지금 챙길 수 있을 때 챙기는 게 나았다.한편 손보미는 자신이 돈을 내야 한다는 사실에 속이 쓰렸다.배건후가 도아린에게 압박을 줄 줄 알았는데 오히려 자신에게 보증금을 내라고 했기 때문이다.손보미는 배건후가 이를 보증금이라 했기 때문에 거절할 수 없었다.그는 점포가 도아린 명의로 넘어가면 손보미에게 돈을 도로 돌려주겠다고 했지만 사실 손보미는 점포를 도아린에게 넘길 생각이 전혀 없었다.이리저리
창문에 몸을 기대고 있던 사람도 깜짝 놀라더니 입안에 있던 껌을 뱉고는 문 쪽으로 걸어 들어왔다.“여기서 가게 여시게요?”방우진은 모자를 깊게 눌러쓰며 말했다.배지유는 이 점포를 자신을 위해 준비했다고 했다.그가 경찰에 잡힌 상태라 절차는 미뤄두고 대신 임대를 내주어 정기적으로 임대료를 주겠다고 했다.하지만 배지유가 자신을 속일까 봐 걱정되어 방우진은 위험을 감수하고 직접 확인하러 나왔다.도유준은 도정국을 부축하며 경계의 눈빛으로 상대를 쳐다보며 물었다.“그쪽은 누구시죠?”방우진은 가게 안을 한 바퀴 돌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엠파이어 빌딩의 점포는 매우 비싼 임대료를 자랑하며 기본적으로 몇백만부터 시작한다.이런 황금 위치에 점포가 생긴다면 이제 더 이상 위험을 무릅쓰고 범죄를 저지르거나 남에게 이용당할 필요가 없었다.“여기서 뭘 팔 건데요?”방우진이 물었다.도유준은 그가 근처 상인이라 생각하고 도정국과 눈을 마주치더니 대답했다.“디저트 가게요.”“디저트 가게? 그걸로 임대료를 벌 수 있겠어요?”도유준은 당당하게 말했다.“디저트 가게를 우습게 보지 마세요. 우리 가게는 연성에서 손꼽히는 곳이고 해남에도 몇 개 분점이 있어요!”도유준은 도정국의 가게를 마치 자기 것인 양 자랑했다.방우진은 장사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하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무엇을 팔든 상관없고 정기적으로 임대료만 낸다면 문제 될 게 없었다. 내지 못하면 다른 임차인을 찾으면 될 일이었고 말이다.“그럼 사업이 번창하길 바랄게요.”도유준은 그가 적대적이지 않음을 깨닫고 안도하며 물었다.“무슨 일을 하시나요?”“저요?”그러자 방우진은 자랑스럽게 말했다.“저는 임대료를 받는 사람입니다.”이 말에 도유준은 그를 엠파이어 빌딩 관리인으로 착각하여 미소를 지었다.배건후가 마련해준 점포는 어떤 비용도 내지 않고 이용할 수 있었으니 마치 빈손으로 이득을 챙기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그래서 그는 새로운 가게를 직접 관리하고 싶었고 돈이 자신의 손안
안혜진은 자신의 아들이 어릴 때 자주 잠투정을 부렸는데 그녀가 흥얼거리기만 하면 바로 잠이 들었다고 말했다.농담 삼아 조이서는 그 아들이 틀림없이 음악 천재일 거라고 했다. 그러자 안혜진은 빙긋 미소를 지으며 수줍게 답했다.“아니에요. 그냥 평범한 일 하는 아이예요.”더 말하기를 꺼리는 것 같아 도아린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그녀는 안혜진과 조이서에게 정성껏 도지현을 돌봐달라며 각각 작은 봉투를 건넸다.안혜진은 봉투를 손에 쥐자 눈물을 흘렸다.그녀는 원래 아들과 딸이 있었는데 자신의 잘못으로 남편이 세상을 떠나게 되었고 아들은 그녀를 원수로 여긴다고 말했다.그렇게 도아린은 해가 질 때까지 병원에 머물렀고 이후 진범준 부부를 만나기 위해 길을 나섰다....보성 병원 입원동 아래, 배건후는 차 옆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발소리를 듣고 고개를 들어보니 도아린이 다가오고 있었다.그는 차가운 눈빛으로 물었다.“왜 전화 안 받았어?”도아린은 핸드폰을 꺼내며 답했다.“진동으로 바꿔 놓고는 돌려놓는 걸 깜빡했어요.”사실 그녀가 도지현과 대화할 때 손보미가 또 방해를 했다.손보미는 자신이 배건후에게 기댄 듯한 사진을 보내며 도아린을 도발했다.사진 속 남자는 목 아래만 찍혀 있었지만 입고 있는 옷이 배건후가 자주 입는 맞춤형 정장이었다.평소 같으면 도아린도 흔들렸겠지만 오늘 배건후의 넥타이는 그녀가 직접 손봐 주었기에 거짓임을 금방 알아차렸다.하지만 손보미의 무리수에 오히려 혐오감이 들었다.예전에 손보미는 SNS에 슬쩍 자랑하는 식으로 사진을 올리고는 대중의 눈길을 끌곤 했지만 이제는 직접 사진을 보내며 도아린을 도발했다.그래서 도아린은 아예 핸드폰을 무음이나 진동으로 바꿔버렸다.배건후는 팔을 살짝 굽히며 팔짱을 끼라는 암시를 주었다.그러자 도아린은 핸드폰을 조정하고 주머니에 넣으며 말했다.“어머님도 안 계신 데 굳이 연기할 필요 없어요.”“엄마 병실은 바로 위층에 있어. 마주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지.”이 말에 도아린은 어쩔
그는 이해하지 못했다.분명 자신은 배지유를 위해서 한 말인데 배건후가 냉랭한 표정으로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을 줄은 말이다.‘새언니와의 관계가 어려운 이유는 바로 이런 점 때문이겠군. 새언니가 계속 오빠의 귀에 뭘 속삭이니까...’성대호는 병실을 나와 위층 VIP 병실로 빠르게 향했다.하지만 배지유는 병실에 없었고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았다.혹시라도 배지유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닌지 걱정되어 주현정이 충격을 받을 것을 염려하지 않고 성대호는 그녀의 병실로 직행했다.1층 병실에서는 윤명희가 도아린을 다정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도아린은 윤명희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다.“사모님, 이제 제가 왔으니 하고 싶은 말을 바로 하셔도 괜찮습니다.”“아린 씨... 아린 씨도 알다시피 나한테는 한 살 때 잃어버린 딸이 있어요.”눈가가 붉어진 채로 윤명희는 도아린의 손을 잡았다.“지난 세월 동안 자주 꿈에서 그 아이를 봤어요. 누군가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모습으로 말입니다...”윤명희의 목소리는 차츰 떨리기 시작했다.그러자 진범준은 혹여 또 그녀의 마음의 병이 도질까 걱정되어 부드럽게 등을 두드려주었다.“천천히 말씀하세요. 괜찮아요.”도아린도 함께 달래자 윤명희는 점차 마음을 진정시켰다.“미안해요. 내가 아린 씨에 대해 조사했어서는 안 됐는데...”이 말에 순간적으로 거부감이 생긴 도아린이 손을 뿌리치려 하자 윤명희는 다급히 손을 더 꽉 잡았다.“미안해요. 아린 씨의 허락을 먼저 받았어야 했는데 내가...”이런 도아린의 반응을 보며 육하경은 다행이라고 생각했다.자신도 그녀의 배경에 대해 조사하려다 그만둔 전적이 있으니 말이다.도아린은 누군가 자신의 사생활을 들추는 것을 분명히 불편해했다. 아무리 높은 지위를 가진 이가 찾아와도 도아린은 굽히지 않았다.“배지유 씨가 아린 씨의 어머니는 일찍 돌아가셨고 남동생이 심한 병에 걸렸고 아버지의 사업도 아린 씨의 지원으로 유지되고 있다고 말하더군요. 근데 배지유 씨의 인품을 신뢰할 수 없어서 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