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매장 밖에는 검은색 점장을 입은 사나이들이 두 줄로 진열해 서있었는데 그 기세만으로도 어마어마했다.남검봉은 얼핏 보아도 100명 족히 되는 검은색 점장을 입은 사나이들을 보고 바짝 긴장해있었다. 남검봉은 이런 장면을 처음 보았기 때문이다.잇따라 걸어나온 재벌 2세들은 눈을 크게 부릅뜨고는 흥분에 들떠있었다.“이렇게 성대한 자리라니, 성재 형이랑 추영 형이랑 같이 오는건가봐, 김해에서 이런 씀씀이를 보일수 있는건 추영 형밖에 없어.”“추영 형이 분명해, 내가 진작에 말했었잖아, 추영 형이랑 성재 형 친한 사이라고, 성재 형한테만 잘하면 철거건은 아무 문제 없을거야.”“남자들은 좀 빠져있어, 우리가 가운데 있어야 성재 오빠랑 추영 오빠가 우리 미모에 반할것 아니야.”남검봉은 재벌 2세들의 말을 듣고 머리를 저으며 웃었다.남검봉은 박성재가 이렇게 큰 힘을 가지고 있을거라 생각지 못했다. 이따 박성재의 세력으로 이강현을 한번 밟아보리라 마음 먹었다.짙은 붉은색 점장을 입을 장추영이 4명의 우람진 경호원들의 호위하에 박성재와 함께 걸어들어왔다.박성재의 걷는 자세가 조금 이상했다. 박성재는 오른손으로 허리를 감싸고 느릿하게 걸어들어왔다.“내가 휠체어 타고 오라고 했잖아, 내 말 안 듣더니, 지금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널 지켜보고 있는데 부끄럽지도 않아?”장추영이 농담 섞인 어조로 말했다.“휠체어는 무슨, 내가 오늘 이강현 그 놈한테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줄거에요.”박성재가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말했다.“성재 형, 내가 부축해줄게.”“성재 형, 어디 아픈거야? 내가 주물러줄까?”재벌 2세들은 박성재한테 모여들어 아첨을 떨었고 예쁜 아가씨들은 박성재를 부축하기에 바빴다.박성재가 환하게 웃으며 아가씨들의 얼굴을 쓰다듬었다.“추영 형, 봤지? 사람 죽으라는 법은 없다니까.”“하하, 이런 속물, 그래, 네가 봐뒀다는 여자는 누군데?”재벌 2세들과 어울리는 아가씨들은 두 부류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한 부류른 감히 건드릴수 없는 아가씨들이었고 다
박성재는 겉으로는 미안한척 했지만 사실 속으로는 자칫하면 이강현때문에 허리가 나갈수도 있었던 어제를 회억하며 이강현을 호되게 욕하고 있었다.남검봉은 박성재가 이야기를 꾸미고 있는것도 모르고 매우 감격스러워 하며 말했다.“이번 일은 제 잘못도 있으니 내일 저랑 함께 식사라도 하시죠, 제가 쏘겠습니다.”“사죄는 무슨, 너랑 나랑 어떤 사이인데 고작 이런 일로 사죄를 하고 그래, 그냥 운이 없는거야, 너무 마음 쓰지 마.”남검봉의 마음을 위로하고 난 박성재는 머리를 돌려 웃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네가 손 보겠다던 놈은 온거야? 내 옆에 있는 애들 봤지? 얘들 오늘 내가 너의 기를 세워주기위해 부른 애들이야, 이따 그 놈 혼 좀 내줄게, 일단 인사부터 해.”“이쪽은 김해 부동산 회장 둘째 아들 하리춘.”“여긴 김해 개발 회장 큰 딸 손은지.”“김해 투자회사 회장의 장남 백천리.”모두 만만찬은 집안을 갖고 태여난 재벌 2세들이었는데 김해의 부동산 개발과 금융투자회사 등 영역에서 선두자 역할을 하고 있는 기업들이었다.남검봉은 박성재가 자신을 위해 이렇게까지 나설줄 몰랐다.“역시 우리 성재 형 의리가 넘친다니까, 제가 여러분들한테 한 턱 거하게 쏠게요. 저는 한성 정흥 투자 회사 대표에요, 우리 앞으로 친하게 지냅시다.”하리춘을 비롯한 몇명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박성재가 놓은 징검다리덕에 다들 남검봉과 몇마디씩 주고받았다.“큭큭.”박성재가 헛기침을 하며 남검봉한테 말했다.“여긴 우리 김해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장추영 형님이야, 추영 형님은 나랑 친형제같은 사이이셔, 앞으로 추영 형님께서 널 많이 돌봐주실거야.”박성재의 소개가 아니었어도 남검봉은 진작에 장추영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워낙에 장추영은 김해에서 명성이 자자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추영이 형님이셨군요, 말씀 많이 들었어요, 추영 형님 한성에서도 명망 높으신 분이셨잖아요.”남검봉이 웃으며 말했다.“하하하, 한성에서는 천 할아버지 밑에서 일했었댔어, 천 할아버지께서 많이
“운란아, 이분은…….”남검봉이 막 소개하려고 할때 박성재가 남검봉을 밀었다.박성재는 탐욕스러운 눈길로 고운란을 보며 말했다.“아가씨, 우리 또 보네요, 자기소개가 늦었죠, 제 이름은 박성재에요, 앞으로 성재 오빠 라고 부르면 되요.”“김해에서 크고작은 일은 제가 다 나서는 편인데, 아가씨는 어느쪽 일을 하려나? 합법적인 장사든 합법적이지 않는 장사든 내가 있으면 다들 아가씨 어떻게 하지 못할거야, 여기 우리 추영이 형도 도와줄거고.”장추영이 웃으며 고운란을 바라보았다. 장추영의 눈빛에서 고운란을 소유하고 싶은 욕망이 가득했다.“난 장추영이라고 해요, 아가씨는 추영이 오빠라고 부르면 돼, 김해에서 어려운 일 생기면 언제든지 날 불러요, 내가 해결하지 못할 일은 없을테니까.”남검봉은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의아해했다. 일에 문제가 생긴게 분명했다.하지만 남검봉은 막무가내로 행동하지 않았다. 현장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김해에서 명성 높은 사람들이기에 이 사람들과 맞붙을 담력 같은건 없었다.이강현이 고운란 앞에 서며 운란이를 등뒤로 숨겼다.“허리 다 나았나봐? 내가 한 말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나봐?”“너 이 놈 성재 형이랑 그게 무슨 말투야? 너 같은 놈이 성재 형한테 뭐라고? 넌 그냥 초등학생들이랑 놀아.”“여기 김해야, 어디라고 나대는거야? 여기 누구 관할인지는 알고 온거야? 내년 오늘이 네 기일이 될줄 알아.”“아가씨, 우리 성재 형이랑 추영 형이 아가씨 마음에 들어하는건 아가씨 복이야, 이 놈만 믿었다간 아가씨 아무것도 얻지 못해.”하리춘은 이강현의 평범한 옷차림을 보고 마음껏 조롱하고 있었다.장추영은 이강현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담담하게 말했다.“한성에서 올라왔다며?”“추영 형, 쟤네 집 한성에 있어요, 저 놈 데릴사위에요, 찌질하게도.”남검봉이 장추영 곁에 바짝 붙으며 말했다.상황파악이 끝난 남검봉은 장추영의 손을 빌어 이강현을 혼 냄 다음 고운란을 구하리라 마음 먹었다.집안의 모든 인맥을 동원하면 장추영과 박성재 손에서
문밖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장추영을 비롯한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천 할아버지가 오셨어? 천 할아버지가 김해에 오셨다고? 얼른 가서 인사나 올려야겠어.”장추영이 의혹에 잠긴채 중얼거렸다.하지만 어느덧 장추영의 의혹도 연기처럼 사라졌다. 정중천이 뚱뚱한 중년 남자와 함께 걸어 들어왔기때문이다.뚱뚱한 중년사내는 매우 소박한 옷차림이였으나 얼굴은 윤기가 돌았으며 귀족의 특유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호건빈이 모시고 들어오는 사람이 천 할아버지신거에요?”박성재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맞아, 얼른 나랑 천 할아버지 마중하러 나가자.”장추영은 박성재를 거느리고 호건빈과 정중천을 향해 걸어갔다. 남검봉만이 냉소를 지으며 이강현 옆으로 걸어갔다.“찌질아, 너 이번엔 큰 일 난것 같다, 김해의 명망 높으신 분을 건드린것도 모자라 이젠 한성에서 잘 나가는 사람까지 건드렸으니 죽을 각오 단단히 하고 있어야 할거야.”말을 마친 남검봉이 운란이를 보며 말했다.“운란아, 저 자식이 얼마나 큰 사고를 쳤는지 너도 봤지? 자칫하면 고씨 집안에도 피해가 갈수있어, 나랑 저 사람들 친한거 봤지? 내가 말만 하면 너희 집안 도울수 있어.”고운란은 최 할아버지 생신 연회장에서 일어난 장면들을 떠올리며 이강현의 종적을 찾느라 바빴다.이강현이 웃으며 말했다.“정중천이 나한테 하는 태도 너도 봤었잖아, 걱정하지 마.”고운란이 가볍게 머리를 끄덕였다.남검봉은 의아스러운 눈길로 고운란을 바라보았다. 고운란이 아무렇지 않은 모습이 당황스러웠다. ‘설마 저 놈 말을 지금 믿는거야?’“이강현, 정중천이 널 대하는 태도? 너 정중천을 만나본적은 있기나 해? 어디서 허풍 떨고 있어, 너때문에 지금 운란이가 곤란하게 되었잖아, 너 지금 당장 박성재한테 가서 무릎 꿇고 사과하는게 좋을거야, 안 그러면 너 평생 후회할거야.”남검봉은 폭주하며 으르렁거렸다.“네가 걱정할 필요 없어, 넌 네 할일이나 가서 해.”이강현이 담담하게 말했다.“이강현, 이 모든건
정중천이 실눈을 뜨고 장추영을 보며 담담하게 말했다.“너희들 어떻게 비웃었는데? 조롱을 하고 나면 또 뭘 하려고?”박성재는 정중천이 화가 난게 분명하다고 생각하고는 정중천의 비위에 맞게 행동하려고 애썼다. 정중천과의 관계가 가까워지면 앞으로의 업무는 한성에까지 확장할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조롱을 하는건 기본이고 그 놈한테 무릎 꿇고 천 할아버지한테 싹싹 빌게 할거에요.”정중천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장추영을 보고 물었다.“넌? 넌 어떻게 할 셈이야?”장추영은 정중천의 정서가 이상하다는 낌새를 눈치챘다.“천 할아버지, 제 생각엔 그냥 마음 가는대로 훈계하면 된다고 생각해요.”“어떻게 마음대로 훈계할건데?”“그건…….”장추영이 한참을 심사숙고한 후에야 말했다.“손바닥으로 주둥이를 오십대 정도 때리면 되지 않을까요?”정중천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호건빈을 끌어당기며 말했다.“건빈아, 내가 너한테 소개해줄 사람이 있어.”정중천은 호건빈을 끌고 이강현이 있는 쪽으로 향했다. 장추영을 비롯한 사람들은 정중천이 하는 행동이 의심스러웠다.다들 정중천의 행동만 보고 있었다. 정중천이 직접 나서지 않을까 하는 이유에서였다.정중천이 이강현 앞에 다가가 서더니 허리를 굽히며 말했다.“이선생님, 안녕하세요.”고운란은 공손한 태도로 인사한느 정중천을 보고는 이 모든것이 다 진성택 덕분이 아닐가 싶었다.장추영을 비롯한 사람들은 제자리에 굳어서는 어찌할바를 몰라했다.‘정중천이 저런 찌질한 놈한테 저렇게 공손한 태도로 인사를 해? 저 놈 도대체 뭐야?’장추영은 박성재의 옷깃을 움켜쥐고 말했다.“네가 나한테 준 파일 가짜였잖아, 너 나 죽일려고 그래?”“아, 아니에요, 그 자료는 모두 쟤, 쟤가 준거에요.”박성재가 남검봉을 가리키며 말했다.남검봉은 머리가 하얘져서는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장추영 뒤에 서있던 건장한 사내들이 남검봉의 목덜미를 잡고는 장추영앞에 앉혀놓았다.“저 사람 도대체 누구야?”장추영이 물었다.하리춘을 비롯한 사람들이 남검
남검봉은 너무 놀란 나머지 입을 쩍 벌렸다. 정중천이 모든 사람들을 보고 이강현한테 사과해라고 할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이 모든 일들이 남검봉의 예상을 벗어났다.하리춘과 재벌들의 눈길이 일제히 박성재를 향했다. 박성재의 태도를 보고싶었기 때문이다.어리벙벙해난 박성재는 정중천을 보더니 또다시 눈길이 이강현한테로 향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강현과 정중천의 관계를 이해할수가 없었다.정중천이 존경하는 사람이면 틀림없이 엄청 잘나가는 재벌이거나 재벌 2세일것이다.하지만 이강현은 그 둘중 하나도 들어맞는것이 없었다. 평범한 옷차림에 동행하는 경호원들도 없었기에 다들 평범한 인간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추영이 형, 어떡해?”박성재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장추영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이강현한테 사과하는건 불가능한 일이었다.여기 자신의 영역 김해에서 일반인한테 사과하는건 장추영한테는 불가능한 일이었다.정중천의 요구라고는 하지만 지금의 장추영은 정중천의 부하가 아닌 정중천과 동등한 자리에 앉아있는 꽤 명망 높은 인물이었다.“천 할아버지, 전 당신을 존경하지만 저 사람한테 사과하라고 하시는건 좀 아니지 않나요?”장추영은 정중천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장추영은 이 모든것이 정중천의 계략이라고 생각했다.정중천의 안색도 어두워졌다.“추영아, 너한테 사과하라고 하는건 널 돕기 위해서야, 네가 지금 사과만 하면 지난 일은 없던 일이 될거야, 너 이 선생님의 미움을 사면 앞으로 부딪칠 곤난이 많을거야.”호건빈은 정중천의 말에서 이 일이 범상치 않음을 느꼈다.“제가 곤난에 부딪치게 될거라고요? 저 놈때문에요? 제가 저 찌질이를 두려워할리가 있겠어요? 천 할아버지, 저 놈이 누군지 알려주시고 사과를 받아내시든지 하는게 순서 아닌가요?”장추영은 이강현이 자신을 놀래킬만한 신분이나 배경을 갖고 태여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박성재는 막무가내로 밀고 나가는 장추영을 보고 한마디 덧붙였다.“천 할아버지, 제가 죽더라도 사인은 알고 죽어야지 않겠어요? 저 놈이 도대체 누군지
정중천이 차감게 내뱉었다.장추영을 비롯한 사람들이 정중천을 노려보았다. 장추영이 지시만 내리면 정중천과 맞붙을 기세였다.호건빈이 웃으며 말했다.“장추영, 박성재, 후배자식들이 선배말 거역하는거야? 너희들 오늘 이 선생님한테 사과 안 하시면 나도 가만히 있지 안흘거다.”호건빈의 말을 들은 장추영과 박성재의 얼굴색이 변했다.정중천 하나면 붙어볼만도 한데 호건빈이 정중천을 돕게 되면 상황은 달라진다.호건빈은 김해의 갑부였는데 그의 인맥이 닿지 않는곳이 없었다.비록 호건빈은 늘 소박하게 다녔지만 김해 땅에서 호건빈 한마디면 다들 쩔쩔 매군 했다.“호 아저씨, 진심이세요?”장추영이 이를 악물고 물었다.“호건빈이 고개를 치켜들고 말했다.“나는 한 입으로 두 말하지 않는다.”“아저씨 왜 저런 놈을 돕겠다는거에요? 저 놈 한성 3류가족의 데릴사위라니까요, 아저씨 저런 놈 돕고다닌다는 소문이라도 돌게 되면 창피하지 않겠어요?”장추영이 쉴 틈도 없이 속사포를 쏘아댔다.호건빈이 담담하게 말했다.“천 할아버지가 그렇게 알기 쉽게 설명했는데도 알아듣지 못하는 너희들이 멍청하지 않겠니? 김해 후배들 아직 철이 덜 들었구나.”호건빈의 한마디에 장추영, 박성재를 비롯한 사람들의 안색이 어두워졌다.박성재는 먼저 사과부터 하고 마지막에 원석을 경매할때 이강현과 한번 붙어보리라 생각했다. 그때가 되면 정중천과 호건빈도 뭐라고 하지 못할것이다.계속 이렇게 대치상태에 처해있었다간 김해와 한성에서 제일 높으신 분들이 손이라도 잡게되면 장추영은 뼈도 추스리지 못할것이다.박성재는 팔로 장추영을 툭 쳤다.장추영은 이를 악물고 화를 가라앉혔다.“천 할아버지, 할아버지께서 사과하라고 하시니까 우리의 옛정을 보아 사과는 할겁니다, 하지만 오늘 이후로 우리는 다시 보지 않는겁니다.”호건빈이 피씩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장추영의 어리석은 행동에 답답해났다.“그래, 앞으로 우린 모르는 사이야, 지금이라도 무릎 꿇고 사과해!”정중천이 쌀쌀한 태도로 말했다.“무릎을 꿇어라고
무릎을 꿇을지 안 꿇을지는 퍽 난감한 문제였다.장추영의 시선이 정중천과 호건빈한테로 향했다가 나중에는 이강현의 몸에 멈춰섰다.이강현은 개의치 않는다는듯이 담담하게 앉아있었다.장추영은 이강현의 두 눈을 뚫어져라 쳐다보았지만 공포감은 찾아볼수가 없었다. 오히려 자신을 비웃는것만 같았다.이강현한테 장추영은 그저 하찮은 개미일뿐이지만 정중천이 자신의 앞에서 아첨을 떨려고 하니 정중천에서 표현할 기회를 준것 뿐이었다.이강현의 비웃음에 장추영은 불쾌했지만 뭔가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이번의 사과로 정중천의 속박에서 벗어나게 되었지만 저 놈한테는 득이 되는 일이었다.장추영은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겨우 이강현한테 다가가 한쪽 무릎을 꿇었다.“이 선생님, 제가 잘못했어요.”“성의가 없네요.”이강현이 담담하게 말했다.정중천은 발로 장추영의 다른 무릎을 밟았다. 장추영의 무릎뼈에서 끼익 하고 소리가 났다.“내가 예전에 너한테 어떻게 가르쳤는지 다 잊은거니?”정중천이 차갑게 말했다.장추영은 이강현을 보며 한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오늘에야 제대로 기억하네요.”장추영은 두 무릎을 꿇은 자세로 있었다.박성재는 이 광경을 보고 놀라 식은땀을 흘렸다.‘김해에서 명성이 자자하신 분이 이런 굴욕을 당하다니, 심지어 한쪽 무릎도 아닌 두 무릎을 꿇고 앉아있다니.”남검봉은 온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이내 공허한 눈빛으로 남검봉을 바라보았다.하리춘을 비롯한 사람들도 모두 이를 악물었다. 그들의 눈빛에서 분노가 타올랐다.장추영은 이 시각 이강현의 모습을 자신의 머리속에 박제했다.이어 장추영은 바닥에 머리를 박았다.“이 선생님, 오늘 제가 무례했습니다, 천 할아버지가 세우신 가족 규칙에 따라 칼로 저의 몸을 베는것으로 사죄하겠습니다.”칼로 몸을 베겠다는 말에 고운란은 몸을 돌려 장추영을 등졌다. 이강현은 고운란이 눈을 피하자 웃으며 말했다.“보는 눈도 많고 걸리적거리니 여기서 그럴 필요는 없어.”장추영은 낯빛이 파래졌다. 무릎을 꿇는것도 모자라 칼로
“무슨 소리야! 이강현 그 자식 내 손자 발 뒤꿈치에도 못 가! 딴 소리 말고 그냥 할 건지 말 건지나 말해.”어르신은 말을 마친 후 분노에 찬 눈으로 이강현을 노려보았다. 고운란이 이강현의 감언이설에 속은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저 역시 아까 말했던 것처럼 이강현이 한 말이 바로 제 뜻이예요.”“너 정말! 나 너 같은 손녀 없어, 너희들 우리 고씨 집안 자식 아니야!”어르신이 소리를 지른 뒤 휴대전화를 떨어뜨리고 화가 나서 고건민에게 더 심한 말을 하려고 할 때 고건강은 어르신을 힘껏 잡아당겼다.“아버지, 화내지 마세요, 화내면 몸이 상해요, 진정하세요.”고건강은 상황이 더 나빠지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만약 고씨 집안이 무너지면 고운란의 도움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지금 기회를 잡아 잘 보이려고 하였다.어르신은 고건강을 노려보며 고건강까지 욕하려고 하였다.“아버지, 화내지 마세요, 형님한테 끌려가면 안 돼요. 큰 형이 둘째 형한테 원한이 많은 거 아시잖아요. 우리 사이가 틀어지면 그게 큰 형이 바라는 거예요.”“근데 지금 둘째 형 쪽이 대세인데 앞으로 그쪽한테 기대할 지도 모르니까 사이가 틀어지면 우리도 득 볼 게 없어요. 일단 넘어가세요.”이득 외에 고건강 눈에는 도덕 같은 게 보이지 않았다. 충분한 이득만 얻을 수 있다면 누구라도 다 팔아먹을 수 있었다.그래서 지금 고건강은 자기 먹거리를 챙기기 위해 고민국 생각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어르신도 늙은 여우라 고건강 말을 듣고 속으로 다시 생각을 정리했다.방금 화가 난 김에 하마터면 일을 그를 칠 번 했다. 지금 고운란의 위세든, 이강현이 말한 진성택과의 관계든 두 사람의 세력이 강해짐을 보여주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고나서 어르신은 마음을 진정시켰다. 고건강의 말이 맞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셋째야, 네 말이 맞아, 방금 내가 큰 실수를 할 뻔했어.”“잘 생각했어요. 이럴 때 강력하게 나가면 두 쪽 다 다치게 돼요.”어르신 표정이 느긋해지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강현의 손에서 득을 못 보게 될 것을 알아차리고 어르신은 즉시 전략을 바꿔 고운란을 찾기로 하였다.뭐라해도 자기 친 손녀인데 할아버지가 부탁하면 아무리 싫어도 자기 말을 따를 것이라고 생각했다.이강현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어르신이 좀 지나치시다고 생각했다. 할말 못할 말 다 했는데 늙은 티를 내면서 덕 좀 보려고 하니 어이없었다.“할아버지, 상황은 다 얘기했고, 계속 고집부리시겠다면 운란에게 전화하세요.”“보자 보자하니, 네가 누구인 줄 알아! 너는 그냥 이 집안의 데릴사위일 뿐이야!”고민국은 눈을 부릅뜨고 소리쳤다.“허허.”이강현은 가볍게 웃으며 돌아서서 밖으로 걸어갔다.“너 무슨 태도야! 거기 서!”고민국은 앞으로 나가 이강현의 팔을 잡아당기며 이강현을 혼내려고 하였다.고건민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두 사람 사이를 가로막았다.“형님, 말로 하시죠, 화내지 마시구요.”“흥! 쟤 말 잘하는 거 좀 봐? 너무 건방지잖아!”어르신이 핸드폰을 들고 말했다.“입 다 다물어, 운란이한테 전화할 거야!”고민국은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이강현을 잡은 손은 놓지 않았다.이강현은 차가운 눈으로 구민국을 바라보았다. 고민국은 뒷머리가 섬뜩한 것을 느끼며 이강현의 눈빛에 완전히 겁을 먹고 손을 놓아버렸다.“너 여기 가만히 있어, 내 명령없이 한 발짝도 움직이지 마.”고민국은 겁을 누르고 낮은 소리로 말했다.어르신 전화가 연결되었고, 전화 저편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여보세요, 할아버지.”“빨리 돌아와, 할 말이 있어.”고운란이 어리둥절했다. 지금은 손님을 접대해야 해서 움직일 수 없었다.“할아버지, 아빠랑 이강현이 돌아가지 않았나요? 무슨 일 있으세요?”“이강현 그 새끼 얘기 꺼내지도 마! 그 자식 정말 사람 미치게 하는 재주 있어. 너 지금 원일그룹 사장 아니야? 집안 사업 망하게 생겼어, 원일그룹이 사라고 해.”고운란이 듣던 중 자기 할아버지 상업도덕에 어긋하는 말에 가슴이 서늘해졌다. “할아버지, 지금 손님을 접대해
어르신은 전혀 놀라지 않고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이강현을 보고 있는데 마치 금덩어리를 발견한 눈빛이었다.“이리 와서 내 옆에 앉아.”어르신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고민국의 표정이 굳어지더니 황급히 몸을 숙이고 어르신 귀에 대고 말했다.“아버지, 이 쓰레기랑…….”“흥!”건국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어르신은 사람을 잡아먹는 듯한 매서운 눈빛으로 고민국을 노려보았다.“쓰레기는 네가 아니야?! 회사를 너한테 맡기고 나서 지금 무슨 꼴이야!”“아버지, 저는 최선을 다했어요.”“아무 쓸모 짝도 없어, 이강현을 봐봐, 이게 진정 회사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야!”어르신은 말하면서 고민국에게 눈짓을 했다.이강현 때문에 들어온 오더이니 다시 가져올 수도 있다는 뜻이다.이때 좋은 말 몇 마디로 이강현을 안정시키면 잃어버린 오더를 모두 찾아올 수 있고, 고씨 집안 사업도 다시 살아날 수 있다.“아, 네네, 이강현 너 얼른 할아버지 옆에 앉아, 내가 의자 가져다 줄게.”고민국은 의자를 들고 어르신의 옆에 놓았다. 의도적인 호의였다. 이강현은 의자에 앉지 않고 미소를 지으며 걸어갔다.“큰 아버지가 들어온 의자 제가 감히 어떻게 앉겠어요. 할아버지의 뜻도 이해합니다. 근데 고씨 집안 제품을 사면 진성택도 돈을 내면서 받는 거니까 저도 진성택이 계속 손해보게 놔둘 수는 없잖아요.”어르신의 안색이 약간 변했다. 이강현이 한 마디로 그가 곧 꺼낼 말을 막아버릴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어색하게 웃고 나서 어르신은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진성택이 어떻게 손해를 봐, 그 사람 돈 많잫아.”“돈은 많는데 손해보면서 우리를 돕는 건 사실이잖아요. 전에 저를 도와준 건 갚을 게 있어서 그랬고, 지금 약속한 시간이 되었으니 거두어들여도 당연한 거죠.”이강현은 그들을 돕지 않기로 마음을 굳혔다. 지금 이 상황에 잘못을 인정하기는커녕 오히려 심술궂게 굴어 이강현으로 하여금 그들을 도울 생각을 단념하게 했다.만약 처음부터 잘못을 인정했다면 도와줄 수도 있었다. 고씨
“진성택과 제 관계는 말할 필요 없고, 말 해도 믿지 않을 테니까 그냥 시키는 대로만 움직인다고 아시면 돼요.”이강현은 뒷짐을 지고 고개를 들어 상위권의 기세를 보여주었다.이강현의 도도한 모습에 고민국과 고건강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진성택이 왜 네 말을 들어, 네가 뭐라고!”고건강이 참지 못하고 말했다.이강현은 고건강을 상대하지 않고 담담한 표정으로 어르신만 바라보았다.어르신은 무거운 한숨을 내쉬며 굳은 얼굴로 고민국에게 말했다.“전화해서 진성택 지시 맞는지 확인해봐.”“아버지! 그걸 왜 물어봐요. 순전히 허튼소리예요! 믿을 필요 없어요!”“하라면 하지, 쓸데없는 말이 왜 그렇게 많아.”어르신의 표정이 더욱 언짢아졌다.고민국은 더 이상 반박할 수 없어 마지못해 휴대전화를 꺼내 바이어들의 전화를 뒤지기 시작했다.고건민은 그 틈을 타 이강현을 끌어당기며 낮은 소리로 물었다.“솔직히 말해 봐, 진성택이랑 무슨 관계야?”“제가 진성택 손자의 목숨을 구한 적이 있다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그때 운란이 힘들어 하니까 그냥 도움을 요청한 거예요.”고건민은 눈알을 굴리더니 이강현을 깊이 들여다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고건민의 속으로 이강현의 해명을 믿지는 않았지만 진성택이 이강현의 지시를 따른 다른 말은 믿었다.예전에 왕씨 어르신 생신 때 진성택이 이강현을 데리러 차를 몰고온 장면이 떠올리고 고건민은 이강현과 진성택 사이 관계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더욱 깊이 믿었다.그러나 지금 고건민은 깊이 따질 마음은 없고, 오히려 고민국과 고건강이 망신을 당한 모습을 보고 싶어 하였다.몇 년 동안 고건민은 고민국과 고건강으로부터 온갖 탄압을 받았으며 많은 고통을 겪었으니, 지금 그들이 좌절하는 것을 볼 수 있다면 당연히 더없이 기쁜 일이다.고민국이 건넨 전화는 이미 상대방에게 연결되었고, 연결된 후 상대방이 말하기도 전에 먼저 열정적으로 말하기 시작했다.“형님, 저 민국이예요.”“어 그래, 나 지금 회의 들어가봐야
“운란이 아무리 사장이라고 해도 도우려면 그만한 이유가 있어야 도움을 수 있죠. 지금 상황으로 봐서는 가족 사업에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아요.”이강현이 말을 마치자 그들 모두 가슴이 답답하기 짝이 없었지만 반박할 말이 없었다.체면이 깎인 어르신은 고민국을 매섭게 노려보며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그를 원망했다.고민국은 이를 악물고 억지를 부리며 말했다.“네가 뭘 안다고 나서? 그래, 네 말이 맞다고 치자, 그래도 운란이 우리 회사 제품 독점판매해서 도와줄 수 있잖아!”“그건 돕는 게 아니라 공과 사를 구분 못하는 거죠, 그럼 한 달도 못 버티고 쫓겨날 건데 그걸 바라세요?”이강현이 되물었다.할 말을 잃은 고민국은 이강현을 매섭게 노려보았다.“뭘 그렇게 말해, 우리 제품 사다가 중간에서 가격을 올려 팔면 되잖아, 실적도 올리고!”어르신은 고개를 끄덕이며 고민국의 말에 동의하였다.“민국이 말이 맞아, 회사 제품을 사가서 다시 팔면 문제없어.”“허허.”이강현은 약간 경멸하는 눈빛으로 웃으며 그들을 바라보았다.“왜 오더가 빠지는지 아직 잘 모르시는군요. 기술, 생산라인, 원가 아무 것도 경쟁력이 없는 제품 누가 사겠어요?”“전에 장사가 잘 됐다는 얘기하지 마시구요, 그건 제가 받아온 오더예요! 운란이 너무 힘들어 하니까 제가 진성택에게 사람을 시켜 오더 내리라고 부탁했어요!”이강현의 말이 나오자 방 안의 사람들 모두 놀라하며 눈을 크게 떴다.사실 그들도 회사 제품이 가격이 높지만 그에 비해 품질이 뒤떨어 시장 경쟁력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고운란이 오더를 받아낼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자신의 미모로 고객의 환심을 샀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그러나 지금 이 순간 이강현이 한 말은 그들의 생각을 뒤엎었다.이강현의 말을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너, 너 여기서 무슨 헛소리야! 네가 무슨 능력이 있다고 진성택을 찾아? 진성택이 무슨 사람인데 네가 부탁해서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인 거 같아?!”고민국은 이강현에게 손가락질하며
어르신의 엄격한 말투에 고건민의 마음은 두려웠다.“그래요 아버지, 운란이 사장이라도 아버지 손녀딸이에요.”“흥!”어르신이 콧방귀를 뀌며 눈을 지긋이 감고 말했다.“사장이라고 집 장사도 잊은 게야?! 있는 지분을 다 팔았다고 연을 완전히 끊을 수 있다고 생각해?!”“그게…… 일도 그만뒀는데 그럴 명분이 안 되죠.”고건민은 난처한 표정으로 말했다.“둘째 너 쓸데없는 소리 그만해, 운란이 나가고 나서 오더 크게 줄었다고 들었어, 네 딸과 상관이 없다고 생각해?!”“별말 없이 지분 팔 때 알아봤다니까, 갈 곳을 찾아두고 가족 사업 망치려고 작성한 거 맞죠.”고건강이 따라 말했다.그들의 비난에 고건민은 입이 열 개라도 변명할 수 없는 무력함을 느꼈다.이미 마음속 선입견을 두어 고건민이 뭐라고 해도 믿지 않을 것이다.게다가 고건민도 지금 말하고 있는 이유 모두 핑계일 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왜 말이 없어? 인정 못하겠어? 너희들 정말 이렇게까지 비열할 줄은 정말 몰랐다. 가족 사업 망치고 나서 우리한테 미안하지도 않아?!”고민국이 노호했다.얼굴이 하얗게 변한 고건민은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았다.“아니요, 집안에 해가 되는 일 정말 한 적이 없어요. 아버지 믿어주세요.”“다른 말은 필요 없고, 원일그룹도 의약업을 하고 있지, 운란이 집안 사업에 도움을 보태라고 말해, 오더도 주고, 지금 그만한 능력이 있는 거 아니야?”어르신이 이제서야 용건을 말했다. 고건민은 쓴웃음을 지으며 목이 쉬어 말했다.“운란이 사장이지만 아직 막 부임해서 너무 티 내서 하면 안 돼요, 그보다 지금 회사일 운란이 한 마디로 움직이는 거 아니잖아요.”“그래서 안 하겠다는 거야? 눈뜨고 집안 사업이 망하는 거 보고싶어? 너 그러고도 내 자식이야?!”어르신은 눈을 부릅뜨고 고건민을 노려보며 죽여버릴 것만 같았다.고건민은 당황한 듯 고개를 돌려 이강현을 바라보며 이강현이 빨리 와서 도와주기를 바랐다.“할아버지, 큰아버지, 작은아버지,
고건민은 이런 대우에 푹 빠졌다. 마치 제왕이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다리를 꼬이고 흔들면서 고건민 머리를 쳐들고 말했다.“여보세요, 누구세요?”“누구겠어! 네 형이지!”고민국이 화 내며 소리쳤다.고건민은 귓가에 있는 전화를 내려 발신자를 확인하였다. 고민국 번호이다.오늘 같이 기분 좋은 날에 고민국 전화를 받은 고건민은 정수리에 찬물을 끼얹은 기분이었다.“아, 제가 지금 바빠서 누구 전화인지 미처 확인하지 못했어요. 무슨 일이예요?”“아버지가 널 찾아, 빨리 돌아와.”고민국이 냉담한 목소리로 말했다.“아버지요? 아버지가 왜요? 혹시 몸이…….”“닥쳐! 아직 건강해, 돌아오라고 하면 빨리 돌아와!”고건민의 마음이 비로소 놓였다. ‘몸이 안 좋은 줄 알았잖아.’‘근데 이때 왜 날 불러, 왠지 수상해.’“네, 곧 돌아가겠습니다.”전화를 끊고 고건민은 잠시 생각하다가 이강현을 향해 걸어갔다.지금 고운란은 한성 거물들을 모시고 있어 어쩔 수 없이 이강현을 찾아갔다.“아까 본가에서 연락이 왔어, 나보고 어르신 만나러 가래.”고건민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이강현은 눈살을 찌푸리며 마음속으로 어렴풋이 짐작이 갔다.“할아버지도 뵐 겸 제가 데려다 드릴게요.”“그게…….”잠시 머뭇머뭇하다가 고건민은 이강현이 따라오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강현이 따라가면 번거로운 부분도 부담할 수 있기 때문이다.“그래, 그럼 지금 출발하자.”“네.”이강현은 고건민과 함께 차를 몰고 어르신의 집으로 향했다.곧 두 사람은 어르신의 집에 도착했다. 들어서자마자 어르신의 싸늘한 눈빛에 고건민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고건민은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방금 밖에서 산 과일과 영양제를 들고 빠른 걸음으로 어르신 앞으로 걸어갔다.“아버지, 저 왔어요.”“흥! 날 잊은 건 아니고?”어르신이 무뚝뚝한 얼굴로 말했다.“제가…….”“뭘 말하고 싶은데?! 네 딸이 사장이 됐다며, 이제 고씨 집안과도 인연을 끊을 거야?!”고건민의 이마에 식은
고민국과 고건강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나서 어르신을 찾아가기로 결정했다. 지금 위급한 상황에서 어르신이 나서야 했다.두 사람이 상의를 마친 후 급히 어르신 거처로 달려갔다.의자에 누워 라디오를 끌어안고 듣고 있던 어르신은 두 아들이 황급히 걸어 들어오는 것을 보고 곧 안 좋은 일이 생겼다는 것을 알아차렸다.“너희 둘 무슨 일로 왔어? 할말 있으면 그냥 말해.”어르신은 이미 알아차렸다는 듯이 바로 말했다.고민국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헤헤, 아버님 말씀이 맞아요. 해결이 어려운 문제이니 아버님이 직접 나서서 도와주세요.”“내가? 집안일에만 손댈 수 있는 노인한테 경영은 아니지.”어르신이 눈을 감았다.“집안일 맞아요. 둘째가 경영에서 물러났잖아요. 저랑 건강이 2억으로 그 지분을 사들이고 나서 고운란도 회사에서 퇴직한 거 아버지도 알고 있죠.”“맞아, 그건 나도 알고 있어, 2억이면 은혜를 셈이지.”일찍이 고건민 집안에 불만을 품고 있었던 어르신이라 그들이 경영에서 물러난 것도 바라는 바이다.고민국은 조금 난처한 듯 고건강을 쳐다보고는 고건강에게 계속 말하라고 눈길을 주었다.“운란이가 회사 업무 쪽 일을 맡았잖아요, 그래서 걔가 퇴사한 후 원래 바이어들이 주문을 취소해서 회사 매출이 떨어지고 있어요. 근데 운란이가 원일그룹 사장이 된 거 있죠!”눈을 감고 있던 어르신이 눈을 번쩍 뜨며, 눈에 의아한 빛이 스쳐 지나갔다.“뭐?! 고운란이 어떻게 원일그룹 사장이 돼? 말도 안 되는 소리 아니야, 이제 겨우 몇 살인데, 어떻게 사장이 될 수 있어?”“정말이예요, 아까 티비에도 나왔다니까요, 한성에 이름을 댈만한 사람들이 다 참석했어요. 고운한 그 년이 분명 무슨 거래를 한 게 분명해요.”“콜록콜록.”고건강 말이 빗나간 것을 보고 고민국은 힘껏 기침을 두 번 했다.“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 운란이 보고 원일그룹 오더를 우리한테 넘기는 거예요. 그러면 우리 기업도 다시 살아날 수 있어요.”잠시 생각을 정리하고 나서 어르신은
“작은 좌절일 뿐이야, 이겨내야 해! 고운란이 없으면 회사가 망해? 예전에도 힘든 적이 있었잖아!”고민국은 책상을 힘껏 치며 소리내어 말했다. 조금만 시간을 더 주면 이 난국을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았다.고건강은 입을 삐죽거리며 이상한 말투로 말했다.“지난번 난국도 고운란이 해결한 거잖아요, 잊었어요?”빵!구건국의 주먹이 책상에 세게 부딪혔다.“무슨 뜻이야?”“솔직히 말해 지금 이 상황 고운란과 관련이 있는 거 분명해요. 그 바이어들은 대부분 고운란이 데려온 겁니다, 형님, 잘 생각해보세요.”고민국이 아무 말없이 의자 등받이에 힘없이 기대어 앉았다.사실 고민국도 생각을 못한 바는 아니다. 바이어 주문 취소가 고운란 퇴사와 관련이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그러나 이미 구운람을 쫓아냈고, 지분까지 헐값에 사들였는데 지금 후회하여 고운란을 모셔온다고 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 tv 속 화면은 원일그룹 정문 앞으로 옮겨졌고 테이프 커팅식이 시작되었다.센터에는 고운란과 이강현이 서 있었고, 기타 한성 거물들도 모두 테이프 커팅식 대열에 포함되었다.곧바로 원일그룹 테이프 커팅식이 시작됩니다. 그 한가운데에는 원일그룹 고운란 사장이 서 있고…….”TV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를 들으며 고민국은 가슴이 답답해져서 두 손으로 가슴을 꽉 쥐었다.고건강은 부러운 듯 질투의 눈빛으로 센터에 선 고운란을 바라보며 그 자리가 자기 자리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환상을 품었다.수천억의 대그룹을 손에 넣는 기분 정말 상상할 수 없었다.“푹!”고건강이 한창 부러워하고 있을 때 고민국이 피를 토했다.피가 멀리 뿜어져 나와 TV의 스크린에 튀어 스크린에 핏기를 보였다.“형, 형님 왜 그러세요? 갑자기 왜 피를 토해요!”고건강이 어찌해야 좋을지 몰라 당황해하였다.고민국은 입가의 피를 닦았다. 피를 토하고 나니 많이 나아진 것 같았다.“난 괜찮아! 정말 생각지도 못했어! 고운란이 원일그룹을 사장이 될 줄은, 그러면 우리 고씨 가문에게도 얼마간 혜택을 줘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