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엽의 품에서 벗어난 우해민의 얼굴빛이 어두워졌다. 그녀의 목소리도 차갑게 변했다.“시간이 많이 늦었어요. 이만 집에 가야겠어요.”“왜요?”김승엽은 멍해졌다. 함께 영화를 보자고 해놓고 집에 가겠다는 그녀를 막연하게 바라보았다. 사실 영화를 보는 건 둘째 치고 그녀를 공략하기 위해 짜두었던 계획들을 시행하려 했었다. ‘왜 그러지? 아까까지는 좋았는데.’어떻게 된 건지 생각할 시간도 없이 자리를 일어서는 우해민의 모습을 보고 그녀의 손을 획 잡아챘다.“해영 씨...”잠시 머뭇거리다 다시 입을 열었다.“해민 씨. 죽더라도 무슨 영문인지 알아야겠어요. 왜 나에게 이렇게 차가웠다 뜨거웠다 하는 거예요? 내 마음이 뜨거운 불가마에서 타들어 가는 느낌이란 말이에요.”고개를 돌린 우해민은 그를 한번 보더니 자기를 잡은 그의 손을 보고 머뭇거렸다.“해민 씨, 나에게 불만이 있는 거면 말해줘요. 이렇게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내가 어떻게 해야 당신을 기쁘게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그의 초조한 얼굴에는 진심이 가득 담겨 있었다. 우해민은 잠시 생각하다 고개를 저으며 그의 손에서 자기의 손을 빼내었다.“당신의 문제가 아니라 내 문제에요.”“?”“당신이 아니라, 내게 문제가 있는 거라고요.”작게 말하는 그녀의 목소리에는 약간의 망설임과 막막함이 묻어 있었다.“만약 어느 날, 당신이 알고 있던 내가 내가 아니라면, 그때도 날 좋아해 줄건가요?”“......”김승엽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그게 무슨 말이에요? 내가 알고 있는 당신이, 당신이 아니라니요? 무슨 일 있는 거예요?”김승엽은 원래부터 그녀가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도대체 어디가 이상한지 알지 못했다. 지금 이런 말까지 하니 김승엽은 더욱 의심이 갈수 밖에 없었다.정신이 번쩍 든 우해민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아니에요. 그저 허튼소리를 한 거예요. 마음에 두지 마세요. 내가 그랬었죠? 내 성격이 이상하다고. 개의치 마세요.”그러고는 다시 집으로 가겠
우해민은 소파에 앉은 우해영을 발견하지 못했다. 집에서 일하는 아줌마가 다가오자, 손을 저으며 빠르게 방으로 걸어갔다. 빨리 자기의 방에 들어가 쉬고 싶었다.“거기 서봐!”우해영의 차가운 말투는 우해민을 순간 멈춰 세웠다. 맨발인 데다가 빠르게 가고 있던 우해민이 그대로 나자빠질 뻔했다.몸을 휘청이다가 다행히 넘어지지 않게 바로 섰다. 지금 자기의 모습이 얼마나 초라한지 보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우해민의 초라한 모습에 우해영은 더욱 화가 났다. 자기와 거의 똑같은 얼굴을 한 동생이 이렇게 쪽팔리게 산다는 사실이 못마땅했다.“언니, 일찍 왔네...”우해민이 당황해하며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두려움에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지도 못했다.“도둑처럼 어디 가는 거야. 지금 네 모습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지 알기나 해?”“그, 그게아니라...”우해민은 찔리는 게 있었기에 목구멍으로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겨우 대답했다.“나갔다가 금방 돌아온 거야. 언, 언니가 온 줄 몰랐어. 그만 방으로 돌아갈게.”우해영은 말이 끝나자마자 도망가려던 우해민을 다시 불러세웠다.“거기 서라고!”......우해민은 더 이상 발을 떼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그녀가 무엇을 숨기려 한다는 걸 우해영이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다.“여기로 와봐.”내키지 않았지만, 언니의 명령을 거역하지 못하고 우해민은 언니에게 몇 발 다가갔다.“여기로 오라고!”다시 몇 발 가지 못하고 멈춰 섰다.“죽고 싶어?”우해영의 얼음처럼 차가운 목소리에 우해민은 순간 몸을 파르르 떨었다. 앞으로 더 다가가 우해영과 세 발짝 떨어진 곳에서 멈췄다.그러자 우해영이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위에서부터 아래로 한번 훑었다. 몇 년 동안 자기 행세를 하게 하니 우해민은 어느새 키, 체형, 얼굴, 심지어는 헤어스타일마저 자기와 비슷했다. 특히 그 얼굴은 거의 똑같다고 할 수 있었다.하지만 그들을 잘 아는 사람은 두 사람이 내뿜는 분위기가 다르다는 걸 단번에 눈치챌 것이다.우해영은 자
우해민은 이제야 살았다는 듯 황급히 몸을 돌려 자기의 방으로 가려 했다.그녀가 뒤돌던 순간 반짝거리는 무언가가 우해영의 눈에 띄었다. 우해영은 흠칫 놀랐다. 자세히 보기도 전에 우해민은 벌써 후다닥 달려 자기의 시선 밖으로 나가버렸다.“거기 서봐!”우해영은 소파에서 확 일어서며 큰 소리로 우해민을 불러 세웠다.깜짝 놀란 우해민은 그 자리에 우뚝 섰다. 몸을 잔뜩 움츠리며 그녀에게 물었다.“언니, 무슨 일인데?”우해영은 그녀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성큼성큼 그녀에게 다가갔다. 부릅뜬 두 눈은 우해민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소름 돋을 만치 무서운 그녀의 눈빛에 우해민은 무의식적으로 자기의 귓불을 만졌다.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이제야 우해영이 왜 자기를 불러세웠는지 알아차렸다.“언니, 미, 미안해. 일부러 그런 게 아니야. 바로 뺄게.”바들거리는 손으로 귀걸이를 빼내려 했지만 잘 빠지지 않았다. 그러자 우해영이 손을 뻗어 그녀의 귀걸이를 획 잡아당겨 빼버렸다.“악!”살이 찢겨 나가는 고통에 우해민이 비명을 질렀다. 그녀의 귀는 금세 피로 물들었다.온몸이 떨릴 듯 아팠지만 우해민은 소리를 내 울지 못했다.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두 눈에는 공포가 가득 어려 있었다.우해영은 손에 쥐고 있던 귀걸이를 보자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귀걸이를 던지려 했다.“안돼, 언니! 그건 김승엽이 선물 한 거야!”우해민이 소리를 질렀다. 그녀의 말에 귀걸이를 던지려던 우해영이 멈추었다.“뭐라고?”두 쌍의 같은 두 눈이 서로 마주 보고 있다. 우해영의 눈에는 분노가 어려 있었고 우해민의 눈에는 공포가 가득 담겨 있었다. 우해민은 언니를 정말로 많이 무서워했다. 이런 그녀의 눈을 바라보고 있자니 당장이라도 땅속으로 자기를 파묻어 숨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가 선물 받은 귀걸이를 던지려 하자 어디에서 용기가 솟아났는지 큰 소리를 지르자 언니를 멈추는데 성공했다.“언니, 그건 김승엽 씨가 선물한 거야. 꼭 사줘야 한다고 해서 어쩔 수 없었어.”점점 기
분명 두 개의 몸인데 마치 동기화된 한 몸이 된 것처럼 더 이상 자기의 몸에 소유권이 없어졌다.귀걸이를 강제로 빼낸 아픔은 이제 얼얼해져 더 이상 아프지 않았다. 피도 멈추었다. 우해민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통쾌함을 느꼈다.오늘에야말로 자기의 몸이 자기 것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드디어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해냈다. 귀를 뚫는 게 아팠지만, 온전히 자기가 선택해서 한 일이었다.우해영은 점차 진정을 되찾았다. 아까는 우해민이 자기의 말을 듣지 않고 함부로 귀를 뚫었다는 거에 화가 났지만, 지금은 진정되었다. 이제 와서 화를 내도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아직 우해민이 자기를 대신해 자기가 하고 싶지 않은 일들을 해야 했다.우해민의 손에 귀걸이를 놓아주며 그녀를 쏘아보았다.“잘 챙겨. 잃어버리지 않게!”이제야 한시름 놓은 듯 작게 숨을 내쉬며 기쁜 마음으로 손에 놓인 귀걸이를 바라보았다.“민아. 너 설마 그 남자에게 빠진 거 아니지?”순간 우해민의 눈에 당황함이 스쳐 지나갔다. 연신 고개를 저으며 우해영의 말에 대답했다.“아, 아니야! 언니 말 잘 듣고 있어. 그런 일은 없을 거야!”하지만 그녀는 우해영을 속일 수 없었다. “그래, 알았어.”“언니, 언니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야. 그저...”“알았다고 했잖아. 방에 가서 쉬어. 이따가 아줌마보고 네 상처에 약 발라주라고 할게. 덧나지 않게 주의해. 더 이상 사고 치지 마. 알겠어?”“알았어.”우해민이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오늘 내일은 허튼 생각 하지 말고 귀에 난 상처나 잘 치료해!”우해영이 그녀의 어깨를 툭툭 치고는 가버렸다.그녀의 뒷모습이 시선에서 사라져서야 우해민은 긴장을 풀고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 불안한 느낌이었지만 우해영이 그대로 간 걸 보니 한발 물러선 것 같았다.우해영은 화장실로 향했다. 손에 묻은 피를 씻어내는 그녀의 표정은 냉담했다.지금까지 그녀의 손에 묻은 피는 적지 않았다. 오래전부터 손에 피를 묻는 게 익숙해 아무렇지 않았지만, 오늘은 뭔가 그녀를
“내일...”김승엽은 너무 기뻐 단번에 승낙하려 했지만 이렇게 빨리 대답하면 그녀에게 잡히리라 생각해 일부러 머뭇거렸다.“내일은...”“왜요? 내일 시간 안 돼요?”“안 되는 게 아니고, 좀 불편해요. 내일 우리집에...”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우해영이 말을 끊었다.“안되면 됐어요.”김승엽이 뭐라 말하기도 전이 우해영이 한마디 더 덧붙였다.“당신이 안 되면 다른 사람 찾으면 되니까요.”우해영이 전화를 끊으려 하자 김승엽이 다급하게 대답했다.“아니요, 아니요. 내일 괜찮아요!”“정말이요?”“네, 괜찮아요.”김승엽은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우해영이 생각을 바꿀까 봐 겁이나 내일 당장 만나자고 쐐기를 박았다.“안된다면 무리할 거 없어요. 내일 집에 일이 있다면서요?”아무렇지 않다는 그녀의 말투는 여전히 차가웠다.김승엽은 이마를 타고 흘러내리는 땀을 닦아내며 대답했다.“아니에요. 아무 일도 없어요. 아까는 그저 장난을 친 거뿐이에요. 그럼...”김승엽은 이 변덕스러운 여자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데이트할 때까지만 해도 고분고분하게 자기가 하는 말에 다 따랐으면서 집에 돌아가니 다른 사람으로 변해있었다. 이런 그녀의 모습이 김승엽은 조금 겁이 났다.“앞으로 이런 장난은 하지 마세요. 난 장난 같은 거 딱 질색이에요.”우해영이 차가운 목소리로 딱 잘라 말했다.“아, 네. 알았어요.”김승엽은 침을 꼴깍 삼켰다. 이전에 이런 장난을 좋아한다고 말하지 않았냐고 되묻고 싶었지만 차마 물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그럼, 내일 점심쯤에 당신 집으로 가서 결혼식 날짜를 정하는 걸로 알고 있을게요.”“네, 그래요.”김승엽은 그저 그녀가 하는 말에 대답만 했다.“데리러 갈까요?”“뚝!”그가 더 말하기도 전에 우해영은 전화를 끊어 버렸다.어느새 김승엽의 등줄기는 땀으로 푹 젖어있었다. 생각만 해도 살이 떨려왔다. 심지어는 이대로 그녀와의 결혼을 무르고 싶었다. 하지만 아침에 그에게 보여주었던 말 잘 듣는 그녀의 모습과 그녀 뒤에 있
“허, 죄송하다고?”우해영은 헛웃음을 삼켰다. 곁눈으로 그 두 사람을 바라보다 이내 술잔으로 시선을 돌렸다.“차씨 가문 하나도 처리하지 못하고 다쳐서 돌아오다니. 정말 죄송하다면 목숨으로 사죄해야 하는 거 아닌가?”그녀의 말에 두 사람은 식은땀이 흘러내렸다.“가주님! 한 번만 살려주십시오!”“됐어!”우해영은 술잔을 테이블 위로 탁 내려놓았다.“니들 죄를 물을 거였으면 지금껏 살려두지도 않았어. 너희를 살려둔 건 아직도 너희들의 개만도 못한 목숨이 쓸모가 있어서야.”“이제 그만 일어나.”우해영이 말했다.두 사람은 우해영의 눈치를 보다 서로를 한번 보고는 그녀의 말이 빈말이 아니라는 확신이 들어서야 자리에서 일어섰다.밖에서 명성이 자자한 음양 듀오가 여자 앞에서 쩔쩔맨다는 건 누구도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너희에게 줄 임무가 있어. 오늘 밤, 김씨 고택으로 잠입해 내가 말하는 물건을 찾아와.”우해영은 느릿하게 말을 이어 나갔다.“가주님, 김씨 고택에 없다고 하지 않으셨나요?”두 사람 중 하나가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우해영에게 물었다.“가라면 가. 물건이 있고 없고 너희들이 판단할 일이 아니야!”우해영이 차가운 목소리로 어어 말했다.“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날이 밝기 전에 돌아와.”“네!”이윽고 두 사람은 어둠 속에 사라져 버렸다.——“하객 명단이요?”테이블 위에 놓인 종잇장을 보며 김서진은 젖은 머리카락을 수건으로 슥슥 닦았다.“당신에게 모두 맡긴다고 했잖아요.”김서진은 눈썹을 치켜올리고 한소은에게 물었다.“전에 당신한테 한번 보여줬었죠. 이번에 조금 변동이 있어서 다시 한번 확인해 보라고요.”한소은이 고개를 돌리며 대답했다.“안 봐도 돼요. 당신이 정한 대로 해요.”김서진은 젖은 수건을 한쪽으로 던져두고 자연스럽게 한소은의 옆에 가 앉았다. 팔로 그녀의 허리를 둘러 안으며 그녀의 부드러운 피부에 얼굴을 비볐다.임신해서인지 지금의 한소은은 예전보다 훨씬 부드러워진 것 같았다.온몸에서 부드럽다 못해 물이 나올
"아쉬울 거 없어." 뒤에서 그녀를 가볍게 안고는, 큰 손바닥은 자연스럽게 그녀의 아랫배로 향했다. “지금 나한테는 너희들만이 가장 중요한 존재야."혈연관계로 따지면, 김 씨 집안은 확실히 서로 가까운 존재였고 그들 또한 가족이긴했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그는 김 씨 집안에서 제대로 따뜻함을 느끼지 못했다. 가끔 느낀 그 조그마한 따뜻함조차도 그가 자신의 노력으로 할아버지한테 인정받은 것 뿐이다. 뿐만 아니라, 부와 지위를 위해 여태동안 김 씨 집안 사람들이 해온 그 일들을 돌이켜보면 그는 이미 실망이 매우 컸고, 지금 그에게 있어서는 오직 앞에 있는 사람들만이 가장 소중한 존재들이었다. 몇 마디 하지도 않은 채 안색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그리고는 감싸고 있던 그녀의 손을 자신도 모르게 풀기 시작했다. 한소운은 그런 그를 보고는 얼른 일어나 물 한 잔을 따랐고 그가 편안하게 통화 할 수 있도록 자리를 비켜줬다.그녀가 물을 마시고 잠시 쉬고 있는 동안, 김서진의 통화는 이미 끝났다. 그녀는 망설이는 눈빛으로 물어봤다.“怎么?”"무슨 일이에요?""내일 본가에 갔다 올게요." 그가 말했다."생각이 바뀐거가요?" 한소운은 그가 생각이 바뀌어 김 씨 집안 사람들을 초대해 결혼식을 치르려고 한 줄 알았다."아니요. 다른 일이 좀 있어요." 그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요 며칠동안 집에서 푹 쉬고 있어요. 결혼식 준비는 이미 다 된 것 같으니까 더 이상 밖에 나가지도 말아요. 답답하면 오이연한테 연락해서 같이 있어줘라고 할게요.”"?" 그의 말을 들은 한소운은 말 속에 다른 말이 있는 것처럼 이상하게 느꼈다."요 며칠 저는 좀 바쁠 것 같아요. 때가 되면 소운 씨랑 계속 같이 있어줄게요.”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면서 김서진은 생각에 잠긴 듯 말했다.비록 그는 여전히 매우 평온한 듯 보였지만 한소운이 보기에는 그가 전화를 받은 후 마음속에 뭔가 숨기는 일이 있다고 느꼈다."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긴건가요?" 그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
"알았어!"손을 들어 그의 머리를 밀치고 그녀는 웃으면서 말했다."너는 정말 왜 이렇게 말이 많니. 난 예전에 왜 몰랐지!그리고, 나는 지금 네가 도대체 나한테 관심을 갖는 건지, 아니면 내 뱃속에 있는 아이에 관심을 가지는 건지......김서진,나 질투나!""당연히 둘 다지, 다 나의 소중한 보물인걸!"그는 웃으며 그녀를 품에 안고 그녀의 볼에 뽀뽀를 하고, 참지 못해 또 뽀뽀를 했다.그녀는 그의 보물이였다. 그는 반드시 그녀를 어떠한 상처도 받지 않게 하도록 잘 보호할것이다.서진은 마음속으로 굳게 결심했다.——김씨 집안의 저택.저택에 도둑이 들어는지 이른 아침부터 소란이였다.분명히 뒤집혀진 흔적이 있었지만 도둑은 잡지 못했다. 하지만 귀중한 물건은 사라진것 같지 않았다. 모두 아직 발견하지 못한건 없는지 자신의 물건을 점검하고 있었다. 또 한 무리의 사람들은 cctv를 모니터링 하고 있었다.정말 공포스러웠다!소리 없이 저택에 잠입하여 감시카메라에는 아무런 흔적도 찍히지 않았고 아무도 보지 못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의 침실이 다 어지럽혀졌음에도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했다.생각해보면 만약 도둑이 그들의 목숨을 해치려했다면 얼마나 쉬운일이 겠는가. 생각해보면 등골이 서늘해졌다. 할머니는 이 일을 반드시 철저히 조사하고 안전조치를 가강해야 한다면서 이른 아침부터 경찰에 신고하라고 소리쳤다. 서진이 문에 들어섰을 때, 온 방에 사람들이 모여서 이러쿵저러쿵 말하는 것을 보았다.참으로 드문 일이였다.오랜만에 김씨네 집안 사람들이 이렇게 모이는 것을 보았는데 이런 일로 모이다니 가소롭기 그지 없었다."서진, 이 일은 당신이 반드시 똑똑히 조사해야 합니다. 이것은 당신의 체면아 깍이는 일입니다!"김지영은 그를 보고 얼른 마중나와서 말했다.그녀의 방은 복도 가장 안쪽에 있었는데도 도둑에게 어지럽혀져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 자신의 옷장이 열려 있는 것을 보고 순간 자신이 닫는 것을 잊은 줄 알았는데 도둑을 맞았다는것을 알고 나서 놀라서 비명을
소은은 고개를 들어 눈물을 참으며 말했다. “한 가지 이상한 게 있어요.”“무슨 일이에요?” 임남을 달래던 임상언이 무심히 되물었다.“로사 왕자는 감금된 것이 아니라 그날 Y국으로 송환되었다고 들었는데, 그렇다면 왜 그동안 로사 왕자와 연락이 닿지 않았던 걸까요?” 소은의 말에 임상언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두 가지 가능성이 있겠죠. 신호가 나쁘거나 핸드폰을 확인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 로사 왕자가 저희 연락을 거부하고 있을 수도...”두 사람은 잠시 눈을 마주쳤다. 말은 없었지만, 둘 다 이미 답을 얻은 듯했다. 로사 왕자가 그토록 연락을 피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도 나름의 계획을 세우고 있는 건가?...3일 후. 소은은 마지막 침을 놓고 손을 거두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여왕을 쳐다보며 말했다. “오늘 시술로 폐하의 다리에 감각이 돌아오실 겁니다. 하지만 일어서는 건 천천히 시도하셔야 합니다. 너무 서두르시면 안 돼요.”소은은 말을 마치고 갑자기 미소를 지었다.“무엇 때문에 웃는 거지?” 여왕은 여전히 자신의 다리를 어루만지며 물었다. 이미 이틀 전부터 약간의 감각이 돌아왔음을 느낀 터라, 소은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소은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제가 쓸데없는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요. 사실 R10 실험을 고집하신다면 결국 폐하께서는 이 몸을 떠나게 되실 텐데, 제가 이 몸에 애쓰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여왕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계속한 거지?”“어쩌면, 폐하께서 마음을 바꾸실 지도 모르니까요.” 소은은 부드럽게 대답했다. “어쩌면 자신의 몸이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거든요.”“우리 모두 이 세상에 올 때 두 손은 비어있지만, 이 몸만은 오로지 우리 자신의 것이죠. 몸마저 버리신다면, 그 영혼은 여전히 진짜 자신일 수 있을까요?”“그렇구나.” 여왕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
소은은 조용히 몸을 일으키며 여왕을 쳐다보았다. “물론이죠.” 소은은 담담하게 답했다. 그 대답에는 원망이나 비난의 기색은 전혀 없었다.“그렇다면... 조금 아쉽네.” 여왕은 생각에 잠긴 듯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기 마련입니다. 세상 모든 일은 균형을 맞추려 하죠. R10이 폐하께서 이루고자 하는 꿈이라면, 저는 그것을 막을 수 없어요. 다만, 그때가 되어 성공하든 실패하든, 저는 그 모습을 보지 못할 테니 부디 후회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소은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문 밖으로 나갔다.릭은 여전히 문 앞에서 대기 중이었다. 그녀와 여왕의 대화가 거의 다 들렸던 듯, 둘의 시선이 잠시 교차했다. 소은이 그를 지나쳐 나가자, 릭은 곧장 방으로 들어갔다.“여왕 폐하.” 릭은 여왕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그녀의 다리에 꽂힌 은침을 보자 릭의 눈빛이 굳어졌다. “이건...”“괜찮아. 곧 소은이가 와서 침을 빼줄 거야.” 여왕은 무심하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릭은 여전히 불안한 눈빛으로 말했다. “폐하께서 너무 방심하시는 것 아닙니까? 만약 한소은이 폐하께...”“그럴 리 없다.” 여왕은 단호히 그의 말을 잘랐다.릭은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설마 그 여자를 믿으시는 겁니까?”여왕은 대답 대신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녀도 릭의 질문이 아니었다면 자신이 소은을 믿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오랜 세월 누구도 쉽게 믿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그녀는 소은을 의심하지 않았다. 심지어 은침에 독이 묻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제가 가서 잡아오도록 하죠.”여왕이 생각에 잠기자 릭은 바로 뒤돌아섰다.“거기 서!”여왕은 결연히 말했다. “난 믿어.”릭은 한참을 침묵하며 여왕의 결정을 받아들였다....임상언은 아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비록 아들을 구하려는 결심을 굳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희망이 사라지는 듯했다.
소은은 허리춤에서 허리띠처럼 생긴 물건을 꺼내더니 조심스럽게 풀어내며, 그 안에 숨겨진 가느다란 은침을 꺼냈다.“이건...” 여왕은 깜짝 놀라며 소은을 쳐다봤다. 소은이가 은침을 항상 가지고 다닐 줄은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말해봐, 네 요구가 뭐지?” 여왕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마음을 가다듬으려 애썼다. 너무 무리한 요구라면 거절하면 그만이다. 여왕은 절대 소은에게 휘둘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소은은 차분하게 말했다. “제가 여기서 나올 수 있었던 건 로사 왕자님 덕분입니다. 그러니, 왕자님을 책망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그게 다야?” 여왕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소은이 여기까지 와서 자신과 조건을 따지는데, 결국 요구한 게 단지 로사를 처벌하지 말라는 거라니. 자신이 잘못 들은 건가 싶었다.“로사는 내 아들이다. 내가 정말 내 아들에게 손을 댈 리는 없지. 괜히 기회를 헛되게 쓴 건 아닌가?” 여왕은 고개를 저으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전 폐하께서 정말 로사 왕자님께 처벌을 내리시지 않을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왕자 폐하께서 저를 구해준 건 사실이기에 저도 왕자 폐하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소은은 조용히 말했다. “게다가 지금 왕자 폐하를 감금하시고 자유를 제한하고 계시지 않나요?”여왕은 의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니야. 난 단지 로사를 Y국으로 돌려보냈을 뿐이야.”“로사가 여기서 내 일을 여러모로 방해하긴 했지만, 우리 모자 사이가 더 악화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국내에서도 로사가 필요하니 Y국으로 돌려보낸 것뿐이다.” 여왕은 담담하게 말했다.“그런데 왜 왕자 폐하의 전화가 연결되지 않죠?” 소은은 잠시 멈칫했다. 단지 귀국했다면 국제전화를 받을 수 있을 텐데, 연락이 닿지 않았기에 여왕이 로사를 가둬놓았다고 오해할 수밖에 없었다.여왕은 깊은 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나도 잘 모르겠군. 그날 내가 화가 났던 건 사실이지만, 곧바로 Y국으로 돌아가도록
“삼일이면 됩니다.” 소은은 여왕을 쳐다보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삼일? 고작 삼일?” 여왕의 눈에는 믿기지 않는 놀라움이 서렸다. 그녀는 적어도 몇 달, 아니 최소한 몇 년은 걸릴 줄 알았다. 그러나 고작 삼일이라니, 그녀로서는 상상도 못 한 시간이었다.삼일쯤이야. 십 수년을 이렇게 버텨왔는데, 삼일쯤 더 기다린다고 달라질 게 뭐 있겠는가?“삼일 안에 정말 나아질 수 있는 건가? 내가 정말 다시 일어서서 걸을 수 있는 건가?” 여왕은 두 손으로 자신의 다리를 힘껏 눌렀지만 여전히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그녀는 소은의 말을 쉽게 믿을 수가 없었다. 이 다리가 감각을 잃은지 너무 오래되어 치료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여왕은 여러 나라의 명의를 찾아 다녔지만, 그들은 단지 병의 악화를 늦출 수 있을 뿐 다리를 완전히 회복시키는 건 불가능하다고 했었다. 그러나 지금 소은은 그녀 앞에 서서 확신에 찬 얼굴로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녀는 속으로 자신도 모르게 그 말을 믿고 싶어졌다.“이전처럼 완벽하게 걸을 수 있을 거라고 장담할 순 없어요. 너무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아서 근육이 많이 위축됐거든요. 하지만 서서히 일어나서 조금씩 회복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소은은 진지한 어조로 답했다.여왕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정도라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젊었을 때처럼 완전히 회복되는 것을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만약 휠체어와 지팡이 없이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 그 자체로도 그녀에겐 더할 나위 없는 희망이었다.“좋아. 삼일, 기다리겠네. 필요한 게 있나?” 여왕은 기분이 좋아져 말을 한층 부드럽게 했다.“임남...” 소은이 말을 꺼내자마자 여왕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녀는 곧바로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 “그건 안 돼. 그런 요구는 하지 마라.”“제가 말한 건 임남을 바로 풀어달라는 게 아닙니다. 그냥... 그 아이가 괜찮은지 알고 싶고, 가능하다면 아버지와 한 번 만날 기회를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 실험을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은 저와 프레드 뿐이기 때문입니다.” 소은은 잠시 생각하다가 덧붙였다. “아니면 주효정을 믿으실 건가요?”“나는... 아무도 믿지 않아.” 여왕은 얼굴을 차갑게 굳히며 휠체어를 돌렸다.“여왕 폐하께서 이 실험에 집착하고 계시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인가요? 세상을 둘러보고 싶다거나, 짐을 내려놓고 잠시 쉬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으신가요? 수십 년간 왕좌에 오르셨지만, 정말로 아직도 그 삶이 좋으신가요? 언제나 긴장하며 위태로운 자리를 견디는 고단한 나날, 정말 아직도 벗어나고 싶지 않으신가요?” 소은은 여왕의 등을 쳐다보며 부드럽게 물었다.여왕은 아무 말 없이 자신의 무릎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살짝 떨구었다. 그녀는 시선을 다리로 내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세상을 둘러본다? 나는... 걷는 게 어떤 느낌인지도 잊어버렸어.”여왕은 오랜 세월 동안 다리를 쓰지 않았고, 처음에는 억지로라도 일어설 수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상태는 악화되었고 이제는 아예 휠체어 없이는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그녀는 휠체어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소은이 ‘세상을 둘러보라’는 말을 꺼내자 가슴이 아팠다.“만약... 폐하께서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요? 제가 다시 걷게 해드린다면요?” 소은은 조용히 여왕의 뒤에 서서 말했다.여왕은 잠시 멈칫하더니, 눈빛이 날카롭게 변하며 휠체어를 돌려 소은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정말이냐?” 여왕의 눈에는 억누를 수 없는 희망과 깊은 의심이 뒤섞여 있었다.소은은 대답 대신 그녀의 시선을 천천히 여왕의 다리로 내리고, 천천히 다가가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손을 뻗어 여왕의 무릎 위에 가볍게 손을 올렸다.여왕은 살짝 몸을 떨었다. 사실, 그녀의 다리는 거의 완전히 감각을 잃은 상태라서 소은의 손길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아마도 너무나 간절히 다시 일어서고 싶기 때문이었을 것이다.소은은 아무 말 없이 여왕의
“맞아요, 임남 때문이기도 하지만, 폐하 때문이기도 합니다.” 소은은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제가 정말로 떠나버렸다면, 가장 초조해지는 사람은 사실 여왕 폐하 아닐까요?”여왕은 코웃음을 치며 차갑게 말했다. “내가 초조해질 이유가 뭐지? 어차피 내 손엔 네 약점이 있잖아. 너를 다시 잡아오는 것도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고.”“약점이요? 임남 말씀이신가요?” 소은은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잊지 마세요, 임남이는 제 아들이 아닙니다. 저에게는 제 친자식이 셋이나 있어요. 만약 제가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임남을 포기해 제 아이들을 지키려 한다면, 그 약점이 과연 제게 약점이 맞을까요?”여왕이 입을 열기도 전에 소은은 다시 말을 이었다. “게다가, 그 아이에겐 목숨을 걸고서라도 구하려는 아버지가 있습니다. 만약 임상언이 폐하께 끝까지 맞서기로 결심한다면...” “폐하께서야 높은 자리에 있으니 이런 평범한 상인을 하찮게 여기실 수 있지만, 임상언 씨가 단순한 상인이 아니라는 걸 잊으시면 안 됩니다. 임상언 씨의 사업은 세계 곳곳에 뻗어 있어요. 임상언 씨가 목숨을 걸 각오가 되어 있다면 그 어떤 일도 할 수 있겠죠. 혹시라도 바깥에 소문이 퍼져 폐하와 Y국의 명망이 손상된다면, 곤란하지 않겠습니까?”“너...” 여왕은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반박할 말이 당장 떠오르지 않았다.여왕이 화가 난 것을 보고, 소은은 한결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화내지 마세요. 제가 돌아온 건 폐하를 자극하려는 게 아닙니다. 함께 최선의 방향을 찾고자 돌아온 거예요. 사실 폐하께서 H국에 오신 일이 밝혀진 건 아니지만, 꽤 오랜 시간 H국에 머물고 계셨습니다. 정말로 H국이 이 사실을 모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세요?”여왕은 말없이 그녀를 쳐다보았다. “지금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건 폐하의 체면을 살려드린 겁니다. 그러나 폐하께서 이곳에서 계속 머무르시며 혹여 무리수를 두신다면, 얼마나 더 체류하실 수 있을까요? Y국도 계속해서
릭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여왕은 모니터에서 시선을 돌리며 담담히 말했다. “소은을 데려와. 어디 한번 무슨 변명을 할지 들어보자. 또 어떤 이야기를 꾸며낼지 궁금하네.” 여왕은 휠체어를 살짝 돌려 더 이상 모니터를 보지 않았다.“여왕 폐하?” 릭은 망설이다가 말했다. “한소은이 거짓말을 할 걸 아시면서도 굳이 왜...” 그러나 여왕은 그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단호히 말했다. “듣고 싶어!” 이 한마디에 릭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그는 곧장 소은이 있는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소은이 정말로 잠이 들려고 하던 순간, 문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그녀는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다. 눈을 뜨는 순간, 문이 열리면서 릭이 문 앞에 서 있었다. 그의 얼굴은 굳어 있었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여왕께서 한소은 씨를 만나고 싶어 하십니다.” 소은은 차분한 표정으로 릭을 쳐다보았다. 마치 모든 상황을 예견한 듯 고요하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와 동시에 임상언은 소은보다 먼저 일어나 문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가 문에 도착하자마자 릭이 손을 들어 그의 앞을 막았다. “그쪽은 남아 계시죠.” “뭐? 우리 둘은 같이 온 거야!” 임상언은 소은을 돌아보며 그녀에게 눈짓으로 도움을 요청했다. 릭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여왕 폐하께서 그쪽을 부르지 않았으니 여기 남으시죠.” 릭은 더 이상 임상언에게 말을 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소은은 임상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부드럽게 말했다. “절 기다리고 있어요.” 임상언은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억지로 마음을 다스리며 그녀가 릭과 함께 방을 나서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조심해요.” 임상언은 소은을 향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소은은 미소를 지어 그에게 답했고, 릭을 따라 여왕의 방으로 향했다. 익숙한 길을 따라 걷는 그녀는 곧 여왕의 방에 도착했다. 릭이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여왕 폐하, 데려왔습니다
소은이 임상언을 데리고 대사관에 도착하자,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눈에 띄게 당황했다.한 사람이 서둘러 소식을 알리러 가더니, 이내 주변 구석구석에서 누군가가 몰래 그들을 엿보는 기척이 느껴졌다. 곧이어, 소은이 잘 알고 있는 여왕의 측근 몇 명이 경계 어린 눈빛으로 다가와 그들을 안으로 안내했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그들은 소은과 임상언의 몸을 샅샅이 검사하며 위험 물품을 소지하지 않았는지 확인했다. 철저한 검사가 끝난 후에야 비로소 경계가 풀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여왕을 만나지 못했고, 한적하고 깊숙한 방에 대기하도록 배정받았다. 오랜만에 돌아온 이곳은 소은에게 익숙하면서도 낯설게 느껴졌다. 익숙한 것은 이 장소였지만, 낯선 것은 지금의 마음가짐이었다. 예전에는 이곳이 싫고 불쾌하기만 했으며,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은 장소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임무와 사명을 가지고 돌아왔고, 그녀의 목표는 단순히 여기를 떠나는 것이 아닌, 중요한 일을 완수하고 무사히 돌아가는 것이었다.반면, 임상언은 눈에 띄게 불안해 보였다. 그는 두 손을 맞잡고 무릎 위에 놓은 채,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다리를 가볍게 떨고 있었다. 소은은 그의 초조함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임남을 생각하면 마음이 몹시 불안하고 조급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여기까지 왔으니 임남을 반드시 볼 수 있을 거예요. 그러니 긴장 좀 풀어요.” 소은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임상언은 그녀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발을 땅에 꾹 눌러 다리를 멈췄다. 겉으로는 조금 안정된 듯 보였지만, 그의 얼굴은 여전히 긴장감이 가득했고 미세하게 떨리는 얼굴 근육이 그의 불안한 마음을 보여주었다. 마음을 진정시키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소은은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다.두 사람은 한참을 기다렸지만, 여왕을 만나러 오라는 사람은커녕 상황을 확인하러 오는 사람조차 없었다. 긴장했던 임상언은 결국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대체 무슨 의도인 거죠? 왜 아직
“제발 부탁이에요. 안에서는 소은 씨 말만 따를게요. 소은 씨가 시키는 대로 다 할 테니까, 제발 절 데려가 주시면 안 돼요?” 임상언은 진심 어린 목소리로 소은에게 간청했다. 자존심은 이미 버린 지 오래였다. 아들을 만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그를 이 지경까지 이르게 했다. 소은이 반드시 돌아가겠다고 결심한 순간, 임상언은 이미 마음을 굳혔다. 자신이 함께 가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같이 가면 의심을 받거나 제지를 당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전 아니에요.” 임상언은 계속 설득을 이어갔다. “임남이 그 안에 있다는 걸 모두 알고 있잖아요. 제가 아들을 만나고 구하려고 하는 건 당연한 일이에요. 그리고 아들을 위해서 제 목숨을 바치는 것도 이해될 수 있는 일이죠. 그러니 제가 가는 게 가장 올바른 선택이에요.” 긴 침묵 끝에, 소은이 입을 열었다. “임상언 씨 말이 맞아요. 전 동의합니다.” 소은은 말을 마치고 서진에게 시선을 돌렸다. 서진은 잠시 생각하더니 천천히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저도 동의합니다.” 원청현은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두드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나도 동의하지.” 잠시 침묵하던 진정기 역시 마침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동의합니다.” 마지막으로 원철수는 주변을 둘러보며 한숨을 내쉬고 손을 펼쳤다. “모두 동의했는데 내가 뭐라고 반대하겠어. 나도 찬성이야.” 사실 원철수의 의견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임상언에게 지지를 표현하는 의미였다. 임상언은 눈시울이 붉어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모두들 고마워요.” “이게 뭔 감사할 일이라고. 어쨌든 안에 들어가면 절대 신중해야 해. 무슨 일이 있어도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네 입으로 한 말 반드시 지켜!” 원철수는 그의 결심을 칭찬하면서도 걱정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원철수는 속으로 임상언의 결단에 감탄했다.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그는 분명 최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