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치는 다 끝났습니다. 이제 내륙으로 들어가셔도 될 거 같습니다. 하지만 아직 재벌 몇몇이 내륙 시장을 손에 쥐고 있으니 먼저 우씨 가문의 시장을 열어야 할 것 같습니다. 생각보다 어려울 거예요.”“당연한 소리. 어렵지 않으면 내가 너희에게 왜 의뢰했겠어?”우해영이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너희가 쓸모가 없었다면 찾지도 않았겠지.”우해영의 말에 남자는 감히 토를 달지 못하고 입을 꾹 다물었다.“재벌이면 어때. 윤씨 가문을 봐. 고작 그 정도 장난에 난리가 나서 아직 일어서지 못하고 있잖아. 차씨 가문도 우리가 한바탕 했었고. 김씨 가문은......”우해영이 입꼬리를 치켜올리고 이어서 말했다.“김씨 가문은 걱정할 거 없어. 내가 지시한 일만 잘해둬.”“네!”남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그제야 만족했는지 우해영이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주변을 둘러 보았다. 멀리서 걸어오는 김승엽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먼저 가봐.”“네?”“가라고!”커피잔을 탁 내려놓으며 우해영이 다급하게 말했다.그러자 남자는 벌떡 일어나 자리를 떠났다. 그가 카페 문을 열고 나가는 순간 김승엽이 들어오며 그를 한번 쏘아보았다.무슨 영문인지 모르는 남자는 어리둥절했다.김승엽은 화가 잔뜩 난 얼굴로 우해영에게 성큼성큼 걸어갔다.“우해영 씨!”김승엽이 예의 바르게 그녀의 이름을 부른 것 같지만 우해영은 지금 그가 얼마나 화가 났는지 알 수 있었다.“김승엽 씨.”우해영은 그가 화났음을 알아차리고도 아무렇지 않은 듯 고개를 들며 담담하게 말했다.“정말 우연이네요.”그녀의 태도에 김승엽은 흠칫 놀랐다. 저번 데이트 때 그녀는 단 한 번도 이런 말투로 그와 말한 적이 없었다. 데이트하는 내내 겁에 질린 듯 한껏 몸을 움츠렸던 그녀가 지금, 이 순간 허리를 쭉 펴고 담담하게 말하고 있다.심지어 다른 남자와 있는 모습을 그에게 들켰음에도 당황하지 않았고 변명조차 하지 않았다.아무렇지 않다는 그녀의 태도에 김승엽은 더욱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녀의 말에 김승엽은 뺨을 얻어맞은 것 처럼 얼굴이 얼얼하게 아파져 왔다. 분노로 들끓던 가슴이 그녀의 눈짓 한 번에 단숨에 사그라들었다.김승엽은 지금 자기의 눈앞에 있는 이 여자가 저번 데이트 때 만났던 여자와 완전 딴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저번과 똑같은 얼굴이 아니었다면, 그녀가 한 말이 저번 데이트와 전혀 상관없는 말이었다면 아마 자기가 사람을 잘못 봤다고 생각했을 것이다.“그게......”김승엽은 더 이상 기세등등하지 않고 기죽은 목소리로 대답했다.“그래요. 미안해요. 내가 말이 헛나왔어요. 하지만 당신이 이해해 줬으면 해요. 세상에 어느 남자가 자기의 약혼녀가 다른 남자와 있는 모습을 보고도 화가 나지 않을 수 있겠어요. 해영 씨, 난 당신을 사랑해요!”말을 하면서 그녀의 손을 잡으려고 김승엽이 손을 뻗었다.우해영은 그가 자기의 손을 잡을 기회를 주지 않고 획하고 손을 빼버렸다. 그녀가 손을 뺄 거라는 걸 예상하지 못한 김승엽은 엉거주춤하게 손을 테이블 위로 내려놓았다.“해영 씨.”“그렇게 부르지 마요!”우해영이 차갑게 그를 쏘아보았다. 그가 자기의 이름을 다정하게 부른다는 것 만으로도 역겨웠다.“왜요? 저번엔 이렇게 불러도 뭐라 하지 않았잖아요. 내가 뭐 잘못한 거라도 있어요? 그래서 화가 난 거예요? 아까 그 일 때문에 이러는 거예요? 아까는 내가 잘못 했어요. 용서해 주세요.”잠시 고민하다 김승엽은 방금 산 팔찌를 조심스럽게 그녀에게 건넸다.“자요. 당신 생각이 나서 선물도 샀는데 여기서 마주치다니. 우린 정말 운명인가 봐요.”“여기서 당신을 우연히 마주친 게 얼마나 기쁜지 당신은 모를 거예요. 해영 씨, 이제 그만 용서......”“한 번 더 말하겠는데 그렇게 내 이름 부르지 마요!”우해영이 얼어붙을 듯한 차가운 말투로 그의 말을 끊었다.어찌나 차가운 말투였는지 김승엽은 몸서리를 쳤다. 한 번만 더 그렇게 불렀다간 큰일이 날 것 같았다. 겁에 질려 조금 떨리는 손으로 다시 팔찌를 그녀에게로 밀었다.“그럼, 마음에
말을 마치고 그녀는 바로 카페를 나가려 했다.그 모습을 보던 김승엽은 얼른 그녀를 쫓아갔다.“어디 갈 건데요? 내가 데려다줄게요.”“나도 차 있어요.”우해영은 멈추지 않고 빠르게 걸어 나갔다.“차는 기사 보고 먼저 집에 가져가라 하고 내 차 타고 가요. 오랜만에 얼굴 보는 건데 이렇게 가지 말고 좀 더 서로를 알아 가는 게 어때요?”“기사 없이 내가 운전해서 온 거에요.”“당신이 운전했다고요? 운전할 줄 모른다면서요.”김승엽은 저번에 얼핏 그녀가 운전할 줄 모른다고 들었던 것 같았다. 헤어질 때도 기사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가는 걸 보았었다.그의 말에 잠시 멈칫하던 우해영이 잠시 생각하더니 대답했다.“배웠어요.”“이렇게 빨리요?”김승엽은 깜짝 놀랐다. 겨우 며칠 만에 운전을 배웠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면허를 따려면 며칠 가지고는 턱도 없었다.“계속 배우고 있었어요. 면허는 최근에야 딴 거고.”우해영은 더 이상 그와 얽히고 싶지 않아 대충 핑계를 대었다. 그러고는 몸을 돌리고 팔을 쭉 뻗어 김승엽과의 거리를 벌렸다.“김승엽 씨. 당신과 계속 만나거나 결혼할 생각은 있지만 자중하셨으면 해요. 난 나만의 사적인 공간이 필요해요. 이걸 이해하지 못하고 날 존중해 주지 않는다면 더 이상 만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그녀의 말을 들은 김승엽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저번에 그녀와 데이트하고 이제 모든 게 자기 손에 쥐어져 있다고 생각하던 중이었는데 오늘 본 우해영은 이 모든 걸 다시 원점으로 돌려놓았다.어딘가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또 어디가 이상한지 알 수 없었다.그녀의 날카로운 눈을 보며 김승엽은 순간 소름이 끼쳤다. 두 발은 마치 그 자리에 고정된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아, 알았어요.”우해영은 그제야 팔을 내려놓았다. 뒤로 두 발 물러서서 가던 길을 계속 갔다. 이윽고 김승엽의 시선에서 멀리 벗어났다.그 자리에 멍하니 있던 김승엽은 혹시라도 그녀가 한 번쯤은 뒤로 돌아보지 않을까 했지만 헛된 생각이었다. 우해영은 한치의 미련
부지가 그리 넓지 않은 성남의 한 전원주택. 도심과의 멀리 떨어진 탓에 이 지역의 개발 가치는 높지 않았다. 자연 집값이 높지 않고 인가도 드물었으며, 이 저택의 주인을 아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우해영의 차가 천천히 들어와서 멈춰 서자, 곧바로 쫓아 나온 고용인이 차문을 열었다.차에서 내린 해영은 다시 주차하도록 고용인에게 차 키를 던지고 곧장 집안으로 들어갔다.“아가씨 돌아오셨습니까?”집안에서 마중 나온 고용인이 인사를 했다. 그리고 허리를 굽혀 슬리퍼를 건네주며 구두를 벗는 것을 조심스럽게 거들었다. 또 다른 고용인이 다가와 코트를 벗고 환복을 도왔다. 이런 전체 과정이 물 흐르듯이 자연스러웠고, 그녀 역시 익숙한 모습이었다.두 팔을 벌려 고용인들의 시중을 받던 해영이 눈을 가느다랗게 좁히며 물었다.“그녀는?”“해민 아가씨는 방 안에 있습니다.”고용인이 작은 소리로 대답했다.“음.”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그녀는 팔을 내리고 가볍게 움직였다. 두 걸음도 채 떼지 않았을 때 잠시 생각하던 그녀는 다시 몸을 돌렸다.“잠깐.”옷을 들고 나가려던 고용인을 불러 세운 그녀는 다가가 코트 주머니에서 쥬얼리 박스를 꺼내 한 번 쳐다보았다.“가도 돼.”해영은 아래층에 있는 방으로 내려갔다. 하루 두어 시간 정도만 해가 들어오는 이 반지하 방에 우해민이 거주하고 있었다.물론 집에는 이런 방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3층 건물에는 방도 많았고, 창고, 헛간만해도 여러 칸이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해민을 이 반지하방에서 지내게 했다.그 이유는 단 하나, 해민이 자신의 눈앞에 어른거리는 것을 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이미 이렇게 뛰어난 자신이 있는데, 왜 부모님은 저런 쓸모없는 인간을 또 낳았는지 정말 모를 일이다. 자신과 똑 닮은 얼굴을 하고서 비실거리는 해민의 모습을 보기만 하면 화가 났다.다행히 그녀를 남긴 것도 나름 쓸모가 있어서 어쨌든 병신 쓰레기를 기른 것만은 아닌 셈이다.해영은 방문을 열고 곧장 안으로 들어갔다. 방안에서 기척을
‘설마 봄바람 난 건 아니겠지?’“아니, 아니야!”당황해서 허둥지둥 고개를 흔들며 해민이 변명했다.“난…… 난 그 사람 좋아하지 않아요.”“좋아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내 대신이라는 것을 잊지 마. 그 남자와 진짜 연애하라고 내보낸 게 아니란 말이야. 우해민, 넌 영원히 빛을 볼 수 없는 내 그림자라는 걸 기억하는 게 좋을 거야.” 고개를 아래로 축 늘어뜨린 채 암담한 눈빛을 한 해민이 고개를 끄덕였다.“알고 있어, 언니. 난 영원히 언니의 그림자고, 언니하고 겨룰 수 없다는 걸.”이 말에 해영이 냉소를 터뜨렸다.“너도 네가 어울리는 지 좀 봐.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나보다 나은 게 하나도 없었어. 그런데 뭘 가지고 나와 겨룰 건데?”“잘 들어. 이런 하찮은 것도 그 남자가 나에게 사 준 거야. 단지 네가 불쌍해 보였을 뿐이야. 물론 앞으로도 내 대신 나가서 그 남자를 상대할 때 이걸 차고 있으면 의심하지 않을 거 아니야.”이 팔찌가 자신에게 사준 것이라는 말을 들은 해민의 얼굴이 순간 창백해지자, 해영은 기분이 좋아졌다.‘당연한 거 아냐? 나랑 얼굴이 닮았다고, 내 대신 두 번 나갔다고 자신이 뭐라도 된 줄 알았던 거야? 영원히 내 그림자 뒤에 묻혀 살아야 하는 주제에 말이야.’집에서든, 여기서든, 우씨 집안에 아가씨는 한 명 밖에 없다. 그런데 ‘둘째 아가씨’라고 불릴 주제도 안되는 저를 고용인들에게 ‘해민 아가씨’라고 부르게 한 것만으로도 이미 제 체면을 세워준 셈이었다.“너 좀 똑똑하게 굴어. 그 사람이 조그만 것도 알아채지 못하게 해. 만약 내 일에 무슨 착오라도 생기면 그 뒤는 어떻게 될지 알지?”해영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해민을 노려보았다.어깨를 움츠린 해민이 모기만한 소리로 대답했다.“알, 알았어요…….”“음, 오늘 우유는 마셨어? 몸무게는 쟀고?”고개를 끄덕인 해영이 다시 물었다.“쟀어요. 46kg였어요. 우유도 마셨어요.”해영이 눈썹을 찡그렸다.“넌 어째서 살이 붙지를 않니? 네가 먹은 고기들은 다 어디
“알, 알았어요…….”해민의 목소리는 귀 기울여 듣지 않으면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았다.해민을 향해 입에 올릴 수도 없을 정도로 짜증이 난 해영이 손을 휘휘 저었다.“됐어. 넌 잠자코 있어, 여기저기 돌아다니지 말고. 내가 한 말 기억해!”“기억해!”해민은 마치 로봇처럼 기계적으로 그녀의 말을 따라했다.해민에게 화를 내는 것도 귀찮았다. ‘아무튼 어릴 때부터 늘 이 모양이었다니까.’해영이 몸을 돌려 방을 나갔다.방 안에서 해민은 쥬얼리 박스 안의 진주 팔찌를 보았다. 한 알 한 알 모두 둥글고 윤택이 나는 진주는 정말 예뻤다! 언니에게 사준 것이지 그녀에게 준 것이 아니라는 게 아쉬울 따름이었다.그녀에게 뭔가를 사주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녀에게 신경 쓰지 사람도 없을 것이고. 항상 사람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언니였다. 언제나 언니만 눈부시게 빛이 났다. 자신은 그저 미운 털 박힌 그림자일 뿐이었다. 존재해서는 안 되는.팔찌를 꺼내 손목에 차 보았다. 그녀의 손목이 아주 가는 편이다. 몸이 마르다 보니 손목 역시 해영보다 더 가늘었다. 그런데 진주 팔찌는 해민의 손목에 딱 맞았다. 여유 공간이 그리 많지 않을 정도로.만약 이 팔찌를 언니가 손목에 찬다면 분명 꽉 조였을 것이다. 남자는 정말 사이즈를 잘 못 맞췄다!……김승엽이 집에 돌아오니, 그의 어머니, 김씨 집안 노부인이 이미 집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희색이 만연한 모습으로 집안의 물건을 보며 말했다.“승엽아, 왔니? 어서 와서 좀 보거라. 내가 오늘 특별히 나가서 물건들을 좀 많이 샀단다. 이것들 해영이에게 잘 맞을 지 한 번 보거라. 해영이가 좋아할까?”그런데 승엽은 도시 별 관심이 없는 모양이다.“해영이가 좋아할지 제가 어떻게 알겠습니까?”손을 휘젓고는 소파에 무겁게 몸을 던진 승엽이 풀이 죽은 표정을 지었다.“…….”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노부인은 얼굴의 웃음기를 거두었다.“무슨 일이니?”가까이 다가와 고개를 숙여 바라보더니 손을 뻗어 그의 이마
아들의 혼란스럽고 초조한 모습을 본 노부인이 말을 꺼냈다.“자, 아들, 엄마에게 그때 둘이 뭐 했는지,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 말해 보렴. 엄마가 여자의 마음을 읽어 볼게. 네가 무심결에 한 행동이나 말이 그녀의 기분을 나쁘게 했을 지도 있잖니?”‘!!!’승엽은 옆으로 몸을 비스듬히 기울이면서 불신 가득한 표정으로 엄마를 바라보았다.“아이고, 어머니 농담하지 마세요. 해영 씨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머니가 어찌 알겠어요? 해영 씨랑 나이차가 얼마나 나는데…….”“왜, 엄마가 나이 많아서 못 미덥다는 거냐?” 노부인은 아들을 힐끗 쳐다보더니 불쾌한듯 말했다.“아…… 아니에요. 그게 아니라 어머니도 해영씨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을 거라는 거죠.”“그 거야 모르는 거지…….” 노부인은 자신감이 넘치는 듯 강한 의욕을 내비치며 말을 이어갔다. “네가 간과한 게 하나 있는데…… 우리는 모두 여자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어. 다른 건 몰라도, 여자에 대해서는 이 에미가 목석 같은 우리 아들녀석보다 훨씬 잘 알 거다. 자, 자, 얼른 얘기해. 안 그러면 이 에미는 간다. 아들 혼자 천천히 잘 생각해 보렴!”나가려는 모양새를 취하는 노모를 본 승엽은 옛말에 구두장이 셋이 모이면 제갈량보다 낫다고, 혼자 속으로 끙끙 앓느니 엄마한테 털어놓고 방법을 찾아보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승엽은 재빨리 얼른 손을 뻗어 노부인을 붙잡았다.“알겠어요. 우리 어머니를 누가 말려요? 말씀드릴게요.”“오늘 쇼핑 나갔다가 해영 씨 주려고 진주 팔찌를 샀어요. 선물 사고 나오는데 그녀가 글쎄 맞은편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는 거에요.”노부인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그래서?”“혼자가 아닌 웬 남자랑요. 참고로 그 남자는 제가 모르는 사람이에요. 다른 남자랑 맞선 보는 걸 딱 걸린 게 아닌가 싶어요! 어머니, 이미 약혼까지 한 사람이 외간남자와 커피 마신다는 게 말이 돼요?!”돌이켜 생각해보니 또 다시 화가 치밀었다. 이야기를 듣던 노부인은 눈썹을
방금 전 까지만 해도 기세등등하던 승엽은 엄마의 얘기를 듣고 바로 의기소침해졌다.“네. 하고 싶어요!”“그러려면 해영 씨를 잘 어르고 달래야 해!”승엽의 손등에 자신의 손을 걸치고는 한숨을 내쉬며 노부인이 말했다.“내가 너를 너무 오냐오냐 키웠어. 여자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전혀 모르고 있어. 완전 쑥맥이야.”“여자들은 말이야, 어르고 달래야 해. 네가 다짜고짜 따지고 들면 상대방 체면이 뭐가 되니? 게다가 그룹의 오너로 매일 얼마나 많은 남자들을 상대하겠어? 그런데 고작 이런 것도 견디지 못한다면 앞으로 어떻게 우씨 집안에 도움이 되겠어?”엄마의 말이 꽤 일리가 있다고 승엽은 생각하고 수긍했다.“어머니, 제가 잘못했어요. 제 생각이 짧았어요. 하지만, 저도 사과했다고요! 바로 사과했는데…… 여전히 화가 안 풀린 거 같아요. 찬 바람이 쌩하고 불어요.”“아유, 걔가 어떤 사람인지 몰라? 한두 마디로 달랜다고 될 거 같니?” 노부인은 정색하며 계속 말을 이어갔다.“음…… 해영 씨를 불러내서 비싼 선물도 사주고 다시 정중하게 사과도 하면 아마 그녀도 기분이 좋아지고 곧 괜찮아질 거야.”“…….”승엽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고작 그 정도로 된다구요?”승엽은 엄마의 말이 왠지 믿음직스럽지 못했다.“그럼! 엄마가 좀 전에 뭐라고 그랬어? 여자는 어르고 달래야 한다고 했잖아. 엄마 말만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겨!”엄마의 말이 미심쩍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별다른 뾰족한 수가 없었다. 오늘 해영의 싸늘한 태도를 생각하니 다시금 혼란스럽고 간담이 서늘했다.“참, 진주 팔찌를 선물했다고?”“네.”“받았니?”승엽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받았어요!”“그럼 됐어! 선물을 받았다는 건 너한테 마음이 있다는 거야. 안 그럼 받지도 않았을 테니까!” 노부인은 다소 안심한 듯 말했다. “잘 해봐. 아직 기회가 있어. 잘 잡아야 해.”대화를 이어가고 있을 때 승엽의 핸드폰이 울렸다. 발신자번호를 확인한 그의 얼굴에 웃음꽃이 번졌다.“어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