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벌써 오셨어요?”한소은이 웃으며 그들을 맞이했다. 손을 뻗어 김서진의 목에 감자 그가 자연스럽게 그녀의 허리를 감쌌다.두 사람이 이렇게 달콤한 모습을 보니 오이연은 내심 부끄러워졌다. 그러고는 옆에 서 있는 목석같은 자기의 남자를 흘겨보았다. 자기는 아마 평생 이런 달콤함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당신 지금 며칠째 집에 들어오지 않았는지 알아요? 내가 오지 않으면 오늘도 집에 가지 않을 생각이었죠?”김서진은 그녀에게 작업실을 만들어 준 게 조금 후회되었다. 이렇게까지 작업실에 박혀 일만 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아니에요. 오늘은 거의 다 끝났어요. 이제 조향 단계만 남았는걸요. 향수가 완성돼 가요.”한소은이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다.“며칠 동안 제대로 자지 못했어요. 오늘은 집에 가서 푹 자야겠어요.”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오이연을 바라보며 말했다.“너도 가서 푹 쉬어.”“난 안 힘들어. 여기 남아서 데이터를 조금 더 기록해야 겠어.”오이연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그러자 옆에 서 있던 서한이 입을 열었다.“아니, 당신 힘들어.”그의 말에 오이연이 어이없다는 듯 대답했다.“하나도 안 힘들거든!”“아니야. 힘든 게 눈에 훤히 보여.”서한은 항상 무표정인 얼굴이다. 그런 얼굴로 이런 말을 하니 오이연은 정말 자기가 힘든 거 같았다.그녀가 무의식 적으로 얼굴을 만지며 의아했다.“정말 힘들어 보여?”한소은은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피식 웃어 버렸다. 그제야 오이연은 서한에게 속아 넘어갔다는 걸 깨달았다.오이연이 옆에 있던 쿠션을 그에게 던졌다. 날아오는 쿠션을 재빠르게 받아내고 아무렇지 않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그만해. 서한씨 말이 맞아. 이틀간 정말 힘들었어. 나도 이렇게 힘든데 너라고 안 힘들었겠어? 다들 집에 가서 푹 쉬자. 남은 건 내일 마저 하면 되고......”한소은은 잠시 머뭇거리다 이어서 말했다.“그리고 예상하는데 이 향수가 출시되면 앞으로 우리 작업실은 더 바빠지게 될 거야.”“이렇게 자신
김서진이 어디로 갔는지 운전석은 비어 있었다. 순간 그녀는 심장이 철렁하는 것 같았다.몸을 바로 앉아 차 주위를 둘러보았다. 차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전화하는 김서진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자 그제야 마음이 안정되는 것 같았다.훤칠한 몸매, 무언가에 집중하고 있는 그의 모습은 정말 시선을 끌었다.언제부터인가 그가 조금씩 그녀의 마음을 차지했다. 노형원과의 일을 겪고 난 후 그녀는 더 이상 아무에게도 마음을 주지 않을 줄 알았다. 설령 마음을 줬다 해도 그때처럼 그렇게 깊이 빠지지 않을 줄 알았다. 하지만 그녀의 생각이 틀렸다.마음을 줬을 뿐만 아니라 그때보다 더 깊이 김서진이란 사람에게 빠져 있었다. 한소은의 시선을 느낀 김서진이 고개를 그녀가 있는 쪽으로 돌렸다. 차가웠던 시선이 그녀의 눈동자에 마주치자 따뜻하게 변했다.한소은은 그를 향해 웃어 보이며 차에서 내렸다.그의 앞에까지 걸어갔을 때 마침 그도 전화를 끊었다. 그의 몸에는 차가운 기운이 맴돌았다.누구와 통화를 한 건지는 모르지만, 확실한 것은 그다지 즐거웠던 통화는 아니었나 보다.한소은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지금 이런 상황에서 언짢은 통화는 수도 없이 많았다. 그녀가 다가가 김서진의 팔을 감았다.“왜 안 깨웠어요? 나 오래 잠들었죠?”“내가 작업실에 당신을 찾으러 가지 않았다면 잠도 안 잘 생각이었나요?”혼내는 말투였지만 김서진의 눈에는 안쓰러움이 가득했다.“가서 얼굴부터 씻어요. 음식을 배달시켰으니 곧 올 거예요. 밥 먹고 가서 자면 되죠.”“네.”한소은은 고개를 끄덕였다.얼굴을 씻고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배달이 왔다. 김서진은 그녀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을 시켰다. 그녀가 힘든 것을 감안해 집으로 배달시킨 것이다.두 사람은 식탁에 마주 앉았다. 그들의 앞에 먹음직스러운 음식들이 가득했다. 한소은은 열심히 젓가락질하며 말했다.“왜 이렇게 많이 주문했어요. 다 먹지도 못할 텐데.”“그러면 당신이 많이 먹으면 되겠네요. 못다 먹으면 낭비하는 거니까.”“장난해요
한소은은 핸드폰을 한번 슥 보더니 받지 않고 바로 끊어 버리고는 이어서 밥을 먹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전화벨 소리가 다시 울리기 시작했다. 끊으면 다시 울리고 울리면 그녀가 다시 끊기를 반복했다.“누가 이렇게 귀찮게 하는 거예요? 내가 대신 혼내줄게요.”한소은의 얼굴에 불쾌함이 가득 묻어 있는 걸 보던 김서진이 장난치듯 말했다. 그러면서 다시 울리는 핸드폰을 빼앗아 가려 했다.그녀가 다시 전화를 끊으며 고개를 저었다.“그럼 많은 사람을 혼내야 할 거예요.”김서진이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혹시 기자들인가요?”한 사람도 아니고 이렇게 빈번하게 전화하는 데는 기자 말고는 없을 것이다.그녀는 더 이상 입맛이 없어졌다. 배도 슬슬 불렀던 참이라 어깨를 한번 으쓱하고는 일어서서 그릇을 치우려 했다.“그대로 둬요.”김서진이 입을 열었다.“내가 치울게요.”한소은은 그의 말을 따르지 않았다. 그와 함께 그릇들을 주방으로 가져가 식기 세척기에 가지런히 넣었다. 세척기가 돌아가는 소리를 들으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거실에 두었던 핸드폰은 쉴 새 없이 울리는 중이다. 그녀는 누가 걸려 온 전화인지 보기도 싫었다.“하 씨 어르신 일 때문인가요?”김서진은 매번 이렇게 원인을 잘 캐치 했다.한소은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이 사건이 폭로되면 한동안은 조용할 날이 없게 된다는 거 알고 있었어요.”그녀가 이 일을 폭로했다는 증거는 없었다. 하지만 일이 폭로되기 전부터 그녀와 협회 간에 많은 일들이 있었고 좋게 해결되지 않았다. 갑작스럽게 줄지어 추문이 폭로되는 통에 대중들의 시선은 그녀에게 집중될 수밖에 없다.“누가 폭로했건 그게 사실이라면 두려울 게 없어요.”“두려운 게 아니에요. 그저 조금 짜증이 날 뿐이에요.”한소은은 두 팔로 몸을 지탱하며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처음부터 그녀는 그저 조용히 조향사가 되고 싶었을 뿐이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모두가 좋아하는 향수를 만들고 싶었다. 다른 스타일과
“당신이 상대하기 싫으면 내가 나서서 막아 줄게요.”김서진이 그녀의 어깨를 끌어안으며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이런 일들은 얼마든지 그가 처리해 줄 수 있었다. 그녀가 홀로 해결하겠다고 고집을 부리니 어쩔 수가 없었다. 이렇게 작은 아내에게서 이런 수단들을 어떻게 생각해 낸 건지 알 수가 없었다.“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절대 물러서지 않을 거예요!”그녀가 곧게 서며 고개를 저었다.“그것보다 핸드폰 번호를 새로 개통해야겠어요.”기자들의 전화가 귀찮다고 전원을 끌 수는 없는 일이다. 만에 하나 중요한 소식을 놓치기라도 하면 그것은 온전히 그녀의 손해였다. 하지만 이렇게 끝도 없이 전화가 걸려 오게 둘 수 없으니 다른 방법을 생각해야 했다.“그건 간단해요. 바로 준비하라고 말할게요.”김서진이 말하며 그녀와 함께 주방에서 나왔다. 계속 울리는 핸드폰을 보며 그가 참지 못하고 물었다.“한가지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 있는데......”“네?”한소은은 따듯한 물 두 컵을 따라 그에게 한잔 건네며 짧게 대답했다.“하 씨 어르신이 후각을 잃었다는 소식이 사실인가요?”솔직히 이 말을 전해 들었을 때 김서진은 크게 놀랐다. 한소은이 내보낸 소식이란걸 몰랐다면 누가 지어낸 말에 하 씨 어르신이 당한 것이라고 생각 했을 것이다.그는 한소은을 절대적으로 믿었지만 그래도 궁금함을 참지 못했다.컵을 잡은 한소은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잠시 머뭇거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당신은 언제부터 알고 있었던 거예요?”만약 이 사실이 진실이라면 정말 그녀가 대단한 것이다.하 씨 어르신은 조향 업계에서 그 누구도 움직일 수 없는 그런 위치에 있는 인물이다. 지금 조향을 종사하는 사람 중 그의 제자도 많았다. 그의 제자들이 또 제자를 거두어 그의 편에 설 사람은 수도 없이 많을 것이다.‘이렇게 많은 사람 중 아무도 그가 후각을 잃었다는 걸 몰랐다고?’자기가 가진 정보에도 하 씨 어르신이 후각을 잃었다는 정보는 없었다. 설령 이런 방향으로 생각하지 않아서 알지 못
하 씨 어르신이 후각을 잃었다는 소문은 삽시간에 퍼졌고 영향력 또한 엄청났다.그가 조향 업계에서 권위적인 존재인 만큼 아무도 그의 자리를 넘볼 수 없었다. 하지만 하룻밤 사이에 이 권위가 무너졌으니, 조향사들의 신념이 무너진 것과 다름이 없었다.정하진에게도 스트레스가 쌓였다. 조향 협회의 부회장으로서 짊어져야 할 책임이 컸고 협회까지 관리해야 했기에 그야말로 골머리를 앓는 중이다.그는 지금 손에 있는 일을 잠시 미뤄두고 제성에 다녀와야겠다고 생각했다. 상황부터 정리하고 이 사건에 대해 어떻게 해명해야 할지, 어떤 반격을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 윤설아가 찾아왔다.“당신이 어쩐 일이에요? 우리 사이의 일은 저번에 얘기가 다 끝난 거로 알고 있는데.”사실 그녀가 왜 찾아온 건지 정하진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계획에 동참할 생각이 없었고 그녀 또한 자기가 원하는 여자가 아니었다.“맞아요. 하지만 이틀간 이렇게 많은 사건이 터지고 당신이 마음을 바꾸었을 줄 알았어요.”윤설아가 가볍게 웃으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내가 마음을 바꿀 줄 알았다고요?”정하진은 눈썹을 한번 치켜올리더니 책상에 놓인 자료와 서류들을 마저 챙겼다.“그 종이 쪼가리들은 왜 챙겨 가는 거예요? 어차피 이젠 다 쓸모없는 것들인데. 한소은이란 여자 그렇게 호락호락한 여자가 아니에요. 내가 그 여자와 한번 맞서 봐서 알아요. 말수도 적고 연약해 보이지만 사실 누구보다 고집이 센 사람이에요. 그 여자 마음속의 계략은 나 못지않게 많죠. 하 씨 어르신도 이렇게 만들었는데 못 할 일이 뭐가 더 있겠어요?”정하진은 그녀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녀가 한 말은 그의 속마음과 같았다.한소은이 이렇게 자기를 애먹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저 협회의 권력과 수단을 좀 가하면 그녀가 항복할 줄 알았다. 이렇게 협회 자체를 흔들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던 일이다.며칠간 협회는 난장판이 돼버렸다. 협회에 몸을 담은 모든 사람이 위기를 느꼈다. 아무도 몰랐던 은밀한 비밀들이 속속히 폭로
말을 좀 심하게 했지만 사실이기도 하다.정씨 가문의 복잡성은 외부의 보통 사람이 상상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니다. 특히 자손이 많고, 여러 세대가 한 가족에 살고 있으니 눈코 뜰 사이 없이 분쟁이 자자했다. 재산과 가업을 쟁탈하기 위해 각자의 수법을 썼다.정하진은 가업에 큰 욕심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자기의 것을 남에게 양보하는 일은 결코 없다.그는 조향산업협회에서부터 지금 이 자리에 올라섰다. 그때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자기의 의사를 견지했던 이유도 사실 다른 길을 개척하려고 했기 때문이다.조향사는 정씨 가문의 안중에 들어가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는 이 산업이 제대로 발전하기만 하면 매우 번영하고 활력이 넘치는 산업이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또한 이 사업이 국내서는 아직 잘 알리지 못해서 발전하는 공간과 여지가 많다고 생각했다.그리고 그는 이미 협회의 부회장이다. 2년만 더 버티고 회장 자리에 오르면 그는 이 업계의 선도이자 최고가 된다. 그때면 제자들이 많아서 정말 사업을 하거나 다른 일을 해도 문제가 없을 것이다.물론 더 중요한 것은 바로 이 협회에서 정치계의 두령들과 접촉하는 기회가 있다. 이것은 자신한테든 정씨 가문한테든 모두 득이 된 일이다.정씨 가문의 사람들은 모른다. 그냥 그가 진취심도 없이 하루 종일 여자들의 물건에 심취해 있다고 생각한다.웃기시네! 그들이 그의 야망을 어떻게 알겠는가?"그럼 알고 싶네요, 만약 제가 당신과 협력한다면 당신은 저에게 무엇을 가져다줄 수 있을까요?"현재까지 한 얘기는 모두 자신이 그녀에게 가져다줄 수 있는 이익인데 그럼 그녀는 그에게 무엇을 가져다줄 수 있을까?이 말을 듣자 윤설아는 가능성이 보여서 기뻐했다."뻔하잖아요! 만약 우리가 같이 있게 된다면 정씨 가문의 세력으로 대윤 그룹을 가질 수 있어요. 마찬가지로, 제가 대윤 그룹을 장악한다면 앞으로 대윤 그룹도 당연히 당신 즉 내 남편의 가장 든든한 후원이 될 것이죠! 우리가 손을 잡으면 못할 일이 뭐가 있겠어요?”정하진은 눈썹을 찌푸리며
정하진 쪽은 해결했지만 윤설아의 마음이 아직 편치 않았다. 한편으로는 그 조향사와 윤소겸을 아직 찾지 못했고 다른 한편은...... 바로 윤백건 쪽이다.만약 그가 정말 어떤 유언장을 남기기라도 한다면 그 약해 보이지만 속셈이 있는 큰어머니에게 약점이라도 잡힌 날이면 그녀의 삶은 분명 골치 아프게 될 것이다."엄마, 이 일은 엄마가 나서 줄 수밖에 없어."그녀는 요영의 앞에 쪼그리고 앉아 간절히 말했다."큰어머니는 항상 엄마의 말을 가장 잘 듣잖아? 엄마가 큰어머니더러 큰아버지의 권력과 주식을 내놓도록 만들어야 해. 그렇지 않으면 난 여전히 회사에서 자리를 잡기가 어려워.""네 큰아버니께서 유언장을 쓰시겠다는 거야?"요영이 생각해 보다가 물었다."응." "그건 우리를 경계하고 있다는 뜻인데...... ."그녀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을 계속하였다."지난번에 갔을 때 큰아버지의 건강 상태는 어땠어?""좋지 않아, 응급처치까지 했었는데 살아났어."곰곰이 생각해 보자 그녀는 아쉬운 느낌이 들었다. 그때 차라리 죽어버렸으면 지금 이런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될 텐데."설아, 넌 실책했다는 생각이 안들어?""응?"요영은 손을 들어 그녀의 머리를 쓰담았다."첫째, 네 큰아버지의 건강 상태가 이미 이렇게 되었으니 간호를 더욱 철저하게 해서 관련 없는 사람은 그의 휴양을 방해하지 못하게 해야 지. 두 이사가 어떻게 이 상황에서 그의 마음을 더 힘들게 할 수 있겠니? 둘째, 네 큰어머니의 건강도 계속 좋지 않으니까 많이 쉬게 해야지. 네 큰아버지를 보살피는 일은 간병인 찾으면 되는 거야. 어떻게 큰어머니를 그렇게 힘들게 만드니?”“......”윤설아는 조용히 듣다가 요영의 말이 채 끝나지 않은 것 같아서 캐물었다."그럼 셋째는?""셋째는...... ."요영은 윤설아의 머리를 쓰담는 손을 멈추고 천천히 일어섰다. "네 큰 오빠가 며칠 동안 집을 나섰다. 이미 변고를 당했으니 이런 소식을 오랫동안 숨겨봐야 아무런 의미도 없어. 차라리 일찍 회사
배도 고프고 피곤도 하다. 얼마 동안이나 소리를 쳤는지 입이 말랐고 목구멍에서는 연기가 날 것 같았다. 거기에 기대면서 더 이상 소리칠 힘이 없어졌다. 이때 문이 열렸다.철문 소리가 날카롭게 귀를 찔렀다. 구두가 바닥을 밟는 소리는 마치 사람을 형장에 보내려는 듯 가슴이 두근두근 했다.피곤하게 눈꺼풀을 치켜든 윤소겸이 오고 있는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 사람은 쟁반을 들고 느릿느릿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크고 검은 그림자만 보였다.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그는 그 사람이 웃고 있는 것 같았다. 심지어 그 웃음 때문에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당신은...... 누구야?"윤소겸은 머뭇거리며 물었다. 몸은 무의식적으로 뒤로 물러났다.그러나 뒤에는 더 이상 물러날 여지가 없었다. 그의 등은 벽에 붙어 있었고 눈빛은 불안했다."윤 부장님, 절 못 알아보세요 ?"그 사람은 윤소겸의 앞에 서서 아래로 그를 바라보았는데 마치 자신의 사냥감을 보는 것 같았다. 입가에 냉담한 웃음기가 어리고 눈빛은 너무 차가웠다."너야?!"그의 얼굴을 똑똑히 본 윤소겸은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졌다.그는 몸을 벌떡 펴고 앉으려고 했지만 몸이 너무 허약해서 갑자기 힘을 쓰는 바람에 몸의 상처 부위가 찢어졌다. 너무 아픈 그는 이를 드러내며 입을 벌렸다."네가! 너라니! 왜 날 납치했어? 돈을 원하는 거야? 우리 아빠가 당장 사람을 찾아 너를 죽일 수도 있어?!"그는 화가 나서 욕을 했지만 상대방은 무관심한 모습이였으며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남자는 가볍게 웃으며 입가에 조롱하는 미소를 지었다."안 믿어요!"말하면서 천천히 몸을 낮췄다.남자의 몸이 움직임에 따라 희미한 빛이 그의 몸을 비추면서 남자의 얼굴이 드러났다--노형원."너...... .""윤 도련님께서 아직 자신의 상황을 잘 모르시는것 같은데요? 당신이 여기에 오기 전까지 어떤 처지인지 기억하십니까?"라며 노형원이 한마디 일깨워 주었다.윤소겸은 잠깐 멍해있다가 한순간의 막막함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