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일이에요?”김서진은 겉보기에 침착해 보였지만 이마에 식은땀이 맺혀 있었다. 그녀가 무사한 것을 확인한 뒤에야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괜찮아요?”한소은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부주의로 물건을 좀 떨어뜨렸어요.”“소은 씨만 괜찮으면 됐어요.”그는 여기저기 쏟아진 약물들을 힐끗 보고 문밖에 대기하고 있던 서한에게 말했다.“여기 정리 좀 해달라고 해. 다치지 않게 조심하고.”그러고는 한소은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물었다.“더 챙길 거 있어요?”“여기요.”그녀의 손에는 작은 유리병 두 개가 들려 있었다. 만반의 준비가 끝난 것이다.“이제 가도 될까요?”한소은은 약간 피곤한 기색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와 함께 하루 종일 돌아다니고 실험실에 반나절이나 틀어박혀 있었으니 피곤할 만도 했다.담당자들은 간만에 회사를 방문해서 참관도 없이 실험실만 잠깐 쓰고 떠난다는 소리에 조심스럽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불편하면 오늘은 저택에 돌아가지 않아도 돼요.”차에 탄 김서진이 말했다.소성을 떠나면 안 된다고 했지만 그가 마음먹고 가겠다고 하면 막을 사람이 없었다.아직 소성 차씨 저택에 머무는 이유는 거기 감금당해서가 아니라 한소은을 위해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기 위함이었다.“아니요. 그냥 돌아가요.”한소은은 고개를 그의 어깨에 가볍게 기대며 말했다. 그가 옆에 있으니 두려울 게 하나도 없었다.“오늘 밖에서 자도 편한 밤을 보내지는 못할 거 같거든요.”차성호가 대단한 증거를 찾았다면 당장 공격을 개시하려 들 것이다.흔들리는 차 안에서 그녀는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가끔은 핸드폰을 들고 확인하고 다시 내려놓았다가 다시 핸드폰을 꺼내 무언가를 검색하기도 했다.생각했던 것과 같이 외할아버지의 사망 소식이 기사 일 면을 장식하고 있었다.재밌는 점은 사망 기사가 중점이 아니라 며칠이나 지난 시점에 사망 기사가 나왔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사망 소식은 차씨 가문에서 발표한 것도 아니었다.차씨 가문이 무슨 이유로 가문 큰 어른의 사망 소식
“알겠어요.”전화를 끊은 그녀의 입가에 미소가 짙어졌다. 비웃음과 슬픔이 뒤섞인 미소였다.사건의 진실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외할아버지가 편히 잠드시게 하려면 모든 진실이 밝혀져야 한다. 하지만, 어쨌든 차씨 가문의 일이고 그녀에게는 가족이니 슬프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었다.이때 손등에서 따뜻한 감촉이 느껴졌다. 고개를 숙여 보니 남자의 큰 손이 그녀의 손을 감싸고 있었다.“주저하지 말아요. 외할아버님도 가문이 여러 갈래로 흩어지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을 거예요.”“네.”한소은은 그의 어깨에 기대 눈을 감았다. 지금은 휴식이 필요했다. 저택에 도착하면 폭풍우가 기다리고 있을 거다.차씨 가문 저택.차가 저택에 도착했다. 거실 전체에 전등이 환하게 켜져 있었지만 전혀 따뜻하고 아늑한 분위기는 나지 않았다. 오히려 차갑고 무거운 기운이 흘렀다.한소은은 김서진과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 상석에 앉은 차국동은 김서진을 보자 미간을 살짝 찌푸렸지만 겉으로 불쾌감을 드러내지는 않았다.그의 표정을 본 한소은은 속으로 냉소를 지었다. 차국동과 차성호 둘 다 김서진의 존재를 불편해했다. 상대하기 까다로운 외부인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의 신분과 지위 때문에 함부로 내쫓지는 못하니 목 안에 박힌 가시처럼 불쾌할 것이다.김서진이 여기서 버티고 있지 않았다면 한소은은 자신의 처지가 지금보다 훨씬 처참했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늦은 시간에 쉬지도 않고 저 기다리신 거예요?”그녀는 목에 두른 스카프를 풀며 태연하게 인사를 건넸다.들어올 때 차성호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았다. 차국동의 손을 빌어 그녀를 제거하려는 걸까?“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기사에 났어. 알고 있었니?”차국동은 한소은의 눈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알죠. 제가 기사를 내보냈으니까요.”한소은은 태연하게 소파에 앉으며 피곤하다는 듯이 목을 마사지했다.차국동은 그녀가 이렇게 쉽게 인정할 줄은 몰랐는지 살짝 당황한 표정이 보였다. 사실 기사가 소성이 아닌 강성에서
“맞아요, 제가 용의자이긴 해도 조사받는 건 두렵지 않아요.” 그녀는 아무렇지 않은 듯한 웃음을 보이며 차국동에게 말했다. “다시 말하지만 여기 집안에 있는 사람 모두 용의선상에서 배제해서는 안됩니다. 여기 집에 있는 이상 어느 누구도 살해할 수 있는 기회는 있었어요. 작은할아버지가 이제 가주가 되셨고 저희 할아버지께 인정받고 싶으시다면 철저히 조사해 주세요. 잊지 마세요. 곧 사흘이라는 기한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내일 제가 만족할 수 있을만한 답변을 가져와주셨으면 합니다.”차국동은 그녀의 태도에 충격을 받고 멍해졌다. 분명 혐의가 가장 확실한 사람은 그녀고 그녀를 조사 해야 하는데 오히려 그녀가 당당하게 요구를 하고 있다.“한소은! 더 이상 변명하지 마라. 이 일을 더 크게 키우지 않는 이유는 차 씨 가문의 체면을 위해서다. 네가 지금 소식을 퍼뜨리는 바람에 이렇게 일이 커졌는데 도대체 무슨 속셈으로 이러는 것이냐?!” 그는 지팡이로 땅을 치며 말했다. 좋아, 내일 장로들이 올 때까지 기다릴 필요도 없다. 내가 지금 말해줄게. 감정 보고서에 이미 향초에 독성이 들어있다고 쓰여 있다. 너도 생각이 있다면 인정해라. 이 일은 가문 내규에 따라 징계하도록 하겠다. 거부한다면 넌 바로 감옥에 가게 될 것이다!”이것은 죄를 그대로 그녀에게 뒤집어 씌운 꼴이다. 증거라고 할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적어도 그럴듯한 증거를 만들어 올 줄 알았지만 단지 두세 마디의 말로 그녀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고 있다.한소은은 웃으며 말했다. “좋아요, 전 몰래 하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그럼 법정에서 뵙죠, 제가 범인이라면 감옥 갈게요.”“다만...” 그녀는 잠시 망설이다가 말을 이었다. “경찰은 저희 가문처럼 다른 얘기는 하지 않을 거예요. 모든 증거를 위주로 조사할 것입니다. 마지막에 누가 감옥에 갈지는 모른다는 거죠.”“넌 네가 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거냐?” 차국동은 뭐가 생각났는지 옆에 있던 김서진을 바라보았다. “뒤에 든든한 후원자가 있어서 내 말은
그녀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김서진은 오히려 어찌할 바를 몰랐다. “제 말이 불편하게 한건가요?”“그럴 리가요.” 한소은은 그의 허리를 감싸 안은 채 그에게 안겨 말했다. “고마워요.”제 인생에 나타나줘서 고맙고 저를 아껴주고 저와 함께 걸어줘서 고마워요. 항상 망설이지 않고 제 뒤에서 지켜줘서 고맙고 항상 저와 함께 해줘서 고맙고...“바보!” 김서진은 그녀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으며 그녀를 껴안았다. “그분들은 경찰이 개입하면 일이 복잡해지고 통제하기도 어려워질 것 같아서 소식을 퍼뜨리려고 하지 않는 것 같아요.”“경찰이 개입한다면 아들이 아버지를 모함한다는 뉴스로 인해 차 씨 가문의 체면이 말이 아닐 거예요.” 한소은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래서 차 씨 가문이 경찰에 신고 안 하는 방법을 선택한 것 같아요.”“그럼 당신은요?” 그는 고개를 숙이며 물었다. “지금까지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만 들었을 뿐 속사정도 모르고 신문에도 보도되지 않았잖아요. 그래서 당신도 신고할 생각이 없는 건가요?”“이런 일은 후폭풍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어요. 차 씨 가문은 모두 외할아버지가 쌓아 올린 것이에요. 외할아버지의 노력을 헛되이 하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할아버지를 해친 사람은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그럼 어떻게 하려고요?”“둘째 할아버지가 말한 것처럼 차 씨 가문에는 가문 내규가 있어요. 그러니 한번 기다려 보려고요. 차성호가 어떤 수를 가지고 있는지!” ——윤 씨 가문.회사에서 피곤한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온 윤설아는 들어오자마자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아버지를 만났다.“아빠.” 그는 미소를 지으며 다정하게 말했다. “오늘 일찍 오셨네?”그러나 윤중성은 평소처럼 온화한 미소를 보이지 않고 오히려 불편한 안색을 보이며 말했다. “설아야, 이리 와봐라!”윤설아는 어리둥절해하다 곧 무슨 일인지 짐작하고 웃으며 걸어갔다. “아빠, 기분이 별로 좋아 보이지 않아, 무슨 일 있어?”“내가 물어볼게, 오늘 동생이 찾아갔었지?” 그
윤백건은 저번달에 출장을 갔고 며칠 전에 돌아왔다. 그런데 며칠 만에 또 사라졌다고?그는 요즘 너무 자주 자리를 비워서 윤중성 또한 그가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었다. 요즘 그의 마음이 모두 그의 아들에게 쏠려있고 그를 부양하는 데에 정신을 집중하고 있었다. 집안에 여자도 들이고 싶었지만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그렇다니까!”윤설아는 매우 놀랐다. “설마 모르고 계셨어?”“나도 본 지 오래됐는데 내가 어떻게 아니.” 윤중성은 다시 물었다. “맞다, 요즘 회사에서 무슨 프로젝트를 준비하는 거야? 큰아버지는 왜 계속 출장 가있는 거야?”사실 윤중성이 사업에 재능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권력을 잡으려는 욕심도 있었지만, 실력만으로 따진다면 그의 형에게 절대 뒤처지는 것은 아니었다.단지 그의 하나뿐인 아들 윤최웅이 사업에 관심이 없다. 그는 기회만 있다면 가문의 재산을 자신이 갖고 그의 아들에게 물려주고 싶어 한다.“모르겠어. 큰아버지가 직접 뛰어야 할 큰 프로젝트도 없어. 비서한테도 물었었는데 모른다 더라구. 사실 내가 들은 바로는...”갑자기 소리를 낮추니 윤중성은 더욱 궁금해졌다. “뭘 들었어?”그녀는 주위를 둘러본 뒤 하인에게 물러서라고 손짓하였다. “사실 내가 듣기로는 큰아버지가 출장 가신다고 해놓고 몸이 좋지 않아 병원에 계신다고 들었어. 하지만 비밀로 하셔서 아무도 몰라.”“정말?!” 윤중성은 의외라는 듯한 표정으로 물었다.당연히 이 소식은 그에게도 회의적이었다.그의 친형이 입원한다면 비밀로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괜히 말 나오는 게 아닌 것 같아. 최근 회사에는 큰아버지께서 직접 뛰실만한 큰 프로젝트가 없거든, 최근에 큰아버지가 건강이 좋지 않으신 것 같아. 이건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정도야. 큰 오빠는 지금까지도 아무 소식이 없어.”원래는 조금 의심스러웠지만 그녀의 말을 들어보니 윤중성은 점점 그럴듯한 것 같았다.“만약 사실이라면 우린 잘 생각해야 한다.” 그는 생각에 잠긴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웃으면서 탁자 위의 유리잔을 들고, 그 안의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정말 차가웠다.“맞다, 아빠, 새 프로젝트 일 내가 생각해 봤는데 소겸이한테 맡겨도 별 문제 없을거 같아. 나중에 삼촌들 몇 분한테 얘기하면 될 거야. 하지만 그전에 담당자한테...”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윤중성이 짜증을 내며 말했다. “나도 알아, 그... 노형원 맞지? 요 며칠 동안 바빠서 물어볼 겨를이 없었는데 그 사람 평판 나쁜 거 알고 있니? 예전에 있던 회사가 파산했다고 하더구나.”“응, 알고 있어. 알면서 고용한거야. 이미 사업 경험도 있고 능력도 있어서 이 일에 익숙해. 이렇게 하는 거 어떨까? 그를 보조로 두고 소겸이를 도와주도록 하는 거지. 어찌 됐든 내가 항상 소겸이 옆에 있을 수는 없잖아. 어떻게 생각해?” 그녀는 생각한 뒤 계획을 말했다.윤중성도 이런 계획이 괜찮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아들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 그도 잘 알고 있었다.비록 자신의 아들이 사업을 이어받기를 원하고 어렸을 때부터 잘 키웠다고는 하지만 회사에서의 경험이나 운영 경험이 없기 때문에 아는 사람이 옆에서 조언을 해주는 것이 가장 좋다.단지...“그래도 네가 좀 더 신경을 써주는 것이 좋을 것 같구나. 남에게 기대는 것은 좋지 않아. 그리고 노형원 그 사람도 주의 깊게 봐줘.”“알겠어.” 윤설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먼저 들어가 볼게.”그녀는 위층으로 올라가다가 아래층에서 인기척이 느껴져 잠시 멈추고 아래층 쪽을 바라보았다. 과연 윤소겸이 방에서 나와 기쁜 표정으로 아버지에게 달려갔다.“아빠, 전 아빠가 나서야 될 줄 알았어요!” 그는 기쁜 듯이 말했다. “회사에서 누나가 계속 핑계만 대고 동의하지 않더라고요.”윤설아는 차갑게 웃다가 윤중성이 하는 말을 들었다. “이제 만족했으니 더 이상 시끄럽게 하지 마라.”“역시 아빠예요. 저도 시끄럽게 하고 싶지 않은데 자꾸 누나가 일부러 괴롭히니까...”“너도 그렇게 말하지 마라.” 윤중성은 그의 말을 끊고서 말을 이었다. “네
“뭐라고, 내 자리에 앉히겠다고?!” 노형원은 돌아와서 의자에 앉기도 전에 이 소식을 들었다.“뭐가 급해서 그래, 프로젝트 매니저 자리가 신경 쓰이는 거야? 아니면 너의 목표가 딱 거기까지 인거야?” 윤설아는 그의 반응을 예상하고는 침착하게 말했다.“내가 이 자리에 앉은지 며칠이나 됐다고 자리를 양보하라는 거야?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보겠어. 프로젝트 매니저 자리도 내주고 심지어 도와주라고? 난 정말 너의 능력이 의심스럽다.” 그는 자신의 넥타이를 잡아당기며 그녀를 비꼬았다.윤설아는 화내지 않고 차분하게 말했다. “오히려 그 사람을 제거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지 않아?”“무슨 뜻이야?” 노형원은 여전히 기분이 나아지지 않았다.“왜 걔가 계속 프로젝트 매니저 자리에 앉으려고 하는지 알아?” 그녀는 입가에 웃음을 머금고 그녀의 아버지가 승낙한 이유에 대해서 말했다. “이 새로운 프로젝트에서 성과를 낸다면 그게 바로 큰 성공이잖아. 걔는 우리 아버지가 후원하고 아버지는 회사의 원로들을 끌어 모은 뒤 성과가 나기를 기다리고 있어. 회사에서 한 걸음 한 걸음 올라가 마지막에 모든 것을 가져가려고 하는거야.”그녀는 겉으로는 담담하게 말하고 있지만 말을 할수록 눈에 한이 맺혀 있었다.비록 그녀는 입으로 말하지는 않았지만 모든 것을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다. 아버지는 사생아를 위해서 정말 고심하고 힘을 써가며 계획하고 있다. 결국 사생아일 뿐인데 그에게 모든 것을 쏟아붓고 있다.그리고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의 사랑을 얻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고 그녀는 훌륭한 능력을 가졌지만 아버지의 눈에 들지 못했다. “그러면 이 일에 승패가 가려진다는 말이야?” 노형원도 차츰 안정을 되찾고 그녀의 말 뜻을 알아차렸다.윤설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만약 이 프로젝트에서 성과를 낸다면 당연히 큰 성과지만 만약 실패한다면? 또 문제가 생긴다면? 그럼 책임을 지는 사람은 프로젝트 매니저가 될 거야.”“만약 네 프로젝트가 그렇게 된다면 내가 어떻게 너에
“전투력이 충분한 무술 가문 출신이면 충분해.”“차성호가 무술 가문으로 데려간 거야? 누구?”노형원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도 자세히 알아보았는데 차 씨 가문 전체가 부풀려졌고 지금은 몇 명의 제자들을 제외하고는 다른 사람들은 별로야. 이미 사업에 집중하느라 무술에는 소홀하게 된 것 같아. 다른 점으로는...”그는 피식 웃더니 말을 잇지 않았다.윤설아도 그가 누굴 말하려고 하는지 알고 웃었다. “왜 계속 말 안 해?”“말해야 할 거 다 말했어. 오늘은 푹 자고 내일 좋은 소식 기다리자.” 그는 하품을 하고 전화를 끊으려 했다.“말해줘...”그녀의 말에 그는 끊지 않고 그녀의 말을 들었다. “모든 사람들이 약점이 있다며, 그럼 너는? 너의 약점은 뭐야?” “......”노형원은 잠시 침묵하다가 반문했다. “그럼 너의 약점은 뭐야?”그는 물은 뒤 전화를 끊었다. 사실 그녀의 대답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단지...전화를 끊고 나니 이미 잠에서 깬 듯 눈을 크게 뜨고 천장을 바라보았다. 윤설아의 말 한마디가 귓가에 맴돌았다. “네 약점은 뭐야?”그의 머릿속에 수많은 장면들이 떠올랐다. 작은 열등감, 내성적이었던 성격, 출세를 위해 달려가는 모습, 강시유, 한소은, 그 후 시원 웨이브 등...한때는 자신이 강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고 정상에 설 수 있다고 믿었던 행복했던 시간이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었다.하지만 그 모든 것이 하루아침에 무너졌다.회사, 사업, 연애, 여자...모든 것들이 그에게서 멀어졌고 빚 독촉, 욕설 등을 들으며 도망치다가 윤설아를 만났다.물론 그도 잘 알고 있었다. 그녀도 자신을 구원해 줄 수 있는 천사가 아니라 그녀 역시 더 깊은 곳으로 자신을 끌어들이려는 악마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사실 같은 부류였지만 그는 기꺼이 싸우려고 한다.약점이 뭐냐고?눈앞의 장면들이 연기와 함께 걷히고, 얼굴 하나만이 남았다. 그 얼굴은 흐릿했지만 점차 또렷해지고 있었다. 그 얼굴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