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씨 가문의 로비, 오전 9시.기세가 드높고 분위기가 엄중했다.차 씨 가문의 장로들이 양쪽에 한 줄로 앉아 있고 중앙에는 차국동이 앉아 있다. 그는 가끔씩 기침을 했고, 그의 옆에는 박달나무 상자가 놓여 있었다. 굳이 열지 않아도 그 안에 차 씨 가문의 인장이 들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한소은은 특별히 검은색 옷을 입었고 안색은 다소 굳어 있었다.차국동은 그녀가 있는 곳을 향해 두 번 정도 쳐다보았다. 그는 어젯밤 일어난 일에 대해 상당히 화가 났지만, 김서진이 자리에 없었기에 어제보다는 마음이 나아졌다.이 여자는 정말 다루기 쉽지 않다! 과연 여자가 크면 집에서 내쫓아야 한다.모든 사람이 다 온 것 같았다. 차성재와 차성호만 오지 않았고 시간이 지나면서 장내가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어떤 사람은 화를 참지 못하고 물었다. “형님, 이미 30분이나 지났어요. 차성호와 차성재는 아직 오지도 않았고,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나요?”“곧 올 것입니다.” 차국동은 담담하게 말했다.그가 이렇게 말한 이상 다른 사람들도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그 누구도 그가 말한 ‘곧’이 얼마나 남았는지 알 수 없었다.한소은은 급해 하지도 않았고 아랫사람으로서 가장 뒷자리에 앉아 천천히 차를 마셨다.오늘은 ‘누명’에 관한 일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한다. 3일 동안 그들은 증거를 조작할 수도 있고 한소은도 충분히 반격할 시간이 있었다.30분 정도 지나자 해는 이미 떴고, 로비 또한 밝아졌다. 어느 자리는 눈이 좀 부셨고 덥게 느껴지는 곳도 있었다. 그때 차성호가 나타났다.한소은과 반대로 흰옷을 입고 가슴에는 흰 꽃이 꽂혀 있었다. 눈에는 기쁨이 드러나 있었다.“삼촌, 제가 좀 늦었습니다. 여러분 제가 늦어서 죄송합니다.”그가 한소은의 곁을 지날 때 그의 입가에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한소은은 고개를 들어 웃음으로 응대했다.그는 비록 정면으로 본 것은 아니었지만 그녀의 미소를 보고 약간 멍해져서 입가에 미소가 순식간에 굳어졌다.잠깐 망설
한소은은 알고 있었다. 그가 말하는 ‘외부인’이 김서진이라는 것을.“오늘 말씀드리는 것은 차 씨 가문의 큰일에 관한 것입니다.” 차국동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모든 사람들이 들을 수 있었다. “우리 차 씨 가문의 백년기업은 여기 소성에서 뿌리가 깊고 줄곧 근면한 자세로 키워왔으며 가문 내규 또한 엄격했습니다. 제 형이 갑자기 떠날 줄은 생각도 못 했습니다. 형의 갑작스러운 죽음도 가슴이 아프지만 더 가슴 아픈 사실은 사고가 아니라 의도적인 살인이라는 것입니다!”여기까지 말하고 난 뒤 그의 시선이 한소은에게로 향했다. 거의 그녀를 범인으로 보고 있는 것 같았다.그가 이렇게 직접적으로 얘기를 하자 한소은도 피하지 않고 아예 일어섰다. “할아버지 말씀은 틀렸어요.”“그래?” 차국동이 차갑게 웃었다. “내 말이 어디가 틀렸다는 거지?”“두 마디가 틀렸습니다. 첫 번째로 사람들이 다 모였다고 했는데 다 모이지 않았습니다. 차성재는 외할아버지의 친손자로 여기서 가장 중요한 사람입니다. 그가 오지 않았는데 어떻게 시작할 수 있나요?”그녀의 비난에 차국동은 대수롭지 않은 듯 웃으며 말했다. “차성재가 장손은 맞지만 결국은 손자일 뿐이다. 차성호는 네 외삼촌으로 네 할아버지의 장남인데 차성재보다 더 중요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그게 바로 두 번째로 틀린 문장입니다.” 한소은은 이어서 말했다. “오늘 자리에 계신 분들 모두 우리 차 씨 가문의 사람들이라고 하셨는데 외부인은 없으나 한 사람은 우리 가문의 사람이 아닙니다.”“응?”다른 사람들은 그녀의 말을 듣고 잠시 이해가 되지 않아 서로를 바라보았다. 차 씨 가문이 아닌 사람이 누구인지 궁금했다.“이건 정말 이해가 되지 않는구나. 내가 이렇게 오랫동안 가문에 있으면서 모든 사람들을 알고 있는데 누가 차 씨 가문의 사람이 아닌지 말해보렴.” 차국동이 차갑게 웃었다.한소은은 얕은 웃음을 보이며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앞으로 나아가 손을 내밀고 검지로 차성호를 가리켰다. “바로 저 사람이에요! 차성호
한소은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정말 상관이 없다고요? 방금 작은할아버지께서 오늘은 차 씨 가문의 회의라서 우리 가문 사람이 아니면 참석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은 외할아버지에 의해 가문에서 쫓겨났으니 우리 가문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니 여기에 서 있을 자격이 없어요!”“내가 여기 설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 네가 왈가왈부 할 일이 아니야!” 차성호는 어두운 얼굴을 한 채 말했다.“당신은 틀렸어요. 저뿐만 아니라 오늘 현장에 있는 모든 차 씨 가문의 사람들은 이 의혹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한소은은 물러서지 않았다.차성호가 반박하려 할 때 옆에 있던 차국동이 기침을 하며 말했다. “소은아, 네 말이 맞다. 하지만 성호의 말도 일리가 있어. 그때의 일들이 사실이기는 하지만 이미 오래 지났는데 아직도 부자지간에 원한이 있을 리가.”“게다가 성호가 네 외할아버지가 가장 아끼던 아들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은 없다. 집에서 쫓겨났었다 해도 일시적인 분노에 불과한데 그걸 어떻게 지금까지 끌고 올 수 있겠니... 게다가...” 그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한소은을 흘겨보았다. “그때 그 일이 있었을 때 넌 아직 어렸을 때인데 자세한 상황이 어떤지 모르는 것도 당연하지 않니.”그는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사실 계속 차성호를 돕는 말뿐이었다. 심지어 몇 마디로 당시 할아버지의 결정을 떠넘기고 있었다.과연 차국동은 차성호와 같은 배를 탔다!“게다가...” 그는 한 손을 입가에 대고 기침을 하며 말했다. “차성호는 네 외삼촌인데, 이렇게 어른에게 대드는 게 너무 예의 없는 것 아니야?”“작은 할아버지, 오늘 차 씨 가문의 모든 사람들이 외할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밝히기 위해 여기에 모였습니다. 서열로 따진다면 차성호 또한 여기서 큰소리 낼 자격은 없습니다. 그리고 외할아버지에 의해 쫓겨난 이상 차 씨 가문 사람도 아니고 제 외삼촌도 아니고, 제가 어떤 태도로 얘기하고 그런 것들은 오늘 저희가 이야기하는 것과 아무런 관련이
사실 볼 필요도 없이 한소은은 그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처음부터 이건 음모였고 음모를 뒷받침할 증거가 필요했을 뿐이다.그녀는 서류를 뜯어보았다. 안에는 두 개의 감정 보고서가 들어 있었다. 하나는 외할아버지의 사인에 대한 감정 증명서였고, 만성 독극물로 인한 심부전으로 사망했다고 적혀 있었다. 다른 하나는 그녀의 향료에 대한 감정 보고서로 성분 및 함량 등이 붉은 글씨로 표시되어 있었고 심부전을 유발하는 만성 독소가 포함되어 있었다.두 보고서를 합치면 한소은이 외할아버지를 살해했다는 증거였다.보고서를 다 읽은 뒤 차 씨 가문의 장로들은 복잡한 표정으로 앞에 서 있는 여자를 쳐다보았다. 놀라움과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쳐다보았다.그들은 모두 이 외손녀를 본 적이 있었다. 부모님이 일찌감치 돌아가셔서 외할아버지께서 차 씨 가문으로 데려왔고 어렸을 때부터 차 씨 가문에서 자랐다.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외할아버지에게 이런 짓을 할 수 있지?“삼촌, 큰아버지는 한소은의 외할아버지인데 어떻게 독살할 수 있을까요? 그중에 어떤 오해가 있는 것은 아닐까요? 아니면 어딘가 잘못됐다던가?”누군가 참지 못하고 의혹을 제기했다. 차성호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왜 하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하시는 거예요? 청순하고 귀엽게 생겼다는 외모로 보고 판단하지 말아주세요.”“무슨 조향을 배운다고 했는데 아버지가 동의하지 않으셔서 집을 나갔어요. 나중에는 누군가로 인해 외할아버지와 사이가 틀어졌고요. 제가 가문에서 쫓겨났다고요? 아예 관계를 끊은 것도 아닌데요. 난 너한테 묻고 싶어. 그동안 돌아오지 않았는데 네가 돌아오자마자 왜 아버지께 이런 일이 생긴 거야? 네가 독을 넣지 않았는데 왜 아버지께 드린 향초에서 독이 나온 거야?”“이 향초, 네가 직접 만든 거 아니야? 넌 분명 앙심을 품고 복수를 하려고 한 거야! 네 외할아버지께서 이렇게 잘해 주셨는데, 이렇게 오랫동안 너를 차 씨 가문에서 키웠는데. 만약 우리 아버지가 아니었다면 넌 이미 고아원에 버
"감히 이 향초가 네가 직접 만든 것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느냐?"차성호는 매우 자신만만해했고, 자신의 손에 있는 '증거'가 충분하다고 느꼈다."향초 안에는 치명적인 독소가 들어 있다고 이 평가서가 이미 증명을 하고 있는데도 변명을 한다고?""그게 무슨 소리죠!"한소은이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향초 안에 독소가 들어 있다고 그게 제가 넣었다는 것이 되나요? 게다가 향초에 말씀하신 독이 정말 있는지도 모르는 일이고, 설령 정말 있다고 해도 무슨 근거로 제가 넣었다고 단정할 수 있어요?"차성호는 그녀가 이렇게 말할 것을 예상한 듯 차분하게 대꾸했다."네가 인정하지 않을 줄 알았다. 하지만 서두를 것 없지, 이거에 관한 증거도 있으니까 말이야. 향초는 네가 직접 만든 거고, 너도 이 점은 인정을 했다. 네가 직접 차성재에게 줬다고 했는데 만약 네가 아니라면 차성재가 이 짓을 했다는 말이냐? 그리고!"그는 곧이어 고개를 돌려 상자를 가져오라고 지시를 한 다음 사람들을 바라보며 말했다."이 상자 안에는 아직 다 쓰지 않은 향초가 있는데, 이 향초에도 소량의 독소가 들어있지. 비록 치명적이지는 않지만, 양이 축적되면 매우 위험하다고!""이건 이미 전문인을 불러서 확인을 했으니 만약 네가 아직도 인정하지 못한다면 다시 사람을 불러서 확인해 봐도 좋다."한소은은 당연히 아무리 확인을 해도 분명 같은 결과일 것이라는 것을 안다, 그 향초들이 어디서 왔는지 잘 알기 때문이다. "괜찮습니다."그녀는 손을 들어 향초를 가져온 사람을 가로막았고, 두 눈으로 차성호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이 향초들이 독이 있든 없든 저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제 손으로 만든 게 아니기 때문이죠.""아직도 인정을 안 한다고?"차성호가 웃었다."방금 사람들 앞에서 네 할아버지에게 줄 향초를 직접 만들었다고 인정을 했지. 그런데도 사람들 앞에서 네 얼굴에 먹칠을 하겠다고?""제가 인정을 한 그 두 상자 외에 다른 것들이 어떻게 왔는지 외삼촌은 잘
차성호는 그녀가 무엇을 할 것인지, 또 무엇을 꺼낼 것인지, 마음속으로 은근히 불안했다."이 녀석이, 이렇게 많은 어른들 앞에서 무슨 수작을 부리려고?""외삼촌, 뭐가 그렇게 두려우세요?"한소은은 그를 향해 옅은 미소를 지었고, 그 미소는 그를 섬뜩하게 했다. 홀의 하얀 벽에 갑자기 프로젝터가 나타났고, 그제야 사람들은 그녀의 프로젝터가 어느새 준비되어 있었고, 벽에 비친 화면은 하나의 영상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그 영상을 다른 사람들은 처음 보면 어리둥절해 하겠지만, 차송호는 한눈에 자신과 노형원이 거래를 하는 모습이라는 것을 알아볼 수 있었다. 거리는 좀 멀었지만 촬영은 그런대로 잘한 편이었고, 노형원이 차성호에게 물건을 준 것과 그가 노형원에게 다가가 어깨를 툭툭 치는 장면까지 자세히 다 나와 있었다. 차성호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배어 있었다, 그는 그날의 만남이 그녀에게 알려지고 그녀에게 찍힐 줄은 상상도 못했다!그런데, 정말로 이런 일이 일어났다니! 그날 그는 분명 혼자 갔고 아무도 미행하지 않았음을 확인했는데, 또한 그 장소에 숨을 곳이 있을 리 없다! 머릿속이 새하얘졌지만 지금 이 순간에 그런 것들을 분석할 틈이 없었다, 이미 몇몇 사람은 화면 속 사람이 누군지 알아보기 시작했다. "저 사람……차성호 아니야?""맞네, 다른 한 명은 누구지?""저 사람들 저기서……뭐 하는 거야?"한소은은 빙긋 웃으며 여유롭게 말을 꺼냈다."여러분도 잘 보셨을 겁니다. 화면에 보이는 사람은 제 외삼촌인 차성호이고, 또 다른 분은 궁금하시겠지만, 이 사람이 누구인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상대적으로 그들이 거래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파악하셔야 됩니다."손가락을 약간 움직이자 화면이 확대되었고, 화면에는 차성호의 손이 보였으며 손에는 상자가 들려 있었다. 그 상자를 보았을 때 차성호는 남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히 상자는 포장이 되어 있어 향초가 아니라고 부인할 수 있었다."그래, 며칠 전에 친구를 만난 적이 있지. 그런
"그래!"차성호는 대답을 꺼냈다가 순간 이상하다고 생각하여 얼른 말을 바꾸었다. "아니, 그런 뜻이 아니다. 독소가 첨가된 향초는 네가 만든 것인데 다른 사람이 어떻게 가질 수 있겠니. 그는 단지 네가 일찍이 네 외할아버지에 대해 불경스러운 말을 했다고 나에게 전했을 뿐……""하지만 방금, 그가 외삼촌에게 증거를 줬다고 했잖아요."한소은은 그의 말을 끊으며 다그쳤다."왜 이렇게 빨리 말을 바꾸는 거죠?""......""됐어요!"한소은이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말했다."해프닝은 이제 끝입니다!" 그녀는 눈을 감고 고개를 들어 명상을 하는 듯하더니, 뒤돌아서 차성호를 보며 입을 열었다."외삼촌 입으로 계속 내가 독을 넣었다고 하시니, 제가 먼저 증명을 하겠습니다. 이 독은 절대 제가 넣었을 리 없어요!" "어떻게 증명을 한다는 거지?"차성호가 무의식적으로 물었다. 그러자 한소은은 그를 향해 방긋 웃어 보였고, 갑자기 그에게로 두 걸음 다가갔다."외삼촌, 오늘 제가 쓴 향수, 향이 좋지 않나요?" "……"갑작스러운 그녀의 물음에 차성호의 첫 반응은 코를 훌쩍이며 냄새를 맡았고, 그녀의 얼굴에서 웃는 모습을 보고는 바로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끼며 빠르게 숨을 거두었다."그게 무슨 뜻이지?!""그렇게 긴장하지 마세요! 이렇게 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제가 어떻게 외삼촌에게 허튼짓을 하겠어요?"그녀는 생글생글 웃으며 무해한 표정을 지었다. 말은 그렇게 해해도 차성호는 속으로 계속 경계를 했고, 여전히 거리를 유지하며 숨을 쉬지 못했다."할 말이 있으면 바로 해, 허튼수작 부리지 말고!"한소은은 그를 빤히 쳐다보며 미소를 머금었다."보세요, 외삼촌은 저한테 다가와서 냄새를 맡지도 못하잖아요. 제가 이런 수단을 가지고 있는데, 왜 큰돈을 들여서 향초에 독을 넣고 증거를 남겨서 외삼촌에게 드린다는 거죠? 제가 그렇게 멍청하다고요?""네가 한 번에 독을 넣지 않은 건 들킬까 봐 두려워서겠지. 만약 내가 제때에 돌아오지 않았다면, 그리고
"아무 짓도 안 했는걸요! 다만 외삼촌이 이렇게 화를 내는 이유가 머리가 어지럽거나......구역질이 나서 토를 하고 싶은 게 아닌가요?"그녀는 여전히 평온한 얼굴로 말했다.상황을 모르는 사람은 그녀가 차성호를 걱정해서 이런 말을 한 거라고 오해할 수도 있을 정도였다.그녀가 이렇게 말하니 차성호는 머리가 더 어지럽고 속이 메스꺼워지는 느낌이 들었고, 말할 수 없는 느낌으로 머리를 맑게 하려고 노력했지만, 갑작스러운 현기증을 통제하기란 어려웠다.그는 다급히 그녀를 붙잡고 있던 손을 풀며 말했다."너......도대체 나한테 무슨 짓을 한 거냐?!"차성호의 변화는 모두가 똑똑히 볼 수 있었다, 한소은이 도대체 무슨 일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이 또한 매우 무서웠다.모두들 화들짝 놀라서 뒤로 물러났고, 자신도 똑같이 영향을 받을까 두려웠다 특히 차국동은 가장 가까운 곳에 있지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지만, 차성호의 몸이 흔들리며 제대로 서 있지 못하는 모습을 보니 자신 또한 어지러운 느낌이 들었다.그는 황급히 뒤로 몇 걸음 물러섰고, 그녀에게서 멀찌감치 떨어져 서야 마음을 가라앉히며 말했다."한소은!! 도대체 뭘 하는 거야?!!"이는 거의 울부짖는 듯한 목소리였다.마음속의 당황스러움을 억제할 수 없었고, 은근히 그는 오늘 일이 이미 자신의 통제가 불가능한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느꼈다.이 얌전해 보이는 소녀는 웃는 모습조차 소름 끼치게 느껴졌다."작은할아버지,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제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는 상황에서 뭘 할 수 있겠어요."그녀는 어깨를 으쓱하고, 두 손을 벌리며 무고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그녀는 비록 매우 무고한 모습이었지만, 방금 모두가 차성호의 변화를 보았고 지금 그의 안색도 별로 좋지 않았다.지금 모두가 괴물을 보는 듯한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면서 끽소리도 못하고 있다."사실 제가 정말 독을 넣으려면 흔적을 남기지 않는 방법이 백 가지가 있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네요. 그러니 가장
소은은 고개를 들어 눈물을 참으며 말했다. “한 가지 이상한 게 있어요.”“무슨 일이에요?” 임남을 달래던 임상언이 무심히 되물었다.“로사 왕자는 감금된 것이 아니라 그날 Y국으로 송환되었다고 들었는데, 그렇다면 왜 그동안 로사 왕자와 연락이 닿지 않았던 걸까요?” 소은의 말에 임상언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두 가지 가능성이 있겠죠. 신호가 나쁘거나 핸드폰을 확인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 로사 왕자가 저희 연락을 거부하고 있을 수도...”두 사람은 잠시 눈을 마주쳤다. 말은 없었지만, 둘 다 이미 답을 얻은 듯했다. 로사 왕자가 그토록 연락을 피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도 나름의 계획을 세우고 있는 건가?...3일 후. 소은은 마지막 침을 놓고 손을 거두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여왕을 쳐다보며 말했다. “오늘 시술로 폐하의 다리에 감각이 돌아오실 겁니다. 하지만 일어서는 건 천천히 시도하셔야 합니다. 너무 서두르시면 안 돼요.”소은은 말을 마치고 갑자기 미소를 지었다.“무엇 때문에 웃는 거지?” 여왕은 여전히 자신의 다리를 어루만지며 물었다. 이미 이틀 전부터 약간의 감각이 돌아왔음을 느낀 터라, 소은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소은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제가 쓸데없는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요. 사실 R10 실험을 고집하신다면 결국 폐하께서는 이 몸을 떠나게 되실 텐데, 제가 이 몸에 애쓰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여왕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계속한 거지?”“어쩌면, 폐하께서 마음을 바꾸실 지도 모르니까요.” 소은은 부드럽게 대답했다. “어쩌면 자신의 몸이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거든요.”“우리 모두 이 세상에 올 때 두 손은 비어있지만, 이 몸만은 오로지 우리 자신의 것이죠. 몸마저 버리신다면, 그 영혼은 여전히 진짜 자신일 수 있을까요?”“그렇구나.” 여왕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
소은은 조용히 몸을 일으키며 여왕을 쳐다보았다. “물론이죠.” 소은은 담담하게 답했다. 그 대답에는 원망이나 비난의 기색은 전혀 없었다.“그렇다면... 조금 아쉽네.” 여왕은 생각에 잠긴 듯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기 마련입니다. 세상 모든 일은 균형을 맞추려 하죠. R10이 폐하께서 이루고자 하는 꿈이라면, 저는 그것을 막을 수 없어요. 다만, 그때가 되어 성공하든 실패하든, 저는 그 모습을 보지 못할 테니 부디 후회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소은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문 밖으로 나갔다.릭은 여전히 문 앞에서 대기 중이었다. 그녀와 여왕의 대화가 거의 다 들렸던 듯, 둘의 시선이 잠시 교차했다. 소은이 그를 지나쳐 나가자, 릭은 곧장 방으로 들어갔다.“여왕 폐하.” 릭은 여왕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그녀의 다리에 꽂힌 은침을 보자 릭의 눈빛이 굳어졌다. “이건...”“괜찮아. 곧 소은이가 와서 침을 빼줄 거야.” 여왕은 무심하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릭은 여전히 불안한 눈빛으로 말했다. “폐하께서 너무 방심하시는 것 아닙니까? 만약 한소은이 폐하께...”“그럴 리 없다.” 여왕은 단호히 그의 말을 잘랐다.릭은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설마 그 여자를 믿으시는 겁니까?”여왕은 대답 대신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녀도 릭의 질문이 아니었다면 자신이 소은을 믿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오랜 세월 누구도 쉽게 믿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그녀는 소은을 의심하지 않았다. 심지어 은침에 독이 묻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제가 가서 잡아오도록 하죠.”여왕이 생각에 잠기자 릭은 바로 뒤돌아섰다.“거기 서!”여왕은 결연히 말했다. “난 믿어.”릭은 한참을 침묵하며 여왕의 결정을 받아들였다....임상언은 아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비록 아들을 구하려는 결심을 굳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희망이 사라지는 듯했다.
소은은 허리춤에서 허리띠처럼 생긴 물건을 꺼내더니 조심스럽게 풀어내며, 그 안에 숨겨진 가느다란 은침을 꺼냈다.“이건...” 여왕은 깜짝 놀라며 소은을 쳐다봤다. 소은이가 은침을 항상 가지고 다닐 줄은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말해봐, 네 요구가 뭐지?” 여왕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마음을 가다듬으려 애썼다. 너무 무리한 요구라면 거절하면 그만이다. 여왕은 절대 소은에게 휘둘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소은은 차분하게 말했다. “제가 여기서 나올 수 있었던 건 로사 왕자님 덕분입니다. 그러니, 왕자님을 책망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그게 다야?” 여왕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소은이 여기까지 와서 자신과 조건을 따지는데, 결국 요구한 게 단지 로사를 처벌하지 말라는 거라니. 자신이 잘못 들은 건가 싶었다.“로사는 내 아들이다. 내가 정말 내 아들에게 손을 댈 리는 없지. 괜히 기회를 헛되게 쓴 건 아닌가?” 여왕은 고개를 저으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전 폐하께서 정말 로사 왕자님께 처벌을 내리시지 않을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왕자 폐하께서 저를 구해준 건 사실이기에 저도 왕자 폐하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소은은 조용히 말했다. “게다가 지금 왕자 폐하를 감금하시고 자유를 제한하고 계시지 않나요?”여왕은 의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니야. 난 단지 로사를 Y국으로 돌려보냈을 뿐이야.”“로사가 여기서 내 일을 여러모로 방해하긴 했지만, 우리 모자 사이가 더 악화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국내에서도 로사가 필요하니 Y국으로 돌려보낸 것뿐이다.” 여왕은 담담하게 말했다.“그런데 왜 왕자 폐하의 전화가 연결되지 않죠?” 소은은 잠시 멈칫했다. 단지 귀국했다면 국제전화를 받을 수 있을 텐데, 연락이 닿지 않았기에 여왕이 로사를 가둬놓았다고 오해할 수밖에 없었다.여왕은 깊은 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나도 잘 모르겠군. 그날 내가 화가 났던 건 사실이지만, 곧바로 Y국으로 돌아가도록
“삼일이면 됩니다.” 소은은 여왕을 쳐다보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삼일? 고작 삼일?” 여왕의 눈에는 믿기지 않는 놀라움이 서렸다. 그녀는 적어도 몇 달, 아니 최소한 몇 년은 걸릴 줄 알았다. 그러나 고작 삼일이라니, 그녀로서는 상상도 못 한 시간이었다.삼일쯤이야. 십 수년을 이렇게 버텨왔는데, 삼일쯤 더 기다린다고 달라질 게 뭐 있겠는가?“삼일 안에 정말 나아질 수 있는 건가? 내가 정말 다시 일어서서 걸을 수 있는 건가?” 여왕은 두 손으로 자신의 다리를 힘껏 눌렀지만 여전히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그녀는 소은의 말을 쉽게 믿을 수가 없었다. 이 다리가 감각을 잃은지 너무 오래되어 치료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여왕은 여러 나라의 명의를 찾아 다녔지만, 그들은 단지 병의 악화를 늦출 수 있을 뿐 다리를 완전히 회복시키는 건 불가능하다고 했었다. 그러나 지금 소은은 그녀 앞에 서서 확신에 찬 얼굴로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녀는 속으로 자신도 모르게 그 말을 믿고 싶어졌다.“이전처럼 완벽하게 걸을 수 있을 거라고 장담할 순 없어요. 너무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아서 근육이 많이 위축됐거든요. 하지만 서서히 일어나서 조금씩 회복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소은은 진지한 어조로 답했다.여왕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정도라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젊었을 때처럼 완전히 회복되는 것을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만약 휠체어와 지팡이 없이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 그 자체로도 그녀에겐 더할 나위 없는 희망이었다.“좋아. 삼일, 기다리겠네. 필요한 게 있나?” 여왕은 기분이 좋아져 말을 한층 부드럽게 했다.“임남...” 소은이 말을 꺼내자마자 여왕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녀는 곧바로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 “그건 안 돼. 그런 요구는 하지 마라.”“제가 말한 건 임남을 바로 풀어달라는 게 아닙니다. 그냥... 그 아이가 괜찮은지 알고 싶고, 가능하다면 아버지와 한 번 만날 기회를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 실험을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은 저와 프레드 뿐이기 때문입니다.” 소은은 잠시 생각하다가 덧붙였다. “아니면 주효정을 믿으실 건가요?”“나는... 아무도 믿지 않아.” 여왕은 얼굴을 차갑게 굳히며 휠체어를 돌렸다.“여왕 폐하께서 이 실험에 집착하고 계시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인가요? 세상을 둘러보고 싶다거나, 짐을 내려놓고 잠시 쉬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으신가요? 수십 년간 왕좌에 오르셨지만, 정말로 아직도 그 삶이 좋으신가요? 언제나 긴장하며 위태로운 자리를 견디는 고단한 나날, 정말 아직도 벗어나고 싶지 않으신가요?” 소은은 여왕의 등을 쳐다보며 부드럽게 물었다.여왕은 아무 말 없이 자신의 무릎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살짝 떨구었다. 그녀는 시선을 다리로 내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세상을 둘러본다? 나는... 걷는 게 어떤 느낌인지도 잊어버렸어.”여왕은 오랜 세월 동안 다리를 쓰지 않았고, 처음에는 억지로라도 일어설 수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상태는 악화되었고 이제는 아예 휠체어 없이는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그녀는 휠체어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소은이 ‘세상을 둘러보라’는 말을 꺼내자 가슴이 아팠다.“만약... 폐하께서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요? 제가 다시 걷게 해드린다면요?” 소은은 조용히 여왕의 뒤에 서서 말했다.여왕은 잠시 멈칫하더니, 눈빛이 날카롭게 변하며 휠체어를 돌려 소은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정말이냐?” 여왕의 눈에는 억누를 수 없는 희망과 깊은 의심이 뒤섞여 있었다.소은은 대답 대신 그녀의 시선을 천천히 여왕의 다리로 내리고, 천천히 다가가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손을 뻗어 여왕의 무릎 위에 가볍게 손을 올렸다.여왕은 살짝 몸을 떨었다. 사실, 그녀의 다리는 거의 완전히 감각을 잃은 상태라서 소은의 손길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아마도 너무나 간절히 다시 일어서고 싶기 때문이었을 것이다.소은은 아무 말 없이 여왕의
“맞아요, 임남 때문이기도 하지만, 폐하 때문이기도 합니다.” 소은은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제가 정말로 떠나버렸다면, 가장 초조해지는 사람은 사실 여왕 폐하 아닐까요?”여왕은 코웃음을 치며 차갑게 말했다. “내가 초조해질 이유가 뭐지? 어차피 내 손엔 네 약점이 있잖아. 너를 다시 잡아오는 것도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고.”“약점이요? 임남 말씀이신가요?” 소은은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잊지 마세요, 임남이는 제 아들이 아닙니다. 저에게는 제 친자식이 셋이나 있어요. 만약 제가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임남을 포기해 제 아이들을 지키려 한다면, 그 약점이 과연 제게 약점이 맞을까요?”여왕이 입을 열기도 전에 소은은 다시 말을 이었다. “게다가, 그 아이에겐 목숨을 걸고서라도 구하려는 아버지가 있습니다. 만약 임상언이 폐하께 끝까지 맞서기로 결심한다면...” “폐하께서야 높은 자리에 있으니 이런 평범한 상인을 하찮게 여기실 수 있지만, 임상언 씨가 단순한 상인이 아니라는 걸 잊으시면 안 됩니다. 임상언 씨의 사업은 세계 곳곳에 뻗어 있어요. 임상언 씨가 목숨을 걸 각오가 되어 있다면 그 어떤 일도 할 수 있겠죠. 혹시라도 바깥에 소문이 퍼져 폐하와 Y국의 명망이 손상된다면, 곤란하지 않겠습니까?”“너...” 여왕은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반박할 말이 당장 떠오르지 않았다.여왕이 화가 난 것을 보고, 소은은 한결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화내지 마세요. 제가 돌아온 건 폐하를 자극하려는 게 아닙니다. 함께 최선의 방향을 찾고자 돌아온 거예요. 사실 폐하께서 H국에 오신 일이 밝혀진 건 아니지만, 꽤 오랜 시간 H국에 머물고 계셨습니다. 정말로 H국이 이 사실을 모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세요?”여왕은 말없이 그녀를 쳐다보았다. “지금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건 폐하의 체면을 살려드린 겁니다. 그러나 폐하께서 이곳에서 계속 머무르시며 혹여 무리수를 두신다면, 얼마나 더 체류하실 수 있을까요? Y국도 계속해서
릭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여왕은 모니터에서 시선을 돌리며 담담히 말했다. “소은을 데려와. 어디 한번 무슨 변명을 할지 들어보자. 또 어떤 이야기를 꾸며낼지 궁금하네.” 여왕은 휠체어를 살짝 돌려 더 이상 모니터를 보지 않았다.“여왕 폐하?” 릭은 망설이다가 말했다. “한소은이 거짓말을 할 걸 아시면서도 굳이 왜...” 그러나 여왕은 그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단호히 말했다. “듣고 싶어!” 이 한마디에 릭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그는 곧장 소은이 있는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소은이 정말로 잠이 들려고 하던 순간, 문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그녀는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다. 눈을 뜨는 순간, 문이 열리면서 릭이 문 앞에 서 있었다. 그의 얼굴은 굳어 있었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여왕께서 한소은 씨를 만나고 싶어 하십니다.” 소은은 차분한 표정으로 릭을 쳐다보았다. 마치 모든 상황을 예견한 듯 고요하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와 동시에 임상언은 소은보다 먼저 일어나 문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가 문에 도착하자마자 릭이 손을 들어 그의 앞을 막았다. “그쪽은 남아 계시죠.” “뭐? 우리 둘은 같이 온 거야!” 임상언은 소은을 돌아보며 그녀에게 눈짓으로 도움을 요청했다. 릭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여왕 폐하께서 그쪽을 부르지 않았으니 여기 남으시죠.” 릭은 더 이상 임상언에게 말을 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소은은 임상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부드럽게 말했다. “절 기다리고 있어요.” 임상언은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억지로 마음을 다스리며 그녀가 릭과 함께 방을 나서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조심해요.” 임상언은 소은을 향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소은은 미소를 지어 그에게 답했고, 릭을 따라 여왕의 방으로 향했다. 익숙한 길을 따라 걷는 그녀는 곧 여왕의 방에 도착했다. 릭이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여왕 폐하, 데려왔습니다
소은이 임상언을 데리고 대사관에 도착하자,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눈에 띄게 당황했다.한 사람이 서둘러 소식을 알리러 가더니, 이내 주변 구석구석에서 누군가가 몰래 그들을 엿보는 기척이 느껴졌다. 곧이어, 소은이 잘 알고 있는 여왕의 측근 몇 명이 경계 어린 눈빛으로 다가와 그들을 안으로 안내했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그들은 소은과 임상언의 몸을 샅샅이 검사하며 위험 물품을 소지하지 않았는지 확인했다. 철저한 검사가 끝난 후에야 비로소 경계가 풀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여왕을 만나지 못했고, 한적하고 깊숙한 방에 대기하도록 배정받았다. 오랜만에 돌아온 이곳은 소은에게 익숙하면서도 낯설게 느껴졌다. 익숙한 것은 이 장소였지만, 낯선 것은 지금의 마음가짐이었다. 예전에는 이곳이 싫고 불쾌하기만 했으며,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은 장소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임무와 사명을 가지고 돌아왔고, 그녀의 목표는 단순히 여기를 떠나는 것이 아닌, 중요한 일을 완수하고 무사히 돌아가는 것이었다.반면, 임상언은 눈에 띄게 불안해 보였다. 그는 두 손을 맞잡고 무릎 위에 놓은 채,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다리를 가볍게 떨고 있었다. 소은은 그의 초조함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임남을 생각하면 마음이 몹시 불안하고 조급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여기까지 왔으니 임남을 반드시 볼 수 있을 거예요. 그러니 긴장 좀 풀어요.” 소은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임상언은 그녀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발을 땅에 꾹 눌러 다리를 멈췄다. 겉으로는 조금 안정된 듯 보였지만, 그의 얼굴은 여전히 긴장감이 가득했고 미세하게 떨리는 얼굴 근육이 그의 불안한 마음을 보여주었다. 마음을 진정시키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소은은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다.두 사람은 한참을 기다렸지만, 여왕을 만나러 오라는 사람은커녕 상황을 확인하러 오는 사람조차 없었다. 긴장했던 임상언은 결국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대체 무슨 의도인 거죠? 왜 아직
“제발 부탁이에요. 안에서는 소은 씨 말만 따를게요. 소은 씨가 시키는 대로 다 할 테니까, 제발 절 데려가 주시면 안 돼요?” 임상언은 진심 어린 목소리로 소은에게 간청했다. 자존심은 이미 버린 지 오래였다. 아들을 만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그를 이 지경까지 이르게 했다. 소은이 반드시 돌아가겠다고 결심한 순간, 임상언은 이미 마음을 굳혔다. 자신이 함께 가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같이 가면 의심을 받거나 제지를 당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전 아니에요.” 임상언은 계속 설득을 이어갔다. “임남이 그 안에 있다는 걸 모두 알고 있잖아요. 제가 아들을 만나고 구하려고 하는 건 당연한 일이에요. 그리고 아들을 위해서 제 목숨을 바치는 것도 이해될 수 있는 일이죠. 그러니 제가 가는 게 가장 올바른 선택이에요.” 긴 침묵 끝에, 소은이 입을 열었다. “임상언 씨 말이 맞아요. 전 동의합니다.” 소은은 말을 마치고 서진에게 시선을 돌렸다. 서진은 잠시 생각하더니 천천히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저도 동의합니다.” 원청현은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두드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나도 동의하지.” 잠시 침묵하던 진정기 역시 마침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동의합니다.” 마지막으로 원철수는 주변을 둘러보며 한숨을 내쉬고 손을 펼쳤다. “모두 동의했는데 내가 뭐라고 반대하겠어. 나도 찬성이야.” 사실 원철수의 의견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임상언에게 지지를 표현하는 의미였다. 임상언은 눈시울이 붉어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모두들 고마워요.” “이게 뭔 감사할 일이라고. 어쨌든 안에 들어가면 절대 신중해야 해. 무슨 일이 있어도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네 입으로 한 말 반드시 지켜!” 원철수는 그의 결심을 칭찬하면서도 걱정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원철수는 속으로 임상언의 결단에 감탄했다.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그는 분명 최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