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차성호는 대답을 꺼냈다가 순간 이상하다고 생각하여 얼른 말을 바꾸었다. "아니, 그런 뜻이 아니다. 독소가 첨가된 향초는 네가 만든 것인데 다른 사람이 어떻게 가질 수 있겠니. 그는 단지 네가 일찍이 네 외할아버지에 대해 불경스러운 말을 했다고 나에게 전했을 뿐……""하지만 방금, 그가 외삼촌에게 증거를 줬다고 했잖아요."한소은은 그의 말을 끊으며 다그쳤다."왜 이렇게 빨리 말을 바꾸는 거죠?""......""됐어요!"한소은이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말했다."해프닝은 이제 끝입니다!" 그녀는 눈을 감고 고개를 들어 명상을 하는 듯하더니, 뒤돌아서 차성호를 보며 입을 열었다."외삼촌 입으로 계속 내가 독을 넣었다고 하시니, 제가 먼저 증명을 하겠습니다. 이 독은 절대 제가 넣었을 리 없어요!" "어떻게 증명을 한다는 거지?"차성호가 무의식적으로 물었다. 그러자 한소은은 그를 향해 방긋 웃어 보였고, 갑자기 그에게로 두 걸음 다가갔다."외삼촌, 오늘 제가 쓴 향수, 향이 좋지 않나요?" "……"갑작스러운 그녀의 물음에 차성호의 첫 반응은 코를 훌쩍이며 냄새를 맡았고, 그녀의 얼굴에서 웃는 모습을 보고는 바로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끼며 빠르게 숨을 거두었다."그게 무슨 뜻이지?!""그렇게 긴장하지 마세요! 이렇게 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제가 어떻게 외삼촌에게 허튼짓을 하겠어요?"그녀는 생글생글 웃으며 무해한 표정을 지었다. 말은 그렇게 해해도 차성호는 속으로 계속 경계를 했고, 여전히 거리를 유지하며 숨을 쉬지 못했다."할 말이 있으면 바로 해, 허튼수작 부리지 말고!"한소은은 그를 빤히 쳐다보며 미소를 머금었다."보세요, 외삼촌은 저한테 다가와서 냄새를 맡지도 못하잖아요. 제가 이런 수단을 가지고 있는데, 왜 큰돈을 들여서 향초에 독을 넣고 증거를 남겨서 외삼촌에게 드린다는 거죠? 제가 그렇게 멍청하다고요?""네가 한 번에 독을 넣지 않은 건 들킬까 봐 두려워서겠지. 만약 내가 제때에 돌아오지 않았다면, 그리고
"아무 짓도 안 했는걸요! 다만 외삼촌이 이렇게 화를 내는 이유가 머리가 어지럽거나......구역질이 나서 토를 하고 싶은 게 아닌가요?"그녀는 여전히 평온한 얼굴로 말했다.상황을 모르는 사람은 그녀가 차성호를 걱정해서 이런 말을 한 거라고 오해할 수도 있을 정도였다.그녀가 이렇게 말하니 차성호는 머리가 더 어지럽고 속이 메스꺼워지는 느낌이 들었고, 말할 수 없는 느낌으로 머리를 맑게 하려고 노력했지만, 갑작스러운 현기증을 통제하기란 어려웠다.그는 다급히 그녀를 붙잡고 있던 손을 풀며 말했다."너......도대체 나한테 무슨 짓을 한 거냐?!"차성호의 변화는 모두가 똑똑히 볼 수 있었다, 한소은이 도대체 무슨 일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이 또한 매우 무서웠다.모두들 화들짝 놀라서 뒤로 물러났고, 자신도 똑같이 영향을 받을까 두려웠다 특히 차국동은 가장 가까운 곳에 있지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지만, 차성호의 몸이 흔들리며 제대로 서 있지 못하는 모습을 보니 자신 또한 어지러운 느낌이 들었다.그는 황급히 뒤로 몇 걸음 물러섰고, 그녀에게서 멀찌감치 떨어져 서야 마음을 가라앉히며 말했다."한소은!! 도대체 뭘 하는 거야?!!"이는 거의 울부짖는 듯한 목소리였다.마음속의 당황스러움을 억제할 수 없었고, 은근히 그는 오늘 일이 이미 자신의 통제가 불가능한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느꼈다.이 얌전해 보이는 소녀는 웃는 모습조차 소름 끼치게 느껴졌다."작은할아버지,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제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는 상황에서 뭘 할 수 있겠어요."그녀는 어깨를 으쓱하고, 두 손을 벌리며 무고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그녀는 비록 매우 무고한 모습이었지만, 방금 모두가 차성호의 변화를 보았고 지금 그의 안색도 별로 좋지 않았다.지금 모두가 괴물을 보는 듯한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면서 끽소리도 못하고 있다."사실 제가 정말 독을 넣으려면 흔적을 남기지 않는 방법이 백 가지가 있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네요. 그러니 가장
그가 이렇게 말한 것은 자신이 죄를 지기 싫어서 차성호를 몰아내려는 것이었다. 처음부터 한소은과 차성호만이 향초에 접촉했다고 분명히 말을 했으니, 자신이 이 일에서 손을 빼려는 것이다. 다만, 차성재는 왜 지금이 돼도 오지 않는 걸까? 한소은은 눈을 찡그리며 차갑게 웃었다."작은할아버지가 말씀하시는 한 패가 누굴 말하는 거죠? 혹시 마음속에 이미 생각해 둔 한패가 있는 것 아닌가요?""너……""늦어서 죄송합니다."밖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고, 한소은이 눈을 돌려 보니 그곳에는 차성재가 들어오고 있었다. 그의 곁에는 두 사람이 더 있었는데, 한 명은 그의 개인 비서이고, 다른 한 명은 회사 대표이사이며 한소은도 다 알고 있는 사이였다. 그가 같이 온 두 사람을 보았을 때, 차국동은 자신도 모르게 얼굴을 찌푸렸다."차성재, 오늘 가족회의가 있는 날인데 이렇게 늦게 오는 것도 모자라서 바깥사람까지 들여오다니, 도대체 무슨 일이냐?""바깥사람이라뇨?"차성재는 자신의 양쪽을 본 뒤 다시 차국동을 바라보았고, 또 옆에 있던 차성호를 힐끗 보고는 소리 내어 웃었다."정말 사람 속은 모르겠네요. 누가 바깥사람이고 누가 자신의 사람인지 말하기 너무 어렵습니다." 그의 말속에는 뼈가 있었고, 차국동의 안색이 급격히 바뀌었다."그 말이 무슨 뜻이지?!""무슨 뜻인지 모르시겠습니까? 하지만 조급해하지 마시고 여기 앉아서 천천히 보시면 금방 이해하실 겁니다!"그는 곁에 있던 두 사람에게 먼저 한쪽으로 서라고 한 뒤 돌아서서 사람들을 향해 말했다."차 씨 집안의 어르신들, 우선 늦어서 정말 죄송합니다. 회사에 일이 있어서 시간이 지체되고 급하게 해결해야 할 일이 있어서 늦었습니다.""차성재, 지금은 내가 집안을 다스리고 있다는 걸 잊지 말거라!"차국동은 자신이 무시당했다고 생각하여 불만을 품고 일부러 자신의 위치를 들먹이며 가문의 도장을 꺼내에 탁자에 놓았다.그러자 차성재가 눈길을 그에게로 돌려 웃으며 말했다."네, 작은할아버지가 말씀하지
"차성재!"차성호가 소리쳤다."2년 동안 가주의 증표를 쥐었다고 어른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도 하지 않으려는 거냐!""어르신의 사인을 명확하게 밝히기 전에 차 씨 집안의 가주는 누구인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그러자 차성재가 고개를 끄덕였다."네! 그 말씀이 맞습니다! 할아버지의 죽음은 분명히 진상이 밝혀져야 합니다. 그러니…..."그가 옆에 있던 비서에게 고개를 끄덕이자 비서는 휴대전화를 집어 들고 옆으로 몸을 돌려 몇 마디를 했고, 어렴풋이 "네, 알겠습니다!"라는 소리만 들렸다.이어서 그가 차성재에게 말했다."곧 있으면 도착합니다, 3분 정도 남았습니다.""무슨 짓을 한 거냐?"차성호가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누가 오든 오늘은 차 씨 집안일이다! 차 씨 집안의 일은 차 씨 집안사람들이 해결해야지, 평가서도 다 있으니 아직도 발뺌을 하고 싶다면……""틀렸습니다!"차성재는 큰 소리로 그의 말을 끊으며 두 손을 뒤로 한 채 말했다."이건 차 씨 집안 내부의 일이 아닙니다! 할아버지의 사인이 분명하지 않고, 사람의 목숨이 달린 일이란 말입니다! 사람의 목숨은 하늘에 달려 있으니 차 씨 집안의 집주인으로서 저는 가장 공평하고 공정한 방법으로 가려내겠습니다."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밖에서는 날카로운 사이렌 소리가 울렸고, 이 소리를 들은 사람들이 놀라기 시작했다.차성호와 차국동은 안색이 변했다."설마 경찰을 부른 게냐?!""그렇습니다! 할아버지가 정말로 독에 의해 죽은 건지, 어떻게 중독이 된 건지, 범인은 누구인지 경찰에서 조사하게 되면 분명히 밝혀질 겁니다!"차성재는 말을 하며 시선은 한소은에게로 향했고,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다. 경찰에 신고하는 것은 차성재와 한소은이 상의해서 결정한 일이었고, 차 씨 집안은 체면을 생각해야 하며 여론의 영향도 고려를 해야 하지만, 이것은 외할아버지의 죽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일이었다. 한소은은 방금 전까지만 해도 차성재는 물론 경찰도 보이지 않아 무슨 일이 생긴 줄만 알았다.
상황의 발전은 노형원과 윤설아의 예상 밖으로 흘러갔다. 차 씨 집안의 비화가 확산이 되면서 집안의 명예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지 헤아릴 수 없다. 따라서 어떠한 사람의 시각으로 봐도 이 일은 내부에서 해결할 것만 같고 남들이 알 수 없도록 숨겨야 될 것만 같았다. 하지만 경찰의 신고는 소성 전체는 물론 전국으로 이미 확신이 되어서 떠들썩해졌다. 언론은 이런 일에 대해 가장 잘 발굴하고 상상력을 발휘하는데 능숙했고, 게다가 차 씨 집안은 지금 혼란에 빠져 있으며 심지어 차 씨 집안의 회사에서도 적지 않은 파문이 일어났고, 몇 명의 고위층들은 이미 회담을 약정했다. 차 씨 집안사람들의 인심이 흉흉하며 밖에서도 의견이 분분했다. 윤설아는 뉴스를 보며 컵에 담긴 와인을 한 모금 마시고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혼란스러워질수록 그녀는 빈틈을 타서 들어갈 기회가 많아지고, 어부지리를 얻을 가능성이 높아진다.물론,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건 집안의 일이었다. 쾅!사무실 문이 열렸고, 목소리만 들어도 누군지 알 수 있었으며 그녀는 당황하지 않고 TV를 끈 뒤 술잔을 내려놓고 쳐다보았다. 윤소겸이 요란스럽게 들어오며 불만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누나, 여기서 TV나 보고 와인 마실 여유가 있어? 자기 밑에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난리가 났는지 알기나 하는 거냐고!"그는 윤설아를 보자마자 거침없이 비난을 퍼부었고, 마치 자신을 회사의 주인처럼 여기는 듯했다. 하지만 윤설아는 화를 내지 않고 빙그레 웃으며 그를 바라보았다."왜 그래? 그 사람들이 또 무슨 짓을 해서 너를 이렇게 화나게 한 거야?" "그 사람들은 내가 이 프로젝트의 총책임자이자 지점장인 걸 알기나 하는 거야? 왜 다들 그 노 씨 말만 들으면서 일을 하는 거지? 이 회사는 도대체 윤 씨 거야, 노 씨 거야?!"그의 얼굴에 분노가 가득 찬 걸 보니, 노형원이 그에게 쓴맛을 보여준 것 같았다. 윤설아는 속으로 은근히 체념을 하며 생각했다, 이 회사는 당연히 윤 씨의 것이지만 너는 아직
그가 사생아로 몇 년을 밖에서 살아온 것도 쉽지 않았고, 어머니가 그에게 주입한 것도 미래에 반드시 윤 씨 집안에 들어가 사업을 물려받아야 된다는 것이었다. 상업 분야의 이론 지식을 많이 배웠지만, 결국 실천한 적이 없고, 지금 새로운 프로젝트를 맡았으니 성과를 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그의 마음가짐을 윤설아는 당연히 알고 있었다."네 말도 맞는다고 생각해. 하지만 노형원 부장도 나름대로 생각이 있어. 그는 이 분야에서도 경험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볼 수 없는 부분을 그 사람이 볼 수 있단 말이지." 하지만 그녀가 이렇게 말을 하니 윤소겸은 더욱 화가 날 뿐이었다. 하지만 운초겸이 그렇게 말하니 더 화가 났지."우리가 볼 수 없는 부분을 그 사람이 어떻게 본다는 말이야! 내가 보기에 그 사람은 고의로 나를 적대시하려고 하는 것 같다고. 그 사람은 내가 사장 자리에 앉는 것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고 있어!"그는 테이블을 힘껏 두드리며 말했다."누나! 난 정말 이해가 안 돼, 누나는 왜 그 사람을 그렇게 신경 쓰는 거지? 그 사람이 이 울타리 안에서 얼마나 악명 높은지 누나는 모르는 거야? 그 사람은 도대체 어떻게 누나를 속여서 이 자리까지 오른 거야?"그의 말 뜻은 윤설아가 그에게 속았다는 것이었고, 그녀는 일어나서 얼굴빛을 바꾸며 말했다."소겸아, 그 말은 좀 지나친 것 같네. 노형원 부장이 예전에 실수를 한 것도 사실이지만 그건 이미 다 지나간 일이야. 잘못을 안 저지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 하지만 부인할 수 없는 점은 그가 이 분야에서 경험과 안목이 있다는 사실이야.""하지만……""이렇게 하자, 일단 화내지 말고 내가 그 사람이랑 얘기를 해 보고,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볼게. 그리고 네 생각대로 해달라고 설득도 할 거야."그녀는 한 손을 그의 어깨에 얹고 살짝 눌렀다."정말이야?!"그녀가 자신의 편에 서며 그의 생각대로 하기를 원한다고 말을 하자, 윤소겸은 순간 기뻐서 벌떡 일어섰다."이 바보야, 우리는 한 가족인데 내가 널
얼마 지나지 않아 윤설아의 사무실 문이 다시 열렸고, 이번에는 노형원이 들어왔다. 그는 들어서자마자 탁자 위에 놓인 아직 치우지 않은 컵 두 개를 보고는 말을 꺼냈다."동생이 또 일러바치러 온 거야?""항상 그런 식이지 뭐, 걔는 이미 죽었어!"그녀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이내 다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아니면 네가 죽거나.""하하하……"노형원은 전혀 개의치 않아 하고 웃으며 말했다."너희 집 영감님이 그를 애지중지하시니 그럴 일은 없을 거야. 내가 죽는 일은 더더욱 없을 거고……""됐어, 진지한 얘기 좀 해! 소겸이가 국제적으로 최고의 조향사를 부르겠다고 해서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했어."그녀는 정색을 하며 1초 만에 본론으로 돌아갔다. "넌 윤소겸이 정말로 최고의 조향사를 초대해서, 또 최고의 향수를 만들고 성과를 내서 네 자리를 빼앗을까 봐 두렵지 않은 거야?"그는 눈살을 찌푸리며 의자를 당겨 맞은편 자리에 앉았고, 두 다리를 아무렇게나 꼬고는 이어서 주머니에서 담배 한 갑을 꺼내 느릿느릿 한 개비를 뽑아 불을 붙였다. 윤설아는 그의 동작을 막지 않고 무심코 말했다."네가 있는데 내가 그걸 걱정해야 해? 소겸이한테 예산이 한정되어 있다고 얘기했어! 국제 최고의 조향사가 어디 그렇게 쉽게 초청할 수 있겠어, 예산 면에서 부족할 뿐만 아니라 설령 예산이 있다고 해도 초청을 할 수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거잖아. 이 점은 네가 더 잘 알고 있지 않아?" "걔가 친구를 통해서 초청을 한다고 했지만, 국제 최고의 조향사들은 정말 많지 않고 가짜도 판을 치고 있는데 말이야. 전에 네 회사에서 일하던 그 사람 이름이……로젠이었나? 만약 나중에 프랑스에……"그녀는 더 이상 말을 이어가지 않았고, 노형원의 안색이 변한 것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아무튼 이 일은 네가 잘 처리하리라 믿어! 지금 윤소겸을 높이 추켜세우는 만큼 나중에는 그만큼 더 심하게 추락하겠지."그녀는 눈을 가늘게 뜨고 바보 같은 동생은 그녀의 위협 범위 안에 전혀
"아직 모든 게 완전히 결정되지 않았으니 그렇게 의기소침해하지 마."노형원은 고개를 흔들고 손을 들어 담뱃재를 털었다."차성호가 혼자 강산을 차지하려 온 게 아니라는 걸 잊지 마.""그가 데려온 소위 고무세가의 사람들을 말하는가?""그 사람이 데려온 소위 고대 무술 가문 사람들을 말하는 거야?" 윤설아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찬물을 끼얹었다고 생각하지 말고 들어, 고대 무술 가문은 너무 과하게 전해졌어. 오랜 세월 동안 아무도 실제로 그들이 나서는 걸 본 적이 없고, 그 가문이 얼마나 대단한지 본 적도 없어. 내가 말참견한다고 생각하지 마, 너는 한소은이랑 그렇게 오랫동안 있었는데 그 사람이 정말 그렇게 대단한 걸 본 적이 있기는 해?""......""그러니까, 옛날 고대 무술 가문은 정말로 대단했을지도 몰라. 하지만 지금이 어느 시대인지 잊지 마, 그 사람들의 피와 살이 총포보다 더 강할 수 있을까? 만약 정말 전설처럼 대단하다면, 왜 차성호는 아직도 손을 안 쓴 거지? 경찰이 개입할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있었을까? 내가 보기엔……허세에 불과해!" 원래 그녀는 이런 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모든 일이 잘 풀리면 당연히 기쁜 일이기 때문이다. 고대 무술 가문이 정말 그렇게 대단하든 아니든, 그녀와 별 상관이 없었고 어쨌든 그녀는 장사꾼이기에 그녀의 목표는 먼저 윤 씨 집안을 점령한 다음, 강성은 물론 전국의 시장을 점령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 노형원은 아직도 차성호가 데려온 이른바 "고대 무술 가문" 사람을 들먹이고 있으니, 그녀는 찬물을 끼얹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람은 역시 정신을 똑바로 차리는 게 좋다. 하지만 노형원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가 대답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녀의 생각을 묵인한 것은 아니었다. 사실, 그는 확실히 한소은의 대단함을 본 적이 있다.그때의 포위 기습에서 그녀는 혼자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상대할 수 있었고, 그 이후로 그는 그녀에 대해 한층 거리낌이 생겼다. 고대 무술 가문
소은은 고개를 들어 눈물을 참으며 말했다. “한 가지 이상한 게 있어요.”“무슨 일이에요?” 임남을 달래던 임상언이 무심히 되물었다.“로사 왕자는 감금된 것이 아니라 그날 Y국으로 송환되었다고 들었는데, 그렇다면 왜 그동안 로사 왕자와 연락이 닿지 않았던 걸까요?” 소은의 말에 임상언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두 가지 가능성이 있겠죠. 신호가 나쁘거나 핸드폰을 확인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 로사 왕자가 저희 연락을 거부하고 있을 수도...”두 사람은 잠시 눈을 마주쳤다. 말은 없었지만, 둘 다 이미 답을 얻은 듯했다. 로사 왕자가 그토록 연락을 피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도 나름의 계획을 세우고 있는 건가?...3일 후. 소은은 마지막 침을 놓고 손을 거두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여왕을 쳐다보며 말했다. “오늘 시술로 폐하의 다리에 감각이 돌아오실 겁니다. 하지만 일어서는 건 천천히 시도하셔야 합니다. 너무 서두르시면 안 돼요.”소은은 말을 마치고 갑자기 미소를 지었다.“무엇 때문에 웃는 거지?” 여왕은 여전히 자신의 다리를 어루만지며 물었다. 이미 이틀 전부터 약간의 감각이 돌아왔음을 느낀 터라, 소은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소은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제가 쓸데없는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요. 사실 R10 실험을 고집하신다면 결국 폐하께서는 이 몸을 떠나게 되실 텐데, 제가 이 몸에 애쓰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여왕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계속한 거지?”“어쩌면, 폐하께서 마음을 바꾸실 지도 모르니까요.” 소은은 부드럽게 대답했다. “어쩌면 자신의 몸이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거든요.”“우리 모두 이 세상에 올 때 두 손은 비어있지만, 이 몸만은 오로지 우리 자신의 것이죠. 몸마저 버리신다면, 그 영혼은 여전히 진짜 자신일 수 있을까요?”“그렇구나.” 여왕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
소은은 조용히 몸을 일으키며 여왕을 쳐다보았다. “물론이죠.” 소은은 담담하게 답했다. 그 대답에는 원망이나 비난의 기색은 전혀 없었다.“그렇다면... 조금 아쉽네.” 여왕은 생각에 잠긴 듯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기 마련입니다. 세상 모든 일은 균형을 맞추려 하죠. R10이 폐하께서 이루고자 하는 꿈이라면, 저는 그것을 막을 수 없어요. 다만, 그때가 되어 성공하든 실패하든, 저는 그 모습을 보지 못할 테니 부디 후회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소은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문 밖으로 나갔다.릭은 여전히 문 앞에서 대기 중이었다. 그녀와 여왕의 대화가 거의 다 들렸던 듯, 둘의 시선이 잠시 교차했다. 소은이 그를 지나쳐 나가자, 릭은 곧장 방으로 들어갔다.“여왕 폐하.” 릭은 여왕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그녀의 다리에 꽂힌 은침을 보자 릭의 눈빛이 굳어졌다. “이건...”“괜찮아. 곧 소은이가 와서 침을 빼줄 거야.” 여왕은 무심하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릭은 여전히 불안한 눈빛으로 말했다. “폐하께서 너무 방심하시는 것 아닙니까? 만약 한소은이 폐하께...”“그럴 리 없다.” 여왕은 단호히 그의 말을 잘랐다.릭은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설마 그 여자를 믿으시는 겁니까?”여왕은 대답 대신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녀도 릭의 질문이 아니었다면 자신이 소은을 믿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오랜 세월 누구도 쉽게 믿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그녀는 소은을 의심하지 않았다. 심지어 은침에 독이 묻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제가 가서 잡아오도록 하죠.”여왕이 생각에 잠기자 릭은 바로 뒤돌아섰다.“거기 서!”여왕은 결연히 말했다. “난 믿어.”릭은 한참을 침묵하며 여왕의 결정을 받아들였다....임상언은 아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비록 아들을 구하려는 결심을 굳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희망이 사라지는 듯했다.
소은은 허리춤에서 허리띠처럼 생긴 물건을 꺼내더니 조심스럽게 풀어내며, 그 안에 숨겨진 가느다란 은침을 꺼냈다.“이건...” 여왕은 깜짝 놀라며 소은을 쳐다봤다. 소은이가 은침을 항상 가지고 다닐 줄은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말해봐, 네 요구가 뭐지?” 여왕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마음을 가다듬으려 애썼다. 너무 무리한 요구라면 거절하면 그만이다. 여왕은 절대 소은에게 휘둘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소은은 차분하게 말했다. “제가 여기서 나올 수 있었던 건 로사 왕자님 덕분입니다. 그러니, 왕자님을 책망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그게 다야?” 여왕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소은이 여기까지 와서 자신과 조건을 따지는데, 결국 요구한 게 단지 로사를 처벌하지 말라는 거라니. 자신이 잘못 들은 건가 싶었다.“로사는 내 아들이다. 내가 정말 내 아들에게 손을 댈 리는 없지. 괜히 기회를 헛되게 쓴 건 아닌가?” 여왕은 고개를 저으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전 폐하께서 정말 로사 왕자님께 처벌을 내리시지 않을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왕자 폐하께서 저를 구해준 건 사실이기에 저도 왕자 폐하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소은은 조용히 말했다. “게다가 지금 왕자 폐하를 감금하시고 자유를 제한하고 계시지 않나요?”여왕은 의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니야. 난 단지 로사를 Y국으로 돌려보냈을 뿐이야.”“로사가 여기서 내 일을 여러모로 방해하긴 했지만, 우리 모자 사이가 더 악화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국내에서도 로사가 필요하니 Y국으로 돌려보낸 것뿐이다.” 여왕은 담담하게 말했다.“그런데 왜 왕자 폐하의 전화가 연결되지 않죠?” 소은은 잠시 멈칫했다. 단지 귀국했다면 국제전화를 받을 수 있을 텐데, 연락이 닿지 않았기에 여왕이 로사를 가둬놓았다고 오해할 수밖에 없었다.여왕은 깊은 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나도 잘 모르겠군. 그날 내가 화가 났던 건 사실이지만, 곧바로 Y국으로 돌아가도록
“삼일이면 됩니다.” 소은은 여왕을 쳐다보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삼일? 고작 삼일?” 여왕의 눈에는 믿기지 않는 놀라움이 서렸다. 그녀는 적어도 몇 달, 아니 최소한 몇 년은 걸릴 줄 알았다. 그러나 고작 삼일이라니, 그녀로서는 상상도 못 한 시간이었다.삼일쯤이야. 십 수년을 이렇게 버텨왔는데, 삼일쯤 더 기다린다고 달라질 게 뭐 있겠는가?“삼일 안에 정말 나아질 수 있는 건가? 내가 정말 다시 일어서서 걸을 수 있는 건가?” 여왕은 두 손으로 자신의 다리를 힘껏 눌렀지만 여전히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그녀는 소은의 말을 쉽게 믿을 수가 없었다. 이 다리가 감각을 잃은지 너무 오래되어 치료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여왕은 여러 나라의 명의를 찾아 다녔지만, 그들은 단지 병의 악화를 늦출 수 있을 뿐 다리를 완전히 회복시키는 건 불가능하다고 했었다. 그러나 지금 소은은 그녀 앞에 서서 확신에 찬 얼굴로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녀는 속으로 자신도 모르게 그 말을 믿고 싶어졌다.“이전처럼 완벽하게 걸을 수 있을 거라고 장담할 순 없어요. 너무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아서 근육이 많이 위축됐거든요. 하지만 서서히 일어나서 조금씩 회복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소은은 진지한 어조로 답했다.여왕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정도라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젊었을 때처럼 완전히 회복되는 것을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만약 휠체어와 지팡이 없이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 그 자체로도 그녀에겐 더할 나위 없는 희망이었다.“좋아. 삼일, 기다리겠네. 필요한 게 있나?” 여왕은 기분이 좋아져 말을 한층 부드럽게 했다.“임남...” 소은이 말을 꺼내자마자 여왕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녀는 곧바로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 “그건 안 돼. 그런 요구는 하지 마라.”“제가 말한 건 임남을 바로 풀어달라는 게 아닙니다. 그냥... 그 아이가 괜찮은지 알고 싶고, 가능하다면 아버지와 한 번 만날 기회를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 실험을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은 저와 프레드 뿐이기 때문입니다.” 소은은 잠시 생각하다가 덧붙였다. “아니면 주효정을 믿으실 건가요?”“나는... 아무도 믿지 않아.” 여왕은 얼굴을 차갑게 굳히며 휠체어를 돌렸다.“여왕 폐하께서 이 실험에 집착하고 계시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인가요? 세상을 둘러보고 싶다거나, 짐을 내려놓고 잠시 쉬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으신가요? 수십 년간 왕좌에 오르셨지만, 정말로 아직도 그 삶이 좋으신가요? 언제나 긴장하며 위태로운 자리를 견디는 고단한 나날, 정말 아직도 벗어나고 싶지 않으신가요?” 소은은 여왕의 등을 쳐다보며 부드럽게 물었다.여왕은 아무 말 없이 자신의 무릎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살짝 떨구었다. 그녀는 시선을 다리로 내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세상을 둘러본다? 나는... 걷는 게 어떤 느낌인지도 잊어버렸어.”여왕은 오랜 세월 동안 다리를 쓰지 않았고, 처음에는 억지로라도 일어설 수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상태는 악화되었고 이제는 아예 휠체어 없이는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그녀는 휠체어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소은이 ‘세상을 둘러보라’는 말을 꺼내자 가슴이 아팠다.“만약... 폐하께서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요? 제가 다시 걷게 해드린다면요?” 소은은 조용히 여왕의 뒤에 서서 말했다.여왕은 잠시 멈칫하더니, 눈빛이 날카롭게 변하며 휠체어를 돌려 소은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정말이냐?” 여왕의 눈에는 억누를 수 없는 희망과 깊은 의심이 뒤섞여 있었다.소은은 대답 대신 그녀의 시선을 천천히 여왕의 다리로 내리고, 천천히 다가가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손을 뻗어 여왕의 무릎 위에 가볍게 손을 올렸다.여왕은 살짝 몸을 떨었다. 사실, 그녀의 다리는 거의 완전히 감각을 잃은 상태라서 소은의 손길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아마도 너무나 간절히 다시 일어서고 싶기 때문이었을 것이다.소은은 아무 말 없이 여왕의
“맞아요, 임남 때문이기도 하지만, 폐하 때문이기도 합니다.” 소은은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제가 정말로 떠나버렸다면, 가장 초조해지는 사람은 사실 여왕 폐하 아닐까요?”여왕은 코웃음을 치며 차갑게 말했다. “내가 초조해질 이유가 뭐지? 어차피 내 손엔 네 약점이 있잖아. 너를 다시 잡아오는 것도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고.”“약점이요? 임남 말씀이신가요?” 소은은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잊지 마세요, 임남이는 제 아들이 아닙니다. 저에게는 제 친자식이 셋이나 있어요. 만약 제가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임남을 포기해 제 아이들을 지키려 한다면, 그 약점이 과연 제게 약점이 맞을까요?”여왕이 입을 열기도 전에 소은은 다시 말을 이었다. “게다가, 그 아이에겐 목숨을 걸고서라도 구하려는 아버지가 있습니다. 만약 임상언이 폐하께 끝까지 맞서기로 결심한다면...” “폐하께서야 높은 자리에 있으니 이런 평범한 상인을 하찮게 여기실 수 있지만, 임상언 씨가 단순한 상인이 아니라는 걸 잊으시면 안 됩니다. 임상언 씨의 사업은 세계 곳곳에 뻗어 있어요. 임상언 씨가 목숨을 걸 각오가 되어 있다면 그 어떤 일도 할 수 있겠죠. 혹시라도 바깥에 소문이 퍼져 폐하와 Y국의 명망이 손상된다면, 곤란하지 않겠습니까?”“너...” 여왕은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반박할 말이 당장 떠오르지 않았다.여왕이 화가 난 것을 보고, 소은은 한결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화내지 마세요. 제가 돌아온 건 폐하를 자극하려는 게 아닙니다. 함께 최선의 방향을 찾고자 돌아온 거예요. 사실 폐하께서 H국에 오신 일이 밝혀진 건 아니지만, 꽤 오랜 시간 H국에 머물고 계셨습니다. 정말로 H국이 이 사실을 모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세요?”여왕은 말없이 그녀를 쳐다보았다. “지금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건 폐하의 체면을 살려드린 겁니다. 그러나 폐하께서 이곳에서 계속 머무르시며 혹여 무리수를 두신다면, 얼마나 더 체류하실 수 있을까요? Y국도 계속해서
릭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여왕은 모니터에서 시선을 돌리며 담담히 말했다. “소은을 데려와. 어디 한번 무슨 변명을 할지 들어보자. 또 어떤 이야기를 꾸며낼지 궁금하네.” 여왕은 휠체어를 살짝 돌려 더 이상 모니터를 보지 않았다.“여왕 폐하?” 릭은 망설이다가 말했다. “한소은이 거짓말을 할 걸 아시면서도 굳이 왜...” 그러나 여왕은 그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단호히 말했다. “듣고 싶어!” 이 한마디에 릭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그는 곧장 소은이 있는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소은이 정말로 잠이 들려고 하던 순간, 문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그녀는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다. 눈을 뜨는 순간, 문이 열리면서 릭이 문 앞에 서 있었다. 그의 얼굴은 굳어 있었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여왕께서 한소은 씨를 만나고 싶어 하십니다.” 소은은 차분한 표정으로 릭을 쳐다보았다. 마치 모든 상황을 예견한 듯 고요하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와 동시에 임상언은 소은보다 먼저 일어나 문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가 문에 도착하자마자 릭이 손을 들어 그의 앞을 막았다. “그쪽은 남아 계시죠.” “뭐? 우리 둘은 같이 온 거야!” 임상언은 소은을 돌아보며 그녀에게 눈짓으로 도움을 요청했다. 릭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여왕 폐하께서 그쪽을 부르지 않았으니 여기 남으시죠.” 릭은 더 이상 임상언에게 말을 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소은은 임상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부드럽게 말했다. “절 기다리고 있어요.” 임상언은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억지로 마음을 다스리며 그녀가 릭과 함께 방을 나서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조심해요.” 임상언은 소은을 향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소은은 미소를 지어 그에게 답했고, 릭을 따라 여왕의 방으로 향했다. 익숙한 길을 따라 걷는 그녀는 곧 여왕의 방에 도착했다. 릭이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여왕 폐하, 데려왔습니다
소은이 임상언을 데리고 대사관에 도착하자,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눈에 띄게 당황했다.한 사람이 서둘러 소식을 알리러 가더니, 이내 주변 구석구석에서 누군가가 몰래 그들을 엿보는 기척이 느껴졌다. 곧이어, 소은이 잘 알고 있는 여왕의 측근 몇 명이 경계 어린 눈빛으로 다가와 그들을 안으로 안내했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그들은 소은과 임상언의 몸을 샅샅이 검사하며 위험 물품을 소지하지 않았는지 확인했다. 철저한 검사가 끝난 후에야 비로소 경계가 풀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여왕을 만나지 못했고, 한적하고 깊숙한 방에 대기하도록 배정받았다. 오랜만에 돌아온 이곳은 소은에게 익숙하면서도 낯설게 느껴졌다. 익숙한 것은 이 장소였지만, 낯선 것은 지금의 마음가짐이었다. 예전에는 이곳이 싫고 불쾌하기만 했으며,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은 장소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임무와 사명을 가지고 돌아왔고, 그녀의 목표는 단순히 여기를 떠나는 것이 아닌, 중요한 일을 완수하고 무사히 돌아가는 것이었다.반면, 임상언은 눈에 띄게 불안해 보였다. 그는 두 손을 맞잡고 무릎 위에 놓은 채,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다리를 가볍게 떨고 있었다. 소은은 그의 초조함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임남을 생각하면 마음이 몹시 불안하고 조급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여기까지 왔으니 임남을 반드시 볼 수 있을 거예요. 그러니 긴장 좀 풀어요.” 소은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임상언은 그녀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발을 땅에 꾹 눌러 다리를 멈췄다. 겉으로는 조금 안정된 듯 보였지만, 그의 얼굴은 여전히 긴장감이 가득했고 미세하게 떨리는 얼굴 근육이 그의 불안한 마음을 보여주었다. 마음을 진정시키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소은은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다.두 사람은 한참을 기다렸지만, 여왕을 만나러 오라는 사람은커녕 상황을 확인하러 오는 사람조차 없었다. 긴장했던 임상언은 결국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대체 무슨 의도인 거죠? 왜 아직
“제발 부탁이에요. 안에서는 소은 씨 말만 따를게요. 소은 씨가 시키는 대로 다 할 테니까, 제발 절 데려가 주시면 안 돼요?” 임상언은 진심 어린 목소리로 소은에게 간청했다. 자존심은 이미 버린 지 오래였다. 아들을 만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그를 이 지경까지 이르게 했다. 소은이 반드시 돌아가겠다고 결심한 순간, 임상언은 이미 마음을 굳혔다. 자신이 함께 가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같이 가면 의심을 받거나 제지를 당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전 아니에요.” 임상언은 계속 설득을 이어갔다. “임남이 그 안에 있다는 걸 모두 알고 있잖아요. 제가 아들을 만나고 구하려고 하는 건 당연한 일이에요. 그리고 아들을 위해서 제 목숨을 바치는 것도 이해될 수 있는 일이죠. 그러니 제가 가는 게 가장 올바른 선택이에요.” 긴 침묵 끝에, 소은이 입을 열었다. “임상언 씨 말이 맞아요. 전 동의합니다.” 소은은 말을 마치고 서진에게 시선을 돌렸다. 서진은 잠시 생각하더니 천천히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저도 동의합니다.” 원청현은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두드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나도 동의하지.” 잠시 침묵하던 진정기 역시 마침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동의합니다.” 마지막으로 원철수는 주변을 둘러보며 한숨을 내쉬고 손을 펼쳤다. “모두 동의했는데 내가 뭐라고 반대하겠어. 나도 찬성이야.” 사실 원철수의 의견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임상언에게 지지를 표현하는 의미였다. 임상언은 눈시울이 붉어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모두들 고마워요.” “이게 뭔 감사할 일이라고. 어쨌든 안에 들어가면 절대 신중해야 해. 무슨 일이 있어도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네 입으로 한 말 반드시 지켜!” 원철수는 그의 결심을 칭찬하면서도 걱정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원철수는 속으로 임상언의 결단에 감탄했다.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그는 분명 최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