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소은은 이렇게 계속 지체하다가는 계속 그의 품에 안겨 떠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고개를 돌려 그를 보지 않은 채 한 마디 던졌다. “갈게요!”그녀의 손이 문에 닿자마자 그는 그녀를 다시 당기며 말했다. “어떻게 돌아가려고요? 담 넘어서?”비록 그녀는 담 넘는데 아무 문제 없었으나 그녀가 이렇게 5미터가 넘는 벽을 넘나드는 것에 대해서는 안심할 수 없었다.“아니에요.” 한소은은 대수롭지 않은 듯 웃어 보이며 말했다. “누군가가 문 열어줄 거예요.” “?”그녀는 몸을 굽혀 그의 입술에 키스를 하고는 빠른 속도로 문을 열고 차에서 내렸다.그녀의 행동은 정말 빨랐다. 그는 반응도 하지 못하고 그 여자가 대문을 향해 가는 것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문 앞에는 불이 켜져 있어서 매우 밝았다. 하지만 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한소은은 바로 문 앞으로 가서 문을 두드리려는 듯 손을 들었지만, 이내 포기하고 멈춘 뒤 뒤돌아 문에 비스듬히 기댔다.그녀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녀는 나무 밑에 주차된 김서진의 차를 잠시 보더니 갑자기 큰 소리로 외쳤다. “문 열어 주세요!” “...”주위는 모두 조용했고 아무도 그녀에게 답해주지 않았다.“셋까지 센 뒤에 나오지 않는다면 저 들어가지 않을 거예요!” 그녀는 허공에 대고 이렇게 말하며 정말로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하나... 둘...”김서진은 그녀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지켜보았다.정하진은 이곳을 특별하게 신경 쓰면서까지 그녀를 이곳에 가둬두었다. 이 정원은 이미 견고하지만 그럼에도 사람이 지키고 있었을 것이다. 게다가 그녀의 이 방법은 평범해 보이지만 확실히 효과가 있다.그녀는 지금 문 밖에 있는 것도 문 안에 있는 것도 아니다. 만약 그녀가 떠난다면 정하진의 계획은 모두 수포로 돌아가고 말 것이다.과연 그녀가 셋을 세기 전에 어두운 곳에서 누군가가 달려왔다. “아니에요, 가지 마요...”한소은은 여전히 문에 기대어 그 사람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달려온 사람은
‘삐빅’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그는 지금 이 착해 보이는 소녀가 실제로는 다루기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예의를 갖춰 말했다. “소은 씨, 들어오시죠.”한소은은 뒷짐 진 채 들어오며 ‘OK’ 표시를 했다.그녀는 이 각도라면 김서진의 시야 안에 들어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그 문이 다시 닫히는 것을 김서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는 자신의 입꼬리가 계속 올라가고 있음을 알아챘다.그녀는 자기 자신을 보호할 능력이 충분했다. 하지만 그녀가 자신을 보호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김서진이 그녀를 보호할 수 있었다. ——한소은의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이튿날 정하진이 직접 방문했다.꽤 이른 시간이었고 그녀가 아직 아침 먹고 있을 때 밖에서 벨이 울렸다.그녀는 고개도 들지 않은 채 계속해서 음식을 먹었고 정하진은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그녀가 들고 있는 토스트를 보았다.“역시 이른 시간임에도, 당신은 제 예상보다 더 부지런하군요.” 그는 박수를 치며 그녀를 칭찬했다.하지만 한소은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부지런? 아침 먹는 것 가지고 부지런하다고 하는 거야? 이게 무슨 개념이야.’칭찬에도 아무런 반응이 없자 그는 코를 매만지며 말했다. “기억력이 나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제가 누군지 기억하시죠?”“당신이 누구인지는 상관없어요. 전 그저 제가 뭘 해야 하는지에 대해 알고 싶어요.” 그녀는 반쯤 남은 토스트를 내려놓고 손을 닦으며 그에게 말을 했다.그녀가 음식을 낭비한 것이 아니라, 여기 냉장고에 있는 인스턴트 음식은 정말 맛이 없었다. 집에서 나온 지 이틀 밖에 되지 않았지만 김서진의 음식이 조금 그리웠다.그녀는 자신의 위가 그의 음식에 길들여졌다는 것을 깨달았다.그녀의 질문은 그의 예상 안에 있었다. 정하진은 웃으며 의자를 하나 가져와 그녀 맞은편에 앉았다. “조향 협회에 가입할 생각이 있으신가요?”“저는 오늘 당신이 저와 무슨 대결이라도 하려고 하는 줄 알았어요.”“대결도 해야죠. 하지만 그 외에 당신
“만약 관심이 없다면요?”정하진은 매우 놀랐다. “정말인가요?”그녀가 해외 진출을 생각하고 있었다면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윌 선생의 초청도 거절한 채 국내에 남아 있었다.국내에 남기로 한 이상 조향 협회는 국내 최고의 협회로서 이러한 러브콜은 거절할 수 없을 만큼 달콤한 유혹이었다. 그녀가 관심이 없다고? 밀당하는 것은 아니겠지!“그래서 하진 씨가 저를 속여가면서까지 이곳으로 데려온 게 이 말 하려고 그러신 건가요? 그렇다면 헛수고 같네요. 전화 한 통이면 됐을 텐데.”여기까지 온 이상, 빙빙 돌려서 말할 필요 없었다.“속였다고요?” 정하진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웃었다. “전 당신을 성심성의껏 초청한 건데 어떻게 속였다고 표현할 수 있나요! 여기 먹는 것도 별로고, 머물기에도 불편하다고요? 당신이 협회에 들어오신다면 제성에 머무르실 수 있습니다. 게다가 당신이 원하는, 생각할 수도 없는 최고의 향료, 원료를 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외에도 복지도 좋고 지금 계신 신생보다는 훨씬 좋은 대우를 받을 수 있을 거예요.”“선생님은 제가 신생에서 어느 정도의 대우를 받고 있는지 아시나요? 어떻게 그걸 확신하시죠?” 그녀는 크게 웃으며 말했다.정하진은 잠시 후 그녀의 뜻을 이해했다. “아, 신생의 보통 조향사라면 모르겠지만, 환아 대표의 부인이라면 또 다르겠네요. 하지만!”그는 강조하며 몸을 앞으로 내밀고 그녀에게 다가갔다. “돈은 그렇다 치더라도 최고의 향료, 심지어 어디에서도 다룰 수 없는 극비의 향료인데 원치 않으신가요? 저희는 더 많고 좋은 첨단 기기를 가지고 있고 최고의 인재들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환아에서 당신에게 제공하는 것은 저희도 제공할 수 있습니다. 환아에서 제공할 수 없는 것 또한 저희는 제공할 수 있습니다.그는 허풍까지 더하며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었다.한소은은 침묵했다.그의 많은 말 중에 한 마디는 틀리지 않았다. 다른 건 몰라도 그녀에게 있어 향료는 정말 사랑하는 존재였다.환아의 재력과 실력으로
“이 담장이라면...” 그는 손가락으로 대충 가늠하며 전기 철조망을 더 붙이려고 고민하였다. 하지만 전기 철조망은 너무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전기 철조망을 설치한다고 마음먹었다고 금방 설치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그는 이내 한심하다는 듯한 어투로 “됐어!”라고 말한 뒤 시선을 그 옆에 나무로 옮겼다. 그는 사람을 부른 뒤 지시했다. “이 나무 베라고 해주세요, 빠르면 빠를수록 좋아요!”“도련님?!”이 나무는 정원에 정말 오랫동안 있었고 이렇게 자라기도 쉽지 않은데 어떻게 이렇게 쉽게 자르라고 할 수 있을까?“잘라요, 눈에 거슬리네요.” 그는 매우 불쾌한 듯한 어조로 말했다.차 씨 가문의 무술 실력은 그도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 한들 한계가 있을 것이고 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가 생각하는 것은 그녀가 이 나무를 이용해 담장을 넘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나무를 자르려고 하는 것이다.사실 정하진이 생각한 방향은 어느 정도 맞았다. 하지만 그는 김서진이 이미 제성, 심지어 그의 코 앞에 있다는 것은 모르고 있었다.그가 있으면 전기 철조망을 아무리 설치한다 한들 한소은을 가둘 수 없을 것이다.한소은은 정말 다시 올라가 잠을 잤다. 어찌 됐든 간에 그 사람을 찾아가서 물건을 받고 계약을 체결해야 했다. ——김서진도 사실 한가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아내가 무사하다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마음을 다잡고 소성의 일을 처리할 수 있었다.비록 그의 아내는 유능했지만, 그는 그녀를 도와 숨겨진 위험요소를 제거하기 위해 노력했다.“대표님, 그는 이미 약속을 지켰고, 우연 아가씨도 해외로 보냈습니다. 몇 년 동안 귀국하지 않겠다는 약속도 했고요. 저희 측 사람들이 그녀가 비행기에 오르는 것을 직접 확인했습니다.서한은 상황을 보고하고 난 뒤 물었다. “그럼... 윤 씨 집안에도 사람을 보내서 경고할 까요?”“아니야!”그는 차갑게 말했다.윤설아, 그녀가 한 일은 허우연과 큰 차이가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바뀌는 것은 없었다.많은
윤설아는 최근 며칠 동안 한소은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집안에 더 큰 문제가 생겼다.그녀가 아무리 원하지 않고 배척하려고 한다고 해도 이미 한발 늦었다. 윤중성은 이미 사생아를 데려와서 그의 성도 바꿔주고 집안에도 소개해주었다.그 사생아를 보고 나서 윤설아는 큰 어머니인 윤백건을 찾아갔었다. 그녀가 다시 알아봤지만 이 일은 그녀의 어머니도 이미 막을 수 없는 일이었다. 만약 누가 이미 미쳐버린 아버지를 막을 수 있다면 그것은 큰아버지밖에 없었다.“큰아버지, 요즘 몸도 좋지 않으시다고 들었는데, 제가 특별히 외국에서 가져온 보양식이에요. 몸에 맞으셨으면 좋겠네요.” 그녀는 웃으며 자신이 가져온 물건을 가리켰다.윤백건은 고개를 끄덕이며 몇 차례 기침을 했다. “어쩐 일로 엄마, 아빠 없이 너만 이렇게 온 것이냐?”“어머니는 요즘 부녀회 쪽 일 때문에 바빠요. 어머니께서도 걱정 많이 하고 계십니다. 하지만 아버지께서는...” 그녀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말을 이었다. “아버지도 요즘 바쁘십니다.”윤백건은 눈을 들어 그녀를 힐끗 보더니 웃으며 말했다. “네 동생 일로 바쁜 거지.”윤설아는 이 말을 듣자마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녀가 놀란 이유는 큰 아버지가 알고 있다는 것보다 그의 태도 때문이었다.그가 알고 있는 것은 별로 놀랄만한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가 ‘동생’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는 것, 이미 인정한 것인가?그녀는 입술을 오므리긴 했지만 여전히 평온한 얼굴로 웃으며 고개를 약간 끄덕였다. “네, 맞아요. 큰아버지께서 알고 계실 줄은 몰랐네요. 약간 걱정이 돼서... 너무 갑자기 진행된 일이라 말씀드리지 못했습니다.”“네 아버지는 성격이 급해.” 윤백건은 그의 말을 이어받아 말했다. “하지만 이해는 된다.”“큰아버지가 이해심이 많으시다 한들, 이번 일에는 동의하지 않으실 줄 알았습니다.”윤설아는 눈을 깔고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머릿속으로 빠르게 계산해 보았다. 만약 큰아버지도 동의한다면 그녀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 것인지
“네 말이 맞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서 네 아버지를 막지 않은 거야. 윤백건은 엄숙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말에 동의했다.“...”만약 지금 그녀가 있는 곳이 윤 씨 가문의 저택이라던가 눈앞에 있는 사람이 예전부터 봐왔던 큰아버지의 모습이 아니었다면 그녀는 이 사람이 가짜 큰아버지라고 의심했을 것이다.“하지만 큰아버지, 큰아버지는 저와 다르잖아요. 저는 아버지가 무슨 일을 하시든 아버지를 지지할 거예요. 전 아버지의 딸이니까요. 하지만 큰아버지께서는 윤 씨 가문의 장로이시고, 저희 윤 씨 가문의 체면을 생각해서라도 동의하지 않으실 줄 알았습니다. 아시다시피 이런 일이 바깥으로 흘러나간다면 분명 말이 나올 것입니다. 제 동생은 나이도 아직 어리고 저희 아버지는 제 동생을 회사에 들이려고 합니다. 그렇게 된다면 회사의 직원들과 주주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사회에서는 어떻게 받아들일지, 저는 저희 윤 씨 가문의 명성이 걱정됩니다.”그녀는 말하면서 한숨을 쉬었다. “제가 이런 일에 참견해서는 안 된다는 것 잘 알고 있지만 윤 씨 가문의 사람으로서 모든 일에 윤 씨 가문에 연관 지어 생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저희 아버지는 너무 성급했어요!”윤설아는 말하면서 걱정스러운 얼굴을 보였다. 그녀는 정말 가문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 같았고, 어떤 말을 하든 모두 윤 씨 가문의 입장에 서서 생각했다.“설아야, 너 정말 많이 컸구나. 집안의 근심을 덜어줄 수 있겠어.” 윤백건은 그녀를 보며 엄숙하게 말했다.“솔직히 말하면 예전 같았으면 너희 아버지의 이번 일에 대해 동의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최근에 큰 병을 앓고 나니 많이 내려놓게 되는구나. 네 말이 맞다. 네 동생이 비록 사생아이긴 하지만 같은 피가 흐르고 있어. 윤 씨 가문의 피야. 밖에서 어떻게 보든 그건 그들의 입장이고 나는 우리 가족이 힘을 합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그렇지?” “...”그녀의 말을 인용하며 얘기를 하자 윤설아는
한소은은 자고 일어나니 이미 정오가 되어 있었다. 그녀는 정신을 차리고 난 뒤 대충 추스르고 나갈 준비를 했다.어젯밤에 계약 상대에게 주소를 남기라고 했지만 전화번호만 남겼다. 그녀는 밤이 길어질 것을 대비해 일찍 가서 사와야 했다.밖으로 나가면서 전화를 거니 금방 연결이 되었다. “이따 어디서 만날까요? 참, 지금 물건을 가지고 계시나요? 저 재배지부터 가서 확인하고 싶어요.”그녀는 말을 빠르게 마쳤고 이미 대문에 도착했다.그러나 전화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머뭇거리며 말했다. “죄송해요, 팔지 않겠습니다. 제가 큰소리쳤지만 사실 물건이 그렇게 많지 않아요.”“없다고요?”뭐가 무서워서 그러는 거지, 상상이 많아지면 더 두려워져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다만 우물쭈물하는 그녀의 목소리를 들으니 한소은은 그녀가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간단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가격이 불만족스러운 건가요? 그러면 그거에 대해서는 다시 얘기할 수 있어요. 물건의 품질만 괜찮으면 가격은 반드시 만족하는 조건으로 맞춰줄 수 있어요.”하지만 들려오는 상대방의 대답은 달랐다. “아니요, 가격이 문제가 아니라 정말 물건이 별로 없어요.”한소은은 한 손을 허리에 짚고 대문을 바라보았다. 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정원에 있던 큰 나무도 사라져 있었다.그녀가 자고 있을 당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었고 창문으로 정하진이 명령하는 것을 보았다. 그 물건은 그의 것이었는데, 이 나무가 없다면 날 가둘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건가?다만 지금은 이렇게 넓은 정원에 그늘이 전혀 없었고, 게다가 답답한 얘기를 듣고 있자니 더욱 짜증이 났다.“알겠어요, 많지 않아도 상관없어요! 어디서 찾은 건지, 아니면 얼마나 남았는지 알려주세요. 그거 전부 제가 살게요. 그것도 안된다면 누가 심고 키운 건지라도 알려주세요. 제게 소개해 주셔도 돼요.” “그럼...” 여자아이는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전화번호밖에 없어요.”“좋아요. 전화번호 제게 주세요. 다른 건 신
상대방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렇게 급하시다면 오후 말고 지금은 어때요?”“지금요?!”그녀는 멍하니 있다가 대문이 ‘삐’하는 소리와 함께 열리는 것을 보았다. 대문 앞에 서있는 사람은 바로 아침에 떠나던 정하진이었다.그는 손에 전화기를 들고는 그녀를 향해 흔들며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어쩐지 방금 목소리가 익숙하더라니, 또 그 사람이었을지는 예상하지 못했다.어제 있던 일도 그렇고, 그 아가씨의 삼촌인 건가? 그래서 어제 먼저 손을 써서 윤향을 다 사들인 건가?어쩐지 협회에만 들어가면 희귀한 향료도 있다더니이게 바로 타당한 협박인가?!“절 찾아올 줄 알고 있었어요.” 정하진은 웃으며 들어왔다. “어떤가요, 잘 생각해 보셨나요? 마음 바꾸려는 건 아니죠?”한소은은 이번엔 직접 거절하지 않고 팔짱을 낀 채 그를 바라보았다. “왜 하필 저죠?”“네?”“당신 말대로 조향 협회는 들어가기 어렵고, 매년 많은 사람들이 들어가고 싶어 하는데, 왜 저 같이 이름도 없는 사람을 영입하고 싶어 하시는 거죠?”“이름이 없다고요?” 정하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프랑스 최고의 조향사의 초청을 거절할 수 있는 이름 없는 조향사는 당신이 처음입니다.”“단지 윌 선생의 초청을 거절했기 때문인가요?”“그것뿐 만은 아니죠.” 그는 손가락으로 코를 비비며 말했다. “절 이기셨잖아요.”그녀는 전혀 몰랐다. 그 대회는 단지 회사에서 파견 보낸 곳이고 자신의 능력을 증명할 수 있는 기회였을 뿐이다. 하지만 정하진에게도 그 대회는 자신의 능력을 증명할 수 있는 기회였다.정 씨 가문에게 그는 반역자고, 정치를 잘 하며 집안 사업에도 참여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정 씨 가문의 할머니는 보수적인 인물로 자신의 아들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녀에게 있어서 향수는 여자들이나 쓰는 물건이었고, 남자들이 그런 것을 다루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프랑스에서 열린 그 대회에서 정하진은 할머니와 내기를 했다. 원래 1등을 따낸 뒤 돌아올 예정이었지만 이렇게 어린 소녀에게 질 줄은 몰랐다.
소은은 고개를 들어 눈물을 참으며 말했다. “한 가지 이상한 게 있어요.”“무슨 일이에요?” 임남을 달래던 임상언이 무심히 되물었다.“로사 왕자는 감금된 것이 아니라 그날 Y국으로 송환되었다고 들었는데, 그렇다면 왜 그동안 로사 왕자와 연락이 닿지 않았던 걸까요?” 소은의 말에 임상언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두 가지 가능성이 있겠죠. 신호가 나쁘거나 핸드폰을 확인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 로사 왕자가 저희 연락을 거부하고 있을 수도...”두 사람은 잠시 눈을 마주쳤다. 말은 없었지만, 둘 다 이미 답을 얻은 듯했다. 로사 왕자가 그토록 연락을 피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도 나름의 계획을 세우고 있는 건가?...3일 후. 소은은 마지막 침을 놓고 손을 거두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여왕을 쳐다보며 말했다. “오늘 시술로 폐하의 다리에 감각이 돌아오실 겁니다. 하지만 일어서는 건 천천히 시도하셔야 합니다. 너무 서두르시면 안 돼요.”소은은 말을 마치고 갑자기 미소를 지었다.“무엇 때문에 웃는 거지?” 여왕은 여전히 자신의 다리를 어루만지며 물었다. 이미 이틀 전부터 약간의 감각이 돌아왔음을 느낀 터라, 소은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소은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제가 쓸데없는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요. 사실 R10 실험을 고집하신다면 결국 폐하께서는 이 몸을 떠나게 되실 텐데, 제가 이 몸에 애쓰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여왕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계속한 거지?”“어쩌면, 폐하께서 마음을 바꾸실 지도 모르니까요.” 소은은 부드럽게 대답했다. “어쩌면 자신의 몸이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거든요.”“우리 모두 이 세상에 올 때 두 손은 비어있지만, 이 몸만은 오로지 우리 자신의 것이죠. 몸마저 버리신다면, 그 영혼은 여전히 진짜 자신일 수 있을까요?”“그렇구나.” 여왕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
소은은 조용히 몸을 일으키며 여왕을 쳐다보았다. “물론이죠.” 소은은 담담하게 답했다. 그 대답에는 원망이나 비난의 기색은 전혀 없었다.“그렇다면... 조금 아쉽네.” 여왕은 생각에 잠긴 듯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기 마련입니다. 세상 모든 일은 균형을 맞추려 하죠. R10이 폐하께서 이루고자 하는 꿈이라면, 저는 그것을 막을 수 없어요. 다만, 그때가 되어 성공하든 실패하든, 저는 그 모습을 보지 못할 테니 부디 후회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소은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문 밖으로 나갔다.릭은 여전히 문 앞에서 대기 중이었다. 그녀와 여왕의 대화가 거의 다 들렸던 듯, 둘의 시선이 잠시 교차했다. 소은이 그를 지나쳐 나가자, 릭은 곧장 방으로 들어갔다.“여왕 폐하.” 릭은 여왕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그녀의 다리에 꽂힌 은침을 보자 릭의 눈빛이 굳어졌다. “이건...”“괜찮아. 곧 소은이가 와서 침을 빼줄 거야.” 여왕은 무심하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릭은 여전히 불안한 눈빛으로 말했다. “폐하께서 너무 방심하시는 것 아닙니까? 만약 한소은이 폐하께...”“그럴 리 없다.” 여왕은 단호히 그의 말을 잘랐다.릭은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설마 그 여자를 믿으시는 겁니까?”여왕은 대답 대신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녀도 릭의 질문이 아니었다면 자신이 소은을 믿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오랜 세월 누구도 쉽게 믿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그녀는 소은을 의심하지 않았다. 심지어 은침에 독이 묻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제가 가서 잡아오도록 하죠.”여왕이 생각에 잠기자 릭은 바로 뒤돌아섰다.“거기 서!”여왕은 결연히 말했다. “난 믿어.”릭은 한참을 침묵하며 여왕의 결정을 받아들였다....임상언은 아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비록 아들을 구하려는 결심을 굳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희망이 사라지는 듯했다.
소은은 허리춤에서 허리띠처럼 생긴 물건을 꺼내더니 조심스럽게 풀어내며, 그 안에 숨겨진 가느다란 은침을 꺼냈다.“이건...” 여왕은 깜짝 놀라며 소은을 쳐다봤다. 소은이가 은침을 항상 가지고 다닐 줄은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말해봐, 네 요구가 뭐지?” 여왕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마음을 가다듬으려 애썼다. 너무 무리한 요구라면 거절하면 그만이다. 여왕은 절대 소은에게 휘둘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소은은 차분하게 말했다. “제가 여기서 나올 수 있었던 건 로사 왕자님 덕분입니다. 그러니, 왕자님을 책망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그게 다야?” 여왕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소은이 여기까지 와서 자신과 조건을 따지는데, 결국 요구한 게 단지 로사를 처벌하지 말라는 거라니. 자신이 잘못 들은 건가 싶었다.“로사는 내 아들이다. 내가 정말 내 아들에게 손을 댈 리는 없지. 괜히 기회를 헛되게 쓴 건 아닌가?” 여왕은 고개를 저으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전 폐하께서 정말 로사 왕자님께 처벌을 내리시지 않을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왕자 폐하께서 저를 구해준 건 사실이기에 저도 왕자 폐하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소은은 조용히 말했다. “게다가 지금 왕자 폐하를 감금하시고 자유를 제한하고 계시지 않나요?”여왕은 의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니야. 난 단지 로사를 Y국으로 돌려보냈을 뿐이야.”“로사가 여기서 내 일을 여러모로 방해하긴 했지만, 우리 모자 사이가 더 악화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국내에서도 로사가 필요하니 Y국으로 돌려보낸 것뿐이다.” 여왕은 담담하게 말했다.“그런데 왜 왕자 폐하의 전화가 연결되지 않죠?” 소은은 잠시 멈칫했다. 단지 귀국했다면 국제전화를 받을 수 있을 텐데, 연락이 닿지 않았기에 여왕이 로사를 가둬놓았다고 오해할 수밖에 없었다.여왕은 깊은 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나도 잘 모르겠군. 그날 내가 화가 났던 건 사실이지만, 곧바로 Y국으로 돌아가도록
“삼일이면 됩니다.” 소은은 여왕을 쳐다보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삼일? 고작 삼일?” 여왕의 눈에는 믿기지 않는 놀라움이 서렸다. 그녀는 적어도 몇 달, 아니 최소한 몇 년은 걸릴 줄 알았다. 그러나 고작 삼일이라니, 그녀로서는 상상도 못 한 시간이었다.삼일쯤이야. 십 수년을 이렇게 버텨왔는데, 삼일쯤 더 기다린다고 달라질 게 뭐 있겠는가?“삼일 안에 정말 나아질 수 있는 건가? 내가 정말 다시 일어서서 걸을 수 있는 건가?” 여왕은 두 손으로 자신의 다리를 힘껏 눌렀지만 여전히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그녀는 소은의 말을 쉽게 믿을 수가 없었다. 이 다리가 감각을 잃은지 너무 오래되어 치료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여왕은 여러 나라의 명의를 찾아 다녔지만, 그들은 단지 병의 악화를 늦출 수 있을 뿐 다리를 완전히 회복시키는 건 불가능하다고 했었다. 그러나 지금 소은은 그녀 앞에 서서 확신에 찬 얼굴로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녀는 속으로 자신도 모르게 그 말을 믿고 싶어졌다.“이전처럼 완벽하게 걸을 수 있을 거라고 장담할 순 없어요. 너무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아서 근육이 많이 위축됐거든요. 하지만 서서히 일어나서 조금씩 회복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소은은 진지한 어조로 답했다.여왕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정도라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젊었을 때처럼 완전히 회복되는 것을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만약 휠체어와 지팡이 없이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 그 자체로도 그녀에겐 더할 나위 없는 희망이었다.“좋아. 삼일, 기다리겠네. 필요한 게 있나?” 여왕은 기분이 좋아져 말을 한층 부드럽게 했다.“임남...” 소은이 말을 꺼내자마자 여왕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녀는 곧바로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 “그건 안 돼. 그런 요구는 하지 마라.”“제가 말한 건 임남을 바로 풀어달라는 게 아닙니다. 그냥... 그 아이가 괜찮은지 알고 싶고, 가능하다면 아버지와 한 번 만날 기회를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 실험을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은 저와 프레드 뿐이기 때문입니다.” 소은은 잠시 생각하다가 덧붙였다. “아니면 주효정을 믿으실 건가요?”“나는... 아무도 믿지 않아.” 여왕은 얼굴을 차갑게 굳히며 휠체어를 돌렸다.“여왕 폐하께서 이 실험에 집착하고 계시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인가요? 세상을 둘러보고 싶다거나, 짐을 내려놓고 잠시 쉬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으신가요? 수십 년간 왕좌에 오르셨지만, 정말로 아직도 그 삶이 좋으신가요? 언제나 긴장하며 위태로운 자리를 견디는 고단한 나날, 정말 아직도 벗어나고 싶지 않으신가요?” 소은은 여왕의 등을 쳐다보며 부드럽게 물었다.여왕은 아무 말 없이 자신의 무릎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살짝 떨구었다. 그녀는 시선을 다리로 내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세상을 둘러본다? 나는... 걷는 게 어떤 느낌인지도 잊어버렸어.”여왕은 오랜 세월 동안 다리를 쓰지 않았고, 처음에는 억지로라도 일어설 수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상태는 악화되었고 이제는 아예 휠체어 없이는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그녀는 휠체어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소은이 ‘세상을 둘러보라’는 말을 꺼내자 가슴이 아팠다.“만약... 폐하께서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요? 제가 다시 걷게 해드린다면요?” 소은은 조용히 여왕의 뒤에 서서 말했다.여왕은 잠시 멈칫하더니, 눈빛이 날카롭게 변하며 휠체어를 돌려 소은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정말이냐?” 여왕의 눈에는 억누를 수 없는 희망과 깊은 의심이 뒤섞여 있었다.소은은 대답 대신 그녀의 시선을 천천히 여왕의 다리로 내리고, 천천히 다가가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손을 뻗어 여왕의 무릎 위에 가볍게 손을 올렸다.여왕은 살짝 몸을 떨었다. 사실, 그녀의 다리는 거의 완전히 감각을 잃은 상태라서 소은의 손길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아마도 너무나 간절히 다시 일어서고 싶기 때문이었을 것이다.소은은 아무 말 없이 여왕의
“맞아요, 임남 때문이기도 하지만, 폐하 때문이기도 합니다.” 소은은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제가 정말로 떠나버렸다면, 가장 초조해지는 사람은 사실 여왕 폐하 아닐까요?”여왕은 코웃음을 치며 차갑게 말했다. “내가 초조해질 이유가 뭐지? 어차피 내 손엔 네 약점이 있잖아. 너를 다시 잡아오는 것도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고.”“약점이요? 임남 말씀이신가요?” 소은은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잊지 마세요, 임남이는 제 아들이 아닙니다. 저에게는 제 친자식이 셋이나 있어요. 만약 제가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임남을 포기해 제 아이들을 지키려 한다면, 그 약점이 과연 제게 약점이 맞을까요?”여왕이 입을 열기도 전에 소은은 다시 말을 이었다. “게다가, 그 아이에겐 목숨을 걸고서라도 구하려는 아버지가 있습니다. 만약 임상언이 폐하께 끝까지 맞서기로 결심한다면...” “폐하께서야 높은 자리에 있으니 이런 평범한 상인을 하찮게 여기실 수 있지만, 임상언 씨가 단순한 상인이 아니라는 걸 잊으시면 안 됩니다. 임상언 씨의 사업은 세계 곳곳에 뻗어 있어요. 임상언 씨가 목숨을 걸 각오가 되어 있다면 그 어떤 일도 할 수 있겠죠. 혹시라도 바깥에 소문이 퍼져 폐하와 Y국의 명망이 손상된다면, 곤란하지 않겠습니까?”“너...” 여왕은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반박할 말이 당장 떠오르지 않았다.여왕이 화가 난 것을 보고, 소은은 한결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화내지 마세요. 제가 돌아온 건 폐하를 자극하려는 게 아닙니다. 함께 최선의 방향을 찾고자 돌아온 거예요. 사실 폐하께서 H국에 오신 일이 밝혀진 건 아니지만, 꽤 오랜 시간 H국에 머물고 계셨습니다. 정말로 H국이 이 사실을 모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세요?”여왕은 말없이 그녀를 쳐다보았다. “지금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건 폐하의 체면을 살려드린 겁니다. 그러나 폐하께서 이곳에서 계속 머무르시며 혹여 무리수를 두신다면, 얼마나 더 체류하실 수 있을까요? Y국도 계속해서
릭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여왕은 모니터에서 시선을 돌리며 담담히 말했다. “소은을 데려와. 어디 한번 무슨 변명을 할지 들어보자. 또 어떤 이야기를 꾸며낼지 궁금하네.” 여왕은 휠체어를 살짝 돌려 더 이상 모니터를 보지 않았다.“여왕 폐하?” 릭은 망설이다가 말했다. “한소은이 거짓말을 할 걸 아시면서도 굳이 왜...” 그러나 여왕은 그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단호히 말했다. “듣고 싶어!” 이 한마디에 릭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그는 곧장 소은이 있는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소은이 정말로 잠이 들려고 하던 순간, 문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그녀는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다. 눈을 뜨는 순간, 문이 열리면서 릭이 문 앞에 서 있었다. 그의 얼굴은 굳어 있었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여왕께서 한소은 씨를 만나고 싶어 하십니다.” 소은은 차분한 표정으로 릭을 쳐다보았다. 마치 모든 상황을 예견한 듯 고요하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와 동시에 임상언은 소은보다 먼저 일어나 문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가 문에 도착하자마자 릭이 손을 들어 그의 앞을 막았다. “그쪽은 남아 계시죠.” “뭐? 우리 둘은 같이 온 거야!” 임상언은 소은을 돌아보며 그녀에게 눈짓으로 도움을 요청했다. 릭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여왕 폐하께서 그쪽을 부르지 않았으니 여기 남으시죠.” 릭은 더 이상 임상언에게 말을 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소은은 임상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부드럽게 말했다. “절 기다리고 있어요.” 임상언은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억지로 마음을 다스리며 그녀가 릭과 함께 방을 나서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조심해요.” 임상언은 소은을 향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소은은 미소를 지어 그에게 답했고, 릭을 따라 여왕의 방으로 향했다. 익숙한 길을 따라 걷는 그녀는 곧 여왕의 방에 도착했다. 릭이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여왕 폐하, 데려왔습니다
소은이 임상언을 데리고 대사관에 도착하자,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눈에 띄게 당황했다.한 사람이 서둘러 소식을 알리러 가더니, 이내 주변 구석구석에서 누군가가 몰래 그들을 엿보는 기척이 느껴졌다. 곧이어, 소은이 잘 알고 있는 여왕의 측근 몇 명이 경계 어린 눈빛으로 다가와 그들을 안으로 안내했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그들은 소은과 임상언의 몸을 샅샅이 검사하며 위험 물품을 소지하지 않았는지 확인했다. 철저한 검사가 끝난 후에야 비로소 경계가 풀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여왕을 만나지 못했고, 한적하고 깊숙한 방에 대기하도록 배정받았다. 오랜만에 돌아온 이곳은 소은에게 익숙하면서도 낯설게 느껴졌다. 익숙한 것은 이 장소였지만, 낯선 것은 지금의 마음가짐이었다. 예전에는 이곳이 싫고 불쾌하기만 했으며,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은 장소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임무와 사명을 가지고 돌아왔고, 그녀의 목표는 단순히 여기를 떠나는 것이 아닌, 중요한 일을 완수하고 무사히 돌아가는 것이었다.반면, 임상언은 눈에 띄게 불안해 보였다. 그는 두 손을 맞잡고 무릎 위에 놓은 채,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다리를 가볍게 떨고 있었다. 소은은 그의 초조함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임남을 생각하면 마음이 몹시 불안하고 조급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여기까지 왔으니 임남을 반드시 볼 수 있을 거예요. 그러니 긴장 좀 풀어요.” 소은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임상언은 그녀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발을 땅에 꾹 눌러 다리를 멈췄다. 겉으로는 조금 안정된 듯 보였지만, 그의 얼굴은 여전히 긴장감이 가득했고 미세하게 떨리는 얼굴 근육이 그의 불안한 마음을 보여주었다. 마음을 진정시키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소은은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다.두 사람은 한참을 기다렸지만, 여왕을 만나러 오라는 사람은커녕 상황을 확인하러 오는 사람조차 없었다. 긴장했던 임상언은 결국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대체 무슨 의도인 거죠? 왜 아직
“제발 부탁이에요. 안에서는 소은 씨 말만 따를게요. 소은 씨가 시키는 대로 다 할 테니까, 제발 절 데려가 주시면 안 돼요?” 임상언은 진심 어린 목소리로 소은에게 간청했다. 자존심은 이미 버린 지 오래였다. 아들을 만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그를 이 지경까지 이르게 했다. 소은이 반드시 돌아가겠다고 결심한 순간, 임상언은 이미 마음을 굳혔다. 자신이 함께 가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같이 가면 의심을 받거나 제지를 당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전 아니에요.” 임상언은 계속 설득을 이어갔다. “임남이 그 안에 있다는 걸 모두 알고 있잖아요. 제가 아들을 만나고 구하려고 하는 건 당연한 일이에요. 그리고 아들을 위해서 제 목숨을 바치는 것도 이해될 수 있는 일이죠. 그러니 제가 가는 게 가장 올바른 선택이에요.” 긴 침묵 끝에, 소은이 입을 열었다. “임상언 씨 말이 맞아요. 전 동의합니다.” 소은은 말을 마치고 서진에게 시선을 돌렸다. 서진은 잠시 생각하더니 천천히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저도 동의합니다.” 원청현은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두드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나도 동의하지.” 잠시 침묵하던 진정기 역시 마침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동의합니다.” 마지막으로 원철수는 주변을 둘러보며 한숨을 내쉬고 손을 펼쳤다. “모두 동의했는데 내가 뭐라고 반대하겠어. 나도 찬성이야.” 사실 원철수의 의견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임상언에게 지지를 표현하는 의미였다. 임상언은 눈시울이 붉어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모두들 고마워요.” “이게 뭔 감사할 일이라고. 어쨌든 안에 들어가면 절대 신중해야 해. 무슨 일이 있어도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네 입으로 한 말 반드시 지켜!” 원철수는 그의 결심을 칭찬하면서도 걱정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원철수는 속으로 임상언의 결단에 감탄했다.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그는 분명 최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