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소은은 자고 일어나니 이미 정오가 되어 있었다. 그녀는 정신을 차리고 난 뒤 대충 추스르고 나갈 준비를 했다.어젯밤에 계약 상대에게 주소를 남기라고 했지만 전화번호만 남겼다. 그녀는 밤이 길어질 것을 대비해 일찍 가서 사와야 했다.밖으로 나가면서 전화를 거니 금방 연결이 되었다. “이따 어디서 만날까요? 참, 지금 물건을 가지고 계시나요? 저 재배지부터 가서 확인하고 싶어요.”그녀는 말을 빠르게 마쳤고 이미 대문에 도착했다.그러나 전화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머뭇거리며 말했다. “죄송해요, 팔지 않겠습니다. 제가 큰소리쳤지만 사실 물건이 그렇게 많지 않아요.”“없다고요?”뭐가 무서워서 그러는 거지, 상상이 많아지면 더 두려워져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다만 우물쭈물하는 그녀의 목소리를 들으니 한소은은 그녀가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간단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가격이 불만족스러운 건가요? 그러면 그거에 대해서는 다시 얘기할 수 있어요. 물건의 품질만 괜찮으면 가격은 반드시 만족하는 조건으로 맞춰줄 수 있어요.”하지만 들려오는 상대방의 대답은 달랐다. “아니요, 가격이 문제가 아니라 정말 물건이 별로 없어요.”한소은은 한 손을 허리에 짚고 대문을 바라보았다. 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정원에 있던 큰 나무도 사라져 있었다.그녀가 자고 있을 당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었고 창문으로 정하진이 명령하는 것을 보았다. 그 물건은 그의 것이었는데, 이 나무가 없다면 날 가둘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건가?다만 지금은 이렇게 넓은 정원에 그늘이 전혀 없었고, 게다가 답답한 얘기를 듣고 있자니 더욱 짜증이 났다.“알겠어요, 많지 않아도 상관없어요! 어디서 찾은 건지, 아니면 얼마나 남았는지 알려주세요. 그거 전부 제가 살게요. 그것도 안된다면 누가 심고 키운 건지라도 알려주세요. 제게 소개해 주셔도 돼요.” “그럼...” 여자아이는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전화번호밖에 없어요.”“좋아요. 전화번호 제게 주세요. 다른 건 신
상대방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렇게 급하시다면 오후 말고 지금은 어때요?”“지금요?!”그녀는 멍하니 있다가 대문이 ‘삐’하는 소리와 함께 열리는 것을 보았다. 대문 앞에 서있는 사람은 바로 아침에 떠나던 정하진이었다.그는 손에 전화기를 들고는 그녀를 향해 흔들며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어쩐지 방금 목소리가 익숙하더라니, 또 그 사람이었을지는 예상하지 못했다.어제 있던 일도 그렇고, 그 아가씨의 삼촌인 건가? 그래서 어제 먼저 손을 써서 윤향을 다 사들인 건가?어쩐지 협회에만 들어가면 희귀한 향료도 있다더니이게 바로 타당한 협박인가?!“절 찾아올 줄 알고 있었어요.” 정하진은 웃으며 들어왔다. “어떤가요, 잘 생각해 보셨나요? 마음 바꾸려는 건 아니죠?”한소은은 이번엔 직접 거절하지 않고 팔짱을 낀 채 그를 바라보았다. “왜 하필 저죠?”“네?”“당신 말대로 조향 협회는 들어가기 어렵고, 매년 많은 사람들이 들어가고 싶어 하는데, 왜 저 같이 이름도 없는 사람을 영입하고 싶어 하시는 거죠?”“이름이 없다고요?” 정하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프랑스 최고의 조향사의 초청을 거절할 수 있는 이름 없는 조향사는 당신이 처음입니다.”“단지 윌 선생의 초청을 거절했기 때문인가요?”“그것뿐 만은 아니죠.” 그는 손가락으로 코를 비비며 말했다. “절 이기셨잖아요.”그녀는 전혀 몰랐다. 그 대회는 단지 회사에서 파견 보낸 곳이고 자신의 능력을 증명할 수 있는 기회였을 뿐이다. 하지만 정하진에게도 그 대회는 자신의 능력을 증명할 수 있는 기회였다.정 씨 가문에게 그는 반역자고, 정치를 잘 하며 집안 사업에도 참여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정 씨 가문의 할머니는 보수적인 인물로 자신의 아들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녀에게 있어서 향수는 여자들이나 쓰는 물건이었고, 남자들이 그런 것을 다루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프랑스에서 열린 그 대회에서 정하진은 할머니와 내기를 했다. 원래 1등을 따낸 뒤 돌아올 예정이었지만 이렇게 어린 소녀에게 질 줄은 몰랐다.
정하진은 눈썹을 매만지며 그녀가 안에서 무엇을 고르는지 지켜보았고, 그는 곧 향신료의 일부를 채취했다.그녀는 채취가 끝나자 고개를 돌려 그를 한 번 쳐다보고는 바로 뒷방으로 갔다.뒷방에는 몇몇 기구가 준비되어 있었지만 일부러 괴롭히려는 듯 완전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한소은은 개의치 않고 향료 정제 및 제조를 시작했다.사실 이틀 동안 여기서 아무것도 안한 것은 아니었다. 이렇게 많은 제품들을 두고 사용하지 않기에는 너무 아까웠다. 그래서 이미 정제된 오일과 그 향료를 혼합해 제조하였고 곧 은은한 향기가 나기 시작했다.정하진은 그녀가 가는 곳마다 따라다녔고, 그녀가 무엇을 하는지 계속 쳐다보았다. 그는 소리 내지는 않았지만 계속 그녀를 지켜보았다.하지만 그녀가 분석하는 도구도 전혀 사용하지 않은 채 바로 혼합하는 것을 보고 탄식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곧 한소은이 그를 곁눈질하며 쳐다보자 그 눈빛으로 인해 그는 입을 다물었다.‘그녀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지켜보는 수밖에 없어.’잠시 동안, 물건이 부딪히는 소리만 들려왔고 공기 중에는 가슴속까지 스며드는 향이 떠돌기 시작했다.정하진은 자신이 최고의 조향사 중 하나라고 자부해왔다. 그는 아직 젊었고, 그의 명성이 다른 최고의 조향사들만큼 뛰어나지는 않았지만 자신이 이 분야에서 뛰어난 사람이 될 것이라고 믿었다. 심지어 재능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순간, 그는 자신을 의심했다.그녀는 자신 앞에서도 편안하게 향수 만드는 일을 해냈다. 그는 지금까지 어떤 조향사도 이렇게 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향수를 마치 커피 마시는 일처럼 편안하게 만들었고, 그녀는 향수를 만드는 데 온전히 집중하며 그 일을 즐기고 있었다. 이로 인해 정하진 또한 그녀에게 집중하였다.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한소은이 “OK”라고 외치고 나서야 그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시간을 다시 보니 세 시간 가까이 흘러 있었다.“시험해 보실래요?” 그녀는 자신감 가득한 모습으로 작은 병을 그의 앞에 내밀었다. “...”속으로는
게다가 전문적인 조향사로서도 이 향수는 최상급이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을 만한 향수였다.정하진은 겉으로는 평온한 척했지만 속으로는 많이 흔들렸다.그는 이 직업을 접하면서 많은 향수, 에센스 오일들을 직접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많은 거장들을 만났다. 하지만 그녀처럼 평벙한 원료를 사용하여 이런 제품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은 거의 본 적이 없다.지금까지 그가 가지고 있던 인식을 다 뒤집었다.그 뿐만 아니라 그의 스승 또한 최고의 향수를 만들기 위해서는 최고의 향료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마치 우수한 유전자끼리 만나 훌륭한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처럼. 하지만 오늘 일로 인해 그는 약간 흔들렸다.“좋아요. 운향의 가격에 대해 얘기해봅시다.” 한소은은 사실 이런 지루한 밀당에 대해 별 관심이 없었다. “사실 당신 말대로 당신은 향료가 부족하지는 않습니다. 게다가 운향은 당신에게 최고의 재료도 희귀한 것도 아니죠? 꼭 필요한 것도 아닌데 저랑 기싸움하려고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요?”정하진은 이전까지는 그녀에게 불복했다면 지금은 그녀에 대해 관심이 많아졌다.그녀를 바라보는 그의 얼굴에는 흥미가 가득했다. “당신 말대로 최고의 재료도 아닌데 왜 그렇게 원하시는 거죠?”사실, 정하진은 이 운향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었다. 만약 그녀가 운향에 대해 관심이 없다면 그녀가 전부 구매하든 말든 자신이 직접 그곳으로 가 구매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가 이 운향을 원했기에 심지어 이 운향으로 향수를 만들고 싶어 했기에 그는 더더욱 그녀에게 주고 싶어 하지 않았다.이 말이 무슨 말인가 하면 그에게 있어서는 원칙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녀의 취향만 알 수 있으면 됐다.그녀의 취향만 알 수 있다면 약점을 잡는 셈이니 그녀와 조건을 얘기하기 더 수월해진다.“그게 제 일이에요.” 한소은은 담담하게 말했다. “제가 뭘 하고 싶은지는 당신과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당신이 말하려고 하지 않으니 저 혼자 연구해 봐야겠네요. 어쩌면 이 운향, 정말 희귀종일 수도 있겠네요.” 그는
자신의 손을 잡고 있는 그를 한소은은 차가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예전에 정하진이 그녀를 여기로 유인해 가둬두려고 했을 때도 이렇게 화를 내지 않았는데, 지금은 그가 자신을 붙잡고 놓지 않고 또 이런 말을 하다니, 그녀는 조금 화가 났다. "그 운향을 하진 씨가 돈을 써서 이미 샀으니, 태우든 말든 나랑 무슨 상관이죠!” 한소은이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리고—”“아아……아파요!” 무슨 일이 일어났는 지도 모르는 새에 정하진의 팔이 그녀에게 제압당했다. 원래 그는 그녀의 손목을 잡고 있었지만, 지금은 그의 팔이 완전히 제압당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상반신 전체도 눌려져 아파서 연거푸 소리를 지르며 참지 못하고 숨을 헐떡였다."도련님……”주변에 있던 경호원들이 막 그에게로 다가가려 했지만, 한소은의 눈빛에 얼어붙었다. 연약해 보이던 여자의 눈빛이 순간적으로 강렬하고 매우 차갑게 변했다. 특히 그녀가 곁눈질을 하는 동시에 정하진의 몸까지 꺾어 놓으니 그는 더욱 아파서 견딜 수 없었다.주변 사람들은 얼굴빛이 변하며 서로 눈짓을 주고받고는 기회를 엿볼 태세였다.사실 한소은은 그에게 작은 교훈을 주려고 한 것일 뿐 그를 다치게 할 정도는 아니었고, 만약 정하진을 정말로 다치게 한다면 이곳을 떠나기는 힘들 것이다. "하진 씨, 여자에게는 함부로 손대지 않는 게 좋아요!”이 말을 한 후, 그녀는 손을 떼고 그를 앞으로 밀었다.그는 그녀의 힘에 걷잡을 수 없이 앞으로 돌진해 비틀거리다가 경호원의 부축으로 간신히 일어섰다. 자신의 도련님이 풀려난 것을 보고 경호원들이 달려들어 한소은을 붙잡으려 했지만, 그 순간 소리가 들렸다.“다들 움직이지 마!” 정하진은 한 손으로 어깨를 짚고, 다른 한 손은 통증을 참으며 움직였다. 다행히 탈골이나 심하게 다친 곳은 없었고, 단지 방금 그녀에게 제압당한 곳이 조금 아플 뿐이었다. 자신이 아무렇지 않다는 것을 알고, 그는 경호원들에게 지시를 내리지 않고 한소은의 눈을 바라보았다. "나는 차 씨 집안
속임수가 있을까 의심스러웠지만, 한소은은 어차피 여기 있고 싶지 않아 떠날 채비를 했다. 하지만 이때, 갑자기 차 두 대가 와서 끼익하는 소리와 함께 그들의 앞에 멈춰 섰다. 한소은의 첫 번째 반응은 당연히 정하진이 속임수를 쓰고 있다고 느꼈고, 그를 바라봤지만 그는 자신을 보지 않고 그 두 차를 바라보고 있었으며, 안색이 약간 굳어 있었다. 곧이어 정하진이 차를 향해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자 거의 동시에 차 문이 열렸다.차에서 내린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인은 손에 지팡이를 짚고 있었고, 차에서 내려 눈을 들어 주위를 둘러보다가 마침내 시선이 그녀에게 향했다. 하 씨 어르신?!한소은이 화들짝 놀랐다. 이 업계에서 모든 동료들이 그가 익숙하지는 않을 수도 있지만, 조향사로써 하 씨 어르신을 모를 리는 없다. 하 씨 어르신은 국내 조향사 중 가장 유명하고 권위 있는 사람으로 젊었을 때 많은 성공한 향수를 만들었고, 가장 놀라운 것은 현재 70대가 넘었는데도 매년 두 개의 성공한 제품을 낼 수 있다는 것이다. 매번 하 씨 어르신의 향수는 출시될 때마다 완판되었지만, 그는 실제로 거의 나오지 않고 조향 산업 협회의 고문관을 맡고 있었다. 고문이라고는 하지만 그에 대한 사람들의 존경심은 매우 강했다. 한소은은 당연히 이런 인물을 알고 있었지만, 여기서 그를 만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하 씨 어르신, 어떻게 오셨습니까?” 정하진의 신분도 낮지 않지만, 하 씨 어르신을 상대할 때는 매우 깍듯했다. 다른 차에서도 어르신과 비슷한 나이의 사람들이 몇 명 내렸는데, 보아하니 하 씨 어르신과 함께 온 듯했다.하 씨 어르신은 정하진에게 살짝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한소은을 향해 곧장 걸어갔다. "당신이 한소은인가?”위아래로 한 번 훑어보더니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네, 제가 한소은입니다. 안녕하세요 어르신.” 상대방의 의중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선배에 대한 존중은 있어야 했다. “당신이 윌의 초대는 물론 조향 업계 협회의 초대도 거
잠시 멍해진 한소은은 이내 웃으며 대답했다."어르신, 제 이력으로는 협회에 가입할 수 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자 어르신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그런 옛날 방식으로 문제를 보면 안 되지. 지금 사회가 이렇게 빨리 발전하고 있고, 인재도 많이 나오는데 이력 같은 걸 따지면 쓰나. 만약 정말로 실력이 있고 능력이 있는데 나이로 경력을 따지면 인재를 구할 수 없지.”“내 나이가 되면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나?”그는 한 손을 들어 약간 몸을 기울였고, 곁에서 따라오던 사람의 안색이 복잡해졌다.“어르신, 어르신께서는 조향사 중 과연 탑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런 말씀은 너무 겸손하십니다. 어르신의 성취와 작품이 어떻게 저희 같은 후배들과 비교될 수 있겠습니까.” “맞습니다!”다른 사람들도 입을 모아 말했다.“어르신의 재능은 누구도 따라올 수 없고, 앞으로 백 년, 천 년이 지나도 어르신을 능가할 사람은 없을 겁니다.”“…….”한소은은 조향 협회에 있는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말할 줄은 몰랐다.그렇다, 하 씨 어르신의 업적은 매우 높이 살 만하고 국내에서도 기념비적인 수준이지만, 그들이 말하는 것은 너무 과장이 심했다.백 년이나 천 년 뒤는커녕 현재 국제사회를 내다보아도 유능한 사람이 많으며, 드러내지 않고 조향하는 데만 집중하는 은둔자는 말할 것도 없고, 하 씨 어르신이 그들 모두보다 낫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하지만 한 사람이 칭찬하면 다른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치는 등 협회 내에서 이미 그를 치켜세우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는 것 같았다. 한소은은 아무 대꾸를 하지 않았고, 어르신이 왜 자신을 찾아왔는지 영문을 알지 못했다. 원래는 이곳을 먼저 떠나 김서진에게 연락해 그가 어디에 있는지 보려고 했고, 가능하면 바로 소성으로 돌아가려고 했지만 아직 발을 떼지도 못했는데 이렇게 큰 장벽이 찾아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게다가 하 씨 어르신의 말투로 보아 그녀를 놓아줄 생각은 없는 것 같다. "어떤가?"어르신은 계속해서
그녀는 순간 몸을 돌려 곧장 정하진 앞으로 가서 그를 바라보았다.정하진도 사실 지금의 상황을 잘 이해하지 못했지만, 어쨌든 하 씨 어르신이 이 사람을 원해서 그녀를 머물게 하려고 한다면, 이 점에 있어서 그들의 이익은 일치하기 때문에 별말 없이 이 여자가 어떻게 대처하는지 지켜보기만 하면 됐다. 옆에 수많은 사람들이 둘러싸고 있는데 주눅이 들어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은 체면이 떨어지기에 그는 떨리는 목소리를 억누르려 애쓰며 힘을 주어 말했다. "뭐 하는 거죠?” 그는 방금 전에 이 마녀가 자신의 팔을 꽉 잡고 하마터면 팔이 뽑힐 뻔했다는 것을 잊지 않았다. 한 번 경험했기에 그는 마치 그녀가 무슨 악귀라도 된 것처럼 경계하는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한소은은 그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빙긋 웃더니 갑자기 손을 뻗어 그의 외투 주머니 속에 손을 넣었다. “……” 그녀가 그의 주머니에서 작은 향수병을 꺼냈고, 그것은 방금 전 그녀가 만든 향수였다. 그 향은 보편적이지 않았고, 포기하기 힘든 물건이었기에 정하진은 이쪽 일을 해결한 후에 돌아가서 잘 연구해 보고자 했다. 하지만 그는 막을 겨를도 없이 한소은이 향수병을 꺼내갔다. "아니면 제가 남의 것으로 인심을 쓰죠, 이건 제 보잘것없는 선물이니 어르신께서 마음에 들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녀는 두 손으로 향수를 어르신에게 건넸고, 어르신은 거절하지 않고 그녀의 손에서 그 향수를 가져다가 먼저 자세히 눈으로 관찰한 다음, 다시 몇 번 흔들고는 비로소 병마개를 뽑고 코끝에 가져다 대었다. 코끝까지 거리가 있긴 하지만 그래도 꽃향기가 물씬 풍겼다. 꽃향기라고 하기엔 정확하지 않고, 새벽 허브의 풀냄새도 은은히 섞여 있어 가슴을 파고든다. "당신이 만든 건가?”어르신의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도 없었지만, 눈빛은 매우 진지했다. 한소은이 고개를 가로저었다.“아뇨, 저와 정하진 씨가 함께 만든 겁니다.” 잠시 후 그녀는 다시 손으로 뒤쪽 대문을 가리켰다. "바로 뒤뜰의 작업실에서 정하진 씨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