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하진은 눈썹을 매만지며 그녀가 안에서 무엇을 고르는지 지켜보았고, 그는 곧 향신료의 일부를 채취했다.그녀는 채취가 끝나자 고개를 돌려 그를 한 번 쳐다보고는 바로 뒷방으로 갔다.뒷방에는 몇몇 기구가 준비되어 있었지만 일부러 괴롭히려는 듯 완전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한소은은 개의치 않고 향료 정제 및 제조를 시작했다.사실 이틀 동안 여기서 아무것도 안한 것은 아니었다. 이렇게 많은 제품들을 두고 사용하지 않기에는 너무 아까웠다. 그래서 이미 정제된 오일과 그 향료를 혼합해 제조하였고 곧 은은한 향기가 나기 시작했다.정하진은 그녀가 가는 곳마다 따라다녔고, 그녀가 무엇을 하는지 계속 쳐다보았다. 그는 소리 내지는 않았지만 계속 그녀를 지켜보았다.하지만 그녀가 분석하는 도구도 전혀 사용하지 않은 채 바로 혼합하는 것을 보고 탄식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곧 한소은이 그를 곁눈질하며 쳐다보자 그 눈빛으로 인해 그는 입을 다물었다.‘그녀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지켜보는 수밖에 없어.’잠시 동안, 물건이 부딪히는 소리만 들려왔고 공기 중에는 가슴속까지 스며드는 향이 떠돌기 시작했다.정하진은 자신이 최고의 조향사 중 하나라고 자부해왔다. 그는 아직 젊었고, 그의 명성이 다른 최고의 조향사들만큼 뛰어나지는 않았지만 자신이 이 분야에서 뛰어난 사람이 될 것이라고 믿었다. 심지어 재능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순간, 그는 자신을 의심했다.그녀는 자신 앞에서도 편안하게 향수 만드는 일을 해냈다. 그는 지금까지 어떤 조향사도 이렇게 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향수를 마치 커피 마시는 일처럼 편안하게 만들었고, 그녀는 향수를 만드는 데 온전히 집중하며 그 일을 즐기고 있었다. 이로 인해 정하진 또한 그녀에게 집중하였다.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한소은이 “OK”라고 외치고 나서야 그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시간을 다시 보니 세 시간 가까이 흘러 있었다.“시험해 보실래요?” 그녀는 자신감 가득한 모습으로 작은 병을 그의 앞에 내밀었다. “...”속으로는
게다가 전문적인 조향사로서도 이 향수는 최상급이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을 만한 향수였다.정하진은 겉으로는 평온한 척했지만 속으로는 많이 흔들렸다.그는 이 직업을 접하면서 많은 향수, 에센스 오일들을 직접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많은 거장들을 만났다. 하지만 그녀처럼 평벙한 원료를 사용하여 이런 제품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은 거의 본 적이 없다.지금까지 그가 가지고 있던 인식을 다 뒤집었다.그 뿐만 아니라 그의 스승 또한 최고의 향수를 만들기 위해서는 최고의 향료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마치 우수한 유전자끼리 만나 훌륭한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처럼. 하지만 오늘 일로 인해 그는 약간 흔들렸다.“좋아요. 운향의 가격에 대해 얘기해봅시다.” 한소은은 사실 이런 지루한 밀당에 대해 별 관심이 없었다. “사실 당신 말대로 당신은 향료가 부족하지는 않습니다. 게다가 운향은 당신에게 최고의 재료도 희귀한 것도 아니죠? 꼭 필요한 것도 아닌데 저랑 기싸움하려고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요?”정하진은 이전까지는 그녀에게 불복했다면 지금은 그녀에 대해 관심이 많아졌다.그녀를 바라보는 그의 얼굴에는 흥미가 가득했다. “당신 말대로 최고의 재료도 아닌데 왜 그렇게 원하시는 거죠?”사실, 정하진은 이 운향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었다. 만약 그녀가 운향에 대해 관심이 없다면 그녀가 전부 구매하든 말든 자신이 직접 그곳으로 가 구매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가 이 운향을 원했기에 심지어 이 운향으로 향수를 만들고 싶어 했기에 그는 더더욱 그녀에게 주고 싶어 하지 않았다.이 말이 무슨 말인가 하면 그에게 있어서는 원칙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녀의 취향만 알 수 있으면 됐다.그녀의 취향만 알 수 있다면 약점을 잡는 셈이니 그녀와 조건을 얘기하기 더 수월해진다.“그게 제 일이에요.” 한소은은 담담하게 말했다. “제가 뭘 하고 싶은지는 당신과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당신이 말하려고 하지 않으니 저 혼자 연구해 봐야겠네요. 어쩌면 이 운향, 정말 희귀종일 수도 있겠네요.” 그는
자신의 손을 잡고 있는 그를 한소은은 차가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예전에 정하진이 그녀를 여기로 유인해 가둬두려고 했을 때도 이렇게 화를 내지 않았는데, 지금은 그가 자신을 붙잡고 놓지 않고 또 이런 말을 하다니, 그녀는 조금 화가 났다. "그 운향을 하진 씨가 돈을 써서 이미 샀으니, 태우든 말든 나랑 무슨 상관이죠!” 한소은이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리고—”“아아……아파요!” 무슨 일이 일어났는 지도 모르는 새에 정하진의 팔이 그녀에게 제압당했다. 원래 그는 그녀의 손목을 잡고 있었지만, 지금은 그의 팔이 완전히 제압당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상반신 전체도 눌려져 아파서 연거푸 소리를 지르며 참지 못하고 숨을 헐떡였다."도련님……”주변에 있던 경호원들이 막 그에게로 다가가려 했지만, 한소은의 눈빛에 얼어붙었다. 연약해 보이던 여자의 눈빛이 순간적으로 강렬하고 매우 차갑게 변했다. 특히 그녀가 곁눈질을 하는 동시에 정하진의 몸까지 꺾어 놓으니 그는 더욱 아파서 견딜 수 없었다.주변 사람들은 얼굴빛이 변하며 서로 눈짓을 주고받고는 기회를 엿볼 태세였다.사실 한소은은 그에게 작은 교훈을 주려고 한 것일 뿐 그를 다치게 할 정도는 아니었고, 만약 정하진을 정말로 다치게 한다면 이곳을 떠나기는 힘들 것이다. "하진 씨, 여자에게는 함부로 손대지 않는 게 좋아요!”이 말을 한 후, 그녀는 손을 떼고 그를 앞으로 밀었다.그는 그녀의 힘에 걷잡을 수 없이 앞으로 돌진해 비틀거리다가 경호원의 부축으로 간신히 일어섰다. 자신의 도련님이 풀려난 것을 보고 경호원들이 달려들어 한소은을 붙잡으려 했지만, 그 순간 소리가 들렸다.“다들 움직이지 마!” 정하진은 한 손으로 어깨를 짚고, 다른 한 손은 통증을 참으며 움직였다. 다행히 탈골이나 심하게 다친 곳은 없었고, 단지 방금 그녀에게 제압당한 곳이 조금 아플 뿐이었다. 자신이 아무렇지 않다는 것을 알고, 그는 경호원들에게 지시를 내리지 않고 한소은의 눈을 바라보았다. "나는 차 씨 집안
속임수가 있을까 의심스러웠지만, 한소은은 어차피 여기 있고 싶지 않아 떠날 채비를 했다. 하지만 이때, 갑자기 차 두 대가 와서 끼익하는 소리와 함께 그들의 앞에 멈춰 섰다. 한소은의 첫 번째 반응은 당연히 정하진이 속임수를 쓰고 있다고 느꼈고, 그를 바라봤지만 그는 자신을 보지 않고 그 두 차를 바라보고 있었으며, 안색이 약간 굳어 있었다. 곧이어 정하진이 차를 향해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자 거의 동시에 차 문이 열렸다.차에서 내린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인은 손에 지팡이를 짚고 있었고, 차에서 내려 눈을 들어 주위를 둘러보다가 마침내 시선이 그녀에게 향했다. 하 씨 어르신?!한소은이 화들짝 놀랐다. 이 업계에서 모든 동료들이 그가 익숙하지는 않을 수도 있지만, 조향사로써 하 씨 어르신을 모를 리는 없다. 하 씨 어르신은 국내 조향사 중 가장 유명하고 권위 있는 사람으로 젊었을 때 많은 성공한 향수를 만들었고, 가장 놀라운 것은 현재 70대가 넘었는데도 매년 두 개의 성공한 제품을 낼 수 있다는 것이다. 매번 하 씨 어르신의 향수는 출시될 때마다 완판되었지만, 그는 실제로 거의 나오지 않고 조향 산업 협회의 고문관을 맡고 있었다. 고문이라고는 하지만 그에 대한 사람들의 존경심은 매우 강했다. 한소은은 당연히 이런 인물을 알고 있었지만, 여기서 그를 만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하 씨 어르신, 어떻게 오셨습니까?” 정하진의 신분도 낮지 않지만, 하 씨 어르신을 상대할 때는 매우 깍듯했다. 다른 차에서도 어르신과 비슷한 나이의 사람들이 몇 명 내렸는데, 보아하니 하 씨 어르신과 함께 온 듯했다.하 씨 어르신은 정하진에게 살짝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한소은을 향해 곧장 걸어갔다. "당신이 한소은인가?”위아래로 한 번 훑어보더니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네, 제가 한소은입니다. 안녕하세요 어르신.” 상대방의 의중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선배에 대한 존중은 있어야 했다. “당신이 윌의 초대는 물론 조향 업계 협회의 초대도 거
잠시 멍해진 한소은은 이내 웃으며 대답했다."어르신, 제 이력으로는 협회에 가입할 수 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자 어르신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그런 옛날 방식으로 문제를 보면 안 되지. 지금 사회가 이렇게 빨리 발전하고 있고, 인재도 많이 나오는데 이력 같은 걸 따지면 쓰나. 만약 정말로 실력이 있고 능력이 있는데 나이로 경력을 따지면 인재를 구할 수 없지.”“내 나이가 되면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나?”그는 한 손을 들어 약간 몸을 기울였고, 곁에서 따라오던 사람의 안색이 복잡해졌다.“어르신, 어르신께서는 조향사 중 과연 탑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런 말씀은 너무 겸손하십니다. 어르신의 성취와 작품이 어떻게 저희 같은 후배들과 비교될 수 있겠습니까.” “맞습니다!”다른 사람들도 입을 모아 말했다.“어르신의 재능은 누구도 따라올 수 없고, 앞으로 백 년, 천 년이 지나도 어르신을 능가할 사람은 없을 겁니다.”“…….”한소은은 조향 협회에 있는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말할 줄은 몰랐다.그렇다, 하 씨 어르신의 업적은 매우 높이 살 만하고 국내에서도 기념비적인 수준이지만, 그들이 말하는 것은 너무 과장이 심했다.백 년이나 천 년 뒤는커녕 현재 국제사회를 내다보아도 유능한 사람이 많으며, 드러내지 않고 조향하는 데만 집중하는 은둔자는 말할 것도 없고, 하 씨 어르신이 그들 모두보다 낫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하지만 한 사람이 칭찬하면 다른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치는 등 협회 내에서 이미 그를 치켜세우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는 것 같았다. 한소은은 아무 대꾸를 하지 않았고, 어르신이 왜 자신을 찾아왔는지 영문을 알지 못했다. 원래는 이곳을 먼저 떠나 김서진에게 연락해 그가 어디에 있는지 보려고 했고, 가능하면 바로 소성으로 돌아가려고 했지만 아직 발을 떼지도 못했는데 이렇게 큰 장벽이 찾아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게다가 하 씨 어르신의 말투로 보아 그녀를 놓아줄 생각은 없는 것 같다. "어떤가?"어르신은 계속해서
그녀는 순간 몸을 돌려 곧장 정하진 앞으로 가서 그를 바라보았다.정하진도 사실 지금의 상황을 잘 이해하지 못했지만, 어쨌든 하 씨 어르신이 이 사람을 원해서 그녀를 머물게 하려고 한다면, 이 점에 있어서 그들의 이익은 일치하기 때문에 별말 없이 이 여자가 어떻게 대처하는지 지켜보기만 하면 됐다. 옆에 수많은 사람들이 둘러싸고 있는데 주눅이 들어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은 체면이 떨어지기에 그는 떨리는 목소리를 억누르려 애쓰며 힘을 주어 말했다. "뭐 하는 거죠?” 그는 방금 전에 이 마녀가 자신의 팔을 꽉 잡고 하마터면 팔이 뽑힐 뻔했다는 것을 잊지 않았다. 한 번 경험했기에 그는 마치 그녀가 무슨 악귀라도 된 것처럼 경계하는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한소은은 그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빙긋 웃더니 갑자기 손을 뻗어 그의 외투 주머니 속에 손을 넣었다. “……” 그녀가 그의 주머니에서 작은 향수병을 꺼냈고, 그것은 방금 전 그녀가 만든 향수였다. 그 향은 보편적이지 않았고, 포기하기 힘든 물건이었기에 정하진은 이쪽 일을 해결한 후에 돌아가서 잘 연구해 보고자 했다. 하지만 그는 막을 겨를도 없이 한소은이 향수병을 꺼내갔다. "아니면 제가 남의 것으로 인심을 쓰죠, 이건 제 보잘것없는 선물이니 어르신께서 마음에 들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녀는 두 손으로 향수를 어르신에게 건넸고, 어르신은 거절하지 않고 그녀의 손에서 그 향수를 가져다가 먼저 자세히 눈으로 관찰한 다음, 다시 몇 번 흔들고는 비로소 병마개를 뽑고 코끝에 가져다 대었다. 코끝까지 거리가 있긴 하지만 그래도 꽃향기가 물씬 풍겼다. 꽃향기라고 하기엔 정확하지 않고, 새벽 허브의 풀냄새도 은은히 섞여 있어 가슴을 파고든다. "당신이 만든 건가?”어르신의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도 없었지만, 눈빛은 매우 진지했다. 한소은이 고개를 가로저었다.“아뇨, 저와 정하진 씨가 함께 만든 겁니다.” 잠시 후 그녀는 다시 손으로 뒤쪽 대문을 가리켰다. "바로 뒤뜰의 작업실에서 정하진 씨는
”……”한소은은 대답이 없었다. 이 노인은 왜 이렇게 말도 안 통하고 말이 이해가 안 되는 느낌이 드는지 모르겠다. 순식간에 분위기가 굳어지며 한소은은 어르신의 이 말에 갇혀 있었고, 그의 말은 정중하며 그녀의 의사를 묻는 듯했지만, 그녀가 거절하는 말을 들을 수 없다는 듯 했다. 즉, 그녀는 거절을 하는 말을 할 수가 없다. 이 늙은이는 정하진 보다 훨씬 다루기 힘들다.정하진은 단지 시작에 불과했으며, 그녀를 속여 들여온 후 각종 문제를 어렵게 만들었지만 이것들은 모두 대처하기 쉬웠으나 어르신은 달랐다.그는 나이가 많고 권위적인 위치에 있으며, 지팡이를 짚고 이곳에 서서 그녀에게 거듭 요구를 하고 있다. 그녀는 이미 두 번이나 거절했고, 만약 세 번째 거절을 한다면 내일이면 그녀는 틀림없이 온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 호의를 무시하는 여자가 될 것이다. 원래 그녀는 자신이 사기당한 것은 정하진의 생각이라고 여겼는데, 그가 협회에 있는 사람 몰래 도장을 사용하고, 몰래 이런 존재하지도 않는 초대장을 보냈다고 여겼다.한소은은 심지어 이것이 그들이 사전에 짜고 만든 연극이며, 그녀를 강제로 유인하기 위한 것이었는지도 의심하기 시작했다. 어르신이 그녀를 이 지경으로 몰아넣겠다고 고집을 부리니, 그녀도 차라리 솔직해질 수밖에 없다. 이럴수록 그녀는 이 조향 협회에 더욱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사라진다. “네, 저는 초대를 거절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그녀가 막 입을 떼자,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소은……”그 순간, 그녀의 어깨에 촉감이 전해졌다. "이렇게 오랫동안 오지 않더라니, 알고 보니 하 씨 어르신을 만난 거군요.”김서진이 한 손으로 그녀의 어깨를 감싸고 웃으며 그녀를 한 번 쳐다보더니, 고개를 돌려 하 씨 어르신을 바라보았다.“무슨 바람이 어르신을 여기까지 오게 한 겁니까? 어르신을 뵙게 되니 정말 기쁘네요!” "김서진?”어르신도 그를 한눈에 알아보았고, 그를 제성에서 볼 줄은 꿈에도 몰랐다. 심
"개인적으로는 그럴 마음이 있습니다."하 씨 어르신이 고개를 약간 끄덕이더니 말했다."그런데......당신의 아내가, 나를 거절한 것 같군요!"주변에서도 이 재밌는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고, 만약 이 여인이 세상 물정을 모른다고 해도 김서진은 하 씨 어르신의 무게를 알고 있을 것이다.환아가 아무리 자산이 풍부하고 세력이 크다 해도 어르신의 체면도 살려주지 않지는 않을 것이다.하지만..."그럼 맞죠!"그의 말은 모든 사람을 깜짝 놀라게 했고, 특히 소리가 너무 커서 고막이 윙윙거릴 정도였다.이 놀라움은 목소리일 뿐만 아니라 그의 태도이기도 했다.뭐라고? 그럼 맞다니?!뭐가 맞는다는 거지? 그의 여자가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하 씨 어르신의 제안을 거절하고, 그의 체면을 세워주지도 않았는데, 이게 맞는 일을 했다는 건가?그가 머리도 망가진 것일까, 아니면 잠시 말이 헛나온 것일까?하 씨 어르신의 안색은 변함이 없고 눈꼬리만 씰룩였다."하 씨 어르신, 당신은 제 아내에 대해 잘 모르실 겁니다. 그녀에게 향을 조절하고 향신료를 연구하라고 한다면 그녀는 흔쾌히 할 겁니다. 하지만 만약 어떤 협회, 어떤 조직과 모임, 규칙과 규약에 얽매인다면 그녀는 안 할 겁니다."그는 말을 하며 손사래까지 쳤다."안 되고 말고요!""그래서, 그녀가 거절한 것은 어르신이 아니라 규칙과 규정, 제멋대로의 활동들입니다."그가 온 이후로 한소은은 줄곧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여기까지 들은 그녀는 김서진의 대처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역시 대인관계에서 그는 비교적 경험이 있는 사람이었다.방금 그녀는 자신이 하 씨 어르신을 거절한 것이라고 직접 인정할 생각까지 했으며, 그가 자신을 강요한다면 자신이 굳이 그의 체면을 세워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하지만 김서진의 두 마디 말로 모순을 해결했다, 그녀가 거절한 것은 어르신이 아니며 그 허울만 좋은 규정 조항들이었다!"이건 좀 대인기피증이네요."정하진이 입을 열었다."사실 우리 조향을 하는 사람은 많든
소은은 고개를 들어 눈물을 참으며 말했다. “한 가지 이상한 게 있어요.”“무슨 일이에요?” 임남을 달래던 임상언이 무심히 되물었다.“로사 왕자는 감금된 것이 아니라 그날 Y국으로 송환되었다고 들었는데, 그렇다면 왜 그동안 로사 왕자와 연락이 닿지 않았던 걸까요?” 소은의 말에 임상언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두 가지 가능성이 있겠죠. 신호가 나쁘거나 핸드폰을 확인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 로사 왕자가 저희 연락을 거부하고 있을 수도...”두 사람은 잠시 눈을 마주쳤다. 말은 없었지만, 둘 다 이미 답을 얻은 듯했다. 로사 왕자가 그토록 연락을 피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도 나름의 계획을 세우고 있는 건가?...3일 후. 소은은 마지막 침을 놓고 손을 거두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여왕을 쳐다보며 말했다. “오늘 시술로 폐하의 다리에 감각이 돌아오실 겁니다. 하지만 일어서는 건 천천히 시도하셔야 합니다. 너무 서두르시면 안 돼요.”소은은 말을 마치고 갑자기 미소를 지었다.“무엇 때문에 웃는 거지?” 여왕은 여전히 자신의 다리를 어루만지며 물었다. 이미 이틀 전부터 약간의 감각이 돌아왔음을 느낀 터라, 소은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소은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제가 쓸데없는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요. 사실 R10 실험을 고집하신다면 결국 폐하께서는 이 몸을 떠나게 되실 텐데, 제가 이 몸에 애쓰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여왕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계속한 거지?”“어쩌면, 폐하께서 마음을 바꾸실 지도 모르니까요.” 소은은 부드럽게 대답했다. “어쩌면 자신의 몸이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거든요.”“우리 모두 이 세상에 올 때 두 손은 비어있지만, 이 몸만은 오로지 우리 자신의 것이죠. 몸마저 버리신다면, 그 영혼은 여전히 진짜 자신일 수 있을까요?”“그렇구나.” 여왕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
소은은 조용히 몸을 일으키며 여왕을 쳐다보았다. “물론이죠.” 소은은 담담하게 답했다. 그 대답에는 원망이나 비난의 기색은 전혀 없었다.“그렇다면... 조금 아쉽네.” 여왕은 생각에 잠긴 듯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기 마련입니다. 세상 모든 일은 균형을 맞추려 하죠. R10이 폐하께서 이루고자 하는 꿈이라면, 저는 그것을 막을 수 없어요. 다만, 그때가 되어 성공하든 실패하든, 저는 그 모습을 보지 못할 테니 부디 후회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소은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문 밖으로 나갔다.릭은 여전히 문 앞에서 대기 중이었다. 그녀와 여왕의 대화가 거의 다 들렸던 듯, 둘의 시선이 잠시 교차했다. 소은이 그를 지나쳐 나가자, 릭은 곧장 방으로 들어갔다.“여왕 폐하.” 릭은 여왕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그녀의 다리에 꽂힌 은침을 보자 릭의 눈빛이 굳어졌다. “이건...”“괜찮아. 곧 소은이가 와서 침을 빼줄 거야.” 여왕은 무심하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릭은 여전히 불안한 눈빛으로 말했다. “폐하께서 너무 방심하시는 것 아닙니까? 만약 한소은이 폐하께...”“그럴 리 없다.” 여왕은 단호히 그의 말을 잘랐다.릭은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설마 그 여자를 믿으시는 겁니까?”여왕은 대답 대신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녀도 릭의 질문이 아니었다면 자신이 소은을 믿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오랜 세월 누구도 쉽게 믿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그녀는 소은을 의심하지 않았다. 심지어 은침에 독이 묻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제가 가서 잡아오도록 하죠.”여왕이 생각에 잠기자 릭은 바로 뒤돌아섰다.“거기 서!”여왕은 결연히 말했다. “난 믿어.”릭은 한참을 침묵하며 여왕의 결정을 받아들였다....임상언은 아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비록 아들을 구하려는 결심을 굳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희망이 사라지는 듯했다.
소은은 허리춤에서 허리띠처럼 생긴 물건을 꺼내더니 조심스럽게 풀어내며, 그 안에 숨겨진 가느다란 은침을 꺼냈다.“이건...” 여왕은 깜짝 놀라며 소은을 쳐다봤다. 소은이가 은침을 항상 가지고 다닐 줄은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말해봐, 네 요구가 뭐지?” 여왕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마음을 가다듬으려 애썼다. 너무 무리한 요구라면 거절하면 그만이다. 여왕은 절대 소은에게 휘둘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소은은 차분하게 말했다. “제가 여기서 나올 수 있었던 건 로사 왕자님 덕분입니다. 그러니, 왕자님을 책망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그게 다야?” 여왕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소은이 여기까지 와서 자신과 조건을 따지는데, 결국 요구한 게 단지 로사를 처벌하지 말라는 거라니. 자신이 잘못 들은 건가 싶었다.“로사는 내 아들이다. 내가 정말 내 아들에게 손을 댈 리는 없지. 괜히 기회를 헛되게 쓴 건 아닌가?” 여왕은 고개를 저으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전 폐하께서 정말 로사 왕자님께 처벌을 내리시지 않을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왕자 폐하께서 저를 구해준 건 사실이기에 저도 왕자 폐하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소은은 조용히 말했다. “게다가 지금 왕자 폐하를 감금하시고 자유를 제한하고 계시지 않나요?”여왕은 의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니야. 난 단지 로사를 Y국으로 돌려보냈을 뿐이야.”“로사가 여기서 내 일을 여러모로 방해하긴 했지만, 우리 모자 사이가 더 악화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국내에서도 로사가 필요하니 Y국으로 돌려보낸 것뿐이다.” 여왕은 담담하게 말했다.“그런데 왜 왕자 폐하의 전화가 연결되지 않죠?” 소은은 잠시 멈칫했다. 단지 귀국했다면 국제전화를 받을 수 있을 텐데, 연락이 닿지 않았기에 여왕이 로사를 가둬놓았다고 오해할 수밖에 없었다.여왕은 깊은 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나도 잘 모르겠군. 그날 내가 화가 났던 건 사실이지만, 곧바로 Y국으로 돌아가도록
“삼일이면 됩니다.” 소은은 여왕을 쳐다보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삼일? 고작 삼일?” 여왕의 눈에는 믿기지 않는 놀라움이 서렸다. 그녀는 적어도 몇 달, 아니 최소한 몇 년은 걸릴 줄 알았다. 그러나 고작 삼일이라니, 그녀로서는 상상도 못 한 시간이었다.삼일쯤이야. 십 수년을 이렇게 버텨왔는데, 삼일쯤 더 기다린다고 달라질 게 뭐 있겠는가?“삼일 안에 정말 나아질 수 있는 건가? 내가 정말 다시 일어서서 걸을 수 있는 건가?” 여왕은 두 손으로 자신의 다리를 힘껏 눌렀지만 여전히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그녀는 소은의 말을 쉽게 믿을 수가 없었다. 이 다리가 감각을 잃은지 너무 오래되어 치료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여왕은 여러 나라의 명의를 찾아 다녔지만, 그들은 단지 병의 악화를 늦출 수 있을 뿐 다리를 완전히 회복시키는 건 불가능하다고 했었다. 그러나 지금 소은은 그녀 앞에 서서 확신에 찬 얼굴로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녀는 속으로 자신도 모르게 그 말을 믿고 싶어졌다.“이전처럼 완벽하게 걸을 수 있을 거라고 장담할 순 없어요. 너무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아서 근육이 많이 위축됐거든요. 하지만 서서히 일어나서 조금씩 회복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소은은 진지한 어조로 답했다.여왕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정도라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젊었을 때처럼 완전히 회복되는 것을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만약 휠체어와 지팡이 없이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 그 자체로도 그녀에겐 더할 나위 없는 희망이었다.“좋아. 삼일, 기다리겠네. 필요한 게 있나?” 여왕은 기분이 좋아져 말을 한층 부드럽게 했다.“임남...” 소은이 말을 꺼내자마자 여왕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녀는 곧바로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 “그건 안 돼. 그런 요구는 하지 마라.”“제가 말한 건 임남을 바로 풀어달라는 게 아닙니다. 그냥... 그 아이가 괜찮은지 알고 싶고, 가능하다면 아버지와 한 번 만날 기회를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 실험을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은 저와 프레드 뿐이기 때문입니다.” 소은은 잠시 생각하다가 덧붙였다. “아니면 주효정을 믿으실 건가요?”“나는... 아무도 믿지 않아.” 여왕은 얼굴을 차갑게 굳히며 휠체어를 돌렸다.“여왕 폐하께서 이 실험에 집착하고 계시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인가요? 세상을 둘러보고 싶다거나, 짐을 내려놓고 잠시 쉬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으신가요? 수십 년간 왕좌에 오르셨지만, 정말로 아직도 그 삶이 좋으신가요? 언제나 긴장하며 위태로운 자리를 견디는 고단한 나날, 정말 아직도 벗어나고 싶지 않으신가요?” 소은은 여왕의 등을 쳐다보며 부드럽게 물었다.여왕은 아무 말 없이 자신의 무릎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살짝 떨구었다. 그녀는 시선을 다리로 내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세상을 둘러본다? 나는... 걷는 게 어떤 느낌인지도 잊어버렸어.”여왕은 오랜 세월 동안 다리를 쓰지 않았고, 처음에는 억지로라도 일어설 수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상태는 악화되었고 이제는 아예 휠체어 없이는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그녀는 휠체어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소은이 ‘세상을 둘러보라’는 말을 꺼내자 가슴이 아팠다.“만약... 폐하께서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요? 제가 다시 걷게 해드린다면요?” 소은은 조용히 여왕의 뒤에 서서 말했다.여왕은 잠시 멈칫하더니, 눈빛이 날카롭게 변하며 휠체어를 돌려 소은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정말이냐?” 여왕의 눈에는 억누를 수 없는 희망과 깊은 의심이 뒤섞여 있었다.소은은 대답 대신 그녀의 시선을 천천히 여왕의 다리로 내리고, 천천히 다가가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손을 뻗어 여왕의 무릎 위에 가볍게 손을 올렸다.여왕은 살짝 몸을 떨었다. 사실, 그녀의 다리는 거의 완전히 감각을 잃은 상태라서 소은의 손길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아마도 너무나 간절히 다시 일어서고 싶기 때문이었을 것이다.소은은 아무 말 없이 여왕의
“맞아요, 임남 때문이기도 하지만, 폐하 때문이기도 합니다.” 소은은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제가 정말로 떠나버렸다면, 가장 초조해지는 사람은 사실 여왕 폐하 아닐까요?”여왕은 코웃음을 치며 차갑게 말했다. “내가 초조해질 이유가 뭐지? 어차피 내 손엔 네 약점이 있잖아. 너를 다시 잡아오는 것도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고.”“약점이요? 임남 말씀이신가요?” 소은은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잊지 마세요, 임남이는 제 아들이 아닙니다. 저에게는 제 친자식이 셋이나 있어요. 만약 제가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임남을 포기해 제 아이들을 지키려 한다면, 그 약점이 과연 제게 약점이 맞을까요?”여왕이 입을 열기도 전에 소은은 다시 말을 이었다. “게다가, 그 아이에겐 목숨을 걸고서라도 구하려는 아버지가 있습니다. 만약 임상언이 폐하께 끝까지 맞서기로 결심한다면...” “폐하께서야 높은 자리에 있으니 이런 평범한 상인을 하찮게 여기실 수 있지만, 임상언 씨가 단순한 상인이 아니라는 걸 잊으시면 안 됩니다. 임상언 씨의 사업은 세계 곳곳에 뻗어 있어요. 임상언 씨가 목숨을 걸 각오가 되어 있다면 그 어떤 일도 할 수 있겠죠. 혹시라도 바깥에 소문이 퍼져 폐하와 Y국의 명망이 손상된다면, 곤란하지 않겠습니까?”“너...” 여왕은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반박할 말이 당장 떠오르지 않았다.여왕이 화가 난 것을 보고, 소은은 한결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화내지 마세요. 제가 돌아온 건 폐하를 자극하려는 게 아닙니다. 함께 최선의 방향을 찾고자 돌아온 거예요. 사실 폐하께서 H국에 오신 일이 밝혀진 건 아니지만, 꽤 오랜 시간 H국에 머물고 계셨습니다. 정말로 H국이 이 사실을 모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세요?”여왕은 말없이 그녀를 쳐다보았다. “지금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건 폐하의 체면을 살려드린 겁니다. 그러나 폐하께서 이곳에서 계속 머무르시며 혹여 무리수를 두신다면, 얼마나 더 체류하실 수 있을까요? Y국도 계속해서
릭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여왕은 모니터에서 시선을 돌리며 담담히 말했다. “소은을 데려와. 어디 한번 무슨 변명을 할지 들어보자. 또 어떤 이야기를 꾸며낼지 궁금하네.” 여왕은 휠체어를 살짝 돌려 더 이상 모니터를 보지 않았다.“여왕 폐하?” 릭은 망설이다가 말했다. “한소은이 거짓말을 할 걸 아시면서도 굳이 왜...” 그러나 여왕은 그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단호히 말했다. “듣고 싶어!” 이 한마디에 릭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그는 곧장 소은이 있는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소은이 정말로 잠이 들려고 하던 순간, 문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그녀는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다. 눈을 뜨는 순간, 문이 열리면서 릭이 문 앞에 서 있었다. 그의 얼굴은 굳어 있었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여왕께서 한소은 씨를 만나고 싶어 하십니다.” 소은은 차분한 표정으로 릭을 쳐다보았다. 마치 모든 상황을 예견한 듯 고요하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와 동시에 임상언은 소은보다 먼저 일어나 문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가 문에 도착하자마자 릭이 손을 들어 그의 앞을 막았다. “그쪽은 남아 계시죠.” “뭐? 우리 둘은 같이 온 거야!” 임상언은 소은을 돌아보며 그녀에게 눈짓으로 도움을 요청했다. 릭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여왕 폐하께서 그쪽을 부르지 않았으니 여기 남으시죠.” 릭은 더 이상 임상언에게 말을 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소은은 임상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부드럽게 말했다. “절 기다리고 있어요.” 임상언은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억지로 마음을 다스리며 그녀가 릭과 함께 방을 나서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조심해요.” 임상언은 소은을 향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소은은 미소를 지어 그에게 답했고, 릭을 따라 여왕의 방으로 향했다. 익숙한 길을 따라 걷는 그녀는 곧 여왕의 방에 도착했다. 릭이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여왕 폐하, 데려왔습니다
소은이 임상언을 데리고 대사관에 도착하자,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눈에 띄게 당황했다.한 사람이 서둘러 소식을 알리러 가더니, 이내 주변 구석구석에서 누군가가 몰래 그들을 엿보는 기척이 느껴졌다. 곧이어, 소은이 잘 알고 있는 여왕의 측근 몇 명이 경계 어린 눈빛으로 다가와 그들을 안으로 안내했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그들은 소은과 임상언의 몸을 샅샅이 검사하며 위험 물품을 소지하지 않았는지 확인했다. 철저한 검사가 끝난 후에야 비로소 경계가 풀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여왕을 만나지 못했고, 한적하고 깊숙한 방에 대기하도록 배정받았다. 오랜만에 돌아온 이곳은 소은에게 익숙하면서도 낯설게 느껴졌다. 익숙한 것은 이 장소였지만, 낯선 것은 지금의 마음가짐이었다. 예전에는 이곳이 싫고 불쾌하기만 했으며,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은 장소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임무와 사명을 가지고 돌아왔고, 그녀의 목표는 단순히 여기를 떠나는 것이 아닌, 중요한 일을 완수하고 무사히 돌아가는 것이었다.반면, 임상언은 눈에 띄게 불안해 보였다. 그는 두 손을 맞잡고 무릎 위에 놓은 채,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다리를 가볍게 떨고 있었다. 소은은 그의 초조함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임남을 생각하면 마음이 몹시 불안하고 조급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여기까지 왔으니 임남을 반드시 볼 수 있을 거예요. 그러니 긴장 좀 풀어요.” 소은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임상언은 그녀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발을 땅에 꾹 눌러 다리를 멈췄다. 겉으로는 조금 안정된 듯 보였지만, 그의 얼굴은 여전히 긴장감이 가득했고 미세하게 떨리는 얼굴 근육이 그의 불안한 마음을 보여주었다. 마음을 진정시키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소은은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다.두 사람은 한참을 기다렸지만, 여왕을 만나러 오라는 사람은커녕 상황을 확인하러 오는 사람조차 없었다. 긴장했던 임상언은 결국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대체 무슨 의도인 거죠? 왜 아직
“제발 부탁이에요. 안에서는 소은 씨 말만 따를게요. 소은 씨가 시키는 대로 다 할 테니까, 제발 절 데려가 주시면 안 돼요?” 임상언은 진심 어린 목소리로 소은에게 간청했다. 자존심은 이미 버린 지 오래였다. 아들을 만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그를 이 지경까지 이르게 했다. 소은이 반드시 돌아가겠다고 결심한 순간, 임상언은 이미 마음을 굳혔다. 자신이 함께 가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같이 가면 의심을 받거나 제지를 당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전 아니에요.” 임상언은 계속 설득을 이어갔다. “임남이 그 안에 있다는 걸 모두 알고 있잖아요. 제가 아들을 만나고 구하려고 하는 건 당연한 일이에요. 그리고 아들을 위해서 제 목숨을 바치는 것도 이해될 수 있는 일이죠. 그러니 제가 가는 게 가장 올바른 선택이에요.” 긴 침묵 끝에, 소은이 입을 열었다. “임상언 씨 말이 맞아요. 전 동의합니다.” 소은은 말을 마치고 서진에게 시선을 돌렸다. 서진은 잠시 생각하더니 천천히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저도 동의합니다.” 원청현은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두드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나도 동의하지.” 잠시 침묵하던 진정기 역시 마침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동의합니다.” 마지막으로 원철수는 주변을 둘러보며 한숨을 내쉬고 손을 펼쳤다. “모두 동의했는데 내가 뭐라고 반대하겠어. 나도 찬성이야.” 사실 원철수의 의견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임상언에게 지지를 표현하는 의미였다. 임상언은 눈시울이 붉어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모두들 고마워요.” “이게 뭔 감사할 일이라고. 어쨌든 안에 들어가면 절대 신중해야 해. 무슨 일이 있어도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네 입으로 한 말 반드시 지켜!” 원철수는 그의 결심을 칭찬하면서도 걱정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원철수는 속으로 임상언의 결단에 감탄했다.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그는 분명 최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