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그를 생각해 왔는데 오히려 다른 사람과 결혼한다고 하니 허우연은 전혀 받아들일 수가 없었고,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만 같았다.그녀는 혼미한 채로 혼자 차를 몰고 다니며 울다가 어느새 윤 씨네 대문 앞에 이르렀다.물론 그녀는 해성으로 가지 않았고, 단지 윤 씨 네도 소성에서 두개 정도의 사업을 하고 있었다."설아야…"허우연이 차 안에 앉아 윤설아에게 전화를 걸어 대문을 바라보며 울었고, 전화기에서 그녀의 울음소리를 듣고 윤설아가 깜짝 놀라 말했다."우연아, 너 왜 그래? 울지 마! 할 말 있으면 천천히 해!""설아야...흑흑흑…너 집에 있어?”허우연은 이제야 자신이 윤설아가 집에 있는지 없는지도 모른 체 무작정 달려왔다는 것을 깨달았다."있어, 있어, 있어, 너 올 거야?""흑흑, 나 이미 네 집 문 앞에 있는데 네가 문…문 좀 열어줄래?"허우연은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울어서 그냥 듣기만 해도 분명 굉장히 억울한 일이 있는 것 같았다.“어? 너 우리 집 앞에 있어? 잠깐만 기다려!" 전화도 끊지 않은 채 윤설아의 탁탁탁 걸어가는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후 대문이 열렸고 머리가 하나가 삐져나오는 것이 보였다.윤설아는 좌우로 둘러보다가 대문 앞에 서 있는 차를 보고는 황급히 다가왔다."흑흑......" 허우연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봤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너 왜 혼자야, 어서 따라 들어와, 할 말이 있으면 천천히 해!"얼른 사람을 시켜 대문을 열었고 허우연이 차를 몰고 들어가서 차에서 내리자마자 그녀의 목을 끌어안았다. "설아야, 나 어떡해, 나 어떡해......""서두르지 마, 우리 일단 들어가자."윤설아가 작은 소리로 허우연을 달래고는 그녀를 방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방에 들어서자 안의 따뜻한 기운이 얼굴에 퍼졌고 공기 중에 은은한 향기가 풍겨 사람의 긴장감을 완화시켰다.친한 친구를 만났기 때문인지 아니면 잠시 시간이 지나서 인지 기분이 많이 풀렸다. 방에 들어간 후, 허우연의
윤설아는 허우연을 달래지 않고 위로도 하지 않은 체 허우연이 다 울 때까지 기다리다가 울음이 그치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이제 말할 수 있겠지?"허우연이 코를 훌쩍이며 친구가 건네준 휴지로 눈물을 닦더니 글썽이며 말했다.“너도 알고 있는 거야, 오빠가 약혼한대, 근데 난 심지어 그 여자가 누군지도 몰라.”"아이, 겨우 그런 일이야?"윤설아는 별일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얼마나 큰일인가 했더니, 그냥 약혼하는 것뿐이잖아. 결혼도 아니고, 게다가 결혼해도 이혼할 확률이 얼마나 높은데.”"……" 김서진이 약혼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부터, 그가 정말 약혼했다는 것을 확인한 후, 아무도 그녀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없었다. 그녀의 부모님은 조심스러워서 감히 말을 꺼내지 못했고, 허강민도 단도직입적으로 그녀를 포기하게 했지만 윤설아는 그녀에게 별거 아니라고 말했고, 이 말을 들은 허우연은 순간적으로 멍해졌다."그런데, 그럴 수가 있나?""왜 안 돼." 윤설아가 허리를 굽혀 과일차 두 잔을 들고 그녀에게 한 잔을 건네며 자신도 잔을 한잔 들고 손을 녹이며 말했다.“거울 좀 보고 너 자신의 조건을 좀 봐, 네 조건이 얼마나 좋은지 몰라? 팬이 얼마나 되는지, 영화 팬이 얼마나 되는지, 너한테 푹 빠진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너 스스로한테 이렇게 자신 없게 굴 거야? 나는 줄곧 너를 매우 좋게 봤어. 나는 네가 누구를 좋아하거나 싫어할 용기가 있다고 생각했고 용감하게 네가 좋아하는 것을 추구한다고 생각했지만, 이건 생각지도 못했어…."한숨을 쉬며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나, 나 좋다고 표현했었어!"윤설아가 이렇게 말하자 허우연도 부끄러워서 얼굴을 붉히며 우물쭈물하며 말했다.“내가 오빠를 몇 년 동안이나 쫓아다녔는데, 네가 못 본 것도 아니고, 그냥 오빠가 나한테 이도저도 아니게 행동하는데 내가 무슨 방법이 있겠어!”그녀는 자신이 이미 열심히 노력했다고 느꼈고, 다른 사람이면 이미 포기했을 수도 있지만, 자신은 그러지 않았고 계속 버텼
입을 삐죽거리며 허우연은 마지막 선을 지켰다.“네가 나한테 뭐라 안 하면 나도 화 안 낼게.”"피식......" 웃음을 참지 못한 윤설아는 손을 뻗어 그녀의 뺨을 쓰다듬었다. “바보! 비위를 맞춘 거라 해도 넌 제일 예쁘고 귀엽게 비위를 맞춘 거야!""또 그렇게 말해?"발을 동동 구르며 허우연이 성냈다."그래, 그래, 그래 말 안 할 게. 일단 손부터 떼 주면 안 될까?"그녀는 고개를 숙여 자신의 손목을 잡고 있는 그 손을 바라보았다.“안 놔, 너 도망가면 어떡하라고?”윤설아가 웃으며 허리를 굽혀 말했다.“여긴 내 집인데 어디로 도망가? 위층으로 올라가서 옷 갈아입으려고 하는 거야, 네가 내 옷을 더럽혀서. 옷도 한 벌 안 물어줄 거면서 편한 옷으로 갈아입지도 못하게 하는 거야?” 허우연은 그제야 그녀의 뜻을 깨닫고 서둘러 손을 놓았다.그녀가 손을 놓았지만, 윤설아는 서둘러 올라가지 않고 말했다."너 나랑 같이 올라가지 않을래? 네 옷도 더러워졌는데 일단 내 옷으로 갈아입어."고개를 숙여 가슴 쪽의 얼룩을 한 번 보았는데 확실히 자국이 있어서 사양하지 않고 윤설아와 함께 위층에 있는 그녀의 방으로 올라갔다.윤설아는 스스로 옷을 갈아입고는 허우연에게 옷 한 벌을 골라주었고 허우연이 옷을 갈아 입는 걸 기다린 후 뒤에서 그녀의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고 거울을 보여주었다."봐봐, 얼마나 예쁘냐!"허우연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봤는데 맑은 눈망울과 하얀 이가 돋보였고 눈은 울어서 약간 부어올랐지만, 그녀의 미모에 조금도 흠이 되지 않았고 오히려 보는 이의 애틋함을 자아냈다. 정면과 측면, 어떻게 봐도 그녀는 다 예쁜데 왜 김서진은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지 알 수 없었다. 그가 생각이 나 또다시 눈시울이 붉어졌고 울음을 참기가 힘들어졌다."잘 봐봐." 윤설아가 한 손으로 그녀의 턱을 움켜쥐고는 허리를 굽혀 말했다. "너 이렇게 예쁜데 왜 그렇게 떨쳐버리지 못하는 거야.""맞아, 나 이렇게 예쁜데 왜 날 안 좋아하는 거지? 오빠는
윤설아가 한 말을 그녀는 알 것 같기도 했고 잘 모르는 것 같기도 했다."그럼 난 어떻게 해야 된다는 거야?" 허우연은 마음속에 조금씩 힘이 생기기 시작했다고 느끼기 시작했고, 마치 무언 가가 서서히 그녀의 마음을 채우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는 더 이상 조금 전처럼 그렇게 막막해하지 않았다."우연아, 너는 너무 아름다워서 빛이 날 정도야. 너는 일단 그가 너에게 관심을 갖도록 해야 돼."윤설아는 더욱 허리를 굽혔고 거의 그녀의 뺨에 닿을 정도로 얼굴을 대고 말했다. 허우연의 눈이 막 빛을 내려 할 때 갑자기 돌아서서 말했다. "하지만...""하지만 뭐?" 그녀의 하지만이라는 단어는 허우연의 마음을 떨리게 했다."하지만 지금 네가 이런 식으로 행동하기엔 이미 늦었어! 전에 네가 너무 비굴하게 행동해서 이미 그 사람을 너를 소중하게 여기지 않게 했어, 네가 지금 뭘 어떻게 한다 해도 그는 이미 생겨버린 너에 대한 인상을 바꾸지 않을 거야, 게다가 지금 네 앞에는 이름 모를 강적도 있고 시간도 촉박해서 이렇게 하기에 전혀 적합하지 않아."윤설아는 손을 떼고는 허리를 곧게 펴 화장대 앞에 앉아 핸드크림을 천천히 발랐다. 그녀는 늘 세심한 관리를 해왔고, 모든 부위를 여유롭게 두루두루 관리했기 때문에 윤설아의 피부는 매우 좋았다. 그녀는 굉장히 예쁘다고 할 수는 없었고 특히 허우연과 비교하면 더욱 평범해 보였지만 피부가 굉장히 하얗고 부드러워서 물도 빼낼 수 있을 것 같이 보인다는 점에서는 허우연보다 나았다.윤설아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고개를 숙인 채 핸드크림만 열심히 바르는 모습을 본 허우연이 급하게 말했다."그럼 어떻게 하란 말이야? 네가 그렇게 급하게 해야 할 문제도 아니라고 했잖아, 결혼을 해도 이혼도 할 수 있는 거고, 게다가 지금은 고작 약혼만 한 거라고 하지 않았어? 그러면서도 또 내가 늦었다니, 도대체 무슨 뜻이야?"고개를 돌려 그녀를 한번 보고는 윤설아는 유감스럽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방법은 당연히 있지, 그냥 네가 그렇
모든 사람은 무슨 일을 하든지 이해득실을 따져야 하고 견제와 제어를 받아야 한다. 큰아버지 윤백건도 예외는 아니었다, 가장으로서 똑같이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들어야 하고, 똑같이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해서는 안 됐다. 그녀는 모든 집안이 다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뜻밖에도 예외가 있을 줄은 몰랐다.허우연의 입에서 김서진이 하고 싶은 일이라면 막을 사람도, 감히 의견을 제시할 사람도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게 바로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 아닌가? 이것이 바로 그녀가 추구하고 동경하는 것이 아니었나?정말 이 세상에 이런 사람이 존재한다고?"설아야, 윤설아…." 몇 번을 연거푸 불렀지만 윤설아는 반응이 없었다. 허우연이 고개를 돌려 윤설아가 멍 때리는 것을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몇 번을 잡아당겼을 때 겨우 반응을 했다."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아니, 별거 아니야.” 윤설아는 고개를 가로젓고는 다시 물었다.“그럼 너 말은 만약 네가 그 사람이랑 같이 있고 싶으면 반드시 그의 동의가 있어야 가능하다는 거지?”"당연하지, 그렇지 않으면 내가 왜 이렇게 신경 쓰겠어!"입을 삐죽 내밀고는 손가락을 매만지며 허우연은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에효, 설아도 무슨 아이디어를 줄 수 없는 건 알고 있었고 기껏해야 위로 정도 해주겠지.’"그럼 네가 이렇게 애를 써서 얻은 게 뭐야?""얻은 건…의외로 많이 있어, 가방도 있고 옷도 있고 장신구도 있지만 명절이나 내 생일 때만 줬어. 하지만 다 되게 비싼 물건들이야, 디자인이 그렇게 마음에 드는 건 아니지만…."그녀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윤설아가 그녀의 말을 끊고는 말했다. “누가 그런 걸 물어봤어!"그럼….""내가 물어본 건 몇 번이나 뽀뽀를 했는지, 안아본 적은 있는지……어?!"윤설아가 작은 소리로 손으로 얼굴을 반쯤 가리고 말을 했다.말을 들은 허우연의 얼굴이 눈에 보일 정도로 빠르게 붉어졌고, 그녀는 윤설아를 두 번 힘껏 내리쳤다. "어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윤설아는 몹시 한스러워 그녀의 못난 모습을 흘끗 보았다. "내가 진짜 할 말이 없다.""그러니까 이 몇 년 동안 너 뭘 쫓아다닌 거니?"정말 한 명은 용감하게 쫓아다니고 한 명은 용감하게 거절하고 이런 일은 그녀에게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마음 독하게 먹고 사람을 잡든지 아니면 아예 포기하고 다른 사람을 찾든지.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현재 상황은 정말 허우연이라서 버틸 수 있는 것이다."이제 와서 그런 얘기 그만해. 그러니까 말해봐. 내가 도대체 희망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글쎄. 네가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달렸지. 너는 그 사람을 원하는 거니 아니면 그 사람의 마음을 원하는 거니?"윤설아는 약간 고개를 돌려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물었다.허우연은 눈살을 찌푸리고 말했다. "당연하지! 당연히 다 갖고 싶지!""그런데 문제는 너 지금 하나도 갖지 못했잖아. 그러니까 만약 하나만 가질 수 있다면 너는 무엇을 가지고 싶어?"그녀는 검지 손가락을 내밀고 허우연의 눈앞에서 흔들며 말했다. "사람이 너무 욕심을 부리면 안 돼. 하나만 가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생각해봐. 너는 그 사람과 영원히 같이 있고 싶어? 그 사람 마음이 너한테 없더라도. 아니면 그 사람의 마음은 너한테 있지만 영원히 같이 있을 수 없어."“......”이 문제는 허우연을 난처하게 만들었다.그녀는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몇 년 간 계속 김서진을 쫓아다녔으며 영원히 그와 함께 있을 거라는 생각만 했고 그 사람이든 그 사람의 마음이든 모두 그녀만의 것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윤설아의 말도 맞다. 지금 문제는 둘 다 잡지 못하고 둘 다 잃게 될 상황이다.그럼…"난 사람을 원해!"그녀는 잠시 고민하다가 마지막 결심한 듯 고개를 들었다. "그 사람 마음에 내가 있으면 무슨 소용 있겠어. 옆에 있는 사람이 내가 아닌데 얼마나 괴로워! 나는 매일 그의 곁에 있으면서 영원히 같이 있을 수만 있다면 그 사람의 마음도 언젠가 얻을 수 있을 거야!"윤설아는 고개를
"이 일은 그들 모자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한 거예요! 잘 생각해 봐요!" 윤중성은 양손을 허리에 대고 의미심장하게 얘기했다.위층에 서 있는 허우연은 아무래도 엿듣는 것 같아서 좀 어색했다. 지금 친구의 부모님이 싸우고 계시는데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것도 부적절하고 방으로 돌아가려니 두 분을 놀라게 할까 봐 걱정됐다.그리고...그녀는 윤설아 쪽을 바라보니까 윤설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거기에 서서 무표정이었으며 두 손으로 계단 난간을 꽉 잡고 있었다.......그녀를 위로해 주고 싶었지만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몰랐고, 아래층에서 다투는 두 사람은 집에 다른 사람이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 채 여전히 싸우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요영은 몸을 돌려 소파에 앉으며 가볍게 피식 웃었다. "우리를 위해서요?! 흥! 듣기 좋은 말이네요! 솔직히 말해서 당신을 위해서 그런 거잖아요. 그리고 밖에 있는 그 천한 년! 윤중성, 나가서 알아봐요. 누가 밖에 여자를 집으로 들이냐고요. 이건 내 체면을 무시하는 거 아니에요? 앞으로 해성 사람들은 모두 나를 우습게 보겠네요! 우리를 위해서라고요? 말을 쉽게 하네요!""당신 좀 봐요. 생각이 짧았잖아요? 지금 윤씨 집안이 어떤 상황인지 당신이 모르는 것도 아니잖아요. 윤설웅 저 못난 놈은 가업에 관심도 없고 우리 형님은 여전히 사업에 손 놓을 생각 안하고, 아들이 없는 내가 잘못한 거지. 아니면 벌써 가업을 물려 받았을 텐데요. 그나저나 만약 당신이 애초에 아들을 낳았더라면 이런 일 없었…."말이 끝나기도 전에 요영이 원망스러운 눈빛을 보내자 윤중성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힘 빠지게 말해봤자 내가 아들을 낳지 않았다고 탓하는 거 아니에요? 윤중성, 내가 당신과 결혼한 후 이 몇 년 동안 안팎으로 대가족을 챙기는 게 쉬운 줄 알아요? 큰 형님 집의 언니는 능력이 없어서 모든 걸 내가 처리하길 바라시는데, 내가 윤씨 집안을 위해 얼마나 많은 것을 바쳤는지 못 본 것도 아니잖아요. 이제 와서 내가 아들을 낳지
"당신이 한 짓을 봐요!"요영은 그를 매섭게 노려보더니, 얼른 일어나 위층으로 올라갔다.허우연은 윤설아를 따라 방으로 돌아왔고, 그녀의 침묵하는 모습을 보고 위로하고 싶었지만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그녀의 뒤에 서 있을 수밖에 없었으며 이렇게 같이 있으면 그녀의 마음에 조금이나마 위로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오히려 윤설아가 먼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보고 웃었다.그녀의 웃음은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했고 분명 억지로 짜낸 웃음이었다. "미안해. 웃음거리를 보였네.""그렇게 말하지 마!"허우연은 앞으로 가서 그녀의 어깨를 감쌌고, 갑자기 친한 친구가 자신보다 더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녀는 원하는 것을 얻지 못했지만, 윤설아가 상대하고 있는 것은 자신의 친부모였다. 아버지가 밖에 여자와 혼외아들이 있다. 그 뿐만 아니라 그렇게 남아를 선호하며 가업을 밖의 여자와 아들에게 줄지언정 자신의 딸에게 물려주기 싫은 것이 단지 여자애이기 때문이다.또 무슨 말을 하고 싶었지만 이때 요영이 이미 올라와서 예의상 문을 두드리고 바로 밀고 들어왔다.허우연을 보았을 때, 다른 사람이 있을 줄은 몰랐는지 약간 놀랐다.그러나 그녀는 곧 정신 차리고 허우연에게 고개를 약간 끄덕이며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우연이 왔구나!”"아줌마, 안녕하세요!"허우연은 착하게 인사를 했다.요영은 고개를 끄덕인 다음 곧장 윤설아를 향해 그녀 앞에 서서 2초 동안 바라본 후에야 입을 열었다. "설아야, 왜 우연이랑 놀러 나가지 않았어?"분명히 그녀는 이 말을 하러 온 것은 아니었지만 허우연이 같이 있는 것을 보고 말을 바꿨다.“밖이 너무 추워서 나가기 싫어.”윤설아는 눈을 내리깔고 눈앞의 바닥을 바라보며 담담하게 말했다."맞아. 날씨가 정말 점점 추워지고 있어. 요즘 엄마랑 아빠도 회사 일로 바빠서 너랑 같이 옷 사러 갈 시간도 없네. 이때면 옷 몇 벌 살 때도 됐는데. 자…"말하면서 그녀는 주머니에서 카드를 꺼내 윤설아의 손을 잡아당겨 그녀의 손에 넣어주었다. "마침 우연이
소은은 고개를 들어 눈물을 참으며 말했다. “한 가지 이상한 게 있어요.”“무슨 일이에요?” 임남을 달래던 임상언이 무심히 되물었다.“로사 왕자는 감금된 것이 아니라 그날 Y국으로 송환되었다고 들었는데, 그렇다면 왜 그동안 로사 왕자와 연락이 닿지 않았던 걸까요?” 소은의 말에 임상언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두 가지 가능성이 있겠죠. 신호가 나쁘거나 핸드폰을 확인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 로사 왕자가 저희 연락을 거부하고 있을 수도...”두 사람은 잠시 눈을 마주쳤다. 말은 없었지만, 둘 다 이미 답을 얻은 듯했다. 로사 왕자가 그토록 연락을 피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도 나름의 계획을 세우고 있는 건가?...3일 후. 소은은 마지막 침을 놓고 손을 거두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여왕을 쳐다보며 말했다. “오늘 시술로 폐하의 다리에 감각이 돌아오실 겁니다. 하지만 일어서는 건 천천히 시도하셔야 합니다. 너무 서두르시면 안 돼요.”소은은 말을 마치고 갑자기 미소를 지었다.“무엇 때문에 웃는 거지?” 여왕은 여전히 자신의 다리를 어루만지며 물었다. 이미 이틀 전부터 약간의 감각이 돌아왔음을 느낀 터라, 소은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소은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제가 쓸데없는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요. 사실 R10 실험을 고집하신다면 결국 폐하께서는 이 몸을 떠나게 되실 텐데, 제가 이 몸에 애쓰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여왕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계속한 거지?”“어쩌면, 폐하께서 마음을 바꾸실 지도 모르니까요.” 소은은 부드럽게 대답했다. “어쩌면 자신의 몸이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거든요.”“우리 모두 이 세상에 올 때 두 손은 비어있지만, 이 몸만은 오로지 우리 자신의 것이죠. 몸마저 버리신다면, 그 영혼은 여전히 진짜 자신일 수 있을까요?”“그렇구나.” 여왕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
소은은 조용히 몸을 일으키며 여왕을 쳐다보았다. “물론이죠.” 소은은 담담하게 답했다. 그 대답에는 원망이나 비난의 기색은 전혀 없었다.“그렇다면... 조금 아쉽네.” 여왕은 생각에 잠긴 듯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기 마련입니다. 세상 모든 일은 균형을 맞추려 하죠. R10이 폐하께서 이루고자 하는 꿈이라면, 저는 그것을 막을 수 없어요. 다만, 그때가 되어 성공하든 실패하든, 저는 그 모습을 보지 못할 테니 부디 후회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소은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문 밖으로 나갔다.릭은 여전히 문 앞에서 대기 중이었다. 그녀와 여왕의 대화가 거의 다 들렸던 듯, 둘의 시선이 잠시 교차했다. 소은이 그를 지나쳐 나가자, 릭은 곧장 방으로 들어갔다.“여왕 폐하.” 릭은 여왕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그녀의 다리에 꽂힌 은침을 보자 릭의 눈빛이 굳어졌다. “이건...”“괜찮아. 곧 소은이가 와서 침을 빼줄 거야.” 여왕은 무심하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릭은 여전히 불안한 눈빛으로 말했다. “폐하께서 너무 방심하시는 것 아닙니까? 만약 한소은이 폐하께...”“그럴 리 없다.” 여왕은 단호히 그의 말을 잘랐다.릭은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설마 그 여자를 믿으시는 겁니까?”여왕은 대답 대신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녀도 릭의 질문이 아니었다면 자신이 소은을 믿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오랜 세월 누구도 쉽게 믿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그녀는 소은을 의심하지 않았다. 심지어 은침에 독이 묻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제가 가서 잡아오도록 하죠.”여왕이 생각에 잠기자 릭은 바로 뒤돌아섰다.“거기 서!”여왕은 결연히 말했다. “난 믿어.”릭은 한참을 침묵하며 여왕의 결정을 받아들였다....임상언은 아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비록 아들을 구하려는 결심을 굳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희망이 사라지는 듯했다.
소은은 허리춤에서 허리띠처럼 생긴 물건을 꺼내더니 조심스럽게 풀어내며, 그 안에 숨겨진 가느다란 은침을 꺼냈다.“이건...” 여왕은 깜짝 놀라며 소은을 쳐다봤다. 소은이가 은침을 항상 가지고 다닐 줄은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말해봐, 네 요구가 뭐지?” 여왕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마음을 가다듬으려 애썼다. 너무 무리한 요구라면 거절하면 그만이다. 여왕은 절대 소은에게 휘둘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소은은 차분하게 말했다. “제가 여기서 나올 수 있었던 건 로사 왕자님 덕분입니다. 그러니, 왕자님을 책망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그게 다야?” 여왕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소은이 여기까지 와서 자신과 조건을 따지는데, 결국 요구한 게 단지 로사를 처벌하지 말라는 거라니. 자신이 잘못 들은 건가 싶었다.“로사는 내 아들이다. 내가 정말 내 아들에게 손을 댈 리는 없지. 괜히 기회를 헛되게 쓴 건 아닌가?” 여왕은 고개를 저으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전 폐하께서 정말 로사 왕자님께 처벌을 내리시지 않을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왕자 폐하께서 저를 구해준 건 사실이기에 저도 왕자 폐하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소은은 조용히 말했다. “게다가 지금 왕자 폐하를 감금하시고 자유를 제한하고 계시지 않나요?”여왕은 의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니야. 난 단지 로사를 Y국으로 돌려보냈을 뿐이야.”“로사가 여기서 내 일을 여러모로 방해하긴 했지만, 우리 모자 사이가 더 악화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국내에서도 로사가 필요하니 Y국으로 돌려보낸 것뿐이다.” 여왕은 담담하게 말했다.“그런데 왜 왕자 폐하의 전화가 연결되지 않죠?” 소은은 잠시 멈칫했다. 단지 귀국했다면 국제전화를 받을 수 있을 텐데, 연락이 닿지 않았기에 여왕이 로사를 가둬놓았다고 오해할 수밖에 없었다.여왕은 깊은 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나도 잘 모르겠군. 그날 내가 화가 났던 건 사실이지만, 곧바로 Y국으로 돌아가도록
“삼일이면 됩니다.” 소은은 여왕을 쳐다보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삼일? 고작 삼일?” 여왕의 눈에는 믿기지 않는 놀라움이 서렸다. 그녀는 적어도 몇 달, 아니 최소한 몇 년은 걸릴 줄 알았다. 그러나 고작 삼일이라니, 그녀로서는 상상도 못 한 시간이었다.삼일쯤이야. 십 수년을 이렇게 버텨왔는데, 삼일쯤 더 기다린다고 달라질 게 뭐 있겠는가?“삼일 안에 정말 나아질 수 있는 건가? 내가 정말 다시 일어서서 걸을 수 있는 건가?” 여왕은 두 손으로 자신의 다리를 힘껏 눌렀지만 여전히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그녀는 소은의 말을 쉽게 믿을 수가 없었다. 이 다리가 감각을 잃은지 너무 오래되어 치료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여왕은 여러 나라의 명의를 찾아 다녔지만, 그들은 단지 병의 악화를 늦출 수 있을 뿐 다리를 완전히 회복시키는 건 불가능하다고 했었다. 그러나 지금 소은은 그녀 앞에 서서 확신에 찬 얼굴로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녀는 속으로 자신도 모르게 그 말을 믿고 싶어졌다.“이전처럼 완벽하게 걸을 수 있을 거라고 장담할 순 없어요. 너무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아서 근육이 많이 위축됐거든요. 하지만 서서히 일어나서 조금씩 회복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소은은 진지한 어조로 답했다.여왕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정도라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젊었을 때처럼 완전히 회복되는 것을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만약 휠체어와 지팡이 없이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 그 자체로도 그녀에겐 더할 나위 없는 희망이었다.“좋아. 삼일, 기다리겠네. 필요한 게 있나?” 여왕은 기분이 좋아져 말을 한층 부드럽게 했다.“임남...” 소은이 말을 꺼내자마자 여왕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녀는 곧바로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 “그건 안 돼. 그런 요구는 하지 마라.”“제가 말한 건 임남을 바로 풀어달라는 게 아닙니다. 그냥... 그 아이가 괜찮은지 알고 싶고, 가능하다면 아버지와 한 번 만날 기회를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 실험을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은 저와 프레드 뿐이기 때문입니다.” 소은은 잠시 생각하다가 덧붙였다. “아니면 주효정을 믿으실 건가요?”“나는... 아무도 믿지 않아.” 여왕은 얼굴을 차갑게 굳히며 휠체어를 돌렸다.“여왕 폐하께서 이 실험에 집착하고 계시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인가요? 세상을 둘러보고 싶다거나, 짐을 내려놓고 잠시 쉬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으신가요? 수십 년간 왕좌에 오르셨지만, 정말로 아직도 그 삶이 좋으신가요? 언제나 긴장하며 위태로운 자리를 견디는 고단한 나날, 정말 아직도 벗어나고 싶지 않으신가요?” 소은은 여왕의 등을 쳐다보며 부드럽게 물었다.여왕은 아무 말 없이 자신의 무릎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살짝 떨구었다. 그녀는 시선을 다리로 내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세상을 둘러본다? 나는... 걷는 게 어떤 느낌인지도 잊어버렸어.”여왕은 오랜 세월 동안 다리를 쓰지 않았고, 처음에는 억지로라도 일어설 수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상태는 악화되었고 이제는 아예 휠체어 없이는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그녀는 휠체어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소은이 ‘세상을 둘러보라’는 말을 꺼내자 가슴이 아팠다.“만약... 폐하께서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요? 제가 다시 걷게 해드린다면요?” 소은은 조용히 여왕의 뒤에 서서 말했다.여왕은 잠시 멈칫하더니, 눈빛이 날카롭게 변하며 휠체어를 돌려 소은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정말이냐?” 여왕의 눈에는 억누를 수 없는 희망과 깊은 의심이 뒤섞여 있었다.소은은 대답 대신 그녀의 시선을 천천히 여왕의 다리로 내리고, 천천히 다가가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손을 뻗어 여왕의 무릎 위에 가볍게 손을 올렸다.여왕은 살짝 몸을 떨었다. 사실, 그녀의 다리는 거의 완전히 감각을 잃은 상태라서 소은의 손길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아마도 너무나 간절히 다시 일어서고 싶기 때문이었을 것이다.소은은 아무 말 없이 여왕의
“맞아요, 임남 때문이기도 하지만, 폐하 때문이기도 합니다.” 소은은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제가 정말로 떠나버렸다면, 가장 초조해지는 사람은 사실 여왕 폐하 아닐까요?”여왕은 코웃음을 치며 차갑게 말했다. “내가 초조해질 이유가 뭐지? 어차피 내 손엔 네 약점이 있잖아. 너를 다시 잡아오는 것도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고.”“약점이요? 임남 말씀이신가요?” 소은은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잊지 마세요, 임남이는 제 아들이 아닙니다. 저에게는 제 친자식이 셋이나 있어요. 만약 제가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임남을 포기해 제 아이들을 지키려 한다면, 그 약점이 과연 제게 약점이 맞을까요?”여왕이 입을 열기도 전에 소은은 다시 말을 이었다. “게다가, 그 아이에겐 목숨을 걸고서라도 구하려는 아버지가 있습니다. 만약 임상언이 폐하께 끝까지 맞서기로 결심한다면...” “폐하께서야 높은 자리에 있으니 이런 평범한 상인을 하찮게 여기실 수 있지만, 임상언 씨가 단순한 상인이 아니라는 걸 잊으시면 안 됩니다. 임상언 씨의 사업은 세계 곳곳에 뻗어 있어요. 임상언 씨가 목숨을 걸 각오가 되어 있다면 그 어떤 일도 할 수 있겠죠. 혹시라도 바깥에 소문이 퍼져 폐하와 Y국의 명망이 손상된다면, 곤란하지 않겠습니까?”“너...” 여왕은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반박할 말이 당장 떠오르지 않았다.여왕이 화가 난 것을 보고, 소은은 한결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화내지 마세요. 제가 돌아온 건 폐하를 자극하려는 게 아닙니다. 함께 최선의 방향을 찾고자 돌아온 거예요. 사실 폐하께서 H국에 오신 일이 밝혀진 건 아니지만, 꽤 오랜 시간 H국에 머물고 계셨습니다. 정말로 H국이 이 사실을 모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세요?”여왕은 말없이 그녀를 쳐다보았다. “지금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건 폐하의 체면을 살려드린 겁니다. 그러나 폐하께서 이곳에서 계속 머무르시며 혹여 무리수를 두신다면, 얼마나 더 체류하실 수 있을까요? Y국도 계속해서
릭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여왕은 모니터에서 시선을 돌리며 담담히 말했다. “소은을 데려와. 어디 한번 무슨 변명을 할지 들어보자. 또 어떤 이야기를 꾸며낼지 궁금하네.” 여왕은 휠체어를 살짝 돌려 더 이상 모니터를 보지 않았다.“여왕 폐하?” 릭은 망설이다가 말했다. “한소은이 거짓말을 할 걸 아시면서도 굳이 왜...” 그러나 여왕은 그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단호히 말했다. “듣고 싶어!” 이 한마디에 릭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그는 곧장 소은이 있는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소은이 정말로 잠이 들려고 하던 순간, 문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그녀는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다. 눈을 뜨는 순간, 문이 열리면서 릭이 문 앞에 서 있었다. 그의 얼굴은 굳어 있었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여왕께서 한소은 씨를 만나고 싶어 하십니다.” 소은은 차분한 표정으로 릭을 쳐다보았다. 마치 모든 상황을 예견한 듯 고요하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와 동시에 임상언은 소은보다 먼저 일어나 문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가 문에 도착하자마자 릭이 손을 들어 그의 앞을 막았다. “그쪽은 남아 계시죠.” “뭐? 우리 둘은 같이 온 거야!” 임상언은 소은을 돌아보며 그녀에게 눈짓으로 도움을 요청했다. 릭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여왕 폐하께서 그쪽을 부르지 않았으니 여기 남으시죠.” 릭은 더 이상 임상언에게 말을 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소은은 임상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부드럽게 말했다. “절 기다리고 있어요.” 임상언은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억지로 마음을 다스리며 그녀가 릭과 함께 방을 나서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조심해요.” 임상언은 소은을 향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소은은 미소를 지어 그에게 답했고, 릭을 따라 여왕의 방으로 향했다. 익숙한 길을 따라 걷는 그녀는 곧 여왕의 방에 도착했다. 릭이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여왕 폐하, 데려왔습니다
소은이 임상언을 데리고 대사관에 도착하자,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눈에 띄게 당황했다.한 사람이 서둘러 소식을 알리러 가더니, 이내 주변 구석구석에서 누군가가 몰래 그들을 엿보는 기척이 느껴졌다. 곧이어, 소은이 잘 알고 있는 여왕의 측근 몇 명이 경계 어린 눈빛으로 다가와 그들을 안으로 안내했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그들은 소은과 임상언의 몸을 샅샅이 검사하며 위험 물품을 소지하지 않았는지 확인했다. 철저한 검사가 끝난 후에야 비로소 경계가 풀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여왕을 만나지 못했고, 한적하고 깊숙한 방에 대기하도록 배정받았다. 오랜만에 돌아온 이곳은 소은에게 익숙하면서도 낯설게 느껴졌다. 익숙한 것은 이 장소였지만, 낯선 것은 지금의 마음가짐이었다. 예전에는 이곳이 싫고 불쾌하기만 했으며,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은 장소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임무와 사명을 가지고 돌아왔고, 그녀의 목표는 단순히 여기를 떠나는 것이 아닌, 중요한 일을 완수하고 무사히 돌아가는 것이었다.반면, 임상언은 눈에 띄게 불안해 보였다. 그는 두 손을 맞잡고 무릎 위에 놓은 채,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다리를 가볍게 떨고 있었다. 소은은 그의 초조함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임남을 생각하면 마음이 몹시 불안하고 조급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여기까지 왔으니 임남을 반드시 볼 수 있을 거예요. 그러니 긴장 좀 풀어요.” 소은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임상언은 그녀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발을 땅에 꾹 눌러 다리를 멈췄다. 겉으로는 조금 안정된 듯 보였지만, 그의 얼굴은 여전히 긴장감이 가득했고 미세하게 떨리는 얼굴 근육이 그의 불안한 마음을 보여주었다. 마음을 진정시키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소은은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다.두 사람은 한참을 기다렸지만, 여왕을 만나러 오라는 사람은커녕 상황을 확인하러 오는 사람조차 없었다. 긴장했던 임상언은 결국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대체 무슨 의도인 거죠? 왜 아직
“제발 부탁이에요. 안에서는 소은 씨 말만 따를게요. 소은 씨가 시키는 대로 다 할 테니까, 제발 절 데려가 주시면 안 돼요?” 임상언은 진심 어린 목소리로 소은에게 간청했다. 자존심은 이미 버린 지 오래였다. 아들을 만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그를 이 지경까지 이르게 했다. 소은이 반드시 돌아가겠다고 결심한 순간, 임상언은 이미 마음을 굳혔다. 자신이 함께 가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같이 가면 의심을 받거나 제지를 당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전 아니에요.” 임상언은 계속 설득을 이어갔다. “임남이 그 안에 있다는 걸 모두 알고 있잖아요. 제가 아들을 만나고 구하려고 하는 건 당연한 일이에요. 그리고 아들을 위해서 제 목숨을 바치는 것도 이해될 수 있는 일이죠. 그러니 제가 가는 게 가장 올바른 선택이에요.” 긴 침묵 끝에, 소은이 입을 열었다. “임상언 씨 말이 맞아요. 전 동의합니다.” 소은은 말을 마치고 서진에게 시선을 돌렸다. 서진은 잠시 생각하더니 천천히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저도 동의합니다.” 원청현은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두드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나도 동의하지.” 잠시 침묵하던 진정기 역시 마침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동의합니다.” 마지막으로 원철수는 주변을 둘러보며 한숨을 내쉬고 손을 펼쳤다. “모두 동의했는데 내가 뭐라고 반대하겠어. 나도 찬성이야.” 사실 원철수의 의견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임상언에게 지지를 표현하는 의미였다. 임상언은 눈시울이 붉어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모두들 고마워요.” “이게 뭔 감사할 일이라고. 어쨌든 안에 들어가면 절대 신중해야 해. 무슨 일이 있어도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네 입으로 한 말 반드시 지켜!” 원철수는 그의 결심을 칭찬하면서도 걱정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원철수는 속으로 임상언의 결단에 감탄했다.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그는 분명 최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