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형원은 이제 그녀에 대해 조금의 동정심도 생기지 않는다.그녀의 임신 사실이 의심스러웠고 그녀가 몇 번이나 아이를 지우겠다고 자신을 떠본 게 생각이 나서 특별히 사람을 보내 조사한 것이다. 안 그랬다면 그녀가 이렇게 일찍이 아이를 지우려고 했는지도 몰랐을 것이다.그래도 그는 한결같이 오로지 그들의 장래를 고려하고, 그녀와 잘 살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결국 그녀가 이렇게 딴마음을 품다니, 자신이 정말 그렇게 할 가치가 없었다."시원 웨이브를 떠나라고 하지 않은 게 이미 많이 생각해 준 거야. 시원 웨이브가 연말 콘테스트에 당연히 참가하겠지만 회사의 명의로 할 것이고 너 개인이 대표할 수는 없어. 넌 그냥 회사를 대표하여 상을 받으면 돼. 이게 너에 대한 최고의 배려다.”"아니야. 아니야!"강시유가 받아들일 리가 없다.이번 대회를 위해, 자신을 한 단계 끌어올리기 위해, 그녀는 자신을 걸고 거래했으며 자신의 감정과 모든 것을 걸었다. 그녀는 아직 미래를 이기지도 못했는데, 어떻게 여기에서 상류로 향하는 길을 접을 수 있을까."넌 나한테 이러면 안 돼. 내 공로를 빼앗아갈 수 없어. 이 신제품은 내 성과야. 내 거야."그녀는 노형원을 향해 달려들었으며 사람이 완전 미쳐버렸다.노형원은 휠체어를 뒤로 빼서 그녀를 피했으며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앞에 있는 이 여자가 미친 사람처럼 보이고, 예쁨과 귀여움이 하나도 보이지 않아 고개를 저었으며 실망 외에 후회까지 했다.“공로를 빼앗아간다고?”그는 냉소했다. "시유, 너 잊었어? 당초 어떻게 한소은의 공로를 빼앗았는지. 게다가 이번 신제품의 성과는 네 거라고 하는데, 그럼 내가 물어볼 게. 레시피는 네가 쓴 거야? 아이디어도 네 거야? 심지어 연구실의 레시피도 네가 만들었어? 너는 그냥 몸으로 레시피를 바꿨을 뿐인데 무슨 체면으로, 무슨 자격으로 네 성과라고 말할 수 있어?""원재료부터 실험까지 시원 웨이브에서 모든 자금과 비용을 지원했어. 내가 너한테 대표로서 상을받게 하는 것도 과거의
"네가 방금 수술을 받고 상태가 안 좋으니까 내가 따지지 않을 게.”그는 휠체어의 방향을 돌리고 얘기했다. "나도 돌아가서 쉬어야 해. 여기는 내가 돌봐줄 사람을 붙일 테니, 너의 거취에 대해서는… 퇴원 후에 다시 얘기하자."기왕 이렇게 된 이상 못할 말이 없다. 한소은 외에도 그는 회사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을 고려해야 하며 강시유를 그 자리에 오랫동안 앉게 하는 것은 정말 적합하지 않다.한소은은 집에 돌아와서 서둘러 샤워를 했으며 단지 오늘 밖에서 재수 없는 일만 가득했던 것 같았다.강시유는 당연히 그녀를 위협할 수 없지만, 모든 일이 매우 역겨웠다. 그녀가 뱃속의 아이를 가지고 사람을 모함할 줄은 몰랐으며 이 여자는 그녀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악독했다.샤워를 하고 나와서 보니 휴대폰에 부재중 전화가 있었는데 저장한 이름은 욱하는 장인이었다.입꼬리를 올리면서 뜻대로 되는 일이 좀 생길 때도 있겠지.다시 전화를 걸어 잠시 기다리니 결국 누군가가 전화를 나지막한 목소리로 받았다. "여보세요?"“땡땡이치는 직원은 좋은 직원이 아니에요. 사장님이 자를까 봐 두렵지 않아요?”한소은은 놀리면서 말했다.지난번에 봤던 모습으로는 그는 사장님을 많이 무서워하는 것 같았는데 어떻게 이유 없이 땡땡이쳤을까?그러나 쉽게 욱하는 젊은 친구는 오늘도 농담할 기분이 아닌 듯 여전히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난 안 할 거니까 다른 사람 찾아봐요."말을 다 하고 전화를 끊으려고 할 때 한소은은 깜짝 놀랐다."잠깐만요. 뭘 안 하겠다는 거예요? 얘기가 끝난 거 아니었어요? 가격이 마음에 안 들어요? 아니면 뭐가 문제죠?""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냥 하기 싫어졌어요. 다른 사람을 찾으세요.""그게 무슨 뜻이에요!"한소은은 약간 화가 났다. "계약 정신이 무엇인지 알아요? 당신이 하기로 한일인데 번복하면 어쩌겠다는 거예요?"잠시 멈추더니 그녀는 물었다. "혹시... 무슨 어려운 일이 생겼어요?""아니에요."그는 침묵했다가 한마디 덧붙였다. "죄송합니다."그러
문밖에 서 있던 조현아는 마음이 놓이지 않아 이연에게 전화를 걸었다. "소은이 너에게 어떤 신제품을 만들겠다고 말했나요?""아니요. 왜요?"이연은 병원에서 엎치락뒤치락하고 돌아오자 서둘러 장보고 집안 청소를 하고 있었으며 청소기 소리가 시끄러워 말소리가 잘 안 들렸다."걔가 연구실로 돌아와서 혼자 문을 잠그고 있어요. 내가 말을 걸어도 듣지 않아요. 상태가 좀 별로인 거 같아서 걱정이네요."얘기를 들으면서 이연이는 멍했고 얼른 청소기를 끄고 무의식적으로 말했다. "오늘 일 때문인가?근데 소은 언니가 갈 때 괜찮아 보였는데요."조현아는 무언가를 알아듣고 물었다. "오늘 무슨 일이 있었어요?""한두 마디로 말할 수 없어요. 지금 연구실에 있죠? 제가 가볼게요.”이연은 얼른 손에 들고 있던 물건을 내려놓고 앞치마를 벗고 손을 씻고 서둘러 연구실로 달려갔다.사람이 나오지도 않고 대답도 없으니까 조현아도 어쩔 수 없이 연구실의 바깥에 있는 소파에 앉아 있었다.퇴근 시간이 다가오자 사람들이 하나둘씩 나갔고, 조현아는 거의 한 시간 정도 앉아 있었을 때 오이연은 숨을 헐떡거리며 달려왔다."소은 언니 아직 안에 있어요?"조현아는 연구실 쪽을 향해 입을 내밀었고, 이연은 고개를 끄덕이고 달려가 문을 두드렸다. "소은 언니, 저 이연이에요. 문 열어봐요. 내가 뭘 도와줄 게 없어요?""소은..."말이 끝나기도 전에 연구실 문이 안에서 홱 열렸고, 동시에 매캐한 냄새가 쏟아져 나왔다.제일 먼저 달려든 이연은 처음에는 멍해졌다가 곧이어 '콜록콜록' 기침을 하며 멈추기가 힘들었다.조현아는 인기척을 듣고 고개를 들었으며, 다가오기도 전에 그 유난히 지독한 냄새에 숨이 막혔다. "콜록콜록......한소......콜록콜록......이게 뭐야......콜록콜록......"둘 다 기침을 하고 있는데 한소은은 별 반응이 없어 보였고 그저 두 사람을 바라보며 말했다. "방금 나를 불렀어요?"“......”그냥 부른 게 아니라, 몇 번이나 불렀는지 모르겠네. 이 뜻은
“당신, 이거 진짜예요...?조현아가 그녀의 능력을 의심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 이 향기는 너무나도 충격적이었다. 이 향기는 콧속을 뚫고 뇌까지 직접적으로 전달될 정도로 향기가 강했다.초기에도 이 정도의 향인데 중반 후반의 향은 어떠할지 예상조차 하기 힘들었다.하지만 분명한 것은 지금 그녀의 기분은 좋지 않았고 조현아도 그녀와 싸우고 싶지 않았다. “좋아요, 이미 다 만든 것이니 일단 정리하고 들어가세요. 시간이 늦었어요.”“제가 데려다줄게요.” 오이연이 자진해서 나섰다.두 사람은 예전처럼 택시를 탔다. 그들이 택시에 오르자 택시 기사는 조건반사적으로 뒤를 돌아봤다. “허, 아가씨들 향수를 정말 많이 뿌렸네요!”오이연이 죄송스러운 듯 웃어 보였다. 사실 조향사로서 몸에 이상한 냄새가 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언제 어디서나 몸에 향기가 나는 것도 아니었다. 향수의 향기는 매우 복잡할 뿐만 아니라 각종 정제 과정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그들은 이미 공공장소에서 받아왔던 다양한 시선들에 대해 익숙했지만 오늘처럼 강하고 특이한 향기가 나는 날도 드물었을 것이다.오이연처럼 항상 향수 제조를 한 사람조차 견딜 수 없었던 이 향기는 일반인들에게는 더욱더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한소은은 마음이 착잡한지 어떠한 말도 하지 않고 차에 올라탄 순간부터 창 밖만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갈피조차 잡을 수 없었다.택시기사는 말이 너무 많아 가는 내내 말이 끊이지 않았다. 그는 창문을 열면서 그녀들에게 물었다. “창문 열어서 바람 좀 쐬려고 하는데 괜찮죠?”오이연은 어색한 웃음을 띠며 고개를 끄덕였다. 바람이 들어오는건 확실히 괜찮았다.“아가씨들, 어떤 향수 산 거예요? 정말 좋네요!” 기사가 운전을 하며 물었다.“그냥 작은 브랜드 제품이에요.” 오이연이 웃으며 말했다.택시기사가 확신에 찬 어투로 말했다. “어쩐지 너무 진하더라고요! 제 생각엔 향수의 향이 무조건 진할 필요만은 없을 것 같아요. 어쩔 때는 얕은 향기가 오히려 사람
“뭣하러 그런 말을 해요.”오이연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그게 현실이니깐요. 최근 몇 년 동안 국내 향수 산업이 빠르게 발전하고 조향사도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좋은 향수는 모두 유명 브랜드 아니면 해외 브랜드에요. 국내 향수는 여전히 인정받지 못하고 있어요.” 한소은은 열변을 토했다.오이연이 어깨를 으쓱했다. “하지만 어느 정도는 사실이잖아요. 현재 국내 전체와 비교해 봐도 해외 유명 브랜드와는 비교할 수 없어요.”“지금은 안 될 수도 있지만 나중에는 꼭 그만큼 성장할 거예요.” 이것은 그녀가 추구하고자 하는 방향이자 목표였다.언젠가 그녀 자신이 만든 향수를 세계 무대로 진출시켜 세계인에게 한국도 세계 최고 수준의 향수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것이다.“소은 언니, 이미 도착했어요. 저 먼저 들어갈게요.” 오이연은 말하면서 몸을 돌렸다.“잠시만요!” 한소은이 그녀를 붙잡으며 말했다. “이미 여기까지 왔으니 앉았다 가요. 저번에 제가 많이 마셨으니 오늘은 내가 대접할게요.”“아니에요, 늦었어요.” 오이연은 완곡하게 거절했다. “늦은 시간에 택시 잡기 힘들어요.”한소은은 그녀의 팔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뭐가 무서워서 그래요! 늦으면 서한 씨한테 데리러 와달라고 하면 되죠!”서한의 이름을 듣자 오이연의 얼굴이 빨개졌다. “매번 그를 귀찮게 해서 미안해요.”“그런 게 어딨어요. 서진 씨한테 말해서 초과 근무 수당 전해달라고 하면 돼요.” 그녀는 오이연의 팔을 붙잡고 안으로 들어왔다. 이번에는 카드를 가져와서 카드를 대기만 하면 문을 열 수 있었다.오이연이 펜트하우스에 온 것은 이번이 두 번째이다. 지난번에는 한소은 때문에 김서진의 차를 타고 들어와 긴장한 데다가 걱정까지 하느라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없었다. 오늘 걸으면서 주위를 살펴보니 이 펜트하우스는 가격이 비싸기만 한 것이 아니라고 느껴졌다.집이 클 뿐만 아니라 인테리어도 화려하고 디테일한 부분에서도 뛰어났다.매 동마다 간격이 넓어 일조량도 충분
“뭐가 무서워요? 다 제가 고용한 사람들인데. 그녀는 무섭지 않을 뿐만 아니라 꽤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그녀가 고개를 흔들자 한소은은 맞은편에서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주스를 마셨다.“소은 언니가 이번에 제조했던 거 냄새가 좀 복잡한 것 같아요. 신제품 만들고 있던 거 아니었어요? 이번 신제품 너무... 이색적인 것 같아요.”그녀는 택시에서부터 코를 훌쩍거리며 냄새를 분석했지만 냄새가 너무 복잡해서 뭐가 섞여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혹시 냄새가 너무 진해서 구별하기 힘든 건 아닐까?“생각 없이 그냥 시도해 본 거예요.” 그녀는 머리를 흔들며 계속 생각했다.사실 그녀는 원료와 에센스 오일을 마음대로 섞었을 뿐 정확히 무엇을 만들려고 했는지 정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조현아와 오이연의 몇 마디의 말이 그녀를 자극했다.향수를 만들지 못하는 것도 아니었고, 다른 종류를 만들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향수든 원료든 에센셜 오일이든 세상의 모든 향기는 그 자체로도 독특하고 특별하다. 각각의 향기는 자연이 주는 선물이다. 그 각각의 향기를 조합을 통해 다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신선하거나 매혹적이거나 진하거나 얕은 향기를 만들어 낼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충격이 매우 크면 받아들이기 힘들어한다. 하지만 누가 좋아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도 없었다.“아... 사실 샤워부터 해야 할 것 같아요.”어찌 됐든 몸에서 나는 냄새부터 정리해야 할 것 같았다.말하는 사이에 밖에서 차 소리가 들렸고 오이연은 엉겁결에 소파에서 일어났다. “서진 씨도 돌아오셨으니 저 그만 가봐야 할 것 같아요.”“그가 호랑이도 아닌데 왜 그렇게 긴장을 해요.” 한소은은 그녀에게 신호를 보내더니 손에 있던 주스를 내려놓고 그를 맞이하러 문으로 향했다.“오늘 좀 일찍 왔어요.” 김서진이 말했다. 그는 멈춰 서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의 뒤에 있던 서한은 더욱더 직접적으로 표현했다. “에취, 에취, 에...!”처음 두 번은 참지 못했지만 마지막 재채기는 입과 코를 가리고 억지로 참았다.
“아, 아니에요. 이미 두 번이나 신세를 졌는걸요. 저 혼자 택시 잡아 가면 돼요. 지금 택시 잡을 수 있어요.” 그녀는 손사래를 치며 거절했다.“그럼 택시 타는 곳까지 데려다 드릴게요.” 서한이 말을 이었다. 오이연: “...”두 사람을 지켜보든 한소은은 오이연의 곁으로 다가가 그녀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그의 말에 따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에취!” 옆에 서있던 서한은 재채기를 참지 못했다.한소은: “...”그들이 가자마자 한소은은 위층으로 올라가 목욕을 하려고 올라갔다. 원래는 아무런 냄새가 나지 않았지만 서한이 계속해서 재채기를 하자 마침내 그녀 자신의 몸에서 얼마나 냄새가 나는지 깨닫게 되었다.방금 그녀가 오이연의 근처에 갔을 뿐인데도 서한은 참지 못하고 연거푸 재채기를 하였다. 그녀 자신이 김서진에게 다가가면 김서진도 참지 못할 것이다.“저 샤워하고 올게요.”그녀가 말했다.돌아서려는데 김서진이 그녀의 손목을 잡아 잡아당겨 그녀를 안았다.“제 몸에서 냄새나요 안으면 안 돼요!” 그녀는 발버둥 치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예상대로 김서진은 더욱 그녀를 꼭 껴안고 고개를 숙인 채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누가 안 좋은 냄새라고 했어요? 당신 냄새면 다 좋아요.”한소은: “...”그녀는 이 말이 달콤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를 달래기만 하더라도 그녀는 받아들일 수 있었다.“칭찬이라고 생각하고 넘어가겠지만 그래도 샤워하러 갈 거예요. 저도 견딜 수 없어요.” 그녀는 손을 들어 그의 얼굴을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 ——한소은은 샤워를 다 한 뒤 그 목조 가게에 대해 생각했다. 그 소년은 성질이 급하긴 했지만 믿을 수 없는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다만 전화번호 외에는 그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만약 그와 연락이 되지 않는다면 신제품은 잠시 보류해야 할 것이다.지난번에 받은 자투리로는 신제품 실험을 하기에 턱없이 부족했다. 더군다나 이렇게 구하기 힘들수록 더 조급해지고
이번엔 그녀는 손에 한 물건을 들고 돌아왔지만 김서진은 그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보지 못했다.한소은은 자투리 조각을 들고 책상에 앉아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 향은 매우 특별한 향이었다. 합성 원료라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것은 분명 천연 재료였다. 목재 자체의 향.그녀는 매우 관심이 있었고 이 목재의 출처에 대해 알고 싶어 했지만 그 소년이 다시 만들어주지 않는다면 찾기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사람을 찾는다면...고개를 돌려 김서진에게 물어보려 했다. 김서진은 그녀 바로 뒤에 있었고 그녀는 매우 놀랐다. “당신 어떻게 여기 있어요?”“그럼 제가 어디 있어야 하죠? 이제서야 저 발견한 거예요?” 그의 목소리엔 원망이 섞여있었다.한소은: “...”“그냥 이해가 안 되는 게 있어서요.”그녀는 그의 옷자락을 매만지며 말했다. “일부러 무시한 게 아니에요.”“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 더 화나요!” 그는 그녀의 코를 꼬집고 그녀의 손에 있는 목재를 힐끗 보았다. “이 물건을 이해 못 하겠다는 거예요?”“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손가락 두개로 목재를 집어 들어 코 끝에 대고 냄새를 맡았다. “이 목재 향기 아주 좋네요.”“그렇죠? 향기롭죠? 가장 중요한 건 이 향기는 매우 특별하다는 거예요. 보통의 나무 향도 아니고 제가 지금까지 맡아본 어떤 향도 아니에요. 예전에도 맡아본 적이 없어요.”그녀가 말했다.김서진은 이상하지 않다는 듯 말했다. “세계가 이렇게 큰 데 못 봤을 수도 있죠. 못 본 종류일 수도 있고 교배종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교배종이라고요?” 한소은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도 진해에 있을 때 그런 것을 본 적이 있는데 이번 목재는 아닌 것 같아요.”그녀의 걱정 가득한 얼굴을 보고 김서진이 물었다. “이거 어디서 가져오신 거예요? 지난번 그 목재 가게?”“네.”“그럼 간단하네요. 사장님께 원자재 어디서 구입했는지 물어보면 알 수 있잖아요.” 그는 문제가 복잡하지 않다고 생각했다.“아니요 사장님도 잘 몰라요.
소은은 고개를 들어 눈물을 참으며 말했다. “한 가지 이상한 게 있어요.”“무슨 일이에요?” 임남을 달래던 임상언이 무심히 되물었다.“로사 왕자는 감금된 것이 아니라 그날 Y국으로 송환되었다고 들었는데, 그렇다면 왜 그동안 로사 왕자와 연락이 닿지 않았던 걸까요?” 소은의 말에 임상언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두 가지 가능성이 있겠죠. 신호가 나쁘거나 핸드폰을 확인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 로사 왕자가 저희 연락을 거부하고 있을 수도...”두 사람은 잠시 눈을 마주쳤다. 말은 없었지만, 둘 다 이미 답을 얻은 듯했다. 로사 왕자가 그토록 연락을 피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도 나름의 계획을 세우고 있는 건가?...3일 후. 소은은 마지막 침을 놓고 손을 거두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여왕을 쳐다보며 말했다. “오늘 시술로 폐하의 다리에 감각이 돌아오실 겁니다. 하지만 일어서는 건 천천히 시도하셔야 합니다. 너무 서두르시면 안 돼요.”소은은 말을 마치고 갑자기 미소를 지었다.“무엇 때문에 웃는 거지?” 여왕은 여전히 자신의 다리를 어루만지며 물었다. 이미 이틀 전부터 약간의 감각이 돌아왔음을 느낀 터라, 소은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소은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제가 쓸데없는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요. 사실 R10 실험을 고집하신다면 결국 폐하께서는 이 몸을 떠나게 되실 텐데, 제가 이 몸에 애쓰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여왕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계속한 거지?”“어쩌면, 폐하께서 마음을 바꾸실 지도 모르니까요.” 소은은 부드럽게 대답했다. “어쩌면 자신의 몸이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거든요.”“우리 모두 이 세상에 올 때 두 손은 비어있지만, 이 몸만은 오로지 우리 자신의 것이죠. 몸마저 버리신다면, 그 영혼은 여전히 진짜 자신일 수 있을까요?”“그렇구나.” 여왕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
소은은 조용히 몸을 일으키며 여왕을 쳐다보았다. “물론이죠.” 소은은 담담하게 답했다. 그 대답에는 원망이나 비난의 기색은 전혀 없었다.“그렇다면... 조금 아쉽네.” 여왕은 생각에 잠긴 듯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기 마련입니다. 세상 모든 일은 균형을 맞추려 하죠. R10이 폐하께서 이루고자 하는 꿈이라면, 저는 그것을 막을 수 없어요. 다만, 그때가 되어 성공하든 실패하든, 저는 그 모습을 보지 못할 테니 부디 후회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소은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문 밖으로 나갔다.릭은 여전히 문 앞에서 대기 중이었다. 그녀와 여왕의 대화가 거의 다 들렸던 듯, 둘의 시선이 잠시 교차했다. 소은이 그를 지나쳐 나가자, 릭은 곧장 방으로 들어갔다.“여왕 폐하.” 릭은 여왕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그녀의 다리에 꽂힌 은침을 보자 릭의 눈빛이 굳어졌다. “이건...”“괜찮아. 곧 소은이가 와서 침을 빼줄 거야.” 여왕은 무심하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릭은 여전히 불안한 눈빛으로 말했다. “폐하께서 너무 방심하시는 것 아닙니까? 만약 한소은이 폐하께...”“그럴 리 없다.” 여왕은 단호히 그의 말을 잘랐다.릭은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설마 그 여자를 믿으시는 겁니까?”여왕은 대답 대신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녀도 릭의 질문이 아니었다면 자신이 소은을 믿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오랜 세월 누구도 쉽게 믿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그녀는 소은을 의심하지 않았다. 심지어 은침에 독이 묻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제가 가서 잡아오도록 하죠.”여왕이 생각에 잠기자 릭은 바로 뒤돌아섰다.“거기 서!”여왕은 결연히 말했다. “난 믿어.”릭은 한참을 침묵하며 여왕의 결정을 받아들였다....임상언은 아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비록 아들을 구하려는 결심을 굳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희망이 사라지는 듯했다.
소은은 허리춤에서 허리띠처럼 생긴 물건을 꺼내더니 조심스럽게 풀어내며, 그 안에 숨겨진 가느다란 은침을 꺼냈다.“이건...” 여왕은 깜짝 놀라며 소은을 쳐다봤다. 소은이가 은침을 항상 가지고 다닐 줄은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말해봐, 네 요구가 뭐지?” 여왕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마음을 가다듬으려 애썼다. 너무 무리한 요구라면 거절하면 그만이다. 여왕은 절대 소은에게 휘둘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소은은 차분하게 말했다. “제가 여기서 나올 수 있었던 건 로사 왕자님 덕분입니다. 그러니, 왕자님을 책망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그게 다야?” 여왕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소은이 여기까지 와서 자신과 조건을 따지는데, 결국 요구한 게 단지 로사를 처벌하지 말라는 거라니. 자신이 잘못 들은 건가 싶었다.“로사는 내 아들이다. 내가 정말 내 아들에게 손을 댈 리는 없지. 괜히 기회를 헛되게 쓴 건 아닌가?” 여왕은 고개를 저으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전 폐하께서 정말 로사 왕자님께 처벌을 내리시지 않을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왕자 폐하께서 저를 구해준 건 사실이기에 저도 왕자 폐하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소은은 조용히 말했다. “게다가 지금 왕자 폐하를 감금하시고 자유를 제한하고 계시지 않나요?”여왕은 의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니야. 난 단지 로사를 Y국으로 돌려보냈을 뿐이야.”“로사가 여기서 내 일을 여러모로 방해하긴 했지만, 우리 모자 사이가 더 악화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국내에서도 로사가 필요하니 Y국으로 돌려보낸 것뿐이다.” 여왕은 담담하게 말했다.“그런데 왜 왕자 폐하의 전화가 연결되지 않죠?” 소은은 잠시 멈칫했다. 단지 귀국했다면 국제전화를 받을 수 있을 텐데, 연락이 닿지 않았기에 여왕이 로사를 가둬놓았다고 오해할 수밖에 없었다.여왕은 깊은 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나도 잘 모르겠군. 그날 내가 화가 났던 건 사실이지만, 곧바로 Y국으로 돌아가도록
“삼일이면 됩니다.” 소은은 여왕을 쳐다보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삼일? 고작 삼일?” 여왕의 눈에는 믿기지 않는 놀라움이 서렸다. 그녀는 적어도 몇 달, 아니 최소한 몇 년은 걸릴 줄 알았다. 그러나 고작 삼일이라니, 그녀로서는 상상도 못 한 시간이었다.삼일쯤이야. 십 수년을 이렇게 버텨왔는데, 삼일쯤 더 기다린다고 달라질 게 뭐 있겠는가?“삼일 안에 정말 나아질 수 있는 건가? 내가 정말 다시 일어서서 걸을 수 있는 건가?” 여왕은 두 손으로 자신의 다리를 힘껏 눌렀지만 여전히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그녀는 소은의 말을 쉽게 믿을 수가 없었다. 이 다리가 감각을 잃은지 너무 오래되어 치료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여왕은 여러 나라의 명의를 찾아 다녔지만, 그들은 단지 병의 악화를 늦출 수 있을 뿐 다리를 완전히 회복시키는 건 불가능하다고 했었다. 그러나 지금 소은은 그녀 앞에 서서 확신에 찬 얼굴로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녀는 속으로 자신도 모르게 그 말을 믿고 싶어졌다.“이전처럼 완벽하게 걸을 수 있을 거라고 장담할 순 없어요. 너무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아서 근육이 많이 위축됐거든요. 하지만 서서히 일어나서 조금씩 회복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소은은 진지한 어조로 답했다.여왕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정도라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젊었을 때처럼 완전히 회복되는 것을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만약 휠체어와 지팡이 없이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 그 자체로도 그녀에겐 더할 나위 없는 희망이었다.“좋아. 삼일, 기다리겠네. 필요한 게 있나?” 여왕은 기분이 좋아져 말을 한층 부드럽게 했다.“임남...” 소은이 말을 꺼내자마자 여왕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녀는 곧바로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 “그건 안 돼. 그런 요구는 하지 마라.”“제가 말한 건 임남을 바로 풀어달라는 게 아닙니다. 그냥... 그 아이가 괜찮은지 알고 싶고, 가능하다면 아버지와 한 번 만날 기회를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 실험을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은 저와 프레드 뿐이기 때문입니다.” 소은은 잠시 생각하다가 덧붙였다. “아니면 주효정을 믿으실 건가요?”“나는... 아무도 믿지 않아.” 여왕은 얼굴을 차갑게 굳히며 휠체어를 돌렸다.“여왕 폐하께서 이 실험에 집착하고 계시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인가요? 세상을 둘러보고 싶다거나, 짐을 내려놓고 잠시 쉬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으신가요? 수십 년간 왕좌에 오르셨지만, 정말로 아직도 그 삶이 좋으신가요? 언제나 긴장하며 위태로운 자리를 견디는 고단한 나날, 정말 아직도 벗어나고 싶지 않으신가요?” 소은은 여왕의 등을 쳐다보며 부드럽게 물었다.여왕은 아무 말 없이 자신의 무릎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살짝 떨구었다. 그녀는 시선을 다리로 내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세상을 둘러본다? 나는... 걷는 게 어떤 느낌인지도 잊어버렸어.”여왕은 오랜 세월 동안 다리를 쓰지 않았고, 처음에는 억지로라도 일어설 수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상태는 악화되었고 이제는 아예 휠체어 없이는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그녀는 휠체어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소은이 ‘세상을 둘러보라’는 말을 꺼내자 가슴이 아팠다.“만약... 폐하께서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요? 제가 다시 걷게 해드린다면요?” 소은은 조용히 여왕의 뒤에 서서 말했다.여왕은 잠시 멈칫하더니, 눈빛이 날카롭게 변하며 휠체어를 돌려 소은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정말이냐?” 여왕의 눈에는 억누를 수 없는 희망과 깊은 의심이 뒤섞여 있었다.소은은 대답 대신 그녀의 시선을 천천히 여왕의 다리로 내리고, 천천히 다가가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손을 뻗어 여왕의 무릎 위에 가볍게 손을 올렸다.여왕은 살짝 몸을 떨었다. 사실, 그녀의 다리는 거의 완전히 감각을 잃은 상태라서 소은의 손길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아마도 너무나 간절히 다시 일어서고 싶기 때문이었을 것이다.소은은 아무 말 없이 여왕의
“맞아요, 임남 때문이기도 하지만, 폐하 때문이기도 합니다.” 소은은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제가 정말로 떠나버렸다면, 가장 초조해지는 사람은 사실 여왕 폐하 아닐까요?”여왕은 코웃음을 치며 차갑게 말했다. “내가 초조해질 이유가 뭐지? 어차피 내 손엔 네 약점이 있잖아. 너를 다시 잡아오는 것도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고.”“약점이요? 임남 말씀이신가요?” 소은은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잊지 마세요, 임남이는 제 아들이 아닙니다. 저에게는 제 친자식이 셋이나 있어요. 만약 제가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임남을 포기해 제 아이들을 지키려 한다면, 그 약점이 과연 제게 약점이 맞을까요?”여왕이 입을 열기도 전에 소은은 다시 말을 이었다. “게다가, 그 아이에겐 목숨을 걸고서라도 구하려는 아버지가 있습니다. 만약 임상언이 폐하께 끝까지 맞서기로 결심한다면...” “폐하께서야 높은 자리에 있으니 이런 평범한 상인을 하찮게 여기실 수 있지만, 임상언 씨가 단순한 상인이 아니라는 걸 잊으시면 안 됩니다. 임상언 씨의 사업은 세계 곳곳에 뻗어 있어요. 임상언 씨가 목숨을 걸 각오가 되어 있다면 그 어떤 일도 할 수 있겠죠. 혹시라도 바깥에 소문이 퍼져 폐하와 Y국의 명망이 손상된다면, 곤란하지 않겠습니까?”“너...” 여왕은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반박할 말이 당장 떠오르지 않았다.여왕이 화가 난 것을 보고, 소은은 한결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화내지 마세요. 제가 돌아온 건 폐하를 자극하려는 게 아닙니다. 함께 최선의 방향을 찾고자 돌아온 거예요. 사실 폐하께서 H국에 오신 일이 밝혀진 건 아니지만, 꽤 오랜 시간 H국에 머물고 계셨습니다. 정말로 H국이 이 사실을 모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세요?”여왕은 말없이 그녀를 쳐다보았다. “지금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건 폐하의 체면을 살려드린 겁니다. 그러나 폐하께서 이곳에서 계속 머무르시며 혹여 무리수를 두신다면, 얼마나 더 체류하실 수 있을까요? Y국도 계속해서
릭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여왕은 모니터에서 시선을 돌리며 담담히 말했다. “소은을 데려와. 어디 한번 무슨 변명을 할지 들어보자. 또 어떤 이야기를 꾸며낼지 궁금하네.” 여왕은 휠체어를 살짝 돌려 더 이상 모니터를 보지 않았다.“여왕 폐하?” 릭은 망설이다가 말했다. “한소은이 거짓말을 할 걸 아시면서도 굳이 왜...” 그러나 여왕은 그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단호히 말했다. “듣고 싶어!” 이 한마디에 릭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그는 곧장 소은이 있는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소은이 정말로 잠이 들려고 하던 순간, 문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그녀는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다. 눈을 뜨는 순간, 문이 열리면서 릭이 문 앞에 서 있었다. 그의 얼굴은 굳어 있었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여왕께서 한소은 씨를 만나고 싶어 하십니다.” 소은은 차분한 표정으로 릭을 쳐다보았다. 마치 모든 상황을 예견한 듯 고요하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와 동시에 임상언은 소은보다 먼저 일어나 문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가 문에 도착하자마자 릭이 손을 들어 그의 앞을 막았다. “그쪽은 남아 계시죠.” “뭐? 우리 둘은 같이 온 거야!” 임상언은 소은을 돌아보며 그녀에게 눈짓으로 도움을 요청했다. 릭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여왕 폐하께서 그쪽을 부르지 않았으니 여기 남으시죠.” 릭은 더 이상 임상언에게 말을 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소은은 임상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부드럽게 말했다. “절 기다리고 있어요.” 임상언은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억지로 마음을 다스리며 그녀가 릭과 함께 방을 나서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조심해요.” 임상언은 소은을 향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소은은 미소를 지어 그에게 답했고, 릭을 따라 여왕의 방으로 향했다. 익숙한 길을 따라 걷는 그녀는 곧 여왕의 방에 도착했다. 릭이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여왕 폐하, 데려왔습니다
소은이 임상언을 데리고 대사관에 도착하자,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눈에 띄게 당황했다.한 사람이 서둘러 소식을 알리러 가더니, 이내 주변 구석구석에서 누군가가 몰래 그들을 엿보는 기척이 느껴졌다. 곧이어, 소은이 잘 알고 있는 여왕의 측근 몇 명이 경계 어린 눈빛으로 다가와 그들을 안으로 안내했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그들은 소은과 임상언의 몸을 샅샅이 검사하며 위험 물품을 소지하지 않았는지 확인했다. 철저한 검사가 끝난 후에야 비로소 경계가 풀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여왕을 만나지 못했고, 한적하고 깊숙한 방에 대기하도록 배정받았다. 오랜만에 돌아온 이곳은 소은에게 익숙하면서도 낯설게 느껴졌다. 익숙한 것은 이 장소였지만, 낯선 것은 지금의 마음가짐이었다. 예전에는 이곳이 싫고 불쾌하기만 했으며,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은 장소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임무와 사명을 가지고 돌아왔고, 그녀의 목표는 단순히 여기를 떠나는 것이 아닌, 중요한 일을 완수하고 무사히 돌아가는 것이었다.반면, 임상언은 눈에 띄게 불안해 보였다. 그는 두 손을 맞잡고 무릎 위에 놓은 채,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다리를 가볍게 떨고 있었다. 소은은 그의 초조함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임남을 생각하면 마음이 몹시 불안하고 조급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여기까지 왔으니 임남을 반드시 볼 수 있을 거예요. 그러니 긴장 좀 풀어요.” 소은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임상언은 그녀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발을 땅에 꾹 눌러 다리를 멈췄다. 겉으로는 조금 안정된 듯 보였지만, 그의 얼굴은 여전히 긴장감이 가득했고 미세하게 떨리는 얼굴 근육이 그의 불안한 마음을 보여주었다. 마음을 진정시키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소은은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다.두 사람은 한참을 기다렸지만, 여왕을 만나러 오라는 사람은커녕 상황을 확인하러 오는 사람조차 없었다. 긴장했던 임상언은 결국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대체 무슨 의도인 거죠? 왜 아직
“제발 부탁이에요. 안에서는 소은 씨 말만 따를게요. 소은 씨가 시키는 대로 다 할 테니까, 제발 절 데려가 주시면 안 돼요?” 임상언은 진심 어린 목소리로 소은에게 간청했다. 자존심은 이미 버린 지 오래였다. 아들을 만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그를 이 지경까지 이르게 했다. 소은이 반드시 돌아가겠다고 결심한 순간, 임상언은 이미 마음을 굳혔다. 자신이 함께 가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같이 가면 의심을 받거나 제지를 당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전 아니에요.” 임상언은 계속 설득을 이어갔다. “임남이 그 안에 있다는 걸 모두 알고 있잖아요. 제가 아들을 만나고 구하려고 하는 건 당연한 일이에요. 그리고 아들을 위해서 제 목숨을 바치는 것도 이해될 수 있는 일이죠. 그러니 제가 가는 게 가장 올바른 선택이에요.” 긴 침묵 끝에, 소은이 입을 열었다. “임상언 씨 말이 맞아요. 전 동의합니다.” 소은은 말을 마치고 서진에게 시선을 돌렸다. 서진은 잠시 생각하더니 천천히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저도 동의합니다.” 원청현은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두드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나도 동의하지.” 잠시 침묵하던 진정기 역시 마침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동의합니다.” 마지막으로 원철수는 주변을 둘러보며 한숨을 내쉬고 손을 펼쳤다. “모두 동의했는데 내가 뭐라고 반대하겠어. 나도 찬성이야.” 사실 원철수의 의견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임상언에게 지지를 표현하는 의미였다. 임상언은 눈시울이 붉어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모두들 고마워요.” “이게 뭔 감사할 일이라고. 어쨌든 안에 들어가면 절대 신중해야 해. 무슨 일이 있어도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네 입으로 한 말 반드시 지켜!” 원철수는 그의 결심을 칭찬하면서도 걱정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원철수는 속으로 임상언의 결단에 감탄했다.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그는 분명 최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