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실패다. 주효영의 실험은 매번 실패를 반복했다. 사실 그녀도 알고 있었다. 서두르면 안 되고, 실험이 그렇게 쉽게 성공하지는 않을 거라는 걸.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조급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아마도 소은이 근처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소은도 실험을 하고 있기 때문에 위기감이 계속해서 주효영에게 영향을 주고 있었다.주효영은 깊게 숨을 들이쉬며 천천히 고개를 들어 앞에 놓인 실험 기기를 바라보았다. 기기 속의 물체를 바라보고, 컴퓨터에 나타난 데이터를 다시 한번 확인한 후, 갑자기 손을 뻗어 모든 것을 쓰레기통에 던져 버렸다. 그리고 돌아서서 바깥으로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주효영은 곧바로 소은이 실험을 하고 있는 장소로 갔다. 그녀의 진행 상황이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문앞에 다다르자 소은은 안에서 누워 자고 있었다. 주효영은 자신의 눈을 의심하며 눈을 비볐다. 그러나 다시 눈을 떠 확인해 보니, 소은은 정말로 자고 있었다. 소은은 의자에 느긋하게 기대어 자고 있었고, 따뜻한 담요를 덮고 있었다. 마치 아주 편안하게 휴가를 즐기고 있는 것 같았다. 그뿐만 아니라, 옆에 있는 테이블에는 차와 간식까지 놓여 있었다. 정말로 실험 중인 것이 아니라 휴가를 즐기는 것 같았다. 실험대 위에는 실험 장치들이 차분하게 작동 중이었고, 모든 것이 질서 있게 진행되고 있었다. 급할 것도 없고 느긋했다. 그 순간 주효영은 더욱 화가 치밀었다. ‘난 죽을 고비를 넘기며 실험을 하는데, 한소은은 어떻게 저렇게 여유롭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걸까?’‘한소은은 실험을 하러 온 게 아니야. 분명 게으름을 피우기 위해 온 거야. 아니, 일부러 날 자극하기 위해 나타난 거야!’ 이렇게 생각한 주효영은 소은을 분노에 찬 눈밫으로 한 번 쏘아보고, 다시 실험대에 놓인 장비들을 바라보며 속으로 나쁜 생각을 품었다. 소은은 깨어날 기미가 전혀 없었기에, 주효영은 말없이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 실험 장치에 손을 뻗었다. 그러나 장치를 만지기 직
소은은 그제야 천천히 눈을 뜨고 느긋하게 몸을 일으키며 주효영을 쳐다보았다. “너도 의학을 전공했으면서, 이 안에 든 게 뭔지 모르나 봐?”소은의 말에 주효영은 고개를 돌려, 실험대 위에 놓인 물건들을 꼼꼼히 살펴보고 냄새까지 맡아보았지만, 여전히 무엇인지 알아낼 수 없었다. “너 지금 장난치는 거야?”주효영이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의 손은 빨갛게 부어오랐고, 마치 화상이라도 입은 듯했다. 상처는 화상 같았지만 사실 그렇게 뜨겁지도 않았다. 다시 실험대 위의 약품들을 보니 방금 주효영의 손에 닿은 병들이 넘어졌고, 약물들이 실험대 위에서 흐르고 있었다. 그러나 소은은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마치 그 약품들이 엎어져도 아무 상관없다는 듯했다. 오히려 소은은 차를 한 잔 따라 여유롭게 한 모금 마셨다. “왜? 정말 모르겠어? 모르면 모른다고 말하지 그래? 창피할 건 없잖아?” 소은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흥! 그저 부식성 약물일 뿐이잖아. 별거 아니면서 신비한 척은!” 주효영이 말했다. “그냥 잠시 방심해서 네 속임수에 넘어간 것뿐이야.”“내가 분명 경고했는데 네가 내 말을 안 들은 거지.” 소은은 차를 내려놓고 천천히 그녀 쪽으로 다가갔다. 주효영의 부상당한 손을 한 번 보고, 실험대를 한 번 살펴본 후, 소은이 말했다. “너 잘못 짚었어. 그건 부식성 약물이 아니야.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그게 뭔지 몰라.”“왜 그렇게 날 쳐다봐? 못 믿겠어? 나도 그게 뭔지 모른다니까!” 소은은 미소를 지으며 옆으로 몸을 기울여 여유로운 태도로 말했다. “너도 지금은 실험 단계라는 걸 알고 있잖아. 실험 단계가 뭐겠어? 대담한 가설을 제기해 검증해보는 거지.” “지금 나는 대담한 가설을 세우고 있어. 전혀 섞일 수 없을 것 같은 성질이 다른 약들을 섞어 보고, 무슨 변화가 일어날지 지켜보는 중이야.” 소은은 실험대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봐, 역시 예상치 못한 효과가 나왔지.” “미쳤어?” 주효영
주효영은 소은과 여왕이 어떤 협의를 맺었는지 몰랐다. ‘여왕은 왜 갑자기 마음을 바꿔 소은을 실험실로 들여보낸 걸까?’ 분명 실험실은 주효영이 관리하기로 정해졌고,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을 그녀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다고 했었다. 그런데 이틀도 채 지나지 않아 여왕이 소은에게 실험실을 넘겨준 것이다. 주효영은 소은이 자신과는 다르다는 걸 알고 있었다. 모든 사람들이 소은에게 특별한 호감을 가지고 있는 듯 보였다. 그러나 주효영은 이 상황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더군다나 지금 소은의 태도를 보니, 그녀는 제대로 실험을 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대충 얼버무리는 것처럼 보였다. “네가 뭐라하든 상관없어.” 소은은 주효영을 힐끗 보고는 무심하게 말했다. “마음에 안 들면 고발하든지.” 소은의 거만한 태도에 주효영은 더욱 참을 수 없었다. 손의 통증까지 더해져 분노는 절정에 이르렀다. “내가 못할 것 같아? 네가 여왕의 총애를 받는다고 착각하지 마! 한소은, 네가 왜 여기에 있는지 잊었어? 너는 납치된 거지 여왕의 손님이 아니야.” 주효영은 차갑게 비웃으며 말을 마치고, 그대로 돌아섰다. 소은은 그녀가 분노에 차서 성큼성큼 나가는 것을 보면서도 막지 않았다. 그저 여전히 의자에 앉아 텅 빈 문을 바라보았다. 소은의 얼굴에 서서히 웃음기가 사라지고, 그녀의 표정이 약간 굳어졌다. 소은은 당연히 여왕의 총애를 받는 존재가 아니었다. 여왕은 겉보기에는 온화하고 친절한 사람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극도로 집착적이고 이기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이었다. 여왕이 그렇게 오랜 세월 왕좌를 차지하며 자리를 비켜주지 않았던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여왕이 자신의 아들조차 믿지 않고 끊임없이 의심했던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그녀가 이런 실험을 시작한 것도 그런 집착과 이기심 때문이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여왕은 실험을 멈추지 않았다. 소은은 여왕에게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었다. 여왕이 스스로 실험을 중단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오
주효영은 계단 입구에 서서 텅 빈 복도를 한 번 살펴보았다. 잠시 생각한 뒤 마음을 가라앉히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부탁했다. “여왕님께 급히 보고드릴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제발 한 번만 전해주세요.”“만약 이 일이 지체되면, 큰일이 벌어질 겁니다. 실험과 관련된 문제예요.” 주효영은 덧붙였다. 지금 자신이 여왕의 실험을 돕고 있으니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 주효영은 다소 오만한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상대는 전혀 미동도 하지 않고, 단호하게 말했다. “여왕님께서 누구도 방해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상황이 이상하다고 느낀 주효영은 다시 안쪽을 살펴보려고 몸을 기울였지만, 곧바로 저지당했다. 주효영은 어쩔 수 없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럼, 여왕님께서 지금 쉬고 계신 건가요, 아니면 어딜 가신 건가요?”“그건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차가운 대답에 주효영은 어찌할 바를 몰랐지만 경비를 뚫고 들어갈 순 없었다.여왕이 그녀에게 어느 정도 자유를 주었지만 주효영은 여전히 여왕에게 있어 별다른 존재감이 없는 존재였다. 결국 주효영은 어쩔 수 없이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갔다. 주효영은 몇 걸음 더 걷다가, 무언가 떠오른 듯 다시 돌아서서 말했다. “여왕님이 안 계신다면, 릭을 만나볼 수 있을까요?” “릭에게도 전할 말이 있습니다. 시간을 지체할 수 없으니 제발 릭에게 전해주세요.” 주효영은 매우 다급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의 말에 경비원들은 잠시 서로를 쳐다보며 망설였다. “정말 급한 일입니다.” 주효영은 다시 한번 강조했다. 그러나 경비원들은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고, 이번에는 대답을 했다. “릭도 자리를 비웠습니다. 그러니 기다리셔야 할 것 같습니다.”“릭도 없다고요?” 주효영은 당황했다. 릭은 거의 항상 여왕과 함께 있었으니, 그도 여왕과 함께 있다는 말일 것이다. ‘그렇다면, 여왕은 지금 어디로 간 걸까?’‘실험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다니? 여왕에게 실험이 최우선순위가
문득, 무언가 떠오른 듯 주효영은 급히 실험실로 다시 돌아갔다. 도착했을 때 소은은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 여전히 의자에 기대어 반쯤 자는 듯한 모습이었다. 주효영은 더 이상 조심스럽게 행동하지 않고 곧바로 물었다. “너 아직도 여기 있었어?” 소은은 눈꺼풀을 살짝 들어 주효영을 힐끗 보며 차분하게 말했다. “내가 그럼 어디 있어야 하지? 네 질문이 참 이상하네.” “그러니까 너도 모르는 거네.” 주효영은 중얼거렸다. 그러나 곧바로 무언가 생각난 듯, 입 밖으로 나올 뻔한 말을 다시 삼키며 말했다. “별거 아니야. 네 실험이나 계속해. 어디 한 번 네 멋대로 해봐!” 소은도 모르고 있다는 사실에 주효영은 어느 정도 마음이 놓였다. 여왕이 소은에게도 말하지 않았다면, 자신만 특별히 제외된 것은 아니라는 생각에 한결 편해졌다. 그러나 여왕이 실험실에 오지 않았다면, 대체 어디로 간 걸까? 주효영은 의문을 품은 채 발걸음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 소은은 반쯤 몸을 일으키며 주효영이 나가는 것을 보았다. 그녀의 행동에 의구심이 들었다. “방금 그말 무슨 뜻이야?” “아무것도 아니야. 네 실험이나 계속해!” 주효영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아니면 계속 자던가.” 주효영은 비꼬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 소은이 제대로 실험을 하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자신이 굳이 경쟁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지금 중요한 것은 여왕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녀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내는 것이었다. 주효영은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정확히 파악해야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오랜 경험을 통해 깨달았다. 주효영은 빠르게 걸음을 옮기며 실험실을 떠났다. 그녀의 발걸음 소리가 급하게 멀어져 갔다. 소은은 점점 더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주효영이 단순히 속임수를 쓰고 있는 것일 수도 있지만, 방금 전 그녀의 모습은 절대 연기가 아니었다. 게다가, 주효영이 문을 열며 했던 말
어쩌면 여왕이 애초에 여기에 없어서 아무도 만나지 않는다고 말한 걸까? 경비원들의 얼굴에는 순간적으로 불안한 기색이 스쳤지만, 소은의 질문에 정면으로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모릅니다.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무슨 뜻인지 알겠어요.” 소은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뭘 이해했다는 거지?’ 경비원들이 의아해하고 있을 때 소은은 이미 자리를 떠났고, 그들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여전히 그 자리에 서서 앞을 응시할 뿐이었다. 엘리베이터로 돌아온 소은은 버튼에 손을 올려놓았지만, 급히 누르지 않았다. 그녀의 머릿속은 빠르게 돌아가고 있었다. 주효영의 말과 방금 경비원들의 반응을 종합해보면, 그들이 말한 다른 사람은 분명 주효영이었다. 즉, 주효영도 여왕을 찾으러 왔지만 소은처럼 여왕을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주효영은 소은이 여왕과 함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방금 그렇게 급히 실험실로 돌아온 이유는 여왕을 찾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여왕은 그곳에 없었고, 오직 소은만 있었기에 주효영은 놀라며 ‘너 아직도 여기 있었어?’라고 물었던 것이다. 주효영은 소은이 여왕과 함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소은이 실험실에 있지 않다면, 여왕과 함께 어디에 있어야 했을까? 소은은 잠시 생각에 잠겼지만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여왕이 방에 없고, 자신과 주효영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면, 대체 어디로 갔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한 사람이 떠올랐다. 소은의 등골이 오싹해지며 급히 버튼을 눌렀다. 엘리베이터는 한 층 아래로 바로 내려갔고, 소은은 서둘러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빠르게 앞으로 나아가던 그녀는 두 발자국 정도 걸은 후 참을 수 없다는 듯 뛰기 시작했다. 방문에 도달하기도 전에, 소은은 이미 가슴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방문 앞에는 아무도 없었다. 평소에는 두 명의 경비원이 좌우에 서서 철통같이 지키고 있어야 했지만, 지금은 모두 사라졌다.
소은은 빠르게 발걸음을 옮기며,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생각을 이어갔다. 자신은 방금 전에 실험실에서 왔고, 주효영 또한 실험실에 다녀갔다. 그렇다면 여왕과 임남은 실험실에 있을 리 없었다. 여왕이 이렇게 갑작스럽게 임남을 데려간 것은 결코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다. 실험을 하려면 임남 뿐만 아니라, 프레드도 필요할 것이다. 이 두 가지 중요한 실험체 외에도, 여왕은 의도적으로 소은과 주효영을 피했다는 것은 의사들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했다. 여왕은 결국 소은을 배제하고 실험을 강제로 실행하려고 했다. 여왕은 결과에 신경 쓰지 않는 것일까, 아니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어떻게든 실험을 한 번 해보고야 말겠다고 결정을 내린 걸까. 소은은 초조하게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여러 번 눌렀다. 엘리베이터가 더 빨리, 더 빨리 도착하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예상치 못하게, 프레드가 갇혀 있는 층의 버튼이 눌려 있지 않았다. 아무리 눌러도 버튼에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 잠긴 건가? 엘리베이터가 고장 난 건 아니었다. 고장이라면 하필 그 층만 고장일 리 없기 때문이다. 분명 그 층이 잠겨 있어서 눌러도 소용이 없었던 거다. 그러나 이 사실은 자신의 추측이 맞았다는 것을 증명해 주었다. 그들은 틀림없이 그곳에 있었다. “소용없어.” 주효영은 어느새 소은의 옆에 다가와 웃으며 말했다. “너도 그곳이라고 생각했지? 하지만 엘리베이터는 잠겼고, 아까 내가 계단으로 가봤는데, 거기도 경비가 철저해서 들어갈 수 없더라.”“여왕이 우리를 일부러 피하고 있는 거야. 그리고 언제 실험을 시작했는지도 모르지? 어쩌면 이미 끝났을지도 몰라. 가봤자 소용없어.”주효영은 한숨을 쉬며 덧붙였다. “정말 아깝네.” 주효영은 아이를 구하지 못한 것이 아쉬운 것이 아니라, 이 중요한 실험을 직접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아쉬웠던 것이다. 성공이든 실패든, 이 실험은 오랫동안 그녀가 기다려온 대단한 실험이었다. 하지만 직접 목격하지 못한다는 것
“하하...” 주효영은 마지못해 웃으며 발끝으로 서서히 몸을 들어 안쪽을 살펴보았지만, 복도는 텅 비어 있었다. 전혀 사람이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저기... 방금 누가 들어갔나요?” “그건 당신과 상관없는 일입니다. 당장 나가십시오!” 경비원은 아주 엄격했고, 말투도 불친절했다. 주효영은 억지로 참으며 말했다. “아니, 나 말고도 다른 사람이 여기 온 적 있냐고요? 혹시 한소은을 본 적 있나요?” “방금 말씀드렸듯이 당장 나가주세요!”경비원은 성가신 듯 주효영을 몰아냈다. 주효영은 몇 걸음 뒤로 밀려났고, 속으로 화가 치밀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더 중요한 것은, 지금 상황이 매우 혼란스러웠다. 분명 소은이 계단 쪽으로 간 것을 보았는데, 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아니면 이미 안으로 들어간 것일까? 아니, 그럴 리는 없었다. 소은 역시 아무것도 몰랐을 것이다. 여왕이 소은을 데리고 가려 했다면 굳이 소은을 속일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소은이 몰랐다는 것은 여왕이 그녀를 실험에 참여시키지 않으려 했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소은이 계단을 통해 이곳에 오지 않았다면, 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주효영이 이런 의문에 빠져 있을 때, 그녀와 경비원 사이의 다툼 소리가 안쪽 사람의 주의를 끌었다. “무슨 일이야?” 복도 저쪽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릭이 방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의 눈빛은 어둡고 얼굴은 굳어 있었다. 그리고 주효영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불쾌감이 가득했다. “각하.” 경비원 중 한 명이 릭에게 다가가 작게 무언가를 속삭였다. 릭은 그 말을 듣는 동안, 주효영을 계속 쳐다보았다. 주효영은 그에게 다가가 무슨 말을 하려 했지만 경비원들이 막고 있어서 다가가지 못했다. “릭, 여왕님께 보고드릴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주효영은 큰 소리로 외쳤다. 경비원이 그녀를 다시 제지하려 했지만, 릭이 입을 열었다. “놓아줘.” 릭의 말에 경비원은 손을 놓았고, 주효영은 서둘러
소은은 고개를 들어 눈물을 참으며 말했다. “한 가지 이상한 게 있어요.”“무슨 일이에요?” 임남을 달래던 임상언이 무심히 되물었다.“로사 왕자는 감금된 것이 아니라 그날 Y국으로 송환되었다고 들었는데, 그렇다면 왜 그동안 로사 왕자와 연락이 닿지 않았던 걸까요?” 소은의 말에 임상언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두 가지 가능성이 있겠죠. 신호가 나쁘거나 핸드폰을 확인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 로사 왕자가 저희 연락을 거부하고 있을 수도...”두 사람은 잠시 눈을 마주쳤다. 말은 없었지만, 둘 다 이미 답을 얻은 듯했다. 로사 왕자가 그토록 연락을 피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도 나름의 계획을 세우고 있는 건가?...3일 후. 소은은 마지막 침을 놓고 손을 거두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여왕을 쳐다보며 말했다. “오늘 시술로 폐하의 다리에 감각이 돌아오실 겁니다. 하지만 일어서는 건 천천히 시도하셔야 합니다. 너무 서두르시면 안 돼요.”소은은 말을 마치고 갑자기 미소를 지었다.“무엇 때문에 웃는 거지?” 여왕은 여전히 자신의 다리를 어루만지며 물었다. 이미 이틀 전부터 약간의 감각이 돌아왔음을 느낀 터라, 소은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소은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제가 쓸데없는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요. 사실 R10 실험을 고집하신다면 결국 폐하께서는 이 몸을 떠나게 되실 텐데, 제가 이 몸에 애쓰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여왕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계속한 거지?”“어쩌면, 폐하께서 마음을 바꾸실 지도 모르니까요.” 소은은 부드럽게 대답했다. “어쩌면 자신의 몸이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거든요.”“우리 모두 이 세상에 올 때 두 손은 비어있지만, 이 몸만은 오로지 우리 자신의 것이죠. 몸마저 버리신다면, 그 영혼은 여전히 진짜 자신일 수 있을까요?”“그렇구나.” 여왕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
소은은 조용히 몸을 일으키며 여왕을 쳐다보았다. “물론이죠.” 소은은 담담하게 답했다. 그 대답에는 원망이나 비난의 기색은 전혀 없었다.“그렇다면... 조금 아쉽네.” 여왕은 생각에 잠긴 듯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기 마련입니다. 세상 모든 일은 균형을 맞추려 하죠. R10이 폐하께서 이루고자 하는 꿈이라면, 저는 그것을 막을 수 없어요. 다만, 그때가 되어 성공하든 실패하든, 저는 그 모습을 보지 못할 테니 부디 후회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소은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문 밖으로 나갔다.릭은 여전히 문 앞에서 대기 중이었다. 그녀와 여왕의 대화가 거의 다 들렸던 듯, 둘의 시선이 잠시 교차했다. 소은이 그를 지나쳐 나가자, 릭은 곧장 방으로 들어갔다.“여왕 폐하.” 릭은 여왕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그녀의 다리에 꽂힌 은침을 보자 릭의 눈빛이 굳어졌다. “이건...”“괜찮아. 곧 소은이가 와서 침을 빼줄 거야.” 여왕은 무심하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릭은 여전히 불안한 눈빛으로 말했다. “폐하께서 너무 방심하시는 것 아닙니까? 만약 한소은이 폐하께...”“그럴 리 없다.” 여왕은 단호히 그의 말을 잘랐다.릭은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설마 그 여자를 믿으시는 겁니까?”여왕은 대답 대신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녀도 릭의 질문이 아니었다면 자신이 소은을 믿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오랜 세월 누구도 쉽게 믿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그녀는 소은을 의심하지 않았다. 심지어 은침에 독이 묻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제가 가서 잡아오도록 하죠.”여왕이 생각에 잠기자 릭은 바로 뒤돌아섰다.“거기 서!”여왕은 결연히 말했다. “난 믿어.”릭은 한참을 침묵하며 여왕의 결정을 받아들였다....임상언은 아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비록 아들을 구하려는 결심을 굳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희망이 사라지는 듯했다.
소은은 허리춤에서 허리띠처럼 생긴 물건을 꺼내더니 조심스럽게 풀어내며, 그 안에 숨겨진 가느다란 은침을 꺼냈다.“이건...” 여왕은 깜짝 놀라며 소은을 쳐다봤다. 소은이가 은침을 항상 가지고 다닐 줄은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말해봐, 네 요구가 뭐지?” 여왕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마음을 가다듬으려 애썼다. 너무 무리한 요구라면 거절하면 그만이다. 여왕은 절대 소은에게 휘둘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소은은 차분하게 말했다. “제가 여기서 나올 수 있었던 건 로사 왕자님 덕분입니다. 그러니, 왕자님을 책망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그게 다야?” 여왕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소은이 여기까지 와서 자신과 조건을 따지는데, 결국 요구한 게 단지 로사를 처벌하지 말라는 거라니. 자신이 잘못 들은 건가 싶었다.“로사는 내 아들이다. 내가 정말 내 아들에게 손을 댈 리는 없지. 괜히 기회를 헛되게 쓴 건 아닌가?” 여왕은 고개를 저으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전 폐하께서 정말 로사 왕자님께 처벌을 내리시지 않을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왕자 폐하께서 저를 구해준 건 사실이기에 저도 왕자 폐하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소은은 조용히 말했다. “게다가 지금 왕자 폐하를 감금하시고 자유를 제한하고 계시지 않나요?”여왕은 의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니야. 난 단지 로사를 Y국으로 돌려보냈을 뿐이야.”“로사가 여기서 내 일을 여러모로 방해하긴 했지만, 우리 모자 사이가 더 악화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국내에서도 로사가 필요하니 Y국으로 돌려보낸 것뿐이다.” 여왕은 담담하게 말했다.“그런데 왜 왕자 폐하의 전화가 연결되지 않죠?” 소은은 잠시 멈칫했다. 단지 귀국했다면 국제전화를 받을 수 있을 텐데, 연락이 닿지 않았기에 여왕이 로사를 가둬놓았다고 오해할 수밖에 없었다.여왕은 깊은 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나도 잘 모르겠군. 그날 내가 화가 났던 건 사실이지만, 곧바로 Y국으로 돌아가도록
“삼일이면 됩니다.” 소은은 여왕을 쳐다보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삼일? 고작 삼일?” 여왕의 눈에는 믿기지 않는 놀라움이 서렸다. 그녀는 적어도 몇 달, 아니 최소한 몇 년은 걸릴 줄 알았다. 그러나 고작 삼일이라니, 그녀로서는 상상도 못 한 시간이었다.삼일쯤이야. 십 수년을 이렇게 버텨왔는데, 삼일쯤 더 기다린다고 달라질 게 뭐 있겠는가?“삼일 안에 정말 나아질 수 있는 건가? 내가 정말 다시 일어서서 걸을 수 있는 건가?” 여왕은 두 손으로 자신의 다리를 힘껏 눌렀지만 여전히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그녀는 소은의 말을 쉽게 믿을 수가 없었다. 이 다리가 감각을 잃은지 너무 오래되어 치료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여왕은 여러 나라의 명의를 찾아 다녔지만, 그들은 단지 병의 악화를 늦출 수 있을 뿐 다리를 완전히 회복시키는 건 불가능하다고 했었다. 그러나 지금 소은은 그녀 앞에 서서 확신에 찬 얼굴로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녀는 속으로 자신도 모르게 그 말을 믿고 싶어졌다.“이전처럼 완벽하게 걸을 수 있을 거라고 장담할 순 없어요. 너무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아서 근육이 많이 위축됐거든요. 하지만 서서히 일어나서 조금씩 회복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소은은 진지한 어조로 답했다.여왕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정도라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젊었을 때처럼 완전히 회복되는 것을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만약 휠체어와 지팡이 없이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 그 자체로도 그녀에겐 더할 나위 없는 희망이었다.“좋아. 삼일, 기다리겠네. 필요한 게 있나?” 여왕은 기분이 좋아져 말을 한층 부드럽게 했다.“임남...” 소은이 말을 꺼내자마자 여왕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녀는 곧바로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 “그건 안 돼. 그런 요구는 하지 마라.”“제가 말한 건 임남을 바로 풀어달라는 게 아닙니다. 그냥... 그 아이가 괜찮은지 알고 싶고, 가능하다면 아버지와 한 번 만날 기회를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 실험을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은 저와 프레드 뿐이기 때문입니다.” 소은은 잠시 생각하다가 덧붙였다. “아니면 주효정을 믿으실 건가요?”“나는... 아무도 믿지 않아.” 여왕은 얼굴을 차갑게 굳히며 휠체어를 돌렸다.“여왕 폐하께서 이 실험에 집착하고 계시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인가요? 세상을 둘러보고 싶다거나, 짐을 내려놓고 잠시 쉬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으신가요? 수십 년간 왕좌에 오르셨지만, 정말로 아직도 그 삶이 좋으신가요? 언제나 긴장하며 위태로운 자리를 견디는 고단한 나날, 정말 아직도 벗어나고 싶지 않으신가요?” 소은은 여왕의 등을 쳐다보며 부드럽게 물었다.여왕은 아무 말 없이 자신의 무릎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살짝 떨구었다. 그녀는 시선을 다리로 내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세상을 둘러본다? 나는... 걷는 게 어떤 느낌인지도 잊어버렸어.”여왕은 오랜 세월 동안 다리를 쓰지 않았고, 처음에는 억지로라도 일어설 수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상태는 악화되었고 이제는 아예 휠체어 없이는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그녀는 휠체어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소은이 ‘세상을 둘러보라’는 말을 꺼내자 가슴이 아팠다.“만약... 폐하께서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요? 제가 다시 걷게 해드린다면요?” 소은은 조용히 여왕의 뒤에 서서 말했다.여왕은 잠시 멈칫하더니, 눈빛이 날카롭게 변하며 휠체어를 돌려 소은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정말이냐?” 여왕의 눈에는 억누를 수 없는 희망과 깊은 의심이 뒤섞여 있었다.소은은 대답 대신 그녀의 시선을 천천히 여왕의 다리로 내리고, 천천히 다가가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손을 뻗어 여왕의 무릎 위에 가볍게 손을 올렸다.여왕은 살짝 몸을 떨었다. 사실, 그녀의 다리는 거의 완전히 감각을 잃은 상태라서 소은의 손길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아마도 너무나 간절히 다시 일어서고 싶기 때문이었을 것이다.소은은 아무 말 없이 여왕의
“맞아요, 임남 때문이기도 하지만, 폐하 때문이기도 합니다.” 소은은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제가 정말로 떠나버렸다면, 가장 초조해지는 사람은 사실 여왕 폐하 아닐까요?”여왕은 코웃음을 치며 차갑게 말했다. “내가 초조해질 이유가 뭐지? 어차피 내 손엔 네 약점이 있잖아. 너를 다시 잡아오는 것도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고.”“약점이요? 임남 말씀이신가요?” 소은은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잊지 마세요, 임남이는 제 아들이 아닙니다. 저에게는 제 친자식이 셋이나 있어요. 만약 제가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임남을 포기해 제 아이들을 지키려 한다면, 그 약점이 과연 제게 약점이 맞을까요?”여왕이 입을 열기도 전에 소은은 다시 말을 이었다. “게다가, 그 아이에겐 목숨을 걸고서라도 구하려는 아버지가 있습니다. 만약 임상언이 폐하께 끝까지 맞서기로 결심한다면...” “폐하께서야 높은 자리에 있으니 이런 평범한 상인을 하찮게 여기실 수 있지만, 임상언 씨가 단순한 상인이 아니라는 걸 잊으시면 안 됩니다. 임상언 씨의 사업은 세계 곳곳에 뻗어 있어요. 임상언 씨가 목숨을 걸 각오가 되어 있다면 그 어떤 일도 할 수 있겠죠. 혹시라도 바깥에 소문이 퍼져 폐하와 Y국의 명망이 손상된다면, 곤란하지 않겠습니까?”“너...” 여왕은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반박할 말이 당장 떠오르지 않았다.여왕이 화가 난 것을 보고, 소은은 한결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화내지 마세요. 제가 돌아온 건 폐하를 자극하려는 게 아닙니다. 함께 최선의 방향을 찾고자 돌아온 거예요. 사실 폐하께서 H국에 오신 일이 밝혀진 건 아니지만, 꽤 오랜 시간 H국에 머물고 계셨습니다. 정말로 H국이 이 사실을 모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세요?”여왕은 말없이 그녀를 쳐다보았다. “지금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건 폐하의 체면을 살려드린 겁니다. 그러나 폐하께서 이곳에서 계속 머무르시며 혹여 무리수를 두신다면, 얼마나 더 체류하실 수 있을까요? Y국도 계속해서
릭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여왕은 모니터에서 시선을 돌리며 담담히 말했다. “소은을 데려와. 어디 한번 무슨 변명을 할지 들어보자. 또 어떤 이야기를 꾸며낼지 궁금하네.” 여왕은 휠체어를 살짝 돌려 더 이상 모니터를 보지 않았다.“여왕 폐하?” 릭은 망설이다가 말했다. “한소은이 거짓말을 할 걸 아시면서도 굳이 왜...” 그러나 여왕은 그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단호히 말했다. “듣고 싶어!” 이 한마디에 릭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그는 곧장 소은이 있는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소은이 정말로 잠이 들려고 하던 순간, 문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그녀는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다. 눈을 뜨는 순간, 문이 열리면서 릭이 문 앞에 서 있었다. 그의 얼굴은 굳어 있었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여왕께서 한소은 씨를 만나고 싶어 하십니다.” 소은은 차분한 표정으로 릭을 쳐다보았다. 마치 모든 상황을 예견한 듯 고요하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와 동시에 임상언은 소은보다 먼저 일어나 문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가 문에 도착하자마자 릭이 손을 들어 그의 앞을 막았다. “그쪽은 남아 계시죠.” “뭐? 우리 둘은 같이 온 거야!” 임상언은 소은을 돌아보며 그녀에게 눈짓으로 도움을 요청했다. 릭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여왕 폐하께서 그쪽을 부르지 않았으니 여기 남으시죠.” 릭은 더 이상 임상언에게 말을 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소은은 임상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부드럽게 말했다. “절 기다리고 있어요.” 임상언은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억지로 마음을 다스리며 그녀가 릭과 함께 방을 나서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조심해요.” 임상언은 소은을 향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소은은 미소를 지어 그에게 답했고, 릭을 따라 여왕의 방으로 향했다. 익숙한 길을 따라 걷는 그녀는 곧 여왕의 방에 도착했다. 릭이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여왕 폐하, 데려왔습니다
소은이 임상언을 데리고 대사관에 도착하자,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눈에 띄게 당황했다.한 사람이 서둘러 소식을 알리러 가더니, 이내 주변 구석구석에서 누군가가 몰래 그들을 엿보는 기척이 느껴졌다. 곧이어, 소은이 잘 알고 있는 여왕의 측근 몇 명이 경계 어린 눈빛으로 다가와 그들을 안으로 안내했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그들은 소은과 임상언의 몸을 샅샅이 검사하며 위험 물품을 소지하지 않았는지 확인했다. 철저한 검사가 끝난 후에야 비로소 경계가 풀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여왕을 만나지 못했고, 한적하고 깊숙한 방에 대기하도록 배정받았다. 오랜만에 돌아온 이곳은 소은에게 익숙하면서도 낯설게 느껴졌다. 익숙한 것은 이 장소였지만, 낯선 것은 지금의 마음가짐이었다. 예전에는 이곳이 싫고 불쾌하기만 했으며,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은 장소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임무와 사명을 가지고 돌아왔고, 그녀의 목표는 단순히 여기를 떠나는 것이 아닌, 중요한 일을 완수하고 무사히 돌아가는 것이었다.반면, 임상언은 눈에 띄게 불안해 보였다. 그는 두 손을 맞잡고 무릎 위에 놓은 채,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다리를 가볍게 떨고 있었다. 소은은 그의 초조함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임남을 생각하면 마음이 몹시 불안하고 조급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여기까지 왔으니 임남을 반드시 볼 수 있을 거예요. 그러니 긴장 좀 풀어요.” 소은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임상언은 그녀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발을 땅에 꾹 눌러 다리를 멈췄다. 겉으로는 조금 안정된 듯 보였지만, 그의 얼굴은 여전히 긴장감이 가득했고 미세하게 떨리는 얼굴 근육이 그의 불안한 마음을 보여주었다. 마음을 진정시키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소은은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다.두 사람은 한참을 기다렸지만, 여왕을 만나러 오라는 사람은커녕 상황을 확인하러 오는 사람조차 없었다. 긴장했던 임상언은 결국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대체 무슨 의도인 거죠? 왜 아직
“제발 부탁이에요. 안에서는 소은 씨 말만 따를게요. 소은 씨가 시키는 대로 다 할 테니까, 제발 절 데려가 주시면 안 돼요?” 임상언은 진심 어린 목소리로 소은에게 간청했다. 자존심은 이미 버린 지 오래였다. 아들을 만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그를 이 지경까지 이르게 했다. 소은이 반드시 돌아가겠다고 결심한 순간, 임상언은 이미 마음을 굳혔다. 자신이 함께 가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같이 가면 의심을 받거나 제지를 당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전 아니에요.” 임상언은 계속 설득을 이어갔다. “임남이 그 안에 있다는 걸 모두 알고 있잖아요. 제가 아들을 만나고 구하려고 하는 건 당연한 일이에요. 그리고 아들을 위해서 제 목숨을 바치는 것도 이해될 수 있는 일이죠. 그러니 제가 가는 게 가장 올바른 선택이에요.” 긴 침묵 끝에, 소은이 입을 열었다. “임상언 씨 말이 맞아요. 전 동의합니다.” 소은은 말을 마치고 서진에게 시선을 돌렸다. 서진은 잠시 생각하더니 천천히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저도 동의합니다.” 원청현은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두드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나도 동의하지.” 잠시 침묵하던 진정기 역시 마침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동의합니다.” 마지막으로 원철수는 주변을 둘러보며 한숨을 내쉬고 손을 펼쳤다. “모두 동의했는데 내가 뭐라고 반대하겠어. 나도 찬성이야.” 사실 원철수의 의견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임상언에게 지지를 표현하는 의미였다. 임상언은 눈시울이 붉어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모두들 고마워요.” “이게 뭔 감사할 일이라고. 어쨌든 안에 들어가면 절대 신중해야 해. 무슨 일이 있어도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네 입으로 한 말 반드시 지켜!” 원철수는 그의 결심을 칭찬하면서도 걱정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원철수는 속으로 임상언의 결단에 감탄했다.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그는 분명 최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