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효정은 자부심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소은은 무심하게 그녀를 바라보며 차갑게 물었다. “말 다 했어?” 주효정은 의아한 표정으로 소은을 쳐다보았다. “다 했으면 비켜줄래?” 소은은 손을 들어 주효정을 가볍게 옆으로 밀어내고는 그대로 지나쳐갔다. 주효정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지만,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소은과 싸워도 이길 자신이 없었고, 설령 지금 총을 손에 쥔다 해도 차마 그녀에게 쏠 수는 없었다. 정말로 분통이 터지는 일이었다. 소은은 원래 실험체로서 실험대 위에 묶여 있어야 할 사람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지금은 이곳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오히려 자신을 화나게 만들고 있었다. 주효정은 심호흡을 하며 스스로를 진정시켰다. 화를 낸다고 해서 해결될 일은 아니었다. 어차피 소은은 결국 죽을 운명이니, 지금 굳이 그녀와 다투는 것은 시간 낭비일 뿐이었다. 차라리 실험에 집중하는 것이 현명했다. 주효정은 여러 번의 연구 끝에 조제법에 분명 효과가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하지만 아직 오류가 남아 있었고, 비율을 조금 더 조정할 필요가 있었다. 적어도 현재 컴퓨터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이 조제법이 생물의 유전자 구조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이는 매우 중요한 발견이었다. 이러한 가능성을 생각할 때마다 주효정은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소은은 조용한 실험실 하나를 선택했다. 그녀가 이곳을 선택한 이유는 단 하나의 출입구가 있는 구조 덕분이었다. 실험실에 들어서면 출입구가 바로 눈에 들어왔고, 비록 실험실 안에 감시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었지만, 사각지대도 존재했다. 각 실험실을 둘러본 후, 소은은 이곳이 최적이라고 판단했다. 사실 실험 자체는 큰 문제가 없었다. 그녀가 제시한 개념은 완전히 새로운 것이었고, 여왕조차도 그 내용을 완벽히 이해하지 못했다. 설령 다른 전문가들이 와서 본다고 해도, 그녀의 연구를 쉽게 이해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따라서 실험은 전적으로 소은 자신의 방식대로
“서진은 요즘 정말 바쁘지.” 임상언이 갑자기 아무 맥락 없이 말을 꺼냈다. 원철수는 그의 말을 받아 물으며 대답했다. “그러게 말이야. 며칠 동안 얼굴 한 번 보기 힘들 정도로 정신없이 바쁘게 뛰어다니던데, 도대체 뭐 하고 다니는 걸까...”원철수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문득 무언가를 깨달은 듯 임상언을 바라보았다. “혹시 서진을 보고 있었던 거야?” 임상언은 고개를 들어 원철수를 바라보며 물었다. “지금 서진은 대체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거지?” 임상언의 얼굴에는 혼란스러움이 가득했고, 의심과 망설임이 섞인 눈빛으로 원철수를 바라보았다. 원철수는 그 의문에 대해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당연히 우리 구출 작전을 준비하고 있겠지. 그 외에 뭘 할 수 있겠어? 그래도 회사 일을 완전히 놓을 순 없으니까 가끔은 신경 쓸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면서도 임상언의 표정에서 이상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설마 서진을 의심하는 건 아니겠지?” “왜? 서진을 의심하면 안 되나?”임상언은 차분하게 반문했다. 원철수는 당황한 듯 본능적으로 임상언의 이마에 손을 대려 했지만, 임상언은 몸을 살짝 피하며 그 손길을 피해갔다. “너 지금 열이라도 나는 거 아니야?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는 거야? 서진이가 우리를 위해 얼마나 많이 뛰어다녔는지 알잖아. 네가 임남이 걱정돼서 초조한 건 이해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괜한 생각하지 말라고.” 원철수는 살짝 나무라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임상언은 깊은 눈빛으로 원철수를 바라보다가, 다시금 뜰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괜한 생각하는 게 아니야.”“괜한 생각이 아니면 뭐겠어? 네가 하는 말을 잘 들어봐. 지금 말이 되는 소리야?”원철수는 답답한 듯 말했다. “지금 상황이 우리가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건 너도 잘 알잖아. 상대의 세력이 워낙 막강하니까...” 원철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임상언이 갑자기 물었다. “왕자하고 통화한 적 있어
“둘째 할아버지!” 원철수는 바람처럼 달려가 두 손으로 원청현의 팔을 꼭 붙잡았다. “둘째 할아버지, 진짜 둘째 할아버지 맞으시죠?”“그럼 내가 가짜겠냐?”원청현은 코웃음을 치며 원철수를 흘겨보았다. 원철수는 활짝 웃으며, 기쁨을 숨기지 못한 채 말했다.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갑자기 옆에서 바람처럼 스치는 무언가가 있었다. 곧장 방금 도착한 차로 향하는 임상언이었다. 그는 차창에 얼굴을 바짝 대고 안을 들여다보더니, 심지어 창문을 두드리며 외쳤다. “임남아, 임남아!” 서진과 원철수, 그리고 원청현은 그의 행동에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마침내 서진이 다가가 임상언의 어깨에 조심스럽게 손을 얹으며 차분히 말했다. “임남이는 차 안에 없어.”“거짓말하지 마!”임상언은 서진의 손을 거칠게 뿌리치며 그 말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어르신은 돌아왔는데 왜 내 아들은 돌아오지 못하는 거야!” 임상언은 손가락으로 원청현을 가리키며 분노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서진은 그를 깊이 바라보며 차분하게 말했다. “너도 알잖아. 상황이 다르다는 걸.” “뭐가 다르다는 거야! 내 아들은 아직 어린아이야!” 임상언은 울음이 터질 듯한 목소리로 외쳤다. 그의 감정은 이미 극도로 불안정했고, 원청현이 무사히 돌아왔다는 사실은 그의 마음을 더더욱 뒤흔들었다. 자신의 아들이 여전히 그곳에 잡혀 있다는 생각에 그의 마음은 마치 짓눌린 듯 아파왔다. 서진은 조용히 설명했다. “네 아들은 실험체로 여겨지고 있어. 소은과 마찬가지로 말이야. 이 사실을 네가 모를 리 없잖아.” 사실 임상언도 이 모든 것을 이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진실을 받아들이기엔 너무 고통스러웠다. 그는 차라리 자신이 실험체가 되어 아들을 대신할 수 있기를 바랄 정도였다. 임상언은 여전히 차창에 손을 얹고, 차를 따라 무릎을 꿇었다. 그의 그런 모습을 본 원청현이 다가갔고, 원철수도 그 뒤를 따랐다. “난 그곳에서 네 아들을 봤었지.”
임상언은 잠시 멍하니 서 있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아요, 맞아요. 어르신 말씀대로예요. 제 아들이 저보다 훨씬 강해요, 정말 강해요!” “그런데 네 아들이 어느 면에서 너보다 강한지 아니?”원청현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임상언은 물론 서진과 원철수까지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셋은 서로 눈을 마주쳤고, 모두 같은 의문을 품은 듯 상대방의 얼굴을 살폈다. 임상언은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그 애는 모든 면에서 저보다 강해요.”“내가 말하는 건 마음가짐이야.”원청현은 고개를 저으며 임상언의 말을 정정하고, 진지한 어조로 설명했다. “네 아들의 마음가짐이 너보다 훨씬 더 강해!”원청현은 한숨을 내쉬며 이어 말했다. “내가 살아오면서 수많은 사람을 만났었지만, 이렇게 어린아이가 이 정도로 강한 마음을 가진 건 정말 드문 일이야. 그 환경은 어른도 버티기 힘들 텐데, 어린아이인 임남이는 정말 침착하고 당황하지 않았어. 얌전하면서도 성숙한 모습이 정말 대단한 아이더군.” 원청현의 진심 어린 칭찬에 임상언은 한층 더 진지하게 귀를 기울였고, 이내 아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맞아요. 임남이는 어릴 때부터 성숙하고 얌전했어요. 주변 사람들도 다들 그 애가 너무 어른스럽다고 말했죠.”임상언은 아들의 이야기를 하며 미소를 짓다가, 그 미소는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가끔은 그 아이가 그렇게 성숙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좀 더 단순하고 평범한 아이로 지냈으면 좋았을 텐데... 결국 다 제 잘못이에요. 제가 많이 곁에 있어주지 못했어요.”임상언의 목소리엔 깊은 후회가 묻어났다. 그에게 더 많은 시간이 남아 있다면, 아들과의 관계를 더 나아지게 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만, 그런 쓸모없는 후회는 하지 마라.”원청현은 단호하게 말했다. “이미 지나간 일을 후회해봤자 소용없다. 지금 네 아들은 앞으로 나아가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데, 넌 왜 이렇게 쉽게 무너지는 거냐?”
서진은 어이가 없다는 듯 웃으며 바로 아주머니에게 음식을 준비하라고 지시했다. 모두 함께 앉아 식사를 하기로 했다. 원청현은 정말로 배가 많이 고팠는지, 음식을 마치 폭풍처럼 허겁지겁 먹어 치웠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밥 세 그릇을 순식간에 비워버렸다. 모두는 그 장면을 입을 벌린 채 지켜봤다. “대사관에서는 밥을 안 줬나요?” 원철수가 의아한 듯 물었다. “너희들이 뭘 알겠냐!”원청현은 젓가락을 휘두르며 음식을 집어먹었다. “외국 음식은 내 입맛에 맞지 않아. 우리나라 집밥만큼 맛있는 게 어디 있겠냐? 빵이랑 햄 같은 건 차갑고 딱딱해서 맛도 없고, 먹기 싫어!” 원청현은 고개를 세차게 흔들며 그 생각만 해도 질린다는 표정을 지었다. 옆에서 원철수가 국을 떠서 원청현에게 건네며 말했다. “둘째 할아버지, 천천히 드세요. 아무도 안 뺏어 가요.”그때까지 침묵하고 있던 임상언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어르신, 어떻게 해서 놈들이 어르신을 보내주었나요?” 원청현은 젓가락질을 멈추고 잠시 생각하더니 임상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몇 초간 침묵한 뒤 자세를 바로 잡고 입가를 닦으며 말했다. “그건 그 계집애 덕분이지. 그 애가 방법을 찾아내서 날 구해냈어.” ‘계집애'라는 호칭에 모두 잠시 당황했지만, 이내 그가 소은을 지칭하고 있다는 걸 알아챘다. “그런데 어르신을 이렇게 쉽게 풀어준 게 좀 이상하지 않나요?”모두가 의아해할 만한 상황이었다. 그곳은 마치 악마의 소굴과 같아 한 번 들어가면 나오기 힘든 곳으로 알려져 있었으니까. 임남과 소은도 여전히 그곳에 갇혀 있었다. “그 사람들에게 난 중요한 존재가 아니니까.”원청현은 의자에 기대며 느긋하게 말했다. “지금 가장 중요한 건 늙은 내가 아니라, 실험이지. 실험과 관련된 모든 게 최우선이니까.” 서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 말에 동의했다. 그 실험이 계속되는 한 소은은 돌아오지 못할 것이며, 여왕이 마음을 바꾸지 않는 한 그 누구도 소은을 대신할 수
“만약 여왕이 이 실험이 결국 실패할 것이라는 걸 직접 목격하게 된다면, 그 결과를 보고 생각이 바뀔지도 몰라.” 서진은 계속해서 설명했다. 원철수는 고개를 저으며 반박했다. “그렇지만 여왕은 의심이 많은 성격이라 직접 실패를 봐야 믿을걸? 우리가 그 앞에서 실험을 다시 진행해야 한다는 뜻이야? 여왕은 그런 성격이잖아. 눈으로 보지 않으면 절대 믿지 않아.” 옆에서 듣고 있던 원청현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여왕과 몇 차례 대화를 나눠본 경험이 있었다. 여왕은 고집이 굳은 성격을 지니고 있었기에 한순간 흔들릴 때도 있지만, 결국엔 자신의 고집을 꺾지 않는 타입이었다. 그만큼 여왕은 설득하기가 매우 어려운 사람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여왕 앞에서 한 번 실험을 해야 하는 거야.”서진은 단호하게 말했다. “여왕에게 실험이 실패하는 과정을 직접 보여줘야 해.”그때 임상언이 서진의 의도를 알아차리고 물었다. “혹시 최면을 말하는 거야?” 마치 주효정이 했던 것처럼, 여왕에게 최면을 걸어 그녀가 가짜 실험을 목격하게 만들고, 실패한 결과를 보게 하는 것이다. 그러면 여왕은 그것을 진짜라고 믿고 실험이 실패했다고 생각할 것이다. “아니, 그건 절대 안 돼!”원철수는 즉시 고개를 저으며 반대했다. “임상언을 생각해봐. 그때도 최면은 실패했잖아. 그리고 로사 왕자도 마찬가지였고. 이건 애초에 불가능한 실험이라는 증거야. 그런데도 여왕에게 최면을 하겠다고? 더군다나, 우리가 여왕에게 접근할 기회도 없는데, 어떻게 최면을 하겠다는 거야? 완전 불가능해.” 원철수는 이 방법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원청현은 다르게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오히려 시도해볼 만하다고 생각해.” “둘째 할아버지?” 원철수는 놀라서 원청현을 바라보았다. 원청현은 앞으로 몸을 기울이며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최면이라는 건 의학적으로 충분히 성공 사례가 있어. 과학적으로도 가능한 기술이야. 물론, 최면으로 사람의 생각을 완
“전 그저 한 가지 가능성을 생각해본 것뿐이에요.” 서진은 원청현을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가 제시한 아이디어는 대담한 가정일 뿐이었다. “제 생각에 여왕이 실험에 그토록 집착하는 이유는 아직 그 실험을 완성하지 못했기 때문이에요. 만약 여왕이 그 실험이 ‘완성되었다’고 믿게 된다면, 그녀의 집착도 풀리지 않을까요?” “맞는 말이다.” 원청현은 깊이 생각한 후 고개를 끄덕이며 진지하게 답했다. “심리학적으로도 그 말은 일리가 있어.” 원철수는 의자에 몸을 기댄 채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문제는 그거지. 여왕에게 최면을 걸 사람이 필요하다는 건데, 우리 같은 사람들이 과연 그럴 기회를 얻을 수 있을까? 여왕이 우리를 얼마나 경계하는지 모르나? 우린 그저 평범한 사람들이잖아! 우리가 쉽게 여왕을 만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원철수는 반쯤 농담처럼 말하며 팔을 벌리고 하품을 크게 했다. “내가 하마.” 갑자기 원청현이 나섰다. 원철수는 그의 말에 깜짝 놀라 의자에서 넘어질 뻔했다. “둘째 할아버지? 지금 뭐라고 하신 거예요?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시겠다고요? 거기는 호랑이 굴이에요! 겨우 돌아오셨는데 다시 그런 위험한 곳에 가게 둘 순 없어요!” 원철수는 고개를 저으며 원청현을 필사적으로 말렸다. “내가 안 가면, 네가 갈래?” 원청현은 옆눈으로 원철수를 흘겨보며 단호하게 물었다. 원철수는 할 말을 잃었다. “여왕에게 접근할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고, 최면을 걸 수 있는 사람도 나밖에 없지. 결국 나 아니면 누가 하겠어?” 원청현의 마지막 말은 자랑이 아닌, 그저 사실을 말한 것이었다. 서진을 포함한 나머지 세 사람도 그의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맞는 말이었다. 설령 여왕에게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낸다고 해도, 최면을 걸 능력이 있는 사람은 없었다. 임상언조차 그저 최면을 당했던 사람일 뿐, 다른 사람에게 최면을 거는 것은 불가능했다. “성공할 자신이 있나요?” 서진
“네가 나를 도와준다고?”원청현은 손을 들어 원철수의 머리를 가볍게 치며 말했다. “내가 네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냐? 네가 안 따라오는 것만으로도 내 발목 잡힐 일이 없을 거다.” “제가 왜 발목을 잡아요, 저는 그저...” 원철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원청현이 다시 끊었다. “내가 최면을 거는데, 네가 거기서 뭐 할 건데? 동요라도 불러줄 거야? 네가 거기 있으면 여왕이 제대로 잠이라도 자겠냐?” 원철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입을 다물었다. “이건 최면이야. 네 도움이 필요 없는 일이야!” 원청현은 다시 한번 원철수를 노려보며 단호하게 말했다. 그런 뒤 서진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틀만 시간을 줘. 정원에 가서 처리해야 할 일이 좀 있어.” 서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필요한 인력이나 도움이 있으면 언제든지 말씀하세요.”그렇게 일이 결정되었지만, 그들에게 주어진 이틀의 시간은 고통스러운 기다림이었다. 지금의 상황에서 하루하루가 길게만 느껴졌다. 한편, 실험실에서는 주효정과 소은이 마치 경쟁하듯 각자의 실험에 몰두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서로를 의식하며 치열하게 연구에 집중했다. 하지만 여왕은 실험실에 한 번도 발을 들이지 않았다. 여왕은 마치 실험 자체를 잊은 듯, 매일 발코니에서 햇볕을 쬐고 바람을 맞으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오늘도 날씨가 유난히 좋았다. 여왕은 휠체어에 앉아 발코니의 통풍이 잘 되는 곳으로 나와 얼굴을 하늘로 향해 살짝 들고 눈을 감았다. 멀리서 새소리가 들려왔고, 그 소리는 맑고 청아했다. 릭은 어느새 여왕의 뒤에 조용히 다가와 얇은 담요를 들고 그녀의 무릎 위에 살며시 덮어주었다. “여왕 폐하, 바람이 조금 불고 있습니다.” 릭은 불필요한 말을 덧붙이지 않고 그저 행동으로만 자신의 걱정을 표현했다. 여왕은 여전히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릭이 담요를 좀 더 당기려 몸을 기울이자, 여왕이 입을 열었다. “릭, 내 햇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