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바탕 욕을 얻어먹고 상대방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지만, 아직 떠나지 않았다.“빨리 안 꺼져?!”“임상언 씨, 당신도 다쳤어요. 병원에 모셔다드릴까요?”그 사람은 임상언에게 잘 보이려고 했는지 조심스럽게 물었다.“허튼짓 말고 어서 보스를 찾으라니까! 보스를 못 찾으면 우리 모두 죽어! 그때 바로 장례식장에 날 보내면 되겠네!”임상언은 냉소하며 말했다.“아, 그땐 네가 그럴 필요도 없지. 너도 나랑 같이 저승으로 갔을 테니까!”그 사람은 임상언의 말에 놀랐는지 바쁘게 “네!”라고 대답했다.말을 마치고도 더 말할 겨를도 없이 재빨리 사무실을 뛰쳐나갔다.이번에는 인기척이 완전히 사라졌다.임상언은 안전을 위해서인지 다시 밀실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다.한소은은 밖에 나가려고 서두르지 않았다. 그녀는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5분이 더 지나자, 책장 문이 다시 한번 소리를 내며 바깥에서 서서히 열리더니 임상언이 문 앞에 나타나 그들에게 말했다.“이곳에 오래 머물러서는 안 돼요.”한소은은 고개를 끄덕이며 함께 가려고 했다.“그럼, 저 자식은 어떡하죠?”그러다 턱으로 유한성의 방향을 가리켰다.한 번 뒤를 돌아본 한소은은 서한을 쳐다보며 물었다.“이 밀실을 아는 사람이 또 있나요?”서한은 고개를 저었다.“없을 거예요! 나도 사실 우연한 기회에 이런 곳이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즉 유한성이 그가 여기를 알고 있다는 것을 몰랐기 때문에, 경계하지 않았고 가장 허약할 때 서한에게 잡혔다. 모든 것은 우연의 일치였다.“그럼 그를 여기에 숨겨두죠.”한소은은 이어서 서한에게 손을 내밀었다.“에테르 줘요.”서한은 넋이 나가 한소은을 바라보며 물었다.“내가 그걸 가지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어요?”“저 밖에 쓰러진 경호원들은 당신의 걸작이 아닌가? 소은 씨가 모를 거로 생각해?”임상상은 씩 웃었다.서한은 문득 깨닫고 그녀에게 물건을 건넸다.한소은은 아래쪽을 움켜쥐고 손수건에 부어 유한성의 입과 코를 힘껏 감쌌다.“자, 저
한소은이 먼저 안에서 걸어 나왔고 서한이 따라서 나왔다.“여기 떠나세요.”돌아서자 한소은이 서한을 보며 말했다.“???”“어떤 목적이든 당신이 여기에 머무르는 것은 사실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위험만 증가시킵니다.”한소은이 말했다.“그러니 떠나세요.”“전 떠날 수 없습니다!”서한이 말했다.“여기는 위험합니다!”“바로 여기가 위험하기 때문에 당신이 더욱 떠나야 합니다.”한 손으로 서한의 어깨를 누르며 한소은은 담담하게 말했다.“임상언은 여기 있어야 하고 저도 여기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해야 할 일이 있어서 어쩔 수 없으니깐요. 근데 당신은 아닙니다! 당신은 여기를 떠나야 됩니다. 밖에는 당신을 더 필요합니다!”잠시 멈추자, 한소은은 이어서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아직 누군가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서한은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당연히 한소은이 말한 사람이 누구인지 또 누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로 자신이 이곳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고 있기 때문에, 더욱 떠날 수 없었다.“사모님, 저는 여기에 남아서 사모님을 보호할 것입니다.”서한이 말했다.“제가 사모님의 계획을 망쳤습니다. 지금 만약 다른 사람에게 발견되면 당신들은 매우 위험할 것입니다!”서한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하자 한소은이 웃으며 대답했다.“서한 씨, 만약 정말 손을 쓴다면 제가 당신의 보호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까?”서한은 망설였다. 한소은의 솜씨는 확실히 자기보다 위였다. 하지만……“하지만 사모님, 사모님은 지금 혼자가 아닙니다!”서한은 잠시 멈추고 아래로 보았다. 그러자 한소은은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그의 시선을 따라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자신의 불룩한 뱃속의 아기도 무엇을 알아차린 듯 가볍게 움직였다.한소은은 침묵했다.확실히 예전 같으면 스스로 보호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임신 중이어서 거동이 불편하고, 사람이 많아지면 예전에 임상언이 말한 것과 같은 열병기를 막을 수 없을 것이다.“사모
한소은은 서한의 눈 속에 비친 상처를 깨닫고, 가슴이 떨리기 시작했다.한소은은 더 이상 설득의 시도를 하지 않았다. 손을 들어 잠시 멈춘 후 가볍게 서한의 어깨를 두드리며 한숨을 쉬었다.“그래요! 하지만 반드시 안전에 주의하시고 드러나지 않도록 주의하세요.”서한은 고개를 끄덕이고 막 가려고 했을 때 한소은이 다시 그를 불렀다.“서한 씨!”서한이 몸을 돌리자 한소은은 앞으로 한걸음 나아가 그를 보고 말했다.“당신 몸속의 바이러스는 분명 해결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니, 절대로 스스로 포기하지 마세요! 그리고 당신은 누군가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꼭 기억하세요!”서한은 잠시 어리둥절해졌다. 아마도 자신의 몸속의 바이러스가 아직 해결 방법이 있다는 것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소은의 눈 속의 진심을 보고, 그는 한소은이 호의로 자신을 위로하고 그에게 희망을 주려고 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그러자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알고 있어요.”몇 명이 사무실을 떠났을 때, 이 일은 빠르게 퍼졌다.사장의 존재를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으며 아래에서 일하는 대다수의 직원들은 이를 모르고 있었다. 특히 연구실의 프로젝트는 백신 기지 전체에서 완전히 공개되지 않았다.백신뿐만 아니라 연구실 내에서도 여러 프로젝트 그룹으로 나뉘어 각기 다른 사무 공간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리고 연구실의 핵심 인력 중 ‘사장’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임상언, 주효영, 한소은 외에는 ‘사장’이 직접 데리고 있는 경호원들과 그들의 조직원만이 사장의 실제 정체를 알고 있었다.이 일은 소규모로 내부적으로 퍼졌고 사장의 행방을 빠르게 찾아내는 것이 시급했지만, 동시에 백신 기지의 이상한 점을 눈치채게 해서는 안 되는 상황이었다.이에 따라 연구실 소회의실에서 긴급회의가 열렸다. 임상언은 주석 자리에 앉아 명령을 내리고 있었고, 주효영은 불만을 터뜨리며 임상언의 반대편에 앉아 있었다.한소은은 아무렇게나 의자를 끌어당겨 앉았다. 그러나 한소은은 주효영 맞
임상언의 안색이 어두워졌다.“너 그게 무슨 뜻이야.”“별 뜻 아니야.”주효영은 여유를 부리고 있었고 하나도 조급해하지 않았다. 그러고는 임상언을 노려보며 말했다.“사장님이 실종된 것에 대해 네가 가장 잘 알고 있지 않아? 아무래도 그 당시 너만 있었잖아. 아니야?”마지막으로 이 말을 물었을 때 주효영은 자신의 맞은편에 앉아 있는 그 남자를 돌아보았다.임상언은 책상에 손을 얹고 말했다.“그게 무슨 뜻이야. 설마 내가 사장님을 납치했다는 거야? 내가 왜 그렇게 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면 나한테 무슨 좋은 점이 있는데?”“그건 너한테 물어봐야지!”어깨를 으쓱거리며 주효영은 의미심장하게 웃었다.“잘못하면 네가 사장님을 납치해서 네 아들의 행방을 물어봤을 수도 있지. 아무래도 네가 사장님에게 불만이 있는 것도 하루 이틀이 아니잖아.”“주효영, 너 함부로 말하지 마! 사장님께서 지금 실종되었는데 우리 모두 재수 없을 거야! 누가 책임을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아?”“게다가, 그 당시 사장님을 구하기 위해서 내가 부상을 입은 거 사람들이 다 봤어. 네가 나를 모함하고 싶으면 증거를 내놓아?!”임상언은 당당하게 말했다. 그의 다리에는 지금도 붕대가 매어져 있었고 의자를 뒤로 밀자 자신의 다친 다리가 드러났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자신의 다른 편의 남자를 바라보았다.“릭, 당신도 그때 봤죠, 그렇죠?!”줄곧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얼굴을 굳힌 남자가 갑자기 이름을 불리자 매우 게으르게 임상언을 한 번 보았다.비록 한 눈만 보았지만 매서운 카리스마가 느껴졌다.‘이 남자는 보통 사람이 아니구나!’한소은은 펜을 잡고 묵묵히 생각했다.“우리가 도착했을 때, 당신 혼자만 보였습니다.”이 한 마디는 어느 쪽도 편들지 않고 완전히 객관적으로 사실을 진술한 것처럼 들리지만 또 임상언에게 화살을 겨누는 것 같았다.주효영은 잠시 멍해졌지만 곧 입가에 웃음을 띠기 시작했다. 그녀는 마치 재밌는 연극을 보는 태도였다.하지만 임상언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화를 내
주효영의 질의에 한소은은 화나지도 긴장하지도 않았다. 그냥 펜으로 비스듬히 위쪽을 가리키며 말했다.“오, 그런데 CCTV가 있는데.”“…….”주효영은 분명히 여전히 믿지 않았다.“지금 아무도 CCTV를 조사한 적이 없으니 너는 당연히 하고 싶은 대로 말하겠지! 네가 말한 것이 정말 인지 아닌지 누가 알겠어……”“제가 조사해 봤습니다.”한소은은 믿지 못하겠으면 스스로 조사해도 된다고 말을 잇고 싶었다. 하지만 아직 입을 열지도 않았는데 옆에 있는 그 침묵하던 남자가 또 말을 했다.한소은은 어리둥절해져서 입가에 닿은 말을 다시 삼켰다.“뭐?!”그 남자가 한소은을 도와 변명할 줄을 몰랐는지 주효영은 멍하니 무의식적으로 물었다. 그러자 남자는 담담하게 말했다.“저는 이미 모든 CCTV를 조사해 봤습니다. 그 사람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습니다.”이 “그 사람”은 자연히 한소은을 가리켰다.주효영은 입술을 움직이고 무슨 말을 하고 싶었지만 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한소은을 매섭게 쳐다보았고 자못 납득이 가지 않는 듯 뒤로 기댔다.“됐어. 이제 여기서 이런 말을 해봤자 소용이 없어. 가장 급한 것은 가능한 한 빨리 사장님을 찾는 거야.”“릭, 당신은 사장님과 가장 오래 함께 있었으니 가장 많이 알고 있겠죠. 그럼 어떤 사람이 사장님을 납치할 수 있는 능력과 방법이 있는지 생각해 봤어요?”말투를 늦추자 임상언은 계속해서 화제를 이어갔다.릭은 갈색 눈동자로 임상언을 무겁게 바라보며 담담하게 말했다. “어떤 사람인지 저는 아직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여쭤보고 싶은 건 그때의 상황에 대해 당신이 가장 잘 알고 있었을 텐데 당신은 뭐 하고 있었습니까?”말머리를 돌리자 갑자기 의심스러운 화살을 다시 임상언에게 던졌다.임상언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그래서 당신도 저를 의심하고 있는 겁니까?”릭은 고개를 끄덕였다.“맞아요! 그때 확실히 저만 있었어요. 사장님께서 할 말이 있다고 하셔서 저는 바로 왔습니다. 그런데 누군가가 갑자기
“임 선생님, 고생하셨습니다!”릭이 손을 들어 임상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 그러고는 돌아서서 임상언의 다리 상처를 의미심장하게 힐끗 보고는 그제야 앉았다.임상언은 냉기를 들이마셨다. 보아하니 정말 아팠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고는 다리를 내리고 그 찢어진 붕대를 다시 묶으며 말했다.“릭, 당신 이게 무슨 뜻입니까? 설마, 제 상처가 가짜라고 생각합니까?”릭의 목소리는 여전히 차가웠다. 그는 입꼬리를 치켜세우고 얼굴에는 차가운 기운이 돌았다.“그런 뜻은 아닙니다. 단지 상대방이 어떤 무기를 사용했는지 확인하고 싶었을 뿐입니다.”아주 어설픈 이유라는 것을 알아들을 수 있었지만 이 시점에서 아무도 따지지 않았다. 임상언은 콧바람을 내쉬며 말했다.“정말 무슨 무기를 사용했는지를 알고 싶다면 저에게 물어보면 되죠. 그리고 화제를 돌리지 마세요. 지금 당장 급한 것은 빨리 사장님을 찾는 것입니다!”잠시 멈추었다가 임상언은 계속 말했다.“위쪽에서 사장님이 실종된 것을 알고 있습니까?”이전에는 모두가 대충 넘어간 모습이었지만 “위쪽”이라는 말이 나오자 주효영의 표정은 어두워졌고 릭조차도 얼굴색이 변했다.오직 한소은만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도대체 어느 ‘위쪽’인지 알 수 없었고 상황은 대충 짐작이 가고 배후 주모자도 있다는 것을 알지만 아무래도 직접 접촉한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아직…… 모를 거야, 아마도.”주효영은 머뭇거리며 말했지만, 눈빛은 릭을 바라보았고 그다지 확실하지 않았다.그러자 릭이 말했다.“시간이 촉박하고 사건이 갑작스러워 아직 상부에 보고드리지 못하였습니다.”이것은 그들이 아직 감히 보고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하지만 보고하지 않아도 이 일은 오래 속일 수 없을 것이다.이 ‘사장’과 위쪽은 분명 그들만의 독특한 연락처를 가지고 있을 것이고 며칠마다 정기적으로 연락할 것이며, 더욱이 그는 실험 진행 상황을 보고해야 했다. 만약 위쪽에서 회신을 받지 못했다면 반드시 사고가 났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위쪽’
한소은은 다소 조롱하며 웃기 시작했다.“그러니까 전혀 어떤 증거도 필요 없이 주효영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겠다는 거지! 지금 사장님은 잠시 실종되었을 뿐인데, 너는 여기서 이래라저래라 하며 위세를 떨치고 있다니! 왜, 사장님이 안 계시면 네 마음대로 해도 된다 이거야? 이렇게 말하면, 너의 혐의야말로 가장 크네!”한소은은 가볍게 두세 마디로 다시 화살을 돌려 주효영을 향했다.“난…….”한소은의 말에 잠깐 멍해지고 주효영은 바로 반박했다.“나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어.”주효영은 분노에 가득 차 가슴을 안고 말을 삼켰다. 옆에 있는 릭의 차가운 눈길은 주효영의 등을 얼러붙게 만들었다.주효영은 릭과 이번에 몇 번 마주친 적이 있었다. 비록 빈도는 많지 않았지만, 릭은 자주 사장의 곁에서 발견되었고, 그의 말수는 적으면서도 손 한 번 휘두를 때는 어찌나 무자비하고 잔인한지 주효영은 알고 있었다.한 번은 주효영이 무심코 그가 한 사람을 처벌하는 것을 보았다. 그 장면은 설령 각종 실험과 피비린내 나는 것에 익숙하더라도 여전히 메스꺼움을 느끼게 했다.그 이후로 주효영은 릭에 대해 왠지 모르게 두려움을 느꼈다. 그것은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걷잡을 수 없는 두려움이었다.“모든 곳을 다 찾아보셨습니까?”릭은 다시 임상언에게 물었다. 임상언은 확실하여 고개를 끄덕였다.“다 찾아보았습니다. 카펫까지 다 뒤졌습니다. 이곳의 기관 밀실은 우리 모두 알고 있습니다. 모든 곳을 다 찾았습니다.”릭은 침묵을 지키고 말을 하지 않았다.이때 줄곧 이 일에 전혀 관여하지 않던 한소은이 말했다.“전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모든 사람들이 한소은을 쳐다보았고, 주효영의 첫 반응은 그녀를 비웃으려 했지만 말이 입가에 닿자 다시 삼켰다. 릭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그녀에게 말을 하라고 표시했다.“당신들이 말씀하신 것처럼 저는 사장님에게 충성도 감정도 없습니다. 그가 실종됐든 안 됐든, 저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한소은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상관없는 모습을 보였다.“하지
“…….”릭은 그제야 한소은이 말한 뜻을 알아듣고 고개를 저었다.“아니요, 사장님을 찾을 때까지 저희 네 사람은 의견을 말하고 질의할 권리가 있습니다. 누구든지 어떤 견해를 가지고 있으면, 말씀하실 수 있습니다. 물론……”잠시 멈추자, 그의 눈빛은 점차 차갑고 음험하게 변했다.“만약 누구라도 배신자로 발견되면 절대 가만두지 않을 것입니다!”회의가 끝난 후, 주효영은 한소은의 앞을 가로막고 어두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너 아니야?”“네가 보기에는?”주효영은 태연자약하게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한소은은 인정하지도 부인하지도 않았다.“너는 정말 능력이 대단하구나, 사장님을 납치할 줄은 몰랐네. 그런데, 넌 흠잡을 데 없이 완전무결하게 했다고 생각하지 마. 넌 사장님 뒤에 있는 것이야말로 가장 무서운 것이라는 것을 전혀 몰라!”주효영은 말하면서 눈빛에 어두움이 스쳐 지나갔다. 그러자 한소은은 가볍게 웃기 시작했다.“왜, 너도 무서운 게 있어? 난 너 같은 사이코패스는 하늘도 땅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는데!”“너…….”비웃음을 당하자 주효영은 기가 막혔다.“그리고! 네가 말한 것처럼 흠잡을 데 없이 완전무결하게 했다고 생각하지 마. 주효영, 그 결과가 어떤지 너도 잘 알 거야.”주효영을 담담하게 힐끗 보고 한소은은 그녀를 비켜서 앞으로 걸어갔다. 그러자 주효영은 갑자기 몸을 돌려 목소리를 높였다.“너 더 이상 시치미 떼지 마! 네가 아니라면, 왜 아니라고 말할 수 없는데? 분명히 너잖아!”“나는 네가 무술을 할 줄 알고 솜씨가 좋다는 것을 알아. 그러니 분명히 네가 사장님께서 쉬시는 틈을 타서…….”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갑자기 멱살이 잡히자, 주효영의 눈이 번쩍 떠지고 머리가 약간 멍해졌다.그녀는 한소은의 솜씨가 좋은 것을 알고 일부러 거리를 좀 벌려서 말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분명히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었고 분명히 한소은이 거기에 서 있었는데, 그녀가 손을 쓴 것을 보지도 못했는데 자신은 이미 잡
소은은 고개를 들어 눈물을 참으며 말했다. “한 가지 이상한 게 있어요.”“무슨 일이에요?” 임남을 달래던 임상언이 무심히 되물었다.“로사 왕자는 감금된 것이 아니라 그날 Y국으로 송환되었다고 들었는데, 그렇다면 왜 그동안 로사 왕자와 연락이 닿지 않았던 걸까요?” 소은의 말에 임상언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두 가지 가능성이 있겠죠. 신호가 나쁘거나 핸드폰을 확인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 로사 왕자가 저희 연락을 거부하고 있을 수도...”두 사람은 잠시 눈을 마주쳤다. 말은 없었지만, 둘 다 이미 답을 얻은 듯했다. 로사 왕자가 그토록 연락을 피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도 나름의 계획을 세우고 있는 건가?...3일 후. 소은은 마지막 침을 놓고 손을 거두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여왕을 쳐다보며 말했다. “오늘 시술로 폐하의 다리에 감각이 돌아오실 겁니다. 하지만 일어서는 건 천천히 시도하셔야 합니다. 너무 서두르시면 안 돼요.”소은은 말을 마치고 갑자기 미소를 지었다.“무엇 때문에 웃는 거지?” 여왕은 여전히 자신의 다리를 어루만지며 물었다. 이미 이틀 전부터 약간의 감각이 돌아왔음을 느낀 터라, 소은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소은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제가 쓸데없는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요. 사실 R10 실험을 고집하신다면 결국 폐하께서는 이 몸을 떠나게 되실 텐데, 제가 이 몸에 애쓰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여왕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계속한 거지?”“어쩌면, 폐하께서 마음을 바꾸실 지도 모르니까요.” 소은은 부드럽게 대답했다. “어쩌면 자신의 몸이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거든요.”“우리 모두 이 세상에 올 때 두 손은 비어있지만, 이 몸만은 오로지 우리 자신의 것이죠. 몸마저 버리신다면, 그 영혼은 여전히 진짜 자신일 수 있을까요?”“그렇구나.” 여왕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
소은은 조용히 몸을 일으키며 여왕을 쳐다보았다. “물론이죠.” 소은은 담담하게 답했다. 그 대답에는 원망이나 비난의 기색은 전혀 없었다.“그렇다면... 조금 아쉽네.” 여왕은 생각에 잠긴 듯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기 마련입니다. 세상 모든 일은 균형을 맞추려 하죠. R10이 폐하께서 이루고자 하는 꿈이라면, 저는 그것을 막을 수 없어요. 다만, 그때가 되어 성공하든 실패하든, 저는 그 모습을 보지 못할 테니 부디 후회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소은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문 밖으로 나갔다.릭은 여전히 문 앞에서 대기 중이었다. 그녀와 여왕의 대화가 거의 다 들렸던 듯, 둘의 시선이 잠시 교차했다. 소은이 그를 지나쳐 나가자, 릭은 곧장 방으로 들어갔다.“여왕 폐하.” 릭은 여왕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그녀의 다리에 꽂힌 은침을 보자 릭의 눈빛이 굳어졌다. “이건...”“괜찮아. 곧 소은이가 와서 침을 빼줄 거야.” 여왕은 무심하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릭은 여전히 불안한 눈빛으로 말했다. “폐하께서 너무 방심하시는 것 아닙니까? 만약 한소은이 폐하께...”“그럴 리 없다.” 여왕은 단호히 그의 말을 잘랐다.릭은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설마 그 여자를 믿으시는 겁니까?”여왕은 대답 대신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녀도 릭의 질문이 아니었다면 자신이 소은을 믿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오랜 세월 누구도 쉽게 믿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그녀는 소은을 의심하지 않았다. 심지어 은침에 독이 묻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제가 가서 잡아오도록 하죠.”여왕이 생각에 잠기자 릭은 바로 뒤돌아섰다.“거기 서!”여왕은 결연히 말했다. “난 믿어.”릭은 한참을 침묵하며 여왕의 결정을 받아들였다....임상언은 아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비록 아들을 구하려는 결심을 굳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희망이 사라지는 듯했다.
소은은 허리춤에서 허리띠처럼 생긴 물건을 꺼내더니 조심스럽게 풀어내며, 그 안에 숨겨진 가느다란 은침을 꺼냈다.“이건...” 여왕은 깜짝 놀라며 소은을 쳐다봤다. 소은이가 은침을 항상 가지고 다닐 줄은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말해봐, 네 요구가 뭐지?” 여왕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마음을 가다듬으려 애썼다. 너무 무리한 요구라면 거절하면 그만이다. 여왕은 절대 소은에게 휘둘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소은은 차분하게 말했다. “제가 여기서 나올 수 있었던 건 로사 왕자님 덕분입니다. 그러니, 왕자님을 책망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그게 다야?” 여왕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소은이 여기까지 와서 자신과 조건을 따지는데, 결국 요구한 게 단지 로사를 처벌하지 말라는 거라니. 자신이 잘못 들은 건가 싶었다.“로사는 내 아들이다. 내가 정말 내 아들에게 손을 댈 리는 없지. 괜히 기회를 헛되게 쓴 건 아닌가?” 여왕은 고개를 저으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전 폐하께서 정말 로사 왕자님께 처벌을 내리시지 않을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왕자 폐하께서 저를 구해준 건 사실이기에 저도 왕자 폐하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소은은 조용히 말했다. “게다가 지금 왕자 폐하를 감금하시고 자유를 제한하고 계시지 않나요?”여왕은 의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니야. 난 단지 로사를 Y국으로 돌려보냈을 뿐이야.”“로사가 여기서 내 일을 여러모로 방해하긴 했지만, 우리 모자 사이가 더 악화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국내에서도 로사가 필요하니 Y국으로 돌려보낸 것뿐이다.” 여왕은 담담하게 말했다.“그런데 왜 왕자 폐하의 전화가 연결되지 않죠?” 소은은 잠시 멈칫했다. 단지 귀국했다면 국제전화를 받을 수 있을 텐데, 연락이 닿지 않았기에 여왕이 로사를 가둬놓았다고 오해할 수밖에 없었다.여왕은 깊은 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나도 잘 모르겠군. 그날 내가 화가 났던 건 사실이지만, 곧바로 Y국으로 돌아가도록
“삼일이면 됩니다.” 소은은 여왕을 쳐다보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삼일? 고작 삼일?” 여왕의 눈에는 믿기지 않는 놀라움이 서렸다. 그녀는 적어도 몇 달, 아니 최소한 몇 년은 걸릴 줄 알았다. 그러나 고작 삼일이라니, 그녀로서는 상상도 못 한 시간이었다.삼일쯤이야. 십 수년을 이렇게 버텨왔는데, 삼일쯤 더 기다린다고 달라질 게 뭐 있겠는가?“삼일 안에 정말 나아질 수 있는 건가? 내가 정말 다시 일어서서 걸을 수 있는 건가?” 여왕은 두 손으로 자신의 다리를 힘껏 눌렀지만 여전히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그녀는 소은의 말을 쉽게 믿을 수가 없었다. 이 다리가 감각을 잃은지 너무 오래되어 치료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여왕은 여러 나라의 명의를 찾아 다녔지만, 그들은 단지 병의 악화를 늦출 수 있을 뿐 다리를 완전히 회복시키는 건 불가능하다고 했었다. 그러나 지금 소은은 그녀 앞에 서서 확신에 찬 얼굴로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녀는 속으로 자신도 모르게 그 말을 믿고 싶어졌다.“이전처럼 완벽하게 걸을 수 있을 거라고 장담할 순 없어요. 너무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아서 근육이 많이 위축됐거든요. 하지만 서서히 일어나서 조금씩 회복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소은은 진지한 어조로 답했다.여왕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정도라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젊었을 때처럼 완전히 회복되는 것을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만약 휠체어와 지팡이 없이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 그 자체로도 그녀에겐 더할 나위 없는 희망이었다.“좋아. 삼일, 기다리겠네. 필요한 게 있나?” 여왕은 기분이 좋아져 말을 한층 부드럽게 했다.“임남...” 소은이 말을 꺼내자마자 여왕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녀는 곧바로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 “그건 안 돼. 그런 요구는 하지 마라.”“제가 말한 건 임남을 바로 풀어달라는 게 아닙니다. 그냥... 그 아이가 괜찮은지 알고 싶고, 가능하다면 아버지와 한 번 만날 기회를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 실험을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은 저와 프레드 뿐이기 때문입니다.” 소은은 잠시 생각하다가 덧붙였다. “아니면 주효정을 믿으실 건가요?”“나는... 아무도 믿지 않아.” 여왕은 얼굴을 차갑게 굳히며 휠체어를 돌렸다.“여왕 폐하께서 이 실험에 집착하고 계시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인가요? 세상을 둘러보고 싶다거나, 짐을 내려놓고 잠시 쉬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으신가요? 수십 년간 왕좌에 오르셨지만, 정말로 아직도 그 삶이 좋으신가요? 언제나 긴장하며 위태로운 자리를 견디는 고단한 나날, 정말 아직도 벗어나고 싶지 않으신가요?” 소은은 여왕의 등을 쳐다보며 부드럽게 물었다.여왕은 아무 말 없이 자신의 무릎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살짝 떨구었다. 그녀는 시선을 다리로 내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세상을 둘러본다? 나는... 걷는 게 어떤 느낌인지도 잊어버렸어.”여왕은 오랜 세월 동안 다리를 쓰지 않았고, 처음에는 억지로라도 일어설 수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상태는 악화되었고 이제는 아예 휠체어 없이는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그녀는 휠체어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소은이 ‘세상을 둘러보라’는 말을 꺼내자 가슴이 아팠다.“만약... 폐하께서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요? 제가 다시 걷게 해드린다면요?” 소은은 조용히 여왕의 뒤에 서서 말했다.여왕은 잠시 멈칫하더니, 눈빛이 날카롭게 변하며 휠체어를 돌려 소은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정말이냐?” 여왕의 눈에는 억누를 수 없는 희망과 깊은 의심이 뒤섞여 있었다.소은은 대답 대신 그녀의 시선을 천천히 여왕의 다리로 내리고, 천천히 다가가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손을 뻗어 여왕의 무릎 위에 가볍게 손을 올렸다.여왕은 살짝 몸을 떨었다. 사실, 그녀의 다리는 거의 완전히 감각을 잃은 상태라서 소은의 손길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아마도 너무나 간절히 다시 일어서고 싶기 때문이었을 것이다.소은은 아무 말 없이 여왕의
“맞아요, 임남 때문이기도 하지만, 폐하 때문이기도 합니다.” 소은은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제가 정말로 떠나버렸다면, 가장 초조해지는 사람은 사실 여왕 폐하 아닐까요?”여왕은 코웃음을 치며 차갑게 말했다. “내가 초조해질 이유가 뭐지? 어차피 내 손엔 네 약점이 있잖아. 너를 다시 잡아오는 것도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고.”“약점이요? 임남 말씀이신가요?” 소은은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잊지 마세요, 임남이는 제 아들이 아닙니다. 저에게는 제 친자식이 셋이나 있어요. 만약 제가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임남을 포기해 제 아이들을 지키려 한다면, 그 약점이 과연 제게 약점이 맞을까요?”여왕이 입을 열기도 전에 소은은 다시 말을 이었다. “게다가, 그 아이에겐 목숨을 걸고서라도 구하려는 아버지가 있습니다. 만약 임상언이 폐하께 끝까지 맞서기로 결심한다면...” “폐하께서야 높은 자리에 있으니 이런 평범한 상인을 하찮게 여기실 수 있지만, 임상언 씨가 단순한 상인이 아니라는 걸 잊으시면 안 됩니다. 임상언 씨의 사업은 세계 곳곳에 뻗어 있어요. 임상언 씨가 목숨을 걸 각오가 되어 있다면 그 어떤 일도 할 수 있겠죠. 혹시라도 바깥에 소문이 퍼져 폐하와 Y국의 명망이 손상된다면, 곤란하지 않겠습니까?”“너...” 여왕은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반박할 말이 당장 떠오르지 않았다.여왕이 화가 난 것을 보고, 소은은 한결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화내지 마세요. 제가 돌아온 건 폐하를 자극하려는 게 아닙니다. 함께 최선의 방향을 찾고자 돌아온 거예요. 사실 폐하께서 H국에 오신 일이 밝혀진 건 아니지만, 꽤 오랜 시간 H국에 머물고 계셨습니다. 정말로 H국이 이 사실을 모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세요?”여왕은 말없이 그녀를 쳐다보았다. “지금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건 폐하의 체면을 살려드린 겁니다. 그러나 폐하께서 이곳에서 계속 머무르시며 혹여 무리수를 두신다면, 얼마나 더 체류하실 수 있을까요? Y국도 계속해서
릭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여왕은 모니터에서 시선을 돌리며 담담히 말했다. “소은을 데려와. 어디 한번 무슨 변명을 할지 들어보자. 또 어떤 이야기를 꾸며낼지 궁금하네.” 여왕은 휠체어를 살짝 돌려 더 이상 모니터를 보지 않았다.“여왕 폐하?” 릭은 망설이다가 말했다. “한소은이 거짓말을 할 걸 아시면서도 굳이 왜...” 그러나 여왕은 그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단호히 말했다. “듣고 싶어!” 이 한마디에 릭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그는 곧장 소은이 있는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소은이 정말로 잠이 들려고 하던 순간, 문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그녀는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다. 눈을 뜨는 순간, 문이 열리면서 릭이 문 앞에 서 있었다. 그의 얼굴은 굳어 있었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여왕께서 한소은 씨를 만나고 싶어 하십니다.” 소은은 차분한 표정으로 릭을 쳐다보았다. 마치 모든 상황을 예견한 듯 고요하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와 동시에 임상언은 소은보다 먼저 일어나 문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가 문에 도착하자마자 릭이 손을 들어 그의 앞을 막았다. “그쪽은 남아 계시죠.” “뭐? 우리 둘은 같이 온 거야!” 임상언은 소은을 돌아보며 그녀에게 눈짓으로 도움을 요청했다. 릭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여왕 폐하께서 그쪽을 부르지 않았으니 여기 남으시죠.” 릭은 더 이상 임상언에게 말을 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소은은 임상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부드럽게 말했다. “절 기다리고 있어요.” 임상언은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억지로 마음을 다스리며 그녀가 릭과 함께 방을 나서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조심해요.” 임상언은 소은을 향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소은은 미소를 지어 그에게 답했고, 릭을 따라 여왕의 방으로 향했다. 익숙한 길을 따라 걷는 그녀는 곧 여왕의 방에 도착했다. 릭이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여왕 폐하, 데려왔습니다
소은이 임상언을 데리고 대사관에 도착하자,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눈에 띄게 당황했다.한 사람이 서둘러 소식을 알리러 가더니, 이내 주변 구석구석에서 누군가가 몰래 그들을 엿보는 기척이 느껴졌다. 곧이어, 소은이 잘 알고 있는 여왕의 측근 몇 명이 경계 어린 눈빛으로 다가와 그들을 안으로 안내했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그들은 소은과 임상언의 몸을 샅샅이 검사하며 위험 물품을 소지하지 않았는지 확인했다. 철저한 검사가 끝난 후에야 비로소 경계가 풀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여왕을 만나지 못했고, 한적하고 깊숙한 방에 대기하도록 배정받았다. 오랜만에 돌아온 이곳은 소은에게 익숙하면서도 낯설게 느껴졌다. 익숙한 것은 이 장소였지만, 낯선 것은 지금의 마음가짐이었다. 예전에는 이곳이 싫고 불쾌하기만 했으며,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은 장소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임무와 사명을 가지고 돌아왔고, 그녀의 목표는 단순히 여기를 떠나는 것이 아닌, 중요한 일을 완수하고 무사히 돌아가는 것이었다.반면, 임상언은 눈에 띄게 불안해 보였다. 그는 두 손을 맞잡고 무릎 위에 놓은 채,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다리를 가볍게 떨고 있었다. 소은은 그의 초조함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임남을 생각하면 마음이 몹시 불안하고 조급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여기까지 왔으니 임남을 반드시 볼 수 있을 거예요. 그러니 긴장 좀 풀어요.” 소은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임상언은 그녀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발을 땅에 꾹 눌러 다리를 멈췄다. 겉으로는 조금 안정된 듯 보였지만, 그의 얼굴은 여전히 긴장감이 가득했고 미세하게 떨리는 얼굴 근육이 그의 불안한 마음을 보여주었다. 마음을 진정시키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소은은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다.두 사람은 한참을 기다렸지만, 여왕을 만나러 오라는 사람은커녕 상황을 확인하러 오는 사람조차 없었다. 긴장했던 임상언은 결국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대체 무슨 의도인 거죠? 왜 아직
“제발 부탁이에요. 안에서는 소은 씨 말만 따를게요. 소은 씨가 시키는 대로 다 할 테니까, 제발 절 데려가 주시면 안 돼요?” 임상언은 진심 어린 목소리로 소은에게 간청했다. 자존심은 이미 버린 지 오래였다. 아들을 만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그를 이 지경까지 이르게 했다. 소은이 반드시 돌아가겠다고 결심한 순간, 임상언은 이미 마음을 굳혔다. 자신이 함께 가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같이 가면 의심을 받거나 제지를 당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전 아니에요.” 임상언은 계속 설득을 이어갔다. “임남이 그 안에 있다는 걸 모두 알고 있잖아요. 제가 아들을 만나고 구하려고 하는 건 당연한 일이에요. 그리고 아들을 위해서 제 목숨을 바치는 것도 이해될 수 있는 일이죠. 그러니 제가 가는 게 가장 올바른 선택이에요.” 긴 침묵 끝에, 소은이 입을 열었다. “임상언 씨 말이 맞아요. 전 동의합니다.” 소은은 말을 마치고 서진에게 시선을 돌렸다. 서진은 잠시 생각하더니 천천히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저도 동의합니다.” 원청현은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두드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나도 동의하지.” 잠시 침묵하던 진정기 역시 마침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동의합니다.” 마지막으로 원철수는 주변을 둘러보며 한숨을 내쉬고 손을 펼쳤다. “모두 동의했는데 내가 뭐라고 반대하겠어. 나도 찬성이야.” 사실 원철수의 의견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임상언에게 지지를 표현하는 의미였다. 임상언은 눈시울이 붉어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모두들 고마워요.” “이게 뭔 감사할 일이라고. 어쨌든 안에 들어가면 절대 신중해야 해. 무슨 일이 있어도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네 입으로 한 말 반드시 지켜!” 원철수는 그의 결심을 칭찬하면서도 걱정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원철수는 속으로 임상언의 결단에 감탄했다.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그는 분명 최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