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소은은 저번에 두 사람이 함께한 식사 자리에서 명백하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서로의 마음속에는 이미 알고 있으리라 생각했다.그런 일이 있고 나서 더 이상 친구로 지낼 수 없고 더 이상의 만날 일도 없을 줄 알았다.하지만, 오늘 여기로 그가 찾아올 거라는 걸 생각지도 못했다.“당신 앞에서는 다 무용지물이라는 거 알아요.”임상언은 한숨을 푹 내쉬며 자기를 비웃었다.“당신을 속일 수 없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미안했어요.”“임상언 씨.”약을 받아온 김서진이 한소은에게 급히 달려오며 그녀의 앞에 서 있던 임상언을 보았다.그래서인지 김서진은 더욱 빨리 달려왔다.하지만, 전과는 달리 임상언에게 예의를 차리는 듯 했지만, 김서진의 얼굴에는 얼음이 서려 있는 듯 차가웠다.“임상언 씨가 여긴 웬일이세요?”물론, 그들이 이것이라는 걸 임성언은 진작에 진작 예상했다.임상언의 얼굴에 씁쓸함이 스쳐 지나가더니 이내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말했다.“전에 내가 한 짓이 당신들에게 미안한 짓이라는 거 잘 알아요. 당신들에게 용서해달라고 안 해요. 다만, 오늘 내가 온건 정말 중요한 일이 있어서에요.”“정말 중요한 일인지, 아니면 함정을 파는 것인지 어떻게 알아요? 임상언 씨, 당신이 우리 서진 씨와 그냥 오랜 시간 함께 협력해 온 비즈니스 파트너 일 뿐이에요. 우리가 왜 당신을 믿어야 하죠?”한소은이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당신들의 용서를 빌어 온 게 아니에요. 나를 믿지 않을 수 있다는 것도 알아요.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 일을 당신들에게 알려야 할 거 같아서 온 거에요.”“이 조직은 당신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무서운 곳이에요. 내가 일부러 과장되게 말하는 게 아니란 말이에요!”임상언은 엄숙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그의 목소리에는 진정성이 가득했다.다만…….“죄송하지만, 당신이 한 말에 관심 없어요.”김서진은 한쪽 팔로 한소은의 허리를 감싸고 다른 한쪽 팔로 임상언 앞에 막아 나섰다. 그러고는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길 막지 말고 비켜요!
멱살이 조금 풀린 임상언은 손으로 자신의 목을 만지며 옷깃을 다시 정리했다.그제야 상기된 얼굴색이 조금 누그러졌다.하지만 김서진의 눈빛은 여전히 사그라지지 않았다.“방금 한 말, 그게 무슨 뜻이야?”“임남이 납치되었다는 뜻이겠죠.”한소은이 한 걸음 앞으로 나오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김서진은 고개를 홱 돌려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 사실을 처음 안 김서진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오늘 임상언이 찾아오기 전에 그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김서진이 알 리가 없었다.나중에는 비즈니스로 바빴고, 남아시아에서 목숨이 오락가락하던 상황에 부닥치다 보니 다른 데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한소은이 한 말을 들었을 때 김서진은 머리가 멍해 졌다.다만, 당사자인 임상언은 오히려 담담한 얼굴이었다.그의 얼굴에 씁쓸한 웃음기가 스치더니 그제야 입을 열었다.“우리 다른 데로 가서 얘기해.”그러고 나서 좌우로 한 번 살펴보더니 말을 이어갔다.“여기서 할 얘기가 아닌 거 같아.”확실히, 그들이 하려는 말은 이런 공적인 장소에서 크게 토론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김서진이 입을 열기도 전에 한소은은 한발 앞서 그의 팔을 내리며 임상언에게 말했다.“다른 장소도 문제없지만 장소는 우리가 정해야 해요!”전에 그런 일이 있었기 때문에 한소은은 조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임상언도 당연히 한소은이 이러는 이유를 알고 있다.지난번 이후로 그녀는 자기를 친구로 여기지 않는다. 그러나 원망할 것도 없다.결국 모든 것을 자기가 선택한 것이다.“좋아요!”임상언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한소은이 선택한 곳은 병원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이었다.조용하고 미팅 룸이 따로 준비되어 있으며 회원제였기 때문에 프라이버시를 지킬 수 있다.가장 중요한 것은 여긴 김서진 명의 하의 산업이었다.한소은은 이런 곳에서는 임상언이 또 무슨 나쁜 생각을 하거나 무슨 수작을 부릴까 두렵지 않았다.임상언은 자기가 잘못한 일이 있었기 때문에 조금의 이의도 없었다
일반적으로 그들의 인맥과 자원으로 어떤 사람의 행방을 찾으려면 찾을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모든 일에는 예외가 있다.만약 이런 경우 국제적으로 거액의 현상금이 걸리게 된다. 거액의 현상금에는 반드시 언제나 단서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찾을 수 없었어.”임상언은 여전히 고개를 저으며 이 말만 반복했다.그는 절망적인 눈빛으로 고개를 들었다.“정말 어쩔 수 없는 게 아니라면, 내가 그렇게 그들에게 휘둘리겠어?”침묵이 흐르고, 김서진은 입을 열지 않았다. 임상언에 대해 수년간 알고 있던 바로는, 그는 당연히 남에게 휘둘려 쉽게 고개를 숙일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만약 그가 그렇게 쉽게 머리를 숙였다면 사업을 지금처럼 크게 만들지 못했을 것이고, 심지어 자신의 파트너가 되지도 못했을 것이다.그가 지금 이러는 것은 틀림없이 쓸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썼을 것이다.정말 방법이 없으니, 그들에게 구속당할 수 밖에 없게 된 것이다.옆에 있던 한소은은 아랫입술을 깨물더니 말하려다 멈췄다.김서진은 그녀의 망설임을 눈치채고 그녀의 손을 가볍게 두드렸다.“생각나는 게 있으면 말해봐요.”“…….”그녀는 머뭇거리다가 의문을 제기했다.“혹시, 임남이 이미 이 세상에 없다고 생각해 본 적…….”한소은은 차마 뒤의 말을 할 수 없었다.자기 자신도 이런 가능성을 받아들이기 어려운데 아이의 아버지인 임상언은 더 말할 것도 없다.김서진도 가슴이 덜컹거렸다.이것도 가능성이 전혀 없지는 않다. 만약 정말 살아 있다면 어떻게 조금의 단서도 없을 수 있겠는가?전혀 흔적을 찾을 수 없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아니, 남이는 살아있어. 틀림없이 살아있어!”임상언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비록 그는 초췌하고 의기소침해 보였지만, 아이의 생사를 언급하는 것은 조금의 망설임도 주저함도 없이 매우 확고했다.“일정 간격을 두고 아이와 영상통화를 한 번 할 수 있었어요. 그때마다 특정된 행동을 하도록 유도 했죠. 예를 들면 내 말을 따라 하게 하던가 어떤 동작을 하
그들의 말을 잘 듣고 그들의 일을 도와주면 하루빨리 아이를 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희망이 없는 것 같았다.세 사람은 침묵했다. 방안에는 침묵만 흘렀다.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분위기는 침울하여 사람을 억압했다.한소은은 앞에 놓인 찻잔을 들고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잠시 고민하다 소리를 내어 이 조용함을 깨뜨렸다.“그래서, 오늘 왜 우리에게 이런 말을 하는 거죠?”“남이를 찾아 달라고요?”한소은이 직설적으로 물었다.사실, 그가 입을 열지 않더라도, 그들이 알게 되었으니 어떻게든 도와주려고 했을 것이다.부모가 어떤 짓을 했어도 아이는 죄가 없다.아이가 정말 위험에 처했다는 것을 알았으니, 한소은과 김서진이 가만있을 리가 없다.‘임상언이 오늘 갑자기 찾아와 이런 말을 하는 건 더 이상 홀로 버틸 수가 없어서 도움을 요청하러 온 건가?’“그것보다 다른 얘기를 하러 온 거에요.”임상언이 대답했다.“오늘 온 건, 더욱 중요한 일 때문이에요. 그 조직에 관한 얘기를 해주려고요.”한소은은 고개를 돌려 김서진을 한 번 바라본 후 다시 임상언을 바라보았다.“말해 봐요.”임상언이 진솔하게 행동하고 나름의 고충도 있지만, 요즘 많은 일이 생겨서 그를 완전히 신뢰할 수는 없었다.그가 무슨 말을 하든 의심의 눈길을 보낼 것이다.“이 조직은 해외의 세력이 통제하고 있어. 구체적으로 어느 쪽에서 왔는지는 아직 단서를 찾지 못했지만, 이 조직의 배경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커. 우리가 건드릴 수 없는 그런 종류의 조직이야.”임상언은 잠시 말을 멈추고 김서진을 바라보며 말했다.그가 “우리”라는 단어를 사용한 이유는, 김서진에게 이 조직의 배경 세력은 김서진도 쉽게 손댈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그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간단하지 않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였다.“그리고?”김서진은 눈썹을 찌푸리고 흔들리지 않는 얼굴을 하며 물었다.사실 임상언이 말하지 않아도 이 세력이 엄청나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그렇지 않았다면 이
“그건 그 여자의 독단적인 행동이었어요. 그때 조직은 당신을 회유하고 그들을 위해 일할 수 있도록 할 생각이었죠. 당신을 죽일 생각은 없었어요.”임상언은 솔직하게 말했다.“그 일로 주효영도 벌을 조금 받긴 했죠.”한소은은 구체적으로 어떤 벌을 받았는지 자세히 묻지 않았다.결국 그녀에게는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 주효영은 이미 죽었다. 모든 일이…….여기까지 생각하니 한소은은 갑자기 무엇이 생각났는지 난데없이 물었다.“하나만 물을게요. 주효영 그 여자 정말 죽었나요?”임상언은 머뭇거리다가 한소은의 공격적인 눈빛에 대답을 주저했다.“아마…… 죽었겠죠.”“아마?”한소은은 눈썹을 추켜세웠다. 그를 믿지 않는 눈치였다.그리고 김서진 역시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아마 죽었겠지? 이 자리를 마련했으니 여기서 말 못 할 게 뭐 있어? 뭘 더 숨길 생각이야?”“주효영…… 아직 안 죽었지?”김서진이 이어서 물었다.그들은 줄곧 주효영이 거짓으로 죽었다고 의심하고 있었다.그러나 경찰청에서 준 부검보고서에는 시신과 주효영의 DNA와 일치한다는 피드백을 주어 시신이 주효영이 확실하다는 것을 확인했고, 주현철 부부는 이틀 동안 주효영의 장례를 치르기도 했었다.비록 이 모든 증거가 주효영이 확실히 죽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지만, 정말 너무 기이하고 우연의 일치였다.오늘 마침 공교롭게도 임상언이 찾아왔으니 기필코 진실을 물어야 했다.“그게…….”임상언은 두 사람을 쳐다보고 얼굴을 찌푸린 뒤 자기 앞에 있던 차를 한 번에 비운 뒤 한숨을 내쉬었다.“그래! 그럼 이렇게 말하지. 그녀가 죽었다는 소식은 나도 들었어. 하지만 나도 당신들처럼 의심스러워했어.”“뭐라고?”김서진 부부는 의심이 가득한 얼굴로 다시 임상언을 바라보았다.“당신들이 나를 의심하는 거 알아. 어디까지나 내가 먼저 미안할 일을 한 거지만, 이 일에 대해 거짓말을 할 필요가 없어. 이 조직에서, 나는 단지 하찮은 역할일 뿐이야.”“어쩌면 주효영이 죽지 않았을지도 몰라. 다만, 나에게 말하
한소은은 전에 이 문제에 대해 매우 진지하게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확실히 잘 납득이 가지 않았다.특히 암호화된 데이터베이스의 데이터를 입수한 후 이 실험에서 많은 독을 실험하고 있으며, 살아있는 사람으로 실험을 진행하고 약 성분 데이터와 결과도 있다는 것은 이 조직에 유능한 사람이 부족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해 준다.약 성분에 대해 잘 아는 사람도 많고, 주효영과 같은 사람도 적지 않은데, 왜 꼭 그녀에게 집착하는 걸까?생각해 보면 단 하나의 가능성이 있다. 이 교수의 최초 구상은 약성과 향수를 완전히 융합시켜 자신도 모르게 약의 성분을 체내에 섭취하게 하는 것이다.다만, 처음 이 교수의 구상은 병을 치료하고 사람을 구하기 위한 것인데, 이 어둡고 사악한 조직은 이 교수의 원래 취지를 완전히 배반하고 독으로 사람을 통제하려는 것이다.“맞아요!”임상언은 이번에는 망설이지 않고 확실하게 인정했다.“따지고 보면 난 이 실험의 핵심을 다 아는 게 아니에요. 그들이 개발하고 있는 것은 아직 성공까지 한발만 남았어요. 하지만 이 한발을 나아가지 못해 계속 미루고 있죠. 아마 당신이 바로 이 한발일 거예요.”“다른 조향사를 찾아본 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전공이 다르기 때문에 완벽한 조화를 이루지는 못했어요. 그걸 해낼 수 있는 사람은 당신 뿐이죠!”임상언이 이어서 말했다.“더군다나 당신은 몇 번의 성공 사례가 있기 때문에 조직은 더욱 당신을 회유하고 싶어 하는 거예요!”“그래서 현재로선 당신은 안전하다고 볼 수 있어요.”까놓고 말하자면, 한소은을 이용해야 하므로 그녀의 목숨은 남겨두고, 그녀를 죽이지 않을 것이다.한소은은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그렇다면, 당신의 그 조직에 감사해야 하는 건가요?”“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 위선적이겠지만, 나는 그들과 정말 같은 부류가 아니에요.”이렇게 말하는 임상언의 얼굴에는 잠시 어색함이 스쳐 지나갔다.“당신 말대로, 강요당했고, 통제당했고, 어쩔 수 없었던 거라면 왜 지금 우리에게 이
“아직 아무 말도 하지 않았잖아.”임상언이 잠시 멈칫하다 말했다.“그럼 말할 필요도 없어! 아마 좋은 생각이 아니겠지. 더군다나 내가 왜 꼭 당신과 손을 잡아야 하는 거지?”김서진은 정색하고, 태도도 매우 불친절했다.“우리에게서 당신은 이미 신용을 잃었어. 조금의 믿음도 없는데 무슨 손을 잡겠다는 거야?”“이번엔 달라…….”임상언은 자신이 계획이 무엇인지도 말하지 않았는데, 바로 그에게 거절당할 줄은 몰랐다.어떻게 이 이야기를 이어가야 할지 몰랐다.“남이는 내가 어떻게 해서든 구해 줄게. 우리가 도와줄 수 있는 건 이것뿐이야. 임상언, 너와 나의 파트너 관계도 여기서 끝이야!”김서진은 일어나서 한소은의 손을 잡아 그녀를 일으켜 세우려 했다.더 이상 임상언과 이야기할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한소은은 일어나지 않고 김서진이 자신을 향해 내민 손을 보더니 임상언을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계속 얘기해요. 당신이 어떤 계획을 했는지 알고 싶어요.”김서진은 멈칫했다.“더 들을 것도 없어요!”김서진은 허리를 굽혀 그녀를 끌어당겼다.“이 사람의 말은 한마디도 믿지 마요! 그는 좋은 마음을 품고 있지 않았어요!”심지어 김서진은 약간 화가 나 있었다.그러자 임상언은 김서진이 왜 이런 반응인지 드디어 눈치챘다.“한소은 씨가 위험할까 봐 걱정하는 건 알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야.”“어쩔 수 없이 내 아내를 호랑이 굴로 보내야 하단 말이야?!”결국 참지 못하고 김서진은 화난 목소리로 물었다.임상언이 아직 말하지 않았더라도, 그는 자기 뜻을 알아차렸다.그의 그 개 같은 계획이란, 한소은을 호랑이 굴로 보내고, 주동적으로 그 조직에 끌어들여, 그녀가 협조하게 하고, 그러고 나서 유용한 소식을 알아내겠다는 것이다.결국 처음부터 그 조직은 한소은의 능력으로 이 실험을 끝내려 했다.한소은이 흔쾌히 허락한다면 당연히 가장 좋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임상언은 아들의 행방 조사하는 걸 도울 수 있을 것이다.그런데 그건 너무 위험했다!
임상언의 모습을 지켜보던 김서진의 미간은 더욱 찌푸려졌다.그는 한소은의 손을 꼭 쥐어 잡고 그녀를 이끌었다.“이제 그만 가요!”김서진은 더 이상 이곳에 머물고 싶지 않았다. 조금 더 들으면 자신이 설득될까 봐 두려워했다.임상언이 어쩔 수 없어서 이런 방법을 내놓은 것이고 이렇게 하는 것의 장단점을 모르지 않는다.한소은이 거짓으로 협조하며 그 조직에 들어간다면 문제가 쉽게 해결할 수 있고 조직의 근원을 찾아 그들을 와해 시킬 수 있지만 김서진은 그렇게 할 수 없다.다른 사람이라면 김서진은 백 번이고 찬성할 것이다.하지만 한소은은, 자기의 아내는 절대로 허락할 수 없다.한소은은 그가 마음속에 품고 있는 사람이고, 그의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다.그녀를 모험에 뛰어들게 할 수 없었다. 1억분의 일의 확률로 위험한 일이 발생한다고 하더라도 그는 그 결과를 감당할 수 없다.그러나 김서진이 잡아당겼는데도 한소은은 여전히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그녀의 시선은 임상언의 방향을 향했고, 두 눈은 깜빡이지 않고, 얼굴은 담담했다.“내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나요?”“안 돼요, 내가 허락하지 않을 거예요, 알겠어요?!”그런 그녀를 마주한 김서진은 결국 참지 못하고 폭발했다.두 사람이 함께한 후로, 그는 이렇게 화를 낸 적이 없었다.한소은이 무슨 말을 하든, 김서진은 항상 지지하고 이해했다.그러나 이번에는 정말로 화가 났다.김서진의 두 눈은 빨갛게 달아올랐고, 얼굴색은 보기 흉했다.마치 한 마리의 분노한 사자 같았다. 다른 말은 전혀 들리지 않았다.“임상언의 말을 듣지 마요. 그가 당신을 어떻게 속였었는지 잊어버렸나요? 어떻게 그를 믿을 수 있어요! 이 세상에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당신뿐이 아니잖아요! 왜 하필 당신이 가야 하는데요? 우리 그만 나가요!”한소은을 끌어당길 수 없자, 김서진은 결국 허리를 굽혀 그녀를 안으려 했고, 강제로 그녀를 데리고 나가려 했다.임상언이 또 무슨 말을 할지 모르지만, 그는 한소은을 여기에 더
소은은 고개를 들어 눈물을 참으며 말했다. “한 가지 이상한 게 있어요.”“무슨 일이에요?” 임남을 달래던 임상언이 무심히 되물었다.“로사 왕자는 감금된 것이 아니라 그날 Y국으로 송환되었다고 들었는데, 그렇다면 왜 그동안 로사 왕자와 연락이 닿지 않았던 걸까요?” 소은의 말에 임상언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두 가지 가능성이 있겠죠. 신호가 나쁘거나 핸드폰을 확인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 로사 왕자가 저희 연락을 거부하고 있을 수도...”두 사람은 잠시 눈을 마주쳤다. 말은 없었지만, 둘 다 이미 답을 얻은 듯했다. 로사 왕자가 그토록 연락을 피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도 나름의 계획을 세우고 있는 건가?...3일 후. 소은은 마지막 침을 놓고 손을 거두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여왕을 쳐다보며 말했다. “오늘 시술로 폐하의 다리에 감각이 돌아오실 겁니다. 하지만 일어서는 건 천천히 시도하셔야 합니다. 너무 서두르시면 안 돼요.”소은은 말을 마치고 갑자기 미소를 지었다.“무엇 때문에 웃는 거지?” 여왕은 여전히 자신의 다리를 어루만지며 물었다. 이미 이틀 전부터 약간의 감각이 돌아왔음을 느낀 터라, 소은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소은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제가 쓸데없는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요. 사실 R10 실험을 고집하신다면 결국 폐하께서는 이 몸을 떠나게 되실 텐데, 제가 이 몸에 애쓰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여왕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계속한 거지?”“어쩌면, 폐하께서 마음을 바꾸실 지도 모르니까요.” 소은은 부드럽게 대답했다. “어쩌면 자신의 몸이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거든요.”“우리 모두 이 세상에 올 때 두 손은 비어있지만, 이 몸만은 오로지 우리 자신의 것이죠. 몸마저 버리신다면, 그 영혼은 여전히 진짜 자신일 수 있을까요?”“그렇구나.” 여왕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
소은은 조용히 몸을 일으키며 여왕을 쳐다보았다. “물론이죠.” 소은은 담담하게 답했다. 그 대답에는 원망이나 비난의 기색은 전혀 없었다.“그렇다면... 조금 아쉽네.” 여왕은 생각에 잠긴 듯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기 마련입니다. 세상 모든 일은 균형을 맞추려 하죠. R10이 폐하께서 이루고자 하는 꿈이라면, 저는 그것을 막을 수 없어요. 다만, 그때가 되어 성공하든 실패하든, 저는 그 모습을 보지 못할 테니 부디 후회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소은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문 밖으로 나갔다.릭은 여전히 문 앞에서 대기 중이었다. 그녀와 여왕의 대화가 거의 다 들렸던 듯, 둘의 시선이 잠시 교차했다. 소은이 그를 지나쳐 나가자, 릭은 곧장 방으로 들어갔다.“여왕 폐하.” 릭은 여왕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그녀의 다리에 꽂힌 은침을 보자 릭의 눈빛이 굳어졌다. “이건...”“괜찮아. 곧 소은이가 와서 침을 빼줄 거야.” 여왕은 무심하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릭은 여전히 불안한 눈빛으로 말했다. “폐하께서 너무 방심하시는 것 아닙니까? 만약 한소은이 폐하께...”“그럴 리 없다.” 여왕은 단호히 그의 말을 잘랐다.릭은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설마 그 여자를 믿으시는 겁니까?”여왕은 대답 대신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녀도 릭의 질문이 아니었다면 자신이 소은을 믿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오랜 세월 누구도 쉽게 믿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그녀는 소은을 의심하지 않았다. 심지어 은침에 독이 묻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제가 가서 잡아오도록 하죠.”여왕이 생각에 잠기자 릭은 바로 뒤돌아섰다.“거기 서!”여왕은 결연히 말했다. “난 믿어.”릭은 한참을 침묵하며 여왕의 결정을 받아들였다....임상언은 아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비록 아들을 구하려는 결심을 굳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희망이 사라지는 듯했다.
소은은 허리춤에서 허리띠처럼 생긴 물건을 꺼내더니 조심스럽게 풀어내며, 그 안에 숨겨진 가느다란 은침을 꺼냈다.“이건...” 여왕은 깜짝 놀라며 소은을 쳐다봤다. 소은이가 은침을 항상 가지고 다닐 줄은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말해봐, 네 요구가 뭐지?” 여왕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마음을 가다듬으려 애썼다. 너무 무리한 요구라면 거절하면 그만이다. 여왕은 절대 소은에게 휘둘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소은은 차분하게 말했다. “제가 여기서 나올 수 있었던 건 로사 왕자님 덕분입니다. 그러니, 왕자님을 책망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그게 다야?” 여왕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소은이 여기까지 와서 자신과 조건을 따지는데, 결국 요구한 게 단지 로사를 처벌하지 말라는 거라니. 자신이 잘못 들은 건가 싶었다.“로사는 내 아들이다. 내가 정말 내 아들에게 손을 댈 리는 없지. 괜히 기회를 헛되게 쓴 건 아닌가?” 여왕은 고개를 저으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전 폐하께서 정말 로사 왕자님께 처벌을 내리시지 않을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왕자 폐하께서 저를 구해준 건 사실이기에 저도 왕자 폐하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소은은 조용히 말했다. “게다가 지금 왕자 폐하를 감금하시고 자유를 제한하고 계시지 않나요?”여왕은 의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니야. 난 단지 로사를 Y국으로 돌려보냈을 뿐이야.”“로사가 여기서 내 일을 여러모로 방해하긴 했지만, 우리 모자 사이가 더 악화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국내에서도 로사가 필요하니 Y국으로 돌려보낸 것뿐이다.” 여왕은 담담하게 말했다.“그런데 왜 왕자 폐하의 전화가 연결되지 않죠?” 소은은 잠시 멈칫했다. 단지 귀국했다면 국제전화를 받을 수 있을 텐데, 연락이 닿지 않았기에 여왕이 로사를 가둬놓았다고 오해할 수밖에 없었다.여왕은 깊은 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나도 잘 모르겠군. 그날 내가 화가 났던 건 사실이지만, 곧바로 Y국으로 돌아가도록
“삼일이면 됩니다.” 소은은 여왕을 쳐다보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삼일? 고작 삼일?” 여왕의 눈에는 믿기지 않는 놀라움이 서렸다. 그녀는 적어도 몇 달, 아니 최소한 몇 년은 걸릴 줄 알았다. 그러나 고작 삼일이라니, 그녀로서는 상상도 못 한 시간이었다.삼일쯤이야. 십 수년을 이렇게 버텨왔는데, 삼일쯤 더 기다린다고 달라질 게 뭐 있겠는가?“삼일 안에 정말 나아질 수 있는 건가? 내가 정말 다시 일어서서 걸을 수 있는 건가?” 여왕은 두 손으로 자신의 다리를 힘껏 눌렀지만 여전히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그녀는 소은의 말을 쉽게 믿을 수가 없었다. 이 다리가 감각을 잃은지 너무 오래되어 치료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여왕은 여러 나라의 명의를 찾아 다녔지만, 그들은 단지 병의 악화를 늦출 수 있을 뿐 다리를 완전히 회복시키는 건 불가능하다고 했었다. 그러나 지금 소은은 그녀 앞에 서서 확신에 찬 얼굴로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녀는 속으로 자신도 모르게 그 말을 믿고 싶어졌다.“이전처럼 완벽하게 걸을 수 있을 거라고 장담할 순 없어요. 너무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아서 근육이 많이 위축됐거든요. 하지만 서서히 일어나서 조금씩 회복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소은은 진지한 어조로 답했다.여왕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정도라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젊었을 때처럼 완전히 회복되는 것을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만약 휠체어와 지팡이 없이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 그 자체로도 그녀에겐 더할 나위 없는 희망이었다.“좋아. 삼일, 기다리겠네. 필요한 게 있나?” 여왕은 기분이 좋아져 말을 한층 부드럽게 했다.“임남...” 소은이 말을 꺼내자마자 여왕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녀는 곧바로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 “그건 안 돼. 그런 요구는 하지 마라.”“제가 말한 건 임남을 바로 풀어달라는 게 아닙니다. 그냥... 그 아이가 괜찮은지 알고 싶고, 가능하다면 아버지와 한 번 만날 기회를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 실험을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은 저와 프레드 뿐이기 때문입니다.” 소은은 잠시 생각하다가 덧붙였다. “아니면 주효정을 믿으실 건가요?”“나는... 아무도 믿지 않아.” 여왕은 얼굴을 차갑게 굳히며 휠체어를 돌렸다.“여왕 폐하께서 이 실험에 집착하고 계시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인가요? 세상을 둘러보고 싶다거나, 짐을 내려놓고 잠시 쉬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으신가요? 수십 년간 왕좌에 오르셨지만, 정말로 아직도 그 삶이 좋으신가요? 언제나 긴장하며 위태로운 자리를 견디는 고단한 나날, 정말 아직도 벗어나고 싶지 않으신가요?” 소은은 여왕의 등을 쳐다보며 부드럽게 물었다.여왕은 아무 말 없이 자신의 무릎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살짝 떨구었다. 그녀는 시선을 다리로 내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세상을 둘러본다? 나는... 걷는 게 어떤 느낌인지도 잊어버렸어.”여왕은 오랜 세월 동안 다리를 쓰지 않았고, 처음에는 억지로라도 일어설 수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상태는 악화되었고 이제는 아예 휠체어 없이는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그녀는 휠체어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소은이 ‘세상을 둘러보라’는 말을 꺼내자 가슴이 아팠다.“만약... 폐하께서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요? 제가 다시 걷게 해드린다면요?” 소은은 조용히 여왕의 뒤에 서서 말했다.여왕은 잠시 멈칫하더니, 눈빛이 날카롭게 변하며 휠체어를 돌려 소은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정말이냐?” 여왕의 눈에는 억누를 수 없는 희망과 깊은 의심이 뒤섞여 있었다.소은은 대답 대신 그녀의 시선을 천천히 여왕의 다리로 내리고, 천천히 다가가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손을 뻗어 여왕의 무릎 위에 가볍게 손을 올렸다.여왕은 살짝 몸을 떨었다. 사실, 그녀의 다리는 거의 완전히 감각을 잃은 상태라서 소은의 손길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아마도 너무나 간절히 다시 일어서고 싶기 때문이었을 것이다.소은은 아무 말 없이 여왕의
“맞아요, 임남 때문이기도 하지만, 폐하 때문이기도 합니다.” 소은은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제가 정말로 떠나버렸다면, 가장 초조해지는 사람은 사실 여왕 폐하 아닐까요?”여왕은 코웃음을 치며 차갑게 말했다. “내가 초조해질 이유가 뭐지? 어차피 내 손엔 네 약점이 있잖아. 너를 다시 잡아오는 것도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고.”“약점이요? 임남 말씀이신가요?” 소은은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잊지 마세요, 임남이는 제 아들이 아닙니다. 저에게는 제 친자식이 셋이나 있어요. 만약 제가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임남을 포기해 제 아이들을 지키려 한다면, 그 약점이 과연 제게 약점이 맞을까요?”여왕이 입을 열기도 전에 소은은 다시 말을 이었다. “게다가, 그 아이에겐 목숨을 걸고서라도 구하려는 아버지가 있습니다. 만약 임상언이 폐하께 끝까지 맞서기로 결심한다면...” “폐하께서야 높은 자리에 있으니 이런 평범한 상인을 하찮게 여기실 수 있지만, 임상언 씨가 단순한 상인이 아니라는 걸 잊으시면 안 됩니다. 임상언 씨의 사업은 세계 곳곳에 뻗어 있어요. 임상언 씨가 목숨을 걸 각오가 되어 있다면 그 어떤 일도 할 수 있겠죠. 혹시라도 바깥에 소문이 퍼져 폐하와 Y국의 명망이 손상된다면, 곤란하지 않겠습니까?”“너...” 여왕은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반박할 말이 당장 떠오르지 않았다.여왕이 화가 난 것을 보고, 소은은 한결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화내지 마세요. 제가 돌아온 건 폐하를 자극하려는 게 아닙니다. 함께 최선의 방향을 찾고자 돌아온 거예요. 사실 폐하께서 H국에 오신 일이 밝혀진 건 아니지만, 꽤 오랜 시간 H국에 머물고 계셨습니다. 정말로 H국이 이 사실을 모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세요?”여왕은 말없이 그녀를 쳐다보았다. “지금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건 폐하의 체면을 살려드린 겁니다. 그러나 폐하께서 이곳에서 계속 머무르시며 혹여 무리수를 두신다면, 얼마나 더 체류하실 수 있을까요? Y국도 계속해서
릭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여왕은 모니터에서 시선을 돌리며 담담히 말했다. “소은을 데려와. 어디 한번 무슨 변명을 할지 들어보자. 또 어떤 이야기를 꾸며낼지 궁금하네.” 여왕은 휠체어를 살짝 돌려 더 이상 모니터를 보지 않았다.“여왕 폐하?” 릭은 망설이다가 말했다. “한소은이 거짓말을 할 걸 아시면서도 굳이 왜...” 그러나 여왕은 그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단호히 말했다. “듣고 싶어!” 이 한마디에 릭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그는 곧장 소은이 있는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소은이 정말로 잠이 들려고 하던 순간, 문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그녀는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다. 눈을 뜨는 순간, 문이 열리면서 릭이 문 앞에 서 있었다. 그의 얼굴은 굳어 있었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여왕께서 한소은 씨를 만나고 싶어 하십니다.” 소은은 차분한 표정으로 릭을 쳐다보았다. 마치 모든 상황을 예견한 듯 고요하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와 동시에 임상언은 소은보다 먼저 일어나 문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가 문에 도착하자마자 릭이 손을 들어 그의 앞을 막았다. “그쪽은 남아 계시죠.” “뭐? 우리 둘은 같이 온 거야!” 임상언은 소은을 돌아보며 그녀에게 눈짓으로 도움을 요청했다. 릭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여왕 폐하께서 그쪽을 부르지 않았으니 여기 남으시죠.” 릭은 더 이상 임상언에게 말을 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소은은 임상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부드럽게 말했다. “절 기다리고 있어요.” 임상언은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억지로 마음을 다스리며 그녀가 릭과 함께 방을 나서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조심해요.” 임상언은 소은을 향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소은은 미소를 지어 그에게 답했고, 릭을 따라 여왕의 방으로 향했다. 익숙한 길을 따라 걷는 그녀는 곧 여왕의 방에 도착했다. 릭이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여왕 폐하, 데려왔습니다
소은이 임상언을 데리고 대사관에 도착하자,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눈에 띄게 당황했다.한 사람이 서둘러 소식을 알리러 가더니, 이내 주변 구석구석에서 누군가가 몰래 그들을 엿보는 기척이 느껴졌다. 곧이어, 소은이 잘 알고 있는 여왕의 측근 몇 명이 경계 어린 눈빛으로 다가와 그들을 안으로 안내했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그들은 소은과 임상언의 몸을 샅샅이 검사하며 위험 물품을 소지하지 않았는지 확인했다. 철저한 검사가 끝난 후에야 비로소 경계가 풀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여왕을 만나지 못했고, 한적하고 깊숙한 방에 대기하도록 배정받았다. 오랜만에 돌아온 이곳은 소은에게 익숙하면서도 낯설게 느껴졌다. 익숙한 것은 이 장소였지만, 낯선 것은 지금의 마음가짐이었다. 예전에는 이곳이 싫고 불쾌하기만 했으며,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은 장소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임무와 사명을 가지고 돌아왔고, 그녀의 목표는 단순히 여기를 떠나는 것이 아닌, 중요한 일을 완수하고 무사히 돌아가는 것이었다.반면, 임상언은 눈에 띄게 불안해 보였다. 그는 두 손을 맞잡고 무릎 위에 놓은 채,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다리를 가볍게 떨고 있었다. 소은은 그의 초조함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임남을 생각하면 마음이 몹시 불안하고 조급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여기까지 왔으니 임남을 반드시 볼 수 있을 거예요. 그러니 긴장 좀 풀어요.” 소은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임상언은 그녀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발을 땅에 꾹 눌러 다리를 멈췄다. 겉으로는 조금 안정된 듯 보였지만, 그의 얼굴은 여전히 긴장감이 가득했고 미세하게 떨리는 얼굴 근육이 그의 불안한 마음을 보여주었다. 마음을 진정시키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소은은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다.두 사람은 한참을 기다렸지만, 여왕을 만나러 오라는 사람은커녕 상황을 확인하러 오는 사람조차 없었다. 긴장했던 임상언은 결국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대체 무슨 의도인 거죠? 왜 아직
“제발 부탁이에요. 안에서는 소은 씨 말만 따를게요. 소은 씨가 시키는 대로 다 할 테니까, 제발 절 데려가 주시면 안 돼요?” 임상언은 진심 어린 목소리로 소은에게 간청했다. 자존심은 이미 버린 지 오래였다. 아들을 만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그를 이 지경까지 이르게 했다. 소은이 반드시 돌아가겠다고 결심한 순간, 임상언은 이미 마음을 굳혔다. 자신이 함께 가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같이 가면 의심을 받거나 제지를 당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전 아니에요.” 임상언은 계속 설득을 이어갔다. “임남이 그 안에 있다는 걸 모두 알고 있잖아요. 제가 아들을 만나고 구하려고 하는 건 당연한 일이에요. 그리고 아들을 위해서 제 목숨을 바치는 것도 이해될 수 있는 일이죠. 그러니 제가 가는 게 가장 올바른 선택이에요.” 긴 침묵 끝에, 소은이 입을 열었다. “임상언 씨 말이 맞아요. 전 동의합니다.” 소은은 말을 마치고 서진에게 시선을 돌렸다. 서진은 잠시 생각하더니 천천히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저도 동의합니다.” 원청현은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두드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나도 동의하지.” 잠시 침묵하던 진정기 역시 마침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동의합니다.” 마지막으로 원철수는 주변을 둘러보며 한숨을 내쉬고 손을 펼쳤다. “모두 동의했는데 내가 뭐라고 반대하겠어. 나도 찬성이야.” 사실 원철수의 의견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임상언에게 지지를 표현하는 의미였다. 임상언은 눈시울이 붉어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모두들 고마워요.” “이게 뭔 감사할 일이라고. 어쨌든 안에 들어가면 절대 신중해야 해. 무슨 일이 있어도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네 입으로 한 말 반드시 지켜!” 원철수는 그의 결심을 칭찬하면서도 걱정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원철수는 속으로 임상언의 결단에 감탄했다.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그는 분명 최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