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은 눈을 비비며 방에서 걸어 나왔다.“엄마…….”“왜 또 일어났어?”한소은은 자연스럽게 손을 뻗어 김준을 안았고, 아이를 자기 몸 옆으로 끌어당겨 앉혔다.요즘 그녀의 배가 좀 더 나와 그를 안는 것이 불편했지만 그렇다고 아들을 밀쳐내지는 않았다.“엄마가 다시 간 줄 알았어요.”김준은 엄마의 품에 폭 안겼다. 입으로는 말하지 않았지만, 행동으로는 마음속의 불안함을 들어냈다.한소은은 마음속으로 약간 미안해 했다. 최근 확실히 아들을 소홀했다.이렇게 어린 나이에 이렇게 긴 시간 동안 헤어졌으니, 아이는 틀림없이 자기를 매우 보고 싶어 했을 것이다.그러나 김준은 철이 들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안 가! 엄마 이제 어디도 안 갈 거야. 우리 같이 집에 가자.”김준의 머리를 비비며 한소은이 부드럽게 말했다.집에 가자라는 말을 듣자, 녀석의 눈이 번쩍 뜨였다.“정말? 우리 집에 가는 거예요?”“물론이지.”김준이 기뻐하는 것을 보고 한소은도 기뻐서 말했다.“네 아빠도 돌아왔으니 드디어 우리 가족이 모일 수 있어.”“좋아요!”이 말을 들은 김준은 더는 참을 수 없이 깡충깡충 뛰기 시작했다.이를 본 원청현은 깜짝 놀라 두 손으로 김준을 막으며 말했다.“아이고, 이 놈아! 조심해!”간신히 뛰어다니려는 아이를 막아 다시 자신의 품에 안으며 원청현은 한소은을 바라보며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정말 준이를 데려갈 거야?”‘참 나, 이 영감 탱이. 지금 준이가 아쉬워서 이러는 건가?’“아님, 준이를 몇 달 더 보살펴 주실래요?”한소은은 농담조로 말했다.그러자 원청현은 또 연신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됐어 됐어, 네가 그냥 데려가!”한소은은 웃기 시작했다.“사부, 아직도 그렇게 삐치는 걸 좋아하시네요!”말을 마치자마자 그녀는 일어서서 위층 방향으로 걸어갔다.“어휴…….”원청현이 막 입을 열려고 하자, 김준은 한소은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그녀가 갈까 봐 서둘러 쫓아가려 했다.그러자 한소은은 몸을 돌려 입술 앞에 손가락을 대
하지만 이 큰 방은 텅 비어 있었다.임상언이 방안을 둘러보며 남자의 모습을 찾고 있을 때 책상 뒤의 의자에서 왜소한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그는 의자에서 뛰어내려 임상언의 앞으로 걸어갔다.“무슨 일이야?”“주효영이 죽었답니다!”임상언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이 소식을 받았을 때 임상언도 충격을 받았다.심지어 이것이 가짜 소식일 수도 있고 누군가를 속이려는 속임수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여러 가지 소식의 출처와 현재 밝혀진 정황으로 보아 사실일 가능성이 높았다.“나도 알아.”남자가 고개를 들어 임상언을 바라보았다.가면 뒤의 눈은 약간 실눈을 뜨고 있었고 약간 불쾌해 보였다.임상언은 곧 그의 뜻을 알아차리고 몸을 웅크려 그보다 한 계단 낮게 앉았다.그제야 남자의 눈이 만족스러운 눈빛을 드러내었다.“어떻게 이렇게 갑자기, 왜 멀쩡하던 공장이 폭발한 것일까요? 그동안 그렇게 많은 실험을 했는데도 이런 문제가 생기지 않았는데, 그 여자가…… 거짓말하는 거 아닐까요?”임상언이 남자를 떠보며 물었다. 그는 이것이 남자와 주효영이 함께 짠 판이라고 생각했었다.그러나 남자는 임상언을 깊이 쳐다보더니 한숨을 쉬며 뒤의 의자에 올라가 앉아 다리를 흔들며 말했다.“죽었는지 아닌지는 경찰서에서 부검 결과가 나오면 다 알 수 있을 거야. 나도 이런 사고가 날 줄은 몰랐어.”“그렇다면 보스가 계획한 게 아니라는 건가요?”의심스러운 듯 그를 바라보며 임상언은 여전히 미심쩍은 느낌이 들었다.“내가?”남자는 눈살을 찌푸리더니 소리를 내며 웃었다.“내가 왜 그런 짓을 하지? 주효영은 너와 같아. 내게 유능한 사람이야. 그녀가 죽으면 나에게 무슨 이익이 있을까?”잠시 동안 임상언도 보스에게 무슨 이득이 있을지 대답하지 못했다.그런데, 너무 갑작스럽고 불가사의하다고 느꼈다.주효영처럼 날뛰던 사람이 갑작스럽게 폭발 사고로 목숨을 잃다니?게다가 실험하다가 폭발한 것이니 그녀로서는 정말 저급한 실수였다. 일어날 수도 없는 일이었다.“나는 네가 어떤 이유로
보스가 아들을 언급하자 임상언의 안색이 순식간에 변했다.그는 급히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아니요, 당연히 아니죠! 내게 약속했던 걸 잊지 마세요. 만약 내 아들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난 무슨 수를 써서라도 당신의 이 실험을 망칠 거예요!”협박을 당했는데도 남자는 화를 내지 않고 오히려 입을 벌리고 괴상한 웃음을 지었다.“좋아! 이런 각오가 있다니 다행이네. 임상언, 나 몰래 아들을 수십 번 이상 찾았었지? 그런데 아무런 소식도 얻지 못했을 거야.”인상언은 묵묵히 두 손을 주먹 쥐며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그는 입술을 꼭 깨물고 고개를 푹 숙인 채 남자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았다.물론, 남자는 그가 대답하든 하지 않든 신경 쓰지 않았다.그저 득의양양하게 웃으며 말했다.“그렇다면 내 실력과 이 조직의 실력을 잘 알겠지? 너 같은 작은 상인이 우리를 건드릴 수 없다는 것도. 너뿐만 아니라 그 김서진이라는 사람도 아무런 방법이 없어. 그래서 내 말을 잘 들어야 해. 그렇지 않으면 네 귀한 아들이 언제까지 무사할지 장담할 수 없어.”“내 인내심에 한계가 있다는 거 알았으면 해. 위의 사람들은 나보다 더 인내심이 없지.”남자는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키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임상언은 보스의 위에 다른 사람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한 적 있었다. 하지만 이건 보스가 처음으로 자기 위에 더 높은 신분의 사람이 있다는 걸 인정한 것이다.보스의 말을 듣고 임상언은 조금 의아해했다.“내가 너와 함께하겠다는 마음을 의심하지 마.”남자는 두 손을 의자 양옆의 팔걸이에 올려놓고 무심코 톡톡 건드리며 말했다.“네가 알아야 하는 건 천천히 알려 줄 거니까 걱정하지 마. 이제 주효영이 죽었으니 넌 내 유일한 유능한 조력자야. 열심히 하기만 한다면 너와 네 아들 모두 무사할 테니 그렇게 알고 있어.”“이 세상의 사람이 절반 이상 죽어도 너와 네 아들은 무사할 거라고 약속하지.”“네!”임상언은 꼭 쥐었던 주먹을 풀고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알았어.”남자는 느릿하게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대답하고 전화를 끊었다.그러고는 아무렇지 않다는 표정을 지었다.‘학술 연구를 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얼마나 고고한 척한단 말이지. 이런 사소한 명예를 얻으려 서로 싸우다니! 난 달라. 내 목표는 이 세계란 말이야!’남자는 자리에서 일어서서 창문 앞으로 걸어가 아래층을 내려다보았다.이렇게 큰 실험 기지 안의 사람들은 바쁘게 움직이며 그의 생각에 따라 한 걸음 한 걸음 걷고 있다.그때가 되면 여기뿐만 아니라 제성 전체, 심지어 전 세계가 모두 그의 발 밑에서 기어 다니게 될 것이다.……극히 드물게 김서진과 한소은 그리고 그들의 아들이 모여 행복을 누리고 있다.김서진이 아들을 품에 안고 방을 한 개 또 한 개 지나오며 아들의 까르르 거리는 웃음소리를 들으니, 한소은은 순간 한 세기가 지난 것 같았다.그동안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났고 너무 많은 경험을 했다.한 실험기지에서 다른 한 실험에 이르기까지 각종 바이러스와 실험은 그녀의 생활을 가득 채웠다.비록 한소은이 원청현을 따라 의학을 오랜 시간 배웠다고 하지만, 이렇게 의학 실험과 바이러스와의 대결에 빠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지난 몇 년 동안 한소은은 방향을 바꾸고 향수를 만드는 데에 흥미를 느꼈었다.이것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이 세상이 여전히 아름답다고 느끼게 하는 것들이다.하지만 최근에 접촉한 것은 이 세계의 어두운 면을 보이게 했다.전염병,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발생한 일들은 모두 좋지 않은 일이었고 인위적으로 조성된 재난이었다.일어난 모든 일들은 한시도 숨돌릴 수 없게 했다.한소은은 소파에 앉아 김서진과 김준의 조화로운 모습을 보며 벌써 볼록하게 올라온 배를 만져 보았다.지금, 이 순간의 평화와 안일함이 얼마나 어렵게 얻어진 것인지 느꼈다.“엄마, 엄마…… 우리 집에 예쁜 누나가 오시는 거예요?”아이의 어린 목소리가 생각에 잠긴 한소은을 깨웠다.한소은은 정신을 차리고 김준의 작은 얼굴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그래! 우리 준
전화가 연결되었지만, 전화기 너머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한소은은 이상하다 생각되어 먼저 말을 걸었다.“여보세요?”그럼에도 답이 없자 한소은은 핸드폰의 문제라 생각되어 전화를 끊으려 했다.그 찰나, 전화기 너머에서 희미한 소리가 들려왔다.사람이 말하는 목소리가 아닌 난잡한 환경 소리였다.바람 소리와 은은하게 경적 소리가 뒤섞여 신경질이 날 정도로 시끄러웠다.한소은은 멍해져서 핸드폰을 가져와 다시 전화번호를 확인했다.확실히 그녀가 모르는 낯선 전화였다. 다시 전화를 귓가에 가져가 한 번 더 물었다.“여보세요? 말씀하세요!”전화기 너머에서는 여전히 답이 없었다.옆에 있던 김서진이 이상함을 눈치채고 한소은에게 물었다.“왜 그래요?”한소은은 핸드폰을 그대로 들고 김서진을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그녀는 1분이 되어서도 대답을 듣지 못하면 그대로 전화를 끊을 생각이었다.한소은이 곧 인내심을 잃으려 할 때, 전화기 너머에서 마침내 여자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소은 언니!”“가연이니?”여자의 목소리를 알아들은 한소은은 조금 당황했다. 하지만 곧 진가연이 지금 말하기 불편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너 왜 그래? 지금 어디야? 말하기 불편한 거야? 이 번호, 네 번호가 맞아? 이따가 다시 전화 걸까?”“아, 아니…….”진가연은 급히 한소은의 말을 끊었다. 일부러 목소리를 낮추었는지 조심조심 말하고 있었다.“소은 언니, 나 지금 집에 있어. 이 핸드폰은 가시 도우미 아주머니 것인데 숨겨둔 거 내가 찾아낸 거야. 언니, 내 아빠가 정말 이상해진 거 같아. 내 사촌 언니에게 컨트롤 당하고 있는 거 같아.”“주효영이 컨트롤하고 있다고?”한소은은 이렇게 되물었지만 말하고 나서 주효영이 이미 죽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그녀는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이어서 말했다.“급해하지 말고 천천히 얘기해. 지금 어떤 상황이야? 위험한 거야? 네 아버지가 너에게 무슨 짓이라도 한 거야? 만약…….”“난 괜찮아. 요즘은 괜찮아졌어. 아빠가 날 신
한소은은 거절하지 않았다.확실히 김서진이 함께 간다면 많은 일이 편리해진다.두 사람은 이튿날 아침이 밝자 마자 바로 진정기의 집으로 향했다.하지만, 두 사람은 문전 박대를 당했다.“죄송합니다. 집주인께서 몸이 편치 않으십니다. 다음에 다시 오세요!”가사 도우미가 좋은 태도로 두 사람의 방문을 거절했다.김서진은 처음으로 진정기의 집에서 문전박대 당한 것이다. 많이 방문을 한 건 아니었지만, 항상 순조롭게 진정기를 만날 수 있었다.주현철네 식구 보다도 더 쉽게 들어갈 수 있었다.김서진과 한소은은 서로를 한번 바라보았다.사실 두 사람은 이렇게 문전박대 당할 것이라고 예상했다.오늘날의 진정기는 예전의 그들이 알던 진정기가 아니다.진정기가 그들의 방문을 거절하는 건 이상하지 않았다.“몸이 편치 않다면 더욱 만나 봐야죠. 제 아내는 유명한 한의사예요. 진 부장의 병을 치료할 수 있으니 들여보내 주세요.”김서진이 가사 도우미에게 말했다.“진 부장에게 전해주세요. 백신 프로젝트에 관해서 할 예기가 있으니 잠깐 시간을 내달라고.”가사 도우미는 잠시 머뭇거렸다.하지만 김서진은 아는 얼굴이었기에 머뭇거리다 말했다.“그럼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집주인에게 물어보고 답변 드릴게요.”“네, 부탁합니다!”가사 도우미가 몸을 돌려 다시 들어가려 할 때 한소은이 그녀를 불러 세웠다.“잠시만요. 제가 주효영 씨와 함께 일 했었다고도 말해주세요. 그 여자가 아는 건 나도 다 알고 그 여자가 할 줄 아는 것도 다 안다고.”한소은의 말에 가사 도우미는 어리둥절 해졌다.그러자 한소은은 싱긋 웃으며 말했다.“그렇게 전해주시기만 하면 돼요.”의문이 가득했지만 가사 도우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전하러 갔다.가사 도우미가 한소은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지만 김서진은 그녀의 말을 알아들었다.“진정기가 주효영의 약을 원하는 것을 이용하려는 거죠? 당신에게도 그 약이 있다고 믿게 하려고?”“지금의 진정기가 예전의 그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으니 그가 원하는 것을 주려고
두 사람은 서로 한 번 마주 보며 의아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이건 확실히 두 사람의 예상을 벗어났다.솔직히 말해서 지금 진정기가 가장 필요한 건 주효영이 그를 컨트롤하는 약이다.하지만 주효영이 죽은 지금, 다른 사람이 그 약을 가지고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당연하게 그들을 찾을 것이다.그런데 오히려 그들을 쫓다니. 이건 조금 말이 안되었다.“죄송하지만 다시 한번 물어봐 주세요. 김서진이 왔다고 알려 준 거 맞나요?”한소은은 잠시 생각하다 다시 한번 당부했다. 하지만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가사 도우미는 안에서 문을 닫아 버렸다.사실 당부하지 않아도 김서진은 그들에게 있어서 낯선 사람은 아니었다.그럼에도 문을 열어주지 않는 건 일부러 열어주지 않는 것이다.“어휴…….”한소은이 손을 들어 문을 두드리려 할 때 김서진이 그녀의 손을 잡았다.그는 고개를 살짝 흔들며 옆을 보라고 눈짓했다.이상하다 느낀 한소은은 김서진의 시선이 가리키는 곳을 보았다.주택 이층 서쪽에서 진가연이 옷을 흔들며 그들에게 손짓을 하고 있었다.입 모양을 보면 이쪽으로 오라는 것 같았다.한소은과 김서진은 진가연이 손짓하는 곳을 따라 뒷문 방향으로 갔다.정원 뒤에는 자주 사용하지 않는 듯한 작은 문이 하나 있었다.진가연은 그곳에서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는지 그들이 도착하자마자 문을 열어주었다.그러고는 한소은의 목을 확 끌어안았다.“소은 언니! 드디어 왔네요!”그녀의 열정에 한소은도 마지못해 그녀를 안아주었다.“여기서 말하지 말고 일단 들어가자!”“응, 언니 말이 맞아!”진가연은 주위를 한번 둘러 보고는 한소은에게 말했다.“일단 내 방으로 가자.”한소은은 아무런 의심 없이 진가연을 따라 그녀의 방으로 들어가려 했다. 그러나 뒤에 서 있던 김서진은 난감한 표정을 지은 채 그 자리에 서 있었다.“뭐해요? 빨리 들어오지 않고? 그러다 아빠에게 들키면 어쩌려고 그래요?”진가연이 작은 목소리로 김서진에게 말했다.“그게…….”김서진은 눈살을 찌푸리며 그
누가 봐도 이런 상황은 정상적이지 않았다.자기의 집에서 마치 도둑이라도 된 듯 말소리를 낮춰야 한다니.“지금 이게 무슨 상황이야?”한소은은 더 이상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고 바로 물었다.“주효영이 죽은 거 알아?”그녀의 말에 진가연 얼굴에 걸렸던 웃음이 굳어져 버렸다.“응, 들었어.”“이 소식을 들었을 때, 네 아버지는 어떤 반응이었어?”“그날 밖에서 돌아오시고 부터 계속 분노에 가득 찬 거처럼 보였어. 아무도 방에 들이지 않고 물건은 부수는 소리만 들렸고, 나중에는…….”진가연은 어깨를 살짝 움츠리며 그날의 소리가 얼마나 무서운지 한소은에게 알려주는 것 같았다.“나중에는 가사 도우미가 들어가서 한참이나 부서진 물건들을 정리했어. 아빠는 이렇게 한바탕 물건을 부수고 나니 조금 진정이 되었고. 나중에는 그렇게 이상한 거 같지도 않던데.”“물건을 부수는 거 외에 다른 일은 없었어?”한소은이 잠시 생각하다 물었다.“네가 말한 대로면 주효영이 약으로 네 아버지를 컨트롤하고 있다고 했잖아. 그런데 주효영은 죽었고 이제 약이 없으니 네 아버지가 회복되었거나 그럴 기미가 보인다 거나 하지 않았어?”진가연은 한참 생각하다 고개를 저었다.“아니! 예전과 다를게 없었어.”“그럼, 너 한테는? 전에 널 방에 가두었다고 했었잖아. 밖의 사람들과 연락도 하지 못하게 하면서.”“내 핸드폰을 압수하고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지만 그때처럼 엄격하게 날 가두지는 않아. 어딘가 이상하다면…….”진가연이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머뭇거렸다.“어디가 이상한데요?”옆에서 듣고 있던 김서진이 문득 물었다.그러자 진가연은 김서진을 한번 쓱 보고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아빠의 반응 속도가 조금 느려진 거 같아요.”“반응 속도가 느려졌다고?”이런 증상이 있을 거라 예상하지 못한 한소은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예를 들면 어떤 방면에서?”“나 하고 말 할 때 가끔 내 말이 들리지 않는 것 같아. 그러다 한참 지나서 방금 뭘 말했냐고 묻기도 하고. 방금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