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소은이 자신을 쳐다보는 것을 본 김서진은 가볍게 웃었다.“그렇게 쳐다보지 마요. 나도 정부 부서의 사람들을 상대했었다는 거 잊으면 안 되죠.”그가 이렇게 말하자 오히려 한소은을 일깨워 주어 한 가지 일이 생각났다.“당신에게 물어볼 일이 하나 있는데…….”“얼마든지 물어봐요. 내게 이렇게 예의를 차릴 필요가 있나요?”한소은이 말을 다 할 필요도 없이 김서진은 곧 그녀의 뜻을 알아차리고 말을 이었다.한소은 부드럽게 미소를 짓고 물었다.“당신은 그래도 나보다 진정기에 대해 잘 알잖아요. 그 사람은 변덕스러운 사람인가요?”“아니, 정반대로 그는 독단적인 사람이에요. 왜 이런 걸 묻는거에요?”김서진은 이상하다는 듯이 그녀에게 되물었다.한소은은 고개를 살짝 흔들었다.그녀도 확실하지 않았다.그녀는 단지 두 통의 전화를 받았을 뿐이고, 지금까지 진정기를 만나보지 못했다.오직 진가연이 전화로 하소연하는 것만 들었다. 그러나 자세한 내용은 잘 알지 못했다.“당신이 아무런 이유 없이 이런 질문은 하지 않죠. 무슨 일이 일어났나요?”김서진은 직감적으로 예민함으로 이 일이 간단치 않다고 느꼈다.“가연이에게 일이 생겼어요.”김서진에게 숨길 것도 없다고 생각한 한소은이 말했다.“무슨 일인데요?”한소은은 대략적인 상황을 말해주었다.“가연이는 교만하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아이가 아니에요. 전에 진정기를 몇 번 본 적이 없어요. 그러나 그의 사람 됨됨이로 보아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닌 것 같아요.”한소은이 눈썹을 한껏 찌푸렸다.“맞아요.”그녀가 말한 것을 듣고 김서진도 이 일에 수상쩍은 점이 있다고 느꼈다.“내 생각엔 이 일은 주효영과 분명 연관이 있는 거 같아요.”김서진은 약간 눈살을 찌푸리고 있었다.“진가연의 그 사촌 누나 말인가요?”“맞아요!”한소은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녀는 나와 함께 연구소에서 함께 일을 했었어요. 하지만 나는 그녀를 본 적이 없어요. 심지어 그녀의 존재도 몰랐어요. 내가 그 연구소를 떠나고 나서야
김서진은 자신이 한소은의 피난처이자 보호막이며 그녀가 서식할 수 있는 항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중에 보니, 사실 한소은은 자신이 아는 것보다 훨씬 더 훌륭했고, 알면 알수록 그녀를 더욱 사랑하게 된다.“그냥 공부를 좀 더 한 건데, 뭘 그렇게까지.”칭찬받는 게 불편한 한소은은 조용히 중얼거렸다.“정말인데!”김서진은 한소은의 손을 살며시 잡고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진지하게 말했다.여기만 아니었어도 정말 품에 안고 딥 키스하고 싶었다.잠시 침묵이 흘렀을 때, 김서진은 뭔가 생각난 듯했다.“준이 요즘 어때요?”“이제야 아들 생각 해요?”한소은은 한심하다는 듯 김서진을 보며 입을 오므리고 웃었다.한소은은 김서진이 다 잊은 줄 알았다. 두 사람이 다시 만난 이후 지금까지 김서진은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그가 더 이상 묻지 않는다면 한소은은 아마 먼저 김서진에게 물었을 것이다. 당신 아들 기억하나고.“내 아들인데 당연히 해야죠.”김서진은 그럴 듯하게 말하며 한소은을 쳐다보았다.“준이는 아마 스승님 곁에 있을 거예요. 잘…… 있겠죠.”김준과는 한동안 연락하지 않았다. 그러나 스승 곁에 있으니 별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네?” 김서진이 의심스러운 표정을 지었다.“그리고 당신 스승님…….”“다시 천천히 알려줄게요!”한소은이 웃으며 말했다.“…….”‘이 여자가!’김이 모락모락 나는 물에 수건을 가볍게 넣고 적셔 짰다.모든 것이 질서 정연하다.오이연은 수건을 들고 목부터 어깨, 허리까지 남자의 몸을 천천히 닦았다.원래 튼튼했던 몸은 지금 이미 상처투성이다, 특히 가슴과 허리 두 군데의 상처, 눈에 띄는 총상이었다!흉터로부터 그때 총에 맞았을 때 얼마나 위험했는지, 얼마나 아팠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벌써 며칠이 지났는데, 매번 닦아줄 때마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허리를 닦고 멈추자 오이연은 몸을 돌려 수건을 던지고 고개를 숙였다. 눈물은 소리 없이 대야에 부딪혔고 작은 물보라가 튀었다.“울지 마!”
“울지 마!”살며시 이연의 손을 잡고, 이연의 손을 자신의 입술에서 끌어내리고, 언제나처럼 온화한 목소리로 담담하게 말했다.“나…… 돌아왔잖아.”오이연은 두 팔을 벌려 뒤에서 서한을 껴안고 울음을 터뜨렸다.그렇다, 서한이가 돌아왔다! 드디어 돌아왔다!그렇게 오랫동안 걱정한 끝에 그가 마침내 자기 곁으로 돌아왔으니, 그녀는 기뻐해야 했다. 하지만 마음이 무겁고 슬퍼 한 마디도 하지 못하고 그냥 서한을 안고 울 수밖에 없었다.천천히 돌아서서 서한은 오이연을 바라보았다. 손바닥이 그녀의 뺨을 스치고, 눈썹을 만지고, 그리고 입술에 닿고, 속삭였다.“그래서 김서진은 만나지 못했어?”“어디 있는지 몰라.”고개를 저으며 모이연의 눈물이 흘러내렸다.“너 귀국했다고 했잖아, 근데 그런 소식은 못 들었어. 김씨 그룹에서도 소식을 내보낸 적이 없는 것 같았고, 요즘 그룹 내부에서 소동이 있었던 것 같아. 말로는…… 김서진이 이미 외국에서 사고를 당했다고 하는데 위층에서 막고 있어 잠시 큰 소동은 일어나지 않았어.”“그럼 한소은은?”서한이 또 물었다.“소은 언니 요즘 바쁜 거 같아, 전화도 안 받고…… 그리고 나 지난번에 물어봤어…….”“뭘 물었는데?”서한은 이연의 턱을 움켜쥐고 그녀의 얼굴을 살짝 들어 올렸다. 그리고 이연의 눈을 노려보며 약간 화난 표정을 지었다.“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했잖아!”“나…… 안 말했어.”오이연은 깜짝 놀랐다. 서한의 욱하는 모습은 크게 본 적이 없어 좀 당황했다.“그냥 언젠가 내가 김서진이 반대편에 서면 누굴 돕는지 물었어.”“바보냐?”서한은 오이연의 손을 힘껏 뿌리치고 일어서 큰 수건으로 몸을 감쌌다. 그의 목소리는 약간 거칠었다.“그래서, 어떻게 뭐라고 말해?”“그…… 그럴 리가 없다고, 나와 김서진 모두 소중하다고 했어.”오이연이 낮은 소리로 말했다.사실 오이연 자신도 이 문제가 너무 어리석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참지 못하고 묻고 싶었다.아마 그녀의 마음도 몸부림치고 있을 것이다.한소은에 묻
“언니 말로는 김준이 안전한 곳에 있다고 했어, 어르신 댁은 아니고, 어디에 있는지는…… 나도 잘 몰라.”사실 오이연은 완전히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날 길에서 한소은을 막으면서 이미 어디인지 짐작이 갔다.그러나 말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숨기고 싶었다.“허…….”서한의 웃음이다. 착각인지 모르겠지만 오이연은 그의 웃음소리에서 비웃음을 느꼈다.“너희 둘 사이 그런 것도 공유 안 해? 너 정말 한소은에 대해 아는 게 뭐야?”“다 너 때문에 틀어진 거 잖아.”서한의 태도에 조금 화가 난 이연은 눈썹을 찡그리며 일어나 닦은 수건을 다시 대야에 던졌다.“난 원래 그런 걸 잘 안 물어봤어.”“지금 나 때문이라는 거야?”오이연을 힐끗 쳐다보고는 담배를 힘껏 빨고 한숨을 쉬며 말했다.“돌아오는 거 아니었어.”말을 마치고 서한은 일어서서 옆에 던져져 있는 셔츠 커버를 손으로 잡아당겨 단추를 채웠다.서한의 움직임에 당황한 오이연은 달려들어 그의 허리를 끌어안았다.“아니, 가면 안 돼, 가면 안 돼!”‘겨우 돌아왔는데 어떻게 가, 어떻게 가!’이번에 가면 또 언제 돌아올지 모른다. 겨우 그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는데 이렇게 보낼 수 없었다!오이연은 두 손을 꽉 묶고 서한을 안았다. 서한은 단추를 채우는 동작을 멈추고 한숨을 내쉬며 두 손을 돌려 그녀의 어깨를 잡으며 말했다.“잘 알아, 너와 한소은의 감정, 애초에 나도 김서진이에게 같은 마음이었어.”“…….”모이연이 머리를 그의 가슴에 묻고, 침묵한 채 말을 하지 않았다.서한은 한 손으로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천천히 말했다.“너나 나나 마찬가지야, 우리 둘 다 정이 많은 사람이고, 그것 때문에 상처받는 거야. 난 김서진을 위해 여러 번 생사를 걸었고, 후회한 적이 없어. 만약 이번에 그가 날 총알받이로 밀어내지 않았더라면 나도 김서진이 그런 사람인 걸 몰랐을 거야.”“봤어, 봤냐고!”갑자기 힘껏 그녀를 밀고 자신의 총알 구멍의 상처를 보여줬다.“여기야, 봤어? 바로 여기야!”“내 몸
김서진의 안배로 박소희는 곧 위층 VIP룸, 그의 옆방에 들어갔다.사실 아이에게는 신선함 빼고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아이는 가장 단순하고 순수하며 물질에 대한 요구도 그렇게 많지 않았다. 박소희는 단지 그녀의 인형을 가지고 있으면 되었다.“언니, 방을 왜 옮겨요?”눈을 크게 깜빡이며 그녀가 물었다.“옆방 아저씨가 너를 더 편안한 곳에 있게 하려고 그래, 마음에 안 들어?”한소은의 부드러운 목소리이다.“좋아요!”박소희가 고개를 끄덕였다.“근데 아래도 좋아요!”박소희의 순수한 웃음은 한소은의 심금을 울렸다.처음 위아래 환경이 다른 것을 보고 한소은은 탄식해 마지않았다. 그러나 아이들에게는 그렇게 큰 차이가 없었다.“요즘 약은 잘 먹고 있어?”한소은은 박소희의 정수리를 살짝 만지면서 그녀의 맥을 짚었고, 맥상으로 보아 아이는 이미 거의 다 나았다.곧 완전히 회복될 것이다.다만…….“언니, 옆방에 가도 돼요?”박소희가 조용히 물었다.“아직 안 되는 거예요?”정신을 차리고 한소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궁금해서 물었다.“옆방에 가서 뭐 할 거야?”교차 감염을 방지하기 위해 각 방의 환자 간에 서로 면회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았다. 모두 자기 방에 있어야 했다. 어떤 사람은 방에만 있는 것이 너무 답답하고 우울해서 정신과 의사이 치료까지 받았다.“옆방에 가서 아저씨한테 고맙다는 인사를 하려고요.”어린 목소리로 진지하게 답했다.한소은이 웃었다.“언니가 대신 아저씨한테 인사드렸어! 그러니까 약 잘 먹고 의사 선생님 말 잘 들어야 해, 소희가 빨리 나으면 아저씨도 기뻐하실 거야.”“그럴게요!”소녀는 빙그레 웃었다. 품에 인형을 안고 평범한 아이와 다를 바 없어 보였다.한소은은 일어나 그녀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병실에서 나와 다시 김서진 방으로 갔다.김서진이 한창 문을 닫고 정신을 가다듬고 있었다. 그리고 소리를 듣고 눈을 떠 그녀가 밖에서 걸어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심심해요?”한소은이 물었다.여기에는 어떠한 전자
그 동안 한소은은 겉으로는 평온해 보였지만, 마음은 이미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이건 그녀도 인정하는 바이다. 이러다가는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그런데 바로 이때 김서진이 왔다.한소은에게 김서진은 진정제이다. 매일 그를 볼 수 있고, 그에게 몇 마디 말을 하고, 그가 편안히 앉아 있는 것을 보고, 그의 평온한 안색을 보면 들뜬 마음도 안정될 수 있고, 무슨 일이 있어도 두려워하지 않을 자신이 생기기 때문이다.“오늘 어때요?”한쪽에 앉아 말하면서 손을 뻗어 그의 맥박을 짚었다.김서진도 익숙해진 듯 자연스럽게 팔을 뻗어 한소은에게 맥을 짚게 하였다.한소은의 손가락은 가볍고 연약하였다. 손목을 살짝 누르면서 말없이 맥박을 짚었다.몇 분 후 손을 거두고 그의 눈을 보더니 또 혀를 내밀게 하고 물었다.“오늘 혈액검사 결과가 나왔나요?”사실 그녀는 맥을 짚은 후에 이미 대략적인 상황을 알고 있지만 어쨌든 이쪽은 실험 센터이고 서양 의학도 있기 때문에 이쪽 혈액 검사와 기타 일련의 기계 검사 결과도 봐야 했다.“아직이요, 오후쯤일 거예요.”김서진이 대답했다.“약간의 빈혈이 있는 거 같은데, 오래 아팠으니 기혈이 좀 부족할 수도 있어요. 제가 약에 기를 보충하는 약재를 넣었으니 잊지 말고 마셔요.”“네, 선생님.”김서진이 한소은의 손바닥을 살짝 긁었다. 한소은은 간지럼을 타며 손을 접고 웃었다.“경씨는 지금 어떻게 되었나요?”김서진이 물었다.“아직은 아무 증상 없어요. 지금은 격리 관찰실에 있고, 며칠 지켜보다가 아무 문제없으면 퇴원 가능해요.”한소은이 답했다. 이 말을 하면서 한소은은 이전의 일이 생각났다.‘경씨 체질이 남다른 것 같아요. 데이터로 보면 밀접접촉한 사람 모두 감염 됐어요. 높은 감염률이죠. 근데 아무일 없다는 것은 아주 특이한 케이스예요.”“몸이 건강해서 그런가 봐요.”김서진이 웃었다.“서진 씨도 건강하잖아요. 저도 물어봤는데 아마 산속에서 오래 살다 보니 먹는 것이랑 생활 습관에서 차이가 잊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옆집에는 이미 많은 직원이 서 있었다. 방금까지도 팔팔 뛰던 천진난만하고 귀여운 소녀가 지금 그곳에 누워 얼굴에 마스크를 쓰고 예쁜 눈을 꼭 감고 있었다.한소은의 가슴을 쥐어뜯은 것처럼 아팠다. 그녀는 빠른 걸음으로 앞으로 나섰고, 그녀를 막 밀치려던 옆 사람은 그녀인 것을 보고 다시 옆으로 비켜섰다. 한소은은 단호하게 한 손을 박소희의 맥박에 얹고 손가락을 가볍게 꼬았다. 조금만 힘을 줘도 부러질 것 같은 작은 손목, 지금 박소희의 맥박도 아주 약했다.한소은의 마음은 무거웠다.이게 바로 그녀가 걱정했던 것이다. 이전 김서진도 그랬다. 겉으로 보기에는 거의 나은 것 같아 서양의학 절차에 따라 검사하면 이미 정상인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이틀도 안 되어서, 정확히 말하면 하루도 안 돼 바로 급전해서 악화되었다.이것이 바로 이 바이러스의 교활한 점이다.위장을 너무 잘한다! 사멸된 척하면서 몸 어딘가에 몰래 숨어 있다가 가장 무방비 상태이고 면역체계가 가장 소홀할 때 갑자기 공격을 한다. 한소은은 손가락에 힘을 주어 손목을 눌렀다. 이미 간호사가 링거 바늘을 준비해서 찌르려고 하였다. 이때 한소은이 그들을 멈췄다.“수액하지 마세요.”“???”다른 사람들도 잇달아 한소은을 바라보았다.“선생님, 지금 환자분 상황이 좋지 않아요. 수액하지 않으면 더 나빠질 수 있어요.”누군가가 다가가서 설명했다.이곳은 한의학과 서양의학의 두 파벌로 나뉘었다. 그러나 시대적 특수성 때문에 한의사는 서양의학보다 훨씬 적었다. 게다가 오랫동안 축적된 격화와 내부에서의 암투로 인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실제로 한의학에 대해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다만 고 주임의 체면을 봐서, 게다가 이곳은 어디까지나 국가 부서이기 때문에 그렇게 티가 안 났다.하지만 지금 이 생사를 다투는 시각에 한소은이 갑자기 나서서 수액하지 말라고 하니 다들 불만이 생겼다.간호사가 해석하고 나서 바로 주삿바늘을 들고 박소희 앞에 다가갔다.그러나 한소은이 병상 앞에 막아섰다.“수액하면 안 돼요! 지
한소은의 말을 믿는 사람도 몇몇 있었다. 그러나 확신할 수는 없었다.솔직히 말해서 이번 바이러스는 정말 심상치 않다. 이렇게 오랫동안 연구해 왔지만 아직도 정체에 대해 모르고 있고, 원래 이렇게 많은 엘리트들이 이곳에 모이면 정체를 밝히는데도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느끼는데 정말 전례 없는 도전인 것 같았다.그들뿐만 아니라 세계의 난제이기도 했다. 결국 전 세계의 우수한 의사들이 공동으로 이 문제를 연구하고 극복하고 있었다.“선생님, 제발 비켜주세요. 환자분 치료가 더 늦어지면 정말 위험해요. 죽을 수도 있다고요. 그 책임 질 수 있으세요?”상대방은 그녀를 믿지 않고 진지하게 말했다.“한의학은 부정하지 않아요. 근데 지금은 한의약으로 환자를 치료하기는 너무 늦어요.”그가 앞으로 나가려는데 한소은이 길을 막았다. 얼굴을 찡그리며 손을 들어 그녀를 잡으려 할 때 호통치는 소리가 들렸다.“그만해!”소식을 듣고 온 고 주임은 달려와 병실 안을 둘러보았다.“뭐 하는 거야!”“환자는 안 살리고 여기서 지금 싸우는 거야?”고 주임은 성난 눈빛을 머금고 방안의 모든 사람을 하나하나 스쳤다. 그리고 마지막 한소은에게 시선이 멈췄다.고 주임을 보고 앞서 한소은과 다투던 그 사람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주임님, 지금 환자분 급히 수액해야 하는데 한 선생님이 막고 있습니다. 이건 명백히 환자 치료를 방해하는 행위입니다.” 한소은은 아무런 변명도 하지 않았다. 그저 돌아서서 소희의 이불을 살짝 쑤셔넣고, 또 손을 뻗어 소녀의 이마를 만져보았다. 아직도 조금 열이 나고 있었다.이 증상은 김서진의 증상과 매우 유사하다.다만 당시 김서진이 병이 났을 때는 경험이 없었고, 자신의 가장 가까운 사람이었기 때문에 몹시 당황했다. 그래서 내린 결단도 지금처럼 서양의학, 수액, 긴급 이송이었다.당시 병세는 통제된 것처럼 보였지만 그 다음에는 끝없이 반복되는 열과 혼수상태이다. 나중에 그녀는 냉정하게 반성했고, 게다가
소은은 고개를 들어 눈물을 참으며 말했다. “한 가지 이상한 게 있어요.”“무슨 일이에요?” 임남을 달래던 임상언이 무심히 되물었다.“로사 왕자는 감금된 것이 아니라 그날 Y국으로 송환되었다고 들었는데, 그렇다면 왜 그동안 로사 왕자와 연락이 닿지 않았던 걸까요?” 소은의 말에 임상언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두 가지 가능성이 있겠죠. 신호가 나쁘거나 핸드폰을 확인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 로사 왕자가 저희 연락을 거부하고 있을 수도...”두 사람은 잠시 눈을 마주쳤다. 말은 없었지만, 둘 다 이미 답을 얻은 듯했다. 로사 왕자가 그토록 연락을 피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도 나름의 계획을 세우고 있는 건가?...3일 후. 소은은 마지막 침을 놓고 손을 거두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여왕을 쳐다보며 말했다. “오늘 시술로 폐하의 다리에 감각이 돌아오실 겁니다. 하지만 일어서는 건 천천히 시도하셔야 합니다. 너무 서두르시면 안 돼요.”소은은 말을 마치고 갑자기 미소를 지었다.“무엇 때문에 웃는 거지?” 여왕은 여전히 자신의 다리를 어루만지며 물었다. 이미 이틀 전부터 약간의 감각이 돌아왔음을 느낀 터라, 소은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소은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제가 쓸데없는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요. 사실 R10 실험을 고집하신다면 결국 폐하께서는 이 몸을 떠나게 되실 텐데, 제가 이 몸에 애쓰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여왕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계속한 거지?”“어쩌면, 폐하께서 마음을 바꾸실 지도 모르니까요.” 소은은 부드럽게 대답했다. “어쩌면 자신의 몸이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거든요.”“우리 모두 이 세상에 올 때 두 손은 비어있지만, 이 몸만은 오로지 우리 자신의 것이죠. 몸마저 버리신다면, 그 영혼은 여전히 진짜 자신일 수 있을까요?”“그렇구나.” 여왕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
소은은 조용히 몸을 일으키며 여왕을 쳐다보았다. “물론이죠.” 소은은 담담하게 답했다. 그 대답에는 원망이나 비난의 기색은 전혀 없었다.“그렇다면... 조금 아쉽네.” 여왕은 생각에 잠긴 듯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기 마련입니다. 세상 모든 일은 균형을 맞추려 하죠. R10이 폐하께서 이루고자 하는 꿈이라면, 저는 그것을 막을 수 없어요. 다만, 그때가 되어 성공하든 실패하든, 저는 그 모습을 보지 못할 테니 부디 후회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소은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문 밖으로 나갔다.릭은 여전히 문 앞에서 대기 중이었다. 그녀와 여왕의 대화가 거의 다 들렸던 듯, 둘의 시선이 잠시 교차했다. 소은이 그를 지나쳐 나가자, 릭은 곧장 방으로 들어갔다.“여왕 폐하.” 릭은 여왕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그녀의 다리에 꽂힌 은침을 보자 릭의 눈빛이 굳어졌다. “이건...”“괜찮아. 곧 소은이가 와서 침을 빼줄 거야.” 여왕은 무심하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릭은 여전히 불안한 눈빛으로 말했다. “폐하께서 너무 방심하시는 것 아닙니까? 만약 한소은이 폐하께...”“그럴 리 없다.” 여왕은 단호히 그의 말을 잘랐다.릭은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설마 그 여자를 믿으시는 겁니까?”여왕은 대답 대신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녀도 릭의 질문이 아니었다면 자신이 소은을 믿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오랜 세월 누구도 쉽게 믿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그녀는 소은을 의심하지 않았다. 심지어 은침에 독이 묻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제가 가서 잡아오도록 하죠.”여왕이 생각에 잠기자 릭은 바로 뒤돌아섰다.“거기 서!”여왕은 결연히 말했다. “난 믿어.”릭은 한참을 침묵하며 여왕의 결정을 받아들였다....임상언은 아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비록 아들을 구하려는 결심을 굳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희망이 사라지는 듯했다.
소은은 허리춤에서 허리띠처럼 생긴 물건을 꺼내더니 조심스럽게 풀어내며, 그 안에 숨겨진 가느다란 은침을 꺼냈다.“이건...” 여왕은 깜짝 놀라며 소은을 쳐다봤다. 소은이가 은침을 항상 가지고 다닐 줄은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말해봐, 네 요구가 뭐지?” 여왕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마음을 가다듬으려 애썼다. 너무 무리한 요구라면 거절하면 그만이다. 여왕은 절대 소은에게 휘둘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소은은 차분하게 말했다. “제가 여기서 나올 수 있었던 건 로사 왕자님 덕분입니다. 그러니, 왕자님을 책망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그게 다야?” 여왕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소은이 여기까지 와서 자신과 조건을 따지는데, 결국 요구한 게 단지 로사를 처벌하지 말라는 거라니. 자신이 잘못 들은 건가 싶었다.“로사는 내 아들이다. 내가 정말 내 아들에게 손을 댈 리는 없지. 괜히 기회를 헛되게 쓴 건 아닌가?” 여왕은 고개를 저으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전 폐하께서 정말 로사 왕자님께 처벌을 내리시지 않을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왕자 폐하께서 저를 구해준 건 사실이기에 저도 왕자 폐하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소은은 조용히 말했다. “게다가 지금 왕자 폐하를 감금하시고 자유를 제한하고 계시지 않나요?”여왕은 의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니야. 난 단지 로사를 Y국으로 돌려보냈을 뿐이야.”“로사가 여기서 내 일을 여러모로 방해하긴 했지만, 우리 모자 사이가 더 악화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국내에서도 로사가 필요하니 Y국으로 돌려보낸 것뿐이다.” 여왕은 담담하게 말했다.“그런데 왜 왕자 폐하의 전화가 연결되지 않죠?” 소은은 잠시 멈칫했다. 단지 귀국했다면 국제전화를 받을 수 있을 텐데, 연락이 닿지 않았기에 여왕이 로사를 가둬놓았다고 오해할 수밖에 없었다.여왕은 깊은 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나도 잘 모르겠군. 그날 내가 화가 났던 건 사실이지만, 곧바로 Y국으로 돌아가도록
“삼일이면 됩니다.” 소은은 여왕을 쳐다보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삼일? 고작 삼일?” 여왕의 눈에는 믿기지 않는 놀라움이 서렸다. 그녀는 적어도 몇 달, 아니 최소한 몇 년은 걸릴 줄 알았다. 그러나 고작 삼일이라니, 그녀로서는 상상도 못 한 시간이었다.삼일쯤이야. 십 수년을 이렇게 버텨왔는데, 삼일쯤 더 기다린다고 달라질 게 뭐 있겠는가?“삼일 안에 정말 나아질 수 있는 건가? 내가 정말 다시 일어서서 걸을 수 있는 건가?” 여왕은 두 손으로 자신의 다리를 힘껏 눌렀지만 여전히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그녀는 소은의 말을 쉽게 믿을 수가 없었다. 이 다리가 감각을 잃은지 너무 오래되어 치료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여왕은 여러 나라의 명의를 찾아 다녔지만, 그들은 단지 병의 악화를 늦출 수 있을 뿐 다리를 완전히 회복시키는 건 불가능하다고 했었다. 그러나 지금 소은은 그녀 앞에 서서 확신에 찬 얼굴로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녀는 속으로 자신도 모르게 그 말을 믿고 싶어졌다.“이전처럼 완벽하게 걸을 수 있을 거라고 장담할 순 없어요. 너무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아서 근육이 많이 위축됐거든요. 하지만 서서히 일어나서 조금씩 회복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소은은 진지한 어조로 답했다.여왕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정도라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젊었을 때처럼 완전히 회복되는 것을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만약 휠체어와 지팡이 없이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 그 자체로도 그녀에겐 더할 나위 없는 희망이었다.“좋아. 삼일, 기다리겠네. 필요한 게 있나?” 여왕은 기분이 좋아져 말을 한층 부드럽게 했다.“임남...” 소은이 말을 꺼내자마자 여왕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녀는 곧바로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 “그건 안 돼. 그런 요구는 하지 마라.”“제가 말한 건 임남을 바로 풀어달라는 게 아닙니다. 그냥... 그 아이가 괜찮은지 알고 싶고, 가능하다면 아버지와 한 번 만날 기회를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 실험을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은 저와 프레드 뿐이기 때문입니다.” 소은은 잠시 생각하다가 덧붙였다. “아니면 주효정을 믿으실 건가요?”“나는... 아무도 믿지 않아.” 여왕은 얼굴을 차갑게 굳히며 휠체어를 돌렸다.“여왕 폐하께서 이 실험에 집착하고 계시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인가요? 세상을 둘러보고 싶다거나, 짐을 내려놓고 잠시 쉬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으신가요? 수십 년간 왕좌에 오르셨지만, 정말로 아직도 그 삶이 좋으신가요? 언제나 긴장하며 위태로운 자리를 견디는 고단한 나날, 정말 아직도 벗어나고 싶지 않으신가요?” 소은은 여왕의 등을 쳐다보며 부드럽게 물었다.여왕은 아무 말 없이 자신의 무릎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살짝 떨구었다. 그녀는 시선을 다리로 내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세상을 둘러본다? 나는... 걷는 게 어떤 느낌인지도 잊어버렸어.”여왕은 오랜 세월 동안 다리를 쓰지 않았고, 처음에는 억지로라도 일어설 수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상태는 악화되었고 이제는 아예 휠체어 없이는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그녀는 휠체어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소은이 ‘세상을 둘러보라’는 말을 꺼내자 가슴이 아팠다.“만약... 폐하께서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요? 제가 다시 걷게 해드린다면요?” 소은은 조용히 여왕의 뒤에 서서 말했다.여왕은 잠시 멈칫하더니, 눈빛이 날카롭게 변하며 휠체어를 돌려 소은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정말이냐?” 여왕의 눈에는 억누를 수 없는 희망과 깊은 의심이 뒤섞여 있었다.소은은 대답 대신 그녀의 시선을 천천히 여왕의 다리로 내리고, 천천히 다가가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손을 뻗어 여왕의 무릎 위에 가볍게 손을 올렸다.여왕은 살짝 몸을 떨었다. 사실, 그녀의 다리는 거의 완전히 감각을 잃은 상태라서 소은의 손길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아마도 너무나 간절히 다시 일어서고 싶기 때문이었을 것이다.소은은 아무 말 없이 여왕의
“맞아요, 임남 때문이기도 하지만, 폐하 때문이기도 합니다.” 소은은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제가 정말로 떠나버렸다면, 가장 초조해지는 사람은 사실 여왕 폐하 아닐까요?”여왕은 코웃음을 치며 차갑게 말했다. “내가 초조해질 이유가 뭐지? 어차피 내 손엔 네 약점이 있잖아. 너를 다시 잡아오는 것도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고.”“약점이요? 임남 말씀이신가요?” 소은은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잊지 마세요, 임남이는 제 아들이 아닙니다. 저에게는 제 친자식이 셋이나 있어요. 만약 제가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임남을 포기해 제 아이들을 지키려 한다면, 그 약점이 과연 제게 약점이 맞을까요?”여왕이 입을 열기도 전에 소은은 다시 말을 이었다. “게다가, 그 아이에겐 목숨을 걸고서라도 구하려는 아버지가 있습니다. 만약 임상언이 폐하께 끝까지 맞서기로 결심한다면...” “폐하께서야 높은 자리에 있으니 이런 평범한 상인을 하찮게 여기실 수 있지만, 임상언 씨가 단순한 상인이 아니라는 걸 잊으시면 안 됩니다. 임상언 씨의 사업은 세계 곳곳에 뻗어 있어요. 임상언 씨가 목숨을 걸 각오가 되어 있다면 그 어떤 일도 할 수 있겠죠. 혹시라도 바깥에 소문이 퍼져 폐하와 Y국의 명망이 손상된다면, 곤란하지 않겠습니까?”“너...” 여왕은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반박할 말이 당장 떠오르지 않았다.여왕이 화가 난 것을 보고, 소은은 한결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화내지 마세요. 제가 돌아온 건 폐하를 자극하려는 게 아닙니다. 함께 최선의 방향을 찾고자 돌아온 거예요. 사실 폐하께서 H국에 오신 일이 밝혀진 건 아니지만, 꽤 오랜 시간 H국에 머물고 계셨습니다. 정말로 H국이 이 사실을 모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세요?”여왕은 말없이 그녀를 쳐다보았다. “지금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건 폐하의 체면을 살려드린 겁니다. 그러나 폐하께서 이곳에서 계속 머무르시며 혹여 무리수를 두신다면, 얼마나 더 체류하실 수 있을까요? Y국도 계속해서
릭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여왕은 모니터에서 시선을 돌리며 담담히 말했다. “소은을 데려와. 어디 한번 무슨 변명을 할지 들어보자. 또 어떤 이야기를 꾸며낼지 궁금하네.” 여왕은 휠체어를 살짝 돌려 더 이상 모니터를 보지 않았다.“여왕 폐하?” 릭은 망설이다가 말했다. “한소은이 거짓말을 할 걸 아시면서도 굳이 왜...” 그러나 여왕은 그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단호히 말했다. “듣고 싶어!” 이 한마디에 릭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그는 곧장 소은이 있는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소은이 정말로 잠이 들려고 하던 순간, 문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그녀는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다. 눈을 뜨는 순간, 문이 열리면서 릭이 문 앞에 서 있었다. 그의 얼굴은 굳어 있었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여왕께서 한소은 씨를 만나고 싶어 하십니다.” 소은은 차분한 표정으로 릭을 쳐다보았다. 마치 모든 상황을 예견한 듯 고요하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와 동시에 임상언은 소은보다 먼저 일어나 문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가 문에 도착하자마자 릭이 손을 들어 그의 앞을 막았다. “그쪽은 남아 계시죠.” “뭐? 우리 둘은 같이 온 거야!” 임상언은 소은을 돌아보며 그녀에게 눈짓으로 도움을 요청했다. 릭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여왕 폐하께서 그쪽을 부르지 않았으니 여기 남으시죠.” 릭은 더 이상 임상언에게 말을 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소은은 임상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부드럽게 말했다. “절 기다리고 있어요.” 임상언은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억지로 마음을 다스리며 그녀가 릭과 함께 방을 나서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조심해요.” 임상언은 소은을 향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소은은 미소를 지어 그에게 답했고, 릭을 따라 여왕의 방으로 향했다. 익숙한 길을 따라 걷는 그녀는 곧 여왕의 방에 도착했다. 릭이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여왕 폐하, 데려왔습니다
소은이 임상언을 데리고 대사관에 도착하자,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눈에 띄게 당황했다.한 사람이 서둘러 소식을 알리러 가더니, 이내 주변 구석구석에서 누군가가 몰래 그들을 엿보는 기척이 느껴졌다. 곧이어, 소은이 잘 알고 있는 여왕의 측근 몇 명이 경계 어린 눈빛으로 다가와 그들을 안으로 안내했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그들은 소은과 임상언의 몸을 샅샅이 검사하며 위험 물품을 소지하지 않았는지 확인했다. 철저한 검사가 끝난 후에야 비로소 경계가 풀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여왕을 만나지 못했고, 한적하고 깊숙한 방에 대기하도록 배정받았다. 오랜만에 돌아온 이곳은 소은에게 익숙하면서도 낯설게 느껴졌다. 익숙한 것은 이 장소였지만, 낯선 것은 지금의 마음가짐이었다. 예전에는 이곳이 싫고 불쾌하기만 했으며,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은 장소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임무와 사명을 가지고 돌아왔고, 그녀의 목표는 단순히 여기를 떠나는 것이 아닌, 중요한 일을 완수하고 무사히 돌아가는 것이었다.반면, 임상언은 눈에 띄게 불안해 보였다. 그는 두 손을 맞잡고 무릎 위에 놓은 채,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다리를 가볍게 떨고 있었다. 소은은 그의 초조함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임남을 생각하면 마음이 몹시 불안하고 조급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여기까지 왔으니 임남을 반드시 볼 수 있을 거예요. 그러니 긴장 좀 풀어요.” 소은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임상언은 그녀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발을 땅에 꾹 눌러 다리를 멈췄다. 겉으로는 조금 안정된 듯 보였지만, 그의 얼굴은 여전히 긴장감이 가득했고 미세하게 떨리는 얼굴 근육이 그의 불안한 마음을 보여주었다. 마음을 진정시키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소은은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다.두 사람은 한참을 기다렸지만, 여왕을 만나러 오라는 사람은커녕 상황을 확인하러 오는 사람조차 없었다. 긴장했던 임상언은 결국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대체 무슨 의도인 거죠? 왜 아직
“제발 부탁이에요. 안에서는 소은 씨 말만 따를게요. 소은 씨가 시키는 대로 다 할 테니까, 제발 절 데려가 주시면 안 돼요?” 임상언은 진심 어린 목소리로 소은에게 간청했다. 자존심은 이미 버린 지 오래였다. 아들을 만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그를 이 지경까지 이르게 했다. 소은이 반드시 돌아가겠다고 결심한 순간, 임상언은 이미 마음을 굳혔다. 자신이 함께 가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같이 가면 의심을 받거나 제지를 당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전 아니에요.” 임상언은 계속 설득을 이어갔다. “임남이 그 안에 있다는 걸 모두 알고 있잖아요. 제가 아들을 만나고 구하려고 하는 건 당연한 일이에요. 그리고 아들을 위해서 제 목숨을 바치는 것도 이해될 수 있는 일이죠. 그러니 제가 가는 게 가장 올바른 선택이에요.” 긴 침묵 끝에, 소은이 입을 열었다. “임상언 씨 말이 맞아요. 전 동의합니다.” 소은은 말을 마치고 서진에게 시선을 돌렸다. 서진은 잠시 생각하더니 천천히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저도 동의합니다.” 원청현은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두드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나도 동의하지.” 잠시 침묵하던 진정기 역시 마침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동의합니다.” 마지막으로 원철수는 주변을 둘러보며 한숨을 내쉬고 손을 펼쳤다. “모두 동의했는데 내가 뭐라고 반대하겠어. 나도 찬성이야.” 사실 원철수의 의견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임상언에게 지지를 표현하는 의미였다. 임상언은 눈시울이 붉어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모두들 고마워요.” “이게 뭔 감사할 일이라고. 어쨌든 안에 들어가면 절대 신중해야 해. 무슨 일이 있어도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네 입으로 한 말 반드시 지켜!” 원철수는 그의 결심을 칭찬하면서도 걱정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원철수는 속으로 임상언의 결단에 감탄했다.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그는 분명 최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