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없어요!”한소은과 말다툼을 하던 그 사람이 말했다. 그리고 나서 박소희에게 달려가려고 했다.한소은은 그의 손을 꽉 눌렀고, 그는 뒤로 손을 떼려고 했지만 그녀의 다른 손에 꽉 잡혔다.다들 방호복을 입고 있어 거동이 불편하기는 마찬가지지만 연약한 그녀가 힘쓴 것을 보고 다들 놀랬다.“뭐해, 사람 살리지 않고!”“수액하지 말라니까!”한소은은 갑자기 손을 내저었고 그 사람을 연신 몇 걸음 뒤로 물러나게 했다.목소리가 너무 컸는지 아니면 그녀의 기세가 너무 강했는지 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잠시 멍하니 있었다.고 주임이 한 걸음 앞으로 걸어가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사람 목숨이 달렸어요!”“알아요!”확신이 담긴 목소리이다.“주임님, 저를 믿고 기회를 주세요! 제가 보여드릴게요. 저 이 바이러스 잘 알아요. 이건 분명히 속임수입니다. 속으면 안 돼요! 수액하면 바이러스가 더 강해져요.”“어이없네!”누군가 울분을 터뜨리며 말했다.고 주임은 한 손을 들어 제지하고 다시 스크린의 숫자를 보았다. 심전도는 변동이 크지만 적어도 안전 범위 내에 있었고, 가끔 변동이 있었지만 그들이 다투고 있는 사이에 다시 정상 범위로 돌아왔다.오랫동안 의학에 종사해 왔지만 확실히 보기 드문 상황이다. 한창 생각 중에 곁에 있던 한 사람이 참지 못하고 냉소했다.“말하는 건 쉽죠! 근데 환자분이 정말 위험하다면요? 만약 정말 한 선생의 판단 미스로 목숨을 잃는다면요?”“그럼 제 목숨을 가져가세요!”그의 말을 끊고 소운은 맹세코 말했다.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침묵했다.다들 의사이고 목숨을 구하는 건 천직이지만 신은 아니니 상황을 벗어나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하여 한소은 그 말의 무게를 잘 알고 있었다. 그 누구도 자기 목숨을 가지고 환자의 생명을 보장할 수는 없었다.몇 초 동안의 침묵이 흐르고 그 사람이 다시 비웃는 소리가 들렸다.“말이야 그냥 해도 되는 거고, 정말 잘못된다 해도 누가 감히 당신 목숨을 가져가겠어요!”“맹 선생!”고
“알았어요, 그럼 여긴 한 선생에게 맡길게요.”침묵 중 고 주임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그런데 정확한 결과는 언제 줄 수 있나요?”“오늘이요.”한소은이 긍정적으로 말했다.그녀의 경험과 바이러스에 대한 이해에 따르면 항생제와 같은 약물의 자극과 추가 가속이 없었다면 바이러스는 오히려 오래 버티지 못했다. 게다가 그녀가 끓인 물약으로 인해 인체 자체의 면역력이 깨어나 저항했다면 오늘 밤 반드시 결과가 보일 것이다.고 주임은 한소은을 깊이 쳐다보았고, 그녀의 침착한 눈빛을 보고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옆에 누군가 머뭇거리며 말했다.“주임님…….”비록 한소은은 자신만만해 보이지만 만약 정말 문제가 생긴다면 그녀 혼자만의 책임이 아니다. 고 주임은 손을 내저었다.“나머지 선생님들은 다른 환자분 병세를 지켜보세요, 비슷한 현상이 발생하지 않도록 관심을 갖고, 대응 가능하도록 유심히 살펴야 합니다.”떠난 후 실험 구역으로 돌아와 일련의 소독 작업을 마치고 보호복을 벗자 앞서 한소은과 다투던 의사가 고 주임에게 다가왔다.“주임님, 한 선생을 믿는 거 알지만 그래도 말하겠습니다! 바이러스 전문은 우리입니다. 학벌을 봐도 여기 의사 쌤은 해외 유학이고 상 받은 의사들인데 한소은은요, 무슨 학력이죠? 심지어 의대 출신도 아니예요, 근데 그 말 믿으세요?”“한의학을 배웠잖아요.”고 주임이 손가락을 닦으며 담담하게 말했다.“더구나 한 선생 말도 도리가 없는 건 아니예요.”“도리요?! 전 모르겠는데요!”그는 냉소하며 한동안 잠자코 있던 모 선생에게 고개를 돌렸다.“모 선생님, 한소은은 모 선생님과 고 주임이 찾아왔다고 하던데, 난 왜 한의계에서 이렇게 젊고 유능한 사람이 있다는 걸 몰랐죠?”“한의계 나도 아는 사람이 있는데, 애초 원 어르신을 찾으러 간 거 아니었어요, 근데 왜 이런 여자를 찾아왔죠! 나 외국에서 오래 있었던 거 사실이예요. 하지만 한의학을 전혀 모른다고는 할 수 없죠. 한의학은 경력이잖아요, 나이가 많으면 많을수록 경험이
한소은은 끓인 탕약을 쏟아냈다. 김이 모락모락 나고 약초 특유의 향긋한 냄새가 났다. 그녀는 집중해서 탕약을 한 그릇에 붓고, 또 다른 난로 위의 주전자를 가지러 돌아섰다. 그 안에 끓인 것은 독을 맑게 하고 열을 내리는 약즙인데, 마시는 것이 아니라 방에 뿌린 것이다.다만 농도로 희석한 후 분무해야 했다.모든 일을 마치고 한소은의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다행히 여기에서는 보호복을 입을 필요가 없었다. 아니면 땀투성이일 것이다.방호복을 벗을 때마다 샤워를 한 번 한 것 같았다. 가슴과 등이 흠뻑 젖어 있는데, 체질이 나쁜 자는 아마 그대로 지쳐 쓰러졌을 것이다.한쪽 의자에 앉아 몸을 돌려 종이와 펜을 들고 중요한 데이터를 기록하기 시작했다.한 손으로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데이터 기록을 한데 모아 적어 놓았는데 다른 생각이 났다.이전에 이 교수 쪽의 실험 기지에서 그녀는 일찍이 데이터를 폐기하려고 시도했지만, 원철수에 의해 실수로 복구되었다.나중에 해커를 찾아 데이터베이스를 해킹하려고 했다. 당시 윤설웅은 결과가 나오면 그녀에게 알리겠다고 했지만 지금까지 아무 소식도 없었다.그가 이 일을 까맣게 잊어버린 것인지, 아니면 그가 찾는 사람이 실력이 부족한지, 아니면 실험 기지의 사이버 방어 시스템이 너무 강한 것인지 아직은 모른다.고개를 저으며 한소은은 조금 뻐근해진 자신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만약 윤설웅이 아직 찾지 못했다면 어르신은 아마 크게 슬퍼할 것이다.이때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들어오세요.”ㅎ나소은은 고개를 들어 자신의 콧등뼈를 문질렀다.“한 선생.”문을 밀고 들어온 사람은 모 선생이다. 그는 손에 서류를 들고 곧장 그녀를 향해 걸어왔다. “이건 고 주임이 한 선생한테 주는 서류입니다.”“무슨 서류인가요?”한소은은 손을 뻗어 받아 의심스럽다는 듯 한 마디 묻고는 고개를 숙여 보았다.위의 첫 줄을 보고 한소은은 이미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무증상 감염?”“맞아요.”모 선생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알겠습니다.”한소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모범이 아직 서 있는 것을 보고 물었다.“다른 일 있으세요?”“…….”모범은 몇 번이나 말을 그쳤지만 결국 참지 못하고 물었다. “한 선생, 소희…… 정말 자신 있으세요?”아까 거기에서 물어볼 수 없었던 질문이다. 사람들도 많고 서로 다른 계통의 의사이기도 하기 때문에 모범도 한소은의 판단에 확실성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사람들 앞에서 자기 동료를 의심하는 것은 타당하지 못한 행위이다. 어쨌든 사람들 앞에서 의심하면 바로 분열을 일으키는 것이다. 토론을 할 수 있지만 다른 의학에 마음대로 다른 계통의 의학에 뭐라고 하면 안 되는 것이다. 과학이라는 것은 지금까지도 설명할 수 없는 것이 많으며, 모든 일은 양면적으로 보아야 한다. 즉 과학적인 변증법적이다.한소은은 모범을 깊이 보았다. 전에 병실에서 그녀를 의심했던 사람이라면 해명하기도 귀찮았을 것이다.선입견의 의심과 부정, 한소은이 아무리 설명해도 소용없었다.“이전에 서진 씨도 이런 반응을 보였어요. 당시 너무 걱정되고 경험이 없어 잘못된 판단을 내렸고, 서진 씨도 아픔을 겪었지만 다행히 다행히 잘 견뎌냈어요. 근데 소희는 어리잖아요. 같은 상황을 겪으면 버티지 못할까 봐 두려웠어요. 수액하는 안 하는 것보다 하는 게 더 위험해요.”몇 초를 멈추고 한소은은 두 손을 펴면서 약간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제가 이렇게 말하면 이해 가나요?”모범은 눈살을 찌푸리며 열심히 듣고 나서 다시 생각했다.“알겠습니다. 하지만 소희 상황이 김서진 씨랑 같다고 확신할 수 있습니까?”“네!”그녀는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고, 눈빛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한소은의 모습을 보면서 왠지 모르게 모범의 마음이 조금 편해진 것 같았다. 뜻밖에도 그녀를 믿고 싶어졌다.“솔직히 한 선생 믿지는 않아요.”모 선생이 담담하게 말했다.“하지만 한 선생 말이 맞았으면 좋겠어요.”어쨌든 그들 모두 의사이고, 의사의 입장에서 보면 당연히 환자들이 치유되고
“맹 선생!”다시 걸음을 멈추고 모범은 고개를 돌려 맹호군에게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지난번 데이터에서 실수했죠. 다행히 알아내서 큰 착오는 없었지만 이런 실수 두 번은 용납할 수 없습니다!”그때 그 일을 떠올리고 맹호군은 약간 짜증을 내며 모범의 어깨를 짚고 말했다.“네네, 알았어요! 이런 실수 딱 봐도 내가 일부러 그런 게 아니잖아요. 그래서 맹 선생이 좋다는 거죠, 동료를 아끼고, 정말 고맙게 생각하는데, 어때요, 나랑 한 잔 할까요?”“근무시간에 술은 안 돼요!”눈살을 찌푸리며 그를 보면서 모범이 말했다.“술은 어디서 났어요?”여기서 식사는 모두 일괄적으로 제공되고 집도 마음대로 돌아갈 수 없는데 근데 술이라니? 어디서 마시는 술?맹호군이 어설픈 웃음을 지었다.“농담이죠, 술은 당연히 없죠, 그냥 웃자고 말하는 거예요! 내 말은 나중에 우리가 성공하고 나가면 축하주 마셔야 한다는 얘기예요! 모 선생 한테도 고마운 일이 많고!”“다 일 때문인데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농담이라는 말에 모범은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사양하며 발길을 돌렸다.그러나 맹호군은 그의 길을 막고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모 선생, 좀 물어볼 것이 있는데요.”“무슨 일입니까?”모범의 말투가 별로 좋지 않았다.그는 급하게 일보러 가야 하는데 맹호군이 자꾸 질척댔다. 짜증은 나지만 동료이고, 또 맹호군은 외국에서 유학을 다녀온 의사이기에 일하는 스타일이 서양문화의 영향을 받아 그들과 달리 조금 열정적이었다. “그 한 선생, 잘 알죠?”턱으로 뒤쪽 방향을 가리키며 그가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모범은 그를 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당시 고 주임과 원 어르신을 모시러 갔던 게 맹 선생이니까 잘 알 것 아니예요. 왜 원 어르신이 아닌 저 젊은 여자를 데리고 왔어요? 저 사람…… 정체가 뭐예요?”말하며 주머니에서 담배 한 개비를 더듬어 그에게 건네주었다.눈썹을 찡그리며 모범은 손에 든 담배를 보았다.“여기 흡연 구역 아니예요.”“아…….”정
정신을 차리고 나서 모범은 말투가 조금 누그러졌지만, 여전히 한소은에 관하여 입을 열지 않았다.“맹 선생, 여기에 올 수 있는 분들 일반인은 아닙니다. 맹 선생도 그렇고요, 고 주임이 이미 말했잖아요, 다들 동료이고 또 이 프로젝트를 위하는 의사들이니까 다른 일에 대해 너무 궁금해하지 마세요!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일은 자신의 맡은 일은 잘 해내는 겁니다.”모범이 잠시 멈추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지난번 모 선생의 실수는 제때에 바로잡을 수 있어 보고하지는 않았지만 만약 또 생긴다면…….”“아닙니다. 그런 일 절대 일어나지 않을 거예요!”모범이 내민 손가락을 얼른 잡고 맹호군은 히죽히죽 웃으며 말했다.“다시는 이런 실수를 하지 않을 거예요, 약속할게요! 맹 선생 말이 맞아요, 내가 그렇게 묻는 거 아니었어요! 아, 시간이 다 된 것 같은데요, 저도 일보러 가야겠어요!”말을 마치자, 그는 손을 떼고 고개를 돌려 더 이상 모범의 길을 막지 않고 가버렸다.그가 멀리 가는 것을 보고, 모범은 마지못해 고개를 저으며 자신의 일을 계속했다.“물건은 다 준비됐어?”얼굴을 보지 않아도 누군지 알 수 있는 나지막하고 쉰 목소리, 이 목소리는 임상언의 악몽이었다.몇 번이나 악몽에서 깨어났을 때 귓가에 맴도는 소리가 바로 이 소리이다.천천히 고개를 들지만 시선은 아래로 내려갔다. 의자에 서도 키가 자기 키밖에 안 되는 사람을 바라보며 임상언은 주먹을 꽉 잡고 겸손하게 입을 열었다.“그래, 언제든 출발할 수 있어.”“좋았어! 내일이면 난 이 지옥 같은 곳에서 나갈 수 있어!”그는 두 팔을 벌리고 웃었고, 웃음소리 방안에서 맴돌았다.“넌 왜 안 웃어? 기쁘지 않아??!! 우리 곧 성공하게 돼! 새로운 곳에 가게 되면 우리 실험도 성공하는 거야, 그럼 모두가 내 명령에 따르게 돼!”한 손을 주먹을 불끈 쥐고 그의 눈에서 야릇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임상언이 고개를 숙였다.“난 그렇게 쉽게 성공하지 않을 것 같은데.”“응?! 너 지금 날 의심하는 거야?
“그 쓰레기들이?”남자가 아주 날카롭게 웃으며 풍자하였다. 엄연히 그가 말하는 ‘쓰레기’는 안중에도 없었다.임상언은 고개를 저었다.“아니, 듣기로 국내 전문이들이 모여서 지금 연구 중이래.”“뭐가 두려워! 무서운 게 그렇게 많고서야 어떻게 큰일을 해!”그가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지금 세계 전문학자도 2개월 넘게 연구했는데 아무 것도 모르잖아, 걔들 정말 세계 학자들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해?”“그렇긴 하지만…….”임상언은 잠시 말을 잇지 못하였다.“한소은이 있잖아, 그리고 주효영도 있고, 네가 생각한 만큼 그렇게 나약하지 않아. 너도 그 사람들이 도움이 필요한 거고.”이 말을 남자는 눈을 가늘게 떴다. “주효영은 일단 신경 쓰지 말고, 한소은은 어떻게 됐어? 우리 편이 아니라면 걔도 세상에 존재할 필요 없어!”“내가 말했잖아, 쉽게 굴복할 사람이 아니라고, 한소은은 나와 달라…….”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남자는 임상언의 말을 끊고 차갑게 말했다.“뭐가 달라! 사람이면 약점이 있고, 한소은도 아들 있잖아, 임신도 했다며, 임산부도 제대로 해결 못하고, 임상언, 나 정말 널 믿어도 되는 거야, 네가 해결하겠다고 나서지만 않았어도 우리 애들이 먼저 해결했을 거야!”“경고하는데 딱 사흘이야! 사흘 동안 만약 처리가 안 되면 그땐 내 방식대로 할 거야!”“한소은 요즘 집에 없어, 전화도 안 받고, 아마 여기에는 없을 거야.”임상언은 황급히 설명했다.“지난번 약 사건에서 아마 위험을 느꼈을 거야, 마침 아들도 찾을 수 없고, 아마 아들과 같이 어디에 숨었을 가능성이 높아.”“숨었다고?”남자는 곁눈질하며 냉소하더니 손을 들어 손벽을 쳤다.임상언은 등이 움찔하더니 곧이어 문이 열리고 하이힐 소리가 들렸다. 뒤돌아보지 않아도 누군지 알았다.주효영이 밖에서 걸어 들어왔다. 한 손은 아무렇게나 가슴에 얹고 다른 한 손으로 받치고 있었다.그 손에는 휴대전화가 쥐어져 있었고, 휴대전화에서 작은 동영상이 흘러나오고 있었다.그녀는 입가에 미소를
그의 물음에 주효영은 조급해 하지 않고 웃으며 말했다.“왜, 저한테 불을 붙이려고요? 잊었나 본데, 난 당신 직책과 달라요, 난 연구개발을 책임지고, 당신은 외부를 책임지고, 게다가 한소은이 당신의 오랜 친구라며, 아들과 친하는 거 아니었어요? 당신 책임지고 잡아오면 되겠네, 아닌가요?”“잘 아는 사이라서 내가 나서면 안 된다는 거예요.”눈을 가늘게 뜨고, 임상언은 눈앞의 이 요염하고 눈부신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녀의 예쁜 눈에는 계산적인 빛이 가득했다.“연구개발팀이라고요? 근데 뭘 연구해냈는데요, 지금까지 쓰는 거 다 이전 제품이잖아요. 사장이 원하는 그거 아직도 성공하지 못하였다면서요, 정말 당신 능력이 의심되네요.”“너…….”급소를 찔려 주효영의 안색이 일변하였다.그러나 임상언은 그녀의 안색을 무시하고 말을 계속했다.“오죽하면 사장님이 한소은을 잡아오게 했을까, 뭐…… 이쪽 실력은 확실히 당신보다 낫으니까 할 말은 없겠죠! 그 사람 곧 오게 될 텐데 시간 없어요! 정말 안 되면 버티지 말고 그냥 말해요, 우리도 대비할 수 있게, 시간을 허비하는 것보다는 좋잖아요.”주효영은 화를 내며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말했다.“내 능력, 사장님은 알아요, 내 성과 세계도 알아주는 거라고요, 당신이 여기서 뭐라고 말할 입장은 아닌 것 같네요! 한소은이 나보다 뛰어나다고, 그럼 잡아오던지,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지, 나와 한소은 누가 세계 최고인지 나도 궁금하니까!”“말은 잘 하네요, 상대하지 못할 가봐 두려워서 몰래 죽이려고도 했으면서.”“뭐라고요?!”“내가 무슨 말인지는 잘 알고 있을 텐데!”“임상언 너 말 똑바로 해!”“왜요, 뇌용량이 부족한가? 그때 한소은 차 사고, 정말 당신과 관계없는 일인가요?”“그건…….”“그만해!”남자는 그제서야 차가운 눈빛으로 입을 열어 그들의 싸움을 막았다.“같은 편인데 뭘 싸워!”“사장님…….”주효영이 또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데 남자의 시선에 입술을 오므리고는 말을 삼켰다.“임상언 너도 여
소은은 고개를 들어 눈물을 참으며 말했다. “한 가지 이상한 게 있어요.”“무슨 일이에요?” 임남을 달래던 임상언이 무심히 되물었다.“로사 왕자는 감금된 것이 아니라 그날 Y국으로 송환되었다고 들었는데, 그렇다면 왜 그동안 로사 왕자와 연락이 닿지 않았던 걸까요?” 소은의 말에 임상언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두 가지 가능성이 있겠죠. 신호가 나쁘거나 핸드폰을 확인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 로사 왕자가 저희 연락을 거부하고 있을 수도...”두 사람은 잠시 눈을 마주쳤다. 말은 없었지만, 둘 다 이미 답을 얻은 듯했다. 로사 왕자가 그토록 연락을 피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도 나름의 계획을 세우고 있는 건가?...3일 후. 소은은 마지막 침을 놓고 손을 거두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여왕을 쳐다보며 말했다. “오늘 시술로 폐하의 다리에 감각이 돌아오실 겁니다. 하지만 일어서는 건 천천히 시도하셔야 합니다. 너무 서두르시면 안 돼요.”소은은 말을 마치고 갑자기 미소를 지었다.“무엇 때문에 웃는 거지?” 여왕은 여전히 자신의 다리를 어루만지며 물었다. 이미 이틀 전부터 약간의 감각이 돌아왔음을 느낀 터라, 소은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소은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제가 쓸데없는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요. 사실 R10 실험을 고집하신다면 결국 폐하께서는 이 몸을 떠나게 되실 텐데, 제가 이 몸에 애쓰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여왕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계속한 거지?”“어쩌면, 폐하께서 마음을 바꾸실 지도 모르니까요.” 소은은 부드럽게 대답했다. “어쩌면 자신의 몸이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거든요.”“우리 모두 이 세상에 올 때 두 손은 비어있지만, 이 몸만은 오로지 우리 자신의 것이죠. 몸마저 버리신다면, 그 영혼은 여전히 진짜 자신일 수 있을까요?”“그렇구나.” 여왕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
소은은 조용히 몸을 일으키며 여왕을 쳐다보았다. “물론이죠.” 소은은 담담하게 답했다. 그 대답에는 원망이나 비난의 기색은 전혀 없었다.“그렇다면... 조금 아쉽네.” 여왕은 생각에 잠긴 듯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기 마련입니다. 세상 모든 일은 균형을 맞추려 하죠. R10이 폐하께서 이루고자 하는 꿈이라면, 저는 그것을 막을 수 없어요. 다만, 그때가 되어 성공하든 실패하든, 저는 그 모습을 보지 못할 테니 부디 후회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소은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문 밖으로 나갔다.릭은 여전히 문 앞에서 대기 중이었다. 그녀와 여왕의 대화가 거의 다 들렸던 듯, 둘의 시선이 잠시 교차했다. 소은이 그를 지나쳐 나가자, 릭은 곧장 방으로 들어갔다.“여왕 폐하.” 릭은 여왕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그녀의 다리에 꽂힌 은침을 보자 릭의 눈빛이 굳어졌다. “이건...”“괜찮아. 곧 소은이가 와서 침을 빼줄 거야.” 여왕은 무심하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릭은 여전히 불안한 눈빛으로 말했다. “폐하께서 너무 방심하시는 것 아닙니까? 만약 한소은이 폐하께...”“그럴 리 없다.” 여왕은 단호히 그의 말을 잘랐다.릭은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설마 그 여자를 믿으시는 겁니까?”여왕은 대답 대신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녀도 릭의 질문이 아니었다면 자신이 소은을 믿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오랜 세월 누구도 쉽게 믿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그녀는 소은을 의심하지 않았다. 심지어 은침에 독이 묻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제가 가서 잡아오도록 하죠.”여왕이 생각에 잠기자 릭은 바로 뒤돌아섰다.“거기 서!”여왕은 결연히 말했다. “난 믿어.”릭은 한참을 침묵하며 여왕의 결정을 받아들였다....임상언은 아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비록 아들을 구하려는 결심을 굳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희망이 사라지는 듯했다.
소은은 허리춤에서 허리띠처럼 생긴 물건을 꺼내더니 조심스럽게 풀어내며, 그 안에 숨겨진 가느다란 은침을 꺼냈다.“이건...” 여왕은 깜짝 놀라며 소은을 쳐다봤다. 소은이가 은침을 항상 가지고 다닐 줄은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말해봐, 네 요구가 뭐지?” 여왕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마음을 가다듬으려 애썼다. 너무 무리한 요구라면 거절하면 그만이다. 여왕은 절대 소은에게 휘둘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소은은 차분하게 말했다. “제가 여기서 나올 수 있었던 건 로사 왕자님 덕분입니다. 그러니, 왕자님을 책망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그게 다야?” 여왕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소은이 여기까지 와서 자신과 조건을 따지는데, 결국 요구한 게 단지 로사를 처벌하지 말라는 거라니. 자신이 잘못 들은 건가 싶었다.“로사는 내 아들이다. 내가 정말 내 아들에게 손을 댈 리는 없지. 괜히 기회를 헛되게 쓴 건 아닌가?” 여왕은 고개를 저으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전 폐하께서 정말 로사 왕자님께 처벌을 내리시지 않을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왕자 폐하께서 저를 구해준 건 사실이기에 저도 왕자 폐하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소은은 조용히 말했다. “게다가 지금 왕자 폐하를 감금하시고 자유를 제한하고 계시지 않나요?”여왕은 의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니야. 난 단지 로사를 Y국으로 돌려보냈을 뿐이야.”“로사가 여기서 내 일을 여러모로 방해하긴 했지만, 우리 모자 사이가 더 악화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국내에서도 로사가 필요하니 Y국으로 돌려보낸 것뿐이다.” 여왕은 담담하게 말했다.“그런데 왜 왕자 폐하의 전화가 연결되지 않죠?” 소은은 잠시 멈칫했다. 단지 귀국했다면 국제전화를 받을 수 있을 텐데, 연락이 닿지 않았기에 여왕이 로사를 가둬놓았다고 오해할 수밖에 없었다.여왕은 깊은 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나도 잘 모르겠군. 그날 내가 화가 났던 건 사실이지만, 곧바로 Y국으로 돌아가도록
“삼일이면 됩니다.” 소은은 여왕을 쳐다보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삼일? 고작 삼일?” 여왕의 눈에는 믿기지 않는 놀라움이 서렸다. 그녀는 적어도 몇 달, 아니 최소한 몇 년은 걸릴 줄 알았다. 그러나 고작 삼일이라니, 그녀로서는 상상도 못 한 시간이었다.삼일쯤이야. 십 수년을 이렇게 버텨왔는데, 삼일쯤 더 기다린다고 달라질 게 뭐 있겠는가?“삼일 안에 정말 나아질 수 있는 건가? 내가 정말 다시 일어서서 걸을 수 있는 건가?” 여왕은 두 손으로 자신의 다리를 힘껏 눌렀지만 여전히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그녀는 소은의 말을 쉽게 믿을 수가 없었다. 이 다리가 감각을 잃은지 너무 오래되어 치료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여왕은 여러 나라의 명의를 찾아 다녔지만, 그들은 단지 병의 악화를 늦출 수 있을 뿐 다리를 완전히 회복시키는 건 불가능하다고 했었다. 그러나 지금 소은은 그녀 앞에 서서 확신에 찬 얼굴로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녀는 속으로 자신도 모르게 그 말을 믿고 싶어졌다.“이전처럼 완벽하게 걸을 수 있을 거라고 장담할 순 없어요. 너무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아서 근육이 많이 위축됐거든요. 하지만 서서히 일어나서 조금씩 회복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소은은 진지한 어조로 답했다.여왕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정도라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젊었을 때처럼 완전히 회복되는 것을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만약 휠체어와 지팡이 없이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 그 자체로도 그녀에겐 더할 나위 없는 희망이었다.“좋아. 삼일, 기다리겠네. 필요한 게 있나?” 여왕은 기분이 좋아져 말을 한층 부드럽게 했다.“임남...” 소은이 말을 꺼내자마자 여왕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녀는 곧바로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 “그건 안 돼. 그런 요구는 하지 마라.”“제가 말한 건 임남을 바로 풀어달라는 게 아닙니다. 그냥... 그 아이가 괜찮은지 알고 싶고, 가능하다면 아버지와 한 번 만날 기회를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 실험을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은 저와 프레드 뿐이기 때문입니다.” 소은은 잠시 생각하다가 덧붙였다. “아니면 주효정을 믿으실 건가요?”“나는... 아무도 믿지 않아.” 여왕은 얼굴을 차갑게 굳히며 휠체어를 돌렸다.“여왕 폐하께서 이 실험에 집착하고 계시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인가요? 세상을 둘러보고 싶다거나, 짐을 내려놓고 잠시 쉬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으신가요? 수십 년간 왕좌에 오르셨지만, 정말로 아직도 그 삶이 좋으신가요? 언제나 긴장하며 위태로운 자리를 견디는 고단한 나날, 정말 아직도 벗어나고 싶지 않으신가요?” 소은은 여왕의 등을 쳐다보며 부드럽게 물었다.여왕은 아무 말 없이 자신의 무릎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살짝 떨구었다. 그녀는 시선을 다리로 내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세상을 둘러본다? 나는... 걷는 게 어떤 느낌인지도 잊어버렸어.”여왕은 오랜 세월 동안 다리를 쓰지 않았고, 처음에는 억지로라도 일어설 수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상태는 악화되었고 이제는 아예 휠체어 없이는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그녀는 휠체어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소은이 ‘세상을 둘러보라’는 말을 꺼내자 가슴이 아팠다.“만약... 폐하께서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요? 제가 다시 걷게 해드린다면요?” 소은은 조용히 여왕의 뒤에 서서 말했다.여왕은 잠시 멈칫하더니, 눈빛이 날카롭게 변하며 휠체어를 돌려 소은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정말이냐?” 여왕의 눈에는 억누를 수 없는 희망과 깊은 의심이 뒤섞여 있었다.소은은 대답 대신 그녀의 시선을 천천히 여왕의 다리로 내리고, 천천히 다가가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손을 뻗어 여왕의 무릎 위에 가볍게 손을 올렸다.여왕은 살짝 몸을 떨었다. 사실, 그녀의 다리는 거의 완전히 감각을 잃은 상태라서 소은의 손길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아마도 너무나 간절히 다시 일어서고 싶기 때문이었을 것이다.소은은 아무 말 없이 여왕의
“맞아요, 임남 때문이기도 하지만, 폐하 때문이기도 합니다.” 소은은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제가 정말로 떠나버렸다면, 가장 초조해지는 사람은 사실 여왕 폐하 아닐까요?”여왕은 코웃음을 치며 차갑게 말했다. “내가 초조해질 이유가 뭐지? 어차피 내 손엔 네 약점이 있잖아. 너를 다시 잡아오는 것도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고.”“약점이요? 임남 말씀이신가요?” 소은은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잊지 마세요, 임남이는 제 아들이 아닙니다. 저에게는 제 친자식이 셋이나 있어요. 만약 제가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임남을 포기해 제 아이들을 지키려 한다면, 그 약점이 과연 제게 약점이 맞을까요?”여왕이 입을 열기도 전에 소은은 다시 말을 이었다. “게다가, 그 아이에겐 목숨을 걸고서라도 구하려는 아버지가 있습니다. 만약 임상언이 폐하께 끝까지 맞서기로 결심한다면...” “폐하께서야 높은 자리에 있으니 이런 평범한 상인을 하찮게 여기실 수 있지만, 임상언 씨가 단순한 상인이 아니라는 걸 잊으시면 안 됩니다. 임상언 씨의 사업은 세계 곳곳에 뻗어 있어요. 임상언 씨가 목숨을 걸 각오가 되어 있다면 그 어떤 일도 할 수 있겠죠. 혹시라도 바깥에 소문이 퍼져 폐하와 Y국의 명망이 손상된다면, 곤란하지 않겠습니까?”“너...” 여왕은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반박할 말이 당장 떠오르지 않았다.여왕이 화가 난 것을 보고, 소은은 한결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화내지 마세요. 제가 돌아온 건 폐하를 자극하려는 게 아닙니다. 함께 최선의 방향을 찾고자 돌아온 거예요. 사실 폐하께서 H국에 오신 일이 밝혀진 건 아니지만, 꽤 오랜 시간 H국에 머물고 계셨습니다. 정말로 H국이 이 사실을 모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세요?”여왕은 말없이 그녀를 쳐다보았다. “지금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건 폐하의 체면을 살려드린 겁니다. 그러나 폐하께서 이곳에서 계속 머무르시며 혹여 무리수를 두신다면, 얼마나 더 체류하실 수 있을까요? Y국도 계속해서
릭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여왕은 모니터에서 시선을 돌리며 담담히 말했다. “소은을 데려와. 어디 한번 무슨 변명을 할지 들어보자. 또 어떤 이야기를 꾸며낼지 궁금하네.” 여왕은 휠체어를 살짝 돌려 더 이상 모니터를 보지 않았다.“여왕 폐하?” 릭은 망설이다가 말했다. “한소은이 거짓말을 할 걸 아시면서도 굳이 왜...” 그러나 여왕은 그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단호히 말했다. “듣고 싶어!” 이 한마디에 릭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그는 곧장 소은이 있는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소은이 정말로 잠이 들려고 하던 순간, 문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그녀는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다. 눈을 뜨는 순간, 문이 열리면서 릭이 문 앞에 서 있었다. 그의 얼굴은 굳어 있었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여왕께서 한소은 씨를 만나고 싶어 하십니다.” 소은은 차분한 표정으로 릭을 쳐다보았다. 마치 모든 상황을 예견한 듯 고요하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와 동시에 임상언은 소은보다 먼저 일어나 문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가 문에 도착하자마자 릭이 손을 들어 그의 앞을 막았다. “그쪽은 남아 계시죠.” “뭐? 우리 둘은 같이 온 거야!” 임상언은 소은을 돌아보며 그녀에게 눈짓으로 도움을 요청했다. 릭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여왕 폐하께서 그쪽을 부르지 않았으니 여기 남으시죠.” 릭은 더 이상 임상언에게 말을 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소은은 임상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부드럽게 말했다. “절 기다리고 있어요.” 임상언은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억지로 마음을 다스리며 그녀가 릭과 함께 방을 나서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조심해요.” 임상언은 소은을 향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소은은 미소를 지어 그에게 답했고, 릭을 따라 여왕의 방으로 향했다. 익숙한 길을 따라 걷는 그녀는 곧 여왕의 방에 도착했다. 릭이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여왕 폐하, 데려왔습니다
소은이 임상언을 데리고 대사관에 도착하자,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눈에 띄게 당황했다.한 사람이 서둘러 소식을 알리러 가더니, 이내 주변 구석구석에서 누군가가 몰래 그들을 엿보는 기척이 느껴졌다. 곧이어, 소은이 잘 알고 있는 여왕의 측근 몇 명이 경계 어린 눈빛으로 다가와 그들을 안으로 안내했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그들은 소은과 임상언의 몸을 샅샅이 검사하며 위험 물품을 소지하지 않았는지 확인했다. 철저한 검사가 끝난 후에야 비로소 경계가 풀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여왕을 만나지 못했고, 한적하고 깊숙한 방에 대기하도록 배정받았다. 오랜만에 돌아온 이곳은 소은에게 익숙하면서도 낯설게 느껴졌다. 익숙한 것은 이 장소였지만, 낯선 것은 지금의 마음가짐이었다. 예전에는 이곳이 싫고 불쾌하기만 했으며,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은 장소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임무와 사명을 가지고 돌아왔고, 그녀의 목표는 단순히 여기를 떠나는 것이 아닌, 중요한 일을 완수하고 무사히 돌아가는 것이었다.반면, 임상언은 눈에 띄게 불안해 보였다. 그는 두 손을 맞잡고 무릎 위에 놓은 채,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다리를 가볍게 떨고 있었다. 소은은 그의 초조함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임남을 생각하면 마음이 몹시 불안하고 조급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여기까지 왔으니 임남을 반드시 볼 수 있을 거예요. 그러니 긴장 좀 풀어요.” 소은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임상언은 그녀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발을 땅에 꾹 눌러 다리를 멈췄다. 겉으로는 조금 안정된 듯 보였지만, 그의 얼굴은 여전히 긴장감이 가득했고 미세하게 떨리는 얼굴 근육이 그의 불안한 마음을 보여주었다. 마음을 진정시키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소은은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다.두 사람은 한참을 기다렸지만, 여왕을 만나러 오라는 사람은커녕 상황을 확인하러 오는 사람조차 없었다. 긴장했던 임상언은 결국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대체 무슨 의도인 거죠? 왜 아직
“제발 부탁이에요. 안에서는 소은 씨 말만 따를게요. 소은 씨가 시키는 대로 다 할 테니까, 제발 절 데려가 주시면 안 돼요?” 임상언은 진심 어린 목소리로 소은에게 간청했다. 자존심은 이미 버린 지 오래였다. 아들을 만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그를 이 지경까지 이르게 했다. 소은이 반드시 돌아가겠다고 결심한 순간, 임상언은 이미 마음을 굳혔다. 자신이 함께 가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같이 가면 의심을 받거나 제지를 당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전 아니에요.” 임상언은 계속 설득을 이어갔다. “임남이 그 안에 있다는 걸 모두 알고 있잖아요. 제가 아들을 만나고 구하려고 하는 건 당연한 일이에요. 그리고 아들을 위해서 제 목숨을 바치는 것도 이해될 수 있는 일이죠. 그러니 제가 가는 게 가장 올바른 선택이에요.” 긴 침묵 끝에, 소은이 입을 열었다. “임상언 씨 말이 맞아요. 전 동의합니다.” 소은은 말을 마치고 서진에게 시선을 돌렸다. 서진은 잠시 생각하더니 천천히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저도 동의합니다.” 원청현은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두드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나도 동의하지.” 잠시 침묵하던 진정기 역시 마침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동의합니다.” 마지막으로 원철수는 주변을 둘러보며 한숨을 내쉬고 손을 펼쳤다. “모두 동의했는데 내가 뭐라고 반대하겠어. 나도 찬성이야.” 사실 원철수의 의견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임상언에게 지지를 표현하는 의미였다. 임상언은 눈시울이 붉어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모두들 고마워요.” “이게 뭔 감사할 일이라고. 어쨌든 안에 들어가면 절대 신중해야 해. 무슨 일이 있어도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네 입으로 한 말 반드시 지켜!” 원철수는 그의 결심을 칭찬하면서도 걱정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원철수는 속으로 임상언의 결단에 감탄했다.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그는 분명 최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