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데요? 내가 아는 사람인가요?"주효영은 눈을 깜빡이며 흥미로워했다."원철수."이 이름을 말하며 한소은은 잠시 멈춰서 그녀의 반응을 살폈다."이 연구실 출신인 주효영 씨가 모를 리가 없죠."주효영은 눈섭을 찌푸리며 곰곰이 생각하다 드디어 생각이 났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아, 생각났어요! 키도 크고 인자해 보이는 그 사람이죠? 무슨 신의라고 했던 거 같은데……”"네."한소은은 고개를 끄덕였다."그 사람이 왜요?"주효영이 재빨리 물었다."저도 알고 싶어요."그녀의 표정을 살피며 한소은은 자기도 모른다는 듯이 말을 이어갔다."며칠 동안, 이 연구소에서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고 들었어요. 핸드폰도 꺼져 있고 아무인 소식이 없어서, 아직도 실험하는 건지 궁금해서요."주효영은 고개를 부드럽게 흔들며 순진한 표정을 지었다."…… 글쎄요, 저는 그 사람과 같은 프로젝트를 담당하고 있지 않아요. 거의 만날 일이 없죠. 그가 아직 연구소에 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혹시 급한 일이면 내가 가서 물어봐 줄까요?"주효영은 여전히 열정적으로 한소은의 물음에 대답했다.한소은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그럼, 주효영 씨, 번거롭겠지만 부탁 좀 할게요.""번거롭지 않아요!"주효영은 손을 흔들며 휴대전화기를 꺼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같은 부서의 원철수 씨. 아직 실험실에서 실험하고 있나요?""없다고요?""그러면 언제 떠난 거죠? 확실하지 않다고요?""연락 좀 해줄 수 있을까요?"한참을 얘기하더니 주효영이 연달아 대답하며 전화를 끊었다.주효영은 힘없이 한소은을 바라보며 대답했다."미안하지만, 연구소에 없는 것 같아요. 그를 찾을 다른 방법을 찾아봐요. 저도 연락이 안 되네요.”"동료들이 눈치채지 못한 연구소 어딘가에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한소은은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맨 위의 몇 개 층은 그녀가 단 한 번도 올라가 본 적이 없는 회의실이었다."그럴 리가요."주효영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이 건물이 작지는
"주효영 씨는 결혼하고 나서 모든 이성 친구와 연락을 끊을 건가요?"한소은은 기분이 언짢다는 말투로 되물었다."난……"그녀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한소은이 이어서 말했다."아, 깜빡했네요. 주효영 씨는 아직 결혼하지 않았죠?""제가 미혼인지 아닌지 어떻게 아세요?"주효영은 눈을 지그시 감으며 한소은에게 말했다."우린 오늘 처음 만난 것 같은데, 내가 내 개인적인 감정에 대해 아무 말도 안 하지 않았나요?""주효영 씨가 나를 아는 것처럼 나도 당신을 조금 알아요…… 당신에 대해 오래전부터 들었어요!" 한소은은 고개를 끄덕이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그래요??"주효영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약간 놀란 표정을 지었다."당신에게는 진가연이라는 사촌 동생이 있고, 어머니 주 부인이 원철수에게 진가연의 병을 치료하게 하려고 그를 초대한 적 있어요. 그렇다면 당신은 원철수와 서로 아는 사이겠죠?"한소은은 생각하면서 얼굴을 주효영에게로 돌리고 호기심 어린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주효영이 문득 깨달은 듯이 대답했다."진가연이 그런 말을 했나요?"한소은은 웃으며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잘못 아신 것 같네요. 내 사촌 동생과 나는 사실 자주 연락하는 사이가 아니에요. 다만 내 엄마가 그 아이를 친딸처럼 대하니 그 두 사람만 자주 연락할 뿐이에요. 원철수가 그 아이를 치료한다는 일에 관해서는 나는 모르는 일이에요.”“나는 줄곧 외국에서 공부하다가 최근에야 이 프로젝트 팀에 합류하기 위해 돌아왔어요. 그러고 보니 원철수씨와 동료가 된 것은 우연이네요. 그래서 생각만큼 친숙하지는 않아요."그녀는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설명하면서 한마디 덧붙였다."어쩌면 당신과 그가 조금 더 친숙할 수도 있겠네요.""그런 거군요!"한소은은 생각에 잠긴 듯 고개를 끄덕이며 안전벨트를 풀고 손을 차 문손잡이에 갖다 댔다."할 말은 다 했으니 더 이상 당신의 시간을 빼앗지 않을게요. 저도 가봐야겠어요."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차 문을 열었다.막 내리려는 순간 주효영이
한소은은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집이 유난히 썰렁했다.김준은 원 어르신의 집으로 갔고, 김서진도 없었다.장유나도 해고해서 몇 명의 일하는 아주머니 외에 이 거대한 집에는 그녀뿐이었고 유난히 춥고 외로운 느낌이었다.한소은은 컴퓨터를 열어 뉴스를 남아시아 쪽의 뉴스를 확인했다. 그곳의 전염병이 통제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추세가 악화하고 있었다. 이제는 그쪽뿐만 아니라 국내 쪽, 일부 서방 국가에서도 모두 동일한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아마 남아시아 쪽에서 확산하였을 것이다. 지금 여러 국가에서 남아시아를 비난하고 있었다.하지만 한소은은 이 문제가 겉으로 드러난 것처럼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지금까지 발생한 모든 이상한 일은 연구소와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마음을 다잡은 그녀는 자기의 배를 만져보면서 결국 남아시아로 가기로 했다.그녀는 배 속의 아이들이 견뎌주기를 바랄 뿐이었다. 제발 아무 탈 없이 남아시아에 잘 다녀오길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어느새 밤이 되었다.한소은은 여러 겹의 벨트를 허리에 감아 단단히 묶어 배를 고정했다.아직 배가 많이 나온 것은 아니었기에 움직이기 힘들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방해가 되는 것은 사실이었다.만약 김서진이 여기 있었다면, 그는 그녀를 붙잡고 절대 가지 못하게 했을 것이다.그녀가 너무 위험한 일을 한다고 그녀를 혼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는 여기에 없었고, 모든 것을 한소은 홀로 결정할 밖에 없다. 지금은 더 이상 이것저것 따질 때가 아니라는 걸 한소은은 잘 알았다.한소은은 검은 옷을 입고 마스크와 모자를 쓴 채 집에서 일하는 아주머니들을 피해 혼자 차를 몰고 연구실 방향으로 향했다.그녀는 밤에 연구실로 잠입할 생각이었다!그곳에서 오랫동안 일을 했었으니 내부 구조에 대해 비교적 잘 알고 있었다. 밤에는 연구실의 거의 모든 사람이 퇴근하고 없다. 당직을 서는 사람이 있어도 낮만큼 사람이 많지는 않았다.게다가 실험해야 하는 경우 실험실의 조명이 켜져 있을 수밖에 없으므
이곳에는 창문이 없어 밖의 하늘을 볼 수 없었고, 가끔 굶어 죽지 않도록 누군가 간단한 음식과 물을 던져주곤 했지만, 이 교수는 그날 떠난 후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그는 이 교수가 실제로 자신을 도와줄 의향이 있는지, 자신이 얼마나 더 버틸 수 있는지조차 확신하지 못했다.한참을 간신히 버티며 잠에서 깨어났다 다시 잠들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원철수는 문이 열리는 소리에도 눈을 뜨지 않았다.‘또 음식 배달이 왔나 보군.’하지만 이때 선명하고 딱딱한 하이힐 소리가 들려왔다. 또각거리는 소리는 그가 단번에 정신을 차리게 했다. 그 소리에 맞춰 원철수는 자기의 심장도 함께 떨리는 것 같았다.그는 처음으로 여성에 대한 진심 어린 두려움에 휩싸였다.주효영이라는 여자는 정말 무자비한 사람이다!그녀의 무자비 함은 그런척 하는 게 뼛속 깊이에서 우러나온 것이다.그녀는 냉혈하고 차갑고, 인간의 생명을 경멸하고, 사람들의 삶과 죽음에 관심이 없는 그런 끔찍한 사람이다.생각하면 할수록 원철수는 더 눈을 뜨고 싶지 않았다. 그는 주효영의 그런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았다. 하이힐 소리가 눈앞에서 멈출 때까지 그는 눈을 뜨지 않았다.주효영이 그의 앞에 우뚝 서 있었다. 그는 잠든 것처럼 또는…… 죽은 듯 움직이지 않았지만, 눈꺼풀 안에서 눈알이 빠르게 위아래로 굴러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주효영은 입술을 치켜올리며 손을 들어 올려 갑자기 밝은 빛으로 그의 얼굴을 비추었다.극도로 날카로운 빛에 원철수는 참을 수 없어 무의식적으로 팔을 들어 빛을 막았다."주효영, 너 미쳤어! 이 미친년!"그는 더는 참지 못하고 욕을 내뱉었다.오랫동안 어둠 속에 있다가 갑자기 얼굴에 강한 빛을 받으면 사람은 어지럽고 위와 심장이 불편해져 구토를 하고 싶어진다."하하하 ……"주효영이 웃으며 비아냥거렸다."잠든 게 아니었어? 뭐야, 아직 살아있어?""걱정하지 마, 네가 죽는 걸 보기 전에 난 죽지 않을 테니까!"원철수는 화난 기색 없이 말했다.주효영은 그의 조롱에 아랑곳하지
주효영의 말을 들은 원철수의 마음은 패닉 상태였다. 하지만 아무렇지 않은 듯 그녀에게 말했다."내가 이 교수를 왜 기다리겠어? 그 사람은 너희와 같은 편이잖아?"주효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그래서 그를 기다리지 않는다고? 그를 기다리지 않는다면 다행이고. 그건 그렇고, 당신은 여기 있는 동안 밖의 소식을 듣지 못했지? 오늘 이 교수에게 일이 일어나서 앞으로 다시는 그를 볼 수 없을 거야.""무슨 일이 일어 난 거지?"원철수는 참지 못하고 즉시 물었다."이 교수가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아쉽게도 세상을 떠났어."그녀는 한숨을 쉬었지만 그녀의 목소리에서 아쉬워하는 흔적이 전혀 없었다.주효영의 말에 원철수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너희들이 그를 죽인 거야?!""쯧쯧쯧……"주효영은 몇 번 쯧쯧 거리다 손을 흔들며 말했다."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어. 이 교수는 교통사고를 당한 거야, 사고! 그는 큰 트럭에 치였어. 그런데 어떻게 이게 살인이라고 말할 수 있지! 우리는 모두 법을 잘 지키는 시민이며 사람을 죽이는 짓은 절대 하지 않아.""흥, 법을 준수하는 선량한 시민이라고?"원철수가 두 번이나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법을 준수하는 선량한 시민이 총을 들고 불법 구금을 한다고? 주효영, 여자인 네가 이렇게 무자비할 줄은 정말 몰랐어! 넌 정말 독한 여자야!""이 교수님은 그래도 당신의 선배잖아, 당신에도 나쁘게 대하지 않았지. 그는 이 실험을 중단하고 싶어도 실험 방향을 바꾸고 싶어도 감히 할 수도 없었고, 감히 경찰에게 신고하지도 않았어. 그런데 당신들은 그를 죽이기까지 했어, 당신들은 정말 인간이야?"원철수가 이 연구소에 들어온 후, 나름 잘 대해 주었고 이틀 전에는 음식과 물까지 챙겨주기 까지 했다. 만약 그가 아니었다면 그는 진작에 여기서 죽었을지도 모른다.하지만 이제 그가 죽었고 자기는 어떻게 될 것인가? 어쩌면 그도 곧 죽을 것이다. 이번에 주효영이 찾아오건 자기를 저승길로 보내기 위한 것일까?이 사람들은 정말 눈도
“뭐 하려는 건가요? 또 누굴 죽이려고 하는 건가요?”원철수는 놀라서 필사적으로 발버둥 쳤다.요 며칠 동안 갇힌 그는 힘이 하나도 없었지만 아무래도 장년의 남자여서 이 몸부림은 주효영이 쉽게 감당할 수 없어서 잡았던 손이 풀리자 그녀는 화가 나서 발을 들어 그를 향해 걷어찼다.그 두 발은 마침 허리에 걷어차서 원철수는 아파서 허리를 굽혔고 이어서 그녀가 말하는 것을 들었다.“와서 이자를 마당으로 끌고 가!”“예!”곧 누군가가 들어와서 좌우로 그를 일으키고 주효영의 뒤를 따라갔다.긴 복도를 지나자 원철수는 불빛에 찔려 눈을 뜰 수 없었다. 눈은 잠시동안 바깥의 빛에 적응하지 못했지만 이미 깊은 밤이라는 것을 점차 알 수 있었다.이 시간에 주효영은 자기를 어디로 끌고 가려는 거고 그가 죽인 사람은 또 누구인 건가?마음속에 의심이 가득했다. 주효영은 뒤도 돌아보지도 않고 앞에서 성큼성큼 걸어갔다.실험실 안은 지금 각종 오일 약초 향료의 냄새가 뒤섞여 있어 온몸을 불편하게 했다. 여기엔 그들 외에 아무도 없는 것 같았고 마치 죽은 건물 같았다.그는 줄곧 정원으로 끌려갔다.주효영은 미리 준비된 자리에 유유히 다리를 꼬고 앉아 끓인 커피를 들고 천천히 한 모금 마셨다.그리고 그 두 사람은 원철수를 주효영의 앞에서 멀지 않은 곳으로 끌고 가서 무겁게 내던졌다.땅바닥에 쾅 하고 내리치자 그는 온몸의 뼈가 아팠다.“주효영! 도대체 뭐 하자는 거야?!”그가 고개를 들어 화를 내며 말했다.이 여자는 정말 무섭기 그지없다!그녀는 마치 고양이처럼 손에 넣은 쥐를 가지고 놀며 먹지도 않고 물어 죽이지도 않고 무심히 그가 필사적으로 발버둥을 치며 도망갈 수도 없고, 죽을 수도 없는 것을 지켜보았다.끝없는 두려움 속에서 살다가 어느 순간 그녀가 기분이 좋지 않아 자신을 죽이는 것이다.이런 알 수 없는 공포야말로 가장 무서운 것이었다!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자기 혼자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녀는 자기를 미끼로 삼아 또 누구를 해치려 하는 건가? 그녀가
원래 원철수는 누구인지 생각하지 못했지만 그녀가 이렇게 말하자 갑자기 한 사람이 생각났다.한소은!이곳의 감시통제 허점은 장기간 안에서 일을 했던 사람이 아니라면 그렇게 똑똑히 알 수 없을 것이다. 감시통제 허점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고 또 그를 구하러 올 수 있는 사람은 오직 그녀밖에 없었다.한소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는 목숨을 걸고 발버둥 치며 ‘우우우’ 하는 소리를 내며 소리를 좀 크게 해서 그녀에게 알려 주려고 했다.그녀가 왔는지 안 왔는지는 아직 모르지만 적어도 아직은 나타나지 않아서 그녀를 일깨워 줄 가능성이 있었다.주효영이 턱을 내저으며 의사를 표시하자 옆에서 누군가가 앞으로 나가 그의 배를 세게 걷어찼고 원철수는 아파서 몸을 웅크리고 식은땀을 흘렸다.“힘 빼지 마세요! 이렇게 한다고 해서 무엇이 바뀔 수 있을 것 같아요?”그녀는 잠시 멈추었다.“아참, 깜빡 잊고 말씀 못 드렸는데 이 주변은 최근에 개조되었는데 위의 보안 설비가 모두 강화되어서 무슨 화살이나 마취 탄 같은 것들이 있지요. 당신도 알다시피 여기는 실험실이어서 일부 개량된 장비는 빠질 수 없지요. 일부 반제품 완제품의 약은 이미 시험단계에 있어서 만약 정말 누군가가 여기에 잠입하려고 시도한다면 그 맛은 참으로…….”그녀는 입꼬리를 일으키고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좋지 않을 것이에요!”“우우우…….”원철수는 이 지독한 여자를 욕하고 싶었지만 한 글자도 말하지 못했다.그는 지금 온몸의 통증으로 거의 견딜 수 없었지만, 여전히 앞으로 발생할 것이 더욱 걱정되었다. 지금 그는 한소은이 제발 나타나지 않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그는 무슨 위대한 사람은 아니지만 다른 사람이 자기때문에 죽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이런 은혜는 너무 커서 그는 감당할 수 없었다!……한소은은 그 사람을 넘어뜨린 후에야 그의 얼굴을 똑똑히 보고 저도 모르게 멍해졌다.“당신이 어떻게?!”“임상언, 너 왜 여기 있어!”그녀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눈을 찌푸리며 그를 바라보았다.넘어져
한소은은 그의 손질을 피해 뒤로 한 걸음 물러서며 그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그가 준비되어 있을 줄은 생각지 못했다. 자신의 이 잠입 계획은 실패했지만, 만약 그를 납치한다면, 이 실험실이 계속 진행하는 것을 막을 수 있지 않을까?그녀는 머릿속으로 빠르게 생각하고 있었다. 어쨌든 임상언은 이 실험 프로젝트의 대주주이고 그가 없어져서 돈의 지지도 없어지면 계속하기 어려울 수도 있을 것이다.“한소은, 이곳은 물이 아주 깊어. 너는 끼어들지 말았어야 했어. 너한텐 아이도 있잖아. 이것 봐…….”임상언은 그녀의 배를 보면서 말을 이었다.“여긴 정말 너무 위험해. 만약 김서진이 아직 있었다면 분명히 네가 이러는 걸 허락하지 않았을 거야.”“그게 무슨 말이야? 그가 아직 있었다면?”예민하게 이상함을 눈치챈 한소은의 눈빛은 사람을 사로잡았다.“남아시아의 전염병이 이 실험실과 관계가 있는 거지? 내가 전에 한 실험 말고 저 안에서는 도대체 또 무엇을 하고 있는거야? 어서 말해!”“여기는 오래 머물기에 적합하지 않고 말할 곳도 아니야. 그러니 먼저 돌아가. 무슨 문제가 있으면 내가 천천히 너에게 말해줄게.”임상언은 벽 쪽을 한 번 보았는데 안에 약간의 소리가 있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다. 그는 손을 뻗어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우선 여기를 떠나자!”한소은은 저항하지 않고 그에게 끌려 일정한 거리를 뛰쳐나갔고 실험실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겨우멈추었다.“나는 또 네가 나와 같이 가지 않으려고 발버둥 칠 줄 알았어.”한숨을 돌리며 임상언이 말했다.“나는 그렇게 멍청하지 않아. 안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억지로 뛰어들지 않아! 게다가 굳이 뛰어들어야 하는 것도 아니야! 최고의 인질이 지금 내 손에 있는데!”그녀는 의미심장하게 그를 바라보는데 눈빛이 좋지 않았다.두 손으로 무릎을 짚고 숨을 내쉬던 임상언은 이 말을 듣고 고개를 들어 사냥감을 쳐다보는 듯한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그녀에게 웃으며 말했다.“나를 인질로 삼고 싶어?”그는 그녀의 생각
소은은 고개를 들어 눈물을 참으며 말했다. “한 가지 이상한 게 있어요.”“무슨 일이에요?” 임남을 달래던 임상언이 무심히 되물었다.“로사 왕자는 감금된 것이 아니라 그날 Y국으로 송환되었다고 들었는데, 그렇다면 왜 그동안 로사 왕자와 연락이 닿지 않았던 걸까요?” 소은의 말에 임상언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두 가지 가능성이 있겠죠. 신호가 나쁘거나 핸드폰을 확인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 로사 왕자가 저희 연락을 거부하고 있을 수도...”두 사람은 잠시 눈을 마주쳤다. 말은 없었지만, 둘 다 이미 답을 얻은 듯했다. 로사 왕자가 그토록 연락을 피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도 나름의 계획을 세우고 있는 건가?...3일 후. 소은은 마지막 침을 놓고 손을 거두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여왕을 쳐다보며 말했다. “오늘 시술로 폐하의 다리에 감각이 돌아오실 겁니다. 하지만 일어서는 건 천천히 시도하셔야 합니다. 너무 서두르시면 안 돼요.”소은은 말을 마치고 갑자기 미소를 지었다.“무엇 때문에 웃는 거지?” 여왕은 여전히 자신의 다리를 어루만지며 물었다. 이미 이틀 전부터 약간의 감각이 돌아왔음을 느낀 터라, 소은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소은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제가 쓸데없는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요. 사실 R10 실험을 고집하신다면 결국 폐하께서는 이 몸을 떠나게 되실 텐데, 제가 이 몸에 애쓰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여왕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계속한 거지?”“어쩌면, 폐하께서 마음을 바꾸실 지도 모르니까요.” 소은은 부드럽게 대답했다. “어쩌면 자신의 몸이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거든요.”“우리 모두 이 세상에 올 때 두 손은 비어있지만, 이 몸만은 오로지 우리 자신의 것이죠. 몸마저 버리신다면, 그 영혼은 여전히 진짜 자신일 수 있을까요?”“그렇구나.” 여왕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
소은은 조용히 몸을 일으키며 여왕을 쳐다보았다. “물론이죠.” 소은은 담담하게 답했다. 그 대답에는 원망이나 비난의 기색은 전혀 없었다.“그렇다면... 조금 아쉽네.” 여왕은 생각에 잠긴 듯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기 마련입니다. 세상 모든 일은 균형을 맞추려 하죠. R10이 폐하께서 이루고자 하는 꿈이라면, 저는 그것을 막을 수 없어요. 다만, 그때가 되어 성공하든 실패하든, 저는 그 모습을 보지 못할 테니 부디 후회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소은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문 밖으로 나갔다.릭은 여전히 문 앞에서 대기 중이었다. 그녀와 여왕의 대화가 거의 다 들렸던 듯, 둘의 시선이 잠시 교차했다. 소은이 그를 지나쳐 나가자, 릭은 곧장 방으로 들어갔다.“여왕 폐하.” 릭은 여왕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그녀의 다리에 꽂힌 은침을 보자 릭의 눈빛이 굳어졌다. “이건...”“괜찮아. 곧 소은이가 와서 침을 빼줄 거야.” 여왕은 무심하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릭은 여전히 불안한 눈빛으로 말했다. “폐하께서 너무 방심하시는 것 아닙니까? 만약 한소은이 폐하께...”“그럴 리 없다.” 여왕은 단호히 그의 말을 잘랐다.릭은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설마 그 여자를 믿으시는 겁니까?”여왕은 대답 대신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녀도 릭의 질문이 아니었다면 자신이 소은을 믿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오랜 세월 누구도 쉽게 믿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그녀는 소은을 의심하지 않았다. 심지어 은침에 독이 묻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제가 가서 잡아오도록 하죠.”여왕이 생각에 잠기자 릭은 바로 뒤돌아섰다.“거기 서!”여왕은 결연히 말했다. “난 믿어.”릭은 한참을 침묵하며 여왕의 결정을 받아들였다....임상언은 아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비록 아들을 구하려는 결심을 굳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희망이 사라지는 듯했다.
소은은 허리춤에서 허리띠처럼 생긴 물건을 꺼내더니 조심스럽게 풀어내며, 그 안에 숨겨진 가느다란 은침을 꺼냈다.“이건...” 여왕은 깜짝 놀라며 소은을 쳐다봤다. 소은이가 은침을 항상 가지고 다닐 줄은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말해봐, 네 요구가 뭐지?” 여왕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마음을 가다듬으려 애썼다. 너무 무리한 요구라면 거절하면 그만이다. 여왕은 절대 소은에게 휘둘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소은은 차분하게 말했다. “제가 여기서 나올 수 있었던 건 로사 왕자님 덕분입니다. 그러니, 왕자님을 책망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그게 다야?” 여왕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소은이 여기까지 와서 자신과 조건을 따지는데, 결국 요구한 게 단지 로사를 처벌하지 말라는 거라니. 자신이 잘못 들은 건가 싶었다.“로사는 내 아들이다. 내가 정말 내 아들에게 손을 댈 리는 없지. 괜히 기회를 헛되게 쓴 건 아닌가?” 여왕은 고개를 저으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전 폐하께서 정말 로사 왕자님께 처벌을 내리시지 않을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왕자 폐하께서 저를 구해준 건 사실이기에 저도 왕자 폐하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소은은 조용히 말했다. “게다가 지금 왕자 폐하를 감금하시고 자유를 제한하고 계시지 않나요?”여왕은 의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니야. 난 단지 로사를 Y국으로 돌려보냈을 뿐이야.”“로사가 여기서 내 일을 여러모로 방해하긴 했지만, 우리 모자 사이가 더 악화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국내에서도 로사가 필요하니 Y국으로 돌려보낸 것뿐이다.” 여왕은 담담하게 말했다.“그런데 왜 왕자 폐하의 전화가 연결되지 않죠?” 소은은 잠시 멈칫했다. 단지 귀국했다면 국제전화를 받을 수 있을 텐데, 연락이 닿지 않았기에 여왕이 로사를 가둬놓았다고 오해할 수밖에 없었다.여왕은 깊은 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나도 잘 모르겠군. 그날 내가 화가 났던 건 사실이지만, 곧바로 Y국으로 돌아가도록
“삼일이면 됩니다.” 소은은 여왕을 쳐다보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삼일? 고작 삼일?” 여왕의 눈에는 믿기지 않는 놀라움이 서렸다. 그녀는 적어도 몇 달, 아니 최소한 몇 년은 걸릴 줄 알았다. 그러나 고작 삼일이라니, 그녀로서는 상상도 못 한 시간이었다.삼일쯤이야. 십 수년을 이렇게 버텨왔는데, 삼일쯤 더 기다린다고 달라질 게 뭐 있겠는가?“삼일 안에 정말 나아질 수 있는 건가? 내가 정말 다시 일어서서 걸을 수 있는 건가?” 여왕은 두 손으로 자신의 다리를 힘껏 눌렀지만 여전히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그녀는 소은의 말을 쉽게 믿을 수가 없었다. 이 다리가 감각을 잃은지 너무 오래되어 치료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여왕은 여러 나라의 명의를 찾아 다녔지만, 그들은 단지 병의 악화를 늦출 수 있을 뿐 다리를 완전히 회복시키는 건 불가능하다고 했었다. 그러나 지금 소은은 그녀 앞에 서서 확신에 찬 얼굴로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녀는 속으로 자신도 모르게 그 말을 믿고 싶어졌다.“이전처럼 완벽하게 걸을 수 있을 거라고 장담할 순 없어요. 너무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아서 근육이 많이 위축됐거든요. 하지만 서서히 일어나서 조금씩 회복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소은은 진지한 어조로 답했다.여왕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정도라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젊었을 때처럼 완전히 회복되는 것을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만약 휠체어와 지팡이 없이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 그 자체로도 그녀에겐 더할 나위 없는 희망이었다.“좋아. 삼일, 기다리겠네. 필요한 게 있나?” 여왕은 기분이 좋아져 말을 한층 부드럽게 했다.“임남...” 소은이 말을 꺼내자마자 여왕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녀는 곧바로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 “그건 안 돼. 그런 요구는 하지 마라.”“제가 말한 건 임남을 바로 풀어달라는 게 아닙니다. 그냥... 그 아이가 괜찮은지 알고 싶고, 가능하다면 아버지와 한 번 만날 기회를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 실험을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은 저와 프레드 뿐이기 때문입니다.” 소은은 잠시 생각하다가 덧붙였다. “아니면 주효정을 믿으실 건가요?”“나는... 아무도 믿지 않아.” 여왕은 얼굴을 차갑게 굳히며 휠체어를 돌렸다.“여왕 폐하께서 이 실험에 집착하고 계시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인가요? 세상을 둘러보고 싶다거나, 짐을 내려놓고 잠시 쉬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으신가요? 수십 년간 왕좌에 오르셨지만, 정말로 아직도 그 삶이 좋으신가요? 언제나 긴장하며 위태로운 자리를 견디는 고단한 나날, 정말 아직도 벗어나고 싶지 않으신가요?” 소은은 여왕의 등을 쳐다보며 부드럽게 물었다.여왕은 아무 말 없이 자신의 무릎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살짝 떨구었다. 그녀는 시선을 다리로 내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세상을 둘러본다? 나는... 걷는 게 어떤 느낌인지도 잊어버렸어.”여왕은 오랜 세월 동안 다리를 쓰지 않았고, 처음에는 억지로라도 일어설 수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상태는 악화되었고 이제는 아예 휠체어 없이는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그녀는 휠체어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소은이 ‘세상을 둘러보라’는 말을 꺼내자 가슴이 아팠다.“만약... 폐하께서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요? 제가 다시 걷게 해드린다면요?” 소은은 조용히 여왕의 뒤에 서서 말했다.여왕은 잠시 멈칫하더니, 눈빛이 날카롭게 변하며 휠체어를 돌려 소은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정말이냐?” 여왕의 눈에는 억누를 수 없는 희망과 깊은 의심이 뒤섞여 있었다.소은은 대답 대신 그녀의 시선을 천천히 여왕의 다리로 내리고, 천천히 다가가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손을 뻗어 여왕의 무릎 위에 가볍게 손을 올렸다.여왕은 살짝 몸을 떨었다. 사실, 그녀의 다리는 거의 완전히 감각을 잃은 상태라서 소은의 손길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아마도 너무나 간절히 다시 일어서고 싶기 때문이었을 것이다.소은은 아무 말 없이 여왕의
“맞아요, 임남 때문이기도 하지만, 폐하 때문이기도 합니다.” 소은은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제가 정말로 떠나버렸다면, 가장 초조해지는 사람은 사실 여왕 폐하 아닐까요?”여왕은 코웃음을 치며 차갑게 말했다. “내가 초조해질 이유가 뭐지? 어차피 내 손엔 네 약점이 있잖아. 너를 다시 잡아오는 것도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고.”“약점이요? 임남 말씀이신가요?” 소은은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잊지 마세요, 임남이는 제 아들이 아닙니다. 저에게는 제 친자식이 셋이나 있어요. 만약 제가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임남을 포기해 제 아이들을 지키려 한다면, 그 약점이 과연 제게 약점이 맞을까요?”여왕이 입을 열기도 전에 소은은 다시 말을 이었다. “게다가, 그 아이에겐 목숨을 걸고서라도 구하려는 아버지가 있습니다. 만약 임상언이 폐하께 끝까지 맞서기로 결심한다면...” “폐하께서야 높은 자리에 있으니 이런 평범한 상인을 하찮게 여기실 수 있지만, 임상언 씨가 단순한 상인이 아니라는 걸 잊으시면 안 됩니다. 임상언 씨의 사업은 세계 곳곳에 뻗어 있어요. 임상언 씨가 목숨을 걸 각오가 되어 있다면 그 어떤 일도 할 수 있겠죠. 혹시라도 바깥에 소문이 퍼져 폐하와 Y국의 명망이 손상된다면, 곤란하지 않겠습니까?”“너...” 여왕은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반박할 말이 당장 떠오르지 않았다.여왕이 화가 난 것을 보고, 소은은 한결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화내지 마세요. 제가 돌아온 건 폐하를 자극하려는 게 아닙니다. 함께 최선의 방향을 찾고자 돌아온 거예요. 사실 폐하께서 H국에 오신 일이 밝혀진 건 아니지만, 꽤 오랜 시간 H국에 머물고 계셨습니다. 정말로 H국이 이 사실을 모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세요?”여왕은 말없이 그녀를 쳐다보았다. “지금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건 폐하의 체면을 살려드린 겁니다. 그러나 폐하께서 이곳에서 계속 머무르시며 혹여 무리수를 두신다면, 얼마나 더 체류하실 수 있을까요? Y국도 계속해서
릭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여왕은 모니터에서 시선을 돌리며 담담히 말했다. “소은을 데려와. 어디 한번 무슨 변명을 할지 들어보자. 또 어떤 이야기를 꾸며낼지 궁금하네.” 여왕은 휠체어를 살짝 돌려 더 이상 모니터를 보지 않았다.“여왕 폐하?” 릭은 망설이다가 말했다. “한소은이 거짓말을 할 걸 아시면서도 굳이 왜...” 그러나 여왕은 그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단호히 말했다. “듣고 싶어!” 이 한마디에 릭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그는 곧장 소은이 있는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소은이 정말로 잠이 들려고 하던 순간, 문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그녀는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다. 눈을 뜨는 순간, 문이 열리면서 릭이 문 앞에 서 있었다. 그의 얼굴은 굳어 있었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여왕께서 한소은 씨를 만나고 싶어 하십니다.” 소은은 차분한 표정으로 릭을 쳐다보았다. 마치 모든 상황을 예견한 듯 고요하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와 동시에 임상언은 소은보다 먼저 일어나 문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가 문에 도착하자마자 릭이 손을 들어 그의 앞을 막았다. “그쪽은 남아 계시죠.” “뭐? 우리 둘은 같이 온 거야!” 임상언은 소은을 돌아보며 그녀에게 눈짓으로 도움을 요청했다. 릭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여왕 폐하께서 그쪽을 부르지 않았으니 여기 남으시죠.” 릭은 더 이상 임상언에게 말을 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소은은 임상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부드럽게 말했다. “절 기다리고 있어요.” 임상언은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억지로 마음을 다스리며 그녀가 릭과 함께 방을 나서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조심해요.” 임상언은 소은을 향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소은은 미소를 지어 그에게 답했고, 릭을 따라 여왕의 방으로 향했다. 익숙한 길을 따라 걷는 그녀는 곧 여왕의 방에 도착했다. 릭이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여왕 폐하, 데려왔습니다
소은이 임상언을 데리고 대사관에 도착하자,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눈에 띄게 당황했다.한 사람이 서둘러 소식을 알리러 가더니, 이내 주변 구석구석에서 누군가가 몰래 그들을 엿보는 기척이 느껴졌다. 곧이어, 소은이 잘 알고 있는 여왕의 측근 몇 명이 경계 어린 눈빛으로 다가와 그들을 안으로 안내했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그들은 소은과 임상언의 몸을 샅샅이 검사하며 위험 물품을 소지하지 않았는지 확인했다. 철저한 검사가 끝난 후에야 비로소 경계가 풀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여왕을 만나지 못했고, 한적하고 깊숙한 방에 대기하도록 배정받았다. 오랜만에 돌아온 이곳은 소은에게 익숙하면서도 낯설게 느껴졌다. 익숙한 것은 이 장소였지만, 낯선 것은 지금의 마음가짐이었다. 예전에는 이곳이 싫고 불쾌하기만 했으며,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은 장소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임무와 사명을 가지고 돌아왔고, 그녀의 목표는 단순히 여기를 떠나는 것이 아닌, 중요한 일을 완수하고 무사히 돌아가는 것이었다.반면, 임상언은 눈에 띄게 불안해 보였다. 그는 두 손을 맞잡고 무릎 위에 놓은 채,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다리를 가볍게 떨고 있었다. 소은은 그의 초조함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임남을 생각하면 마음이 몹시 불안하고 조급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여기까지 왔으니 임남을 반드시 볼 수 있을 거예요. 그러니 긴장 좀 풀어요.” 소은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임상언은 그녀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발을 땅에 꾹 눌러 다리를 멈췄다. 겉으로는 조금 안정된 듯 보였지만, 그의 얼굴은 여전히 긴장감이 가득했고 미세하게 떨리는 얼굴 근육이 그의 불안한 마음을 보여주었다. 마음을 진정시키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소은은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다.두 사람은 한참을 기다렸지만, 여왕을 만나러 오라는 사람은커녕 상황을 확인하러 오는 사람조차 없었다. 긴장했던 임상언은 결국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대체 무슨 의도인 거죠? 왜 아직
“제발 부탁이에요. 안에서는 소은 씨 말만 따를게요. 소은 씨가 시키는 대로 다 할 테니까, 제발 절 데려가 주시면 안 돼요?” 임상언은 진심 어린 목소리로 소은에게 간청했다. 자존심은 이미 버린 지 오래였다. 아들을 만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그를 이 지경까지 이르게 했다. 소은이 반드시 돌아가겠다고 결심한 순간, 임상언은 이미 마음을 굳혔다. 자신이 함께 가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같이 가면 의심을 받거나 제지를 당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전 아니에요.” 임상언은 계속 설득을 이어갔다. “임남이 그 안에 있다는 걸 모두 알고 있잖아요. 제가 아들을 만나고 구하려고 하는 건 당연한 일이에요. 그리고 아들을 위해서 제 목숨을 바치는 것도 이해될 수 있는 일이죠. 그러니 제가 가는 게 가장 올바른 선택이에요.” 긴 침묵 끝에, 소은이 입을 열었다. “임상언 씨 말이 맞아요. 전 동의합니다.” 소은은 말을 마치고 서진에게 시선을 돌렸다. 서진은 잠시 생각하더니 천천히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저도 동의합니다.” 원청현은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두드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나도 동의하지.” 잠시 침묵하던 진정기 역시 마침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동의합니다.” 마지막으로 원철수는 주변을 둘러보며 한숨을 내쉬고 손을 펼쳤다. “모두 동의했는데 내가 뭐라고 반대하겠어. 나도 찬성이야.” 사실 원철수의 의견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임상언에게 지지를 표현하는 의미였다. 임상언은 눈시울이 붉어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모두들 고마워요.” “이게 뭔 감사할 일이라고. 어쨌든 안에 들어가면 절대 신중해야 해. 무슨 일이 있어도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네 입으로 한 말 반드시 지켜!” 원철수는 그의 결심을 칭찬하면서도 걱정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원철수는 속으로 임상언의 결단에 감탄했다.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그는 분명 최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