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지도 못했죠!”원철수는 자신이 드디어 그녀를 억압할 수 있는 무언가를 갖게 되었다는 생각에 의기양양했다.“소은 씨가 망가뜨린 실험 자료는 제가 전부 복구했어요. 현재 실험실은 이미 처음처럼 회복됐어요. 아니, 소은 씨가 있을 때보다 더 좋아졌어요. 곧 모든 실험 프로젝트가 성공할 거라고 믿어요.”“너…….”한소은은 그를 멍청한 놈, 잘한다는 듯 멍청한 짓을 했다고 욕하려고 했다.다시 생각해 보니, 망가뜨린 데이터를 이미 복구했으니, 이제 와서 그를 욕해도 소용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그럼 빠른 성공 바래요.”원철수는 아무것도 모르고, 한소은이 화를 내는 것이 자신이 망가뜨린 데이터를 복구할 수 있는 것 때문이라고 생각되어 더욱 자부심을 느꼈다.“생각 못했죠? 제가 전에 해커에게 배운 적이 있어요. 하드웨어를 떨어뜨리든, 데이터베이스를 망가뜨리든 내가 어떻게 해서든 복구할 수 있을 거예요.”“그래요?”소운은 눈을 들며 가볍게 웃었다.그는 그녀에게 새로운 아이디어를 주었다. 괜찮네. 단지 하드웨어를 망가뜨렸지만. 만약 데이터베이스를 해킹해서 모든 실험 자료를 망가뜨린다면?왠지…… 괜찮은 생각인 것 같은데?이렇게 생각하니 그를 보는 눈빛도 많이 누그러졌다.고개를 숙여 가방을 정리하고 손을 씻고 나서 아들에게 말했다. “김준, 집에 가자.”손뼉을 쳤지만, 녀석은 재미에 빠져 구석으로 몸을 숨기며 작은 엉덩이를 내밀었다. “싫어, 싫어…….”“싫긴 뭐가 싫어, 네가 할아버지 댁을 어지럽힌 걸 봐, 오늘 할아버지 수염을 몇 개나 뽑았어? 계속 뽑으면 할아버지 대머리 돼! 그러며 안돼!”그녀는 낮은 목소리로 아들을 가볍게 꾸짖고, 한쪽의 원 어르신은 무의식적으로 수염을 만지고, 또 머리를 만졌다. 대, 대머리?원철수조차도 참지 못하고 그의 방향을 쳐다보았는데, 원 어르신이 가장 아끼던 수염이 약간 듬성듬성 빈 것 같았다.“컥…….”헛기침으로 자신의 민망함을 감추며 원 어르신이 입을 열었다.“애가 좀 더 놀고
“괜찮아요. 그냥…… 그냥 보는 거에요.”그녀는 담담하게 말했다.옆에서 줄곧 무시당하던 원철수가 마침내 발휘할 공간을 찾았다. 그는 이 일을 알고 있었다.“김서진을 걱정하는 거죠? 그럴 필요 없어요!”원철수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말했다. “그가 둘째 할아버지의 제자인 이상, 이 정도의 전염병은 문제가 되지 않을 거에요.미숙해서 해결은 못하더라도 자신을 보호하는 데는 문제없겠죠.”누구도 반박하지 않자 원철수는 자연스럽게 이것이 암묵적으로 인정한다고 느꼈다.김서진이 둘째 할아버지의 제자인 이상, 그들이 오랫동안 한의학에 대한 연구로 전염병에 대처하는 것은 그다지 큰 문제가 아니었다.그가 모르는 것은 원 어르신의 제자는 한소은이지 그가 생각하는 김서진이 아니라는 것이다.그의 말을 듣고 한소은은 참지 못하고 눈을 흘겼다. 정말 잘난 체하는 멍청한 돼지였다.대답할 흥미조차 없이 원 어르신에게 얼굴을 돌려 말했다.“제가 듣기로는 이번 전염병은 이전처럼 간단하지 않아요. 여태껏 본 적이 없는 신종 바이러스인 것 같아요.”원 어르신은 말을 듣고 대충 한소은이 자신의 남편을 걱정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나도 소식을 조금 들었지만 아직 확실하지 않아. 지금 국내에서도 그쪽에 대한 입국 통제가 강화되고 있어. 하지만 김 씨 집안의 그 녀석도 보통 사람이 아니니 접할 가능성이 적을 것이야. 게다가 그도 성인이야. 애도 아닌데 그쪽에서 우리보다 더 구체적인 상황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니 스스로 보호할 수 있는 조치를 할 줄 알 거야.”원 어르신은 그녀를 위로하고 있는 것이지만, 말한 것도 사실이다.원철수는 이미 완전히 무감각해졌다. 둘째 할아버지는 너무 편파적이었다. 자신에게는 맘에 안 드는 듯한 말투로 말하면서 한소은에게는…… 아무리 그의 제자의 마누라라고 해도 이 정도까지는 잘해 줄 필요는 없잖아.“둘째 할아버지, 제가 보기엔 정도가 심하게 퍼졌어요. 전에 본 적이 없는 신종 바이러스는 무슨. 과학기술과 의학이 지금 이렇게나 발달되었는데, 어떤
이순간 그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둘째 할아버지, 제자를 편애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지만, 일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 쟤가 뭘 알아요! 이렇게까지 편애하는 건 아니잖아요! 그리고, 쟤가 둘째 할아버지 손에서 얼마나 많은 진귀한 약재를 가져갔는지, 쟤가 뭔지 알고 가져가는 거예요. 제가 평소에 조금 갖고 싶다고 해도, 그냥 조금만 가져가라고 하셨어요. 쟤는 한 가방을…….”그 가방을 보고 그는 눈시울을 붉혔다.원 어르신 손에 있는 것은 일반적인도 아니고, 모두 정성껏 길러낸 진귀한 약재였다, 그가 몇 번이나 갖고 싶다고 말했는데 모두 거절당했고, 가끔씩 조금만 주곤 했는데, 한소은은 한 가방을…… 그는 너무 질투가 났다!“내 물건은 내가 누구에게 주고 싶으면 누구에게 주는 거야! 너 온종일 돈 많은 사람들하고만 어울리고 있는 거, 의약 방면에 열심히 노력하지 않고, 늘 명예를 얻는 일들만 하려 하고, 또 내 명성에 빌붙으려 하는 속셈을 모를 줄 알아? 내 눈앞에서 꺼져, 나에게 빌붙을 생각 하지 마!”원 어르신이 모처럼 이렇게 크게 화를 내며, 한숨에 욕을 내뱉었다.한소은. “…….”원철수. “…….”한순간, 쥐 죽은 듯한 고요함이 흐르고 어색한 기운이 공기에 떠올랐다.“키득키득…….”옆에서 혼자 놀던 김준이 언제 울타리 가장자리에 섰는지, 어른들이 이야기하고 있는 걸 바라보고 있다가, 어르신의 화난 소리에 놀라지 않고 오히려 웃음이 터졌다.애들은 무서울 게 없다.이 연이은 웃음소리는 원철수를 더욱 어색하게 만들었다. 마치 이빨이 다 자라지 않은 젖먹이에게 놀림을 당하는 것 같았다.원철의 얼굴은 순식간에 빨갛게 달아올랐다가 곧 다시 하얗게 됐다…….“둘째 할아버지, 제가 근면하지 못하다고, 재능이 부족하다고 하셔도 다 괜찮아요. 하지만 제가 명예를 얻은 일들만 한다는 것은…… 저를 너무 무시하는 거예요! 우리 할아버지 때문에 항상 저에 대한 선입견을 가지고, 저희 가족 모두에 대한 선입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그러나
이때 잠겨야 할 진열장이 활짝 열렸고, 안에 있던 주전자 한 자루가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고, 다른 한 자루는…….“아이고, 내 새끼야!”어르신께서는 떨리는 목소리로 소리 지르셨다. 그것은 주전자를 말하는 것인지 사람을 말하는 것인지 모랐다. 그리고는 바로 까치발을 하고 달려가셨다.“둘째 할아바지 드려!”꼬맹이는 어르신께서 무엇을 원하는지 아는 듯 손을 뻗어 그 주전자를 들고 어르신에게 건네주려고 했다. 하지만 꼬맹이는 그곳에 기어올라 두 손으로 잡으려 했지만 몸이 불안정하게 흔들리며 뒤로 넘어졌다.“아이고, 내 새끼!”어르신께서는 다시 한번 소리쳤고 쏜살같이 앞으로 나아갔다. 그는 갑자기 다리가 그렇게 재빠르신 줄 모르고 떨어지려는 어린 녀석을 덥석 안았다. 이와 동시에 다른 소리가 울렸다.“꽝-”어르신께서는 눈을 감으시고 뜨지 않았다. 마치 이렇게라도 하면 현실을 마주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았다.어르신께서는 마음이 아팠고, 살도 아팠으며 온몸이 아팠다!“무서워하지 마요. 할아버지, 무서워하지 마요!” 꼬맹이는 두 손으로 어르신의 가슴을 두드리며 무서워하지 말라고 표시했다.“…….”엉엉엉. 어르신께서는 울고 싶어 하셨다!이때 한소은은 다가와 한숨을 쉬며 말했다.“제가 방금 여쭤보고 싶었는데 그 두 자루의 주전자는 비싼 건가요?”그러나 어르신께서는 기어코 한소은의 말을 끊으려 하셨고, 스스로 그곳에서 호기롭고 강개 경악하게 말씀하시고 또 하셨다.“그럼?”눈을 뜨자 어르신께서는 슬픈 눈빛으로 한소은을 한 번 보았다.“그럼 말을 하지 그래. 나는 또 네가 원철수 그 어린 녀석을 말하는 줄 알았네.”“그건 스승님 집안일이잖아요. 제 말이 맞죠?”한숨을 쉬자 한소은은 어르신을 향해 두 팔을 벌리며 말했다. “이리 주세요!”그러나 어르신께서 꼭 껴안으셨다.“안 줘!”“네가 무엇을 하려는지 모른다고 생각하지 마. 너에게 주면 너는 그를 혼내려고 하는 거 아니야!”어르신은 김준을 품에 꼭 안고 한쪽으로 가서 앉으셨다.
어르신께서 그렇게 말하셨으니 한소은은 아이를 받고 정말 어르신 앞에서 손을 댈 수 없었다.그냥 굳은 표정을 지으며 엄숙한 표정으로 아들을 바라보았다.“잘못했 어?”아이는 아직 어리지만 옳고 그름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이미 작은 머리를 숙이고 긴장한 눈빛으로 어머니를 처다보며 묻는 말을 듣자 입을 오므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자신이 잘못한 것은 인정해야 해. 사나이가 잘못한 것을 감당할 용기도 없는 것인가?”한소은은 이어서 말했다.“잘못했 어?”“잘못했어요.”소리는 작고 아직 어렴풋하였지만 그래도 들릴 정도이었다.하지만 한소은은 일부러 말했다.“뭐라고? 잘 안 들려.”“잘못했어요.”이번에는 목소리가 좀 더 커졌다. 그는 작은 입을 납작하게 하고 좀 억울해 보였다. 반짝이는 눈물은 이미 큰 눈에서 맴돌았다.이런 곧 울것만 같은 모습만 해도 이미 어르신의 마음을 아프게 하여 계속 손을 흔들었다.“됐어, 됐어. 정도껏 해. 이렇게 어린애가 뭘 알겠어.”“아직 어리니 더 그에게 옳고 그름을 알게 해야 하고 무엇을 하면 되고 무엇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게 해야 합니다. 엄마가 할아버지 댁의 물건을 함부로 뒤져서는 안 되고 규칙 없이 오르락내리락해서는 안 된다고 여러 번 말 하지 않았어?”한소은은 화를 내며 말했다.“자꾸 이렇게 장난을 치고 이번에는 할아버지 물건까지 망가뜨렸는데, 어떻게 할 거야?”“…….”꼬맹이는 어떻게 해야 할지 어찌 알았겠는 가. 얼떨결에 질문을 받고 어머니를 쳐다보며 입을 삐죽거리며 와- 하고 울었다.“울어도 소용없어! 울면 문제가 해결되니?”꼬맹이를 바닥에 내려놓고 허리를 굽혀 그를 바라보았다.“잘못을 저질렀으면 벌을 받아야 해! 네가 할아버지의 주전자를 망가뜨렸으니 우리 새것을 사서 할아버지께 배상해 드리는 건 어때?”“좋아요…….”꼬맹이는 흐느끼며 대답했다. 이때 이미 자신이 큰 잘못을 저질렀음을 알게 되었다.“하지만 너한테 돈이 없는데 어떡하지?”한소은은 다시 한번 물었다. 이 질문은
“어린 아이의 그깟 용돈으로 뭐 하겠어. 장난감이나 사 줘!”어르신께서는 참지 못하고 어린 녀석을 도와 말했다.한소은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렇지, 부족지. 그럼 2년으로 하자.”한소은이 이렇게 말하자 김준은 입을 납작하게 하고 또 울고 싶어 했다.원래 용돈을 1년 동안 깎는 사실을 이미 받아들였는데, 지금 할아버지께서 그를 도와 말을 하여 2년을 깎아야 했다.“이런…….”어르신께서는 멍해져서 돕고 싶어도 도울 수가 없었다. 연신 기침을 두 번 하고, 열린 진열대를 힐끔힐끔 쳐다보며, 아무 핑계나 대고 있었다.“전부 제 탓이 아니야! 내가 진열대를 잘 잠그지 않아서 그가 건들지 않더라도, 어쩌면 도둑맞았을지도 몰라!”이어 큰소리로 호통을 쳤다.“너희들은 어떻게 일을 한 거니! 진열대를 모두 잠그라 하지 않았니. 왜 이런 작은 일도 제대로 못 하는 거야! 이번 달 월급은 안 받고 싶은거지, 잘리고 싶은거지!”청소하고 있던 가사 도우미들은 얼른 대답했다.“어르신. 진열대는 확실히 잠겨 있었습니다. 모두 자세히 검사했습니다.”가사 도우미들은 다 해놓고 못 했다는 호통을 듣고 억울해하며 말했다.“허튼소리! 진열대를 잠갔는데 어떻게 열린 것이야. 설마 이렇게 어린아이가 진열대를 열었단 말인가?”어르신께서 꾸짖었다.“그건…….” 가사 도우미들이 어찌 알겠는가? 그들은 자신이 확실히 진열대를 잠갔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 어떻게 열린 것인지 아무도 몰랐다?!어르신께서 이렇게 묻자 한소은도 이 일이 생각나 제자리에서 일어나 진열대 앞으로 걸어가서 그 자물쇠를 자세히 살펴보았다.자물쇠는 아주 간단했고 가장 일반적인 버클 자물쇠였다. 하지만 열심히 자물쇠를 잘 채운 것이어서 한 살 남짓한 아이가 열려고 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열쇠가 없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열쇠를 준다고 해서 반드시 자물쇠를 열 수 있는 것은 아니다.자세히 살펴본 후에 고개를 돌려 아들을 쳐다보며 깊이 생각했다.야단을 맞고 슬픔에 잠긴 꼬맹이는 어머니의
혼날 줄 알았던 꼬맹이는 계속 욕하려는 것이 아니라 엄마도 자물쇠를 열 수 없다는 것을 듣고 기뻐하며 자신을 드러내려고 했다.작은 두 손을 모아 자세를 취하고 비틀거리는 모양을 하며 입에선 맑은소리가 나기도 했다. “뾱-” 이렇게 열렸다고 뜻하는 것 같았다.꼬맹이의 이 행동을 보고 다른 사람들은 무슨 뜻인지 알아볼 수 없겠지만, 아무래도 자기 아들이니 한소은은 단번에 알게 되었다. 다만 좀 믿을 수가 없었다.“이렇게 간단하게?”“응응!” 꼬맹이는 힘껏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마치 이렇게 간단하다는 것을 의미했다한소은은 옆에 있는 가사 도우미에게 말했다.“다시 진열대를 잠가 주세요.”“……?”의문의 눈빛으로 주인을 쳐다보았지만 원 어르신께서도 이미 넋이 나갔다. 어르신께서도 이 꼬맹이가 어떻게 진열대를 열었는지 정말 궁금했다.원래는 그냥 사고였고 분명 잠그지 않은 게 틀림없다고 생각했지만 한소은이 이렇게 묻는 것을 보고 또 꼬맹이의 행동을 보자 가사 도우미의 과실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만약 정말 꼬맹이가 열었다면 그는 정말 천재였을 것이다.지금 진열대 옆에 서서 가사 도우미가 그에게 의문의 눈빛을 보내자 그는 귀찮게 손을 흔들었다.“아이고, 뭘 봐! 잠그라면 잠가!”“네.” 가사 도우미는 잽싸게 진열대를 다시 잠갔다.확인해야 할 태도로 한소은은 또 특별히 자물쇠를 잡아당겼고 다시 스스로 열려고 시도했지만 가사 도우미 손에 들고 있는 열쇠외에 자신은 확실히 열 수 없다는 것을 발견하였다.이어서 아들을 바라보며 말했다.“자!”입을 삐죽 내밀고 진열대의 방향을 가리키며 그가 다시 한번 자신에게 보여주라고 하였다.김준은 그곳에 서서 열심히 까치발을 했지만 그래도 키가 조금 모자랐다. 다행히 가장자리에 그가 앉아 놀던 작은 의자가 있었다. 의자 위를 밟으니 자물쇠의 위치에 닿을 수 있었다.손에는 어느새 가늘고 긴 막대기가 하나 더 생겼다. 막대기라고 하기엔 더 부드러웠고 무슨 장난감 위의 연결선이 뜯긴 것 같았다. 그는 작은 머리
원 어르신도 입을 크게 벌리고 깜짝 놀랐다. 그는 아이를 바라보며 서둘러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말했다. "준아 정말 잘했다!"원 어르신의 칭찬에 준이는 즉시 미소를 지으며 자기 자신도 자랑스러웠는지 허리를 곧게 폈다."……"한소은은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자물쇠를 연구하고 있었다. 그녀는 이런 자물쇠 같은 것들에 대해 잘 몰랐다. 예전의 TV에서나 인터넷에서 작은 핀으로 자물쇠를 손쉽게 여는 걸 본 적 있다. 하지만 실제로 자기 눈앞에서 자물쇠를 연 사람은 다름 아닌 바로 자기의 어린 아들이었다.김준은 장난감에 달려있던 가는 실로 자물쇠를 쉽게 열었다. 한소은은 그것을 보고 깜짝 놀라 물었다."이건 누구한테 배운 거야?"한소은은 아들을 바라보며 어디서 배웠는지 궁금해했다."……유나!"김준은 생각에 잠겨 고개를 갸웃거리다 대답했다."유나가 누구야?"원 어르신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장유나?"생각에 잠긴 한소은은 곧바로 알아차렸다."장유나 아줌마?""네!"김준은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다 다시 말을 바꾸었다."내가 혼자서 배운 거예요!"일관성이 없어 보이는 이 말에 원 어르신은 어리둥절했다."네가 혼자서 배운 거야, 아니면 유나 아줌마가 가르쳐 준 거야?""음 ……"김준은 작은 눈썹을 찌푸렸다. 아직 나이가 어린 그는 복잡한 물음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하지만 엄마인 한소은은 단번에 김준의 뜻을 알아차렸다“유나 아줌마가 이렇게 자물쇠 여는 걸 보고 배운 거야?”아이는 즉시 신이 나서 고개를 끄덕였다."한번 본 거로 배운다니, 대단해!"원 어르신은 감탄하며 말했다."소은아, 네 아들이 앞으로 크게 될 거 같구나!”하지만 한소은은 이것보다 다른 걸 생각했다."아줌마가 어디서 이렇게 연 거야?"김준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자신도 모른다고 말했다. 어쩌면 아이가 너무 어려서 어디서 봤는지 모르는 것일지도 모른다.하지만 잘 생각해 보면 쉽게 찾을 수 있다. 아이가 익숙한 장난감 방이나 침실이라면 단번
소은은 고개를 들어 눈물을 참으며 말했다. “한 가지 이상한 게 있어요.”“무슨 일이에요?” 임남을 달래던 임상언이 무심히 되물었다.“로사 왕자는 감금된 것이 아니라 그날 Y국으로 송환되었다고 들었는데, 그렇다면 왜 그동안 로사 왕자와 연락이 닿지 않았던 걸까요?” 소은의 말에 임상언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두 가지 가능성이 있겠죠. 신호가 나쁘거나 핸드폰을 확인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 로사 왕자가 저희 연락을 거부하고 있을 수도...”두 사람은 잠시 눈을 마주쳤다. 말은 없었지만, 둘 다 이미 답을 얻은 듯했다. 로사 왕자가 그토록 연락을 피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도 나름의 계획을 세우고 있는 건가?...3일 후. 소은은 마지막 침을 놓고 손을 거두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여왕을 쳐다보며 말했다. “오늘 시술로 폐하의 다리에 감각이 돌아오실 겁니다. 하지만 일어서는 건 천천히 시도하셔야 합니다. 너무 서두르시면 안 돼요.”소은은 말을 마치고 갑자기 미소를 지었다.“무엇 때문에 웃는 거지?” 여왕은 여전히 자신의 다리를 어루만지며 물었다. 이미 이틀 전부터 약간의 감각이 돌아왔음을 느낀 터라, 소은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소은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제가 쓸데없는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요. 사실 R10 실험을 고집하신다면 결국 폐하께서는 이 몸을 떠나게 되실 텐데, 제가 이 몸에 애쓰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여왕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계속한 거지?”“어쩌면, 폐하께서 마음을 바꾸실 지도 모르니까요.” 소은은 부드럽게 대답했다. “어쩌면 자신의 몸이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거든요.”“우리 모두 이 세상에 올 때 두 손은 비어있지만, 이 몸만은 오로지 우리 자신의 것이죠. 몸마저 버리신다면, 그 영혼은 여전히 진짜 자신일 수 있을까요?”“그렇구나.” 여왕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
소은은 조용히 몸을 일으키며 여왕을 쳐다보았다. “물론이죠.” 소은은 담담하게 답했다. 그 대답에는 원망이나 비난의 기색은 전혀 없었다.“그렇다면... 조금 아쉽네.” 여왕은 생각에 잠긴 듯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기 마련입니다. 세상 모든 일은 균형을 맞추려 하죠. R10이 폐하께서 이루고자 하는 꿈이라면, 저는 그것을 막을 수 없어요. 다만, 그때가 되어 성공하든 실패하든, 저는 그 모습을 보지 못할 테니 부디 후회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소은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문 밖으로 나갔다.릭은 여전히 문 앞에서 대기 중이었다. 그녀와 여왕의 대화가 거의 다 들렸던 듯, 둘의 시선이 잠시 교차했다. 소은이 그를 지나쳐 나가자, 릭은 곧장 방으로 들어갔다.“여왕 폐하.” 릭은 여왕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그녀의 다리에 꽂힌 은침을 보자 릭의 눈빛이 굳어졌다. “이건...”“괜찮아. 곧 소은이가 와서 침을 빼줄 거야.” 여왕은 무심하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릭은 여전히 불안한 눈빛으로 말했다. “폐하께서 너무 방심하시는 것 아닙니까? 만약 한소은이 폐하께...”“그럴 리 없다.” 여왕은 단호히 그의 말을 잘랐다.릭은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설마 그 여자를 믿으시는 겁니까?”여왕은 대답 대신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녀도 릭의 질문이 아니었다면 자신이 소은을 믿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오랜 세월 누구도 쉽게 믿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그녀는 소은을 의심하지 않았다. 심지어 은침에 독이 묻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제가 가서 잡아오도록 하죠.”여왕이 생각에 잠기자 릭은 바로 뒤돌아섰다.“거기 서!”여왕은 결연히 말했다. “난 믿어.”릭은 한참을 침묵하며 여왕의 결정을 받아들였다....임상언은 아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비록 아들을 구하려는 결심을 굳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희망이 사라지는 듯했다.
소은은 허리춤에서 허리띠처럼 생긴 물건을 꺼내더니 조심스럽게 풀어내며, 그 안에 숨겨진 가느다란 은침을 꺼냈다.“이건...” 여왕은 깜짝 놀라며 소은을 쳐다봤다. 소은이가 은침을 항상 가지고 다닐 줄은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말해봐, 네 요구가 뭐지?” 여왕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마음을 가다듬으려 애썼다. 너무 무리한 요구라면 거절하면 그만이다. 여왕은 절대 소은에게 휘둘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소은은 차분하게 말했다. “제가 여기서 나올 수 있었던 건 로사 왕자님 덕분입니다. 그러니, 왕자님을 책망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그게 다야?” 여왕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소은이 여기까지 와서 자신과 조건을 따지는데, 결국 요구한 게 단지 로사를 처벌하지 말라는 거라니. 자신이 잘못 들은 건가 싶었다.“로사는 내 아들이다. 내가 정말 내 아들에게 손을 댈 리는 없지. 괜히 기회를 헛되게 쓴 건 아닌가?” 여왕은 고개를 저으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전 폐하께서 정말 로사 왕자님께 처벌을 내리시지 않을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왕자 폐하께서 저를 구해준 건 사실이기에 저도 왕자 폐하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소은은 조용히 말했다. “게다가 지금 왕자 폐하를 감금하시고 자유를 제한하고 계시지 않나요?”여왕은 의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니야. 난 단지 로사를 Y국으로 돌려보냈을 뿐이야.”“로사가 여기서 내 일을 여러모로 방해하긴 했지만, 우리 모자 사이가 더 악화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국내에서도 로사가 필요하니 Y국으로 돌려보낸 것뿐이다.” 여왕은 담담하게 말했다.“그런데 왜 왕자 폐하의 전화가 연결되지 않죠?” 소은은 잠시 멈칫했다. 단지 귀국했다면 국제전화를 받을 수 있을 텐데, 연락이 닿지 않았기에 여왕이 로사를 가둬놓았다고 오해할 수밖에 없었다.여왕은 깊은 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나도 잘 모르겠군. 그날 내가 화가 났던 건 사실이지만, 곧바로 Y국으로 돌아가도록
“삼일이면 됩니다.” 소은은 여왕을 쳐다보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삼일? 고작 삼일?” 여왕의 눈에는 믿기지 않는 놀라움이 서렸다. 그녀는 적어도 몇 달, 아니 최소한 몇 년은 걸릴 줄 알았다. 그러나 고작 삼일이라니, 그녀로서는 상상도 못 한 시간이었다.삼일쯤이야. 십 수년을 이렇게 버텨왔는데, 삼일쯤 더 기다린다고 달라질 게 뭐 있겠는가?“삼일 안에 정말 나아질 수 있는 건가? 내가 정말 다시 일어서서 걸을 수 있는 건가?” 여왕은 두 손으로 자신의 다리를 힘껏 눌렀지만 여전히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그녀는 소은의 말을 쉽게 믿을 수가 없었다. 이 다리가 감각을 잃은지 너무 오래되어 치료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여왕은 여러 나라의 명의를 찾아 다녔지만, 그들은 단지 병의 악화를 늦출 수 있을 뿐 다리를 완전히 회복시키는 건 불가능하다고 했었다. 그러나 지금 소은은 그녀 앞에 서서 확신에 찬 얼굴로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녀는 속으로 자신도 모르게 그 말을 믿고 싶어졌다.“이전처럼 완벽하게 걸을 수 있을 거라고 장담할 순 없어요. 너무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아서 근육이 많이 위축됐거든요. 하지만 서서히 일어나서 조금씩 회복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소은은 진지한 어조로 답했다.여왕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정도라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젊었을 때처럼 완전히 회복되는 것을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만약 휠체어와 지팡이 없이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 그 자체로도 그녀에겐 더할 나위 없는 희망이었다.“좋아. 삼일, 기다리겠네. 필요한 게 있나?” 여왕은 기분이 좋아져 말을 한층 부드럽게 했다.“임남...” 소은이 말을 꺼내자마자 여왕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녀는 곧바로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 “그건 안 돼. 그런 요구는 하지 마라.”“제가 말한 건 임남을 바로 풀어달라는 게 아닙니다. 그냥... 그 아이가 괜찮은지 알고 싶고, 가능하다면 아버지와 한 번 만날 기회를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 실험을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은 저와 프레드 뿐이기 때문입니다.” 소은은 잠시 생각하다가 덧붙였다. “아니면 주효정을 믿으실 건가요?”“나는... 아무도 믿지 않아.” 여왕은 얼굴을 차갑게 굳히며 휠체어를 돌렸다.“여왕 폐하께서 이 실험에 집착하고 계시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인가요? 세상을 둘러보고 싶다거나, 짐을 내려놓고 잠시 쉬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으신가요? 수십 년간 왕좌에 오르셨지만, 정말로 아직도 그 삶이 좋으신가요? 언제나 긴장하며 위태로운 자리를 견디는 고단한 나날, 정말 아직도 벗어나고 싶지 않으신가요?” 소은은 여왕의 등을 쳐다보며 부드럽게 물었다.여왕은 아무 말 없이 자신의 무릎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살짝 떨구었다. 그녀는 시선을 다리로 내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세상을 둘러본다? 나는... 걷는 게 어떤 느낌인지도 잊어버렸어.”여왕은 오랜 세월 동안 다리를 쓰지 않았고, 처음에는 억지로라도 일어설 수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상태는 악화되었고 이제는 아예 휠체어 없이는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그녀는 휠체어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소은이 ‘세상을 둘러보라’는 말을 꺼내자 가슴이 아팠다.“만약... 폐하께서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요? 제가 다시 걷게 해드린다면요?” 소은은 조용히 여왕의 뒤에 서서 말했다.여왕은 잠시 멈칫하더니, 눈빛이 날카롭게 변하며 휠체어를 돌려 소은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정말이냐?” 여왕의 눈에는 억누를 수 없는 희망과 깊은 의심이 뒤섞여 있었다.소은은 대답 대신 그녀의 시선을 천천히 여왕의 다리로 내리고, 천천히 다가가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손을 뻗어 여왕의 무릎 위에 가볍게 손을 올렸다.여왕은 살짝 몸을 떨었다. 사실, 그녀의 다리는 거의 완전히 감각을 잃은 상태라서 소은의 손길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아마도 너무나 간절히 다시 일어서고 싶기 때문이었을 것이다.소은은 아무 말 없이 여왕의
“맞아요, 임남 때문이기도 하지만, 폐하 때문이기도 합니다.” 소은은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제가 정말로 떠나버렸다면, 가장 초조해지는 사람은 사실 여왕 폐하 아닐까요?”여왕은 코웃음을 치며 차갑게 말했다. “내가 초조해질 이유가 뭐지? 어차피 내 손엔 네 약점이 있잖아. 너를 다시 잡아오는 것도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고.”“약점이요? 임남 말씀이신가요?” 소은은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잊지 마세요, 임남이는 제 아들이 아닙니다. 저에게는 제 친자식이 셋이나 있어요. 만약 제가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임남을 포기해 제 아이들을 지키려 한다면, 그 약점이 과연 제게 약점이 맞을까요?”여왕이 입을 열기도 전에 소은은 다시 말을 이었다. “게다가, 그 아이에겐 목숨을 걸고서라도 구하려는 아버지가 있습니다. 만약 임상언이 폐하께 끝까지 맞서기로 결심한다면...” “폐하께서야 높은 자리에 있으니 이런 평범한 상인을 하찮게 여기실 수 있지만, 임상언 씨가 단순한 상인이 아니라는 걸 잊으시면 안 됩니다. 임상언 씨의 사업은 세계 곳곳에 뻗어 있어요. 임상언 씨가 목숨을 걸 각오가 되어 있다면 그 어떤 일도 할 수 있겠죠. 혹시라도 바깥에 소문이 퍼져 폐하와 Y국의 명망이 손상된다면, 곤란하지 않겠습니까?”“너...” 여왕은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반박할 말이 당장 떠오르지 않았다.여왕이 화가 난 것을 보고, 소은은 한결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화내지 마세요. 제가 돌아온 건 폐하를 자극하려는 게 아닙니다. 함께 최선의 방향을 찾고자 돌아온 거예요. 사실 폐하께서 H국에 오신 일이 밝혀진 건 아니지만, 꽤 오랜 시간 H국에 머물고 계셨습니다. 정말로 H국이 이 사실을 모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세요?”여왕은 말없이 그녀를 쳐다보았다. “지금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건 폐하의 체면을 살려드린 겁니다. 그러나 폐하께서 이곳에서 계속 머무르시며 혹여 무리수를 두신다면, 얼마나 더 체류하실 수 있을까요? Y국도 계속해서
릭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여왕은 모니터에서 시선을 돌리며 담담히 말했다. “소은을 데려와. 어디 한번 무슨 변명을 할지 들어보자. 또 어떤 이야기를 꾸며낼지 궁금하네.” 여왕은 휠체어를 살짝 돌려 더 이상 모니터를 보지 않았다.“여왕 폐하?” 릭은 망설이다가 말했다. “한소은이 거짓말을 할 걸 아시면서도 굳이 왜...” 그러나 여왕은 그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단호히 말했다. “듣고 싶어!” 이 한마디에 릭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그는 곧장 소은이 있는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소은이 정말로 잠이 들려고 하던 순간, 문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그녀는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다. 눈을 뜨는 순간, 문이 열리면서 릭이 문 앞에 서 있었다. 그의 얼굴은 굳어 있었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여왕께서 한소은 씨를 만나고 싶어 하십니다.” 소은은 차분한 표정으로 릭을 쳐다보았다. 마치 모든 상황을 예견한 듯 고요하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와 동시에 임상언은 소은보다 먼저 일어나 문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가 문에 도착하자마자 릭이 손을 들어 그의 앞을 막았다. “그쪽은 남아 계시죠.” “뭐? 우리 둘은 같이 온 거야!” 임상언은 소은을 돌아보며 그녀에게 눈짓으로 도움을 요청했다. 릭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여왕 폐하께서 그쪽을 부르지 않았으니 여기 남으시죠.” 릭은 더 이상 임상언에게 말을 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소은은 임상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부드럽게 말했다. “절 기다리고 있어요.” 임상언은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억지로 마음을 다스리며 그녀가 릭과 함께 방을 나서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조심해요.” 임상언은 소은을 향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소은은 미소를 지어 그에게 답했고, 릭을 따라 여왕의 방으로 향했다. 익숙한 길을 따라 걷는 그녀는 곧 여왕의 방에 도착했다. 릭이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여왕 폐하, 데려왔습니다
소은이 임상언을 데리고 대사관에 도착하자,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눈에 띄게 당황했다.한 사람이 서둘러 소식을 알리러 가더니, 이내 주변 구석구석에서 누군가가 몰래 그들을 엿보는 기척이 느껴졌다. 곧이어, 소은이 잘 알고 있는 여왕의 측근 몇 명이 경계 어린 눈빛으로 다가와 그들을 안으로 안내했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그들은 소은과 임상언의 몸을 샅샅이 검사하며 위험 물품을 소지하지 않았는지 확인했다. 철저한 검사가 끝난 후에야 비로소 경계가 풀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여왕을 만나지 못했고, 한적하고 깊숙한 방에 대기하도록 배정받았다. 오랜만에 돌아온 이곳은 소은에게 익숙하면서도 낯설게 느껴졌다. 익숙한 것은 이 장소였지만, 낯선 것은 지금의 마음가짐이었다. 예전에는 이곳이 싫고 불쾌하기만 했으며,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은 장소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임무와 사명을 가지고 돌아왔고, 그녀의 목표는 단순히 여기를 떠나는 것이 아닌, 중요한 일을 완수하고 무사히 돌아가는 것이었다.반면, 임상언은 눈에 띄게 불안해 보였다. 그는 두 손을 맞잡고 무릎 위에 놓은 채,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다리를 가볍게 떨고 있었다. 소은은 그의 초조함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임남을 생각하면 마음이 몹시 불안하고 조급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여기까지 왔으니 임남을 반드시 볼 수 있을 거예요. 그러니 긴장 좀 풀어요.” 소은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임상언은 그녀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발을 땅에 꾹 눌러 다리를 멈췄다. 겉으로는 조금 안정된 듯 보였지만, 그의 얼굴은 여전히 긴장감이 가득했고 미세하게 떨리는 얼굴 근육이 그의 불안한 마음을 보여주었다. 마음을 진정시키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소은은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다.두 사람은 한참을 기다렸지만, 여왕을 만나러 오라는 사람은커녕 상황을 확인하러 오는 사람조차 없었다. 긴장했던 임상언은 결국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대체 무슨 의도인 거죠? 왜 아직
“제발 부탁이에요. 안에서는 소은 씨 말만 따를게요. 소은 씨가 시키는 대로 다 할 테니까, 제발 절 데려가 주시면 안 돼요?” 임상언은 진심 어린 목소리로 소은에게 간청했다. 자존심은 이미 버린 지 오래였다. 아들을 만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그를 이 지경까지 이르게 했다. 소은이 반드시 돌아가겠다고 결심한 순간, 임상언은 이미 마음을 굳혔다. 자신이 함께 가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같이 가면 의심을 받거나 제지를 당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전 아니에요.” 임상언은 계속 설득을 이어갔다. “임남이 그 안에 있다는 걸 모두 알고 있잖아요. 제가 아들을 만나고 구하려고 하는 건 당연한 일이에요. 그리고 아들을 위해서 제 목숨을 바치는 것도 이해될 수 있는 일이죠. 그러니 제가 가는 게 가장 올바른 선택이에요.” 긴 침묵 끝에, 소은이 입을 열었다. “임상언 씨 말이 맞아요. 전 동의합니다.” 소은은 말을 마치고 서진에게 시선을 돌렸다. 서진은 잠시 생각하더니 천천히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저도 동의합니다.” 원청현은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두드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나도 동의하지.” 잠시 침묵하던 진정기 역시 마침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동의합니다.” 마지막으로 원철수는 주변을 둘러보며 한숨을 내쉬고 손을 펼쳤다. “모두 동의했는데 내가 뭐라고 반대하겠어. 나도 찬성이야.” 사실 원철수의 의견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임상언에게 지지를 표현하는 의미였다. 임상언은 눈시울이 붉어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모두들 고마워요.” “이게 뭔 감사할 일이라고. 어쨌든 안에 들어가면 절대 신중해야 해. 무슨 일이 있어도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네 입으로 한 말 반드시 지켜!” 원철수는 그의 결심을 칭찬하면서도 걱정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원철수는 속으로 임상언의 결단에 감탄했다.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그는 분명 최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