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도착하니 문 앞에 검은색의 차가 세워져 있는 걸 발견했다. 손님이 벌써 도착한 모양이다. “임상언씨, 시간 딱 맞춰서 오셨네요.” 한소은이 차를 한번 보더니 말했다. 김서진은 차에서 아들을 안아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한소은을 부축했다. “바라는 게 있으니, 그쪽에서 굽신거릴 수밖에.” “그렇게 말하지 마요. 비즈니스는 서로에게 이들이 되는 일이잖아요.” 한소은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최근 반년, 임상언은 확실히 그들의 집에 자주 드나들었다. 원래 해외에서 활동했었는데 점차 국내로 전이하는 것 같았다. 아직 많은 사업이 해외에 있지만, 주요 사업은 여전히 국내에 있었다. 다만, 임상언은 해외에서 거주하는 시간이 비교적 길었다. 김서진의 그가 점차 사업을 국내로 전이하려 한다고 의심했었다. 하지만 반년이 지나도록 조금의 움직임도 없다는 걸 발견했다. 그저 한소은의 작업실과 많은 주문을 했고 장기적이고도 안정적인 합작 서류를 체결하고 나서야 점차 그에 대한 경계심을 내려놓았다. 게다가 김준이 태어나서부터 임상언의 아들인 임환과 인연이 있는지 두 아이가 서로의 친고가 되어 주며 항상 재미있게 잘 놀았다. 그 덕분에 두 집안은 사이가 많이 친밀해졌다. 김서진의 서신이 한소은의 불러오는 배에 고정되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이게 아닌 거 잘 알잖아요.” 한소은은 화가 나기도 하고 웃기기도 했다. 손을 들어 배를 살살 어루만지며 어이없다는 듯이 그를 한번 쏘아보았다. 그녀가 입을 열기도 전에 김서진의 뒤에서 임상언의 목소리가 전해져 왔다. “아이가 태어나지도 않았는데 벌써 딸바보의 면모를 보이다니, 너무 이른 거 아니에요?” “당신도 아이가 아직 태어나지 않았다는 거 잘 알고 있네요. 근데 벌써 눈독을 들이다니!” 김서진은 몸을 돌려 그를 쏘아보았다. 두 사람이 이렇게 투덕거리는 이유는 어느 날 술을 마시고 사돈을 맺자는 임상언의 말 때 문 이었다. 그 당시, 김서진은 두 집안의 자식이 모두 아들이니 임상언이 취해서 막말한 것
원래 담담한 표정을 짓던 김서진은 이 말을 듣자마자 화를 냈다. “기회는 무슨!” “…….” 임상언과 한소은 모두 어이가 없었다. 한소은은 한 손으로 배를 살짝 어루만지며 생각했다. 만약 이번에 정말 딸이 태어난다면 김서진은 아마 딸을 공주처럼 키울 것이다. 김준이 태어나기 전에 김서진은 딸이 태어나면 좋겠다고 노래를 불렀는데 간호사가 아들이 태어났다는 소리를 듣고 동공 지진이 일어났다고 말했었다. 다행히 첫아이였고 김준의 귀엽고 활기찬 모습에 김서진은 점점 더 인자한 아버지가 되어가고 있었다. 지금 한소은이 쌍둥이를 임신하게 되었으니, 김서진은 이제 하늘이 자기에게 예쁜 딸을 주시는 거라고 매일매일 설레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아직 딸이 태어나지도 않았는데 임상언 이 자식이 자기의 딸을 며느리로 삼겠다고 말하니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 사돈을 맺자는 말이 있고부터 김서진은 임상언이 사돈의 사자도 꺼내지 못하게 했다. “그만 해요. 유치하게 이게 뭐예요.” 한소은이 나서서 두 사람을 말렸다. 그녀는 곧바로 화제를 돌렸다. “다음 시즌 주문량이 또 늘었던데 정말 이렇게 많이 필요한 거 맞아요?” “제시간에 물량을 맞추기 어려운가요?” 임상언이 한소은을 바라보며 되물었다. “물량은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다만 이렇게 많이 주문해서 팔리지 않을까 봐 걱정인 거지.” 최근 유럽 쪽의 금융추세를 보면 다른 회사의 주문량이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이건 지극히 정상적인 현상이었다. 하지만 임상언은 주문량을 줄이기는커녕 오히려 배로 증가하고 있었다. 주문량이 많아진 것은 한소은에게는 좋은 일이다. 주문이 증가하고 계약에 문제가 없으면 돈을 많이 벌 수 있으니 마다할 일이 아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좋지 않은 상황에서 임상언이 정말 그 많은 물량을 다 판매할 수 있을지가 의문이었다. “팔리지 않을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설마 내가 팔리지 않았다고 돈 떼먹지 않을 테니까. 돈 많이 벌어서 아들 장가갈 때 보태야죠.” 임상언이 장난삼아 말하며
임상언은 오래 머물지 않고 바로 집으로 갔다. 그가 다녀간 후 한소은은 방으로 돌아가 샤워하고 깊이 잠든 아들을 한번 보고서야 안방으로 돌아갔다.김서진도 금방 샤워를 마치고 허리춤에 타올을 두르고 욕실에서 걸어 나왔다. 타올 사이로 보이는 복근은 탄탄했다.그저 보기만 했을 뿐인데 한소은은 얼굴이 확 붉어졌다.두 사람은 부부가 된 지 오랜 시간이 지났다. 아들이 태어났고 지금 둘째도 임신 중이다. 하지만 그런데도 그의 알몸을 보면 한소은은 여전히 부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렸다. 그의 몸에 시선을 오래 머물 수 없었다. 부끄러움에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일쑤였다.한소은이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자, 김서진의 눈에는 장난기가 스쳐 지나갔다. 그는 느릿느릿하게 한소은에게로 다가갔다.그가 다가오는 걸 발견하고 구릿빛 피부가 점점 다가오는 걸 느끼며 한소은의 심장이 요동쳤다. 그녀는 빠른 걸음으로 침대의 방향으로 걸어갔다. 겨우 한 걸음 내디뎠는데, 그에게 팔을 잡혔고, 곧이어 그의 품속으로 말려들었다.“부끄러워하는 거예요?”김서진이 머리를 한소은의 정수리 위에 기댔다.한소은의 얼굴은 빨갛게 달아올랐고 심장이 쿵쾅거렸다. 그녀는 입을 삐죽이며 김서진의 말에 대답했다.“누가 부끄러워한다고 그래요? 몇백 번이고 봤던 모습인데 부끄럽기는!”이렇게 말했지만, 사실 자기에게 말하는 것이기도 했다.‘그래, 이미 몇백 번이고 봤는데 뭐가 부끄럽다고! 심잖아 나대지마!’하지만 그녀의 심장은 더욱 크게 쿵쾅거렸다.그녀의 눈에는 김서진의 완벽한 복근이 들어왔다. 한소은이 한가할 때 보디빌딩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었다. 향수 전시회에서 향수 모델도 본 적 있었다. 헬스장을 꾸준히 다니는 사람의 근육은 탄탄하지만 보기 좋지 않고 과장돼 보인다. 그녀는 그런 근육을 좋아하지 않는다.하지만 김서진의 근육은 매끈하고도 보기 좋게 잘 자리 잡았다.그의 근육을 만져보면 조금 딱딱하지만, 긴장을 풀 때 아름다운 윤곽선이 있고 딱딱한 질감이 아니다. 평소에는 셔츠와 양복을 입은 김
“씁…….”한소은은 손가락을 빼려 했지만 빼지 못했다. 살짝 응석이 섞인 목소리로 김서진을 한번 노려보고는 그가 하고 싶은 대로 하도록 내버려 두었다.김서진은 그녀의 손가락을 입에 물고 혀끝으로 이리저리 휘저었다. 짜릿한 느낌은 마치 고양이가 가슴을 살짝 긁는것 것과 같았다. 한소은은 세상 물정을 모르는 소녀가 아니다. 김서진이 계속 이렇게 불을 지피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누구보다 잘 알았다.그녀는 다른 한 손으로 그를 살짝 밀어내며 말했다.“장난 그만 쳐요.”김서진은 그녀의 말을 곧잘 들었다. 그녀의 손가락을 놓아주고 바로 그녀의 입술을 집어삼켰다.며칠 동안 육아에 회사 일에 바쁘게 지낸 탓에 두 사람은 오랫동안 이렇게 사랑을 나누지 못했다. 게다가 한소은이 임신한 것을 알고부터 더욱 조심했다. 오늘 밤의 키스는 도화선이 되어 누르고 눌렀던 사랑에 불을 지폈다.마른 가지가 타들어 가듯이 불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한번 임신했던 경험이 있었기에 두 사람은 지나치지 않게 알맞은 선을 지키고 있었다. 한소은은 가볍게 두어 번 그를 거절하다 더 이상 거절하지 않고 키스에 집중했다.침대는 푹신했고 벽에 비친 두 사람의 그림자는 겹치고 또 겹쳤다.너무 오랜 시간 참았던 탓인지 오늘의 분위기가 알맞았던 탓인지 두 사람은 오래도록 서로를 놓아주지 않았다.김서진은 극도로 자제하며 부드럽게 움직였다.한소은이 다치지 않게 느릿느릿하게 하다 보디 시간이 길어졌다. 나중에는 한소은이 잠을 이기지 못하고 거의 잠이 들어서야 서로를 놓아주었다.김서진은 뒤에서 그녀를 꽉 그러안고 은은한 그녀의 체향을 마음껏 코에 담았다. 제향을 하면서 여러 향기에 장시간 노출되다 보니 그녀만의 독특한 체향이 생겼다. 김서진은 지금, 이 순간이 너무도 만족스러웠다.하지만 한소은은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임신한 후부터 잠이 많아진 탓에 지금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피곤했다.‘이럴 줄 알았으면 조금 더 거절할걸. 피곤해 죽겠어. 이전에도 이렇게 시간이 길었었나? 아닌 거 같
"남자를 생각하고 있는 게 아니라, 일을 생각하고 있다고!"그녀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오늘 좀 이상하지 않니? ‘영수’에 대해 전혀 얘기하지 않았고 주문서와 장사 얘기도 우리가 먼저 말 걸어서 얘기한 거잖아. 게다가 오늘 임환도 안 왔어.""공부하고 있다고 했잖아?"김서진은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임환은 일대일 개인수업을 받아서 이거 때문에 안 올 리가 없잖아. 네 아들을 노는 것을 좋아해서 임상언이 매번 올때마다 같이 왔었잖아!"이렇게 말하면 확실히 좀 이상한 것 같다.김서진은 머리를 끄덕였지만 불쾌했다.“아들을 논다는 것 무슨 뜻이니!”한소은은 입을 삐쭉거렸다.확실히 그렇다. 임환은 김준에게 매우 잘해 준다. 맛있는 거나 재밌는 거 있으면 다 나눠 주고 가끔 김준을 놀릴 때도 있지만 김준은 임환을 매우 좋아한다."지난 2년 동안 임 씨의 장사가 잘 되어있다. 임상언은 장사를 잘하는 사람이라서 ‘영수’에 대해 언급을 안 하는 거 보면 아마도 끼어들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포기한 것 같다."김서진이 말했다."아마 그럴지도."한소은은 임상언이 쉽게 포기하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다른 이유도 찾을 수 없었다."아참, 그 ‘비밀무기’는 어떻게 됐어?" 김서진은 흥미진진하게 물었다.그는 그녀에게 돈과 인력을 지지하면서 결정권을 그녀에게 맡겨 간섭하지도 않았다. 이번에는 처음으로 그녀가 아주 긴장한 모습을 보게 되었다."중단됐어."한숨을 쉬자 그녀의 표정이 우울해졌다.최근에 이것 때문에 짜증이 났다. 양쪽의 의견이 갈라져서 더 이상 진행해야 할지 모르겠다.“중단했다고?”김서진은 아주 의외롭다. 그녀의 표정을 보면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알 수 있지만 임상언이 와서 말을 꺼내지 않았다면 그녀는 이것에 대해 말을 하지 않을 것이다.졸음이 없어졌다.한소은은 앉아서 프로젝트에 대해 자세하게 알려 주었다."너도 알다시피, 이번 새 작품은 운성 쪽에 있는 연구원과 함께 만들었어. 내가 원자재를 몇 개 지정했고 나머진 것
다른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연구가 이름 모를 곳에 이용될까 봐 두려운 것이고, 그가 초래하는 후과들이 무섭다."무서워하지 마!"김서진은 그녀의 손을 잡으면서 격려해 주었다."누구도 강요하지 못하니까 문제 있다고 생각하거나 하고 싶지 않으면 그만 둬!"김씨 가문은 권력 다툼 끝에 이제 김서진의 손에서 커졌으며 이전보다 더 안정적으로 사업을 확장했다.지금 김 씨 가문은 부동산, 패션, 방송뿐만 아니라 의료과학 영역에서도 투자했다.게다가 김서진은 다른 사람들보다 판단력이 더 예리하기 때문에 김 씨 가문은 이제 제성에서 세력이 가장 큰 가문이 되었다감히 그의 앞에서 그의 여자를 강요하는 사람이 없다.김서진의 따뜻한 손으로 한소은의 손을 잡아 마치 무한한 지지와 듬직함이 느껴진 것 같았다.한소은은 그의 손을 바라보면서 갑자기 꽉 물었다.날카로운 이빨을 손바닥 양쪽에 물어뜯으며 장난기라고는 전혀 없었다."아-"김서진은 실눈을 뜨고 더 이상 움직이지 않고 그녀가 물도록 내버려 두었다.깊은 잇자국이 두 줄 남겼는데 피는 나오지 않았다."왜 물었는지 알아?"한소은은 물었다.김서진은 고개를 끄덕였다."억울하지 않지?"그녀가 다시 물었다.김서진은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김서진의 반응을 보고 한소은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누웠다.“자자”“……”김서진은 자기 손을 만지면서 한소은이 진짜 물을 줄 몰랐다. 그러나--그는 달콤하다고 느꼈다!김서진은 옆에 누워 팔을 그녀의 아랫배에 올렸다.따뜻한 온도를 느끼자 김서진은 매우 행복했다."하기 싫은 일은 억지로 하지 마라. 작업실이든 향수, 향료, 약초든 네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 제일 중요해."그는 작은 소리로 그녀의 귓가에 말했다."기분 나쁜 일은 하지 마라.""응."한소은의 대답을 듣고 김서진은 그녀가 기분이 좋아졌다는 것을 알았다.이어 한 손을 그의 손등에 얹은 채 이빨자국이 난 곳을 부드럽게 만지작거렸다.연구소에 대해 김서진은 잘 조사해야 한다고 생각
다음날.김서진은 세수하고 아침을 먹었다. 아들을 보고 방에 들어가는데 한소은은 아직 자고 있었다.그녀를 불러봤지만 한소은은 ‘응’이라는 소리 내고 계속 잤다.그녀가 피곤한 모습을 보고 김서진은 조금 후회했다.이불을 조금 당기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저녁에 무슨 회의가 있지 않아? 피곤하면 가지 마."잠든 줄 알았지만 한소은은 눈을 뜨지 않고 대답했다.“안되, 약초 협회가 열린 회의야, 가야 해."‘잠을 자고 있어도 머리는 멀쩡하네’김서진이 말했다."그럼 데려다줄까?""아니야, 택시 타고 가면 되. "김 씨 가문의 차 번호가 특별하기 때문에 차를 몰자마자 신분이 들킬 수 있다.김서진은 말을 더하려고 했는데 한소은은 이불을 덮고 손을 흔들었다."8시에 회의가 있다고 하지 않았나? 신경 쓰지 말고 그냥 가!"흔드는 손은 김서진의 얼굴을 때릴 뻔했다.그녀가 자신의 회의 시간을 기억하는것을 보고 김서진은 웃었다. ‘고작 작은 회의인데 가고싶으면 가게 해야지.’그녀의 이마에다 뽀뽀하고 김서진은 나갔다.한소은은 점심까지 잤다. 정신은 차렸지만 몸은 아직 피곤하다.세수하고 아들을 보러 갔다. 아들은 새로 온 가정부와 잘 지내는 것 같았다.한소은과 김서진은 아이를 키운 경험이 없고 평소에 바쁘기 때문에 가정부를 구해야 한다."우리 오늘 늦게 들어올 거예요. 무슨 일이 있으면 전화해 주세요.”아들과 놀면서 한소은은 말했다."네, 안심하세요. 제가 도련님을 꼭 잘 돌볼게요."——회의는 저녁 6시반에 중정연회장에서 열린다. 한소은은 원래 치파오를 입으려고 했지만 어울린 옷이 없다.대부분 임신하기 전에 입던 옷이고 임신 후에 헐렁한 옷만 샀다.‘어울린 옷이 없다면 나가서 사자.’798풍정거리는 중국식 스타일을 전문으로 하며, 안에는 중국식 가구부터 옷과 모자, 액세서리까지 모두 갖추어져 있다.
가게의 인테리어는 옛날식이고 은은한 향기가 있었다. 가게 안에는 손님이 많지 않았고 판매원도 많지 않았다. 한소은은 혼자서 고르기 시작했다.잠깐 돌아보고 한 판매원이 다가왔다.“치파오를 찾으……세요?"판매원이 말은 잠깐 멈춘것은 말할때야 한소은의 옷차림을 보았다.이곳에 와서 옷을 고르는 사람들은 모두 부자 아니면 비싼 옷을 입는다. 이곳의 치파오는 재료부터 공예품까지 모두 최상급이니 가격이 만만치 않을 수밖에 없다.한소은은 평소에 아이를 돌봐서 게다가 옷을 사러 왔기 때문에 옷차림이 아주 평범하다."네. 좀 헐렁하고 자연스러운 스타일 없나요?"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판매원는 자연스럽게 머리 뒤로 묶인 머리와 옆에 수행원도 없는 것을 보고 더더욱 쇼핑을 하고 소비 능력이 별로 없는 그런 종류의 것을 느꼈다.판매원은 비웃으며 말했다."저기 잘못 들어오신 거 같은데 저희 가게의 옷이 다 비싸서 고객님과 어울리지 않아요.""제가 가격을 안 물었는데요?" 한소은은 담담하게 말했다.“사모님, 그냥 귀띔해 주는거에요. 저희 가게는 임산부가 어울린 옷이 없어요.”판매원은 몸을 돌려 귀찮게 말했다.판매원은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임산부는 그냥 집에 있지, 무슨 치파오를 사냐!"소리가 작지 않아서 한소은은 들려 말하려고 하자 옆에서 부드러운 목소리가 울렸다."혹시 헐렁한 스타일을 찾으세요?"고개를 돌려보니 유니품을 입은 한 소녀는 인턴인거같았다.그녀의 웃음이 따뜻하다."네, 임신해서 좀 헐렁한 거 사고 싶은데 여기에 없나요?" 일부러 트집을 잡는 것도 아니고 사실 중국 스타일의 옷이 많다고 다 몸에 딱 붙는 건 아니다."있습니다!" 소녀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저기에는 헐렁한 스타일이 있고 고객님과 어울릴 거예요."말하면서 안내해 주고 치파오를 몇 벌 꺼냈다.방금 비웃었던 판매원은 옆에서 지켜보고 있다.‘역시 인턴은 멍청하네. 이런 손님은 딱 봐도 거지잖아.’한소은은 소녀가 소개해 준 치파오를 보고 고개를 저었다.
소은은 고개를 들어 눈물을 참으며 말했다. “한 가지 이상한 게 있어요.”“무슨 일이에요?” 임남을 달래던 임상언이 무심히 되물었다.“로사 왕자는 감금된 것이 아니라 그날 Y국으로 송환되었다고 들었는데, 그렇다면 왜 그동안 로사 왕자와 연락이 닿지 않았던 걸까요?” 소은의 말에 임상언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두 가지 가능성이 있겠죠. 신호가 나쁘거나 핸드폰을 확인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 로사 왕자가 저희 연락을 거부하고 있을 수도...”두 사람은 잠시 눈을 마주쳤다. 말은 없었지만, 둘 다 이미 답을 얻은 듯했다. 로사 왕자가 그토록 연락을 피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도 나름의 계획을 세우고 있는 건가?...3일 후. 소은은 마지막 침을 놓고 손을 거두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여왕을 쳐다보며 말했다. “오늘 시술로 폐하의 다리에 감각이 돌아오실 겁니다. 하지만 일어서는 건 천천히 시도하셔야 합니다. 너무 서두르시면 안 돼요.”소은은 말을 마치고 갑자기 미소를 지었다.“무엇 때문에 웃는 거지?” 여왕은 여전히 자신의 다리를 어루만지며 물었다. 이미 이틀 전부터 약간의 감각이 돌아왔음을 느낀 터라, 소은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소은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제가 쓸데없는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요. 사실 R10 실험을 고집하신다면 결국 폐하께서는 이 몸을 떠나게 되실 텐데, 제가 이 몸에 애쓰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여왕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계속한 거지?”“어쩌면, 폐하께서 마음을 바꾸실 지도 모르니까요.” 소은은 부드럽게 대답했다. “어쩌면 자신의 몸이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거든요.”“우리 모두 이 세상에 올 때 두 손은 비어있지만, 이 몸만은 오로지 우리 자신의 것이죠. 몸마저 버리신다면, 그 영혼은 여전히 진짜 자신일 수 있을까요?”“그렇구나.” 여왕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
소은은 조용히 몸을 일으키며 여왕을 쳐다보았다. “물론이죠.” 소은은 담담하게 답했다. 그 대답에는 원망이나 비난의 기색은 전혀 없었다.“그렇다면... 조금 아쉽네.” 여왕은 생각에 잠긴 듯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기 마련입니다. 세상 모든 일은 균형을 맞추려 하죠. R10이 폐하께서 이루고자 하는 꿈이라면, 저는 그것을 막을 수 없어요. 다만, 그때가 되어 성공하든 실패하든, 저는 그 모습을 보지 못할 테니 부디 후회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소은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문 밖으로 나갔다.릭은 여전히 문 앞에서 대기 중이었다. 그녀와 여왕의 대화가 거의 다 들렸던 듯, 둘의 시선이 잠시 교차했다. 소은이 그를 지나쳐 나가자, 릭은 곧장 방으로 들어갔다.“여왕 폐하.” 릭은 여왕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그녀의 다리에 꽂힌 은침을 보자 릭의 눈빛이 굳어졌다. “이건...”“괜찮아. 곧 소은이가 와서 침을 빼줄 거야.” 여왕은 무심하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릭은 여전히 불안한 눈빛으로 말했다. “폐하께서 너무 방심하시는 것 아닙니까? 만약 한소은이 폐하께...”“그럴 리 없다.” 여왕은 단호히 그의 말을 잘랐다.릭은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설마 그 여자를 믿으시는 겁니까?”여왕은 대답 대신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녀도 릭의 질문이 아니었다면 자신이 소은을 믿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오랜 세월 누구도 쉽게 믿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그녀는 소은을 의심하지 않았다. 심지어 은침에 독이 묻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제가 가서 잡아오도록 하죠.”여왕이 생각에 잠기자 릭은 바로 뒤돌아섰다.“거기 서!”여왕은 결연히 말했다. “난 믿어.”릭은 한참을 침묵하며 여왕의 결정을 받아들였다....임상언은 아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비록 아들을 구하려는 결심을 굳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희망이 사라지는 듯했다.
소은은 허리춤에서 허리띠처럼 생긴 물건을 꺼내더니 조심스럽게 풀어내며, 그 안에 숨겨진 가느다란 은침을 꺼냈다.“이건...” 여왕은 깜짝 놀라며 소은을 쳐다봤다. 소은이가 은침을 항상 가지고 다닐 줄은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말해봐, 네 요구가 뭐지?” 여왕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마음을 가다듬으려 애썼다. 너무 무리한 요구라면 거절하면 그만이다. 여왕은 절대 소은에게 휘둘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소은은 차분하게 말했다. “제가 여기서 나올 수 있었던 건 로사 왕자님 덕분입니다. 그러니, 왕자님을 책망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그게 다야?” 여왕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소은이 여기까지 와서 자신과 조건을 따지는데, 결국 요구한 게 단지 로사를 처벌하지 말라는 거라니. 자신이 잘못 들은 건가 싶었다.“로사는 내 아들이다. 내가 정말 내 아들에게 손을 댈 리는 없지. 괜히 기회를 헛되게 쓴 건 아닌가?” 여왕은 고개를 저으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전 폐하께서 정말 로사 왕자님께 처벌을 내리시지 않을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왕자 폐하께서 저를 구해준 건 사실이기에 저도 왕자 폐하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소은은 조용히 말했다. “게다가 지금 왕자 폐하를 감금하시고 자유를 제한하고 계시지 않나요?”여왕은 의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니야. 난 단지 로사를 Y국으로 돌려보냈을 뿐이야.”“로사가 여기서 내 일을 여러모로 방해하긴 했지만, 우리 모자 사이가 더 악화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국내에서도 로사가 필요하니 Y국으로 돌려보낸 것뿐이다.” 여왕은 담담하게 말했다.“그런데 왜 왕자 폐하의 전화가 연결되지 않죠?” 소은은 잠시 멈칫했다. 단지 귀국했다면 국제전화를 받을 수 있을 텐데, 연락이 닿지 않았기에 여왕이 로사를 가둬놓았다고 오해할 수밖에 없었다.여왕은 깊은 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나도 잘 모르겠군. 그날 내가 화가 났던 건 사실이지만, 곧바로 Y국으로 돌아가도록
“삼일이면 됩니다.” 소은은 여왕을 쳐다보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삼일? 고작 삼일?” 여왕의 눈에는 믿기지 않는 놀라움이 서렸다. 그녀는 적어도 몇 달, 아니 최소한 몇 년은 걸릴 줄 알았다. 그러나 고작 삼일이라니, 그녀로서는 상상도 못 한 시간이었다.삼일쯤이야. 십 수년을 이렇게 버텨왔는데, 삼일쯤 더 기다린다고 달라질 게 뭐 있겠는가?“삼일 안에 정말 나아질 수 있는 건가? 내가 정말 다시 일어서서 걸을 수 있는 건가?” 여왕은 두 손으로 자신의 다리를 힘껏 눌렀지만 여전히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그녀는 소은의 말을 쉽게 믿을 수가 없었다. 이 다리가 감각을 잃은지 너무 오래되어 치료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여왕은 여러 나라의 명의를 찾아 다녔지만, 그들은 단지 병의 악화를 늦출 수 있을 뿐 다리를 완전히 회복시키는 건 불가능하다고 했었다. 그러나 지금 소은은 그녀 앞에 서서 확신에 찬 얼굴로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녀는 속으로 자신도 모르게 그 말을 믿고 싶어졌다.“이전처럼 완벽하게 걸을 수 있을 거라고 장담할 순 없어요. 너무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아서 근육이 많이 위축됐거든요. 하지만 서서히 일어나서 조금씩 회복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소은은 진지한 어조로 답했다.여왕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정도라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젊었을 때처럼 완전히 회복되는 것을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만약 휠체어와 지팡이 없이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 그 자체로도 그녀에겐 더할 나위 없는 희망이었다.“좋아. 삼일, 기다리겠네. 필요한 게 있나?” 여왕은 기분이 좋아져 말을 한층 부드럽게 했다.“임남...” 소은이 말을 꺼내자마자 여왕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녀는 곧바로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 “그건 안 돼. 그런 요구는 하지 마라.”“제가 말한 건 임남을 바로 풀어달라는 게 아닙니다. 그냥... 그 아이가 괜찮은지 알고 싶고, 가능하다면 아버지와 한 번 만날 기회를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 실험을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은 저와 프레드 뿐이기 때문입니다.” 소은은 잠시 생각하다가 덧붙였다. “아니면 주효정을 믿으실 건가요?”“나는... 아무도 믿지 않아.” 여왕은 얼굴을 차갑게 굳히며 휠체어를 돌렸다.“여왕 폐하께서 이 실험에 집착하고 계시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인가요? 세상을 둘러보고 싶다거나, 짐을 내려놓고 잠시 쉬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으신가요? 수십 년간 왕좌에 오르셨지만, 정말로 아직도 그 삶이 좋으신가요? 언제나 긴장하며 위태로운 자리를 견디는 고단한 나날, 정말 아직도 벗어나고 싶지 않으신가요?” 소은은 여왕의 등을 쳐다보며 부드럽게 물었다.여왕은 아무 말 없이 자신의 무릎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살짝 떨구었다. 그녀는 시선을 다리로 내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세상을 둘러본다? 나는... 걷는 게 어떤 느낌인지도 잊어버렸어.”여왕은 오랜 세월 동안 다리를 쓰지 않았고, 처음에는 억지로라도 일어설 수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상태는 악화되었고 이제는 아예 휠체어 없이는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그녀는 휠체어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소은이 ‘세상을 둘러보라’는 말을 꺼내자 가슴이 아팠다.“만약... 폐하께서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요? 제가 다시 걷게 해드린다면요?” 소은은 조용히 여왕의 뒤에 서서 말했다.여왕은 잠시 멈칫하더니, 눈빛이 날카롭게 변하며 휠체어를 돌려 소은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정말이냐?” 여왕의 눈에는 억누를 수 없는 희망과 깊은 의심이 뒤섞여 있었다.소은은 대답 대신 그녀의 시선을 천천히 여왕의 다리로 내리고, 천천히 다가가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손을 뻗어 여왕의 무릎 위에 가볍게 손을 올렸다.여왕은 살짝 몸을 떨었다. 사실, 그녀의 다리는 거의 완전히 감각을 잃은 상태라서 소은의 손길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아마도 너무나 간절히 다시 일어서고 싶기 때문이었을 것이다.소은은 아무 말 없이 여왕의
“맞아요, 임남 때문이기도 하지만, 폐하 때문이기도 합니다.” 소은은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제가 정말로 떠나버렸다면, 가장 초조해지는 사람은 사실 여왕 폐하 아닐까요?”여왕은 코웃음을 치며 차갑게 말했다. “내가 초조해질 이유가 뭐지? 어차피 내 손엔 네 약점이 있잖아. 너를 다시 잡아오는 것도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고.”“약점이요? 임남 말씀이신가요?” 소은은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잊지 마세요, 임남이는 제 아들이 아닙니다. 저에게는 제 친자식이 셋이나 있어요. 만약 제가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임남을 포기해 제 아이들을 지키려 한다면, 그 약점이 과연 제게 약점이 맞을까요?”여왕이 입을 열기도 전에 소은은 다시 말을 이었다. “게다가, 그 아이에겐 목숨을 걸고서라도 구하려는 아버지가 있습니다. 만약 임상언이 폐하께 끝까지 맞서기로 결심한다면...” “폐하께서야 높은 자리에 있으니 이런 평범한 상인을 하찮게 여기실 수 있지만, 임상언 씨가 단순한 상인이 아니라는 걸 잊으시면 안 됩니다. 임상언 씨의 사업은 세계 곳곳에 뻗어 있어요. 임상언 씨가 목숨을 걸 각오가 되어 있다면 그 어떤 일도 할 수 있겠죠. 혹시라도 바깥에 소문이 퍼져 폐하와 Y국의 명망이 손상된다면, 곤란하지 않겠습니까?”“너...” 여왕은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반박할 말이 당장 떠오르지 않았다.여왕이 화가 난 것을 보고, 소은은 한결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화내지 마세요. 제가 돌아온 건 폐하를 자극하려는 게 아닙니다. 함께 최선의 방향을 찾고자 돌아온 거예요. 사실 폐하께서 H국에 오신 일이 밝혀진 건 아니지만, 꽤 오랜 시간 H국에 머물고 계셨습니다. 정말로 H국이 이 사실을 모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세요?”여왕은 말없이 그녀를 쳐다보았다. “지금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건 폐하의 체면을 살려드린 겁니다. 그러나 폐하께서 이곳에서 계속 머무르시며 혹여 무리수를 두신다면, 얼마나 더 체류하실 수 있을까요? Y국도 계속해서
릭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여왕은 모니터에서 시선을 돌리며 담담히 말했다. “소은을 데려와. 어디 한번 무슨 변명을 할지 들어보자. 또 어떤 이야기를 꾸며낼지 궁금하네.” 여왕은 휠체어를 살짝 돌려 더 이상 모니터를 보지 않았다.“여왕 폐하?” 릭은 망설이다가 말했다. “한소은이 거짓말을 할 걸 아시면서도 굳이 왜...” 그러나 여왕은 그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단호히 말했다. “듣고 싶어!” 이 한마디에 릭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그는 곧장 소은이 있는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소은이 정말로 잠이 들려고 하던 순간, 문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그녀는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다. 눈을 뜨는 순간, 문이 열리면서 릭이 문 앞에 서 있었다. 그의 얼굴은 굳어 있었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여왕께서 한소은 씨를 만나고 싶어 하십니다.” 소은은 차분한 표정으로 릭을 쳐다보았다. 마치 모든 상황을 예견한 듯 고요하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와 동시에 임상언은 소은보다 먼저 일어나 문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가 문에 도착하자마자 릭이 손을 들어 그의 앞을 막았다. “그쪽은 남아 계시죠.” “뭐? 우리 둘은 같이 온 거야!” 임상언은 소은을 돌아보며 그녀에게 눈짓으로 도움을 요청했다. 릭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여왕 폐하께서 그쪽을 부르지 않았으니 여기 남으시죠.” 릭은 더 이상 임상언에게 말을 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소은은 임상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부드럽게 말했다. “절 기다리고 있어요.” 임상언은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억지로 마음을 다스리며 그녀가 릭과 함께 방을 나서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조심해요.” 임상언은 소은을 향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소은은 미소를 지어 그에게 답했고, 릭을 따라 여왕의 방으로 향했다. 익숙한 길을 따라 걷는 그녀는 곧 여왕의 방에 도착했다. 릭이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여왕 폐하, 데려왔습니다
소은이 임상언을 데리고 대사관에 도착하자,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눈에 띄게 당황했다.한 사람이 서둘러 소식을 알리러 가더니, 이내 주변 구석구석에서 누군가가 몰래 그들을 엿보는 기척이 느껴졌다. 곧이어, 소은이 잘 알고 있는 여왕의 측근 몇 명이 경계 어린 눈빛으로 다가와 그들을 안으로 안내했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그들은 소은과 임상언의 몸을 샅샅이 검사하며 위험 물품을 소지하지 않았는지 확인했다. 철저한 검사가 끝난 후에야 비로소 경계가 풀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여왕을 만나지 못했고, 한적하고 깊숙한 방에 대기하도록 배정받았다. 오랜만에 돌아온 이곳은 소은에게 익숙하면서도 낯설게 느껴졌다. 익숙한 것은 이 장소였지만, 낯선 것은 지금의 마음가짐이었다. 예전에는 이곳이 싫고 불쾌하기만 했으며,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은 장소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임무와 사명을 가지고 돌아왔고, 그녀의 목표는 단순히 여기를 떠나는 것이 아닌, 중요한 일을 완수하고 무사히 돌아가는 것이었다.반면, 임상언은 눈에 띄게 불안해 보였다. 그는 두 손을 맞잡고 무릎 위에 놓은 채,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다리를 가볍게 떨고 있었다. 소은은 그의 초조함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임남을 생각하면 마음이 몹시 불안하고 조급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여기까지 왔으니 임남을 반드시 볼 수 있을 거예요. 그러니 긴장 좀 풀어요.” 소은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임상언은 그녀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발을 땅에 꾹 눌러 다리를 멈췄다. 겉으로는 조금 안정된 듯 보였지만, 그의 얼굴은 여전히 긴장감이 가득했고 미세하게 떨리는 얼굴 근육이 그의 불안한 마음을 보여주었다. 마음을 진정시키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소은은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다.두 사람은 한참을 기다렸지만, 여왕을 만나러 오라는 사람은커녕 상황을 확인하러 오는 사람조차 없었다. 긴장했던 임상언은 결국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대체 무슨 의도인 거죠? 왜 아직
“제발 부탁이에요. 안에서는 소은 씨 말만 따를게요. 소은 씨가 시키는 대로 다 할 테니까, 제발 절 데려가 주시면 안 돼요?” 임상언은 진심 어린 목소리로 소은에게 간청했다. 자존심은 이미 버린 지 오래였다. 아들을 만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그를 이 지경까지 이르게 했다. 소은이 반드시 돌아가겠다고 결심한 순간, 임상언은 이미 마음을 굳혔다. 자신이 함께 가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같이 가면 의심을 받거나 제지를 당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전 아니에요.” 임상언은 계속 설득을 이어갔다. “임남이 그 안에 있다는 걸 모두 알고 있잖아요. 제가 아들을 만나고 구하려고 하는 건 당연한 일이에요. 그리고 아들을 위해서 제 목숨을 바치는 것도 이해될 수 있는 일이죠. 그러니 제가 가는 게 가장 올바른 선택이에요.” 긴 침묵 끝에, 소은이 입을 열었다. “임상언 씨 말이 맞아요. 전 동의합니다.” 소은은 말을 마치고 서진에게 시선을 돌렸다. 서진은 잠시 생각하더니 천천히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저도 동의합니다.” 원청현은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두드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나도 동의하지.” 잠시 침묵하던 진정기 역시 마침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동의합니다.” 마지막으로 원철수는 주변을 둘러보며 한숨을 내쉬고 손을 펼쳤다. “모두 동의했는데 내가 뭐라고 반대하겠어. 나도 찬성이야.” 사실 원철수의 의견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임상언에게 지지를 표현하는 의미였다. 임상언은 눈시울이 붉어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모두들 고마워요.” “이게 뭔 감사할 일이라고. 어쨌든 안에 들어가면 절대 신중해야 해. 무슨 일이 있어도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네 입으로 한 말 반드시 지켜!” 원철수는 그의 결심을 칭찬하면서도 걱정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원철수는 속으로 임상언의 결단에 감탄했다.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그는 분명 최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