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엽이 집으로 돌아왔을 때, 날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그의 머릿속은 온통 김씨 어르신이 생사를 넘나드는 장면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이런저런 생각에 술을 잔뜩 마시고 곤드레만드레 취해서 돌아왔다.안으로 들어서자, 우해민은 자지않고 굳은 표정으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인사불성이 될 정도로 취해서 돌아온 것을 보고 그녀는 얼굴을 찌푸렸다.“왜 이제야 온 거야? 전화를 그렇게 많이 걸었는데 받지도 않고…”“못 들었어.”술집이 워낙 시끄럽고, 안에서 술만 마셨는지라 휴대폰을 꺼내 볼 틈이 없었다.“어디 갔었어? 설마 또 그 여자를 보러 간 거 아니야? 그녀는 당신을 원하지 않는데, 당신은 무슨 볼 일이 있다고 자꾸 거길 가는 거야?”우해민이 불쾌하다는 듯 말했다.사실 그의 행적은 대략 파악할 수 있었다. 오늘 그가 병원에 갔다고 들었을 때, 그녀는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 그런데다가 이렇게 취한 상태로 집으로 돌아오니 우해민은 말문이 막혔다. 김씨 가문이 가족 회의를 한 이후로 그녀는 사실 마음속으로 기뻐했다. 이전의 김승엽은 그녀가 감히 쳐다보지도 못할 느낌이 들었었다. 비록 그를 좋아하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차이가 분명했다.우해민은 부모님에게 홀대를 받고, 줄곧 그늘진 구석에서 혼자 살고 있는 외로운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런 그녀에 비해 김승엽은 어머니의 품에서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근심 걱정 없는 부잣집 도련님이었다. 하지만 그날 이후로, 우해민은 두 사람간의 격차가 없어진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귀한 신분인 줄 알았던 김승엽은 사실 출신도 불분명한, 부모가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이었고 줄곧 그를 총애하는 것처럼 보였던 어머니는 결정적인 순간에 그를 버렸다. 사랑을 받는 것처럼 보였던 건 전부 거짓이었던 것이다. 이제 김승엽도 오직 우해민뿐이고, 우해민도 오직 김승엽뿐이었다. 그들은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가장 적합한 커플이다.하지만 우해민의 마음은 여전히 불안했다. 그녀는 김승엽의 마음이 여전히 흔들린다는 것을 느
“난…”한순간에 말이 막히더니 김승엽은 조용해졌다.“알아. 당신이 지금 얼마나 힘든지 다 알아. 힘들면 울어, 내 앞에서 참지 말고 뭐든지 다 해도 괜찮아.”우해민은 가볍게 그를 껴안았다. ——다음날 아침.김승엽이 일어나기도 전에 아래층에서 제법 큰 인기척이 들려왔다. 잠을 깬 김승엽이 베란다로 나가보니 고용인들이 급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는 다급히 옷을 걸치고 황급히 아래로 내려갔다. 두세 명의 본채 고용인들이 소파와 탁자 등에 헝겊을 씌우고 있는 것을 보고 급히 한 사람을 불러 세워 물었다.“뭐하는 거예요?”“아가씨가 분부하신 건데, 여기는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을 거니까 물건을 모두 정리하라고 하셨어요.”“오랫동안…”어제 술을 많이 마셔서 그런지 머리가 아파왔다. 하지만 어렴풋이 어제 우해민이 했던 말이 생각이 났다. 내일 떠나자고 했는데 괜히 해본 말이 아니라 진심이었던 것이다.“그 사람은 지금 어디있어요?”김승엽은 무의식적으로 묻더니 무슨 생각이 떠올랐는지 지하실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아니나 다를까, 그 어두운 지하실 문은 정말 열려 있었다. 그가 채 들어가기도 전에 안에서 우해민의 목소리가 들렸다.“언니, 나는 언니를 이렇게 빨리 놓아줄 생각은 없었어. 언니는 아직 내 고통을 제대로 맛보지도 못했거든… 하지만 나한테 시간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이렇게 언니를 배웅하러 온 거야.”그녀의 섬뜩한 말이 들려왔다.“…”김승엽은 자신도 모르게 걸음을 늦추었다. 잠시 후, 우해영의 약간 허스키한 목소리도 들려왔다.“하하, 너 정말 참을성이 없는 아이구나.”“난 당연히 언니보다 인내심이 없지. 언니처럼 뛰어난 무술 실력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니라서 말이야. 난 빨리 집에 돌아가야 해. 밖은 너무 위험하거든. 어쨌든 언니를 노리고 있는 원수는 너무나 많으니까, 안 그래?”이 점은 우해민이 김승엽에게 말하지 않은 것이다. 그녀의 또다른 걱정거리이기도 했다. 그녀가 이렇게 급히 돌아가려고 하는 이유는 한편으로는 김승엽이 결국 자신
인기척에 우해민이 고개를 돌리자 가만히 서 있는 김승엽을 발견했다.“깼어?”그는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좋아, 당신도 와서 언니의 마지막 길을 봐.”우해영은 잠시 숨을 헐떡이다가, 고개를 들고 쓴 웃음을 지으며 조롱하듯 우해민을 바라보았다.그 웃음은 우해민을 불쾌하게 만들었다.“왜 웃어?”“이 바보같은 게.”우해영이 계속 말을 이어갔다.“넌 저 사람이 진심으로 너를 좋아하는 줄 알아?”“물론이지.”우해민은 자신 있게 말했다.그녀는 이미 그에게 여러 번 반복해서 물었고, 그는 모두 긍정적인 대답을 했었다. 우해민은 김승엽이 틀림없이 자신을 사랑한다고 믿었다.“웃겨 죽겠네. 너 거울도 제대로 안 봐? 머리부터 발끝까지 너를 사랑해 줄 점은 단 한개도 없어. 나를 닮은 얼굴 빼고는 자랑할 만한게 아무것도 없잖아.”우해영은 한껏 비아냥거렸다. 그녀는 경멸이 가득한 눈빛으로 우해민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넌 공부도 못하고 무술도 못하고, 그저 나를 대신해서 몇 가지 간단한 일을 완성했을 뿐인데, 정말 나를 대신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그야 당연하지.”우해영의 조롱에 우해민은 화가 단단히 났다.“언니가 죽기만 하면 우씨 가문의 모든 것은 다 내꺼야. 그러니까 당연히 언니를 대신할 수 있고 말고.”“순진하긴.”우해영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가 크게 숨을 헐떡이는 것을 보니, 확실히 몸이 좋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내가 오늘 이 자리에 앉게 된 게 단지 내가 우씨 가문의 자제여서 그런 거라고 생각해? 이건 전부 내가 노력해서 만든거야. 네가 내 무술 실력이 퇴화했다고 대외에 말할 거라고? 그게 뭘 의미하는 지 알아? 바로 우리 우씨 가문이 몰락했다는 뜻이야. 수백 년 동안 우리 가문이 왜 점점 더 몰락하는지 알아? 바로 우리 윗세대, 윗윗세대 조상님들의 무력이 남보다 못하기 때문이야. 이제 네가 내 무공이 없어졌다고 하면 다른 사람들이 널 가만히 내버려둘 줄 알았어? 천만에, 남들은 더 힘껏 우리 가문을 짓밟으려 할 거야
우해민은 계획이 있었다.그녀는 우해영에게 천성적으로 두려움이 있었다. 어쨌든 어릴 때부터 그녀의 그늘에서 살았기 때문에 만성 독극물을 조금 넣어서 그녀의 몸을 망가뜨리는 것은 괜찮지만, 직접 그녀를 죽이는 건 감히 엄두가 나지 않았다.그리고 그녀는 김승엽이 자신을 떠날까 봐 두려워했다. 때문에 만약 자신이 김승엽의 약점을 잡고 있다면 그는 영원히 자신을 떠나지 못할 거라고 우해민은 확신했다. 그야말로 일석이조였다.“…”김승엽은 잠시 주저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못할 것 같았다.“왜? 못하겠어?”우해민은 일부러 화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당신은 내가 아니라 우리 언니를 사랑하는 거 아니야? 그래서 차마 언니한테 손을 대지 못하는 거지? 맞지?”“아니. 무슨 소리야? 내가 사랑하는 건 너야, 당연히 너지. 근데...”약은 따뜻하지만, 왠지 너무 뜨겁게만 느껴졌다. 너무 뜨거워서 그는 당장이라도 버리고 싶었다.머뭇거리는 그의 모습을 보고 우해민은 다시 부드럽게 그를 설득했다.“알아. 당신 마음. 하지만 나도 일정을 이미 다 준비해놨어. 언니만 해결하면 우린 이제 아무런 걱정이 없어. 우린 곧 비행기를 타고 본가로 돌아갈 거야. 우리 집은 넓고 엄청 예뻐. 당신도 틀림없이 좋아할 거야. 돌아가면 바로 결혼식부터 올리고 앞으로 영원히 행복하게 사는 거야.”이건 그녀가 전부터 계획한 아름다운 미래였다. 그녀는 반드시 실현될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하지만 이런 미래는 김승엽이 기대했던 것은 아니었다. 당장 눈 앞에 있는 난제가 그의 애간장을 태웠다.“지금 언니 꼴을 봐. 버티는 것도 고통이야. 당신이 언니의 고통을 끝내주는 건 언니를 돕는 일이야.”우해민은 김승엽을 조용히 구슬렸다. 그녀는 김승엽의 안색을 살피며 계속 말을 이어갔다.“잘 생각해 봐. 언니가 전에 당신한테 어떻게 대했어? 당신을 때리기도 하고 언제 당신을 사람으로 본 적이 있는지 생각해 봐. 심지어 당신을 이용하기까지 했어.”그녀는 일부러 지난 일을 하나하나 들먹이며 그
‘그래, 맞아. 내 약점을 잡으려고 하는 거일수도 있어.’김승엽은 자신이 손을 대면, 앞으로 그에게 살인자라는 꼬투리가 붙게 될 거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면 우해민에게 약점이 단단히 잡히게 될 거고 그러면 우해민은 김승엽이 그녀의 말을 듣지 않을 때마다 이 일로 그를 위협할 수 있었다. 며칠 전만 해도 가끔 미친 듯한 집착적인 성향을 보이던 그녀를 떠올리자 앞으로 그녀한테 얽매여 있을 것을 생각하니 숨이 턱턱 막힐 것 같았다.생각을 끝낸 김승엽은 돌아서서 우해민에게 말을 걸었다.“아니면 그만 두자. 어쨌든 네 친언니잖아. 본가로 같이 데려가는 건 어때? 어차피 본가는 섬이잖아. 섬에 가둬도 되는 거 아니야? 게다가, 너도 그냥 죽게 내버려두는 게 아깝다고 했으니까 데려가서 네가 전에 겪었던 고통을 다시 맛보게 하는 거야.”“미쳤어?”우해민은 갑자기 분노했다.“섬으로 데려가면 우리 부모님이 언니를 도와줄 수 있다는 거 몰라? 어릴 때부터 엄마, 아빠는 언니만 편애했어. 언니 상황을 알면 부모님이 꼭 도와줄게 뻔해. 그럼 난 죽게 될거라고. 언니가 죽어야만 엄마 아빠는 이제 딸이 하나밖에 없다고 나한테 잘해 주실 지도 몰라. 그러니까 언니는 여기에서 죽어야 해.”우해민은 마치 자신을 세뇌하는 듯이 말을 이어갔다. 그러다가 화가 치밀어 올라 김승엽을 노려보며 분풀이했다.“나를 위해 이까짓 일도 못 해? 나를 사랑하지 않는 거야? 나는 당신을 위해 감히 내 친언니에게도 손을 댔어, 난 당신이 아무것도 가진 게 없어도 전혀 신경 안 써, 근데 당신은 이렇게 작은 일도 못 해?”“못하는 게 아니라 그냥...”그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우해영이 끼어들었다.“그냥 너한테 약점을 잡히고 싶지 않은 거야. 평생 네 손에 잡히기 싫은 거야. 아직도 모르겠어? 그는 너와 평생 함께하는 걸 원하지 않아. 아무도 너와 같은 미치광이와 평생을 함께 하는 걸 원치 않을 거야. 네가 이겼다고 생각해? 넌 그냥 평생 내 그림자에 불과해, 내가 없어도 넌 행복하게 살 수
두 사람은 깜짝 놀라 동작을 멈췄다.우해영은 이 틈을 타서 몸을 비틀었다. 그러자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그릇이 땅에 떨어져 맑은 소리를 내며 유리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뭐야? 죽고 싶어?”우해민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바깥의 고용인의 인기척인 줄 알고 잔뜩 화를 내며 밖으로 나갔다.문 앞에 도착하자마자 강한 바람이 불어왔다. 가슴이 갑자기 아파오기 시작하더니 우해민은 순식간에 뒤로 날아갔다.“펑.”우해민은 그대로 바닥에 넘어지고 말았다.“해민아.”뒤따라 나온 김승엽은 깜짝 놀라 서둘러 우해민에게 다가가 그녀를 부축해 주었다. 하지만 그도 밖에 나가자마자 가슴이 답답하게 막히는 것 같았다. 곧이어 김승엽도 우해민처럼 바람에 밀려났다.방이 너무 작은 탓에 두 사람은 함께 벽에 부딪혔다가 다시 바닥에 쿵하고 떨어졌다.먼지가 풀풀 피어올라 방안은 어느새 난장판이 되었다.“콜록콜록...”두 사람은 기침을 하며 피를 흘렸다.그들은 누군지 정체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가슴은 갈비뼈가 부러질 정도로 아파왔다. 간신히 눈을 뜨자, 한 남자가 온몸에 매서운 기운을 풍기며 무릎을 반쯤 꿇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늦어서 죄송합니다.”“데일?”우해민은 그를 알아보고 깜짝 놀라 소리쳤다.우해민은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었다. 남자의 정체를 확인하자 숨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네가 왜 여기에… 넌 이미…”“이미 당신이 섭외한 킬러에게 암살당하지 않았냐고요?”데일은 여전히 무릎을 반쯤 꿇고 매서운 눈빛으로 말했다.“…”우해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확실히 그렇게 지시했었다.그녀는 거의 자신의 모든 재산과 우해영에게서 훔친 돈과 보석을 팔아 세상에서 가장 실력이 좋은 킬러를 섭외해 데일을 죽이도록 명령했었다.우해민도 데일의 실력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보다 더 강한 킬러를 섭외한 것이다.“네가 섭외한 킬러가 그렇게 대단하다고 생각해?"겨우 정신을 차린 우해영은 한 손으로 가슴을 툭툭 두드리며 입가에 비아냥거리는 미
그녀가 스스로 일어서는 것을 보고 김승엽과 우해민은 당황했다. 항상 그녀에 대한 두려움은 일종의 조건 반사처럼 마음속에 있었는데 전에 우해영이 침대에 누워 움직이지 못하고 있을 때도 그들은 여전히 겁을 먹고 있었다. 우해영이 스스로 자리에서 일어선 지금은 말할 것도 없이 두려움에 벌벌 떨고 있었다.“아니, 그럴 리가 없어.”우해민은 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그녀는 자신이 이미 완벽하게 계획을 세웠다고 생각했다. 자기 손에 모든 것을 쥐고 있다고 생각해 곧 승리를 거둘거라 예상했지만 생각지도 못한 우해영의 반란에 우해민은 순간 자신이 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몰려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데일, 네 몇 마디 헛소리에 내가 속을 것 같아?”우해민은 억지 웃음을 지었다.“나를 쉽게 속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마. 지금 허세를 부리는 거 맞지? 내 한 마디면 고용인들은 지금이라도 밖에서 달려와. 충고하나 하는데, 지금 내 기분이 괜찮을때 빨리 도망가는 게 좋을 거야. 자꾸 나를 건드리면 그땐 진짜 가만 안 둬.”“허세 부리는 건 너지."”우해영은 차갑게 말했다. “넌 내 사람을 그렇게 쉽게 매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설마 내가 이렇게 오랫동안 여기에서 살면서 원수만 수두룩 있고 친구는 하나도 없는 줄 알아? 나를 너무 우습게 보는 거 아니야? 그리고 나 대신 지루한 파티에 몇 번 가봤다고 정말 나를 대신할 수 있을 것 같아? 우해민. 넌 아직 너무 순진해. 내 능력을 너무 얕보는 거 아니야? 내가 정말 그 정도 능력밖에 없었다면 난 오늘 이 자리에 앉지도 못했을 거야.”“그럼…”우해민은 이미 우해영에게 설득당한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의 최근 몸 상태는 전혀 겉치레처럼 보이지 않았다.“어때, 내 연기 괜찮았지?”그녀는 숨을 깊이 들이쉬고 한 손을 침대 머리맡으로 옮겼다. 이어서 그녀가 손가락을 오므려 힘을 주자 침대 머리맡의 나무가 으스러졌다.그녀의 행동을 빤히 보고 있던 두 사람은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김승엽은 더욱 절망했다
“아니, 그럴 리가 없어.”우해민은 고개를 저으며 눈썹을 찡그렸다.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중독된 게 아니라면 내가 언니 뺨을 때렸을 때 왜 저항하지 않았겠어? 언니 성격에 어떻게 참고 있을 수 있겠냐고. 중독된 건 확실한데 그냥 연기하고 있는 거야. 확실해.”“하지만 아까도…”침대 머리맡에 부서진 나무쪼각들이 눈에 들어왔다. 나무를 부러뜨릴 만한 힘이 있는데 어떻게 독에 중독된 것이란 말인가?“연기한거지. 전에 나를 속여 같이 협력하자고 하고서는 혼자 몰라 비책을 찾으러 갔던 사람이야. 그만큼 신중한 사람이라고. 그런 사람이 어떻게 자신을 독살하려는 걸 못 알아챘겠어? 분명 짐작했을 거야. 그녀에게도 무슨 다른 생각이 있겠지.”“그게 뭔데?”우해민이 되물었다.“그건…”그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그가 진작에 알았다면 상황이 이렇게 되지 않았을 것이다.김승엽은 우해영의 속셈을 전혀 짐작할 수 없었다. 두 사람은 원래 자신이 바둑기사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남의 손에 쥐어진 바둑돌에 불과했다.“아니, 인정 못 해. 난 지지 않았어, 난 지지 않았어...”두 사람 사이에 의견 차이가 생겼다. 김승엽은 지금 우해민이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지금 그녀를 말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들어 어두운 창밖을 바라보았다. ‘결국… 완전히 망해버렸네.’——한 가지, 우해민 예측이 맞은 건 바로 우해영이 독에 중독됐다는 것이다. 그것도 아주 심하게 말이다.지하실에서 나온 후, 그녀는 몇 발자국도 채 걷지 못하고 가만히 서서 한 손으로 벽을 짚고 우뚝 멈추섰다.잠시 후, 데일이 문을 잠그고 따라왔을 때, 자리에 가만히 서 있는 우해영을 보고 어리둥절해했다.“아가씨?”데일의 목소리에 우해영은 그제야 정신이 돌아왔는지 몸을 움찔거리더니 피를 토하기 시작했다.혈색이 매우 어두운 것이 확실히 독에 중독 된 것 같았다.“아가씨.”“쉿. 소리 지르지 마.”우해영은 목소리를 낮추었다.“당황할 거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