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에서 나온 김승엽은 빨리 이곳을 떠나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는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다만, 이곳에 남아있어서는 안 되었다.여기에 남아 있으면 그는 숨이 막혀 죽을 것만 같았다. 매분 매초가 지날 때마다 자기가 실패했다는 걸 일깨워 주고 있었다.그는 아직도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왜 일이 이렇게 되었는지 상황 파악이 안 되었다. 그는 머릿속이 어떤 생각으로 꽉 찬 것 같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머리가 텅 빈 듯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정원에 모여있던 사람들은 이미 간 지 오래다. 다들 재밌는 구경거리가 끝나자 다 흩어졌다. 김승엽은 마치 서커스단의 원숭이가 된 기분이었다. 자기가 준비한 무대에서 김서진을 무너뜨리는 큰일을 해낼 줄 알았는데, 사실 비웃음을 당하는 ‘주인공’은 김서진이 아닌 자기였다.그는 깊이 숨을 한번 들이마시고는 주먹을 꽉 쥐었다.이때, 그의 시선 속에 한 사람이 들어왔다. 우해민은 사람들이 다 나갈 때 따라 나가지 않았다. 그녀는 여전히 그 자리에 앉아 묵묵히 김승엽을 바라보았다.“......”하지만 그녀의 모습은 오히려 김승엽을 화나게 했다. 그녀가 입을 열어 자기를 비웃기 전에 김승엽이 먼저 입을 열었다.“왜 아직 안 간 거야? 날 비웃으려고 남아있는거야?”“그런 게 아니야.”우해민은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그녀의 표정은 담담하다 못해 바람 한 점 없는 호수와도 같았다.그녀의 얼굴에 조롱과 비웃음이 조금도 없는 것을 보고 김승엽은 약간 멍해졌다.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 않은 그녀의 모습은 김승엽이 생각지도 못한 것이다.“그래?”김승엽은 우해민의 모습이 믿기 어려웠는지 조롱하듯 웃었다. 다만, 그의 태도는 아까처럼 날이 서지는 않았다.그는 고개를 푹 숙여 자기의 두 손만 바라보았다. 만약 입장을 바꿔 그가 이런 아수라장의 관객이라면 분명 그 사람을 죽도록 비웃었을 것이다.하지만, 줄곧 그를 업신여겼던 이 여자가 가지 않고 이 자리에 남은 게 그를 비웃으려 한 게 아니라고 말한다.
“내가 시간 있을 때 먼저 연락할게!”우해민은 까치발을 하고 그의 귓가에서 작게 말했다.“기다려줘!”“......”김승엽은 의아한 눈빛으로 그녀를 보았다. 그 눈빛은 마치 그녀를 처음 알게 된 것 같았다.그가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짓자, 우해민은 아랫입술을 깨물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나를 믿어! 나는 해민이야!"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하며 까치발을 하고 그의 볼에 가볍게 키스한 다음 즉시 몸을 돌려 성큼성큼 밖으로 걸어갔다.홀로 남은 김승엽은 그 자리에서 멍해져 있었다.그녀의 뒷모습이 완전히 사라진 후에야 손을 들어 자신의 볼을 만졌는데, 방금 꿈을 꾸고 있는 줄 알았다.그러나 손에 들려있는 열쇠는 그에게 모든 것이 꿈이 아니라 진실이라는 것을 일깨워 주었다.그러나 만약 이게 꿈이 아니라 진실이라면, 그녀는 왜 그를 때리지 않고, 주동적으로 그에게 뽀뽀하고, 그를 비웃지 않으며, 그에게 거처를 제공했을까?손에 든 열쇠를 보며 그는 ‘우해영’이 꾸민 다른 음모가 아닐지 의심했다.‘해민? 얼어 죽을 해민!’처음에 그도 이것이 그들 사이의 달콤한 암호라고 생각했다. 그가 이 이름을 부르기만 하면 그녀는 부드러워지고 그의 말을 잘 따랐다. 그러나 저번에는 그가 아무리 이 이름으로 불러도 소용이 없었다. 그리고 그녀에게 한 대 얻어맞은 이후로 그는 더 이상 믿지 않았다.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여자에게 아무리 외쳐도 소용없다. 로봇이 지령받는 암호도 아니다. 지금 그녀가 이상한 행동을 하는 것은 두 가지 가능성밖에 없다. 그녀의 또 다른 음모이거나…. 그녀가 또 정신이 이상해졌거나.어느 쪽이든 좋을 게 없어 한숨을 내쉬며 열쇠를 버리려 했는데 잠시 생각해 보더니 그대로 열쇠를 주머니 속에 쑤셔 넣었다.김승엽은 풀이 죽어 밖으로 나갔다. 차에 탔을 때 바깥마당의 일하는 아주머니들이 모두 그를 훑어보는 듯했고 작은 목소리로 의논하기까지 했다.‘그래 마음껏 비웃어라! 난 이미 이 세계 가장 큰 웃음거리가 됐겠지!’그는 화를 참지 못하고 경적을
우해민이 집으로 돌아왔을 때, 우해영은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다. 최근 들어 그녀의 수면 시간은 점점 길어지는 것 같았고, 안색도 그다지 좋지 않았지만, 그녀는 의사를 부르지 않았다. 그녀는 의사에게 진료받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무술을 하루도 빠짐없이 연습하는 것으로 병이 거의 나지 않은 사람에게 있어서 의사에게 진료받는 것은 그야말로 치욕이다!우해영은 항상 자기의 몸이 튼튼하니 의사의 진료를 받을 필요가 없고 작은 병이 생겼다 하더라도 며칠 버티면 금방 낫는다고 생각했다.그녀는 지금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피까지 토했지만, 기가 뒤틀려서 그러는 것이니 잠을 많이 자고 휴식을 많이 취하면 금방 괜찮아질 거라고 믿었다.우해영이 일어나면 회의에서 있었던 일들을 물어볼게 뻔하니 우해민은 급해하지 않고 먼저 주방으로 들어가 우해영에게 줄 수프를 끓이기 시작했다. 거의 이틀에 한 번꼴로 그녀에게 건강에 좋은 한약 수프를 끓여 주었다. 우해영이 수프를 마시고 나서 확실히 몸이 더 편안해졌다고 말했다.오늘은 연근과 소뼈로 끓인 수프를 준비했는데 그 향기가 금세 방 안에 가득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우해영이 잠에서 깨어나서 그녀를 위층으로 불렀다. 그녀는 수프 한 그릇을 담아 올라갔다.“언니, 방금 수프 끓였어. 따듯할 때 마셔, 속이 편해질 거야.”“먼저 옆에 놔둬.”우해영이 턱으로 옆에 있는 테이블을 가리켰다. 그러고는 침대맡에 앉아 컵에 있던 물 한 모금을 마시고 나서 우해민을 바라보았다.“김씨 가문에 난리가 났다며?”잠에서 깨어난 후 데일을 통해 대충 상황을 파악했다. 그러나 데일이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이 아니었기에 자세한 건 듣지 못했다. 김씨 가문에서 일하는 아주머니들도 입이 어찌나 무겁던지 그들에게서도 자세한 경과를 알아 오지 못했다.그러나 우해영에게 있어서 김씨 가문에 소동이 일어나는 것은 좋은 일이고 소동이 크게 일어날수록 우씨 가문에 더욱 유리했다.“응, 난리였어.”우해민은 작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한쪽에 서서 조용히 말했다."말
우해민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아니, 난 그냥 앞으로 일어날 일은 아무도 모른다고 생각해. 입으로는 얼마나 아끼고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나중에는 냉정하게 그 사람을 심연 속으로 밀어낼 수 있잖아. 이 사람들과 비교하면 언니는 정말 좋아. 언니가 아니었으면 지금까지 살 수 없었을 텐데, 언니는 나를 아끼고 예뻐한다고 말하지 않았지만, 적어도 나는 이렇게 편안하게 살 수 있잖아.”"네가 이렇게 생각하면 다행이고! 기억해, 사람이 편안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은 원래 쉽지 않은 일이야. 특히 너! 내가 없었으면 너는 벌써 몇 번이고 죽었어!"그녀는 입꼬리를 치켜세우고 어릴 때부터 어른이 될 때까지 습관적으로 그녀에게 이렇게 말했다.만약 자신이 그녀를 남겨두지 않았다면, 그녀가 필요하지 않다면, 우해민은 진작에 우씨 가문의 저주 때문에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응!”우해민을 보니 예전처럼 자기에게 공손하고 온순한 모습이었다. 다만, 그녀의 미간에는 약간의 상실감과 두려움이 있었다. 보아하니 이번 김씨 가문의 방문은 그녀를 좀 놀라게 한 것 같다. 하지만 이건 나쁜 일이 아니다. 이렇게 충격을 좀 주어야 그녀가 계속 자기에게 충성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이번에 자기 대신 그녀가 김씨 가문에 가게 한 결정이 너무 알맞았다고 생각했다."참, 내가 너보고 직접 그를 단념시키라고 했잖아, 말했어?"한참 말을 하다 목이 말랐는지 우해영은 우해민이 가져온 수프를 마시기 시작했다.우해민은 고개를 작게 저으며 대답했다.“말하려고 했는데 그런 일이 있고 나서 그 사람이 사라졌어. 그래서 말할 기회가 없었어.”숟가락이 입술 옆에 갖다 대고 우해영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됐어. 어차피 그는 이제 망한 사람이야. 그런 말을 하든 하지 않든, 그는 처음부터 나와 어울릴 자격도 없는 놈이었어. 이제는... 더 자격이 없겠지만!”“언니 말이 맞아!”우해민이 눈을 깔며 작게 대답했다.“너도 피곤할 테니 가서 쉬어. 다음 주쯤에 우린 다시 섬으로 돌아갈 거야.”그녀가
이 시각 김씨 고택.홈닥터가 와서 노부인은 그저 과도하게 상심하여 쓰러진 것일 뿐 다른 문제는 없다고 확인한 후 돌아갔다. 다만, 나이가 있으시니 더는 충격을 받으면 안 된다는 것도 충고했다.노부인이 편히 잠든 것을 확인하고, 한소은은 노부인의 방에서 나갔다. 김지영만 남아서 노부인을 돌보기로 했다.임신 안정기에 접어들었다지만, 그래도 힘들어선 안 되었기 때문에 김지영이 나가라고 했다.거실에 나오니, 머리가 아픈지 이마를 짚고 있는 김서진의 모습이 보였다. 한 손으로는 노트북에서 타자하며 회의하고 있었는지, 가끔 말도 하고 있었다.누군가가 나오는 소리가 들리자, 김서진이 고개를 들었다. 나온 사람이 한소은인걸 확인하고 노트북을 옆에 놓으며 일어나 그녀를 부축하러 갔다.“오늘 힘들었죠? 아주머니보고 몸에 좋은 연와를 끓이라 했으니 먹고 올라가서 쉬어요. 방은 벌써 치워두라고 했어요. 오늘은 여기서 하룻밤 자고 가요.”“당신 작은아버지 아직 안 돌아오신 건가요?”오후에 나갔던 김승엽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전화해도 전화기가 꺼져 있는 상태라 찾을 수도 없었다. 아마 지금 그들을 보고 싶지 않나 보다.“오늘 발생한 일들을 받아들일 시간이 필요할 거예요.”김서진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게다가, 김씨 가문에 남을지, 여기서 내보내야 할지도 고민해야 하는 문제고요.”“김씨 가문에서 그를 내보내야만 하나요?”한소은이 잠시 생각하다 물었다,“당신은 어떻게 생각해요?”김서진은 대답하는 대신 그녀에게 되물었다,그러자 한소은이 입을 삐죽거리며 대답했다.“내가 어떻게 알아요? 이건 당신네 김씨 가문의 일이잖아요. 당신이 결정해야지, 네게 물으면 어떻게요?”한소은의 귀여운 모습을 보고 김서진이 손을 뻗어 그녀를 품 안으로 끌어당겼다. 긴 손가락으로 그녀의 콧등을 살짝 찍고는 대답했다.“당신네 김씨 가문이라니요? 이제 당신도 엄연히 김씨 가문의 며느리예요. 당신은 김씨 가문의 안주인이라고요. 그러니까 당신이 나 대신 결정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죠.
“내 둘째아버지가 죽었을 때 18살이었어요. 너무 젊은 나이에 갑자기 사고로 목숨을 잃었죠. 차의 브레이크가 갑자기 고장 나는 바람에 그대로 절벽에서 떨어지셨대요.”김서진은 담담하게 말을 이어 나갔다. 마치 뉴스에서 본 다른 사람의 사고 소식을 말하는 것과 같았다.“그다음에는 셋째 아버지가 25살 때쯤에 스킨 스쿠버 다이빙을 하다 공기통에 문제가 생겨 익사하고 말았어요. 그다음에는 내 작은아버지...”그는 말을 하다 잠시 멈칫하며 한소은을 한번 바라보았다.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이어서 말했다.“내 작은아버지는... 그러니까 내 진짜 작은아버지는 아마 태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요절했을 거예요. 선천적으로 문제가 있어서 할아버지의 품에서...”여기까지 들으니, 한소은은 문득 알아차렸다.“그럼, 지금의 김승엽은 당신 할아버지가 바꿔치기한 거예요?”김서진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앞에서 둘째아버지와 셋째 아버지께서 연달아 사고로 돌아가시니 할머니는 이미 충격을 많이 받은 상태였어요. 그때는 아직 내 아버지가 살아 계셨을 때여서 할머니가 아무리 내 어머니를 싫어해도 강력하게 말리지 않았어요.”“하지만, 작은아버지가 요절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할머니는 아마 버티지 못했을 거예요. 작은아버지는 나보다 세 살만 많아요. 할머니가 고령 산모였을 때 목숨을 바쳐가며 낳은 자식이 바로 작은 아버지예요. 아직 걷지도 못한 나이에 갑자기 요절했어요.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그런 충격을 견디지 못할까 봐 나이 비슷한 아이들 데려와 바꿔치기했던 거예요. 그 아이가... 지금의 김승엽이고요.”“하지만, 자기의 아이가 바꿔치기 당했는데 못 알아볼 수 있을까요?”한소은은 손으로 가볍게 자기의 배를 어루만졌다. 배 속의 아이가 아직 태어나지 않았으니 그런 느낌을 정확히 알 수가 없다. 정말 자기의 아이를 알아보지 못할까?“그때는 아직 어렸어요. 금방 태어났을 때와 별로 차이가 나지 않았기도 했고, 할아버지가 일부러 제일 비슷한 아이를 데려왔어요. 게다가 작은아버지를 낳
김서진이 이렇게 여러 해 동안 김씨 가문에서 높은 지위를 지키고 있었던 것은 할아버지의 사랑과 발탁만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김서진이 한 말을 듣고, 한소은은 다른 일들이 떠올랐다.“그럼, 당신의 둘째아버지와 셋째 아버지의 죽음에는 의문이 가득하네요.”‘젊은 나이에 하나는 절벽에서 떨어지고, 다른 하나는 스킨스쿠버 다이빙을 하다 목숨을 잃다니. 게다가 어린 나이에 요절한 작은 아버지와 그의 아버지는 항상 병을 달고 살다시피 했고. 만약 한두 사람이 그렇게 된 거라면 그냥 불행일 수도 있겠지만, 이 가문의 아들 모두 갑작스럽게 사고를 당했다는 건 너무 이상해.’“이상하긴 하죠.”김서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눈빛에는 독기가 서려 있었다.“세상에 그렇게 많은 우연이 있을 리가요. 김씨 가문은 오래된 가문인 데다가 세력이 크니 원한과 질투를 받을 수밖에 없어요.”이렇게 말하고 그는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그저 무언가 떠오른 듯 어두운 얼굴만 하고 있었다.한소은은 그런 그의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아파져 손을 들어 그의 얼굴을 가볍게 쓰다듬었다.“당신도…. 아주 힘들었죠?”김씨 가문 가주의 자리를 이은 사람으로서 지금까지 분명 많은 경쟁과 내부의 암투를 겪은 건 말할 것도 없고 원수의 추격과 암살을 당하는 건 부지기수였다. 가문 가주의 자리를 이어서 부터 지금까지 그녀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의 일을 겪었을 것이다.“힘들건 힘들지 않던, 다 지나간 일이에요.”김서진이 가볍게 웃으며 대답했다. 마치 그가 겪었던 모든 것이 그냥 지나가는 소나기처럼 다 지나간 듯이.그가 가볍게 얼버무리듯 대답했지만, 한소은은 그가 얼마나 많은 험난한 일을 겪었는지, 얼마나 많은 칼싸움을 지나왔는지, 얼마나 많은 암살과 모함을 겪었는지 잘 알 수 있었다. 그가 잠이 얕고 어떠한 상황에 닥쳐도 다 태연하게 대처할 수 있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이건 타고난 것이 아니다. 이건 여러 번 겪은 후 얻은 경험과 성장이었다.한소은의 눈은 온통 그에 대한 가슴 아픔
김승엽에 관한 일에 대해서는 일단 지켜보기로 했다. 노부인이 충격에서 조금 벗어난 후 노부인의 말을 따르겠다고 김서진이 모두에게 알렸다.집에서 나간 김승엽은 목적지 없이 돌아다니다 결국 차에 기름이 거의 떨어져서야 길가에 멈췄다.때는 이미 깊은 밤이었다. 하늘은 칠흑같이 어두웠다. 길가에 몇 개의 노점이 야식을 판매하고 있었다. 향긋한 음식의 냄새에 김승엽의 배가 꼬르륵 울리기 시작했다.그는 차를 길가에 세워두고 차에서 내려 아무 노점앞에 자리 잡고 앉았다."사장님, 고기 꼬치구이 50개와 맥주 몇 병 주세요."노점 사장은 그에게 대답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구수한 꼬치구이와 맥주를 가지고 왔다. 김승엽은 자리에 앉아 홀로 고기 꼬치구이를 먹으며 시원한 맥주를 들이켰다. 이 순간만큼은 모든 번뇌를 잊고 자신이 받은 치욕을 잊었다.노점 주변은 사람이 많이 몰려 소란스러웠다. 아무도 그를 신경 쓰는 사람이 없었고 그를 알아보는 사람도 없었다. 고기 꼬치구이를 먹고 맥주를 들이켜다 보니 어느새 정신이 해롱해롱하여질 만큼 취기가 올라와 있었다.맥주를 마시면서 김승엽은 갑자기 설움이 폭발했다. 이렇게 오랫동안 바깥을 떠돌았는데 아무도 그를 찾는 사람이 없었다. 이 세상에는 아무도 그에게 관심을 두지 않는 것 같았다.‘날 얼마나 아끼고 사랑한다더니, 결국에는 손수 날 벼랑 끝에서 밀었어! 거짓말쟁이, 다 거짓말쟁이야!’김승엽은 이렇게 생각하며 고기 꼬치를 물어뜯었다. 그는 집에서 나오면서 핸드폰을 꺼두었던 것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맥주를 두 병 더 마시고 나서 그는 노점 맞은편의 나이트클럽을 넋 놓고 바라보았다. 가끔 세련된 옷차림을 한 사람이 그곳을 드나들었다.그는 술에 취해 반쯤 풀린 눈으로 어슴푸레하게 한 번 보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는 이곳의 단골손님이었지만, 지금은 여기에 앉아서 홀로 술을 마실 수밖에 없다. 앞으로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모른다.“사장님, 고기 꼬치구이 백 개 안쪽 룸으로 갖다주세요.”어떤 사람이 노점 사장님에게 주문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