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아주머니가 무슨 말을 더하려 하자 우해영이 말을 끊었다.“왜, 내가 경호원이 필요한 거 같아?”이 말 한마디에 아주머니는 입을 꾹 다물었다.‘그래, 아가씨의 무술이 그렇게 뛰어난데 경호원이 필요할 리가 없지.’말을 마치고 우해영은 2층으로 올라가려다 고개를 돌려 한마디 덧붙였다.“아참, 섬에서 나와 함께 온 사람들한테 짐 정리하고 대기하라고 알려줘.”“아가씨, 돌아가시려고요?”이 말을 묻고 난 뒤 아주머니는 후회했다. 그녀의 날카로운 눈빛을 마주하자, 자기가 쓸데없는 말을 했다는 걸 단번에 깨달았다,‘아가씨가 돌아가든 말든 내가 물어볼 게 아니지.’“나가!”우해영은 굳은 표정을 지으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아주머니가 나가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우해영이 작은 목소리로 데일을 불렀다.“데일!”어디선가 데일이 소리도 없이 그녀의 앞에 나타났다.“네, 아가씨.”“이틀간 무술을 연습할 예정이니까 네가 내 옆에서 지키고 있어. 한 발짝도 내게서 떨어져선 안 돼.”우해영이 낮은 목소리로 데일이게 지시를 내렸다.자신이 무술 연습을 할 때는 항상 아무도 가까이 오지 못하게 했다. 오직 데일만이 그녀가 마음을 놓고 무술 연습을 할 수 있게 만든다.“네!”데일이 고분고분하게 대답했다.우해영은 이런 데일이 마음에 들었다. 그는 그녀가 내린 결정에 토를 달지 않았다. 그녀에게 있어서 그저 충성심만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이틀 동안 우해영은 김서진에게서 훔쳐 온 비적을 잘 연구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비적에 적힌 무술을 배우는 건 급하지 않았다. 비적이 자기의 손에 들어온 이상 하루빨리 여기서 떠나야 했다. 만약 김서진이 비적을 되찾으러 온다면 그때는 일이 복잡하게 된다.그리고 이 비적에 적힌 무술인 정말 그렇게 대단한지도 시험해 보고 싶었다.——김승엽은 하루 종일 호텔 방에서 나가지 않았다.손목에서 전해오는 아픔이 참기 힘들었지만, 그는 병원에 가지 않고 다크 웹에 걸어놓은 비적에 대한 소식만 오매불망 기다렸다.아무리 생각해
“일단 확인해 보세요.”그는 이 말을 마치고 김승엽에게 다시 혼날까 두려워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김승엽은 미간을 찌푸리면서 그가 보내온 사진을 확인했다. 어떤 경매 화면인 듯한 사진 속에는 가격을 문의 하는 말 대신 이상한 댓글들만 남겨져 있었다.[스페이드5: 이게 뭐야? 지금은 이런 것도 경매에 올릴 수 있는 거야? 여기가 무슨 중고 매장인 줄 알아?][하트7: 웃겨 정말! 어디서 가장 기초적인 입문 무술을 가지고 절세 무술이라고 뻥을 쳐? 우리가 이런 것도 알아보지 못 할까 봐?][다이아몬드9: 지금 다크 웹이 이 정도로 수준이 떨어진 거야? 여기서 헛짓거리하는 놈들 아이디 다 차단해 버려]이 밖에도 댓글이 많이 달렸다. 댓글 남긴 사람은 다 달랐지만, 내용은 거의 비슷했다. 모두 김승엽이 올린 ‘절세 무술’이라는 비적이 그저 입문 적인 무술이라고 비웃고 있었다. 중고 매장에서 싼값으로 살 수 있는 그런 책을 경매 올린다면서 그가 바보 멍청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일부 댓글에는 듣기 거북한 욕설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김승엽은 댓글을 보면 볼수록 화가 나고 분노를 억누르지 못했다.확실히 오혜영이 자기에게 거짓말을 한 게 아니었다. 그녀가 한 말은 하나도 틀리지 않았다. 이 비적은 정말 가짜였다! 그가 이런 것을 경매 올리자, 모든 사람에게 처참하게 비웃음을 당했다.다행인 것은 아무도 이 계정이 누구의 것인지 몰랐다. 만약 자기가 이런걸 다크 웹에 올린 게 걸린다면 얼굴을 들고 살지 못할 것이다.“형님!”아까 끊었던 전화가 다시 걸려 왔다. 전화기 너머에서는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형님... 이런걸 다크 웹에 올리신 거 장난이죠?”그가 이런 댓글을 보았을 때 처음에는 화가 나 몇 마디 대꾸했지만, 점점 더 많은 사람이 모여들며 비웃고 욕하자 점차 일이 잘못되었음을 느꼈다.다크 웹에 올리고부터 지금까지 몇 시간이나 지났지만 댓글을 다는 사람 외에는 아무도 가격을 문의하지 않았다.그가 800만 달러의 가격으로 올린 게
노부인은 평소와 달리 오늘 일찍 잠에서 깼다. 어제 늦은 밤까지 뒤척이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 새벽이 다 되어서야 겨우 잠에 들었지만, 이 잠도 편하지 않았다. 이른 아침에 핸드폰 벨 소리에 잠에서 깬 노부인은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여보세요?”노부인은 힘이 빠진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마음이 급했던 김승엽은 노부인의 목소리가 심상치 않은 것도 발견하지 못했다.“어머니, 일어나셨어요?”평소 같았으면 이 시간에 노부인은 벌써 일어났을 시간이다. 노인들은 수면이 얕고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났기 때문에 그는 당연히 그녀가 이미 깨어났다고 생각했다.“아직 안 일어났다. 왜 그러냐?”노부인은 겨우 몸을 일으켜 침대에 기대어 앉으며 눈을 가늘게 뜨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아무것도 아니에요. 그저 전에 말했던 유전자 검사 결과 나왔나 해서요.”검사 결과가 나왔다면 분명 자기 어머니의 손에 들어갔을 것이다. 김승엽은 김지영에게 물어보고 싶지 않아 어머니에게 바로 전화를 걸었다.이 말을 꺼내자, 노부인은 눈을 번쩍 떴다. 순간 잠에서 확 깨어나 시선은 테이블 위에 고이 누워 있는 서류로 향했다.“응, 그게 왜?”노부인은 대답을 얼버무리며 되물었다.“그럼, 결과가 나온 거예요? 어떻게 되었어요? 김서진이 우리 김씨 가문의 자식이 아닌 거죠?”김승엽은 급하게 캐물었다. 그는 마음속에 생각했던 그 결과를 듣기 바랐다.노부인의 얼굴빛이 한순간에 복잡하게 변했다. 한참 동안 침묵하다 ‘흠’하는 콧소리만 낼 뿐 인정하지도 부인하지도 않았다.정확한 대답을 듣지 못한 김승엽은 어리둥절했다.“어머니, 왜 그래요? 아직 잠이 덜 깬 거예요? 유전자 검사 결과가 어떻게 된 건데요? 혹시... 김서진이 정말 우리 가문의 사람인가요?”“콜록...”한번 기침을 하고 나서 노부인이 담담하게 말했다.“아, 어제 지영이가 너무 늦게 가져왔어. 내가 일찍 잠드는 바람에 아직 결과를 확인하지 못했어. 이따 확인하고 알려줄게.”“이젠 중요하지 않아요!”노부인이 아직 결과
김승엽이 불평을 늘어놓자, 노부인도 아들의 억울함을 이해했다. 그래서 아들을 도와 아들이 마땅히 가졌어야 할 것들을 되찾아 주려 했다.노부인은 자기가 막내아들을 편애한다는 건 그녀도 인정하는 사실이다.사람의 마음은 원래부터 공평하지 못하다. 그러니 그녀가 자기의 아들을 편애하는 게 무슨 잘못이 있을까? 김서진은 그녀가 낳은 아이가 아니다. 손자이긴 하지만 그녀가 싫어하는 며느리가 낳은 자식이다. 게다가 김서진은 어렸을 때부터 그녀 손에서 큰 게 아니니 더욱 마음에 들지 않았다.하지만 하늘은 그녀에게 크나큰 장난을 쳤다.“그래, 뭘 하고 싶은 건데?”노부인은 아들의 불평을 끊고 어쩔 수 없다는 말투로 물었다.“어머니, 그저 하나만 부탁할게요. 이거 하나만 꼭 들어주셔야 해요!”김승엽이 재삼 강조하며 신중하게 말하자, 노부인도 정신을 바짝 차렸다.“일단 무슨 부탁인지 말해봐.”“유전자 검사 결과 확인하지 마세요. 아니, 결과를 이미 확인하셨어도, 김서진이 우리 김씨 가문의 사람이 아니라는 것만 기억하시면 돼요. 김서진은 절대로 우리 김씨 가문의 자식이 아니에요!”노부인이 이불을 젖히고 침대 머리맡에 앉았다.“그게 무슨 말이야?”“어머니, 알아들으셨잖아요. 내 말은 유전자 검사 결과, 김서진이 우리 김씨 가문의 사람이 아니라는 거예요!”김승엽은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하게 말했다.“아참, 지영 누나에게도 이렇게 말해주세요. 쓸데없는 말 하지 못하게 경고도 해 주시고.”“너!”노부인은 아들이 이런 계획을 하고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충격을 받은 나머지, 한 손으로 명치를 쓸어내며 한참 동안 진정해서야 말을 이었다.“지금 그 애를 죽음으로 몰아넣으려는 것이야?”김승엽이 이렇게 말한 것은 절대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아마도 가문의 장로들을 모두 모아 가족회의를 하는 자리에서 이렇게 결과를 발표할 것이다.회의에서 노부인이 이 결과를 인정하기만 하면 김서진의 이름은 김씨 가문 족보에서 지워지게 되고 앞으로 김씨 가문의 모든 것은 그
“내가 결과를 보았는지 보지 않았는지 중요하지 않잖아.”노부인은 이상하리만치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네 마음속에 이미 답이 있으면서.”노부인은 아들이 이렇게 잔인하게 한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갈 생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처음에 김서진이 김씨 가문의 자식이 아니라고 의심했을 때, 노부인도 의심했었다. 유전자 검사를 하는 것도 망설이지 않고 허락했다. 만약 김서진이 김씨 가문의 핏줄을 이은 자식이 아니라면 그녀가 싫어하던 며느리가 불륜을 저지른 것임을 증명한다. 피한방울도 섞이지 않은 사람이 가주의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 그러나 지금은 유전자 검사를 하게 된 초지가 달라졌다.김승엽은 지금 단지 권력을 빼앗기 위해 김서진이 김씨 가문의 사람이든 아니든 다 그에게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이라는 죄목으로 그를 가문에서 내쫓고 싶어 한다.“어머니, 도와주겠다고 약속해 줘요. 이건 내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란 말이에요!”김승엽이 불쌍한 목소리로 애원했다.매번 자기가 이렇게 자세를 낮추고 아이처럼 애원할 때마다, 어머니는 마음이 약해져 그의 어떤 부탁도 들어주셨다.저번에 김서진과 한소은을 밖으로 불러낸 일도 흔쾌히 도와주었다. 그러니 아무리 큰일이라 하더라도 자기가 어머니에게 애원하면 어머니가 도와줄 거라 생각했다노부인이 긴 한숨을 내쉬고 나서 말했다.“그 애가 네 친조카고, 넌 그 애의 친삼촌이라는 건 생각해 보지 않았어? 만약 그 애가 김씨 가문의 자식이 맞다면, 너희는 혈연관계를 가진 가족이란 말이야!”“어머니, 왜 갑자기 마음이 약해지셨어요? 그 자식이 어머니에게 어떻게 했는지, 우리 김씨 가문의 사람을 어떻게 회사에서 내쫓았는지 다 잊으신 거예요? 나와 누나가 그 자식 밑에서 눈치 보며 일해야 했던 거 다 잊으신 거냐고요! 인제 와서 내가 그 자식의 삼촌이라는 것이 생각나셨어요? 그 자식이 나에게 그렇게 대할 때 왜 내가 삼촌이라는 걸 생각하지 못했을까요?”김승엽이 마음속에 꾸역꾸역 짓눌렀던 억울
노부인이 이렇게 묻자, 김지영이 당황함에 멈칫했다.“엄마, 나도 모르겠어요. 엄마가 결정하세요!”만약 김지영이 방법을 알았다면, 어제 그렇게 당황하지 않았을 것이다.어제 노부인이 유전자 검사 결과를 확인하고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원래는 구급차를 부르려 했지만, 다행히 바로 정신을 차려 김지영이 구급차를 부리지 못하게 막았다. 노부인은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만약 노부인이 갑자기 병원에 실려 가게 되면 분명 사람들을 놀랄 것이다. 아직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 결정하지 못했을 때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아이고!”——한편, 전화를 끊은 김승엽은 곧바로 집으로 향하지 않았다. 그는 먼저 병원으로 향했다.손목의 통증이 점점 심해져 이제는 조금 움직이기만 해도 식은땀이 날 정도였다. 처음에는 그저 뼈가 잘못 맞춰졌다고 생각해 살살 움직이면 저절로 제자리를 찾을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아직도 아픈 걸 보니 심상치 않음을 느껴 병원에 가보기로 했다.의사가 간단히 진료하고 CT 결과도 확인하고 나서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뼈에 금이 갔네요.”“뼈에 금이 갔다고요?! 이렇게 심각해요? 그냥 한번 넘어진 것뿐인데...”의사의 말에 김승엽이 깜짝 놀라 입을 쩍 벌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한번 넘어졌다고 뼈에 금이 갈 것 같지 않았다.“뼈에 금이 간 게 맞아요. 여기 보세요.”CT결과에서 금이 간 부분을 가리키며 의사가 말했다.“아마 넘어지면서 바닥을 잘못 짚어서 금이 간 거 같아요. 이건 확률적인 일이에요. 어떤 사람은 넘어지면서 골절이 되기도 하거든요. 증상이 심각하지 않지만... 어제 저녁에 넘어졌다고 하셨죠?”“네!”“그러면 너무 늦게 병원에 오셨네요.”의사가 안경을 슥 밀며 이어서 말했다.“일단 깁스부터 하시고 되도록 손목 움직이지 마세요. 살짝 금이 간 거라 바로 회복할 수 있을 겁니다.”“그럼, 운전은 할 수 있나요?”김승엽은 깁스하면 운전하는 데 불편할까 봐 걱정이었다.그의 말에 의사는 어이가 없다는 표
김승엽은 안에 들어갔던 사람이 이렇게 빨리 나올 줄은 생각지 못했다. 도무지 피할 겨를도 없이 우해영과 딱 마주쳤다.한껏 긴장한 그가 침을 꼴깍 삼키더니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정말 우연이네.”갑자기 나타나는 김승엽의 모습에 우해영은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곧바로 표정을 굳히더니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당신이 여긴 어쩐 일이야.”“그게...”김승엽이 깁스를 한 팔을 흔들며 헛웃음을 삼켰다.“하하!”다친 팔을 일부러 보여주며 우해영이 조금 자괴감을 느끼길 바랐다. 하지만 그녀는 자기의 다친 팔을 보고 멈칫하더니 어리둥절해 물었다.“다쳤어?”“그야 당신때문에...”우해영에게 따지고 싶었지만, 그녀의 눈을 마주친 순간 덜컥 겁이나 말을 바꾸었다.“됐어, 내가 제대로 서지 못한 탓이지.”“내가 그랬어?”우해영은 눈썹을 찌푸렸다. 그녀는 그날 일을 조금도 기억하지 못하는 듯했다.아무렇지 않다는 그녀의 표정에 김승엽은 더욱 화가 났다.‘자기가 해놓고 기억도 못 하는 거야 그날 얼마나 세게 밀쳤는데. 내가 넘어졌을 때 똑똑히 봐 놓고 지금 와서 모른 척이야?’하지만 김승엽은 그녀에게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만약 그녀의 비위를 거슬렀다가 한 번 더 밀치기라도 하면 금이 가는 정도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아, 아니. 당신이 한 게 아니고 내 잘못이라고. 내가 제대로 서지 못해서 그런 거야.”김승엽은 괴상한 말투로 말하며 눈으로는 정신과를 힐긋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입꼬리를 치켜올리더니 비아냥거리며 물었다.“여긴 왜 온 거야?”“난...”뜬금없이 묻는 그의 말에 우해영은 조금 당황한 것 같았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김승엽은 그녀의 표정 변화를 분명히 보았다. 우해영은 귓가의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 넘기며 말했다.“친구가 부탁해서 약 가지러 왔어. 그럼, 이만.”“친구? 정신에 문제라도 있는 거야?”김승엽은 그녀를 따라가며 집요하게 물었다. 한편으로는 그녀의 어느 친구인지 궁금해서였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녀를 골탕 먹이고 싶었다.
우해영은 미간을 찌푸리면서 더 뒤로 물러나며 등을 벽으로 바짝 붙였다. 하지만 지금 이런 상황이 싫어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김승엽은 깁스한 팔을 우해영의 몸에 딱 붙였다. 그러자 그녀가 입술을 한번 오므리더니 신기하게도 얼굴이 조금 빨개졌다.그 모습을 본 김승엽은 우해영이 다시 부드럽고 귀여운 그때로 돌아간 듯했다. 만약 이전이었다면 분명 지금 그녀가 귀여워 보여 놀려주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녀가 정신과에서 나오는 모습을 본 김승엽은 그녀의 정신이 이상한 것이라고 확신했다. 정신이 이상한 것도 모자라 폭력적인 경향까지 있는 그런 여자를 보며 어떠한 느낌도 들지 않았다.다만, 모처럼 그녀가 화를 내지 못하는 상황이 되자 김승엽은 의기양양해서 자기의 손가락을 움직이면서 말했다.“나도 어쩔 수 없어. 내가 일부러 그런 게 아니고 사람이 많아서 그런 거니까.”우해영은 그를 한번 노려보고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엘리베이터가 드디어 1층에 도착해서야 사람들이 거의 다 내렸다. 맨 뒤에 있던 두 사람도 앞다투어 내려갔다.김승엽은 더 이상 그녀를 따라갈 생각이 없었다. 병원에서 나간 후 우해영이 그에게 무슨 짓을 안 할 거라는 보장이 없으니, 모험하고 싶지 않았다.엘리베이터를 나가서 빠르게 걸음을 옮기던 우해영이 갑자기 멈춰 서며 고개를 돌려 김승엽을 바라보았다.갑작스러운 그녀의 시선에 김승엽은 깜짝 놀라 고개를 숙여 자기의 모습을 한번 보았다. 하지만 어디가 이상한지 알 수 없었다.‘설마 생각을 바꿔서 내게 무슨 짓을 하려는 건 아니겠지?’바로 이때, 우해영이 갑자기 성큼성큼 그에게로 걸어왔다.김승엽은 당황하다 못해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지금 도망가면 늦으려나?’머리로는 그렇게 말했지만, 몸은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가 몸을 돌리기도 전에 우해영은 이미 그의 코앞까지 다가왔다.“방금...”“방금은 내가 일부러 그런 게 아니야. 하늘에 맹세하는데 절대로 일부러 그런 게 아니야!”김승엽은 겁에 질려 깁스를 한 손을 흔들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