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서진이 할머니의 전화를 받았을 때 회사에서 회의 중이었다. 새로운 프로젝트의 설립과 해외 진출에 대해 보고받아야 했기 때문에 전화를 받지 않으려 했었다. 하지만 데이터 분석을 위해 핸드폰 화면을 컴퓨터와 연동하고 있을 때, 전화가 들어오자, 회의가 중단되었다.그는 전화를 끊고 서둘러 회의를 마치고 사무실로 가서 다시 전화를 걸었다.전화를 받은 김서진의 할머니는 화를 내며 그에게 물었다."지금 어디야?""회사에 있어요."김서진은 할머니의 기분이 좋지 않다는 걸 단번에 알아차렸다."당장 집에 들어와!""지금요?""지금 당장!"잠시 머뭇거리다 한마디 더 덧붙였다."네 아내도 데려와"그가 대답하기도 전에 그의 할머니가 이어서 말했다."안 데려오면 사람을 시켜서 데려오라고 할 거야! 그보다, 그 애가 임신했다던데 얼마나 귀하길래 이 늙은이가 한번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거야?""......"김서진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 그는 전화로 할머니와 논쟁하고 싶지 않았다."알았어요."할머니가 갑자기 자기를 찾는 건 아마도 우해영과 관련된 일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녀가 김승엽과 할머니에게 어떻게 말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별로 신경 쓰이지 않았다.한 시간 후, 김서진의 차가 천천히 김씨 고택으로 들어왔다. 그의 할머니는 거실에 앉아 지팡이를 손에 꼭 쥔 채 경계하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김승엽은 노부인의 옆에 서 있었고 노부인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김지영은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옆에 앉아 구경했다."할머니."김서진은 걸음을 멈추고 다시 주위를 한번 둘러보더니 입을 열었다."이 시간에 왜 아직 낮잠을 주무시지 않았어요?""낮잠?"김서진의 할머니는 못마땅한 듯 그에게 차갑게 말했다."내가 평생 낮잠에서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건 아니고?”"할머니, 무슨 말을 그렇게 하세요!""허! 누가 감히 김 대표님한테 막말하겠어? 내가 고작 몇 마디 한거 가지고 막말했다고 생각해? 그럼, 여자를 때릴 때 얼마나 힘이 들어갔는지는 왜
김서진의 할머니가 지팡이로 바닥을 '탁' 치며 지금 매우 화가 났음을 나타냈다.“그 여자가 다쳤다고요?”김서진은 어느 정도 예상했다. 자기가 얼마나 세게 쳤는지 잘 알고 있었다. 사실 우해영은 다치지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성격이 하도 드세어 기필코 자기를 이기겠다며 하는 공격마다 자칫하면 목숨을 잃을 수 있는 공격들이었다. 이에 대응하려 조금 힘을 주니 그녀가 크게 다칠 수밖에 없었다.‘흥, 와서 고자질이라도 했나 보지?’그 여자처럼 성격이 드센 사람은 고자질 따위 하지 않을 거라고 김서진은 생각했었다.하지만 김씨 집안 어른의 힘을 빌려 위협하려 하다니!“해영 씨 많이 다쳤어. 피까지 토했단 말이야!”김승엽이 분노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곧이어 고개를 노부인에게 돌리더니 당시 상황을 설명해줬다.“어머니, 해영 씨 집이 어떻게 되었는지 보지 못했죠. 집안이 아주 난장판이 되었어요! 테이블은 다 뒤집히고 해영 씨는 피를 토하지 않나. 해영 씨가 어려서부터 무술을 배우지 않았다면 목숨을 잃을지도 몰라요! 만약 김씨 집안에 살인자가 나타났다고 소문이라도 나게 되면 우리 김씨 가문은 이 개자식...”김서진의 두 눈을 마주친 김승엽은 순간 겁에 질려 말을 잇지 못했다.“우리 김씨 가문의 명예가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단 말이에요!”김승엽의 말을 듣던 노부인의 얼굴이 한껏 찌그러졌다. 김씨 가문의 명예가 무너진다는 말에 순간 눈시울이 붉어졌다.“이래도 잘못을 인정하지 않을 거야? 김서진! 네가 무슨 이유로 해영이를 다치게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무술을 겨룬 거든, 아니면 다른 뭔가 있거든 네가 해영이를 다치게 한 건 변하지 않은 사실이야! 가서 고개 숙여 사죄하고 잘못했다고 빌어. 안그러면...”“안그러면...”노부인은 말을 잇지 못했다. 순간 어떤 걸로 김서진을 위협해야 그가 말을 들을지 몰랐다. 지금 김씨 가문의 권력은 모두 김서진의 손에 있기에 더 이상 이 손주를 제어할 방법이 없었다. 그렇다고 이렇게 내버려 두는 것도 달갑지 않았다.
그의 말에 김승엽은 갑자기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그렇다, 무술을 겨루는 데에는 승패가 갈리기 마련이다. 그러는 도중 상처를 입는 것도 드문 일이 아니다. 게다가 우해영은 확실히 연약하지 않았다. 방금 그런 말을 하면서 김승엽은 조금 찔리긴 했다.처음부터 김서진과 따지기엔 부족한 이유였기에 김서진이 이렇게 말하자 더욱 말문이 막혔다.이때 여유롭게 꽃차를 마시며 드라마를 보고 있던 김지영이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서진아, 이렇게 말하면 안 되지. 무술을 겨루어 보았다는 것도 네 의견일 뿐이잖아. 우해영이 왜 갑자기 너와 무술을 겨룬 거지? 게다가 언제부터 네가 무술을 그렇게 잘하게 되었는지 고모인 나도, 할머니도 모르는 일인데."이 말에 정신이 번쩍 든 김승엽이 빠르게 말을 가로챘다."그래, 맞아! 네가 언제 무술을 배웠는지 왜 우리는 몰랐지? 뭘 하려고 무술을 배운 거야?"“할아버지께서 나보고 무술을 배우라고 했어요. 당신들은 몰랐다지만 일부러 숨기지도 않았죠. 그저 당신들이 내가 뭘 하든 신경 쓰지 않았던 거뿐이에요. 내가 왜 무술을 배웠는지는...”김서진이 김승엽을 한번 쓱 보더니 이어서 말했다. 그의 눈빛은 마치 칼날처럼 날카로웠다.“작은아버지. 우리 아버지의 형제들이 어떻게 죽었는지, 우리 김씨 가문의 자식이 왜 이렇게 적은지 당신이 누구보다 잘 아실 텐데요.”김서진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쳐다보니 당황한 김승엽은 입을 떡 벌리고 더듬거렸다."내, 내가 어떻게 알아! 내, 내가 왜 그런 걸 알아야 하지?"이렇게 말을 하고 나서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김승엽이 펄쩍 뛰며 따져 물었다.“너 지금 무슨 뜻이야? 둘째 형과 셋째 형이 죽었을 때 내가 얼마나 컸다고! 설마 내가 그들을 해쳤다는 말이야? 그리고, 네가 무술을 배운 게 나하고 무슨 상관인데! 지금 내가 묻는 건 네가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 무술을 배웠느냐 말이야! 이렇게 험악한 무술을 배우다니!”김승엽은 말을 돌릴 구실을 찾은 듯 흥분하며 이어서 말했다.“맞아!
"그만 해요!"김서진이 버럭 소리를 지르자 흐느끼던 그의 할머니가 깜짝 놀라 갑자기 울음을 멈추었다.멍하니 김서진을 바라보며 그가 왜 화내는지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김서진은 일 처리에 있어서 항상 냉철했다. 하지만 김씨 가문의 사람들에 있어서 결국의 자기의 웃어른이었기에 할아버지를 생각해서라도 그들과 맞서려 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그 사람들은 점점 더 주제를 모르고 나대기 시작했다.최근 몇 년간 뒤에서 꼼수를 쓰는 몇몇 사람들을 소리 없이 회사에서 쫓아내 버렸다. 사실 김승엽이 회사에 조용히 있기만 하다면 그까지 내쫓을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김승엽 그 사람은 사업하는 머리는 없으면서 계속 개인의 이익을 탐하려고 했고 회사의 분위기를 흐려놓았다. 그렇기 때문에 김서진은 하는 수 없이 그를 회사에서 내보내고 시시한 일을 맡기면서 배당금을 나누어 받을 수 있게 했다.그러나 그들은 그걸로 만족하지 않고 웃어른이라는 신분으로 자기에게 가르치려 드니 더 이상 참아 줄 수 없었다."난 김씨 가문의 후손이고 당신들은 내 웃어른들이에요. 하지만 김씨 가문의 권력은 내 손에 있다는 걸 잊지 마세요. 우리 김씨 가문의 가훈, 모두 잊었나요?"그는 분노에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노부인을 쏘아보며 말했다."할머니, 할아버지가 살아계실 때도 할아버지에게 이렇게 대드셨나요? 할아버지가 김씨 가문의 권력을 쥐고 계셨을 때도 이런 식으로 자기 말을 들어야 한다고 요구했나요? 증조할머니와 증조할아버지께서 웃어른이라는 신분으로 할아버지에게 이렇게 요구한 적이 있나요?"김서진의 할머니는 그의 물음에 대답하지 못했다.그녀는 많은 것을 잊어버릴 만큼 나이가 많았고 시어머니로부터 가혹한 비판을 받은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김씨 가문에서 항상 순조롭게 지냈다.하지만...김서진의 아버지는 그녀의 마음에 들지 않는 며느리를 아내로 맞이했다.그 여자는 평범한 가문 출신이었고 김씨 가문에 하나도 어울리지 않았다. 그저 얼굴이 반반한 것 외에는 내세울 것이 하나도 없었다. 김서
김서진의 카리스마가 너무 압도적이었는지 남은 사람들은 모두 그 자리에서 얼어붙고 말았다.그가 떠난 지 한참이 지나서야 노부인이 정신을 차리더니 “억”하며 울부짖었다.“내가 도대체 무슨 짓을 했길래 손자에게 이런 대접까지 받아야 하는 거야!”“어머니, 울지 마세요. 그 자식은 은혜조차 알지 못하는 놈이에요. 어머니도 그 자식이 그런 사람이라는 거 잘 아시잖아요. 그 자식은 정말 김씨 집안 사람들과 닮은 곳이 하나도 없어요! 우리와 사이가 좋지도 않고. 내가 진작에 김씨 가문을 그런 자식 손에 들어가게 하면 안 된다고 아버지에게 말했었는데 아버지는 듣지도 않으셨죠. 지금 봐요. 이젠 어머니를 안중에 두지도 않잖아요!”김승엽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노부인의 가슴에 박힌 가시가 되어 버렸다.노부인은 김서진이 죽을 만큼 싫었지만 그를 어떻게 할 수가 없다.김서진의 할아버지가 살아있을 때 노부인과 가업을 이을 후계자를 두고 여러 번 싸웠었다. 노부인은 자기의 아들인 김승엽에게 가업을 물려받길 바랐다. 아들이 살아있는데 아들을 뛰어넘고 그런 손주에게 가업을 물려준다는 게 못마땅했다. 하지만 김서진의 할아버지의 고집을 아무도 꺾을 수 없었다. 김씨 가문의 가주는 김서진의 할아버지였기에 그가 한 말이 곧 가문의 법이고 가문의 규율이었다. 그렇다 보니 노부인은 가업이 모두 김서진의 손에 들어가는 걸 눈 뜨고 볼 수밖에 없었다.그래도 김씨 가문의 어르신이자 친할머니라는 신분으로 김서진을 어떻게 해 볼 수 있을 줄 알았지만, 김서진은 노부인의 말을 조금도 들으려 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보든, 신경 쓰지 않는 김서진은 오직 할아버지의 얘기를 꺼낼 때만 노부인을 조금 존중해 주었다.그러나 지금은 할아버지 얘기를 꺼내도 소용이 없었다. 게다가 방금 그가 무슨 말을 했었던가! 한 번만 더 그의 뜻을 거스르면 가만히 두지 않겠다고? 뭘 어떻게 하겠단 말인가? 설마 김씨 가문의 어르신인 자기를 내쫓기라도 할 속셈인가?이렇게 생각하면서 노부인은 분노에 몸을 부르르 떨
“어머니, 혹시 김서진 그 자식, 우리 김씨 집안의 핏줄이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요?”김지영의 말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김승엽은 어쩌면 이 의심이 맞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노부인은 그의 손을 '탁' 치며 호통을 쳤다.“혈통 문제는 네가 함부로 말할 수 있는 게 아니다!”어머니가 자기의 손을 쳐냈지만, 힘이 들어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정말 화가 난 게 아니라는 걸 잘 알았다. 그러면서 아무렇지 않은 듯 이어서 말했다.“잘못 말한 것도 아니에요. 그 여자는 큰형이 밖에서 데려온 거잖아요. 결혼식도 밖에서 치른 거고, 그 여자를 집으로 데려왔을 때 이미 임신한 상태였어요. 큰형의 아이인지 아닌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죠. 큰형이 마음이 약해서 자기애가 아닌 걸 알고도 받아 준 것일 수도 있죠. 게다가 지금은 확인할 방법도 없잖아요!”김승엽의 말이 끝나자, 아무도 대답할 수 없었다. 노부인과 김지영 모두 침묵을 지키며 마음속으로는 의심하였다.“그러면... DNA검사를 해보는 건 어때요?”김승엽이 방법을 한가지 제시했다.“네 형이 죽은 지가 벌써 십 년도 넘었는데 어떻게 DNA 검사를 해. 그 여자도 이미...”노부인이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지금, 이 상황이 피곤하기만 했다.“엄마, 지금은 부모와 자식 간의 친자 검사 외에도 조부모님과 손주 사이의 친자 검사도 할 수 있어요. 혹시…. 그러니까 만약에 서진이가 정말 우리 김씨 가문의 핏줄이 아니라면,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사람에게 우리 가문의 가업을 손에 쥐고 흔들게 할 순 없잖아요. 아버지가 살아 계셨어도 이런 일은 모른 체 하지 않으셨을 거예요!”아까까지만 해도 망설였던 노부인은 김지영의 말을 듣고 마음이 조금 흔들렸다.‘그래. 만약 이 모든 게 그 여자의 계략일 뿐이었다면, 서진이 그 애가 정말 김씨 가문의 핏줄이 아니라면 그 애를 김씨 가문에서 쫓아내고 승엽이가 가주의 자리를 가지게 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 아니야.’피 한 방울도 섞이지 않은 사람이
위시루는 당연히 시청예가 자신을 도와주기를 바라지 않았고, 지금 그녀가 더 염려하는 것은 시야오가 어디서 그의 최고의 무술을 배웠고, 그가 어떤 최고의 비밀을 숨기고 있는지였다. 오랜 세월을 배워온 그녀는 갑자기 자신이 접하지도 배우지도 못한 심오하고 강력한 무술을 피부로만 접한 것 같았고, 생각만 해도 억울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 순간, 그녀는 부상을 입었지만 전혀 기다릴 수 없었고 즉시 누군가에게 시야오가 어렸을 때 시 사부를 따랐던 곳을 찾아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이 최근 기간 동안 회사 업무는 보류되었고 그녀의 모든 관심은 비밀 책에 집중되었습니다. 이제 회사에서 연락이 왔고, 회사를 돌보는 비서가 있지만 가끔씩 개인적으로 처리해야 할 일들이 여전히 남아있었습니다. 일어나려는 찰나, 가슴에 둔탁한 통증이 느껴지면서 몇 번 기침을 했다. 시야오가 얼마나 많은 힘을 사용했는지는 확실하지 않았지만 내부 호흡을 과도하게 사용했기 때문에 더 깊은 부상을 입었습니다. 이전에 쑤윈과 싸웠을 때, 비록 그녀가 어떤 이점도 얻지 못했지만, 그녀는 자신이 훨씬 더 강하다고 느끼지 못했고, 그때는 쑤윈이 전혀 상대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니면 임신이 그녀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요? 원래는 안되면 그냥 공개적으로 나오면된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공개적으로 나오기가 매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시야오의 무시무시한 상대는 말할 것도 없고 소윤조차도 상대하기 어려웠다. 이마에 주름을 잡으며 그녀는 회사 업무에 참석하고 싶지 않았고 전혀 움직이고 싶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전화가 그녀를 재촉했고, 그녀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이 작은 문제도 처리하지 못하면 내가 너희를 키운 거야?"라고 전화기를 향해 소리쳤다. 그리고는 단숨에 전화기를 바닥에 내려쳐서 화면을 깨뜨렸습니다. 화를 낸 후 그 사람도 많이 진정되었고, 비서가 도움이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일부 문서에 서명을해야 괜찮고 비밀을 알 수 없기 때문에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씨 가문으로 돌아가라고 했던 언니가 이번에는 자기더러 회사로 출근하라고 하다니, 우해민은 언니의 마음이 너무 빠르게 변한다고 생각했다.“아니면 다행이고. 이거 하나만 잘 기억해. 넌 내가 키우는 내 그림자야. 내가 뭘 하라고 하면 넌 말없이 내 명령만 들으면 되는 그림자라고. 알겠어?”우해영은 몇 번이고 ‘그림자’라는 단어를 강조했다. 그녀는 이런 말로 우해민이 자기가 존재하는 가치를 잊지 못하게 만들었다.자기가 존재하는 가치를 잊지 말고 주제넘게 자기 멋대로 무엇을 할 생각도 하지 말아.“응, 잘 기억했어. 난 언니의 그림자야. 난 언니를 위해서 존재하는 거야.”우해민은 다시 한번 이 말을 반복했다. 그 모습은 마치 명령을 입력해 둔 로봇 같았다.자기의 말을 잘 듣는 우해민을 보자, 우해민은 조금 화가 사그라들었다. 그녀의 말에 만족해하며 말했다.“회사에 처리해야 하는 서류가 좀 있어. 리수가 어떤 서류에 사인하면 되는지 알려줄 거야. 회사에 가서 말은 삼가고 서류에 사인만 하고 돌아오면 돼. 한두 번 가본 것도 아니니까 잘 알지?”“응! 알지.”우해민이 고개를 끄덕이자, 우해영이 이제 가보라며 손을 저었다. 우해민이 나가는 걸 확인하고서 다시 소파에 누웠다.우해영은 며칠 동안 다친 것을 회복하는 데만 신경 쓸 예정이다. 자기가 보낸 사람은 아마 곧 소식을 전해올 것이다. 분명 무술 비적은 자기가 가지게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만약 자기가 그 무술 비적을 손에 넣을 수만 있다면 자기의 재능과 몇 년 무술을 배운 기초가 있기에 최상의 자리까지 올라가는 건 얼마 걸리지 않을 것이다.그때가 되면 고대 무술 가문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 무술을 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에게 진정한 무술이 무엇인지 알려줄 것이다.우해민은 차를 타고 회사로 향했다.지금 그녀의 스타일은 완전히 우해영과 똑같았다. 차를 운전하는 기사도 그녀가 우해영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였다.사실 그녀들과 친밀한 사람 몇몇 외에는 두 사람
소은은 고개를 들어 눈물을 참으며 말했다. “한 가지 이상한 게 있어요.”“무슨 일이에요?” 임남을 달래던 임상언이 무심히 되물었다.“로사 왕자는 감금된 것이 아니라 그날 Y국으로 송환되었다고 들었는데, 그렇다면 왜 그동안 로사 왕자와 연락이 닿지 않았던 걸까요?” 소은의 말에 임상언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두 가지 가능성이 있겠죠. 신호가 나쁘거나 핸드폰을 확인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 로사 왕자가 저희 연락을 거부하고 있을 수도...”두 사람은 잠시 눈을 마주쳤다. 말은 없었지만, 둘 다 이미 답을 얻은 듯했다. 로사 왕자가 그토록 연락을 피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도 나름의 계획을 세우고 있는 건가?...3일 후. 소은은 마지막 침을 놓고 손을 거두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여왕을 쳐다보며 말했다. “오늘 시술로 폐하의 다리에 감각이 돌아오실 겁니다. 하지만 일어서는 건 천천히 시도하셔야 합니다. 너무 서두르시면 안 돼요.”소은은 말을 마치고 갑자기 미소를 지었다.“무엇 때문에 웃는 거지?” 여왕은 여전히 자신의 다리를 어루만지며 물었다. 이미 이틀 전부터 약간의 감각이 돌아왔음을 느낀 터라, 소은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소은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제가 쓸데없는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요. 사실 R10 실험을 고집하신다면 결국 폐하께서는 이 몸을 떠나게 되실 텐데, 제가 이 몸에 애쓰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여왕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계속한 거지?”“어쩌면, 폐하께서 마음을 바꾸실 지도 모르니까요.” 소은은 부드럽게 대답했다. “어쩌면 자신의 몸이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거든요.”“우리 모두 이 세상에 올 때 두 손은 비어있지만, 이 몸만은 오로지 우리 자신의 것이죠. 몸마저 버리신다면, 그 영혼은 여전히 진짜 자신일 수 있을까요?”“그렇구나.” 여왕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
소은은 조용히 몸을 일으키며 여왕을 쳐다보았다. “물론이죠.” 소은은 담담하게 답했다. 그 대답에는 원망이나 비난의 기색은 전혀 없었다.“그렇다면... 조금 아쉽네.” 여왕은 생각에 잠긴 듯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기 마련입니다. 세상 모든 일은 균형을 맞추려 하죠. R10이 폐하께서 이루고자 하는 꿈이라면, 저는 그것을 막을 수 없어요. 다만, 그때가 되어 성공하든 실패하든, 저는 그 모습을 보지 못할 테니 부디 후회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소은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문 밖으로 나갔다.릭은 여전히 문 앞에서 대기 중이었다. 그녀와 여왕의 대화가 거의 다 들렸던 듯, 둘의 시선이 잠시 교차했다. 소은이 그를 지나쳐 나가자, 릭은 곧장 방으로 들어갔다.“여왕 폐하.” 릭은 여왕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그녀의 다리에 꽂힌 은침을 보자 릭의 눈빛이 굳어졌다. “이건...”“괜찮아. 곧 소은이가 와서 침을 빼줄 거야.” 여왕은 무심하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릭은 여전히 불안한 눈빛으로 말했다. “폐하께서 너무 방심하시는 것 아닙니까? 만약 한소은이 폐하께...”“그럴 리 없다.” 여왕은 단호히 그의 말을 잘랐다.릭은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설마 그 여자를 믿으시는 겁니까?”여왕은 대답 대신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녀도 릭의 질문이 아니었다면 자신이 소은을 믿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오랜 세월 누구도 쉽게 믿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그녀는 소은을 의심하지 않았다. 심지어 은침에 독이 묻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제가 가서 잡아오도록 하죠.”여왕이 생각에 잠기자 릭은 바로 뒤돌아섰다.“거기 서!”여왕은 결연히 말했다. “난 믿어.”릭은 한참을 침묵하며 여왕의 결정을 받아들였다....임상언은 아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비록 아들을 구하려는 결심을 굳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희망이 사라지는 듯했다.
소은은 허리춤에서 허리띠처럼 생긴 물건을 꺼내더니 조심스럽게 풀어내며, 그 안에 숨겨진 가느다란 은침을 꺼냈다.“이건...” 여왕은 깜짝 놀라며 소은을 쳐다봤다. 소은이가 은침을 항상 가지고 다닐 줄은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말해봐, 네 요구가 뭐지?” 여왕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마음을 가다듬으려 애썼다. 너무 무리한 요구라면 거절하면 그만이다. 여왕은 절대 소은에게 휘둘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소은은 차분하게 말했다. “제가 여기서 나올 수 있었던 건 로사 왕자님 덕분입니다. 그러니, 왕자님을 책망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그게 다야?” 여왕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소은이 여기까지 와서 자신과 조건을 따지는데, 결국 요구한 게 단지 로사를 처벌하지 말라는 거라니. 자신이 잘못 들은 건가 싶었다.“로사는 내 아들이다. 내가 정말 내 아들에게 손을 댈 리는 없지. 괜히 기회를 헛되게 쓴 건 아닌가?” 여왕은 고개를 저으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전 폐하께서 정말 로사 왕자님께 처벌을 내리시지 않을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왕자 폐하께서 저를 구해준 건 사실이기에 저도 왕자 폐하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소은은 조용히 말했다. “게다가 지금 왕자 폐하를 감금하시고 자유를 제한하고 계시지 않나요?”여왕은 의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니야. 난 단지 로사를 Y국으로 돌려보냈을 뿐이야.”“로사가 여기서 내 일을 여러모로 방해하긴 했지만, 우리 모자 사이가 더 악화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국내에서도 로사가 필요하니 Y국으로 돌려보낸 것뿐이다.” 여왕은 담담하게 말했다.“그런데 왜 왕자 폐하의 전화가 연결되지 않죠?” 소은은 잠시 멈칫했다. 단지 귀국했다면 국제전화를 받을 수 있을 텐데, 연락이 닿지 않았기에 여왕이 로사를 가둬놓았다고 오해할 수밖에 없었다.여왕은 깊은 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나도 잘 모르겠군. 그날 내가 화가 났던 건 사실이지만, 곧바로 Y국으로 돌아가도록
“삼일이면 됩니다.” 소은은 여왕을 쳐다보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삼일? 고작 삼일?” 여왕의 눈에는 믿기지 않는 놀라움이 서렸다. 그녀는 적어도 몇 달, 아니 최소한 몇 년은 걸릴 줄 알았다. 그러나 고작 삼일이라니, 그녀로서는 상상도 못 한 시간이었다.삼일쯤이야. 십 수년을 이렇게 버텨왔는데, 삼일쯤 더 기다린다고 달라질 게 뭐 있겠는가?“삼일 안에 정말 나아질 수 있는 건가? 내가 정말 다시 일어서서 걸을 수 있는 건가?” 여왕은 두 손으로 자신의 다리를 힘껏 눌렀지만 여전히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그녀는 소은의 말을 쉽게 믿을 수가 없었다. 이 다리가 감각을 잃은지 너무 오래되어 치료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여왕은 여러 나라의 명의를 찾아 다녔지만, 그들은 단지 병의 악화를 늦출 수 있을 뿐 다리를 완전히 회복시키는 건 불가능하다고 했었다. 그러나 지금 소은은 그녀 앞에 서서 확신에 찬 얼굴로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녀는 속으로 자신도 모르게 그 말을 믿고 싶어졌다.“이전처럼 완벽하게 걸을 수 있을 거라고 장담할 순 없어요. 너무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아서 근육이 많이 위축됐거든요. 하지만 서서히 일어나서 조금씩 회복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소은은 진지한 어조로 답했다.여왕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정도라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젊었을 때처럼 완전히 회복되는 것을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만약 휠체어와 지팡이 없이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 그 자체로도 그녀에겐 더할 나위 없는 희망이었다.“좋아. 삼일, 기다리겠네. 필요한 게 있나?” 여왕은 기분이 좋아져 말을 한층 부드럽게 했다.“임남...” 소은이 말을 꺼내자마자 여왕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녀는 곧바로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 “그건 안 돼. 그런 요구는 하지 마라.”“제가 말한 건 임남을 바로 풀어달라는 게 아닙니다. 그냥... 그 아이가 괜찮은지 알고 싶고, 가능하다면 아버지와 한 번 만날 기회를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 실험을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은 저와 프레드 뿐이기 때문입니다.” 소은은 잠시 생각하다가 덧붙였다. “아니면 주효정을 믿으실 건가요?”“나는... 아무도 믿지 않아.” 여왕은 얼굴을 차갑게 굳히며 휠체어를 돌렸다.“여왕 폐하께서 이 실험에 집착하고 계시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인가요? 세상을 둘러보고 싶다거나, 짐을 내려놓고 잠시 쉬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으신가요? 수십 년간 왕좌에 오르셨지만, 정말로 아직도 그 삶이 좋으신가요? 언제나 긴장하며 위태로운 자리를 견디는 고단한 나날, 정말 아직도 벗어나고 싶지 않으신가요?” 소은은 여왕의 등을 쳐다보며 부드럽게 물었다.여왕은 아무 말 없이 자신의 무릎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살짝 떨구었다. 그녀는 시선을 다리로 내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세상을 둘러본다? 나는... 걷는 게 어떤 느낌인지도 잊어버렸어.”여왕은 오랜 세월 동안 다리를 쓰지 않았고, 처음에는 억지로라도 일어설 수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상태는 악화되었고 이제는 아예 휠체어 없이는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그녀는 휠체어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소은이 ‘세상을 둘러보라’는 말을 꺼내자 가슴이 아팠다.“만약... 폐하께서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요? 제가 다시 걷게 해드린다면요?” 소은은 조용히 여왕의 뒤에 서서 말했다.여왕은 잠시 멈칫하더니, 눈빛이 날카롭게 변하며 휠체어를 돌려 소은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정말이냐?” 여왕의 눈에는 억누를 수 없는 희망과 깊은 의심이 뒤섞여 있었다.소은은 대답 대신 그녀의 시선을 천천히 여왕의 다리로 내리고, 천천히 다가가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손을 뻗어 여왕의 무릎 위에 가볍게 손을 올렸다.여왕은 살짝 몸을 떨었다. 사실, 그녀의 다리는 거의 완전히 감각을 잃은 상태라서 소은의 손길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아마도 너무나 간절히 다시 일어서고 싶기 때문이었을 것이다.소은은 아무 말 없이 여왕의
“맞아요, 임남 때문이기도 하지만, 폐하 때문이기도 합니다.” 소은은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제가 정말로 떠나버렸다면, 가장 초조해지는 사람은 사실 여왕 폐하 아닐까요?”여왕은 코웃음을 치며 차갑게 말했다. “내가 초조해질 이유가 뭐지? 어차피 내 손엔 네 약점이 있잖아. 너를 다시 잡아오는 것도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고.”“약점이요? 임남 말씀이신가요?” 소은은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잊지 마세요, 임남이는 제 아들이 아닙니다. 저에게는 제 친자식이 셋이나 있어요. 만약 제가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임남을 포기해 제 아이들을 지키려 한다면, 그 약점이 과연 제게 약점이 맞을까요?”여왕이 입을 열기도 전에 소은은 다시 말을 이었다. “게다가, 그 아이에겐 목숨을 걸고서라도 구하려는 아버지가 있습니다. 만약 임상언이 폐하께 끝까지 맞서기로 결심한다면...” “폐하께서야 높은 자리에 있으니 이런 평범한 상인을 하찮게 여기실 수 있지만, 임상언 씨가 단순한 상인이 아니라는 걸 잊으시면 안 됩니다. 임상언 씨의 사업은 세계 곳곳에 뻗어 있어요. 임상언 씨가 목숨을 걸 각오가 되어 있다면 그 어떤 일도 할 수 있겠죠. 혹시라도 바깥에 소문이 퍼져 폐하와 Y국의 명망이 손상된다면, 곤란하지 않겠습니까?”“너...” 여왕은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반박할 말이 당장 떠오르지 않았다.여왕이 화가 난 것을 보고, 소은은 한결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화내지 마세요. 제가 돌아온 건 폐하를 자극하려는 게 아닙니다. 함께 최선의 방향을 찾고자 돌아온 거예요. 사실 폐하께서 H국에 오신 일이 밝혀진 건 아니지만, 꽤 오랜 시간 H국에 머물고 계셨습니다. 정말로 H국이 이 사실을 모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세요?”여왕은 말없이 그녀를 쳐다보았다. “지금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건 폐하의 체면을 살려드린 겁니다. 그러나 폐하께서 이곳에서 계속 머무르시며 혹여 무리수를 두신다면, 얼마나 더 체류하실 수 있을까요? Y국도 계속해서
릭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여왕은 모니터에서 시선을 돌리며 담담히 말했다. “소은을 데려와. 어디 한번 무슨 변명을 할지 들어보자. 또 어떤 이야기를 꾸며낼지 궁금하네.” 여왕은 휠체어를 살짝 돌려 더 이상 모니터를 보지 않았다.“여왕 폐하?” 릭은 망설이다가 말했다. “한소은이 거짓말을 할 걸 아시면서도 굳이 왜...” 그러나 여왕은 그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단호히 말했다. “듣고 싶어!” 이 한마디에 릭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그는 곧장 소은이 있는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소은이 정말로 잠이 들려고 하던 순간, 문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그녀는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다. 눈을 뜨는 순간, 문이 열리면서 릭이 문 앞에 서 있었다. 그의 얼굴은 굳어 있었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여왕께서 한소은 씨를 만나고 싶어 하십니다.” 소은은 차분한 표정으로 릭을 쳐다보았다. 마치 모든 상황을 예견한 듯 고요하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와 동시에 임상언은 소은보다 먼저 일어나 문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가 문에 도착하자마자 릭이 손을 들어 그의 앞을 막았다. “그쪽은 남아 계시죠.” “뭐? 우리 둘은 같이 온 거야!” 임상언은 소은을 돌아보며 그녀에게 눈짓으로 도움을 요청했다. 릭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여왕 폐하께서 그쪽을 부르지 않았으니 여기 남으시죠.” 릭은 더 이상 임상언에게 말을 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소은은 임상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부드럽게 말했다. “절 기다리고 있어요.” 임상언은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억지로 마음을 다스리며 그녀가 릭과 함께 방을 나서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조심해요.” 임상언은 소은을 향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소은은 미소를 지어 그에게 답했고, 릭을 따라 여왕의 방으로 향했다. 익숙한 길을 따라 걷는 그녀는 곧 여왕의 방에 도착했다. 릭이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여왕 폐하, 데려왔습니다
소은이 임상언을 데리고 대사관에 도착하자,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눈에 띄게 당황했다.한 사람이 서둘러 소식을 알리러 가더니, 이내 주변 구석구석에서 누군가가 몰래 그들을 엿보는 기척이 느껴졌다. 곧이어, 소은이 잘 알고 있는 여왕의 측근 몇 명이 경계 어린 눈빛으로 다가와 그들을 안으로 안내했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그들은 소은과 임상언의 몸을 샅샅이 검사하며 위험 물품을 소지하지 않았는지 확인했다. 철저한 검사가 끝난 후에야 비로소 경계가 풀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여왕을 만나지 못했고, 한적하고 깊숙한 방에 대기하도록 배정받았다. 오랜만에 돌아온 이곳은 소은에게 익숙하면서도 낯설게 느껴졌다. 익숙한 것은 이 장소였지만, 낯선 것은 지금의 마음가짐이었다. 예전에는 이곳이 싫고 불쾌하기만 했으며,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은 장소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임무와 사명을 가지고 돌아왔고, 그녀의 목표는 단순히 여기를 떠나는 것이 아닌, 중요한 일을 완수하고 무사히 돌아가는 것이었다.반면, 임상언은 눈에 띄게 불안해 보였다. 그는 두 손을 맞잡고 무릎 위에 놓은 채,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다리를 가볍게 떨고 있었다. 소은은 그의 초조함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임남을 생각하면 마음이 몹시 불안하고 조급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여기까지 왔으니 임남을 반드시 볼 수 있을 거예요. 그러니 긴장 좀 풀어요.” 소은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임상언은 그녀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발을 땅에 꾹 눌러 다리를 멈췄다. 겉으로는 조금 안정된 듯 보였지만, 그의 얼굴은 여전히 긴장감이 가득했고 미세하게 떨리는 얼굴 근육이 그의 불안한 마음을 보여주었다. 마음을 진정시키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소은은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다.두 사람은 한참을 기다렸지만, 여왕을 만나러 오라는 사람은커녕 상황을 확인하러 오는 사람조차 없었다. 긴장했던 임상언은 결국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대체 무슨 의도인 거죠? 왜 아직
“제발 부탁이에요. 안에서는 소은 씨 말만 따를게요. 소은 씨가 시키는 대로 다 할 테니까, 제발 절 데려가 주시면 안 돼요?” 임상언은 진심 어린 목소리로 소은에게 간청했다. 자존심은 이미 버린 지 오래였다. 아들을 만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그를 이 지경까지 이르게 했다. 소은이 반드시 돌아가겠다고 결심한 순간, 임상언은 이미 마음을 굳혔다. 자신이 함께 가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같이 가면 의심을 받거나 제지를 당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전 아니에요.” 임상언은 계속 설득을 이어갔다. “임남이 그 안에 있다는 걸 모두 알고 있잖아요. 제가 아들을 만나고 구하려고 하는 건 당연한 일이에요. 그리고 아들을 위해서 제 목숨을 바치는 것도 이해될 수 있는 일이죠. 그러니 제가 가는 게 가장 올바른 선택이에요.” 긴 침묵 끝에, 소은이 입을 열었다. “임상언 씨 말이 맞아요. 전 동의합니다.” 소은은 말을 마치고 서진에게 시선을 돌렸다. 서진은 잠시 생각하더니 천천히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저도 동의합니다.” 원청현은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두드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나도 동의하지.” 잠시 침묵하던 진정기 역시 마침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동의합니다.” 마지막으로 원철수는 주변을 둘러보며 한숨을 내쉬고 손을 펼쳤다. “모두 동의했는데 내가 뭐라고 반대하겠어. 나도 찬성이야.” 사실 원철수의 의견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임상언에게 지지를 표현하는 의미였다. 임상언은 눈시울이 붉어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모두들 고마워요.” “이게 뭔 감사할 일이라고. 어쨌든 안에 들어가면 절대 신중해야 해. 무슨 일이 있어도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네 입으로 한 말 반드시 지켜!” 원철수는 그의 결심을 칭찬하면서도 걱정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원철수는 속으로 임상언의 결단에 감탄했다.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그는 분명 최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