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사를 마친 후, 아심은 간단한 화장을 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출근 준비를 마친 아심은 뒤따라오는 강시언을 보고 다시 한번 물었다. “정말 저랑 같이 출근하실 거예요?” 시언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응, 내가 가는 게 싫어?” 아심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오히려 좋죠!” 아래층으로 내려가서, 시언이 운전하고 아심은 조수석에 앉았다. 그리고 시언의 날카로운 아우라에 아심은 입을 다물고 웃음을 참았다. 순간, 아심은 인생의 절정에 오른 기분이었다....성유그룹임성현이 보낸 조사원이 곧 전화를 걸어왔다. “사장님, 강시언이라는 사람이 미국에서 작은 회사를 등록한 적이 있는데, 이미 폐업했어요. 지금 어디서 사업을 하고 있는지, 무슨 일을 하는지도 알 수 없어요.” 그러자 성현은 비웃으며 말했다. “찾을 수 없다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거겠지!” “그런 것 같습니다.” “알겠어, 수고했어!” 성현은 전화를 끊고 소파에 앉아 있는 서건호에게 말했다. “내 사람이 조사했는데 사업한다는 건 전부 허풍이야. 그 작은 회사는 이미 폐업했어!” 건호는 머리에 붕대를 감은채 비웃으며 말했다. “그럼 그냥 백수였네요?” 그리고는 성현에게 담배를 건네며 불을 붙였다. “형, 그러면 신경 쓸 필요도 없겠어요!” 성현은 냉소하며 말했다. “강아심은 잘못 봤어. 외국 사업가의 큰 손을 잡았다고 생각했나 보지!” 그러자 건호는 아부하며 말했다. “어제 대리운전 기사를 통해 들었는데, 아심이 사는 곳은 시그니엘이에요.” 성현은 화가 나며 말했다. “방을 잡을 돈도 아끼면서, 공짜로 얻어먹으려는 건가? 아니면 그냥 애인이 되고 싶은 거야? 어이없네!” “외모를 보면, 먹고 사는 데는 문제 없을 것 같아요. 하지만 형이 눈독을 들인 사람을 건드렸으니, 가만히 두면 안 되죠!” 성현은 담배를 피우며 음산한 눈빛을 보였다. “아심은 반드시 내 것으로 만들 거야. 그 시언이라는 놈, 죽여
아심이 말하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순식간에 흩어졌다. 조선아와 신지아도 아심의 화를 눈치채고 서둘러 자리를 피했다. 그리고 아심은 시언의 손목을 잡고 사무실로 데려갔다. 사무실에 들어가 문을 닫고, 밖의 수많은 호기심 어린 눈길을 차단한 후에야 아심은 웃으며 말했다. “너무 시끄럽죠. 여기 앉으세요, 어디든 상관없어요.” 시언은 아심의 사무실을 둘러보다가 창가 쪽 소파에 앉아 조용히 말했다. “일해, 나 신경 쓰지 말고.” 그러자 아심은 시언에게 차 한 잔을 따라주며 말했다. “지루하지 않을까요?” 시언은 차를 한 모금 마시며 차분히 말했다. “휴가 중이라 딱히 할 일도 없어요. 어디든 똑같아.” 아심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뭐, 일이 있으면 언제든 말씀하세요!” “응!” 시언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고 두 사람은 아무 문제 없이 각자의 일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점심시간이 되자, 두 사람은 회사 건너편에 있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그동안 회사 동료들 몇 명과 마주쳤고, 모두 흥미롭고 궁금한 눈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보아하니 지승현은 끝난 것 같네!” “하지만 새로운 남자친구가 더 멋지고 남자다워 보인다. 우리 사장님과 정말 잘 어울려!” “뭔가 이상하지 않아요? 두 사람이 그냥 친구 같지는 않지만, 연인 같지도 않아요!” “난 그들이 연애 중이라고 생각해. 상관없어, 어쨌든 난 둘이 연애한다고 생각할 거야!”... 시언은 다양한 시선을 차분하게 받아들였고, 아심은 자기 비서를 경고하며 다른 사람들은 자유롭게 수군거리게 내버려두었다. 식사를 마치고 회사로 돌아와 오후 업무를 계속했다. 아심은 정말 바빴는데 전화 받고, 업무를 조정하고, 계약을 검토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두 시간이 지나고, 비서 정아현이 들어와 몇 개의 종이봉투를 들고 웃으며 말했다. “주혜견 부장님이 오후 간식을 보내주셨어요. 이건 사장님과 미스터 강 님거고요. 맛있게 드시고 전 이만 나가볼게요!”
아심은 전화를 받으며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임성현 사장님!” 성현의 목소리는 열정적이었다. “강아심 사장님, 어제 말씀드린 협업 건인데, 제가 좀 급해서 오늘 저녁에 만나서 자세히 얘기해 보는 게 어떨까요?” 아심은 변함없는 톤으로 말했다. “정말 죄송하지만, 몸이 좀 안 좋아서 오늘은 일찍 퇴근하고 싶어요. 다른 날로 미루죠.” 그러자 성현은 살짝 실망한 목소리로 말했다. “찾아오는 기회를 놓치겠다는 건 아니겠죠?” “물론 아니에요. 정말 몸이 안 좋아서 그래요. 제가 시간 정해서 다시 연락드릴게요.” 이에 성현은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강 사장님의 빠른 회복을 기원하며, 조속히 협업 세부 사항을 확정 짓길 바랍니다.” “네, 감사합니다. 사장님의 신뢰에 감사드립니다.” 아심은 전화를 끊고 소파로 걸어가 시언의 옆에 앉아 어깨에 기대며 반쯤 눈을 감고 말했다. “일하러 가라고 하지 말아요. 조금만 쉬고 싶어요. 보디가드로서 반대할 수 없죠?” “보디가드가 보호 외에도 키스나 어깨를 빌려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건가?” 시언이 진지하게 말하자 아심은 웃으며 시언의 품에 안겼다. “그뿐만 아니라 24시간 전천후 보디가드죠!” 이내 시언은 아심의 턱을 잡고 말했다. “이게 보디가드의 역할인가?” 아심은 입에서 나올 뻔한 네 글자를 꾹 참으며 말을 아꼈고 시언은 아심을 놓아주고 미지근해진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말했다. “혼자서 사업을 하려니 힘들지 않나?” 그러자 아심은 시언의 어깨에 기대며 진지하게 말했다. “바쁜 게 차라리 나아요. 다른 사람의 말은 신경 쓰지 않아요.” “자신을 잘 보호해.” 아심은 고개를 떨구며 말했다. “그럴게요.”...퇴근 시간이 다 되어 한 고객이 찾아왔다. 아심은 회의실에서 고객을 접대했고, 얘기가 끝났을 때는 이미 어두워졌다. 정아현은 자료를 들고 회의실에서 나오며 웃었다. “사장님, 빨리 퇴근하세요. 미스터 강
아심은 잠시 시언을 바라보다가 안으로 걸어갔다. “기다리느라 지쳤겠네요.” 시언은 메시지를 확인하고 있었는데 할아버지가 보낸 메시지였다. [밤에도 안 들어오는 거야?] 어떻게 대답할지 고민하고 있던 차에 아심이 들어오자 시언은 핸드폰을 내려놓고 차분히 말했다. “아니요.” 아심은 손에 든 파일을 내려놓고 시언의 앞에 서서 미소 지으며 말했다. “저녁은 제가 살게요. 뭐 먹고 싶어요?” 그러자 시언은 자기 옷을 챙겨 일어나며 말했다. “뭐든지 괜찮아.” 아심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내가 장소를 정할 테니까 당신이 운전해요.” 시언은 이견 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두 사람은 불을 끄고 함께 밖으로 나갔다. 아심은 우아한 레스토랑 대신 맛있는 샤부샤부 가게를 선택했다. 고급 레스토랑의 고요함보다는 샤부샤부 가게의 활기찬 분위기가 더 좋았다. 아마도 아심 자신에게 부족한 가장 일상적인 ‘소소한 행복' 같은 것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건 시언도 마찬가지였다. 샤부샤부 가게는 인기가 많아서 이 시간에는 자리를 잡으려면 기다려야 했다. 몇 분간 밖에서 기다리던 중, 아심은 손과 발이 점점 차가워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시언은 아심의 하얀 얼굴을 보며 자기 외투를 벗어 둘러주었다. 아심은 시언의 얇은 셔츠를 보고 거절하려 했지만, 시언은 아심의 손을 뿌리치고 강제로 입혀주었다. 검은 외투에는 시언의 맑은 향기와 체온이 남아 있자 아심은 입술을 살짝 깨물고 따뜻함을 느꼈다. 그러자 옆에서 함께 줄을 서던 커플 중 여자아이가 아심을 부러워하며 남자친구를 툭 쳤다. “나도 좀 추워!” 이에 남자친구는 정직한 얼굴로 말했다. “정말 춥네. 나도 춥다. 발을 구르면 따뜻해질 거야.” 여자아이는 화가 나서 고개를 돌리자 아심은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하지만 대놓고 웃을 수는 없어서 시언을 껴안고 시언의 가슴에 머리를 묻고 몰래 웃었다. 시언은 덩치가 꽤 컸고 자기 가슴에 기대어 어깨를 들썩이며 웃고
시언도 한차례 끔찍한 전투를 겪은 후 퇴역하게 되어, 그 후로도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지 못하고 있다. 아마 지금까지도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이에 강아심은 시언ㅇ르 바라보며 말했다.“그래서 당신도 전역을 두려워하는 거죠?” 시언은 고개를 숙이며 담담하게 말했다. “아마도.” 아심은 앞으로 몸을 기울이며 부드러운 눈빛으로 말했다. “사실 그렇게 두려워할 필요는 없어요. 적어도 나는 그걸 극복했으니까요. 당신도 당연히 할 수 있을 거예요.” “응.” 시언은 한 마디 대답했다. “적어도 지금은, 조금 지루할 뿐, 다른 건 그리 싫지 않아.” 이에 아심은 웃으며 말했다. “운성으로 돌아가면 아마 지루할 틈도 없을 거예요.” 시언은 웃음 짓지만,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아심이 다시 물었다. “강성에 머무르는 이유가 그 양재아 씨 때문인가요?” “응.” 시언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재아는 도경수 어르신이 20년 전 잃어버린 외손녀일 가능성이 있어. 소희가 온두리에서 데려왔고, 도도희 이모가 돌아오면 친자 확인을 할 거야.” 강아심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소희가 재아 씨를 보호하는 이유가 있었군요.” “그냥 의심일 뿐, 확정된 건 아니야.” 아심은 턱을 괴고 눈에 장난기가 서렸다. “강재석 어르신이 재아 씨의 신분이 확인되면, 당신에게 시집보내서 더 친해지게 하겠다고 말하지 않았나요?” 시언은 날카로운 시선으로 아심을 바라보았고 아심은 미소를 띤 채 창밖을 바라보았다. “할아버지는 그런 말씀 안 하셨어. 도경수 어르신은 한 번 언급하셨지만.” 아심은 시언을 바라보며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시언은 부드럽게 말했다. “나는 동의하지 않았어.” 이에 아심은 눈썹을 약간 올리며 창밖의 불빛을 바라보며 말했다. “먹어요, 고기 다 익었으니까.” 사람과 사람 사이도 마찬가지였다. 너무 익으면 다시 되돌리기 어려웠고 서로의 관계가 회복되지 않으면, 자신의 마음도 회복될
아심은 열쇠고리를 손에 들고, 묵직한 느낌에 놀랐다. 처음에는 상점에서 이벤트로 만든 거라서 대충 만든 장난감일 줄 알았지만, 이렇게 정성스럽게 만든 것을 보고 감동했다. 이내 아심은 고개를 들어 시언을 보며 웃었다. “이런 거 안 쓸 것 같아서, 내가 다 가질게요.” 그러자 시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네가 다 가져.” 아심은 미소 지으며 열쇠고리를 가방에 넣었다. 두 사람이 샤부샤부를 거의 다 먹어갈 때쯤, 가게에 새로운 손님들이 들어와 그들의 테이블 근처를 지나쳤다. 아심의 눈 끝에 스친 누군가를 보고 잠시 멈칫했지만, 못 본 척했지만 상대방은 이미 알아봤다. 이에 서건호가 먼저 말을 걸었다. “어라, 참 우연이네, 강시언 형. 또 만났네요!” 건호는 악의적인 눈빛으로 시언과 아심을 번갈아 보며, 도발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때 임성현이 다가와 미간을 좁히며 비웃었다. “강아심 사장님, 몸이 안 좋다고 하셔서 일을 못 하시겠다고 하지 않았나요?” 아심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래요, 몸이 안 좋아서 일은 못 하겠어요. 다음에 다시 약속하죠, 임성현 사장님.” 그러자 성현은 비웃으며 말했다. “그럼 빨리 쾌차하시길 빕니다.” “고맙습니다.” 이때 건호가 제안했다. “만났으니 같이 앉아서 술이나 한잔할까요?” 하지만 시언은 차갑고 거리를 두며 말했다. “아니, 우리는 거의 다 먹었어.” 시언은 자연스럽게 주변을 차단하는 기운을 풍겼고, 본능적인 살기가 느껴졌다. 건호도 시언의 시선에 몸을 움츠렸고, 더 이상 말하지 못했다. 성현은 웨이터를 불러 말했다. “이 테이블 계산은 제 걸로 할게요. 그리고 좋은 술 두 병도 추가로 주세요.” 그리고는 시언을 바라보며 말했다. “강시언, 돈 벌기 쉽지 않으니 여성분에게 돈 쓰게 하지 마세요. 알겠어?” 아심은 차갑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임성현 사장님이 이렇게 신경 써주시니 감사해요. 하지만 정말 필요 없어요.”“내가 초대하고
서건호가 말했다. “그래도 강시언과 강아심이 꽤 가까운 것 같아요.” 임성현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강아심, 내가 반드시 차지할 거야!” ... 층 아래에서는 아심과 시언은 전혀 영향을 받지 않고 있었고 두 사람은 식사를 마치고 계산하고 나왔다. 문밖에 나오자 차가운 바람이 불어왔고, 아심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리고 시계를 한 번 보고는 시언에게 말했다. “우리 심야 영화를 보러 갈까요?” 시언은 약간 의아해하며 물었다. “심야 영화는 좀 이르지 않나?” 지금은 밤 10시였다. “우리가 걸어가면, 가까운 영화관까지 가는 데만 30분은 걸릴 거예요. 도착하면 조금 기다리면 딱 맞을 거예요. 어떻게 생각해요?” 아심의 제안에 시언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아심은 미소를 지으며 앞장서서 길 건너편으로 걸어갔고 시언은 아심의 왼쪽에서 함께 길을 건넜다. 날씨는 매우 추웠지만, 늦은 시간임에도 거리에는 여전히 많은 사람이 있었다. 아심은 손을 주머니에 넣고, 길게 묶은 머리를 뒤로 넘겼다. 아심의 아름다움과 기품은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고, 시언 역시 멋진 외모로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영화관에서 영화를 본 적 있어요?” 아심은 문득 궁금해져서 묻자 시언은 고개를 저었다. “없어.” 이에 아심도 웃으며 말했다. “나도 없어요.”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다가 웃음을 터뜨렸다. “인터넷으로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방법을 검색해 봐야겠다. 망신당하지 않게.” 아심의 말에 시언 또한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아심은 핸드폰을 꺼내서 검색을 시작했다. 아심이 집중해서 보는데, 두 명의 젊은이가 장난을 치다가 한 명이 아심에게 부딪치려 했다. 이때 시언은 재빨리 아심을 끌어안아 피하게 했다. 젊은이는 놀라서 사과하려고 했지만, 아심의 얼굴을 보고는 멍하니 말없이 서 있었다. 이에 아심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사람 많은 곳에서 조심하세요.” 젊은이는 얼굴이
여자들은 강아심을 보고 자신감을 잃고는 친구들 쪽으로 돌아갔다. 영화관에 들어서자, 직원이 팝콘과 따뜻한 밀크티를 가져왔고 아심은 강시언의 귀에 대고 작은 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다행히 안 샀네요!” 아심의 눈에는 약간의 장난스러운 기쁨이 담겨 있었다. 아심의 피부는 뽀얗고, 표정은 매력적이었기에 시언은 아심의 얼굴을 살짝 꼬집으며 말했다. “팝콘 하나에 이렇게 좋아하냐?” “사업하는 사람들은 다 계산적이라고요!” 아심의 말에 시언은 가볍게 웃었다. 영화관의 불이 꺼지고, 영화가 시작되었다. 소곤거리는 소리도 점차 사라졌다. 아심이 선택한 영화는 코미디 영화였다. 관객들은 때때로 크게 웃었고, 아심도 웃음을 참지 못하고 시언의 어깨에 기대어 얼굴이 빨개질 정도로 웃었다. 시언은 아심의 눈을 보며 팔을 뻗어 아심을 안아주었다. 아심은 시언의 어깨에 기대어 웃다가, 문득 앞에 앉아 있는 커플이 키스하는 것을 보았다. 어두운 환경에서 두 사람은 완전히 몰입해 있었다. 이에 아심은 시언의 어깨에 기대어 웃음을 멈추고, 가끔 앞의 커플을 힐끗 보고는 시언의 귀에 대고 말했다. “첫 번째 영화 관람은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도 한 번쯤 해봐야 제대로 본 것 같지 않을까요?” 아심은 시언의 눈에서 입술로 시선을 옮기자 시언은 아심의 눈을 가리며 말했다. “장난치지 말고, 영화나 잘 봐.” 하지만 아심은 시언의 손을 내리고, 계속 바라보며 말했다. 아심의 눈은 물기를 머금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애절했다. 시언은 가볍게 한숨을 쉬며 아심의 얼굴을 어루만지고, 고개를 숙여 키스하자 아심은 바로 눈을 감고 더 많은 것을 탐했다. 영화의 후반부가 어떤 내용이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고 아심은 비로소 심야 영화의 진정한 묘미를 깨달았다. ... 영화가 끝나고 자정이 되었다. 밖은 어두워지고 춥자 시언이 말했다. “여기서 기다려. 내가 차를 가져올게.” 시언은 아심이 추위를 많이 탄다는 것을 알았다. 차는 샤부
곽시양은 임유진의 사무실에서 30분 넘게 있다가 나왔다. 복도로 나서자 동료들의 시선이 어딘가 이상하게 느껴졌다.시양은 다들 자신이 승진한 걸로 수군대는 줄 알고 웃으며 지나치려 했지만, 평소 친하게 지내던 동료 한 명이 다급하게 말했다.“시양 씨, 얼른 회사 이메일 확인해 봐요.”시양은 곧장 사내 메일함을 열어봤고, 그 내용을 확인한 뒤 3분 넘게 멍하니 서 있었다.그러고는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눈에 잡히는 물건을 움켜쥐고 그대로 진소혜를 향해 달려들며 집어던졌다.소혜도 가만히 있지 않았고, 두 사람은 한순간에 몸싸움으로 번졌다. 동료들이 달려와 가까스로 둘을 떼어놓자, 시양은 눈에 광기를 담고 소리쳤다.“진소혜, 이 악랄한 년! 팀장님도 모함하고, 나도 똑같은 수법으로 뒤통수 쳐? 너 같은 건 세상에서 그냥 사라져버려야 해!”소혜도 물러서지 않았다.“미쳤어? 그게 왜 내 탓인데? 그딴 더러운 짓을 해놓고 몰래 찍혔다고 나한테 화를 내?”“너야! 너밖에 없잖아!”시양은 미친 사람처럼 소혜에게 다시 달려들려 했다. 이때, 현준이 달려 나와 그녀를 막으며 말했다.“진정 좀 해!”“꺼져!”시양은 손을 뻗어 정현준의 뺨을 그대로 후려쳤고, 그녀의 눈에선 눈물이 그렁그렁했다.“당신이 날 찍었지! 그리고 진소혜한테 넘겼지! 둘 다 정말 비열해!”현준도 결국 폭발했다.“유혹한 건 당신이 먼저였잖아!”시양은 그대로 와락 울음을 터뜨렸다.“아악!”유진은 사무실 문 앞에 서서 이 난장판을 조용히 지켜봤다. 몇 마디 오가는 대화를 듣는 것만으로도 상황이 어찌 돌아간 건지 충분히 파악할 수 있었다.시양은 입사 이후 내내 소혜에게 눌려 지냈다. 겉으론 아첨하며 따라다녔지만, 소혜가 자신을 무시하고 조롱하듯 대하던 걸 속으로는 원망하고 있었다.시양은 현준이 소혜를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회사에서도 소혜에게 특혜를 줬던 그를 시양은 일부러 유혹했다. 현준을 차지해 소혜를 공격하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현준은 시양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
이날, 임유진은 티타임에 진소혜와 마주쳤다. 소혜는 입술을 다물고 웃으며 말했다.“팀장님, 구씨그룹의 총애를 받으니 우리 부서 실적도 쭉쭉 오르겠죠? 부서 직원들 대신 감사드려요, 팀장님.”유진은 커피를 받아 들고 나가려다, 소혜의 옆을 지나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이 일, 소혜 씨가 한 거라는 거 알아요. 이미 누가 나한테 말해줬거든요. 그래서 소혜 씨 그냥 두지 않을 거예요.”소혜의 얼굴빛이 살짝 굳어졌고, 고개를 돌려봤을 땐, 유진은 이미 자리를 떠나 있었다.오후 회의에서 유진은 이렇게 발표했다.“이번 평가 기간 동안 곽시양 씨가 업무에 성실히 임했고, 탁월한 성과를 보여주었어요. 따라서 정현준 씨의 직책을 승계하여 부서 부팀장으로 승진해요.”“인사팀에서 곧 공식 공지드릴 예정이에요.”유진의 말이 끝나자 회의실엔 놀라움이 번졌고, 시양 본인조차 믿기 힘들다는 표정이었다. 부서 내에서도 존재감이 적었고, 입사한 지 오래되지도 않았으며, 능력이나 실적 모두 소혜에 비해 부족했기에, 시양이 발탁된 건 모두에게 의외였다.소혜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냈다.“팀장님, 부팀장 선발 기준이 뭔가요? 기준을 명확히 해주시죠.”유진은 싸늘한 눈빛으로 소혜를 응시하며 말했다.“기준? 내 마음대로 정하는 게 기준이라면 기준이겠죠”소혜는 눈을 크게 떴고, 유진은 고개를 돌려 멍하니 있는 시양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말했다.“시양 씨, 제 사무실로 잠깐 와요.”“네?”시양은 얼떨떨한 목소리로 대답하며, 소혜의 얼굴을 보지 않으려는 듯 고개를 숙인 채 서둘러 유진을 따라갔다.유진이 회의실을 나서자, 안에서는 수군거림이 폭발했다. 최근 있었던 일로 인해 유진은 여전히 비난의 대상이었고, 그런 유진이 능력도 부족한 신입을 뛰어넘어 부팀장으로 발탁했다는 점에서 불만과 의문은 더 커졌다.현준도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었다. 이 인사 결정은 사전 상의 없이 유진이 발표한 것이었고, 그 역시 놀라고 있었기 때문이다.소혜는 맞은편에 앉은 베
유진은 구은정의 표정을 보고, 가슴 어딘가가 서늘해졌다. 그는 평소와는 어딘가 다르게 느껴졌고, 유진은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어제 술 마셨다던데, 괜찮아요?”은정은 유진을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괜찮아.”“안 좋아 보이던데, 이제 술은 좀 줄이는 게 좋을 것 같아요.”유진이 조용히 은정에게 당부했다.“응.”그 말에 은정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시간 됐어요. 나 출근해야 해요.”유진은 그렇게 말하며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갔고, 그렇게 둘은 스쳐 지나갔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하자 유진은 안으로 들어갔다.그런데 조금 전 은정이 자신을 바라보던 눈빛이 자꾸 마음에 걸렸고, 가슴이 쿵 내려앉는 것 같았다. 순간 망설임도 없이 엘리베이터 문을 다시 열고, 급히 뛰쳐나왔다.그러나 복도엔 이미 그의 모습이 없었다. 유진은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스스로가 어이없었다.‘내가 지금, 도대체 뭐 하는 거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했던 걸까? 아니, 지금은 내 문제부터 정리해야 해. 괜히 그 사람한테 짐이 되어선 안 돼.’그날 오후, 은정은 늦게서야 회사에 출근했다.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법무팀에 최이석 관련 고소를 철회하라고 지시했다.마심호는 납득하지 못한 얼굴이었다.“그 사람 같은 놈은 봐줄 이유가 없죠. 이번 기회에 서성 라인 애들도 좀 눌러놓는 게 나아요.”그러나 은정은 별다른 설명 없이 단호하게 말했다.“저도 제 나름대로 생각이 있어요.”그날 저녁, 은정은 늘 그랬듯 이경 아파트로 돌아왔다. 조용히 복도를 지나, 곧장 유진의 집 앞으로 갔다.문 비밀번호는 여전히 바뀌지 않았고, 은정은 문을 열고 들어갔다. 집 안은 예전 그대로였고, 유진은 아무것도 챙겨가지 않았다.그런데도 방 안은 왠지 썰렁했는데, 무언가 본질적으로 달라져 있었다. 은정은 그녀가 드라마를 자주 보던 소파에 앉았다. 그 자리에 오래도록 앉아 있었다. 해가 지고, 어둠이 드리울 때까지 그렇게 있다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은정은 책상 위의 휴대폰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녹음 안 했어요.”서선영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은정아, 이 일은 내가 밖에 알리지 않을게. 대신 조건이 있어. 최이석 일, 바로 고소 취하하고 다시는 들추지 마.”“그리고 스스로 구씨그룹 사장 자리에서 물러나. 회사도, 강성도 떠나서, 다시는 돌아오지 마.”“네 아버지에겐 그냥 말하면 돼. 죄책감 때문에 이 집에 더는 못 있겠다고. 이번엔 분명히 놔줄 거야.”“네가 떠날 땐, 내가 사람을 시켜서 돈도 챙겨줄게. 아버지한텐 그걸로도 충분히 체면 세워준 셈이 될 거야.”은정은 서선영을 냉랭하게 바라보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당신 딸을 희생해서까지 날 함정에 빠뜨린 이유가 최이석 때문이었네요.”서선영의 얼굴이 순간 굳더니 곧바로 해명했다.“그 사람은 내 동생 밑에서 오래 일했어. 난 내 동생을 위해서 한 거야. 은정아, 지금 네가 분위기 바꿔서 빠져나갈 생각은 아예 하지 마.”“내가 당신 말대로 안 하면요?”은정은 담배를 내뿜으며 한껏 무심한 얼굴로 말했다.“어차피 난 이미 악명 높은 놈이 됐어. 하나쯤 더 얹혀도 그만이죠. 오히려 구은서는 이제 절대 부잣집 자제와의 결혼은 꿈도 못 꾸겠죠.”서선영의 얼굴은 날카롭고 차가웠다.“끝장을 보겠다는 거야? 그렇게 되면 은서는 동정받는 쪽이 될 거야.”서선영은 은정을 똑바로 노려봤다.“임유진하고 너, 꽤 가까운 사이잖아. 그 애는 나랑 너 때문에 몇 번이나 맞붙었지. 근데 만약 그 애가 네가 술에 취해 여동생을 건드린 놈이라는 걸 알게 되면?”“그 아이 눈엔 네가 어떻게 보일까? 널 어떻게 생각할까? 넌 그걸 감당할 수 있어?”그 말에 은정의 얼굴빛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서선영은 그 반응에 확신을 얻은 듯 미소를 지었다.“내 말대로 해. 열흘 안에 강성 떠나서 다시는 돌아오지 마. 안 그러면 임유진이든, 임씨 집안이든, 강성 전체가 너란 인간이 얼마나 추잡한 놈인지 알게 될 거야.”“널 사회적으로 매장 시킬거고, 임유진도 널 경멸하
은정은 격노한 아버지를 똑바로 바라보며 또렷하게 말했다.“저는 그런 짓 하지 않았어요. 이건 서선영 저 사람이 꾸민 함정이에요.”서선영은 엉엉 울면서 외쳤다.“내가 내 딸을 희생시켜서 너한테 함정을 판다고? 구은정, 네가 나를 미워하는 건 알아.”“예전부터 나한테 편견이 있었지. 그래, 미우면 나한테 손찌검을 해. 왜 애먼 은서를 괴롭혀?!”“은서는 아직 시집도 안 갔어. 이제 어떻게 살라고 해? 이 소문이 밖에 나가면, 우리 집안은 완전히 끝장이야!”은정은 오직 구은태만 바라보며 물었다.“저를 믿으세요?”구은태는 아들의 눈을 바라보다가, 문득 다른 기억 하나가 떠오르며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그때 갑자기 은서가 벽을 향해 몸을 던지듯 달려갔다. 죽을 각오로 내달리는 눈빛이었다.“은서야! 안 돼, 은서야!”서선영이 급히 은서를 껴안고 붙잡았고, 울음이 멎지 않았다.“은서야, 제발 그런 짓 하지 마. 이건 네 잘못이 아니야!”“거기 누구 없어요! 얘 좀 붙잡아줘요!”서선영은 울먹이며 도우미들을 향해 소리쳤다. 몇 명의 도우미가 급히 달려와 은서를 붙들고 감싸 안았다.그중 평소 은서를 따르던 도우미가 조심스럽게 구은태 앞에 다가와 입을 열었다.“회장님, 사실은 전에도 도련님께서 밤에 아가씨 방문을 두드리는 걸 몇 번 본 적이 있었어요.”“하지만 도련님이 너무 무서워서, 보복당할까 봐 말씀 못 드렸어요. 제가 잘못했어요.”그 도우미는 흐느끼며 말을 잇지 못했다.“제가 좀 더 일찍 말씀드렸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요!”은정은 도우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기억이 떠올랐다. 예전에 애옹이가 은서에게 보내졌던 그날 밤, 은정은 술에 취해 돌아와 애옹이가 사라진 걸 알고 은서를 찾아갔다. 그때 이 도우미가 어두운 구석에서 숨어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구은태는 거기까지는 떠올리지 못했다.죽을힘을 다해 몸을 던지려던 은서, 그리고 도우미의 일방적인 증언이 더해지자, 구은태는 은정을 더 이상 믿지 않았다.다시 근처에 있던 물
[말 좀 해봐요.][삼촌?]서선영이 천천히 2층에서 걸어 내려오더니, 바닥에 떨어져 있던 휴대폰을 집어 장말숙 아주머니에게 건네며 눈짓을 보냈다. 이에 장말숙 아주머니는 눈치를 채고 전화를 받아 들고 말했다.“유진 씨죠? 저희 도련님이 술에 취하셨어요.”유진은 잠시 침묵하더니 말했다.[네, 신세 좀 질게요. 잘 부탁드려요.]“네!”장말숙 아주머니는 괜히 말을 더했다가 실수라도 할까 봐 다급하게 전화를 끊었다. 은정의 까만 눈동자가 서선영을 향해 있었지만, 그 시선은 이미 흐릿했다.서선영은 은정을 부축하듯 손을 내밀며, 자애로운 얼굴로 말했다.“은정아, 술 너무 많이 마셨잖아. 방으로 데려다줄게.”“으악!”날카로운 비명에 은정은 정신이 번쩍 들며 눈을 떴고, 날은 훤하게 밝아 있었다.옆에서는 구은서가 실크 잠옷 차림으로, 옷가지로 몸을 허둥지둥 가리고 있었고, 얼굴은 절망감에 젖은 눈물로 가득했다. 그녀는 분노로 떨리는 눈으로 은정을 노려보고 있었다.구서의 비명은 곧 서선영과 집 안 도우미들을 방으로 불러 모았다. 문이 열리고 방 안 풍경을 본 순간, 모두가 굳어버렸다.은정은 조금씩 의식을 되찾았고, 은서를 훑어보며 눈빛이 짙게 가라앉았다. 이불을 들추고 자신을 확인해 보니, 바지는 제대로 입고 있었지만 상의는 전혀 없었다.은정은 몸을 일으켜 세우려다 이마를 짚으며 침대 머리에 기대앉았다. 머리가 묵직하게 지끈거렸다.“엄마!”은서는 멘탈이 완전히 무너져 울부짖었다.“은서야!”서선영이 달려와 은서를 안고, 옷을 덮어주며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니?”“몰라요!”구은서는 서선영 품에 얼굴을 묻은 채 오열했다.“밤에 오빠가 갑자기 방에 들어왔어요. 술에 취해서 저를 한 대 치더니 그다음은...”은서의 머리는 흐트러져 있었고, 드러난 어깨엔 붉은 자국이 가득했다. 누가 봐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짐승 같은 놈!”서선영은 벼락을 맞은 듯 충격에 빠져 온몸을 떨며 은정을 향해 소리
우정숙은 이 모든 상황이 이해되지 않아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예전에 은정은 분명히 임유진은 내 스타일 아니라며 선을 그은 적이 있는데, 왜 지금 와서 이렇게 적극적으로 쫓고 있는 걸까?“넌 어떻게 생각해?”우정숙이 묻자, 유진은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조용히 말했다.“조금 냉정해질 필요가 있을 것 같아서요. 그래서 돌아왔어요.”그 말투가 생각보다 무거워, 우정숙은 분위기를 일부러 누그러뜨리며 웃었다.“이미 거절했는데도 냉정해져야 해?”유진의 귀가 붉게 물들었다.“어쨌든, 엄마는 이 일. 할아버지, 할머니한테는 말하지 말아줘요. 그리고 삼촌한테도 되도록 비밀로 해주세요.”그 말에 우정숙은 딸의 속내를 단번에 알아차렸다.“갑자기 이렇게 서둘러 집에 돌아온 이유 혹시 일이 더 커질까 봐? 너희 할아버지가 구은정한테 가서 따질까 봐 걱정돼서 그런 거 아니야?”유진은 재빨리 대답했다.“누가 그 사람 걱정했대요? 밖에서 사는 게 질려서 온 거지, 그 사람이랑은 아무 상관 없어요.”하지만 우정숙의 따뜻하고 조용한 눈빛은 유진의 진심을 꿰뚫고 있었다. 우정숙은 다만 조용히 숨을 내쉬며, 더는 묻지 않았다.그날 밤, 구은정은 외부 일정으로 접대를 나갔고, 유진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오늘 좀 늦을 것 같아. 집에 들어가면 애옹이 좀 봐줘.]유진은 곧바로 답장을 보냈다.[저도 집에 왔어요. 아주머님께 부탁하세요.]은정은 유진이 하루 정도 집에서 자려는 줄로만 알고, 별 의심 없이 답했다.[알겠어.]밤 10시.은정은 아직 접대 자리에서 술자리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때, 휴대폰에 구은태가 보낸 메시지가 하나 들어왔다.[은정아, 나 몸이 좀 안 좋다. 한번 집에 들러줄래?]은정은 미간을 찌푸렸다.[몸 안 좋으면 병원 가시죠.]그렇게 답장을 보냈지만, 더 이상의 응답은 없었다.술자리가 끝나고 나니 이미 자정 무렵이었다. 은정은 그래도 아버지를 확인하고자 구씨 저택으로 향했다. 집에 들어서자, 애옹이를 돌봐주던 장말숙 아주머니가 거실에서 그
정현준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내가 지난번에 뭐라고 했죠? 임유진 건드리지 말랬잖아요. 왜 말을 안 들어요?”진소혜는 웃었다.“들었어요. 적이 내 사람이 될 수 없다면, 없애버리라는 그 말, 정말 감명 깊었거든요. 곧 임유진은 이 회사에서 쫓겨날 거예요.”현준은 진지하게 말했다.“그럼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요. 임유진은 쫓겨나지 않아요. 사장님이 반드시 지킬 거니까요.”현준은 걱정 가득한 얼굴로 덧붙였다.“유진 씨, 그 정체가 간단하지 않아요. 사장님이 곤란한 일에 휘말릴 때마다 뒤에서 도와준 사람이 바로 그 애였다고요.”“이렇게 성급하게 나가면 결국 당하는 건 소헤 씨라고요.”소혜는 비웃으며 말했다.“그런 것도 그 얼굴 덕 아니었을까요? 임유진이 무슨 대단한 집안 출신이라도 돼요?”현준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그 애, 성이 임이야.”소혜는 비웃었다.“강성에 임 씨 많은데요? 임씨라고 다 임씨 집안이예요?”“임유진이 정말 그 임씨 집안 사람이었으면, 이런 작은 곳에서 평사원으로 일할 일이 없죠.”강성에서도 가장 윗자리에 있는 집안, 그 임씨 집안 사람이라면 당연히 격이 달랐을 것이다.현준은 소혜를 바라보며, 무력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소혜 씨, 소혜 씨는 너무 자만해요. 이제 막 졸업한 사람이잖아요. 세상이 어떤지 아직 몰라요.”“내가 경력은 부족하지만, 머리는 좋아요.”소혜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내가 원하는 건, 어떻게든 손에 넣을 수 있어요.”현준은 더는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막막했고, 소혜는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이번 달 말이면, 임유진은 이 회사에서 존재 자체가 사라질 거예요.”이메일은 해외 IP에서 발송된 것으로 확인되어, 추적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루머는 벌써 영업팀까지 퍼진 상황이었다.한때 유진이 구씨 프로젝트를 따낸 걸 보고 감탄했던 동료들조차, 그녀가 정말 실력만으로 이룬 건지 의심하기 시작했다.너무 젊은 나이에, 임씨 그룹 같은 대형 고객을 설득하고, 이미 다른 부서에서 거의 성
서선영은 유혹적인 눈빛으로 남자를 바라보며, 거절하려는 듯하면서도 몸은 피하지 않았다.“안 돼. 나, 한 시간밖에 못 나와 있어.”“당신 보고 싶어서 미치는 줄 알았다니까.”최이석은 그렇게 말하면서 서선영의 치마 지퍼를 내렸다.“밖에 사람 세워놨어. 아무도 안 들어와.”...오전, 임유진은 구씨그룹과의 계약을 마무리했다. 오후에는 회사 고위층 회의에 참석했고, 회의가 끝나고 마케팅부로 돌아왔을 때쯤, 팀 동료들의 시선이 평소와 달랐다.유진이 고개를 돌려 쳐다보자, 모두는 급히 예의를 갖춘 표정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유진은 손에 든 자료를 들고 여진구를 찾아갔다.문을 열고 들어가니, 진구는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었고, 유진이 들어오자, 그는 무의식적으로 휴대폰을 내려놓았다.“무슨 일 있었어요?”유진이 맑은 목소리로 묻자, 진구는 곧바로 말을 돌렸다.“아니야. 너 손에 든 거, 청원안 자료야? 나 좀 볼게.”하지만 유진은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휴대폰, 보여줘요.”진구는 어쩔 수 없다는 듯 휴대폰 화면을 다시 켰다. 방금 보고 있던 건, 유진과 은정이 함께 있는 사진들이었다.둘이 식당에서 식사하는 모습, 그리고 둘이 함께 아파트 단지에 들어가는 장면. 얼마 전 중식당에서 있었던 그날이었다.진구는 얼굴을 굳히고 말했다.“누군가 이 사진들을 너희 팀 메일에 전체 전송했어. 내용은, 네가 구씨 프로젝트를 따낸 게 구은정과 부적절한 관계가 있어서라고.”유진은 이미 그 메일을 확인했었다. 메일에는 프로젝트 성공을 위해 구씨 그룹 사장을 유혹했다는 식의 악의적이고 천박한 문장들이 적혀 있었다.업계 풍기를 망친다는 말까지, 표현이 거칠고 추했다. 유진은 이를 꽉 물었지만, 곧 침착하게 물었다.“발신 IP 추적할 수 있어요?”진구가 답했다.“지금 IT팀에서 추적 중이야. 내부 직원일 수도 있고, 유지그룹 쪽의 보복일 가능성도 있어. 하지만 반드시 밝혀낼 거야.”“일단 외부로 확산은 안 됐고, 회사 내부 루머 수준이야. 이미 전체 공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