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심은 살짝 강시언의 입술에서 떨어져 낮게 말했다.“너무 시끄러워요. 이 사람들 싫고, 이곳도 싫어요.”“집에 갈까요?” 시언이 물었다.“네.”시언은 아심의 손에서 술잔을 받아 테이블에 놓고, 아심을 안고 일어섰다. 그리고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않고 문밖으로 나가자 사람들은 다시 놀랐다. 문이 닫히고 두 사람의 모습이 사라지자, 서건호는 놀라며 말했다.“두 사람이 방을 잡으러 가는 건가?”건호는 임성현이 아심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시언이 성현의 손에서 사람을 빼앗아 간 것이라고 생각했다. 전에는 방설윤이 있었고, 이제는 아심이었다. 그러나 전에 시언은 설윤을 무시했지만, 이번에는 성현의 앞에서 아심을 데리고 갔다. 이에 성현은 분노에 차서 손에 든 술잔을 탁자에 던지자 유리잔이 산산조각 나며 술이 튀었다.“아악!”주변의 여자들은 피하며 비명을 질렀다.“형, 화내지 마세요. 저 여자, 형을 알아보지 못한 거예요. 저 여자는 가치가 없으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건호는 급히 달래자 승현은 벌떡 일어나 건호를 향해 소리쳤다.“당신 지금 누구를 욕하는 거야?”그러자 건호는 비웃으며 말했다.“강아심이 어쨌다고? 그 여자가 너를 거절했는데도 계속 쫓아다니고 있어?”승현은 술병을 들어 건호를 때리려 했지만, 성현이 더 빨랐다. 성현은 술병을 건호의 머리에 내리치자 술병이 건호의 머리 위에서 깨지고, 비틀거리며 물러났다. 방 안에서는 여자의 비명만 들렸을 뿐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곧이어 성현은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강아심은 내가 반드시 손에 넣고 말 거야. 나와 경쟁하려는 사람은 내가 죽일 거야!”이에 승현은 냉소하며 말했다.“여기 있어, 날 죽여봐!”그러자 성현은 차가운 시선으로 비웃으며 말했다.“너는 순위에도 없어. 내가 말하는 건 강시언이야!”승현은 아까 본 시언을 떠올리며 마음이 아팠고 훈석은 두 사람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는데 시언이 곤란해질 것을 예감했다....시언은 아심을 안고 방을 나서 복도를 걸었
아심은 신발을 벗어 던지고 강시언을 더 꽉 안았다. 시언은 불을 켜지 않고 아심을 안고 안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눕혔다. 그리고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나 샤워 좀 할게. 넌 잠시 누워 있어. 장난치지 말고.”아심은 눈을 반쯤 감고 물기가 가득한 눈으로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아심이 장난을 안 치면 아심이 아니었다. 시언이 샤워를 반쯤 마쳤을 때, 아심은 이미 시언의 곁에 와 있었다. 술에 취한 아심은 약간의 술기운을 빌려 시언에게 한 번 더 씻겨달라고 했다.이에 시언은 더 이상 아심과 실랑이를 벌이지 않고 아심을 씻겨주고 침대로 데려갔다. 그리고 아심은 시언을 껴안고 함께 침대에 누웠는데 시언의 가슴팍에 반쯤 기대어 반쯤 취한 눈빛으로 계속 키스했다. 계속되는 도발에 시언이 말했다.“다리 아프다면서? 오늘 밤은 쉬어. 내가 그렇게 독재적인 사람은 아니야, 다친 상태로 일하게 하진 않아.”아심은 흐릿한 눈으로 시언을 바라보며 말했다.“지금은 다리가 불편해요. 그리고 쉬면 온몸이 불편해질 거고요!”시언은 아심의 턱을 잡고 어두운 눈빛으로 말했다.“내가 떠난 후에는 어떻게 할 거야?”그러자 아심은 시언의 가슴에 기대어 눈을 감고 낮게 말했다.“모르겠어요.”“오늘은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됐어.”아심은 이 업계에 있다 보니 편견을 받기 쉬웠다. 그리고 오늘 밤 이렇게 행동한 것이 어떤 소문으로 퍼질지 모른다. 이에 아심은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그들이 당신을 그렇게 깎아내리는 것이 싫었어요.”“내가 그걸 신경 쓸 것 같아?”시언의 말에 아심은 더 꼭 안으며 말했다.“당신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되지만 나는 넘버세븐으로서 당신을 보호할 의무가 있거든요.”시언은 심장이 잠시 멎는 듯한 느낌을 받았는데 마치 온몸의 감각이 아심이 기댄 가슴팍에 있는 것 같았다. 그러자 시언은 낮게 웃으며 말했다.“취했네. 너는 더 이상 넘버세븐이 아니야. 이제는 강아심이야.”하지만 아심은 시언의 말에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아니요, 나는 영원히 당신
시언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알겠어. 고마워, 훈석아!”“고맙긴요. 어제 형을 끌어들인 것이 마음에 걸려요. 필요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 말해요.”“비록 내가 돈도 권력도 없지만, 전우로서 형을 함부로 대하게 두지 않을 거예요!” 훈석은 화를 내며 말했다.“알았어!”시언은 전화를 끊고 샤워하러 갔다. 나왔을 때, 침대는 이미 정리되어 있었고, 새 셔츠와 바지도 준비되어 있었는데 항상 같은 스타일이었다. 이에 시언은 아심이 같은 셔츠를 몇 벌이나 샀는지 궁금해졌다.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오자 아심은 간단한 일상복을 입고 머리를 묶은 채 아침을 준비하고 있었다. 참 무엇을 입어도 사람을 끌어당기는 능력이 있어 보였다, 아심은 갓 구운 에그타르트를 식탁에 놓고, 구운 토스트와 소고기 패티, 우유를 시언의 앞에 놓으며 부드럽게 웃었다.“밀키트 같은 거니까, 맛없다고 하지 마세요!”“괜찮아. 먹을 수 있으면 돼. 난 까다롭지 않아.”그러자 아심은 약간 놀란 표정으로 미소 지었다.“설탕을 넣은 계피 케이크도 만들었는데, 먹어볼래요?”아심은 잠시 멍하니 있었다.“아, 맞다. 단 걸 좋아하지 않죠.”시언은 고개를 들며 말했다.“오랫동안 못 먹었으니 한 조각 먹어볼게.”아심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짓고는 주방으로 가서 계피 케이크를 가져왔다. 두 사람은 함께 앉아 아침을 먹었다. 아심은 우유를 한 모금 마시며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어젯밤에 좀 취했는데, 실수로 뭐 했나요? 아니면 지나친 말을 했나요?”시언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별일 없었어. 다만 좀 질척거리더라.”아심은 할 말을 잃었고 시언은 음식을 먹으며 천천히 물었다.“매번 이렇게 술을 많이 마셔야 해?”“아니요.” 아심은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어제는 당신이 있어서 안심해서 많이 마신 거예요.”시언은 느긋하게 말했다.“특공대 규칙에는 누구도 완전히 믿어서는 안 된다고 되어 있어. 나조차도.”이에 아심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그 마지
식사를 마친 후, 아심은 간단한 화장을 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출근 준비를 마친 아심은 뒤따라오는 강시언을 보고 다시 한번 물었다. “정말 저랑 같이 출근하실 거예요?” 시언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응, 내가 가는 게 싫어?” 아심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오히려 좋죠!” 아래층으로 내려가서, 시언이 운전하고 아심은 조수석에 앉았다. 그리고 시언의 날카로운 아우라에 아심은 입을 다물고 웃음을 참았다. 순간, 아심은 인생의 절정에 오른 기분이었다....성유그룹임성현이 보낸 조사원이 곧 전화를 걸어왔다. “사장님, 강시언이라는 사람이 미국에서 작은 회사를 등록한 적이 있는데, 이미 폐업했어요. 지금 어디서 사업을 하고 있는지, 무슨 일을 하는지도 알 수 없어요.” 그러자 성현은 비웃으며 말했다. “찾을 수 없다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거겠지!” “그런 것 같습니다.” “알겠어, 수고했어!” 성현은 전화를 끊고 소파에 앉아 있는 서건호에게 말했다. “내 사람이 조사했는데 사업한다는 건 전부 허풍이야. 그 작은 회사는 이미 폐업했어!” 건호는 머리에 붕대를 감은채 비웃으며 말했다. “그럼 그냥 백수였네요?” 그리고는 성현에게 담배를 건네며 불을 붙였다. “형, 그러면 신경 쓸 필요도 없겠어요!” 성현은 냉소하며 말했다. “강아심은 잘못 봤어. 외국 사업가의 큰 손을 잡았다고 생각했나 보지!” 그러자 건호는 아부하며 말했다. “어제 대리운전 기사를 통해 들었는데, 아심이 사는 곳은 시그니엘이에요.” 성현은 화가 나며 말했다. “방을 잡을 돈도 아끼면서, 공짜로 얻어먹으려는 건가? 아니면 그냥 애인이 되고 싶은 거야? 어이없네!” “외모를 보면, 먹고 사는 데는 문제 없을 것 같아요. 하지만 형이 눈독을 들인 사람을 건드렸으니, 가만히 두면 안 되죠!” 성현은 담배를 피우며 음산한 눈빛을 보였다. “아심은 반드시 내 것으로 만들 거야. 그 시언이라는 놈, 죽여
아심이 말하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순식간에 흩어졌다. 조선아와 신지아도 아심의 화를 눈치채고 서둘러 자리를 피했다. 그리고 아심은 시언의 손목을 잡고 사무실로 데려갔다. 사무실에 들어가 문을 닫고, 밖의 수많은 호기심 어린 눈길을 차단한 후에야 아심은 웃으며 말했다. “너무 시끄럽죠. 여기 앉으세요, 어디든 상관없어요.” 시언은 아심의 사무실을 둘러보다가 창가 쪽 소파에 앉아 조용히 말했다. “일해, 나 신경 쓰지 말고.” 그러자 아심은 시언에게 차 한 잔을 따라주며 말했다. “지루하지 않을까요?” 시언은 차를 한 모금 마시며 차분히 말했다. “휴가 중이라 딱히 할 일도 없어요. 어디든 똑같아.” 아심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뭐, 일이 있으면 언제든 말씀하세요!” “응!” 시언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고 두 사람은 아무 문제 없이 각자의 일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점심시간이 되자, 두 사람은 회사 건너편에 있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그동안 회사 동료들 몇 명과 마주쳤고, 모두 흥미롭고 궁금한 눈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보아하니 지승현은 끝난 것 같네!” “하지만 새로운 남자친구가 더 멋지고 남자다워 보인다. 우리 사장님과 정말 잘 어울려!” “뭔가 이상하지 않아요? 두 사람이 그냥 친구 같지는 않지만, 연인 같지도 않아요!” “난 그들이 연애 중이라고 생각해. 상관없어, 어쨌든 난 둘이 연애한다고 생각할 거야!”... 시언은 다양한 시선을 차분하게 받아들였고, 아심은 자기 비서를 경고하며 다른 사람들은 자유롭게 수군거리게 내버려두었다. 식사를 마치고 회사로 돌아와 오후 업무를 계속했다. 아심은 정말 바빴는데 전화 받고, 업무를 조정하고, 계약을 검토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두 시간이 지나고, 비서 정아현이 들어와 몇 개의 종이봉투를 들고 웃으며 말했다. “주혜견 부장님이 오후 간식을 보내주셨어요. 이건 사장님과 미스터 강 님거고요. 맛있게 드시고 전 이만 나가볼게요!”
아심은 전화를 받으며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임성현 사장님!” 성현의 목소리는 열정적이었다. “강아심 사장님, 어제 말씀드린 협업 건인데, 제가 좀 급해서 오늘 저녁에 만나서 자세히 얘기해 보는 게 어떨까요?” 아심은 변함없는 톤으로 말했다. “정말 죄송하지만, 몸이 좀 안 좋아서 오늘은 일찍 퇴근하고 싶어요. 다른 날로 미루죠.” 그러자 성현은 살짝 실망한 목소리로 말했다. “찾아오는 기회를 놓치겠다는 건 아니겠죠?” “물론 아니에요. 정말 몸이 안 좋아서 그래요. 제가 시간 정해서 다시 연락드릴게요.” 이에 성현은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강 사장님의 빠른 회복을 기원하며, 조속히 협업 세부 사항을 확정 짓길 바랍니다.” “네, 감사합니다. 사장님의 신뢰에 감사드립니다.” 아심은 전화를 끊고 소파로 걸어가 시언의 옆에 앉아 어깨에 기대며 반쯤 눈을 감고 말했다. “일하러 가라고 하지 말아요. 조금만 쉬고 싶어요. 보디가드로서 반대할 수 없죠?” “보디가드가 보호 외에도 키스나 어깨를 빌려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건가?” 시언이 진지하게 말하자 아심은 웃으며 시언의 품에 안겼다. “그뿐만 아니라 24시간 전천후 보디가드죠!” 이내 시언은 아심의 턱을 잡고 말했다. “이게 보디가드의 역할인가?” 아심은 입에서 나올 뻔한 네 글자를 꾹 참으며 말을 아꼈고 시언은 아심을 놓아주고 미지근해진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말했다. “혼자서 사업을 하려니 힘들지 않나?” 그러자 아심은 시언의 어깨에 기대며 진지하게 말했다. “바쁜 게 차라리 나아요. 다른 사람의 말은 신경 쓰지 않아요.” “자신을 잘 보호해.” 아심은 고개를 떨구며 말했다. “그럴게요.”...퇴근 시간이 다 되어 한 고객이 찾아왔다. 아심은 회의실에서 고객을 접대했고, 얘기가 끝났을 때는 이미 어두워졌다. 정아현은 자료를 들고 회의실에서 나오며 웃었다. “사장님, 빨리 퇴근하세요. 미스터 강
아심은 잠시 시언을 바라보다가 안으로 걸어갔다. “기다리느라 지쳤겠네요.” 시언은 메시지를 확인하고 있었는데 할아버지가 보낸 메시지였다. [밤에도 안 들어오는 거야?] 어떻게 대답할지 고민하고 있던 차에 아심이 들어오자 시언은 핸드폰을 내려놓고 차분히 말했다. “아니요.” 아심은 손에 든 파일을 내려놓고 시언의 앞에 서서 미소 지으며 말했다. “저녁은 제가 살게요. 뭐 먹고 싶어요?” 그러자 시언은 자기 옷을 챙겨 일어나며 말했다. “뭐든지 괜찮아.” 아심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내가 장소를 정할 테니까 당신이 운전해요.” 시언은 이견 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두 사람은 불을 끄고 함께 밖으로 나갔다. 아심은 우아한 레스토랑 대신 맛있는 샤부샤부 가게를 선택했다. 고급 레스토랑의 고요함보다는 샤부샤부 가게의 활기찬 분위기가 더 좋았다. 아마도 아심 자신에게 부족한 가장 일상적인 ‘소소한 행복' 같은 것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건 시언도 마찬가지였다. 샤부샤부 가게는 인기가 많아서 이 시간에는 자리를 잡으려면 기다려야 했다. 몇 분간 밖에서 기다리던 중, 아심은 손과 발이 점점 차가워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시언은 아심의 하얀 얼굴을 보며 자기 외투를 벗어 둘러주었다. 아심은 시언의 얇은 셔츠를 보고 거절하려 했지만, 시언은 아심의 손을 뿌리치고 강제로 입혀주었다. 검은 외투에는 시언의 맑은 향기와 체온이 남아 있자 아심은 입술을 살짝 깨물고 따뜻함을 느꼈다. 그러자 옆에서 함께 줄을 서던 커플 중 여자아이가 아심을 부러워하며 남자친구를 툭 쳤다. “나도 좀 추워!” 이에 남자친구는 정직한 얼굴로 말했다. “정말 춥네. 나도 춥다. 발을 구르면 따뜻해질 거야.” 여자아이는 화가 나서 고개를 돌리자 아심은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하지만 대놓고 웃을 수는 없어서 시언을 껴안고 시언의 가슴에 머리를 묻고 몰래 웃었다. 시언은 덩치가 꽤 컸고 자기 가슴에 기대어 어깨를 들썩이며 웃고
시언도 한차례 끔찍한 전투를 겪은 후 퇴역하게 되어, 그 후로도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지 못하고 있다. 아마 지금까지도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이에 강아심은 시언ㅇ르 바라보며 말했다.“그래서 당신도 전역을 두려워하는 거죠?” 시언은 고개를 숙이며 담담하게 말했다. “아마도.” 아심은 앞으로 몸을 기울이며 부드러운 눈빛으로 말했다. “사실 그렇게 두려워할 필요는 없어요. 적어도 나는 그걸 극복했으니까요. 당신도 당연히 할 수 있을 거예요.” “응.” 시언은 한 마디 대답했다. “적어도 지금은, 조금 지루할 뿐, 다른 건 그리 싫지 않아.” 이에 아심은 웃으며 말했다. “운성으로 돌아가면 아마 지루할 틈도 없을 거예요.” 시언은 웃음 짓지만,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아심이 다시 물었다. “강성에 머무르는 이유가 그 양재아 씨 때문인가요?” “응.” 시언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재아는 도경수 어르신이 20년 전 잃어버린 외손녀일 가능성이 있어. 소희가 온두리에서 데려왔고, 도도희 이모가 돌아오면 친자 확인을 할 거야.” 강아심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소희가 재아 씨를 보호하는 이유가 있었군요.” “그냥 의심일 뿐, 확정된 건 아니야.” 아심은 턱을 괴고 눈에 장난기가 서렸다. “강재석 어르신이 재아 씨의 신분이 확인되면, 당신에게 시집보내서 더 친해지게 하겠다고 말하지 않았나요?” 시언은 날카로운 시선으로 아심을 바라보았고 아심은 미소를 띤 채 창밖을 바라보았다. “할아버지는 그런 말씀 안 하셨어. 도경수 어르신은 한 번 언급하셨지만.” 아심은 시언을 바라보며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시언은 부드럽게 말했다. “나는 동의하지 않았어.” 이에 아심은 눈썹을 약간 올리며 창밖의 불빛을 바라보며 말했다. “먹어요, 고기 다 익었으니까.” 사람과 사람 사이도 마찬가지였다. 너무 익으면 다시 되돌리기 어려웠고 서로의 관계가 회복되지 않으면, 자신의 마음도 회복될
유진은 찡그리며 눈을 떴다. 눈앞에 서인이 있는 것을 보자, 그녀의 눈동자가 잠시 흔들렸다. 하지만 곧 정신을 차렸고, 이내 놀란 기색과 함께 경계심이 스며들었다.서인은 푸른 기운이 감도는 눈 밑과 덥수룩한 수염, 깊고 어두운 시선으로 인해 영락없이 위협적인 인상으로 보였다.“구은정, 삼촌?”유진은 낮게 중얼거리며 본능적으로 거실 쪽 문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우정숙이 어디 갔는지 궁금해하는 듯했다.왜 낯선 이상한 아저씨가 자신의 침대 곁에 앉아 있는 걸까?서인은 유진을 바라보며 깊은 상처를 숨긴 채, 갈라진 목소리로 묻듯이 말했다.“너, 정말 날 잊었어?”유진은 순간 멍하니 그를 바라보다가, 의아한 표정으로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아니, 기억하는데요. 어릴 때 한 번 본 적 있어요.”지금 눈앞에 있는 남자는 자신의 기억 속 모습과는 꽤 많이 달랐지만, 그의 깊고도 아픈 시선 속에는 말로 다 담을 수 없는 감정이 녹아 있었다.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어딘가 낯설고도 알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잊어버린 게 차라리 잘된 거야.”서인은 시선을 떨구며, 굳게 다문 턱이 미세하게 떨렸다.“애초에, 우리 같은 사람들은 서로 알아서는 안 됐어.”둘은 전혀 다른 세계에 속한 사람들이었고, 이제야 제자리로 돌아온 것뿐이었다.서인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유진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동자 속에는 짙은 어둠이 가라앉아 있었고, 목소리는 더욱 잠겨 있었다.“유진아, 미안해.”유진은 눈썹을 찌푸리며 서인의 얼굴을 유심히 살폈다. 그리고 문득 놀란 듯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설마, 삼촌이 날 친 건 아니죠?”서인은 유진을 바라보며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지만 그 웃음은 울음보다도 더 아프고 쓸쓸했다.“내가 직접 그랬던 건 아니지만 나와 관련이 있어.”유진은 아, 하고 가볍게 탄성을 내뱉었다. 그러고 보니, 어쩐지 이상했다. 이에 유진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천진난만하게 말했다.“삼촌이 일부러 그런 게 아닐 거라고 믿어요. 난 괜찮아요
“전에는 그랬지만, 나중에는 이미 회복됐어. 의사도 유진이가 잘 회복했다고 했고!”소희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눈썹을 찌푸렸다.“우리, 의사에게 한번 물어보자!”두 사람은 임유진의 담당 주치의를 찾아가 상황을 설명하자 의사는 잠시 고민하더니 말했다.“이런 사례가 있긴 해요. 환자의 신체가 자체적으로 보이는 일종의 스트레스 반응이죠.”“기억을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뇌가 본능적으로 자신에게 고통을 줬던 기억을 지워버리고요.”“인간의 자기 보호 본능이라고도 할 수 있고, 심리적 장애의 일종이라고도 할 수 있죠.”서인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며 물었다.“그럼, 다시 기억할 수 있나요?”의사는 고개를 저었다.“확신할 수 없어요. 서서히 기억을 되찾을 수도 있고, 영영 떠올리지 못할 수도 있고요.”서인의 머릿속이 순간 새하얘졌다. 믿을 수 없다는 듯한 충격과 당혹감이 그의 눈에 가득했다.‘유진이가 나를 잊었다고?’말로 표현할 수 없는 불안감이 가슴 깊숙이 퍼져나가며 그의 심장을 온통 뒤덮었다.유진이는 중상을 입고 깨어난 후 모든 사람을 기억했으며, 심지어 구은태도 알아봤다. 그런데, 유독 서인만 잊어버렸다.이윽고 갑자기 그날 밤을 떠올렸다. 유진이에게서 걸려 온 전화.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계속해서 울기만 했던 그녀.그 슬프고 억눌린 흐느낌이 선명하게 기억 속에 남아 있었다. 그랬다. 유진이는 언제나 서인을 향해 밝고 용감하게 다가왔지만, 그는 단 한 번도 따뜻한 응답을 주지 않았다. 늘 차갑게 대하고, 때로는 조롱하고 비아냥거리기까지 했다.서인이 유진에게 준 건 오직 고통뿐이었고, 그랬기에 유진은 결국 그를 잊어버렸다. 완전히 기억에서 지워버리고, 자기 삶에서 서인을 내쫓아 버린 것이다.서인은 늘 유진이가 자신을 잊었으면 좋겠다고 말해왔지만, 정말 그렇게 되니, 왜 이토록 허망하고 아플까?소희는 불안에 휩싸인 서인의 모습을 보며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다.“의사가 다시 기억할 가능성도 있다고 했어.”그러나 소희는 말을 끝내지 못하고
여진구는 순간 굳어버렸다. 그저 멍한 눈으로 임유진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유진의 표정은 더욱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내 무슨 일을 엄마한테 말했다는 거예요?”진구는 다시 한번 조심스럽게 떠봤다.“서인, 너 정말 모르는 사람이야?”유진은 곰곰이 생각하는 듯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이내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네, 모르는 사람이에요.”그 대답에 진구의 눈빛이 크게 흔들렸다. 그러나, 곧 침착한 미소를 지으며 자연스럽게 대답했다.“아, 내가 착각했네. 내 친구인데, 네가 본 적 없는 사람이야.”그러나 유진은 여전히 의문스러운 표정이었고, 그녀는 다시 진구를 추궁했다.“그런데 아까는 나와 그 사람 얘기를 엄마한테 말했다고 하지 않았어요? 도대체 무슨 일이었는데요?”이에 진구는 빠르게 머리를 굴려, 급히 변명을 지어냈다.“아, 그게 그 친구가 우리 회사에 들어오고 싶다고 해서 말이야. 네가 좀 가르쳐 줄 수 있을까 해서 이모께 한번 여쭤봤던 거지.”“아직 너한테 얘기하기도 전에 그냥 조언을 구한 거야.”유진은 그제야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아, 그런 거였어요? 일하는 문제인데 우리 엄마한테 왜 물어보려고 했어요?선배 친구라면 괜찮아요. 내가 가르쳐 줄 수 있어요.”진구는 유진의 얼굴에서 조금의 위화감도 찾을 수 없었다. 유진은 정말로 서인이라는 이름조차 알지 못하는 눈치였다. 그녀의 표정은 철저하게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의 얼굴이었다.진구는 마음속에서 수많은 의문이 밀려왔지만, 그것을 감히 입 밖에 내지 못했다. 결국, 그는 별말 없이 다 깎은 사과를 유진에게 건네주며 화제를 돌렸다.진구는 이 사실을 우정숙에게 알리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자신조차도 이 일이 어떻게 된 건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틀 후 임씨 집안 사람들은 그제야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게 되었다.그날 아침, 구은태가 오랜만에 유진을 병문안 가고 싶다고 했다. 이제 유진의 상태가 많이 좋아졌으니 병원에서 그녀를 만날 수
임구택은 바로 간병인을 시켜 의사를 호출했다.“유진아, 유진아!”우정숙이 조용히 그녀를 부르자, 유진은 힘겹게 눈을 떴다. 유진의 눈동자는 완전히 흐려져 있었다.그리고 눈앞에 모여 있는 사람들을 멍한 표정으로 바라봤다.“유진아!”노정순이 유진의 손을 꼭 잡았는데, 눈에는 이미 눈물이 맺혀 있었다.“할머니 여기 있어. 우리 모두 네 곁에 있어. 어때? 어디 많이 아프니?”하지만, 유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공포에 질린 듯 주변을 둘러봤고, 본능적으로 몸을 뒤로 물러서려 했다. 그러나, 팔과 다리는 이미 고정된 상태였다.몸을 조금만 움직여도 극심한 통증이 몰려왔다. 유진은 눈을 크게 뜨고, 고통에 겨운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다.그 모습에 모두의 마음이 찢어지는 듯했다.“괜찮아. 괜찮아, 유진아.”노정순이 유진의 손을 어루만지며 부드럽게 달랬다.곧, 의사가 도착했고, 그는 간단한 검사를 마친 후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뇌 손상의 영향이고, 환자는 지금 막 깨어난 상태이니, 너무 서두르지 마시고, 조용히 안정을 취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우정숙은 다급히 물었다.“만약 최악의 상황이 오면 어떻게 되나요?”의사는 잠시 말을 아끼다가 신중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지금으로서는 확실히 예측하기 어려워요.”그 대답에 모두의 가슴이 무거워졌다.유진은 깨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깊은 잠에 빠졌다. 의사는 그 모습을 보며 긍정적으로 말했다.“환자는 지금 극도로 쇠약한 상태라, 수면을 통해 회복할 필요가 있어요. 그러니이건 오히려 좋은 신호예요.”유진이 다시 잠에 든 후 소희는 서인에게 전화를 걸었다.“유진이가 깨어났어.”그러고는 더 이상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유진의 몸이 너무 약하니 휴식이 필요하다는 사실만을 전했다.잠시 침묵이 흐른 후, 서인이 허스키한 목소리로 말했다.“부탁할게. 잘 돌봐 줘. 무슨 일이 있으면 바로 연락해 줘.”“알겠어.”서인이 돌아가고, 소희의 마음도 마치 우중충한 날씨처럼 무겁
어둑한 조명이 드리운 긴 벤치에 서인이 앉아 있었다. 서늘하고 적막한 기운이 온몸을 감싸고 있었다.그때, 누군가 서인의 앞에 멈춰 섰는데, 임유민이었다. 유민은 미간을 좁히고 냉정하게 말했다.“이제 가세요.”서인은 한 박자 늦게 고개를 저었다.“난 유진이 깨어날 때까지 기다릴 거야.”그러자 유민의 얼굴은 어두워졌다. 차가운 기운이 스며든 눈빛으로 그는 조용히 말했다.“전 삼촌을 원망하지 않아요. 누나가 삼촌을 혼자 좋아한 거, 그건 우리도 알고 있었어요. 그러니까 이번 일은 누나와의 마지막 정리라고 생각하세요.”“이제 누나는 삼촌을 찾지 않을 거니 죄책감 같은 거 느끼지 마세요. 그리고, 죄책감 때문에 다시 찾아오지도 마세요.”유민의 말은 칼날처럼 서인의 가슴을 깊숙이 파고들었다. 그의 머리가 더 깊이 숙여졌고, 눈동자는 공허했다.유민은 그 자리에 잠시 서 있다가, 조용히 등을 돌려 병실로 돌아갔다.새벽녘이 되자, 임지언이 병원에 도착했다. 평소 침착하고 냉정한 그도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걱정으로 가득 찬 얼굴을 감추지 못했다.임지언은 병실로 향하며 다급하게 물었다. “유진이는? 상태가 어때?”상황을 전해 들은 뒤에야, 그는 비로소 깊게 숨을 내쉬었다.임지언은 곧장 병상으로 다가가 딸의 손을 조심스레 잡았다. 그리고, 유진의 창백한 얼굴을 보며 한없이 애틋한 눈빛을 드리웠다.그러고는 낮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유진아, 아빠가 너를 잘 지켜주지 못했구나. 그러니까, 제발 어서 일어나거라.”우정숙은 그 말을 듣는 순간, 겨우 가라앉혔던 감정이 다시 북받쳐 올라 참을 새 없이 눈시울이 붉어졌다.그날 밤, 임지언과 우정숙은 잠도 자지 않고 유진이 깨어나기만을 기다렸다밤에 비가 내리고 있었으나 서인은 그 비를 피하지 않았다. 마치 조각상처럼 아무런 반응도 없이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서인은 온몸이 흠뻑 젖어도 그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렇게, 하룻밤을 꼬박 새웠다.해가 떠오를 무렵 소희가 서인을 찾았다. 소희는 조용히
유진은 천사처럼 착하고 사랑스러운 사람이었다. 하늘도 그런 그녀를 그냥 내버려두진 않을 것이었다.서인은 온몸에 피를 뒤집어쓴 채, 고개를 살짝 떨군 채로 붉게 충혈된 눈을 번뜩였다.그러고는 쉰 목소리로 말했다.“걔가 잘못되면, 나도 그냥 죽어버릴게.”소희는 순간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녀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서둘러 임구택을 찾으러 갔다.병원 복도에는 이미 가족들이 다 모여 있었다. 출장 중이던 임지언도 급히 강성으로 돌아오는 중이었다.모두가 조용히 응급실 문 앞에서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임유민은 소희를 바라보며 창백한 얼굴로 조용히 물었다.“숙모, 우리 누나 괜찮겠죠?”소희는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물론이지.”유민은 고개를 숙이며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아침에 누나가 나갈 때, 내가 막았어야 했는데...”소희는 유민의 어깨를 다독이며 말했다.“유민아, 아무도 미래를 예측할 순 없어. 그러니까, 네가 스스로를 탓할 필요는 없어.”그때, 우정숙이 자리에서 일어나 소희를 조용히 안았다. 그녀의 어깨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우정숙의 목소리에는 깊은 후회와 죄책감이 서려 있었다.“내가 잘못했어. 서인을 찾아가선 안 됐어. 내가 괜히 움직여서 이런 일이 벌어진 거야.”소희는 우정숙이 얼마나 불안해하고 있는지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우정숙의 등을 토닥이며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아니에요, 형님 탓이 아니에요.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에요. 이건 그냥 단순한 사고일 뿐이에요.”사고를 낸 차량의 운전자는 원래 일반 도로로 합류하려 했지만, 빗길이라 행인이 적다는 이유로 보행자 도로를 질주했다.그리고 핸드폰을 보며 운전하다 뒤늦게 임유진을 발견한 순간, 이미 늦어버린 것이었다.운전자는 강성에서 꽤 배경이 있는 집안의 사람이었다. 처음에는 대리운전자를 내세워 책임을 회피하려 했지만, 상대가 임씨 가문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응급실 앞의 공기는 한없이 무겁고 적막했고, 모두들 숨소리조
유진은 그 말을 듣는 순간, 서인이 애옹이를 진수아에게 넘겨버렸다고 생각했다.유진의 심장이 순간적으로 철렁 내려앉았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그녀는 망설임 없이 몸을 돌려 애옹이를 되찾으러 나섰다.밖에서는 보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유진은 한 손에 우산을 쥐고 서둘러 가게 밖으로 뛰어나갔다.비 내리는 거리에서 두리번거리던 유진은, 앞쪽에서 우산을 쓴 사람들 사이로 어렴풋이 서인의 뒷모습을 발견했다.유진은 가슴이 터질 듯한 불안감을 안고 서인을 향해 달려갔다.빗줄기는 점점 더 촘촘해지고 있었고, 서인과 수아는 나란히 걸으며 점점 멀어져 가는 듯 보였다.유진은 필사적으로 뛰었지만, 아무리 달려도 그와의 거리는 좁혀지지 않았다.그 순간, 유진의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이제 사장님은 더 이상 내 것이 아니야. 아니, 애초에 한 번도 내 것이었던 적이 없었어.’잔잔했던 빗줄기는 거센 바람을 타고 칼날처럼 날카로운 바늘이 되어 유진의 온몸을 찌르기 시작했다.마치 온몸이 난도질당하는 듯한 고통. 하지만 유진은 여전히 서인의 뒷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서인은 우산을 쓰고 애옹이를 품에 안은 채 동물병원을 향해 걷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뒤에서 날카로운 비명이 들려왔다. 이에 서인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그러자, 불법 개조된 스포츠카 한 대가 위험천만하게 보행자 도로 안으로 돌진하고 있었다.서인은 그 순간, 자신이 숨 쉬는 것도 잊어버릴 정도로 공포에 휩싸였다. 그리고 시야 끝에 보이는 익숙한 실루엣 유진이 있었다.서인은 얼굴이 하얗게 질리며 유진을 향해 광적으로 뛰기 시작했다.“임유진!”서인의 목소리는 공포와 절박함으로 뒤엉켜 있었다.“빨리 비켜! 임유진, 제발!!”우산을 쓰고 있던 유진은 그제야 뒤에서 들려오는 거친 엔진 소리를 들었다. 이에 유진은 본능적으로 뒤돌아보았지만, 이미 너무 늦어버렸다.차량 운전자는 핸드폰을 보고 있다가 정신을 차린 순간, 자기 차 앞에 서 있는 그녀를 발견했다.운전자의 얼굴이 새파랗게
애옹이가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본 야옹이가 곧바로 경계하며 짖기 시작했다.“멍! 멍! 멍!”깜짝 놀란 진수아는 뒷걸음질 치다가 뒤에 있던 화초에 발이 걸렸고, 그녀는 비명을 지르며 뒤로 넘어졌다.와장창! 넘어지는 충격으로 인해 청자 화분이 산산조각 났고,깨진 도자기 조각이 그녀의 팔꿈치를 긁었다.“꺅!”수아는 고통보다도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고, 서인은 미간을 찌푸리며 다가가 수아의 팔을 잡고 일으켜 세웠다.수아는 다소 초라한 모습으로 일어섰다. 사실 팔꿈치에 살짝 긁힌 정도였지만, 아까의 비명은 단순히 놀람에서 비롯된 것이었다.하지만 수아가 품에 안고 있던 애옹이도 함께 떨어졌다. 애옹이의 배가 깨진 도자기 조각에 닿으면서 새하얀 털 위로 희미한 핏자국이 번졌다.애옹이는 깜짝 놀라 도망치듯 나무 위로 뛰어 올라갔다. 그러면서도 계속해서 앓는 소리를 내며 스스로 상처를 핥기 시작했다.서인은 한 걸음 다가가 애옹이를 살폈다. 애옹이는 억울한 듯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더니, 서인의 어깨 위로 뛰어올라 몸을 웅크렸다.“정말 깜짝 놀랐네!”수아는 옷에 묻은 먼지를 툭툭 털어내며 불만스럽게 말했다. 그리고 바닥에 널린 깨진 도자기 조각을 발로 차버렸다. 그러면서 자신을 이렇게 만든 야옹이를 향해 분한 듯한 눈길을 보냈다.야옹이는 목줄이 묶여 있어 그 자리에서 빙글빙글 돌며 계속해서 수아를 경계했다.“고양이도 다친 거예요?”수아는 애옹이의 배에서 피가 번진 것을 보고 매우 놀랐다. 서인은 애옹이의 상처를 가볍게 만져보았다.“네, 약을 좀 발라야겠어요.”수아는 즉시 말했다.“이렇게 작은 고양이가 다치면 위험할 수도 있어요. 병원에 데려가서 치료받게 하는 게 좋겠어요.”서인은 애옹이를 조심스럽게 들어 올렸고,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그대로 걸음을 옮겼다.“나도 같이 갈게요!”수아는 급히 그를 따라갔다.샤부샤부 가게가 있는 거리에는 작은 규모의 애완동물 병원이 하나 있었다. 그랬기에 서인은 그곳에서 간단한 치료를 받을 수 있는지 물어보았
오현빈은 순간적으로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우리 사장님은 그냥 우리 사장님일 뿐입니다. 다른 신분이 있든 없든, 그건 우리랑 상관없는 일이죠.”“어떻게 상관이 없을 수가 있겠어요?”진수아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했다.“잘 생각해 봐요. 만약 그 사람이 그냥 샤부샤부 가게의 사장이라면, 당신들은 단순한 직원일 뿐이겠죠.”“하지만 만약 대기업의 총수라면 어떨까요? 적어도 부장이나 팀장 정도의 직책은 받을 수 있을 텐데요. 그러면 인생이 완전히 달라지겠죠?”그 말에 현빈은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진수아 씨가 저희를 너무 과대평가하시네요. 우리는 몸으로 뛰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라, 사무실에서 일할 수도 없고, 관리직도 맡을 수 없어요.”“사장님이 총수든 아니든, 우리는 여전히 잡일을 하는 사람일 뿐이에요. 결국엔 지금과 다를 게 없죠.”“대기업에서 잡일을 하는 것과, 샤부샤부 가게에서 잡일을 하는 건 완전히 다르죠.”수아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여기서는 누구도 당신들을 높이 평가하지 않겠지만, 만약 그룹에 들어가게 된다면 상황이 다를 거예요.”수아는 목소리를 낮추며 속삭였다.“그러니까, 당신이 사장님을 설득해서 집으로 돌아가게 해야죠. 그게 당신들을 위해서도, 사장님을 위해서도 가장 좋은 선택이니까요.”현빈의 얼굴이 굳어졌다.“우리 사장님이 어떻게 살든, 그건 전적으로 사장님의 자유죠. 그리고 저희는 그저 직원일 뿐이니, 사장님의 일을 결정할 권리는 없고요.”“진수아 씨, 저희한테 이야기해 봤자 소용없어요. 찾아올 사람을 잘못 찾으셨네요.”그 말을 끝으로, 현빈은 더 이상 상대하지 않고 후원으로 향했고, 수아는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쓸모없는 것들 같으니.”수아는 차 한 모금 마시려다, 찻잔을 보고는 인상을 찌푸리며 멀리 밀어버렸다.오현빈은 곧장 주방으로 가서 서인에게 보고했다.“형, 진수아 씨 왔어요.”서인은 한 손으로 칼을 쥐고 야채를 썰다가 무심하게 대답했다.“응.”현빈은 잠시 망설이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