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태경의 이런 따분한 질문에 대답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담요를 젖히며 일어났지만, 태경은 다시 사랑을 소파에 앉혔다.태경은 자신의 위엄을 조금도 감추지 않았고, 석양은 그의 아름답고 매서운 미간을 곱게 비추었다.“어딜 가려고?”사랑은 억지로 일어나려 했지만, 태경의 힘이 무척 셌다. 차갑고 딱딱한 엄지손가락으로 그녀의 어깨를 누르고 있으니, 사랑은 꼼짝도 하지 못했다.“위층에 올라가서 쉬고 싶어요.”태경은 사랑의 머리카락을 잡으며, 그녀의 살짝 붉어진 얼굴을 바라보았다.“위층은 너무 답답하니까 그냥 거실에서 쉬어.”사랑은 화가 났지만, 반박할 말이 없어 눈살을 찌푸렸다.“그럼 이 손 가져가요.”태경은 건성으로 사과를 했고, 조금도 놓아줄 뜻이 없었다.“내가 손을 놓으면 바로 도망가겠지?”두 사람의 거리가 너무 가까워서, 서로의 숨결조차 애매하게 얽혀 있었다.사랑은 거짓말을 했다.“도망 안 가요.”태경은 사랑의 눈을 한참 동안 쳐다보더니, 그녀의 말을 믿기로 했다. 그리고 손을 내려놓으며 더 이상 사랑을 잡지 않았다.사랑은 다시 일어나 태경과 떨어진 곳에 가서 앉았다.태경은 자신을 피하는 사랑을 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그저 가볍게 웃으며 조금도 마음에 두지 않았다. 잠시 후, 그는 도리어 입을 열어 물었다.“저녁에 뭘 먹고 싶어?”사랑은 심심한 나머지, 리모컨으로 채널을 바꾸고 있었다.“다 돼요.”집에 있을 때, 태경은 아주 캐주얼하게 입었는데, 헐렁한 긴 바지에 얇은 캐시미어 스웨터, 무척 점잖아 보였다.“그럼 알아서 요리할게.”사랑은 놀라서 잠시 망설였다.“요리해주는 이모님은요?”태경은 담담하게 말했다.“휴가 줬어.”사랑은 바로 물었다.“왜요?”태경은 사랑의 멍청한 모습을 보기 좋아했다. 이런 사랑은 평소의 강 비서와 무척 달랐다. 그는 사랑의 얼굴을 주물렀다.“집에 편식하는 사람이 있잖아?”사랑은 태경이 지나치게 자신에게 잘해주는 것을 적응하지 못했다. 그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돈으로
“그때 날 구해준 적이 있어.”정말 간단한 말 한마디였다.사랑은 여전히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그랬군요.”태경은 담배에 붙을 붙였고, 불꽃이 치솟는 순간, 다시 담배를 재떨이에 눌러 껐다. “이상해?”사랑은 아직도 연기를 해야 했기에, 뻣뻣하게 웃으며 눈시울까지 빨개졌다.“좀 놀랍긴 해요.”태경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사랑을 바라보았다. 소녀는 얼굴이 무척 하얬고, 마치 놀란 토끼처럼 상태가 좋지 않았다.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나 어렸을 때 납치를 당한 적이 있거든.”사실 어린 시절도 아니었다. 열여섯, 열일곱 살이면, 한창 사춘기였다.태경은 지금 태연하게 예전에 있었던 일을 말할 수 있었다.“대략 두 주일 동안 갇혀 있었는데, 난 내가 그 사람의 손에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여러 번 했지만, 운이 좋게도 어떻게 맞아도 견뎌낼 수 있었더라고.”그 시절을 생각하니, 태경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강렬하게 살아남고 싶었다. 그는 살고 싶었고, 이를 깨물어서라도 살아남으려 했다.사랑은 조용히 듣고 있다가 물었다.“그럼 그때 강세영 씨를 좋아하게 된 건가요?”태경은 사랑의 질문에 직접 대답하지 않고, 잠시 침묵하다가 계속 말했다.“넌 세영 아버지 알아? 강남복이라고, 돈은 좀 있지만 금방 C시로 왔기에 아는 사람이 없었고, 오히려 남에게 미움을 샀어.”태경은 여전히 그 당시의 일을 기억하고 있었다. 비록 어떤 기억은 희미하지만, 대부분의 화면은 아직 그의 머릿속에 새겨져 있었다.“세영은 사실 겁이 엄청 많아. 그날 난 혼수상태에서 깨어나자마자 세영이 울고 있는 것을 들었거든. 우리의 손발은 모두 묶여 있었고, 납치범은 심지어 나의 눈을 가려서 난 사실 세영의 얼굴을 보지 못했어. 솔직히 그때 세영의 울음소리를 들으니까 좀 짜증이 났거든.”‘울면 그만이지만, 계속 울다니. 그렇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다만 당시의 태경은 그런 말을 할 힘이 없었다.사랑은 기억났다. 처음에 그녀는 정말 깜짝 놀랐던 것이다. 대문이 굳게
태경은 사랑을 바라보며, 잠시 후 입을 열었다.“미안, 정말 급한 일이 있어서.”‘미안하다고? 나한테 얼마나 미안하겠어? 그냥 해본 말이겠지.’사랑은 아파서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숨을 깊이 들이쉬었다. 태경에게 한 번 애원한 것은 이미 그녀의 한계였기에, 사랑은 고통을 참으며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그래요, 가서 일 봐요.”태경은 넥타이를 매고, 양복 외투를 꺼낸 다음,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다.아래층에서, 기사와 경호원은 이미 대기하고 있었다. 태경은 차 열쇠를 기사에게 건네며,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담초동 별장으로 가.”“네, 도련님.”태경은 문득 무슨 일이 생각났는지, 집사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강 비서 지금 몸이 안 좋은 것 같으니까, 오늘 밤 잘 지켜봐요.”집사는 즉시 정신을 차렸다.[네.]태경은 전화를 끊은 다음, 더 이상 사랑을 신경 쓰지 않았다. ‘강사랑도 이제 성인이니, 어디가 불편하면 의사를 부르겠지.’세영이 전화에서 한 말을 생각하며, 태경은 미간을 비볐고, 낮은 소리로 기사에게 좀 빨리 운전하라고 분부했다....사랑이 아파서 기절하기 진전,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그녀는 지금 들어오라고 말할 힘조차 없었다.잠시 후, 윤미숙은 조심스럽게 방문을 열었다.“아가씨, 도련님께서 아가씨 상황을 살펴보라고 하셨는데. 괜찮으세요?”사랑은 창백한 얼굴을 들고 말했다.“차 좀 불러줘요. 병원에 가고 싶어요.”“네, 지금 바로 갈게요.”심지어 수술을 마친 그날, 사랑은 지금처럼 아프지 않았다. 복부의 통증은 그녀를 기절시키기에 충분했다.정신을 차린 후, 사랑은 천천히 침대에서 내려왔고, 또 침대 옆에 엎드려 잠시 쉬었다. 그러고 나서 또 옷장에서 캐시미어 코트를 꺼내 외투를 걸치고 스카프를 둘렀다. 그녀는 지금 찬바람을 맞으면 안 됐는데, 자칫하면 감기에 걸릴 수 있었다.‘아프면 나 말고 누가 날 걱정하겠어.’사랑은 계단의 난간을 붙잡으며 천천히 내려갔다.집사는 사랑의 안색이 좋지 않은 것을 보고,
세영은 무릎을 벌리며 태경의 다리에 앉았다. 그녀는 눈시울을 붉혔고, 매번 말다툼을 한 뒤 이렇게 눈물을 흘리며 연약한 모습을 보였다.“태경아, 내가 잘못했어.”세영은 눈물을 점점 많이 흘리더니, 눈물투성이가 되었다.“나한테 이러지 마.”그녀의 우는 모습은 무척 불쌍해 보였고, 목이 메어 입을 열었는데, 목소리도 무척 간드러졌다. 보는 사람 마저 마음이 아팠다.태경은 잠시 침묵하다가 눈썹을 살짝 찌푸리며 세영의 턱을 쥐었다. 어두운 룸 속에서, 남자는 진지하게 손수건으로 천천히 그녀의 눈물을 닦았다.“응.”‘내가 세영과 뭘 따지겠어. 그럴 필요가 없잖아.’세영은 여전히 붉은 눈시울로 소파에 놓인 태경의 핸드폰을 힐끗 보았다. 이미 통화가 끊긴 상태였다. 그녀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며 계속 말했다.“나도 널 떠나기 위해 출국한 게 아니야.”태경은 그녀의 말을 끊었다.“알아, 네가 아픈 거.”세영은 멈칫했다. 그녀는 태경이 이 일을 모르는 줄 알았다. 잠시 후, 세영은 또 울먹이며 유난히 억울했다.“약 먹고 주사 맞고, 수술받을 때도 엄청 아팠어.”태경은 딴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문득 다른 사람이 생각났다. 그날 창백한 얼굴로 수술실에 누워있는 사랑을 떠올렸고, 며칠 동안 자신을 괴롭혔던, 가슴이 찢어지는 울음소리를 떠올렸다.“왜 날 찾아오지 않은 거야?”“내가 뭐 하러 널 찾아가? 나한테 화풀이를 하라고?” 태경은 세영을 밀어냈다. “그때 그곳에 남아서 병을 치료하는 게 가장 좋은 선택이야.”세영은 그의 말을 믿기로 했다. 태경은 그녀를 속일 리가 없으니까. 그는 여자를 달래기 위해 듣기 좋은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태경은 세영을 가장 사랑할 때도, 위로하는 데에 한계가 있었다. 인내심이 바닥 나면, 더 이상 그녀를 관심하지 않았다.세영이 성질을 다 부리면, 다시 기회를 주어 화해했다.소년의 성격도 매우 오만하여, 여태껏 쉽게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세영은 가끔 방관자로서 태경의 싸늘한 태도에 감탄했다. ‘강사랑과
이혼을 하든 말든 사랑은 상관없었다. 지금 이혼하는 것과 2년 후에 이혼하는 것도 크게 차이가 없는 것 같다.물론 그렇게 되면, 사랑은 다른 방법을 생각해서 남청연의 병원비를 해결해야 했다. 다른 일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을 것이다.사랑은 곰곰이 생각해 보더니, 태경에게 사실대로 말했다.“만약 이혼을 하고 싶다면, 난 상관없거든요.”그녀는 무조건 계약을 앞당겨 종료하는 것을 협조할 수 있었다. 태경이 계약서의 규정에 따라 상응하는 위약금을 배상하기만 하면 된다.사랑은 자신이 말을 마친 다음, 태경의 안색이 더욱 어두워진 것을 발견했다.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표정은 무척 차가웠다.줄곧 태경의 변덕스러운 기분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 사랑은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 다시 완곡하게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물론, 앞당겨 종료한다면, 나에도 배상금이 있는 거 맞죠?”사랑은 행여나 태경이 화가 나서 약속을 번복할 봐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녀는 이제야 태경이 왜 감정이 없는 거래를 하기 좋아하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확실히 간단하고 편리했다. 앞으로도 번거로움이 없을 것이고, 그저 충분한 돈만 있으면 된다.태경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사랑을 쳐다보더니 냉소를 지었다.“강 비서, 나한테서 배상금을 충분히 받지 못한 거야?”이 말이 나온 순간, 사랑은 가슴이 아팠다. 정말 각박하고 매정한 남자였다.태경은 인정사정 없이 말했고, 사랑은 시간이 좀 걸려서야 다시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녀는 좀 초라해 보였는데, 생각해 보면 태경의 말도 틀리지 않았다.‘난 이미 심태경에게서 적지 않은 배상금을 받은 것 같아. 아이를 지우면서, 천만 원 넘은 돈을 받았잖아’사랑은 마음이 이미 마비되어 더 이상 통증을 느끼지 못했지만 안색이 별로 좋지 않았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사람은 욕심이 많은 법이죠. 돈이 많다고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태경은 손으로 사랑의 턱을 잡으며, 좁고 긴 눈을 살짝 들어올렸다. 그리고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
태경은 들으면서 기분이 매우 언짢았다. ‘난 쓸데없는 말을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말을 많이 하면, 내가 엄청 신경 쓰이는 것 같잖아.’그는 잠시 침묵하더니 차가운 미소가 순식간에 사라졌다.“그때 정말 이렇게 소탈할 수 있길 바라.”태경은 남자를 잘못 만나 고생한 여자들을 많이 보았다.그에게는 멍청한 사촌 여동생이 있었는데, 재벌 집 아가씨가 가난한 남자와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몇 년 동안 끈질기게 매달리며 겨우 그 남자를 손에 넣었고, 또 각방면으로 잘 챙겨주었지만, 결국 상대방은 사촌 여동생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돈을 충분히 모은 다음, 바로 그녀를 차버렸다.사촌 여동생은 울면서 태경을 찾아와 애원했는데, 이를 갈며 그 남자에게 평생 잊지 못할 교훈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태경은 그녀의 부탁에 짜증이 나서 도와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그 남자를 어떻게 하기도 전에, 사촌 여동생은 마음이 약해져서 얼른 멈추라고 했다.당시 태경은 무척 냉담하게 물었다.“대체 어쩌자는 거야?”사촌 여동생은 울면서 말했다. “이렇게 맞는 것을 보니까, 내 마음이 아프단 말이에요.”태경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마음이 왜 아파?”만약 자신의 아내가 이렇게 그를 대한다면, 태경은 절대로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날 놀리고, 내 감정을 짓밟는다면, 죽어도 싸지.’태경의 사촌 여동생도 그리 착한 사람이 아니었다. 당하면 반드시 갚아줘야 했고, 속도 좁아서 의심이 많았다. 그러나 어려서부터 남에게 거의 당한 적이 없던 재벌 집 아가씨가 남자에게 버림받는 것을 참을 수 있었다니.정신을 차리자, 태경은 사랑이 말하는 것을 들었다.“그럴게요.”태경은 사랑과 오랫동안 함께 일하면서, 나름 그녀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 부드럽지만 자존심이 있었고, 강경하지만 상대방으로 하여금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게 했다. 그리고 항상 약속을 잘 지켰다.그러나 태경은 여전히 사랑을 완전히 믿을 수 없었다.”그때 가서 돈도 낭비하고, 시간도 낭비했지만 괜히 마음 아파하지
병원의 간병인은 사랑의 엄격한 말투에 깜짝 놀랐다.평소의 사랑은 줄곧 얌전하고 부드러워, 여태껏 이렇게 큰 소리로 자신과 말을 한 적이 없었다.간병인은 전전긍긍했다.[꽃을 들고 오셨기에 나쁜 사람 같지 않았어요. 게다가 또 어머님의 옛 친구라고 말씀하셔서, 들어오시라고 했어요.]사랑은 이 말에 화가 나서 머리가 좀 어지러웠다. 그녀는 보기 드물게 차가운 얼굴을 하며 엄숙하게 경고했다.“앞으로 그 여자 또 온다면, 그냥 떠나라고 해요.”간병인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네, 알겠어요.]사랑은 전화를 끊어도 화가 가시지 않았다. 그리고 겨우 냉정함을 유지하며, 엄수인이 오늘 이렇게 한 목적이 무엇인지 생각하기 시작했다.‘엄수인은 이유 없이 우리 어머니를 찾으러 가지 않았을 거야. 그 여자는 무슨 일을 하든 다 목적이 있었어. 그때 그렇게 오랫동안 참은 것을 보면, 엄청 교활하고 똑똑한 사람이란 걸 알 수 있어.’강남복이 이렇게 쉽게 남씨 가문의 모든 재산을 차지한 것도 다 엄수인이 뒤에서 도와줬기 때문이다.태경은 사랑의 안색이 좋지 않은 것을 발견했다.“병원에 무슨 일 생겼어?”사랑은 화를 참으면서 태경에게 화풀이를 하지 않았다.“아니에요.”태경은 여전히 사랑을 챙겨주고 싶었다. 동정이 아니라, 그동안 함께 지내면서, 사랑이 홀로 C시에 와서 학업을 마치고, 일자리를 찾는 게 확실히 쉽지 않다고 느꼈다.‘강 비서는 원래 N시의 사람인 것 같은데. 강 비서 어머니도 N시의 사람이었지.’C시에 배경도, 가족도 없었으니, 한 걸음 한 걸음 무척 힘들게 나아갔다.태경은 사랑을 그윽하게 쳐다보았다.“도움이 필요하면 나한테 솔직히 말해.”사랑도 사양하지 않았다.“알았어요.”그녀는 눈을 들어 태경을 바라보며 멍을 때렸다. ‘엄수인과 맞설 때, 나도 이긴 적이 없는 건 아니야. 엄수인은 심태경을 자신의 사위로 삼고 싶어 할 텐데.’심씨 가문은 강씨 가문과 달리, 명실상부한 명문가였다. 태경의 아버지는 정치인이었고, 작은 아버지도 권세
사랑은 추위를 좀 타서 숄을 걸친 다음, 사람이 적은 구석에 가서 앉으며, 종업원에게 따뜻한 물 한 잔을 달라고 했다.경매장에는 화려한 등불이 켜져 있었고, 무척 눈이 부셨다.사랑은 C시에서 아주 잘나가는 거물들을 많이 보았다.‘강세영도 대단하네, 이런 분들을 초대했다니.’사실 사랑은 처음에 주얼리 디자인을 전공했는데, 대학교 1학년 여름방학 때, 선생님을 따라 각 대회에 참가했다. 세영은 그녀와 같은 학교, 같은 전공을 선택했고, 그저 학급과 교수님이 달랐다.매년의 디자인 대회는 신인들이 얼굴을 내밀 수 있는 곳이었다. 그해 사랑은 자신의 작품을 제출하기 전에, 교수님이 보낸 최고의 디자인 대상을 보았다. 그 그림은 그녀의 컴퓨터에 있는 내용과 거의 똑같았다.그것을 본 순간, 사랑은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교수님은 세영이 디자인상을 받은 작품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으며, 심지어 그녀를 천재라고 했다.사랑은 그 그림을 보고 머릿속이 좀 혼란스러웠다.“이게 강세영의 작품이라고요?”교수님은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다.“그래, 너도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않니? 특히 생기가 있어. 이미 오랫동안 이렇게 대단한 신인이 나타난 적이 없는데.”사랑은 자신의 기억이 잘못된 줄 알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자신의 작품이 왜 세영의 것으로 됐겠는가?그녀는 한 달 넘은 시간을 들여서야 이 작품을 설계했는데, 그동안 무수히 많은 원고를 쓰레기통에 버렸다.아직 이 일을 똑똑히 파악하지 못할 때, 세영은 재빨리 사랑을 찾아왔다. 그녀는 자신이 훔쳤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고, 단지 사랑에게 출세할 기회를 주고 싶지 않아서 그런 거라고 했다.사랑은 자신의 컴퓨터가 영문도 모른 채 해킹당한 적이 있다는 것을 떠올렸다. 그녀는 컴퓨터를 들고 수리하러 갔다가, 천신만고 끝에 디자인 원고를 되찾았다.‘아마 그때부터 강세영은 이 일을 계획하고 있었을지 몰라.’자신의 말을 믿는 사람이 전혀 없기 때문에, 사랑도 나설 방법이 없었다. 그녀도 그 어떤 유력한 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