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면 감정을 많이 발산할 수 있었다.사랑은 붉어진 눈을 천천히 들고, 태경의 차가운 두 눈을 마주했다.“사실, 나도 며칠 후에 이 일을 태경 씨에게 알려줄 생각이었어요.”그들은 모두 성인이었기에, 유치하고 충동적으로 일을 처리할 필요가 없었다.누가 뭐라 해도 아이는 죄가 없으니까. 사랑의 부주의로 작은 생명이 이 세상에 찾아왔으니, 그녀가 낳고 싶어도 태경과 상의해야 했다. 한부모 가정에서 자란 아이는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행복하지 못했다. 금전적으로 사랑은 아이에게 가장 좋은 생활을 줄 수 없었고, 감정적으로도 그녀는 아버지의 역할을 대신할 수 없었다.그렇다고 해서 꼭 태경이 아버지 역할을 하라는 것은 아니었다. 만약 그가 원하지 않는다면, 사랑은 혼자서 아이를 키울 것이다.태경은 손을 내려놓았다. 사랑은 어찌나 불쌍하게 울던지, 눈시울이 붉어졌을 뿐만 아니라, 속눈썹에는 심지어 눈물이 맺혀 있었다. 마치 큰 억울함이라도 당한 것처럼.태경은 두 손을 주머니를 넣으며, 담담하게 입을 열어 물었다.“그래서?”사랑은 그의 차분함에 이미 익숙해졌다.태경은 언제나 그랬다. 먼저 따지는 대신, 항상 먼저 어떻게 문제를 해결해야 할지부터 생각했다.사랑은 코를 훌쩍거렸다.“태경 씨가 아이의 아버지이니, 나도 당신의 의견을 듣고, 당신의 태도를 알고 싶어요.”태경은 담담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다만 눈빛은 여전히 차가웠고, 그는 싸늘하게 물었다.“내가 어떤 대답을 할지 정말 모르는 거야?”사랑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아닐 거라고 믿고 있었다. 태경은 그렇게 무정하지 않을 거라고, 이런 단순한 생각을 했던 것이다.태경의 말은 마치 칼처럼 사랑의 마음을 쿡쿡 찔렀다.사랑은 자신이 모욕을 자초한 것 같다고 느꼈다. 그녀는 억지로 몸을 받치고 벽을 짚고서야 바닥에 쓰러지지 않았다.“이건 작은 일이 아니니, 내가 생각해 봐도 소용이 없어요. 난 직접 태경 씨의 생각을 들을 거예요.”그러나 태경은 이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태도는 매
태경은 마치 호의로 사랑을 일깨워 준 선생님 같았다. 냉정하고 무정하게 그녀에게 게임 규칙을 알려주는 동시에, 또 완곡하게 사랑은 이미 두 사람 사이의 계약을 어겼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신용을 지키지 않았으니 자신은 실망을 느꼈다고.사랑은 귀가 윙윙거리며 태경이 한 말을 한참이나 소화했다.‘계약 결혼. 그래. 나와 태경은 본래 계약한 사이에 불과하지. 서로 사랑해서 결혼한 게 아니라, 내가 합작하기에 적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그랬던 거야.’숨을 천천히 들이마신 사랑은 몇 번이나 입을 열려고 시도했지만, 무슨 말을 할 수 있을지 몰랐다.태경은 그녀의 면전에서 묵묵히 담배를 피웠고, 삼킨 숨결은 담배의 떫은맛을 머금고 있었다.심씨 가문을 책임진 후, 태경은 담배를 거의 피우지 않았다. 라이터의 소리는 맑았고, 불빛은 밝았다가 또 꺼졌다.사랑이 기침을 했다. 태경은 그녀를 한 번 보더니 말없이 담배를 껐다. 그녀는 태경의 마음을 몰랐고, 또 태경의 기분을 알 수 없었다.태경은 앞으로 나아갔다. 압박감이 너무 강해서인지, 사랑은 저도 모르게 뒤로 물러났다.사랑이 후퇴하는 동작을 보며, 태경은 가볍게 웃었다. 그러나 그 미소는 무척 차가웠다.“강 비서.”사랑은 가슴이 떨리더니, 본능적으로 태경의 목소리에 두려움을 느꼈다.태경은 여전히 담담했다.“이렇게 나오면 곤란한데.”‘곤란하다고?’그러나 태경의 말투는 정말 차분하고 싸늘했다.태경 같은 사람은 아마 이 일을 알았을 때부터 이미 처리 방식을 생각했을 것이다.사랑은 침착해졌고, 태경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 하고 싶은지 직접 말해요.”태경은 입술을 깨물었다.“이 일도 내 책임이니 있으니, 감당할 건 나도 감당해야지.”사랑은 긴장한 표정으로 주먹을 움켜쥐며, 차분한 얼굴로 판결을 기다렸다.태경은 이어서 말했다. “하지만 이 아이는 확실히 내 계획을 벗어났어. 그러니 아이를 낳으면 얼마나 귀찮을지, 너도 잘 알고 있을 텐데. 아이는 애완동물이 아니야. 강
태경은 확실히 사랑에게 선택권을 주었다. 그는 가장 직접적이고 간단한 방식으로 이 일을 처리했다. 사랑이 800억의 위약금을 전혀 물 수 없다는 것을 뻔히 알고 있는데도, 이런 선택을 준 것이었다.800억은커녕 사랑은 8천만 원도 없었다.그녀는 침묵했다.그래도 민철은 인내심을 가지고 있어, 사랑에게 즉석으로 선택을 하라고 재촉하지 않았다. 잠시 후, 그는 담판하는 말투로 이전에 체결한 계약서를 그녀 앞으로 내밀었다.“강사랑 씨, 계약서에 아주 똑똑히 적혀 있습니다. 지금 강사랑 씨는 이미 계약을 위반하셨죠.”대부분의 변호사들은 엄숙해 보였지만,사랑은 눈앞의 남자가 무척 각박하다고 느꼈다. 자신을 깔보고 있었지만, 또 오만함을 잘 숨겼다. “대표님께서는 강사랑 씨를 추궁하고 싶지 않으시니, 한 걸음 물러서는 것이 쌍방에게 가장 좋은 선택이죠.”사랑은 변호사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들리지 않았고, 그저 그의 입만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그녀는 대충 알아맞힐 수 있었다. 좋은 말은 아니라는 것을.민철은 어젯밤 밤새 작성한 계약서를 꺼내 사랑 앞에 펼쳐놓았다.“한번 보세요. 이것은 대표님께서 사후에 드릴 줄 보상입니다.”사랑은 등을 꼿꼿이 세우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민철은 눈썹을 찌푸렸지만, 화를 내지 않았다.“그래도 빨리 결정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대표님은 결코 쉽게 자신의 결정을 바꾸는 분이 아니시니까요.”이어 그는 웃으며 말했다.“강사랑 씨, 아이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어요.”이것도 민철을 탓할 수 없었다. 변호사로서 그는 이런 사람을 너무 많이 봐왔다. 만약 사랑이 이 아이로 자신에게 속하지 않는 것을 쟁취하려 한다면, 결국 모든 것을 잃게 될 뿐이었다.사랑도 설명하지 않고, 계약서를 돌려주었다.“난 사인하지 않을 거예요. 그리고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나도 마음속으로 잘 알고 있고요.”태경이 원하지 않으면 그만이었다. 그녀는 스스로 아이를 키울 수 있었다. 그리고 사랑도 그가 준 양육비를 받고 싶지 않았
태경은 아주 신속하게 이 일을 처리했고, 그날 오후 바로 사랑을 위해 이튿날의 검사와 수술을 예약했다.심씨 가문 산하의 한 개인 병원이었기에, 줄을 설 필요도 없었고, 기다릴 필요도 없었다.사랑은 혼자 병원에 가서 수술받을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태경은 다음 날 모든 일을 미루고 그녀를 데리고 병원에 갔다.빨간불이 되자, 태경은 천천히 차를 멈추며 담담하게 물었다.“전에 병원에서 받은 진료 기록은 챙겼어?”사랑은 조수석에 앉아, 얼굴을 돌려 차창 밖을 조용히 바라보았다.“네.”태경은 아주 상세하게 물었다.“보고서는?”전에 사랑은 병원에 가서 받았던 검사 보고서를 전부 다 찢어버렸다.‘아마 하수도에 들어갔겠지.’사랑은 생각하며 말했다.“어디에 버렸는지는 잘 모르겠어요.”태경은 고개를 끄덕였다.“괜찮아, 오늘 다시 검사해 봐.”사랑은 무척 고분고분했다. 마치 이 일이 자신과 상관없는 것처럼.“네.”...병원에 들어서자, 사랑은 자신이 조금도 좋아하지 않는 소독수 냄새를 맡았다.사랑은 태경을 따라 산부인과에 갔는데, 복도에 환자가 거의 없었다.의사는 사랑을 사무실로 청한 다음, 그녀가 건네준 진료 기록을 받아 보았다.“아무런 문제가 없으니, 충분히 수술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사랑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의사는 태경을 바라보며, 생각을 한 후 다시 입을 열었다.“안심하셔도 됩니다. 저희는 최대한 신체 손상을 줄일 것입니다.”이것은 그래도 수술이었으니, 아무 일도 없을 리가 없었다.태경은 사랑의 뒤에 서서 태도가 담담했다.“그럼 빨리 시작하죠.”수술은 준비할 시간이 필요했고, 사랑은 병원 복도에 얌전히 앉아 있었다. 자신의 배를 가볍게 쓰다듬자, 이 순간 사랑도 이미 체념했다.‘내가 너무 단순하고 경솔했어. 하긴, 아이를 키우려면 얼마나 많은 신경을 써야 하는데. 만약 아이에게 가장 좋은 생활을 주지 못한다면, 왜 이기적으로 아이를 낳아서 고생을 시키려 하고 있어.’사랑은 멍하니 끝이 보이지 않는 복도를 바라보았
박나은은 태경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분노를 억누르며 계속 말했다.[정 교수가 병원에서 널 봤단다. 그리고 사랑이도 거기에 있다며?]태경은 본래 자신의 어머니에게 이 일을 알리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미 숨길 수 없는 이상, 그도 거짓말을 할 필요가 없었다.“맞아요.”[산부인과에 있는 거야?]“모든 걸 다 알고 계신 이상, 저에게 물어보실 필요가 더 있겠어요?”박나은은 화가 나서 미칠 지경이었다. 그녀의 아들은 어릴 때부터 자신의 생각이 있어서, 누구도 어찌할 수 없었다.그녀는 사랑이 이미 수술실로 밀려간 것을 몰랐고, 이미 기사에게 병원으로 빨리 달려가라고 했다.[사랑이 임신한 거지?]태경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박나은은 생각할수록 자신의 예감이 맞는 것 같았다. 며칠 전에 사랑이 본가에서 밥을 먹다가 토할 뻔했다. 그녀는 매우 기뻤고, 두 사람이 일찍 아이를 가질 수 있기를 바랐다.[넌 이렇게 큰 일을 왜 나한테 말 안 했어? 남이 알려줘야 나도 너희들이 오늘 병원에 간 것을 알았어.]박나은은 잔소리를 금치 못했다.[임신했으면 사랑더러 출근하지 말라고 해. 너도 회사 대표님인데, 다른 비서를 구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고 왜 자꾸 사랑을 들볶는 거야?]태경은 어머니의 흥을 깨지 않고 조용히 듣고 있었다.박나은은 이상함을 조금도 눈치채지 못했다.[너희 두 사람의 아이라면 얼마나 예쁠까. 그때 네 할아버지가 보신다면, 틀림없이 엄청 좋아하실 거야. 너희들도 진작에 아이를 가졌어야 했는데, 그래도 지금은 아직 늦지 않았어.][나 곧 병원에 도착할 거니까, 만나서 다시 얘기하자. 처음으로 아버지가 된 것이니, 네가 모르는 일이 너무 많지.]그러나 태경은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전화를 끊자, 간호사가 수술실 문을 열었다.태경은 간호사의 장갑에 피가 묻은 것을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이미 끝났어요?”간호사는 황급히 나와서 무언가를 챙기더니 또 황급히 들어갔다.“아직이에요.”박나은은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곧장 5층으로
병실 안의 통곡소리는 가슴이 찢어지는 것만 같았고, 깊은 곳에 억눌린 슬픔이 조금씩 뚫고 나왔다.사랑은 겉으로 보기처럼 아무렇지 않은 게 아니었다. 단지 태경 앞에서 이렇게 불쌍하게 울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태경은 몸이 약간 굳어졌다. 그는 억눌린 울음소리를 들으며 눈가에 점차 핏발이 섰다.울음소리가 점점 멈추자, 태경은 다시 들어왔고, 호텔에서 배달해 온 점심을 책상에 올려놓았다.“일단 뭐 좀 먹어.”사랑의 목소리는 이미 쉬었다. 고개를 들자, 눈은 방금 전보다 더 부어 있었다. 그녀의 손등에는 주사가 꽂혔는데, 여전히 링거를 맞고 있었다.아무튼 무척 야위었다.태경은 작은 탁자를 받쳐 주었다.“내가 먹여줄게.”사랑은 더 이상 태경의 호의를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 고개를 숙였다. 식은땀에 젖은 머리카락은 볼에 조용히 매달려 있었다.“아니에요.”그녀는 손을 내밀었지만, 태경은 기회를 주지 않았다. 그는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입 벌려.”사랑의 속눈썹에는 여전히 눈물이 맺혔는데, 가볍게 떨고 있었다. 잠시 머뭇거리자, 그녀는 감각이 없는 사람처럼 천천히 입을 벌렸다.태경은 한 숟가락 한 숟가락 먹여주었고, 사랑은 아무런 맛도 보지 못했다.사실 지금 사랑은 배가 고프지 않았다. 방금 그렇게 말한 건 단지 태경을 내쫓고 싶었던 거였다.점심을 먹은 후, 사랑이 먼저 말했다.“링거 다 맞으면 집에 가요. 나 병원이 싫거든요.”병원의 냄새, 일어난 일, 그녀가 좋아하는 게 하나도 없었다.태경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좀 괜찮아?”사랑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집에 가고 싶어요.”“좋아.”얼마 지나지 않아, 간호사가 와서 주사를 뽑아주었다.아직 환자복을 입고 있던 사랑은 배의 통증을 참으며 천천히 침대에서 내려오려 했다. 태경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녀를 안았는데, 사랑은 멍하니 태경을 바라보며 거부감을 느꼈다.“나 혼자서도 갈 수 있어요.”남자는 안색이 어두웠다. “이럴 때 너무 무리하지 마.”태경은 병실에서 나와
태경은 분명히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그는 거짓말하는 것조차도 자신의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사랑은 태경이 자신을 좋아한다는 말을 듣고, 여전히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러나 다시 태경의 표정을 살펴보니, 그녀는 이것도 단지 태경이 한 농담에 불과하다는 것을 발견했다.사랑은 점차 평온해졌다. 금장 수술을 마쳤기에, 힘이 다 빠졌다.“난 긴 휴가가 필요 없어요.”그녀는 지금 사직하고 냉정을 되찾고 싶을 뿐, 계속 태경의 곁에 있으며 평생 불가능한 환상에 빠지고 싶지 않았다.태경은 오늘 유난히 인내심을 가졌다.“3개월이 길다고 생각하면 그냥 한 달 줄게. 다만 상사인 내가 또 널 괴롭힌다고 하지 마.”사랑은 태경이 왜 자신을 놔주려 하지 않는지 몰랐다. 그녀는 비서로서, 태경에게 별로 중요한 사람이 아니었다. 있어도 좋고 없어도 되며, 언제든지 대체할 사람을 찾을 수 있었다.“난...”“강 비서, 자신감 좀 가져. 아무나 내 비서로 될 수 있는 게 아니거든.”사랑은 자신의 고집이 세다고 느꼈지만, 태경이 그녀보다 더 집착하고 있는 것 같았다. 결정한 일이라면 죽어도 마음을 바꾸지 않았다.설령 지금의 사랑이 이미 이렇게 불쌍하더라도, 입을 열어 부탁해도 태경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태경 씨의 여자들을 처리하는 게 시간을 낭비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그럼 내가 월급을 안 준 거야 뭐야?” 태경도 더 이상 사랑을 화나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웃음을 머금으며 화가 난 사랑을 힐끗 보았는데,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좀 풀렸다. “강 비서, 이제야 내가 얼마나 악랄한 상사인지를 깨달은 거야?”사랑은 일어서려 했고, 상처가 당기는 바람에 무척 고통스러웠다.태경은 웃음을 거두며 사랑을 부축했다.“함부로 움직이지 마.”사랑은 그의 손을 뿌리쳤다.“난 괜찮아요.”태경도 굳이 사랑을 부축하려 하지 않았다. 그는 담담하게 사랑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그만둘 생각은 더 이상 하지 마. 이럴 때 괜히 문제 만들지 말고.”사랑은 더 이상 참
사랑은 화제를 돌렸다. 다빈도 계속 추궁하지 않고, 태경의 험담을 하기 시작했다.[남자들은 정말 감정이 없는 건가? 한 여자랑 같이 자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것 같아.]다른 건 잘 모르지만, 태경은 확실히 그랬다. 생리적으로 만족을 느끼면, 언제나 그 차분하고 도도한 사람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사랑은 자신을 위로했다.“괜찮아, 나도 손해를 보지 않았어.”다빈은 마음이 아팠다.[넌 몸은 좀 괜찮아?]사랑은 그녀를 걱정시키고 싶지 않았다.“그럼. 그냥 좀 피곤할 뿐이야. 이틀 쉬면 괜찮아질 거야.”다빈은 또 전화로 세영과 태경을 한바탕 욕했고, 목이 탈 때 결론을 내렸다.[남자는 필요 없어. 특히 감정이 없는 남자는 더 멀리 꺼지라고 해.]사랑은 이 말에 매우 찬성했다.“네 말이 맞아.”다빈은 사랑이 태경의 곁에서 계속 일해야 한다는 생각에, 그녀를 위해 불평했다.[너 계속 그 사람의 곁에 있을 거야?]사랑은 잠시 침묵을 지키며 말했다.“나도 어쩔 수 없어.”태경이 매달 남청연의 병원비를 지불했기 때문이다.다빈도 사랑의 상황을 알고 있었는데, 그냥 그녀가 너무 고생하는 것 같았다.태경 같은 남자를 사랑하는 건 이상하지 않지만, 그럴 가치가 없었다.[내일 너 보러 갈게.]“그래.”...잠시 회사에 들렀다가 집에 도착한 태경은 보신탕을 들고 내려오는 윤미숙을 보았다. 거의 먹지 않은 음식을 보며, 그는 미간을 찌푸렸고, 말투가 매우 냉담했다.“그 사람 좀 먹었어요?”윤미숙은 말이 없는 태경을 무척 두려워했는데,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일수록 더욱 무서웠다.그녀도 감히 거짓말을 하지 못했다.“아가씨는 보신탕만 절반 마신 것 같아요.”태경은 양복 외투를 소파에 걸치며 차가운 눈빛으로 윤미숙을 바라보았다.“그 사람이 자신의 몸을 신경 쓰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이모님도 그렇게 할 작정인가요?”윤미숙은 태경이 화났다는 것을 알아차렸고. 전전긍긍하며 황급히 설명했다.“아가씨께서 입맛이 없어셔서요. 저희더러 가져가
사랑은 몸이 뻣뻣해졌다. 지호가 아직도 이 일을 기억하고 있을 줄이야.사람은 모두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을 때가 있었다. 사랑도 그때 궁지에 몰리지 않았다면, 나이트클럽에 가서 술을 팔지도 않았을 것이다.태경은 별로 신경 안 쓰는 것 같았다.그도 사랑이 왜 에스타나이트에 가서 아르바이트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남청연의 병원비는 결코 한 학생이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태경은 사랑이 그녀의 아버지에 대해 말하는 것을 들어 본 적이 없었다. ‘만약 무슨 말 못할 사연이 있는 게 아니라면, 이미 돌아가셨을 수도 있겠군.’지호는 태경이 무관심한 것을 보고 재미없다고 느꼈다.‘하긴, 신경 쓰지도 않고, 좋아하지도 않았으니 강사랑에게 무슨 감정을 가지겠어.’지호의 머리는 또 아프기 시작했다. 사실 그는 이미 오랫동안 참았다. 매번 사랑의 얼굴을 볼 때마다, 지호는 머리가 따끔거렸고, 마치 바늘이 관자놀이를 호되게 꿰뚫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는 또 그렇게 빨리 사랑의 얼굴에서 눈길을 떼려 하지 않았다.지호는 도대체 어디에 문제가 생겼는지 몰랐다. 도대체 자신의 병 때문인지, 아니면 사랑이 그렇게 얄미운 것인지. 그의 피부는 눈처럼 창백했고,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그럼 너희들 방해하지 않을게.”‘더 이상 있을 순 없어.’몸을 돌려 떠나자, 애써 참았던 통증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지호는 발걸음을 비틀거렸고, 옆의 난간을 짚어서야 겨우 넘어지지 않았다. 동시에 그는 숨을 깊게 쉬었다.이 순간, 전기 충격을 받은 것 같은 통증은 그제야 서서히 사라졌다.지호는 차가운 표정을 지으며, 눈빛의 살의는 전례 없이 짙어졌다. 그는 마치 악마처럼 이를 갈며 생각했다. ‘언젠가는 강사랑을 죽일 거야. 그 사람이 죽기만 하면, 난 더 이상 그 여자를 볼 리가 없고, 이렇게 고통스럽지도 않을 거야.지호는 일찍 연회장을 나섰다. 그는 차에 앉아 미간을 비비다가, 갑자기 입을 열고 앞에 앉은 기사에게 물었다.“내가 예전에 병원에 있을 때, 어떤 치료를 받은
지호의 말은 모욕으로 가득 차 있었다. 비록 몇 마디 말을 하지 않았지만, 이미 사랑을 향한 경멸이 넘쳤다.태경은 담담하게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왜 내 일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거지?”지호는 평소에 남의 일을 알아보지 않았고, 그럴 흥미도 없었다. 특히 최근 몇 년간 가족사업을 인수하면서, 그 깨끗하지 못한 업무를 처리하느라 바빠서 이런 일들을 신경 쓸 틈도 없었다.지호의 안색은 차가웠고, 짙은 동공은 그 속을 헤아릴 수 없었다.“궁금해서.”태경은 코웃음을 쳤다.“이제 세영을 말고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는 거야? 네가?”지호가 세영을 좋아하는 것은 비밀이 아니었다. 오래전에 이미 누군가 알아차린 일이었고, 그때 태경도 오만하고 도도한 소년이었으니, 이 일에 조금도 개의치 않는 것은 불가능했다.다만 그는 승부욕이 강했기에 지호에게 한 번 고백해 보라고 했다. 누가 세영의 마음을 얻느냐에 따라 진정한 승자가 결정된다고 말하며.태경은 지호가 과거에 대해 말하는 것을 어렴풋이 들었다. 그는 세영과 죽마고우였으며, 같은 골목에서 자란 이웃이었다고 했다.오랜 치료로 지호는 그 기억이 희미해졌지만, 그때의 감정만큼은 변하지 않았을 것이다.지호는 태경이 허리를 감싸고 있는 여자를 바라보며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았다. 그의 목소리는 듣기에도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동창이었으니 당연히 궁금하지.”태경은 사랑과 지호가 동창이었다는 것을 전혀 생각하지 못한 듯 무척 의아해했다. 물론 태경도 사랑과 동창이었다.그러나 태경은 이에 대해 아무런 인상도 없어, 잠시 침묵했다.“중학교? 고등학교? 아니면 대학?”지호는 무슨 재미있는 일이 생각났는지, 입가에 미소가 천천히 나타났다. 그는 수려하고 정교하게 생겼으며, 뚜렷한 윤곽은 마치 조각한 것처럼 아름다웠다. 웃으면 미간의 포악한 기운도 사라져 무척 매혹적이었다.그는 쯧쯧 소리를 내며 말했다. “네가 강사랑에게 물어봐.”걸레라 말하고 싶었지만, 지호는 또 억지로 삼켰다.지호는 동정심
사랑은 태경의 뜻을 알 수 있었다.“사랑 따위 없어.”이것은 태경이 준 충고였다.두 사람 사이에 호흡이 생겼는지,사랑은 자신이 지금 정서를 잘 숨길 수 있는 배우로 된 것 같다고 느꼈다. 심장 전체가 유리 조각으로 뒤덮여 따끔거려도, 겉으로는 멀쩡한 사람 행세할 수 있었다.그녀는 억지로 태경에게 웃었고, 조금도 자신의 슬픈 감정을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농담이에요.”말하면서 사랑은 손을 놓았다.“대표님께서 듣고 싶지 않으시다면, 앞으로 저도 이렇게 말하지 않을게요.”태경은 오늘 밤 사랑이 이상하다고 느꼈지만, 또 어디가 이상한지 알 수 없었다. 생각에 잠기다, 그는 사랑의 너무 요염한 미소를 보며 입을 열었다.“강 비서 오늘 밤 기분이 좋은가 봐?”‘이렇게 환하게 웃다니. 하지만 너무 가식적이야.’태경은 사랑이 가식적인 미소를 짓는 것을 싫어했다. 그런 미소는 항상 뻣뻣하고 불편해 보였다.“괜찮은 편이에요.”“하지만 괜찮아 보이지 않는데.”“아. 제가 디자인과 관련된 것을 좋아해서 그런가 봐요.”태경은 사랑이 전에 디자인과 관련된 주문을 받은 적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그러나 하나는 홈 디자인이었고, 다른 하나는 주얼리 디자인이었다. 어떻게 봐도 관계가 없었다.사랑을 처음 만났을 때, 그녀는 아직 직장을 구하지 못한 대학생이었다. 사랑은 매일 힘들게 뛰어다니며 여러 회사로 면접을 보러 갔다. 약간 초췌했지만 또 의욕이 넘쳤다.마치 바위 틈에서 왕성하게 자라는 잡초와 같았다.바람을 맞으며 흔들리니, 한없이 연약해 보이고 바로 끊어질 것 같지만, 또 생각보다 완고하고 강인했다.“주얼리 디자인과 홈 디자인이 같은 거야?”태경이 웃으며 물었다.“확실히 다르지만, 홈 디자이너는 주얼리를 좋아하면 안 되나요? 대부분 여자들은 주얼리를 좋아하잖아요.”태경은 사랑이 평소 주얼리에 관심을 가진 적을 보지 못했다. 박나은은 사랑을 엄청 좋아했는데, 때로는 친아들인 그보다도 더 많은 사랑을 받았다.약혼하자마자, 박나은은 사랑에게
태경은 똑똑한 사랑이 무척 마음에 들었고, 가끔 애교를 부리는 그녀가 좋았다.그는 눈앞의 정교한 얼굴을 바라보았다. 간드러진 웃음은 진심이 아닌 짜낸 웃음이었지만, 이곳의 많은 사람들보다 훨씬 아름다웠다.“앞으로 그 사람들 건드리지 마.”태경은 다른 말을 하지 않고 이 한마디만 했다.사랑은 바늘이 가슴을 찌르는 것 같았지만, 이 정도 따끔함은 무시할 수 있었다. 그녀는 점차 웃음을 거두며, 진심인 듯 농담인 듯 입을 열었다.“제가 어찌 감히 엄 여사님을 건드리겠어요? 그런데 기어코 저를 귀찮게 하려 하시잖아요.”태경은 눈썹을 치켜세웠다.“강 비서는 피할 줄도 모르는 거야?”사랑이 말했다.“제가 눈에 거슬리니까, 저를 해치려는 거잖아요. 그럼 어떡해도 피할 수 없죠.”사랑은 다정하게 태경의 팔을 안으며 다시 웃었다.“차라리 대표님이 가셔서 엄 여사님에게 직접 말씀드려요. 저와 대표님은 그저 계약 부부일 뿐이란 것을. 그럼 엄 여사님도 저를 봐줄지도 몰라요.”말을 끝내자, 태경은 줄곧 침묵에 잠겼다.엄수인이 그렇게 유치하고 지루한 사람이 아니라서, 사랑을 괴롭힐 리가 없다고 생각했는지, 단지 이 일을 마음에 두지 않았는지,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사랑은 오늘 기분이 정말 좋지 않았기 때문에, 태경의 앞에서 말할 때, 더 이상 주의하지 않았다. 물론 누구에게 불쾌감을 주고 싶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만약 엄 여사님이 오늘 절 봐주지 않는다면, 대표님께선 절 도와줄 건가요?”태경은 눈썹을 치켜올렸다.“엄 여사님과 내가 무슨 관계가 있지?”“강세영 씨가 슬퍼할까 봐 걱정하는 거잖아요.”태경은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사랑의 턱을 들어 올렸다.“넌 항상 세영과 비교하길 좋아하더라.”그가 이렇게 말하자, 사랑은 그제야 자신이 늘 세영과 비교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남편이 바람난 조강지처도 아니고, 이러면 안 돼, 강사랑. 난 이런 사람으로 되고 싶지 않아.’사랑은 더 이상 웃지 않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태경은 무척
사랑은 태경을 아랑곳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날카로운 시선으로 자신을 쳐다봐도, 그녀는 여전히 태연자약했다.사랑은 담담하게 엄수인을 바라보았다. 마흔에 가까운 여자는 마치 30대 초반처럼 보였다. 얼굴이 놀라울 정도로 예쁘지는 않았지만, 기질은 무척 부드러웠고, 사람들로 하여금 경계를 풀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엄수인을 처음 만났을 때, 사랑은 병원에 있었고, 병실 안에는 생사를 알 수 없는 남청연이 누워 있었다.엄수인은 문 밖에서 유리창을 통해 안을 들여다보며 가식적인 태도를 보였다.“어머 불쌍해라.”남씨 가문의 사람들은 거의 다 죽었고, 사랑의 삼촌도 경제 범죄로 감옥에 들어갔다. 강남복은 그런 사랑을 C시로 데리고 갔다.그녀는 자신의 아버지가 진심으로 원해서 그런 게 아니라, 남들 손가락질을 받을까 봐 억지로 자신을 키웠단 것을 잘 알고 있었다.엄수인은 강남복 앞에서 사랑을 비난하지 않았다. 다만 뒤에서 은근히 강남복에게 이렇게 말할 뿐이었다.“사랑이 오늘 또 울었어. 아마도 가족이 그리운 것 같아.’사랑은 줄곧 남씨 가문의 사람들과 아주 친했다.강남복은 양심에 찔리는 일을 해서, 그 사람들을 가장 싫어했고, 이름조차 듣고 싶지 않았다.엄수인이 아무렇게 한 말 때문에, 사랑은 강남복에게 뺨을 두 대나 맞았다.“네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는 이미 죽었고, 네 삼촌도 이미 감옥에 들어갔어. 정말 그 사람들이 그렇게 보고 싶으면, 너도 그냥 죽어. 내 앞에 와서 재수 없게 굴지 말고.”사랑도 그때 겨우 열 몇 살이었고, 나이가 아직 어렸다. 그녀는 강남복 앞에서 울지도 않고, 아픔을 참으며 다시는 안 그러겠다고 했다.울고 보채고, 또 강남복과 말다툼하면 엄수인의 함정에 걸려들 뿐이었다.그때 사랑은 강남복이 매달 주는 생활비를 받아서 남청연의 병원비를 내야 했다.그녀는 전에 엄수인에게 고개를 숙인 적이 없었기에, 지금은 더욱 그럴 리가 없었다. 사랑은 당황하지 않고 오히려 웃었다.“엄 여사님, 나이가 드셔서 치매라도 걸리셨나 봐요? 절
사랑은 추위를 좀 타서 숄을 걸친 다음, 사람이 적은 구석에 가서 앉으며, 종업원에게 따뜻한 물 한 잔을 달라고 했다.경매장에는 화려한 등불이 켜져 있었고, 무척 눈이 부셨다.사랑은 C시에서 아주 잘나가는 거물들을 많이 보았다.‘강세영도 대단하네, 이런 분들을 초대했다니.’사실 사랑은 처음에 주얼리 디자인을 전공했는데, 대학교 1학년 여름방학 때, 선생님을 따라 각 대회에 참가했다. 세영은 그녀와 같은 학교, 같은 전공을 선택했고, 그저 학급과 교수님이 달랐다.매년의 디자인 대회는 신인들이 얼굴을 내밀 수 있는 곳이었다. 그해 사랑은 자신의 작품을 제출하기 전에, 교수님이 보낸 최고의 디자인 대상을 보았다. 그 그림은 그녀의 컴퓨터에 있는 내용과 거의 똑같았다.그것을 본 순간, 사랑은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교수님은 세영이 디자인상을 받은 작품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으며, 심지어 그녀를 천재라고 했다.사랑은 그 그림을 보고 머릿속이 좀 혼란스러웠다.“이게 강세영의 작품이라고요?”교수님은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다.“그래, 너도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않니? 특히 생기가 있어. 이미 오랫동안 이렇게 대단한 신인이 나타난 적이 없는데.”사랑은 자신의 기억이 잘못된 줄 알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자신의 작품이 왜 세영의 것으로 됐겠는가?그녀는 한 달 넘은 시간을 들여서야 이 작품을 설계했는데, 그동안 무수히 많은 원고를 쓰레기통에 버렸다.아직 어떻게 된 일인지 몰랐을 때, 세영은 재빨리 사랑을 찾아왔다. 그녀는 자신이 훔쳤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고, 단지 사랑에게 출세할 기회를 주고 싶지 않아서 그런 거라고 했다.사랑은 자신의 컴퓨터가 영문도 모른 채 해킹당한 적이 있다는 것을 떠올렸다. 그녀는 컴퓨터를 들고 수리하러 갔다가, 천신만고 끝에 디자인 원고를 되찾았다.‘아마 그때부터 강세영은 이 일을 계획하고 있었을지 몰라.’자신의 말을 믿어주는 사람이 전혀 없었기에, 사랑도 나설 방법이 없었다. 그녀는 유력한 증거조차 내놓을
병원의 간병인은 사랑의 엄격한 말투에 깜짝 놀랐다.평소의 사랑은 줄곧 얌전하고 부드러워, 여태껏 이렇게 큰 소리로 자신과 말을 한 적이 없었다.간병인은 전전긍긍했다.[꽃을 들고 오셨기에 나쁜 사람 같지 않았어요. 게다가 또 어머님의 옛 친구라고 말씀하셔서, 들어오시라고 했어요.]사랑은 이 말에 화가 나서 머리가 좀 어지러웠다. 그녀는 보기 드물게 차가운 얼굴을 하며 엄숙하게 경고했다.“앞으로 그 여자 또 온다면, 그냥 떠나라고 해요.”간병인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네, 알겠어요.]사랑은 전화를 끊어도 화가 가시지 않았다. 그리고 겨우 냉정함을 유지하며, 엄수인이 오늘 이렇게 한 목적이 무엇인지 생각하기 시작했다.‘엄수인은 이유 없이 우리 어머니를 찾으러 가지 않았을 거야. 그 여자는 무슨 일을 하든 다 목적이 있었어. 그때 그렇게 오랫동안 참은 것을 보면, 엄청 교활하고 똑똑한 사람이란 걸 알 수 있어.’강남복이 이렇게 쉽게 남씨 가문의 모든 재산을 차지한 것도 다 엄수인이 뒤에서 도와줬기 때문이다.태경은 사랑의 안색이 좋지 않은 것을 발견했다.“병원에 무슨 일 생겼어?”사랑은 화를 참으면서 태경에게 화풀이를 하지 않았다.“아니에요.”태경은 여전히 사랑을 챙겨주고 싶었다. 동정이 아니라, 그동안 함께 지내면서 사랑이 홀로 C시에 와서 학업을 마치고, 일자리를 찾는 게 확실히 쉽지 않다고 느꼈다.‘강 비서는 원래 N시의 사람인 것 같은데. 강 비서 어머니도 N시의 사람이었지.’C시에 배경도, 가족도 없었으니, 한 걸음 한 걸음 무척 힘들게 나아갔다.태경은 사랑을 그윽하게 쳐다보았다.“도움이 필요하면 나한테 솔직히 말해.”사랑도 사양하지 않았다.“알았어요.”사랑은 눈을 들어 태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엄수인과 맞설 때, 내가 이긴 적이 없는 건 아니야. 엄수인은 심태경을 자신의 사위로 삼고 싶어 할 텐데.’심씨 가문은 강씨 가문과는 달리 명실상부한 명문가였다. 태경의 아버지는 정치인이었고, 작은아버지도 권세가 높은
태경은 들으면서 기분이 매우 언짢았다. ‘난 쓸데없는 말을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말을 많이 하면, 내가 엄청 신경 쓰이는 것 같잖아.’그는 잠시 침묵하더니 차가운 미소가 순식간에 사라졌다.“그때 가도 정말 이렇게 소탈하게 생각할 수 있길 바라.”태경은 남자를 잘못 만나 고생한 여자들을 많이 보아왔다.그에게는 멍청한 사촌 여동생이 있었다. 재벌가의 아가씨였던 그녀는 가난한 남자와 사랑에 빠졌다. 몇 년 동안 끈질기게 매달린 끝에 겨우 그 남자를 손에 넣었고, 각 방면으로 잘 챙겨주었지만, 결국 그 남자는 사촌 여동생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돈을 충분히 모은 후에 그녀를 차버렸다.사촌 여동생은 울면서 태경을 찾아와 애원했다. 이를 갈며 그 남자에게 평생 잊지 못할 교훈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태경은 그녀의 부탁에 짜증이 났지만 도와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그 남자를 어떻게 하기도 전에, 사촌 여동생은 마음이 약해져 얼른 멈추라고 했다.당시 태경은 무척 냉담하게 물었다.“대체 어쩌자는 거야?”사촌 여동생은 울면서 말했다. “이렇게 맞는 것을 보니까, 내 마음이 아프단 말이에요.”태경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마음이 왜 아파?”만약 자신의 아내가 이렇게 그를 대한다면, 태경은 절대로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날 놀리고, 내 감정을 짓밟는다면, 죽어도 싸지.’태경의 사촌 여동생도 그리 착한 사람이 아니었다. 당하면 반드시 갚아줘야 했고, 속도 좁아서 의심이 많았다. 그러나 어려서부터 남에게 거의 당한 적이 없던 재벌 집 아가씨가 남자에게 버림받는 것을 참을 수 있었다니.정신을 차리자, 태경은 사랑이 말하는 것을 들었다.“그럴게요.”태경은 사랑과 오랫동안 함께 일하면서, 나름 그녀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 부드럽지만 자존심이 있었고, 강경하지만 상대방으로 하여금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게 했다. 그리고 항상 약속을 잘 지켰다.그러나 태경은 여전히 사랑을 완전히 믿을 수 없었다.”그때 가서 돈도 낭비하고, 시간도 낭비했지만 괜히 마음
이혼을 하든 말든 사랑은 상관없었다. 지금 이혼하나, 2년 후에 이혼하나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을 것 같았다.물론 그렇게 되면 사랑은 다른 방법을 찾아 남청연의 병원비를 벌어야 했다. 다른 모든 것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을 터였다.사랑은 곰곰이 생각한 끝에, 태경에게 사실대로 말했다.“만약 이혼을 원하신다면, 전 상관없어요.”그녀는 언제든 계약을 앞당겨 종료하는 것에 협조할 수 있었다. 태경이 계약서의 규정에 따라 상응하는 위약금을 배상하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사랑은 자신이 말을 마치고 난 후, 태경의 표정이 더욱 어두워진 것을 발견했다.태경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그의 표정은 무척 차가웠다.태경의 변덕스러운 기분을 줄곧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던 사랑은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 다시 완곡하게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물론, 앞당겨 종료한다면, 나에도 배상금이 있는 거 맞죠?”사랑은 행여나 태경이 화가 나서 약속을 번복할 봐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녀는 이제야 태경이 왜 감정이 없는 거래를 하기 좋아하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확실히 간단하고 편리했다. 앞으로도 번거로움이 없을 것이고, 그저 충분한 돈만 있으면 된다.태경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사랑을 쳐다보더니 냉소를 지었다.“강 비서, 나한테서 배상금을 충분히 받지 못한 거야?”이 말이 나온 순간, 사랑은 가슴이 아팠다. 정말 각박하고 매정한 남자였다.태경은 인정사정 없이 말했고, 사랑은 시간이 좀 걸려서야 다시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녀는 좀 초라해 보였는데, 생각해 보면 태경의 말도 틀리지 않았다.‘난 이미 심태경에게서 적지 않은 배상금을 받은 것 같아. 아이를 지우면서, 천만 원 넘은 돈을 받았잖아.’사랑은 마음이 이미 마비되어 더 이상 통증을 느끼지 못했지만 안색이 별로 좋지 않았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사람은 욕심이 많은 법이죠. 돈이 많다고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태경은 손으로 사랑의 턱을 잡으며, 좁고 긴 눈을 살짝 들어올렸다. 그리고 담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