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주환은 싸늘한 웃음소리를 냈다. 마치 곧 폭발할 사자처럼 말이다.“저 자식이 네 남자친구라고? 네가 누구 여자인지 그 새로 잊은 거야? 감히 저 자식을 여기까지 데려와?!”강주환은 당장이라도 윤성아를 죽여 버릴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설마 내가 산 집에서 다른 남자랑 잘 생각인가?”“네.”“뭐?”강주환은 진짜로 살인을 저지를 것처럼 무시무시한 눈빛을 지었다. 그러자 천우혁이 이때다 싶어서 윤성아를 자신의 쪽으로 끌어당기면서 말했다.“대표님, 성아 씨가 말한 대로...”천우혁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강주환이 차가운 눈빛을 보내면서 경고했다.“영주시에서 사라지고 싶다면 계속 말해. 그 소원 들어줄 테니까.”“...”“꺼져!”천우혁은 곧바로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강주환의 말에 따라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가 버렸다.강주환은 윤성아를 바라보며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봤지? 이게 바로 네가 남자친구라고 편을 드는 사람이야.”강주환은 윤성아를 끌고 집 안으로 들어가더니 힘껏 출입문에 메쳤다. 그리고 거대한 몸집으로 그녀를 완전히 가리고는 위험하게 번뜩이는 눈빛으로 내려다보면서 말했다.“꼭 이렇게 사람 심기를 건드려야 만족하지? 네가 감히 내 집에 다른 남자를 데려와? 하하, 역시 내가 그동안 너무 너그러웠지. 배부르게 잘 먹이니 아주 그냥 무서울 게 없지?”강주환은 말을 마치자마자 윤성아와 입술을 겹쳤다. 그녀를 죽여 버리고 싶은 분노를 담은 패악스럽기 그지없는 키스였다.윤성아는 힘껏 버둥거리면서 강주환을 밀어내려고 했다. 힘으로 밀려나지 않자 어깨를 꽉 깨물기도 했다. 그러자 그는 이제야 통증을 느낀 듯 뒤로 물러났다.윤성아의 이빨 사이에는 피가 묻어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차가운 눈빛으로 강주환을 바라보면서 말했다.“대표님, 제발 그만해 주세요. 이래 봤자 좋은 결과는 없을 거예요. 저희 다 피곤해질 뿐이라고요.”윤성아는 급기야 무릎까지 꿇으면서 말했다.“내연녀를 원하는 거라면 말 잘 듣는 여자를 찾으면 될 거 아니에요! 저
그녀는 손에 든 그릇을 내려놓았다.그리고는 남자의 앞으로 다가가 손을 뻗어 남자의 큰 손을 잡아 자신의 배에 올려두었다.“주환 씨, 만져봐요. 우리 아기도 이젠 4개월이 되어가고 있어요. 움직일 줄도 알아요.”그녀는 실크 소재의 야한 잠옷을 입고 있었다. 남자의 손을 들어 자신의 배 위까지 올려두었으니 분명 넘어올 거라 생각했다.강주환은 바로 미간을 찌푸렸다.뜨거운 불길에 손이라도 닿은 것처럼 바로 손을 확 빼버렸다. 그는 싸늘해진 눈빛으로 짜증이 난다는 듯이 말했다.“다시 말해줄게. 나가!”그의 한 마디에 안효주는 정말로 눈물을 흘렸다. 그녀의 눈물은 줄 끊어진 진주 팔찌와 같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그녀는 잔뜩 상처받은 눈빛으로 강주환을 보았다.“정말로 저한테 차갑게 굴어야겠어요?”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남자의 허리를 끌어안고 가슴팍에 얼굴을 비비더니 고개를 들어 올려 남자를 보았다. 솔직하고 또 간절한 마음으로 남자에게 말했다.“주환 씨, 술집에서 저랑 잔 후로 저한테 손도 안 대셨잖아요. 저도 원하는 욕구라는 게 있는 사람이에요! 우리 아이도 아빠의 사랑이 필요하고요... 그러니까 오늘 밤은 저랑 보내요, 네?”그녀는 발꿈치를 들어 남자의 목에 키스하려 했다. 그러나 남자는 무정하게 그녀를 밀쳐냈다.강주환은 싸늘해진 두 눈으로 아무런 감정조차 느껴지지 않는 표정을 지으며 안효주를 보았다.“술집 그날도. 정말 너냐?”“안효주, 네 말이 사실이길 바라야 할 거야. 네 배 속에 있는 애가 진짜 내 애이길 바라야 할 거라고. 만약 아니라면...”강주환은 입꼬리를 씩 올리더니 차갑게 피식 웃어버렸다.그의 칠흑 같은 눈동자는 마치 모든 걸 꿰뚫어 보고 있는 듯했다. 그는 싸늘한 눈빛으로 안효주를 보았다.“너도 알겠지.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될지 말이야.”“...”안효주는 차마 입을 열 수가 없었다. 그녀는 마음이 초조해졌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남자의 표정에 겁에 질리게 되었다. 하지만 그녀는 표정 관리를 했고 여전히 상처받은 듯
그는 윤성아에게 말했다.“천우혁이라는 놈과 떨어져! 넌 평생 나한테서 도망칠 수 없어. 넌 내 거야!”창밖에서는 폭우가 내리고 있었고 전혀 그칠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동이 틀 무렵, 강주환은 지쳐버린 윤성아를 안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그는 부드러운 손길로 천천히 그녀를 씻겨주었고 그녀를 안은 채 볼에 살짝 뽀뽀했다.윤성아는 몸을 뒤척이더니 이내 등을 돌렸다.강주환은 꿀이 떨어지는 눈길로 입꼬리를 올리더니 이내 뒤에서 그녀를 꽉 끌어안았다. 그는 턱을 그녀의 머리 위로 괴고 있었고 숨을 쉬는 순간마다 좋은 향기를 느낄 수 있었다.“난 이미 너한테 물들었고, 네가 내 곁에 있는 게 습관이 되었어. 네가 없으면 난 어떻게 살아?”“그만 고집부리고 그냥 얌전히 내 곁에 있어. 알았어?”...“쿠쿵!”번개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빛은 마치 이 어두운 밤을 찢어버리기라도 하듯 내리쳤고 비는 더욱 세차게 내리기 시작했다.엠파이어 가든 아래.안효주는 강주환을 몰래 미행했다.번개가 치는 순간에도 그녀는 그 자리에 우뚝 서 있었고 잠깐 비춘 그녀의 얼굴은 한 맺힌 귀신보다 더 무서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녀는 두 손에 힘을 잔뜩 쥐고 있었고 손톱이 손바닥에 박혀 선혈이 살짝 새어 나오고 있었다. 그녀는 처절한 목소리로 독기 서린 맹세를 하였다.“천박한 년, 내가 반드시 죽여버릴 거야!”시간은 흘러 안효주는 윤성아를 어느 레스토랑으로 불렀다.2층 프라이빗 룸 안. 안효주는 표독스러운 눈빛으로 윤성아를 노려보고 있었다.“말해요. 어떻게 하면 주환 씨 곁에서 떨어질 거죠?”윤성아는 차가운 얼굴로 담담하게 말했다.“이건 직접 대표님한테 가서 물으셔야 할 것 같네요.”“하...!”안효주는 분노가 극에 달했다.“그래서 지금 나랑 해보자는 거예요? 당신은 하마터면 우리 어머님까지 돌아가시게 했어요! 그것도 모자라 저와 주환 씨 사이를 멀어지게 만들고 아이 아빠를 빼앗아 갈 생각인가요?”안효주는 일방적으로 윤성아에게 화를 내고 있었다.그녀는 윤성
안효주는 원망 가득한 눈길로 마치 원수라도 보듯, 당장이라도 윤성아를 죽일 듯한 눈빛으로 보았다.“만약 제 아이한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절대 당신을 용서하지 않을 거예요!”윤성아는 미간을 찌푸렸다.이때, 주위에 몰려든 사람들은 저마다 임산부를 계단에서 밀어버린 독한 여자라며 윤성아를 비난하고 있었다. 그랬다는 건, 정말로 죽이려고 밀었다는 것이 아니겠는가?사람 중 누군가가 이미 119를 불렀고 빠르게 의사한테 말을 전했다.“여기 누군가가 임산부를 계단에서 밀어서 피가 엄청 많이 나고 있어요.”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윤성아를 빙 둘러싸며 행여나 윤성아가 도망이라도 갈까 막아서고 있었다. 그중 한 사람이 먼저 입을 열었다.“여러분, 이 여자를 잘 감시해줘요. 제가 지금 바로 경찰에 신고할게요!”안효주는 이 모든 상황이 마음에 들었다. 그녀는 아주 만족한 듯 살짝 미소를 짓다가 이내 빠르게 다시 표정을 지웠다.그녀의 안색은 창백하기 그지없었고 계속 피해자 흉내를 내면서 사람들을 향해 울부짖었다.“도와주세요. 아이를 꼭 살려야 해요. 전 아이를 이렇게 잃을 수 없어요...”너무나 큰 고통에 출혈이 계속 이어지니 안효주는 눈앞이 점차 캄캄해졌고 그대로 정신을 잃고 말았다. 구급차가 도착하고 마음씨 좋은 사람이 안효주와 함께 윤성아를 데리고 병원으로 갔다.강주환도 병원으로 도착했고 마침 경찰도 오게 되었다. 경찰은 목격자와 윤성아에게 다가가 정황을 물었고 옆에 있던 강주환도 알게 되었다.그는 칠흑 같은 눈동자로 윤성아를 빤히 보다가 살짝 그녀를 걱정하는 어투로 물었다.“네가 밀었어?”윤성아는 고개를 저었다.“안효주 씨 스스로 뒤로 몸을 기울면서 계단으로 떨어진 거예요!”“그래.”뜻밖에도 그는 바로 그녀의 말을 믿어주었다.강주환은 안효주의 약혼자이기도 했음에도 그는 별다른 말도 하지 않았고 그녀에게 따져 묻지도 않았다. 안효주를 병원까지 데리고 온 목격자와 사건을 조사하러 온 경찰도 더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그들을 보낸 뒤에 강주
그녀의 칠흑 같은 두 눈동자는 아주 맑았고 깨끗하였지만 아무런 감정도 읽을 수 없었다.“걱정하지 마세요. 저와 대표님은 이미 끝난 사이에요.”고은희는 윤성아를 보며 말했다.“그게 사실이니?”“네, 사실이에요.”윤성아가 계속 말을 이었다.“저와 대표님은 이미 아무런 관계도 없는 사이에요.”고은희는 그녀의 말을 믿지 않았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강주환을 보며 말했다.“네가 말해 보아라. 정말이니?”강주환은 고은희가 자신의 앞에서 죽는 모습을 차마 볼 수가 없었기에 하는 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네, 성아 말이 맞아요.”윤성아는 그 자리 그대로 서서 고은희를 향해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하며 사과했다.“정말 죄송했습니다. 그동안 저 때문에 많이 스트레스받으셨겠지만, 앞으로 더는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윤성아는 바로 자리를 떠나버렸다. 강주환은 떠나가는 그녀의 뒷모습만 빤히 보았다.“뭘 아직도 보고 있어? 저런 여자랑 끝낸 건 아주 좋은 일이야! 그러니까 너도 앞으로 찾아가지도 말고 효주 옆에 딱 붙어 있어. 효주야말로 너에게 가장 어울리는 짝이다! 네 미래 아내라고!”한참 지난 후, 드디어 응급실 문이 열렸다. 강주환은 고은희의 휠체어를 밀면서 의사 앞으로 다가갔다. 그러자 고은희가 급해진 목소리로 물었다.“의사 양반, 우리 며느리는 어떤가. 배 속에 아이는...”“며느님은 다행히 무사하십니다만... 병원으로 실려 올 때부터 출혈이 심했던 터라 최선을 다했지만, 아이는 살릴 수 없었습니다.”심지어 유산된 아이가 남자아이라는 말에 고은희는 더욱더 속상하고 안타까워했다.“주환이 너!”고은희는 순간 혈압이 급상승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다 네가 그 여자랑 끝내지 못해서 효주가 다친 거다. 내 손자를 죽인 거라고!”그녀는 가슴이 점점 더 아파졌고 혈압도 올라가게 되었다. 강주환은 그런 그녀를 보며 말했다.“어머니, 몸도 성치 않으신데 그렇게 화를 내시면 안 돼요. 일단 도우미한테 말해서 병실로 모셔다드리라고 할 테니까 쉬고 계세
윤성아는 병실로 옮겨졌고 강주환은 밤새 그녀의 곁을 지키고 있었다.중간에 그는 병실 밖으로 나가 진하상에 연락했다.“당장 천우혁을 찾아. 그리고 경찰에 협조해서 잡아.”“네, 알겠습니다!”어둠이 깊은 밤, 윤성아는 깨어나게 되었다. 이미 마취 효과가 사라졌지만, 그녀는 눈을 뜨기 전부터 복부에서 전해지는 고통을 느끼게 되었다.“쓰읍...”그녀는 신음을 살짝 내게 되었다. 이미 그녀가 깨어난 것을 발견한 그가 바로 물었다.“깼어?”“네.”“많이 아파?”그는 걱정 가득한 눈길로 계속 윤성아에게 말을 걸었다.“내가 의사라도 불러줄까?”윤성아가 대답하기도 전에 그는 벌떡 일어나 의사를 불러오려 했다.“괜찮아요.”윤성아는 그를 말렸다. 담담한 눈길로 말하는 그녀의 두 눈엔 아무런 감정도 보이지 않았다.“배가 칼에 찔렸으니 아픈 건 당연해요. 조금만 참고 있으면 괜찮아질 거예요.”강주환은 다시 의자에 앉았다.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병실에는 고요한 정적만 흘렀다. 그러다 윤성아가 먼저 남자를 보며 입을 열었다.“왜 여기에 있었던 거예요?”강주환은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윤성아는 계속 말을 이었다.“지금 사모님 곁에 있어 드려야 하는 거 아닌가요? 아니면 안효주 씨라든가 다른 곳에 말이에요. 여기 있으면 안 되잖아요! 만약 사모님께서 아시기라도 하시면 몸이 더 안 좋아지실 거예요.”강주환이 입을 열었다.“어머니는 모르셔!”하지만 정말 모르게 될까? 세상에 영원히 숨길 수 있는 비밀이 없는 듯이 만약 고은희가 알게 되면 다시 쓰러지게 되는 것이 아닌가?게다가 이곳엔 고은희의 병실도 있었고 심지어 그녀와 강주환을 떼어놓기 위해 죽겠다는 협박까지 했었다...“깨어난 걸 봤으니 됐어.”강주환은 윤성아를 보며 말을 이었다.“내일 내가 어머님께 연락할게. 널 보러오라고.”“네.”윤성아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리고는 몸을 일으켜 병실을 나서려는 남자를 보며 말했다.“천우혁 씨가 직접 말했어요. 안효주 씨 배
서연우도 자신의 딸이 잘 크고 바른길로 걷길 바랐다.“효주는 어쩌면 우리 앞에서만 얌전한 척하고 있을지 몰라요. 뒤에서 우리 몰래... 일단 우리가 먼저 알아봐요!”윤정월은 이미 두 사람의 대화를 전부 엿듣게 되었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성형 전 안효주의 모습은 그녀와 아주 닮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안효주가...윤정월은 뭔가 깨달은 듯했다. 그녀는 눈을 크게 뜬 채 안효주의 병실로 확 들어갔고 속으로는 안씨 가문의 안효주가 자신의 딸이 아닌가 생각했다. 정말로 친딸이라면...하지만 그녀는 이미 안효주를 무너뜨리려고 윤성아를 부추겨 안효주와 강주환을 갈라놓으려고 했다는 생각에 엄청난 후회가 밀려왔다.‘안돼, 반드시 알아내야 해!'윤정월은 윤성아를 신경 쓰지도 않고 바로 운성시로 돌아와 안씨 가문 쌍둥이에 대한 소식을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알아보았다.안씨 가문의 쌍둥이는 어릴 때부터 전혀 닮은 구석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고 성격도 완전히 달랐다. 게다가 안효주는 성형한 후에야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는 소식에 윤정월은 안효주가 자신의 친딸임이 틀림없다고, 살아있다고 거의 확신하고 있었다.기쁨을 감추지 못한 그녀는 바로 다시 영주시에 있는 병원으로 돌아왔고 몰래 안효주의 병실로 찾아갔다. 잠든 안효주의 모습을 본 윤정월은 저도 모르게 눈가가 붉어졌다.‘내 딸이지? 얘가 바로 내 친딸인 거지?'윤정월은 몰래 떨어진 안효주의 머리카락을 주웠다. 그녀는 차마 병실을 떠날 수가 없었고 붉어진 눈가로 그녀를 보며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안효주의 볼을 만져보려 했다. 그러자 이때, 안효주는 눈을 뜨게 되었고 윤정월을 발견하곤 소리를 질렀다.“아줌마가 왜 여기에 있는 거죠?”윤정월이 뻗은 손을 본 안효주는 바로 방어태세를 보였다.“지금 뭐 하시려는 거죠? 저를 해치려고 하신 거죠!”“아니야.”윤정월은 바로 고개를 저었다.“그냥 널 보려고 온 거야.”“아줌마가 절 왜 보러 와요! 당장 여기서 나가요!”안효주는 말을 하면서 베개를 집어 윤정월을
원이림은 아주 진지하게 말을 꺼냈다. 하지만 윤성아는 그의 제안을 거절했다.원이림은 미간을 찌푸리며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물었다.“설마 이런 곳에서 계속 살아갈 생각이야?”윤성아는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이미 이 도시를 떠날 결정을 내렸다. 만약 천우혁이 그녀를 습격하지만 않았어도 그녀는 이미 이 도시를 떠나고 없었을 것이다.원이림은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런 거라면, 왜 나랑 같이 떠나지 않는 건데? 넌 아무것도 걱정할 필요 없어.”원이림이 말을 이었다.“난 이미 베린 그룹을 F국에 옮길 결정을 내렸고, 강주환도 그저 한낱 영주시를 장악하고 있을 뿐이야. F국은 그의 영역이 아니지. 그러니까 날 위협할 수도 없어.”윤성아는 그의 제안을 거절하지 않고 그저 생각해보겠다고만 했다. 이미 몸이 어느 정도 완쾌된 터라 그녀는 바로 떠날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윤정월은 계속 그녀에게 원이림을 따라가라고 부추겼다.“성아야, 엄마 말 들어. 원 대표는 아주 좋은 사람이고 너한테도 진심이야. 너를 끝까지 책임지고 너에게 안정된 삶을 주겠다고 하잖니. 이 얼마나 좋은 사람이니? 그 사람과 함께 떠나야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단다.”하지만 윤정월의 속마음은?윤정월은 윤성아가 당장 해외로 멀리 떠나버렸으면 했다. 윤성아가 결혼하여 괜찮은 가정을 만든다면 더는 안효주 앞에 얼쩡거리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그녀는 몰래 윤성아의 핸드폰을 가져와 원이림의 연락처를 찾아 전화를 걸었다. 윤성아를 원이림과 함께 보내기 위해 윤정월은 눈물을 보이며 말했다.“성아야, 그냥 엄마 말 들어. 엄마가 이렇게 빌게, 응? 엄마 걱정 덜어줘, 그냥 원 대표랑 떠나!”윤정월은 심지어 무릎까지 꿇었다.윤성아는 하는 수 없이 응했다.“알았어요. 원 대표님이랑 떠날게요!”윤정월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녀는 심지어 직접 원이림과 윤성아를 공항까지 배웅했고 윤성아의 손을 꼬옥 잡으면서 신신당부했다.“기억해,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 거야. 네가 보고 싶어 지면
남서훈은 싱긋 웃었다.아직 임신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맥으로 정확히 짚어 낼 순 없었지만 느낌은...“아마 남동생일 거야.”“아... 남동생...”양나나는 눈을 굴리더니 남서훈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남동생도 좋은 것 같아요. 동생 태어나면 저랑 엄마가 동생한테 의술도 가르쳐주고 아빠랑 사업하는 것도 배우고요. 그리고 남자애는 너무 응석 받아줄 필요도 없고 내가 맘껏 부려 먹을 수 있잖아요.”자기 뒤꽁무니를 쫄랑쫄랑 따라다니며 누나, 누나 하고 부르는 장면을 상상하니 양나나는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갔다.어떻게 생긴 남동생이 엄마 배 속에서 태어날까, 양나나도 잔뜩 기대하고 있었다.그러나 남서훈이 임신 다섯 달째로 접어드는 어느 날, 양나나는 실종됐다.양준회와 남서훈은 매일 안절부절못하여 속이 타들어 갔다.둘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세력을 동원해 전 세계 각 곳을 샅샅이 뒤졌지만 여전히 양나나의 행방을 찾지 못했다.양나나는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그때 양나나는 이미 8살이었다.남서훈은 딸을 찾지 못해 날마다 눈물로 얼굴을 적셨다. 그녀는 점점 야위어갔다.그걸 보는 양준회는 마음이 너무 아팠다. 그는 아내를 꼭 끌어안고 침통한 목소리로 말했다.“나나는 똑똑한 아이야. 당신이 의술과 독 쓰는 법도 잘 가르쳐줬으니까 별일 없을 거야. 나나는 너와 내가 낳은 딸이야. 전에 풍운파에 혼자 몰래 들어가서도 그 안을 마구 헤집고 다녔잖아.”아무튼 그는 양나나가 어디에 가서 어떠한 상황에 부딪히던 자신을 잘 보호할 거라고, 아무 일 없이 잘 살아 있을 거라고 남서훈을 위로했다.남서훈도 굳게 믿고 있었다. 양나나의 시체를 보게 되지 않는 한 그들의 딸은 세상 어딘가에 꼭 살아있을 거라고.그 후 넉 달이 지났다. 9달이 된 배는 불룩하게 튀어나왔다.양나나는 아직도 찾지 못했고 아무런 소식도 없었다.그러다 남서훈은 아들을 낳았다. 강보에 싸여 품에 안겨있는 아들을 보며 남서훈은 양나나를 그리워했다.“나나야, 대체 어디 있는 거야... 네 뒤꽁무
그리고 바로 그날 오후.양준회와 남서훈, 그리고 백나연과 성진훤, 이렇게 네 사람은 백무산을 찾아갔다.그를 만나자마자 양준회와 성진훤은 백무산한테 사과부터 했다.어리둥절한 백무산은 그들이 왜 갑자기 찾아와서 사과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그 후 양준회는 남서훈의 어깨를 와락 감싸안았고 성진훤도 보란 듯이 백나연의 손을 꼭 잡았다. 성진훤은 원래 양준회처럼 백나연을 확 끌어안고 싶었지만 미래 장인어른이 될 사람 앞이라 행동을 조심스럽게 하는 것이 좋을 듯하여 손만 잡았다.백무산은 더 혼란스럽고 얼떨떨해졌다.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그는 눈알이 튀어져 나올 듯하게 그들 넷을 번갈아 쳐다봤다.그때 양준회가 입을 열었다.“어르신, 우리 서훈이는 남자가 아니라 여자입니다. 남씨 집안의 특수한 사정으로 어릴 때부터 남장을 했던 것이고, 백나연 씨와의 혼약도 그저 소동극이었습니다. 이 일은 서훈이한테 책임 묻지 말아 주셨으면 합니다. 노여움이 있으시면 저한테 푸세요.”그 말에 백무산은 눈살을 찌푸렸다.남서훈이 여자라니... 어떻게 그런 일이?여자가 그의 딸과 약혼했다니, 막장도 이런 막장이 없었다.대체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란 말인가.백무산은 불같이 화를 냈다.그러자 백나연이 나섰다.“아빠, 이 일은 서훈이 탓이 아니에요, 제가, 제가 꼭 도와달라고 했어요.”“뭐야? 널 도와줘?”“네.”백나연이 설명했다,“아빠랑 오빠가 자꾸 소개팅 주선하는 바람에 제가 너무 골치 아파서 서훈이한테 도와달라고 부탁한 거예요, 나랑 약혼하자고. 그럼 아빠랑 오빠가 나한테 선 자리를 더는 강요 안 할 거 아니에요. 서훈이는 싫다고 했는데 내가 억지 써서 해주기로 한 거예요.”백나연은 자기 잘못이라고 매우 강조했다.그녀의 눈빛에 아픔이 언뜻 스쳐 지나갔다.“전 그때 결혼할 생각이 없었어요... 그리고 저랑 서훈이는 서로 약속했어요. 누가 먼저 운명의 상대를 만나게 되든, 그때 되면 파혼하기로요. 절대 서로의 앞날을 방해하지 않기로 했어요. 이제
그 순간 용준의 눈에서 눈물이 뚝 떨어졌다. 한 번 떨어지기 시작한 눈물은 그칠 줄을 모르고 펑펑 쏟아졌다.이게 얼마 만인가.그녀를 품에 꼭 끌어안고 싶은 생각을 항상 했었지만 엄두가 나지 않았다.그는 오늘 끝내 그녀를 안을 수 있었다. 팔을 뻗어 그녀를 껴안고 얼굴을 그녀의 어깨에 파묻은 채 용준은 또 한참을 울었다.예서는 그가 평생 사랑한 유일한 여자였다.그는 품속에 있는 그녀를 부드럽고 진실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난 네가 고마워. 넌 너무 용감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용감해. 옛날 일은 이미 다 지나갔어. 넌 이것만 기억해. 난 널 사랑하고, 네가 있어야만 내가 살 수 있어. 네가 있으니까 내가 괴물로 변하지 않은 거야. 아니면 난 모든 걸 다 망가뜨렸을 거야. 스스로도 혐오하는 그런 나쁜 인간으로 돼버렸을 거야.”예서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도 알고 있었다. 남자가 하려는 말이 뭔지 그녀는 모두 알고 있었다.이날, 둘은 아주 오랫동안 얘기를 나눴다.예서는 더는 용준을 불편해하지 않았다. 용준이 있으므로 하여 그녀는 더 빨리 회복될 것이었다.그렇게 예서가 하루하루 나아지고 있을 때. 남서훈과 양나나는 한 번 나가 돌아다니기로 했다.한 거리의 상가 앞을 지나가고 있는데, 남자애 몇 명이 갑자기 튀어나와 양나나를 에워쌌다.그들은 매우 들뜬 소리로 말했다.“대장! 살아 있었어요?”“너무 잘 됐어요!”“대장, 대장을 그 사람들이 데려간 후로 우린 계속 대장의 소식을 기다렸어요. 대장도 그 애들처럼 상처투성이가 돼서 돌아오지 않을까 하고 걱정했다고요.”“지금은 어떤 상황이에요? 대장이 후계자가 된 거예요?”양나나는 고개를 저으며 아니, 라고 대답했다.그리고 주변을 둘러싼 남자애들한테 말했다.“난 후계자 되는 것에 관심 없어. 풍운파에 지금 남아있는 건 의술을 배우기 위해서야.”양나나는 시선을 남서훈한테 향하며 그들한테 남서훈을 소개했다.“이분이 내 스승님이야, 우리 스승님 엄청 대단해!”그날, 양나나는 그
지난 날에 발생한 그 끔찍한 과거를 스스로 입에 올리는 용준은 피가 흘러나올 듯이 눈이 시뻘겋게 물들었고 감정이 폭발할 한계치까지 다다랐다.그는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애써 가라앉혔다.몇 분 후에야 그는 비로소 다시 입을 열었다.“그놈들은 죄다 죽여버려야 할 놈들이에요. 예서가 이쁘니까, 내 앞에서 예서를... 그때 예서는 이미 내 아이를 임신했는데...”용준의 온몸에서 난폭한 기운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그는 갑자기 돌아서서 주먹으로 나무를 세게 한 방 내리쳤다. 그 바람에 나뭇가지가 흔들리며 낙엽이 우수수 떨어졌다.그 큰 나무가 흔들릴 정도면 얼마나 센 펀치를 날렸는지 알 수 있었다.그의 손마디도 살이 찢겨나가 새빨간 피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는 감각을 느낄 수 없는 사람처럼 상처에 무덤덤했다. 아마도 손보다 마음이 더 아팠을 터였다.용준은 그때 일만 생각하면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지고 심장이 뜯겨나가는 것처럼 아팠다. 예서가 피투성이가 된 채 텅 빈 눈으로 누더기 인형처럼 맥없이 쓰러져서 누워있던 참혹한 장면만 머릿속에 떠올리면 그놈들을 무참하게 도륙을 내고 싶었다.그리고 그는 그렇게 하였다.풍운파의 보스가 된 후 첫 번째로 한 일이 바로 예서의 복수를 하는 것이었다.그놈들의 범죄증거를 전부 찾아내 한 명도 빠짐없이 직접 처단했다.그때 그들은 무릎을 꿇고 울며불며 용서를 빌었다. 막다른 길에 몰려 살려고 해도 안 되고 죽으려고 해도 죽지 못할 때, 그들은 찌질이같이 눈물 콧물을 쥐어짜며 애원했다. 제발 살려달라고, 잘못했다고.정작 그들은 용준이나 예서한테 그런 자비를 베푼 적이 없는데 말이다.용준의 목소리는 점점 차가워졌다.“그것들이 나와 예서의 모든 것을 망치고 날 시궁창에 몰아넣었죠. 여전히 난 이렇게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생지옥에서 살고 있어요. 그것들은 백번 죽어도 마땅해요!”그러나 그놈들이 죽는다고 해서 상처가 아무는 것은 아니었다.용준은 피로 물든 주먹을 으스러지게 잡으며 계속 말을 이어갔다.“그들은 예서가 그들이 한
용준은 원래 정직한 사람이었고, 금호의 일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그는 어둠이 없는 밝은 햇빛 아래에서 사는 반듯한 사람이었다.그러나 일부 국제조직에서는 용준을 불안하게 여겼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고, 심지어 그가 의심되어 오랫동안 그에게 전자발찌를 채웠다.아무 일도 저지르지 않았지만 그는 범죄자 취급을 당했고, 그리하여 생활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더더욱 생각지도 못한 건, 그 당시 그와 깊은 사랑에 빠져있었던 여자친구마저 누구한테 몹쓸 짓을 당하게 된 것이다.그러므로 용준이 점점 나쁘게 변하여 나중에 어떤 일을 저지르게 되었던, 모두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다.요 몇 년 동안 풍운파는 용준의 관리하에 동남아에서 제일 큰 폭력조직으로 성장하였고, 닥치는 대로 무슨 일이나 다 저지르는 편이었지만 딱 한 가지 철칙이 있었다. 그건 바로 노약자와 여자, 아이들은 건드리지 않는다는 거였다.의리도 지켰다.하지만...“그건 중요하지 않아요.”남서훈이 말했다.“이 세상은 원래 흑과 백으로 나뉘는 게 아니니깐요. 동남아는 원래 상황이 어수선하잖아요. 무장세력과 폭력조직이 공존한다는 사실을 일시적으로 바꿀 수도 없어요. 오히려 풍운파와 같은 조직이 있다는 게 더 도움이 될지도 몰라요.”양준회가 그 말에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어떤 측면으로 보면 용준은 꽤 마음에 드는 구석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 둘은 원수지간이다. 양준회가 그의 아버지를 죽였다. 비록 지금까지는 아무 짓을 안 했어도, 또 그가 원래 정직한 사람이었다고 해도, 풍운파를 이렇게 여러 해 동안 다스린 용준이 지금은 어떤 사람인지 누구도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그리하여 양준회는 안심할 수 없었다. 여전히 남서훈과 같이 풍운파를 즉시 떠나려고 했다.“하지만 나나도 여기 있어요.”남서훈이 예상치도 못한 폭탄을 터트렸다. 양준회는 깜짝 놀랐다.양나나가 여기에 있다는 건 상상도 못 했다.하지만 놀란 것도 잠시, 그는 바로 말했다.“그럼 나나도 같이 떠나면 돼.”갇힌 두 달
강하영이 부케를 내던지는 일순간 우양주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 부케를 향해 몸을 날렸다. 공중에서 부케를 잽싸게 낚아채는 그의 모습이 정지화면인 양 사람들의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부케를 손에 쥔 그다음 순간, 그는 부케와 함께 바다에 떨어졌다.모두가 경악했다.강하영은 크루즈 난간 쪽으로 달려가 바다에서 허우적대는 남자를 보며 입을 떡 벌리고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선원들이 즉시 튜브를 던졌고, 또 어떤 사람들은 즉시 뛰어내려 구조하려 했지만 강주환이 그들을 말렸다.왜 구하지 말라는 건지 이해 안 된다는 듯한 눈빛으로 윤성아는 강주환을 쳐다봤다.그러다 팔로 물살을 가르며 바다에 둥둥 떠 있는 우양주가 크루즈 위에 있는 강하영을 향해 큰 소리로 외치는 걸 듣고 왜 그러는지 알 것만 같았다.“여보, 어쨌든 내가 부케 받았으니까 당신 나랑 결혼식 치러야 돼요! 안 그러면...”그 뒤엔 위협적인 말이 따라야 하는데 우양주도 무엇으로 강하영을 협박할 수 있을지 몰랐다. 남은 건 자신의 이 몸뚱이 하나뿐인데...“안 그러면 나 안 올라갈 거야. 여기 바다에 계속 있을 거야, 결혼식도 못 하는데 그냥 빠져 죽지 뭐.”강하영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바다에 빠진 남자를 까만 눈동자로 차분하게 내려다보며 끝내 입을 열었다.“빠져 죽고 싶으면 그렇게 해요. 안 말려요.”“...”우양주는 서럽게 그녀를 쳐다봤다.역시나 아내는 매정했고 자신에 대해 애정이 없었다.그러나 그때 윤성아 곁에 서있는 강주환이 무덤덤하게 한마디 했다.“내 기억이 맞다면, 이 바다에 상어가 출몰한다고 했어요. 식인 상어.”강주환은 고개를 돌려 강하영한테 말했다. “지금 아직 상어가 오지 않아서 그렇지, 나타나기만 하면 한꺼번에 열 몇 마리씩 무리 지어서 나올 거예요. 그게 게네들 습성이라. 이야... 쟨 아마 그러면 뼛조각도 남지 않겠네.”“...”그 말에 강하영이 급해 났다. 말투도 전처럼 차분하고 담담하지 않았다.난간에 기대어 우양주를 향해 내리 소리 질렀다.“뭐
미리 준비한 축사를 울먹이며 끝까지 다 읽고는 원이림을 향해 볼멘소리를 했다.“너 이 놈 자식, 내가 죽을 때까지 네가 결혼하는 걸 못 보는 줄 알았다. 아이고... 드디어 결혼하는구나. 너도 이제 가정이 생겼어.”“너 똑바로 들어. 은진이한테 평생 잘 해줘야 돼, 아내한테 잘 하는 건 우리 집안 내력이야. 나도 네 엄마 말을 엄청 잘 들었어. 너도 똑같아, 알겠니? 오늘부터는 은진이한테 더 잘해야 돼, 말도 잘 듣고, 은진이부터 생각하고 배려해 주고. 은진이가 조금이라도 맘고생을 하게 되는 날엔 내가 너 가만 두지 않을 거야, 알겠어?!”원이림은 새카만 눈동자로 여은진을 깊게, 애틋하게 들여다보며 그녀와 깍지를 낀 두 손에 힘을 더 주었다.“걱정 마세요. 난 평생 우리 여보 맘고생 안 시킬 거예요.”여보라는 호칭이 지금 이 시각부터 명실상부하게 되었다.원이림은 그녀의 손을 잡고 크루즈 가장자리로 걸어갔다. 그리고 미리 준비된 데이지 꽃을 바다로 뿌렸다. 하얀 꽃잎들이 파도에 실려 멀리 떠내려갔다.둘은 거기에 선 채 눈물을 머금고 울먹이며 말했다.“어머니, 아버지. 저 너무 행복해요. 우리 너무 행복해요.”결혼식의 마지막을 장식할 부케 토스하는 시간이 다가왔다.강주환과 윤성아, 그리고 나엽과 안효연은 모두 기혼자로서 나가지 않고 구경만 했다. 하객 중에 미혼인 사람들이 많이 몰려들었다.우양주도 강하영의 손을 잡고 그리로 향했다.강하영은 몸을 뒤로 빼면서 말했다.“우린 결혼했는데 왜 부케를 받으러 가요? 다른 사람한테 갈 좋은 축복을 왜 우리끼리 받겠다고 달려들어요, 쓸데없이. 그렇게 할 일 없고 힘이 남아돌면 내가 다른 일 하게 해 줄게요.”“무슨 일?”강하영은 푸른 바다를 향해 눈을 힐끔 하더니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당신 수영 좋아하잖아요. 내가 엉덩이 확 걷어찰 테니까 바다로 들어가서 수영이나 할래요?”“...”저번에 강하영과 같이 수영하면서 그녀가 자신한테 새빨간 수영팬티를 사줘 창피를 당하고 나서부터 우양주는 수영하는
여은진은 부드러운 눈빛으로 예쁘게 미소 지었다.“나 다 알아요.”지난 1년 동안 그가 어떻게 해왔는지 잘 아는 그녀는 더 이상의 맹세와 언약 같은 건 필요 없었다.“응!”여은진을 안은 채로 원이림은 그녀의 여린 입술에 쪽쪽거리며 뽀뽀를 했다.장내의 플래시 세례가 정신없이 터지는 가운데 그는 돌아서서 무대 아래에 앉아있는 모든 사람한테 당찬 목소리로 선포했다.“오늘 저의 이 행복한 순간을 지켜본 여기 계신 모든 증인 분들한테 제가 선물을 준비할 생각입니다. 나중에 저희 베린 그룹에 가셔서 선물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번 달 20일에 저와 은진이의 결혼식이 있을 예정이니 여러분들께서 모두 와주셨으면 좋겠습니다.”말하고 나서 그는 여은진을 안고 시상대를 내려가려 했다.여은진이 내려달라고 했지만 그는 내려놓지 않았다. 그렇게 안은 채로 시상식장을 걸어 나와 차에 올라탔다.럭셔리한 롤스로이스가 천천히 내달리고 있었다.여은진은 아직도 그의 품에 안긴 채로 있었다.“이번 달 20일에 결혼한다고요? 그럼 열흘밖에 안 남았는데, 너무 촉박하지 않아요?”그녀가 눈을 들어 바라보며 물었다.“아니, 전혀.”그녀의 얼굴에 시선을 떨구며 원이림이 말했다.“시간이 모자라지만 않았으면 내일에라도 당장 결혼식 치르고 싶어.”반년이 넘는 동안, 그는 매일 결혼식에 관한 모든 것을 준비하고 있었다.결혼반지, 웨딩드레스, 그리고 결혼에 필요한 모든 물품과 디테일한 사항들을 전부 준비하고 체크했다. 그녀가 결혼을 동의하는 그 순간만 기다리고 있었다.그리고 그 순간이 끝내 다가왔다.웨딩사진을 찍는 것 외에는 크게 시간을 들일 일도 없었다.다만 여은진이 임신했기 때문에 너무 빠듯하게 스케줄을 잡지 않고 싶었을 뿐이다.결혼식에 참석할 하객을 초대하는 일도 있긴 하지만 10일이면 충분했다.촉박하지 않을뿐더러 시간적 여유가 있는 편이었다.“여보, 우리 지금 바로 혼인신고 하러 가.”원이림은 한시라도 더 기다리고 싶지 않았다. 기사한테 얘기하여 구청으로 가자
원이림은 금방 샤워를 마친 여은진한테로 다가가 그녀의 팔을 끌어당겨 품에 꼭 끌어안았다. 그다음에는 당연히 침대로 향했다.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수순을 밟아갔다.한창 격렬해지려던 찰나, 원이림은 짧게 비명을 질렀다. 크게 지르진 않았다. 본능적으로 소리를 내질렀지만 그는 이내 입을 다물었다. 여은진이 알아차리지도 못한 새에 살에 푹 찔린 그 가는 물건을 빼내야겠다고 머릿속으로 빨리 반응했다.하지만 역시 늦었다.여은진이 몸을 일으켜 스탠드를 켰고, 어두웠던 방안은 환한 빛으로 채워졌다.이어 급히 그를 살피던 여은진은 원이림의 엉덩이에 바늘이 하나 꽂혀있는 걸 발견했다.짧고 가는 옷을 꿰맬 때 쓰는 그런 바늘이었다.여은진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는 얼굴로 남자를 보며 물었다.“어떻게 바늘에 찔릴 수 있어요? 침대에 왜 바늘이...”“...”꽂힌 바늘을 빼며 원이림은 이야기를 얼버무렸다.“괜찮아, 그냥 바늘인데 뭐. 별로 아프지도 않아.”그러고는 또 다짜고짜 몸을 뒤집으며 여은진을 몸 아래로 깔았다. 고개를 돌리지도 않고 손을 뻗어 스탠드를 끄고 그녀의 입술을 거칠게 탐했다. 잠깐 벌어진 에피소드를 그녀의 머릿속에서 지워버리고 진행 중이었던 일을 마무리하려는 의지였다.하지만 여은진은 그의 키스를 받아내면서도 오후 그의 당황스러운 표정과 난데없이 침대에 나타난 바늘을 함께 떠올렸다. 정신을 쏙 빼놓으려는 지금의 행동도 분명 그것과 연관이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잠깐만.”여은진은 원이림을 밀어내고 다시 한번 스탠드를 켰다.의심이 부풀어 오른 눈으로 빤히 그를 노려봤다. “똑바로 말해요. 아까 그 바늘로 수작 부린 거 맞죠? 말해요, 몇 개나 찔렀어요?”“...”끝내는 발각되었다. 원이림은 이실직고했다. 강주환이 원흉이라고, 그가 시켜서 했다고 불었다.“여보, 나 며칠 전에 운봉 비즈니스 회담에 참석했는데 거기서 강주환을 만났어. 그 자식이 날 비웃는 거야. 그리고 이렇게 하라고 아이디어를 내줬어. 바늘로 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