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말이 다 맞아. 아버지는 아버지를 사랑하는 두 여자에게 엄청난 상처를 주었어. 네 엄마에게는 아내라는 신분을 주지 못했고 평생 고통 속에 살게 했어. 월영 씨에게도 미안해. 아내라는 신분을 주긴 했지만 사랑을 주지 못했어. 그래서 질투 때문에 악한 마음을 품었다가 결국에는 네 엄마에게 그런 짓까지 한 거야. 그리고 설하에게는 어렸을 적부터 아버지의 책임을 다하지 못했고 제대로 가르치지도 못했어...”남궁주철은 눈물 콧물 범벅이 되도록 울었다. 다시 한번 자존심을 내려놓고 간절히 빌었다.“그러니까 하영아, 제발 설하를 한 번만 용서해 줘. 아버지가 바라는 건 많지 않아. 그저 설하 목숨만 살려주면 돼. 내가 설하를 데려가게 해줘...”강하영은 단칼에 거절했다. 원한을 반드시 갚아야겠다는 건 아니지만 남궁설하가 저지른 죄가 너무도 컸다.그녀는 맑은 두 눈으로 남궁주철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설하는 이미 이런 성격으로 자라났어요. 나와 엄마를 미친 듯이 증오하고 있다고요. 걔가 이 일을 벌인 건 절대 충동적이 아니라 계획한 거예요! 이번에 용서해 줘서 집으로 돌려보낸다면 저 장담하는데 앞으로 조금이라도 기회가 생기면 이번보다 더 심한 짓을 할 겁니다.”남궁주철이 바로 반박했다.“아니야!”그러고는 계속하여 말을 이었다.“설하는 내 딸이야. 본성은 착한 애라고. 이번에 잘못을 저지르긴 했지만 내가 데려가서 따끔하게 혼내면 반드시 고칠 거야.”강하영이 말했다.“절대 못 고쳐요. 아버지는 설하가 사람을 시켜 나와 어머니를 납치한 후 그저 채찍으로 중상을 입을 정도로 때린 것만 알고 있죠? 사실은 그게 다가 아니에요. 사람을 시켜서 우리를 강간하게 하려 했다고요. 만약 양주 씨가 제때 도착하지 않았더라면 저와 엄마가 어떻게 됐을지 생각이나 해보셨어요?”남궁주철은 아무 말이 없었고 강하영이 계속하여 말을 이었다.“양주 씨가 제때 왔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으면 저와 엄마는 몸이 더럽혀진 채로 바다에 던져져서 시신도 건지지 못했을 겁니다. 그리고 양
그녀의 까만 눈동자에는 온화함으로 가득했다. 그러고는 미안해하며 말했다. “미안해요.”강주환은 화가 났다! 아내가 대체 왜 이런 일을 자신에게 말하지 않았던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윤성아가 말했다.“내가 임신이라는 말만 들어도 당신이 긴장하면서 나를 아무것도 못 하게 하잖아요. 심지어는 길에서도 걸어 못 다니게 하면서! 걷기라도 하면 아이라도 떨어지는 것마냥. 회사도 가지 않고 밤낮 없이 나만 지키고 있을 거잖아요. 난 그저 당신이 덜 긴장 해하고 덜 걱정하기를 원해서 쌍둥이라는 사실을 조금 늦게 알았으면 했어요!”강주환은 할 말이 없었다.그는 윤성아를 탓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결국 참지 못하고 억울하다는듯 쓴소리를 해댔다! “여보, 이렇게나 큰 일을 나에게 알려주지 않으면 어떡해! 좀 더 일찍 알려주었다면 훨씬 더 기뻤을 텐데!”아내가 또다시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고 그는 무척이나 기뻤었다. 이렇듯 두 배의 기쁨을 과연 몇 명이나 체험할 수 있을까?그러나 만약의 경우라도 생겼을 때는, 강주환의 안색이 급격히 어두워졌다.“여보, 당신 너무 섣불렀어!”만약 아내가 쌍둥이를 임신했다는 사실을 미리 알았더라면, 출근이 웬 말인가? 그 무엇도 아내와 아내 배 속에 있는 아이보다 중요한 건 없었다! 그렇다면 그는 더욱 조심했을 것이다! 특히 그 일도 말이다.강주환은 윤성아가 임신한 지 석달이 지났을 무렵, 두 사람이 매주에 한번 함께 시간을 보내곤 했던 사실을 떠올리고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비록 조심한다고는 했지만, 그때는 쌍둥이라는 사실을 몰랐을 시기였다! 만약 알았더라면 그는 분명 건드리지 않고 참았을 것이었다! 스님이 되는 한이 있더라도, 매일 찬 물에 샤워하더라도 그는 참았을 것이였다! 강주환은 그때의 자신을 떠올려보며 후회막급이었다. 그러고는 손을 들어 자기 뺨을 내리쳤다. 정도가 심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가볍지도 않았다!검사를 진행하고 있던 의사 선생님과 윤성아는 강주환이 자기절로 뺨을 때리는 모습을 보고는
그러나 윤성아는 그럴 가능성이 전혀 없다!남자가 이렇게나 정성스럽게 그녀를 돌봐주고 보호해 주는데, 그녀에게 충분한 관심과 사랑, 그리고 안전감을 주고 있는데! 그녀는 임신한 지금이 너무 좋았고, 매일 행복감에 둘러싸여 있는 것만 같았다.우울증이란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주환 씨...”윤성아는 반짝이는 눈망울로 남자를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만약 내 배 속에 있는 쌍둥이가 딸이 아니면 당신은 크게 실망할거예요? 당신은 딸을 좋아하는데!”강주환은 아마 실망할 것이다.아들은 강하성 하나로 충분했다. 하지만 딸은 몇 명이라도 그는 기쁠 것이다!딸은 얼마나 사랑스럽고, 귀여운데. 분명 윤지안처럼 귀여움으로 사람을 녹일 것이다! 아빠의 소중한 딸로, 큰 눈을 깜빡거리며 그를 쳐다보기만 해도 그는 마음이 약해질 것이었다. “아니야!”강주환의 까만 눈동자가 반짝거렸다! 그는 큰 손으로 윤성아의 불룩해진 배를 만지며 말했다. “내 운이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을 텐데? 쌍둥이 중에 분명 한 명은 딸일 거야.”그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두 개의 작은 발이 그의 손을 차는듯한 느낌이 들었다.강력하고도 힘이 있었다.강주환은 기뻐 날뛰었다!그는 입꼬리를 올리고는 윤성아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 “봤어? 애들이 나를 발로 찼어. 대답하는 것 같아! 아이들은 분명 여자아이라고 알려주는 걸 거야!”윤성아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아이들이 힘 있게 차는 걸로 보아! 그녀는 힘 있는 모습이 더욱 남자아이라고 생각되었다.뿐만아니라 이제껏 임신한 기간, 그녀 배 속에 있는 두 아이는 비록 얌전하면서도 심하게 장난도 치진 않지만! 매번 태동이 느껴질 때마다 강력하고도 힘이 있었다. 거기다 엄마의 촉까지!또한 윤성아는 태몽을 꾸었는데 그녀는 꿈에서 쌍둥이 아들을 임신했던 것이였다!그러나 상관 없었다. 임신한 그 동안에 남자가 잘 돌봐주고 그가 충분한 안전감과 사랑을 준 덕분에 윤성아는 그를 위해 몇명의 아이를 더 낳아줄 생각이 있었다!윤성아는 팔을 뻗으며
그리고 강하성이 그녀앞에 놓아준 만두도 먹었다. 생김새도 그럴듯했고, 맛도 좋았다! 윤성아는 그야말로 믿기 어려웠다! 그녀는 강하성을 보며 물었다.“하성아, 엄마가 하성이와 지안이가 선생님에게서 요리를 배운다는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 대단하잖아?”강하성은 조금 뿌듯해났다. “이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에요.”윤성아는 환하게 웃어 보였다. 그녀는 손을 들어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 정도가 어떻게 아무것도 아닐 수가 있어? 우리 하성이는 이제 커서 만두를 빚는 재주로 엄마에게 며느릿감도 데려오겠는걸!”강하성은 말이 없었다.“...”그러나 강주환과 거의 똑 닮은듯한 아이의 작은 얼굴에는 비록 굳어진 표정과 멋진 포스를 뿜어냈지만 분명 부끄러움도 살짝 묻어있었다! 강하성과 윤지안 두 아이만 있다면 완전히 강주환을 대신할 수 있었다! 그들은 강주환을 옆으로 밀쳐내고는, 윤성아가 아침을 먹는 모습을 동그란 눈으로 빤히 쳐다보았다. 윤성아가 임신했다는 사실을 안 후로부터 아이들은 갑자기 성장한 것만 같았다. 이전보다 훨씬 철이 들어있었다! 그동안 아이들도 윤성아를 돌보는 데 일조했다. 또한, 강주환과 마찬가지로 아이들은 윤성아 배 속에 있는 쌍둥이가 여동생이기를 무척이나 바랐다. 이전에도 여러 차례나 강하성과 윤지안은 이 문제에 대해 강주환과 윤성아에게 질문한 적이 있었다. “엄마 배 속에 있는 아기는 대체 남자 동생이에요? 여자 동생이에요? 저희는 동생에게 핑크색의 예쁜 치마를 사줘야 할까요? 또 아기침대도, 그것도 핑크색으로 해야 하나요? 아, 여동생이면 좋아하는 것도...”강하성과 윤지안은 여동생에 관한 많은 얘기를 했었다.강하성은 윤성아가 여동생을 낳아주기를 바랬다. 귀엽고도 사랑스러운 여동생이 좋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윤지안은 달랐다! 아이는 윤성아가 남동생을 낳아주기를 바랬다. 아이는 남동생이 좋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또 윤성아가 여동생을 낳아주기도 바랬다. 그렇게 되면 남동생은 훈육할 수 있었고, 여동생은 지켜줄
치마와 바지는 모두 골반까지 오는 짧은 스타일이었다. 그리고 윗옷은 더욱 짧아서 간신히 임신한 그녀의 풍만해진 몸매를 가려줄 수 있어서 임신한 배가 밖에 노출되었다.애초에 강주환은 이런 스타일을 아주 반대했었다.그는 여전히 미간을 찌푸리면서 시큰둥한 말투로 말했다.“여보, 당신의 배가 전부 밖에 나왔잖아! 만약 찬바람이라도 맞아 당신과 아이가 감기에 걸려 버리기라도 하면 어쩌려고?”윤성아는 과분한 걱정에 어이없다는 듯이 희번덕거렸다.오늘같이 따뜻한 날씨에는 찬바람을 맞을 일이 없었다!그리고 아무리 날씨가 쌀쌀하다고 해도 집과 복도에는 보일러도 따뜻하게 틀어져 있었다. 강주환의 상냥하고 세심한 성격이 어떻게 윤성아가 감기가 올 때까지 놔두겠는가?강주환은 단지 걱정이 과분했다.“여보...”윤성아는 낮은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그의 반짝이는 까만 눈동자가 강주환을 바라보면서 귀에 대고 속삭였다.“이제 이런 사진은 방에 둬요. 우리 둘만 볼 수 있게요!”“...”윤성아의 나긋나긋한 목소리에 강주환의 마음은 눈 녹듯 녹아들어 갔다. 마치 찌릿찌릿한 전류가 온몸에 통하는 것 같았다. 당장이라도 하늘의 별이든 달이든 따다 주고 싶었다.강주환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윤성아에게 말했다.“내가 찍어 줄게!”“...”이 남자의 당돌함에 그녀는 어쩔 수 없이 허락했다.그가 좋아하면 찍으라지! 이것도 나쁘지 않아 보였다!모두의 기다림 속에서 강주환은 윤성아를 부축하면서 몇 벌의 옷을 가지고 안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손수 윤성아에게 임부복을 입혀주었다.첫 번째 옷은 가벼운 청청패션이었다.파란색 청바지에 흰색 티, 그 위에는 청재킷을 걸쳤다.윤성아는 가벼운 화장에 미모는 더욱 깔끔해 보였다! 비록 임산부의 느낌이 물씬 났지만 누가 봐도 깔끔하고 매력적이었다! 마치 갓 대학교를 졸업한 학생 같았다.강주환도 보자마자 눈이 반짝였다. 그는 윤성아에게 가까이 다가가 가볍게 그녀의 입술에 입맞춤했다.“여보, 너무 아름다워!”그러자 윤성아는 행복한 미소를 지
전부 윤성아가 임신했을 당시 평소에 입었던 임부복이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아름다움은 흘러넘쳤다!강주환은 윤성아의 모든 사소한 일에도 세심한 관심을 쏟은 덕분에 윤성아가 임신하는 동안의 모든 옷은 전부 주문 제작으로 이루어졌다.입으면 몸에 부담이 없을뿐더러 눈부신 스타일도 겸비했다.물론 윤성아의 미모가 가장 큰 한몫을 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었다.임신 말기인 그녀는 임신하기 전보다 조금 통통해지기도 했다. 우아한 그의 얼굴에도 살이 찌고 더욱 매끄러움이 더해졌다.아름다운 눈썹은 높은 봉우리처럼 치솟았고 길게 치켜오른 속눈썹은 나비의 날개처럼 우아했다.흑진주처럼 영롱하고 반짝거리는 눈동자에는 누구도 포용할 만한 오묘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눈빛으로 대화할 것 같은 교활한 눈매를 소유하여 보는 사람의 혼을 쏙 빼놓았다!오똑한 콧대는 귀여웠고 키스를 부르는 빨간 입술은 앵두처럼 탐스러웠다!시간은 흘러 어느덧 서서히 노을이 지기 시작했다.강주환과 윤성아는 요트의 갑판 위에서 온몸으로 노을을 만끽했다. 남자의 커다란 체구가 여자를 끌어안으니 세상에서 가장 행복해 보였다! 두 사람은 파도가 출렁이는 듯한 구름과 수평선을 붉게 물들어 놓은 태양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그림이 되었다.앞으로의 남은 생은 서로가 손을 맞잡고 함께 헤쳐 나갈 것을 다짐했다.강주환과 윤성아, 그리고 그들의 아이들까지 행복하게 지내도록!시간이 빠르게 흘렀고 이윽고 보름이 또 지났다.이때, 윤성아는 이미 임신 9개월이 되어서 배가 더 불러왔다. 하지만 낮에는 괜찮았다. 강주환의 세심한 배려로 계단을 오르내릴 때도 윤성아를 직접 안아서 데려다주었고 씻을 때도, 밥을 먹을 때도 심지어 화장실을 갈 때도 그녀를 안고 다녔다.하지만 밤이 되면 배가 너무 불러와 잠을 자는 게 불편했다.윤성아는 돌아눕지 못하여 때로는 숨이 막혀올 때가 많았다. 비록 가볍게 손발을 움직여 인기척이 느껴질 때마다 강주환이 바로 깨어나 보살피기도 했지만 임신한 그녀의 어려움을 완전히 대신해 줄
그녀는 곁에 있는 남자가 그녀보다 더 긴장하고 초조해하는 것을 보았다.그래서 그동안 진통을 참아왔고, 아파도 최대한 소리를 내지 않았다.그러던 그녀가 이렇게 소리치자 강주환은 마음이 쥐어뜯기는 것 같았다.지금 당장 심장이 바닥으로 떨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그는 전에 없이 긴장하고 있었다!하늘이 무너져도 변하지 않을 것 같던 그의 얼굴은 당황스러움으로 가득 차 있었고, 이마에는 핏줄이 솟아올랐다.너무 걱정한 나머지 그의 얼굴에 흐르는 땀은 윤성아 얼굴의 땀보다 더 많았다.강주환의 호흡이 흐트러졌다.그의 얼굴은 윤성아보다 더 하얗게 질렸고 긴장한 나머지 목소리마저 떨렸다."여보, 우리 그냥 낳지 말까?"윤성아는 대답하지 않았다."..."대신 그녀는 덜 아플 때 그의 긴장을 풀어 주기 위해 장난하는 어투로 말했다."안 낳으면 어떡해요. 설마 두 아기가 계속 내 뱃속에 살기를 바라는 거예요? 내가 3년 혹은 그 이상 아기를 품고 있을까요?""그리고 3년 뒤에 장군님을 낳아줄까요?"강주환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다급하게 부정했다."당연히 아니지!"그는 윤성아의 작은 손을 꼭 잡고 그녀에게 말했다."우리 자연분만하지 말고 그냥 제왕절개해서 바로 아이를 꺼내자."하지만 윤성아가 거절했다.통증이 다시 찾아왔다."아!"그녀는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아픔에 하얗게 질린 작은 얼굴이 땀투성이가 되었다.그녀는 그 와중에도 강주환에게 당부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주환 씨, 내가 낳을 거예요. 나 할 수 있어요. 제왕절개수술 안 할 거니까 그런 거로 알아요."강주환이 알겠다고 대답했다.하지만 윤성아가 계속되는 통증에 작은 얼굴을 잔뜩 찡그리며 땀범벅이 된 채 머리카락까지 푹 젖자 그 모습을 보는 강주환은 마음이 너무 아팠다."심호흡하세요.""제 박자에 맞춰서 힘껏 들이마시고, 내쉬고...""맞아요, 아주 좋아요!""아기의 머리가 보이기 시작했어요."의사들이 일사불란하게 아이를 받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강주환은 예전에 아기의
강하성과 윤지안도 옆에 엎드린 채 엄마가 낳은 두 동생을 신기하게 쳐다보았다. 나엽의 한 살배기 쌍둥이 딸들도 함께 엎드려 보고 있었고 나엽은 자신의 두 딸 옆에 서 있었다.전에 그는 강주환의 자랑에 너무 오랫동안 시달렸기에 이번 기회에 만회하고 싶었다.그는 검은 눈동자로 강주환을 바라보며 말했다."전에 계속 저한테 자랑하셨죠? 배 속의 아이까지 합치면 네 명의 아이를 가졌다고, 자기는 너무 대단하다고 자랑하셨잖아요!""배 속의 아기들은 쌍둥이 딸이라고, 저보다 대단하다고!""그런데 지금은요?"나엽은 작은 침대에 누워있는 두 아이를 보았다. 비록 귀엽긴 하지만 그래도 딸은 아니었다.나엽이 득의양양하게 말했다."강 대표님, 안 되겠네요. 아들 둘을 낳으셨잖아요!""하하하..."나엽은 더 큰 소리로 웃으며 기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그는 강주환의 새까맣게 가라앉은 안색을 보며 말했다."당신은 아이가 넷이나 있지만 그래도 저와는 비교가 안 되죠, 저는 예쁘고 다정한 딸이 둘이나 있으니까요!""얼마나 귀엽고 사랑스러운지 몰라요!"강주환은 주먹이 우는 기분이 들었지만 오늘같이 좋은 날 사람을 때리는 일은 자제하기로 했다.그는 의기양양해서 시비를 거는 나엽에게 다가가 시커먼 눈으로 말했다."방금 태어난 내 아들 둘은 성인이 되면 며느리 둘을 집에 데려오겠지.""그런데 너는?"강주환은 부러운 눈길로 나엽 옆에 있는 귀여운 두 딸을 보았다.시선을 거둔 그가 눈동자를 들어 올려 다시 한번 나엽에게 서늘하게 말했다."네 딸들은 크고 성인이 되면 결혼해서 출가하겠지.""딸이 시집가는 날 네 기분이 어떨지 잘 생각해 봐."나엽은 말을 잃었다."..."나엽은 정말 진지하게 상상해 보았다.그의 보호 아래서 조금의 고생도 시키지 않고 애지중지 키운 두 귀염둥이 딸을, 20년 후 어디서 왔는지도 모를 놈에게 빼앗길 것을 생각하면?딸이 시집갈 날을 생각하니 나엽은 마음이 쓰려 견딜 수가 없었다.그날이 오려면 한참 멀었지만, 그는 상상만으로도
남서훈은 싱긋 웃었다.아직 임신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맥으로 정확히 짚어 낼 순 없었지만 느낌은...“아마 남동생일 거야.”“아... 남동생...”양나나는 눈을 굴리더니 남서훈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남동생도 좋은 것 같아요. 동생 태어나면 저랑 엄마가 동생한테 의술도 가르쳐주고 아빠랑 사업하는 것도 배우고요. 그리고 남자애는 너무 응석 받아줄 필요도 없고 내가 맘껏 부려 먹을 수 있잖아요.”자기 뒤꽁무니를 쫄랑쫄랑 따라다니며 누나, 누나 하고 부르는 장면을 상상하니 양나나는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갔다.어떻게 생긴 남동생이 엄마 배 속에서 태어날까, 양나나도 잔뜩 기대하고 있었다.그러나 남서훈이 임신 다섯 달째로 접어드는 어느 날, 양나나는 실종됐다.양준회와 남서훈은 매일 안절부절못하여 속이 타들어 갔다.둘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세력을 동원해 전 세계 각 곳을 샅샅이 뒤졌지만 여전히 양나나의 행방을 찾지 못했다.양나나는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그때 양나나는 이미 8살이었다.남서훈은 딸을 찾지 못해 날마다 눈물로 얼굴을 적셨다. 그녀는 점점 야위어갔다.그걸 보는 양준회는 마음이 너무 아팠다. 그는 아내를 꼭 끌어안고 침통한 목소리로 말했다.“나나는 똑똑한 아이야. 당신이 의술과 독 쓰는 법도 잘 가르쳐줬으니까 별일 없을 거야. 나나는 너와 내가 낳은 딸이야. 전에 풍운파에 혼자 몰래 들어가서도 그 안을 마구 헤집고 다녔잖아.”아무튼 그는 양나나가 어디에 가서 어떠한 상황에 부딪히던 자신을 잘 보호할 거라고, 아무 일 없이 잘 살아 있을 거라고 남서훈을 위로했다.남서훈도 굳게 믿고 있었다. 양나나의 시체를 보게 되지 않는 한 그들의 딸은 세상 어딘가에 꼭 살아있을 거라고.그 후 넉 달이 지났다. 9달이 된 배는 불룩하게 튀어나왔다.양나나는 아직도 찾지 못했고 아무런 소식도 없었다.그러다 남서훈은 아들을 낳았다. 강보에 싸여 품에 안겨있는 아들을 보며 남서훈은 양나나를 그리워했다.“나나야, 대체 어디 있는 거야... 네 뒤꽁무
그리고 바로 그날 오후.양준회와 남서훈, 그리고 백나연과 성진훤, 이렇게 네 사람은 백무산을 찾아갔다.그를 만나자마자 양준회와 성진훤은 백무산한테 사과부터 했다.어리둥절한 백무산은 그들이 왜 갑자기 찾아와서 사과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그 후 양준회는 남서훈의 어깨를 와락 감싸안았고 성진훤도 보란 듯이 백나연의 손을 꼭 잡았다. 성진훤은 원래 양준회처럼 백나연을 확 끌어안고 싶었지만 미래 장인어른이 될 사람 앞이라 행동을 조심스럽게 하는 것이 좋을 듯하여 손만 잡았다.백무산은 더 혼란스럽고 얼떨떨해졌다.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그는 눈알이 튀어져 나올 듯하게 그들 넷을 번갈아 쳐다봤다.그때 양준회가 입을 열었다.“어르신, 우리 서훈이는 남자가 아니라 여자입니다. 남씨 집안의 특수한 사정으로 어릴 때부터 남장을 했던 것이고, 백나연 씨와의 혼약도 그저 소동극이었습니다. 이 일은 서훈이한테 책임 묻지 말아 주셨으면 합니다. 노여움이 있으시면 저한테 푸세요.”그 말에 백무산은 눈살을 찌푸렸다.남서훈이 여자라니... 어떻게 그런 일이?여자가 그의 딸과 약혼했다니, 막장도 이런 막장이 없었다.대체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란 말인가.백무산은 불같이 화를 냈다.그러자 백나연이 나섰다.“아빠, 이 일은 서훈이 탓이 아니에요, 제가, 제가 꼭 도와달라고 했어요.”“뭐야? 널 도와줘?”“네.”백나연이 설명했다,“아빠랑 오빠가 자꾸 소개팅 주선하는 바람에 제가 너무 골치 아파서 서훈이한테 도와달라고 부탁한 거예요, 나랑 약혼하자고. 그럼 아빠랑 오빠가 나한테 선 자리를 더는 강요 안 할 거 아니에요. 서훈이는 싫다고 했는데 내가 억지 써서 해주기로 한 거예요.”백나연은 자기 잘못이라고 매우 강조했다.그녀의 눈빛에 아픔이 언뜻 스쳐 지나갔다.“전 그때 결혼할 생각이 없었어요... 그리고 저랑 서훈이는 서로 약속했어요. 누가 먼저 운명의 상대를 만나게 되든, 그때 되면 파혼하기로요. 절대 서로의 앞날을 방해하지 않기로 했어요. 이제
그 순간 용준의 눈에서 눈물이 뚝 떨어졌다. 한 번 떨어지기 시작한 눈물은 그칠 줄을 모르고 펑펑 쏟아졌다.이게 얼마 만인가.그녀를 품에 꼭 끌어안고 싶은 생각을 항상 했었지만 엄두가 나지 않았다.그는 오늘 끝내 그녀를 안을 수 있었다. 팔을 뻗어 그녀를 껴안고 얼굴을 그녀의 어깨에 파묻은 채 용준은 또 한참을 울었다.예서는 그가 평생 사랑한 유일한 여자였다.그는 품속에 있는 그녀를 부드럽고 진실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난 네가 고마워. 넌 너무 용감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용감해. 옛날 일은 이미 다 지나갔어. 넌 이것만 기억해. 난 널 사랑하고, 네가 있어야만 내가 살 수 있어. 네가 있으니까 내가 괴물로 변하지 않은 거야. 아니면 난 모든 걸 다 망가뜨렸을 거야. 스스로도 혐오하는 그런 나쁜 인간으로 돼버렸을 거야.”예서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도 알고 있었다. 남자가 하려는 말이 뭔지 그녀는 모두 알고 있었다.이날, 둘은 아주 오랫동안 얘기를 나눴다.예서는 더는 용준을 불편해하지 않았다. 용준이 있으므로 하여 그녀는 더 빨리 회복될 것이었다.그렇게 예서가 하루하루 나아지고 있을 때. 남서훈과 양나나는 한 번 나가 돌아다니기로 했다.한 거리의 상가 앞을 지나가고 있는데, 남자애 몇 명이 갑자기 튀어나와 양나나를 에워쌌다.그들은 매우 들뜬 소리로 말했다.“대장! 살아 있었어요?”“너무 잘 됐어요!”“대장, 대장을 그 사람들이 데려간 후로 우린 계속 대장의 소식을 기다렸어요. 대장도 그 애들처럼 상처투성이가 돼서 돌아오지 않을까 하고 걱정했다고요.”“지금은 어떤 상황이에요? 대장이 후계자가 된 거예요?”양나나는 고개를 저으며 아니, 라고 대답했다.그리고 주변을 둘러싼 남자애들한테 말했다.“난 후계자 되는 것에 관심 없어. 풍운파에 지금 남아있는 건 의술을 배우기 위해서야.”양나나는 시선을 남서훈한테 향하며 그들한테 남서훈을 소개했다.“이분이 내 스승님이야, 우리 스승님 엄청 대단해!”그날, 양나나는 그
지난 날에 발생한 그 끔찍한 과거를 스스로 입에 올리는 용준은 피가 흘러나올 듯이 눈이 시뻘겋게 물들었고 감정이 폭발할 한계치까지 다다랐다.그는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애써 가라앉혔다.몇 분 후에야 그는 비로소 다시 입을 열었다.“그놈들은 죄다 죽여버려야 할 놈들이에요. 예서가 이쁘니까, 내 앞에서 예서를... 그때 예서는 이미 내 아이를 임신했는데...”용준의 온몸에서 난폭한 기운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그는 갑자기 돌아서서 주먹으로 나무를 세게 한 방 내리쳤다. 그 바람에 나뭇가지가 흔들리며 낙엽이 우수수 떨어졌다.그 큰 나무가 흔들릴 정도면 얼마나 센 펀치를 날렸는지 알 수 있었다.그의 손마디도 살이 찢겨나가 새빨간 피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는 감각을 느낄 수 없는 사람처럼 상처에 무덤덤했다. 아마도 손보다 마음이 더 아팠을 터였다.용준은 그때 일만 생각하면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지고 심장이 뜯겨나가는 것처럼 아팠다. 예서가 피투성이가 된 채 텅 빈 눈으로 누더기 인형처럼 맥없이 쓰러져서 누워있던 참혹한 장면만 머릿속에 떠올리면 그놈들을 무참하게 도륙을 내고 싶었다.그리고 그는 그렇게 하였다.풍운파의 보스가 된 후 첫 번째로 한 일이 바로 예서의 복수를 하는 것이었다.그놈들의 범죄증거를 전부 찾아내 한 명도 빠짐없이 직접 처단했다.그때 그들은 무릎을 꿇고 울며불며 용서를 빌었다. 막다른 길에 몰려 살려고 해도 안 되고 죽으려고 해도 죽지 못할 때, 그들은 찌질이같이 눈물 콧물을 쥐어짜며 애원했다. 제발 살려달라고, 잘못했다고.정작 그들은 용준이나 예서한테 그런 자비를 베푼 적이 없는데 말이다.용준의 목소리는 점점 차가워졌다.“그것들이 나와 예서의 모든 것을 망치고 날 시궁창에 몰아넣었죠. 여전히 난 이렇게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생지옥에서 살고 있어요. 그것들은 백번 죽어도 마땅해요!”그러나 그놈들이 죽는다고 해서 상처가 아무는 것은 아니었다.용준은 피로 물든 주먹을 으스러지게 잡으며 계속 말을 이어갔다.“그들은 예서가 그들이 한
용준은 원래 정직한 사람이었고, 금호의 일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그는 어둠이 없는 밝은 햇빛 아래에서 사는 반듯한 사람이었다.그러나 일부 국제조직에서는 용준을 불안하게 여겼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고, 심지어 그가 의심되어 오랫동안 그에게 전자발찌를 채웠다.아무 일도 저지르지 않았지만 그는 범죄자 취급을 당했고, 그리하여 생활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더더욱 생각지도 못한 건, 그 당시 그와 깊은 사랑에 빠져있었던 여자친구마저 누구한테 몹쓸 짓을 당하게 된 것이다.그러므로 용준이 점점 나쁘게 변하여 나중에 어떤 일을 저지르게 되었던, 모두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다.요 몇 년 동안 풍운파는 용준의 관리하에 동남아에서 제일 큰 폭력조직으로 성장하였고, 닥치는 대로 무슨 일이나 다 저지르는 편이었지만 딱 한 가지 철칙이 있었다. 그건 바로 노약자와 여자, 아이들은 건드리지 않는다는 거였다.의리도 지켰다.하지만...“그건 중요하지 않아요.”남서훈이 말했다.“이 세상은 원래 흑과 백으로 나뉘는 게 아니니깐요. 동남아는 원래 상황이 어수선하잖아요. 무장세력과 폭력조직이 공존한다는 사실을 일시적으로 바꿀 수도 없어요. 오히려 풍운파와 같은 조직이 있다는 게 더 도움이 될지도 몰라요.”양준회가 그 말에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어떤 측면으로 보면 용준은 꽤 마음에 드는 구석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 둘은 원수지간이다. 양준회가 그의 아버지를 죽였다. 비록 지금까지는 아무 짓을 안 했어도, 또 그가 원래 정직한 사람이었다고 해도, 풍운파를 이렇게 여러 해 동안 다스린 용준이 지금은 어떤 사람인지 누구도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그리하여 양준회는 안심할 수 없었다. 여전히 남서훈과 같이 풍운파를 즉시 떠나려고 했다.“하지만 나나도 여기 있어요.”남서훈이 예상치도 못한 폭탄을 터트렸다. 양준회는 깜짝 놀랐다.양나나가 여기에 있다는 건 상상도 못 했다.하지만 놀란 것도 잠시, 그는 바로 말했다.“그럼 나나도 같이 떠나면 돼.”갇힌 두 달
강하영이 부케를 내던지는 일순간 우양주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 부케를 향해 몸을 날렸다. 공중에서 부케를 잽싸게 낚아채는 그의 모습이 정지화면인 양 사람들의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부케를 손에 쥔 그다음 순간, 그는 부케와 함께 바다에 떨어졌다.모두가 경악했다.강하영은 크루즈 난간 쪽으로 달려가 바다에서 허우적대는 남자를 보며 입을 떡 벌리고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선원들이 즉시 튜브를 던졌고, 또 어떤 사람들은 즉시 뛰어내려 구조하려 했지만 강주환이 그들을 말렸다.왜 구하지 말라는 건지 이해 안 된다는 듯한 눈빛으로 윤성아는 강주환을 쳐다봤다.그러다 팔로 물살을 가르며 바다에 둥둥 떠 있는 우양주가 크루즈 위에 있는 강하영을 향해 큰 소리로 외치는 걸 듣고 왜 그러는지 알 것만 같았다.“여보, 어쨌든 내가 부케 받았으니까 당신 나랑 결혼식 치러야 돼요! 안 그러면...”그 뒤엔 위협적인 말이 따라야 하는데 우양주도 무엇으로 강하영을 협박할 수 있을지 몰랐다. 남은 건 자신의 이 몸뚱이 하나뿐인데...“안 그러면 나 안 올라갈 거야. 여기 바다에 계속 있을 거야, 결혼식도 못 하는데 그냥 빠져 죽지 뭐.”강하영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바다에 빠진 남자를 까만 눈동자로 차분하게 내려다보며 끝내 입을 열었다.“빠져 죽고 싶으면 그렇게 해요. 안 말려요.”“...”우양주는 서럽게 그녀를 쳐다봤다.역시나 아내는 매정했고 자신에 대해 애정이 없었다.그러나 그때 윤성아 곁에 서있는 강주환이 무덤덤하게 한마디 했다.“내 기억이 맞다면, 이 바다에 상어가 출몰한다고 했어요. 식인 상어.”강주환은 고개를 돌려 강하영한테 말했다. “지금 아직 상어가 오지 않아서 그렇지, 나타나기만 하면 한꺼번에 열 몇 마리씩 무리 지어서 나올 거예요. 그게 게네들 습성이라. 이야... 쟨 아마 그러면 뼛조각도 남지 않겠네.”“...”그 말에 강하영이 급해 났다. 말투도 전처럼 차분하고 담담하지 않았다.난간에 기대어 우양주를 향해 내리 소리 질렀다.“뭐
미리 준비한 축사를 울먹이며 끝까지 다 읽고는 원이림을 향해 볼멘소리를 했다.“너 이 놈 자식, 내가 죽을 때까지 네가 결혼하는 걸 못 보는 줄 알았다. 아이고... 드디어 결혼하는구나. 너도 이제 가정이 생겼어.”“너 똑바로 들어. 은진이한테 평생 잘 해줘야 돼, 아내한테 잘 하는 건 우리 집안 내력이야. 나도 네 엄마 말을 엄청 잘 들었어. 너도 똑같아, 알겠니? 오늘부터는 은진이한테 더 잘해야 돼, 말도 잘 듣고, 은진이부터 생각하고 배려해 주고. 은진이가 조금이라도 맘고생을 하게 되는 날엔 내가 너 가만 두지 않을 거야, 알겠어?!”원이림은 새카만 눈동자로 여은진을 깊게, 애틋하게 들여다보며 그녀와 깍지를 낀 두 손에 힘을 더 주었다.“걱정 마세요. 난 평생 우리 여보 맘고생 안 시킬 거예요.”여보라는 호칭이 지금 이 시각부터 명실상부하게 되었다.원이림은 그녀의 손을 잡고 크루즈 가장자리로 걸어갔다. 그리고 미리 준비된 데이지 꽃을 바다로 뿌렸다. 하얀 꽃잎들이 파도에 실려 멀리 떠내려갔다.둘은 거기에 선 채 눈물을 머금고 울먹이며 말했다.“어머니, 아버지. 저 너무 행복해요. 우리 너무 행복해요.”결혼식의 마지막을 장식할 부케 토스하는 시간이 다가왔다.강주환과 윤성아, 그리고 나엽과 안효연은 모두 기혼자로서 나가지 않고 구경만 했다. 하객 중에 미혼인 사람들이 많이 몰려들었다.우양주도 강하영의 손을 잡고 그리로 향했다.강하영은 몸을 뒤로 빼면서 말했다.“우린 결혼했는데 왜 부케를 받으러 가요? 다른 사람한테 갈 좋은 축복을 왜 우리끼리 받겠다고 달려들어요, 쓸데없이. 그렇게 할 일 없고 힘이 남아돌면 내가 다른 일 하게 해 줄게요.”“무슨 일?”강하영은 푸른 바다를 향해 눈을 힐끔 하더니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당신 수영 좋아하잖아요. 내가 엉덩이 확 걷어찰 테니까 바다로 들어가서 수영이나 할래요?”“...”저번에 강하영과 같이 수영하면서 그녀가 자신한테 새빨간 수영팬티를 사줘 창피를 당하고 나서부터 우양주는 수영하는
여은진은 부드러운 눈빛으로 예쁘게 미소 지었다.“나 다 알아요.”지난 1년 동안 그가 어떻게 해왔는지 잘 아는 그녀는 더 이상의 맹세와 언약 같은 건 필요 없었다.“응!”여은진을 안은 채로 원이림은 그녀의 여린 입술에 쪽쪽거리며 뽀뽀를 했다.장내의 플래시 세례가 정신없이 터지는 가운데 그는 돌아서서 무대 아래에 앉아있는 모든 사람한테 당찬 목소리로 선포했다.“오늘 저의 이 행복한 순간을 지켜본 여기 계신 모든 증인 분들한테 제가 선물을 준비할 생각입니다. 나중에 저희 베린 그룹에 가셔서 선물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번 달 20일에 저와 은진이의 결혼식이 있을 예정이니 여러분들께서 모두 와주셨으면 좋겠습니다.”말하고 나서 그는 여은진을 안고 시상대를 내려가려 했다.여은진이 내려달라고 했지만 그는 내려놓지 않았다. 그렇게 안은 채로 시상식장을 걸어 나와 차에 올라탔다.럭셔리한 롤스로이스가 천천히 내달리고 있었다.여은진은 아직도 그의 품에 안긴 채로 있었다.“이번 달 20일에 결혼한다고요? 그럼 열흘밖에 안 남았는데, 너무 촉박하지 않아요?”그녀가 눈을 들어 바라보며 물었다.“아니, 전혀.”그녀의 얼굴에 시선을 떨구며 원이림이 말했다.“시간이 모자라지만 않았으면 내일에라도 당장 결혼식 치르고 싶어.”반년이 넘는 동안, 그는 매일 결혼식에 관한 모든 것을 준비하고 있었다.결혼반지, 웨딩드레스, 그리고 결혼에 필요한 모든 물품과 디테일한 사항들을 전부 준비하고 체크했다. 그녀가 결혼을 동의하는 그 순간만 기다리고 있었다.그리고 그 순간이 끝내 다가왔다.웨딩사진을 찍는 것 외에는 크게 시간을 들일 일도 없었다.다만 여은진이 임신했기 때문에 너무 빠듯하게 스케줄을 잡지 않고 싶었을 뿐이다.결혼식에 참석할 하객을 초대하는 일도 있긴 하지만 10일이면 충분했다.촉박하지 않을뿐더러 시간적 여유가 있는 편이었다.“여보, 우리 지금 바로 혼인신고 하러 가.”원이림은 한시라도 더 기다리고 싶지 않았다. 기사한테 얘기하여 구청으로 가자
원이림은 금방 샤워를 마친 여은진한테로 다가가 그녀의 팔을 끌어당겨 품에 꼭 끌어안았다. 그다음에는 당연히 침대로 향했다.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수순을 밟아갔다.한창 격렬해지려던 찰나, 원이림은 짧게 비명을 질렀다. 크게 지르진 않았다. 본능적으로 소리를 내질렀지만 그는 이내 입을 다물었다. 여은진이 알아차리지도 못한 새에 살에 푹 찔린 그 가는 물건을 빼내야겠다고 머릿속으로 빨리 반응했다.하지만 역시 늦었다.여은진이 몸을 일으켜 스탠드를 켰고, 어두웠던 방안은 환한 빛으로 채워졌다.이어 급히 그를 살피던 여은진은 원이림의 엉덩이에 바늘이 하나 꽂혀있는 걸 발견했다.짧고 가는 옷을 꿰맬 때 쓰는 그런 바늘이었다.여은진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는 얼굴로 남자를 보며 물었다.“어떻게 바늘에 찔릴 수 있어요? 침대에 왜 바늘이...”“...”꽂힌 바늘을 빼며 원이림은 이야기를 얼버무렸다.“괜찮아, 그냥 바늘인데 뭐. 별로 아프지도 않아.”그러고는 또 다짜고짜 몸을 뒤집으며 여은진을 몸 아래로 깔았다. 고개를 돌리지도 않고 손을 뻗어 스탠드를 끄고 그녀의 입술을 거칠게 탐했다. 잠깐 벌어진 에피소드를 그녀의 머릿속에서 지워버리고 진행 중이었던 일을 마무리하려는 의지였다.하지만 여은진은 그의 키스를 받아내면서도 오후 그의 당황스러운 표정과 난데없이 침대에 나타난 바늘을 함께 떠올렸다. 정신을 쏙 빼놓으려는 지금의 행동도 분명 그것과 연관이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잠깐만.”여은진은 원이림을 밀어내고 다시 한번 스탠드를 켰다.의심이 부풀어 오른 눈으로 빤히 그를 노려봤다. “똑바로 말해요. 아까 그 바늘로 수작 부린 거 맞죠? 말해요, 몇 개나 찔렀어요?”“...”끝내는 발각되었다. 원이림은 이실직고했다. 강주환이 원흉이라고, 그가 시켜서 했다고 불었다.“여보, 나 며칠 전에 운봉 비즈니스 회담에 참석했는데 거기서 강주환을 만났어. 그 자식이 날 비웃는 거야. 그리고 이렇게 하라고 아이디어를 내줬어. 바늘로 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