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효주는 이내 겁에 질린 듯한 목소리로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응.”강주환이 드디어 그녀의 부름에 대꾸를 하였다.하지만 그저 대답만 했을 뿐 차 안에서는 정적만 맴돌았다.조수석에 앉은 안효주는 끊임없이 운전석에 앉은 남자를 바라보고 있었고 무언가 궁금한 듯했지만, 혹여라도 말실수를 하게 될까 두려웠다.그녀는 하는 수 없이 입을 다물었다.차는 호진 그룹의 입구에 멈춰서게 되었다.강주환은 안효주를 보며 말했다.“내려.”“...”안효주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촉촉해진 눈가로 강주환을 보았다.강주환은 미간을 찌푸리더니 짜증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아파트로 돌아가. 아니면 아무 데나 알아서 가. 난 출근할 거니까.”안효주는 여전히 억울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촉촉한 눈길로 강주환을 보았다.“나를 여기에 내려다 주고 그냥 가는 거예요?”강주환이 답했다.“그렇지 않으면?”그의 태도는 싸늘했다.안효주는 더는 그의 심기를 건드릴 수가 없었다.“알았어요. 주환 씨, 난 아파트로 갈 거예요.”그녀는 기대하는 얼굴로 남자를 보았다.“이따 저녁에 올 거죠? 난 정말 나엽과는 아무런 사이가 아니란 말이에요! 앞으로도 절대 만나는 일 없을 거예요.”“그래.”강주환이 대충 대답을 했다.안효주가 차에서 내리자마자 그는 호진 그룹의 지하주차장으로 들어가 주차를 했다. 그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대표이사실로 올라갔다.그는 일할 기분이 아니었다.의자에 한참이나 앉아 있었던 그는 이내 내선전화로 호출했다.“나엽을 불러와.”“네.”곧이어 나엽이 그를 찾아왔다.대충 노크를 한 나엽은 바로 대표이사실로 들어와 강주환의 앞에 섰다. 그는 반짝이는 두 눈으로 의자에 앉은 강주환을 보고 있었다. 살짝 눈썹이 꿈틀 올린 그가 차갑게 물었다.“저를 찾으신다고 들었는데, 무슨 일이시죠?”강주환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너, 안효주 씨랑 사귀고 있는 거냐?”나엽은 미소를 짓더니 오히려 강주환에게 되물었다.“대표님, 제 매니저가 내놓은 공식 입장을 못 보
고은희 또 이어서 말했다.“우리 집안은 정략결혼이 필요해. 너도 이젠 제대로 된 아내를 둬야지. 그러니 내가 너한테 어울릴 만한 사람을 찾아보마. 재민 그룹의 딸아이와 같은 사람은 절대 다시 나타나지 않을 거야.”“알아서 하세요.”강주환은 심드렁하게 대답하더니 몸을 일으켜 방으로 돌아갔다.며칠 후.안진강의 태도는 여전히 강경했다. 그는 안효주에게 또다시 전화를 걸어 베린 그룹과의 협력 상황을 물었고, 안효주는 어쩔 수 없이 계약을 체결하게 되었다. 책임자는 물론 윤성아로 바꾸는 것이 아닌 원래의 책임자로 했다.같은 날 저녁.베린 그룹의 직원들은 대표 없는 회식을 열었다. 대표 원이림은 직원들이 불편해할까 봐 일부러 빠져준 것이었다.이번 프로젝트의 책임자인 이의현은 술잔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이번 계약이 성공한 데는 성아 씨 공이 커요. 성아 씨가 안효주 씨를 찾아간 덕분에 계약이 성사된 거 맞죠? 제가 이번 프로젝트를 담당하게 된 것도 다 성아 씨 덕분이에요.”윤성아는 작게 머리를 흔들었다. 자신은 한연 그룹이 계약을 체결하기로 한 것과 아무런 상관도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이의현은 입꼬리를 씩 올리며 계속해서 말했다.“어찌 됐든 계약이 성공한 건 축하할 일이니까, 자 성아 씨! 저희 한잔해요!”윤성아는 분위기를 타고 몸을 일으켜 술 한 잔 마셨다. 그러자 곧바로 다음 사람이 다가와서 말했다.“성아 씨 우리 회사 회식에 참석한 거 처음이죠? 자, 저희도 한잔해요.”윤성아는 거리감을 아주 중요시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호진 그룹에서 일할 때는 그녀가 원하지 않는 것 반, 강주환과의 관계 때문 반으로 한 번도 회식에 참석한 적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그녀는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기로 결심했고, 새로운 회사에서 새로운 동료와도 잘 지내기를 원했다.더구나 베린 그룹의 근무 환경은 아주 좋았다. 윤성아가 신입사원이라고 해서 텃세를 부리는 직원이 없는 건 기본이고 다들 열정적으로 도움의 손길을 내밀기도 했다. 그래서 그녀는 아무리 주
윤성아는 이제야 술집 복도에서 강주환과 부딪친 일이 떠올랐다. 4년 전으로 돌아간 꿈을 꾸는 줄 알고 비몽사몽 그의 키스를 받아준 일도 포함해서 말이다.‘이럴 줄 알았으면 술을 마시지 않는건데...’뒤늦게 후회되기는 했지만 소용없었다. 일은 이미 벌어졌기 때문이다. 그래도 새로운 생활을 위해 강주환을 떠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이렇게 다시 만나니, 윤성아는 힘이 빠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강주환은 짙은 술 냄새를 풍기며 윤성아의 허리를 꼭 끌어안은 채 새근새근 숨을 쉬고 있었다. 전화벨 소리에도 전혀 영향받지 않은 모습이었다.윤성아는 강주환을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거부감이 들었다. 그래서 이 틈을 타서 도망가려고 했다. 지금은 일단 그의 품에서 빠져나가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렇게 조심스럽게 그의 손을 들어 올려 몸을 일으키려는 찰나, 그는 갑자기 몸을 뒤척이며 윤성아의 손목을 잡았다.“가지 마, 나랑 같이 있자.”윤성아는 흠칫 놀라며 그대로 얼어붙었다. 심장은 마치 밖으로 튀어나올 것처럼 크게 뛰었다. 다행히 강주환은 진짜 깨어난 것이 아닌 잠꼬대를 했을 뿐이고 지금도 그녀의 손목을 잡은 채 조용히 숨을 쉬었다.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윤성아는 강주환이 깊이 잠들 때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그의 손을 밀어내고 주섬주섬 옷을 입었다. 그리고 마치 도둑고양이처럼 룸 밖으로 나갔다.같은 시각, 안효주도 같은 술집에 있었다.안효주는 안씨 가문의 둘째 딸로 겉보기에는 못 하는 게 없는 완벽한 재벌가의 자제이다. 하지만 그것은 전부 부모님을 기쁘게 해주기 위한 연기에 불과했고, 사석에서는 꽤 방탕한 방식으로 스트레스를 풀었다.운성시와 영주시의 재벌가 자제들이 주로 안효주의 술자리 친구가 되어줬다. 오늘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룸 안에서 노래를 부르고 술을 마시며 스트레스를 풀었다. 약과 술을 번갈아 하며 진작 이성을 놓고 한데 뒤엉킨 남녀를 보고서는 따라 두근거리기 시작했다.「자기야, 보고 싶어. 우리 지금 만나자!」「알았어, 지금 갈게.」안효주
여자에게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생기는 이질감에 강주환은 돌연 동작을 멈췄다. 어쩐지 여자의 냄새가 어제와 달리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급기야 흥분이 가시고 그는 눈을 번쩍 떴다.강주환은 키스를 기대하는 듯한 모습의 안효주를 발견하고 미간을 구겼다. 뒤이어 그녀의 몸에 난 흔적을 보고는 머리가 핑 도는 것 같기도 했다.‘어떻게 이럴 수가...’어젯밤 강주환은 평소와 다름없이 술을 마셨다. 비록 취하기는 했지만, 그의 품에 부딪힌 여자가 윤성아라는 것만큼은 확신할 수 있었다. 아무리 안효주와 똑같게 생겼다고 해도 냄새가 확연히 달랐기 때문이다.강주환의 마음을 흔들 수 있는 것은 4년 전과 똑같은 윤성아의 향기뿐이었다. 그러니 어젯밤에 만난 사람도 틀림없이 윤성아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 왜 역겨운 체취를 풍기는 여자가 품 안에 있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너 뭐야?”강주환은 안효주를 빤히 쳐다봤다. 그리고 무섭도록 차가운 표정으로 물었다.“성아는?”“...”안효주는 잠깐 침묵하더니 의아한 표정으로 말했다.“성아라니요? 주환 씨, 저희 어제부터 계속 같이 있었잖아요. 어젯밤에는 얼마나 열정적이던지...”안효주는 수줍은 표정으로 말했다. 마치 어제 진짜로 강주환과 하룻밤 보낸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곳곳에 난 흔적을 자연스럽게 드러냈다.“이것 봐요!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설마 기억 못 하는 거예요?”안효주의 서운하다는 표정을 보고 강주환은 미간을 구겼다. 그리고 단호하게 대답했다.“절대 너일 리가 없어.”안효주는 가슴이 쿵 내려앉는 것 같았다. 하지만 겉으로는 티를 내지 않았다. 그저 여전히 불쌍한 표정으로 어젯밤의 상황을 거짓으로 설명했다.“저 어제는 안 좋은 일이 있어서 술 마시러 왔거든요. 근데 주량이 약한 탓에 몇 잔 마시고 금방 취해 버렸어요. 그리고 화장실 가는 길에 주환 씨랑 마주치고 이곳에 오게 된 거예요.”안효주의 설명은 흠잡을 데가 없었다. 하지만 강주환은 여전히 어젯밤 만났던 사람이
“판이라니요! 먼저 사람을 착각한 건 주환 씨에요. 저는 그냥 주환 씨가 너무 좋아서...”“허!”강주환은 피식 웃었다. 그러고는 역겹다는 듯이 싸늘하게 말했다.“기자들은 어떻게 된 거야? 혹시 이것도 네 짓인가? 하는 말을 듣자 하니 너와 만나달라고 협박이라도 할 생각인가 보네?”“아니에요.”안효주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로 머리를 저으며 계속해서 말했다.“저는 진짜 모르는 일이에요. 어젯밤 그대로 기절해 버리고 지금까지 잤다고요. 주환 씨도 봤잖아요, 네가 언제 일어났는지. 기자를 부를 시간은 없었어요. 올 줄 알았더라면 옷이라도 입고 있었겠죠.”첫 번째 의혹에 관해 설명하고 난 안효주는 또 두 번째 의혹에 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그리고 저희가 사귄다는 말도 어쩔 수 없이 한 거예요. 기사들의 표정 못 봤어요? 혹시 저희가 아무 말도 안 하면 어떤 식으로 기사를 낼지 모른다고요. 저희는 호진 그룹과 한연 그룹을 대표하고 있는데 나쁜 기사 때문에 주가라도 영향받으면 어떡해요.”말을 마친 안효주는 조심스럽게 강주환의 옷깃을 잡았다. 그리고 이 이상의 스킨십은 하지 않고 세상 불쌍한 표정으로 말했다.“주환 씨, 그냥 저랑 결혼해 주면 안 돼요? 저희 나름 잘 어울리잖아요. 저는 한연 그룹의 유일한 딸이에요. 어차피 저희는 정략결혼을 피할 수 없는 운명인데 생판 모르는 남과 결혼할 바에는 차라리 좋아하는 사람과 결혼하는 게 좋잖아요, 안 그래요?”강주환이 아무 말도 없자 안효주는 또다시 어젯밤을 들먹이며 눈물을 머금은 채 말했다.“저는 믿어요. 만약 주환 씨가 저한테 마음이 없었다면 애초에 건드리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말이에요. 저는 주환 씨를 사랑해요. 주환 씨가 저를 누군가의 대역으로 생각한다고 해도 상관없어요, 결혼만 할 수 있다면요. 주환 씨 집안에서도 저를 마음에 들어 할 거예요.”강주환은 미간을 찌푸린 채 침묵에 잠겼다. 비록 화가 나기는 하지만 안효주의 말이 틀리지도 않았다.기사가 퍼지면 주가가 영향받는 것도, 강주환이 고은희의
강주환은 미간을 찌푸렸다.‘이게 우연일 수도 있나?’하필이면 술집 CCTV가 고장 났을 때, 하필이면 기자들은 거짓 제보를 받았고, 또 하필이면 그의 룸에 들어왔다는 것이 과연 우연일지 강주환은 의심이 들었다. 더구나 윤성아가 되기 위해 그를 속인 적 있는 안효주와 함께 있을 때 말이다.이때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화면에 ‘어머니’라고 뜬 것을 보고 강주환은 바로 수락 버튼을 눌렀다.“여보세요.”“주환아, 이게 무슨 일이니? 너와 만나던 윤 비서가 한연 그룹 둘째라는 기사가 사실이야?”“같은 사람 아니에요.”“누가 봐도 같은 사람이던데 아니라니, 내가 윤 비서 얼굴도 모를 것 같아?”“닮기는 했지만 진짜 아니에요. 기사에 나온 사람은 운성 안씨 가문 사람이에요.”강주환의 설명에도 고은희는 여전히 미심쩍은 듯 물었다.“그래?”“네, 확인도 해보지 않고 한연 그룹을 들먹일 기자가 어디 있겠어요.”이제는 고은희도 설득된 듯 잠자코 있었다. 그리고 확인차 마지막으로 물었다.“진짜 윤 비서가 아니라는 거지?”“네.”“다행이네.”고은희는 이제야 시름 놓고 이어서 말했다.“비록 나는 윤 비서의 생김새가 마음에 들지 않지만, 세상에 자식 이기는 부모가 어디 있니. 이제는 그냥 받아들이련다. 한연 그룹의 둘째라면 말도 또박또박 잘하는 것이 네 짝으로도 괜찮을 것 같구나. 운성 안씨 가문, 나쁘지 않아.”혼잣말이라도 하는 듯 주절주절 말하던 고은희는 돌연 강주환에게 말했다.“이런 기사가 난 김에 그냥 약혼해.”“싫어요.”“왜? 너 윤 비서의 얼굴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니? 윤 비서가 죽은 마당에 똑같이 생긴 데다가 집안까지 좋은 여자랑 결혼하는 것도 나쁘지 않지.”“...”운성시.안효주가 남자의 외투를 걸치고 취재하는 영상을 본 안진강은 화부터 치밀어 올랐다. 하지만 금세 진정하고 생각을 바꿨다. 안효주가 전에 만났던 남자들에 비해 강주환은 아주 훌륭한 사윗감이었기 때문이다.안진강은 안효주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혼내는 것이
안효주는 운성 안씨 가문의 둘째 딸이다. 그러니 그녀가 윤정월의 친딸이라고 생각할 사람은 없었다.강주환은 일단 안효주가 안진강과 윤정월 사이의 혼외자식이라고 추측했다. 만약 아니라면 일이 아주 복잡해질 것이다.강주환은 안진강의 표정을 빤히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안효주 씨가 안진강 대표님과 서연우 여사님의 딸이 맞냐는 뜻이에요.”“하, 효주가 우리 딸이 아니면 누구 딸이라는 거예요?!”강주환은 입꼬리를 씩 올렸다. 그러고는 차가운 눈빛으로 안진강을 바라보며 말했다.“그래도 다시 한번 생각해 보세요.”강주환이 몸을 돌려 떠난 다음에도 안진강은 한참이나 제자리에 서 있었다. 강주환의 질문이 어떤 뜻인지, 또 어떤 의도를 품고 있는지 전부 다 의문이었다.‘효주가 내 친딸이 아닐 리가 있나... 잠깐!’안진강은 문득 안효주가 유난히 부모와 닮지 않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는 것이 떠올랐다. 그는 물론이고 어머니인 서연우와도 전혀 닮지 않았으니 말이다.“쌍둥이가 어떻게 하나도 안 닮았죠?”“옛날 같으면 병원에서 아이가 바뀐 줄 알겠어요. 딸 둘이 달라도 너무 다르네요.”주변 사람들이 했던 말이 하나 둘씩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기 시작했다.최근 몇 년 동안 안진강은 사업에 매진하느라 자식 교육에 신경을 쓰지 못했다. 4년 전 첫째 딸 안효연이 죽고 나서 둘째 딸 안효주가 언니와 똑같은 얼굴로 성형했을 뿐만 아니라 행동과 말투도 따라 하는 것을 보고서도 개의치 않았다.안효연은 안효주보다 훨씬 예뻤을 뿐만 아니라, 성격 또한 어른들의 기대에 부합되었다. 그래서 그는 안효주가 안효연을 따라 하는 것이 나름 좋게 발전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더구나 서연우도 안효주의 변화에 기뻐했으니 말이다.하지만 오늘 강주환의 말을 듣고 나니, 그는 처음으로 안효주에게 의심을 품기 시작했다. 서연우가 쌍둥이를 임신하고 나서부터 출산할 때까지 그는 언제나 함께 있었다. 심지어 분만실까지 따라 들어갔으니, 임신 과정에 착오가 생겼을 리는 없었다.이때 안진강은 문득 서연우
비즈니스 파티의 기억이 아직 새록새록 했던 안진강은 도무지 강주환의 변덕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안효주와 강주환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강주환은 왜 안효주가 껄끄럽다고 했는지 꼬치꼬치 캐물었다.사실대로 대답할 수 없었던 안효주는 그저 눈물만 펑펑 흘릴 뿐이었다.“아빠,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주환 씨가 생각을 바꾸고 책임지겠다고 한 게 중요한 거죠. 언제 시간 될 때 저희 다 같이 만나요. 만나서 얘기하면 또 다를 거예요.”“됐어! 내 면전에 대고 책임질 생각이 없다고 한 녀석을 만나서 뭐 해? 강 대표는 너를 좋아하지 않아. 약혼하고 결혼한다고 해도 가정에 충실할 사람이 아니야. 이런 사위는 없는 게 나아! 우리 집안을 무시해도 유분수지.”안진강의 단호한 태도에 안효주는 더욱 크게 흐느끼며 말했다.“저는 주환 씨가 좋아요! 주환 씨가 아니면 안 된다고요! 처음부터 약혼하지 못했던 데도 다 이유가 있어요. 지금은 잘 해결됐으니 제 행복을 위해서라도 이만 허락해 주시면 안 돼요?”안효주는 안진강의 표정이 약간 풀린 것을 보고 애교 섞인 목소리로 계속해서 애원했다.“주환 씨도 약혼을 허락한 이상 무조건 저한테 잘해줄 거예요. 저도 주환 씨랑 함께라면 행복해질 자신이 있어요!”안진강은 아주 고집스러운 사람이다. 그가 강주환에 인상은 변함없었고, 안효주와 어울리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도 변함없었다. 그래서 그는 끝까지 허락하지 않았다. 안효주가 아무리 빌고 애원해도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안진강이 마음을 굳힌 것을 보고 안효주는 울고불고하며 난리를 쳤다. 그리고 빨갛게 부은 눈으로 하지 말아야 할 말까지 뱉어 버렸다.“저까지 죽어야 속이 후련하시겠어요? 언니 한 명 죽인 거로 모자랐냐고요! 아빠는 지금 하나 남은 딸을 절벽 끝으로 몰아세우는 것과 다름없어요!”“뭐?!”안효주의 말에 혈압이 오른 안진강은 순간 눈앞이 핑 도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안효주는 여전히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억지를 부렸다.“저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주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