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몸에서 나는 냄새 하며, 온몸의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은 기분과 오직 그녀와 자고 싶은 감정이 말해줬다. 그녀가 바로 윤성아라고.3년 전의 윤성아가 강주환 앞에서 얌전한 토끼였다면 지금의 그녀는 날카로운 발톱을 가지고 있는 작은 짐승이었다.그녀는 바뀌었지만 모두 바뀌진 않았다. 예전처럼 고집이 셌다. 그리고 3년 전과 비교하면 더욱 통제하기 어려웠다.강주환은 낙담한 채 병원으로 가서 코 검사를 받았다.이틀 후.나엽은 일 때문에 F국으로 갔다.이때 안효연도 호진 그룹의 주얼리 모델로 발탁되어 촬영하러 영주시로 갔다.윤성아는 영주시로 가서 오래 머무를 생각이 없었다. 윤성아는 영주시에 집을 사지 않았기에 나엽의 별장에 머물렀다.안효연도 나엽의 별장으로 갔다. 안효연과 윤성아는 만나기 바쁘게 앉아서 수다를 떨었다. 안효연이 물었다.“아기 유전자 검사해 봤어?”윤성아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녀는 아직 아이를 만난 적이 없었고 안효연의 신분으로 강주환을 찾아가서 계약하면 강주환이 주동적으로 아이를 보여주리라 생각했다.그런데…윤성아는 강주환과의 끔찍한 일을 입 밖으로 꺼내기 싫었다.안효연은 부드럽게 웃으며 윤성아를 위로해 줬다.“너무 급해하지 마, 언젠가 만나게 될 거야.”다음날, 안효연은 호진 그룹의 주얼리 모델 촬영을 시작했다.강주환도 정찰하러 왔다.강주환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안효주도 윤성아와 같은 헤어스타일을 했다.그녀는 검은색 스팽글 롱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끈나시로 되어있었고 뒤가 파여 그녀의 매끈한 등이 노출되는 스타일의 원피스였다.이 원피스는 볼륨감 있는 안효연의 몸매를 잘 부각해 주었다. 그녀는 예쁘기 그지없었다.하지만 강주환은 안효연을 보자마자 눈살을 찌푸렸다. 왠지 모르게 그녀는 또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그리고…‘그녀가 언제부터 이렇게 개방적으로 되었지? 이렇게 노출이 심한 옷을 그녀가 입을 수 있다니?’강주환은 불만이 많았지만 지금은 묵묵히 옆에서 지켜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조명등 아래에서 안
윤성아가 걸어오는 것을 보고 강하성은 집사에게 문을 열어주라고 시켰다. 문이 열리자 그는 제비처럼 윤성아의 품속으로 날아 들어왔다. 그러고는 둘이서 별장 안으로 들어왔다.집사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강주환에게 전화를 걸었다.별장 안.윤성아는 강하성이 그녀를 향해 달려와 안길 때 솜사탕처럼 마음이 녹아내렸다. 마치 윤지안을 안은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심지어 윤성아가 보기에 강하성의 생김새는 윤지안과 똑 닮은 것 같았다.다만 강하성의 코가 조금 더 오뚝하고 입술이 조금 더 얇았지만, 전체적인 오관이 너무 많이 닮아 있었다…윤성아는 바로 그 남자가 생각나서 속으로 깜짝 놀랐다.3년 전 윤성아는 그 남자를 위해 이란성 쌍둥이를 임신했었다. 딸아이 윤지안은 자신의 어렸을 때 모습이랑 똑같았다. 그렇다면 아들은?윤성아는 강하성을 꼭 끌어안으며 이 아이가 삼 년 전에 잃어버린 자신의 아이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고 생각했다. 그녀는 아들을 찾으면 아들과 함께 F국으로 가서 윤지안과 함께 생일을 쇠게 하고 싶었다.“이모.”강하성이 윤성아를 불렀다.윤성아의 품에 꼭 안겨있던 강하성은 또다시 윤성아한테서 좋은 냄새를 맡았다. 엄마들이 가진 냄새였다.“응?”윤성아는 문득 정신을 차리고 자애롭고 온화한 눈빛으로 강하성을 쳐다봤다.“왜 그래? 하성아?”강하성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는 덩달아 붉어진 윤성아의 빨간 눈을 보며 말했다.“이모, 너무 보고 싶었어요!”“그래.”윤성아는 손을 뻗어 강하성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이모도 많이 보고 싶었어.”윤성아가 안고 있던 강하성을 놓아주자 강하성은 손을 뻗어 윤성아를 잡았다. 그의 두 눈은 흑요석처럼 반짝반짝 빛났다.“이모, 저랑 제방으로 가요.”“좋아.”윤성아는 옆에 있는 집사에게 예의상으로 인사를 건네고 집사와 한 무리의 경호원들의 놀란 눈빛 속에서 강하성의 손에 이끌려 별장 안으로 들어갔다. 거실을 지나 계단을 올라서 강하성의 방에 도착했다…3년 전 안효주가 아이를 안고 온 뒤부터, 아이를 더
강주환은 안효연을 만나면 바로 내쫓을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녀에게 안씨 가문이 아이를 뺏어 가려 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알려주려고 했다. 강주환은 강하성에게도 안씨 가문의 사람들과 접촉하지 말라고 단단히 경고하려고 했다.그런데…강주환이 별장으로 돌아오자 집사는 바로 강주환에게 달려와서 보고했다.“작은 도련님이 그 여자분을 데리고 방으로 들어간 지 한참 됐어요.”“알았어.”강주환은 차갑게 대답하고는 바로 계단을 올라갔다. 강하성의 방에 도착해서 문을 열었다. 아들과 윤성아가 서로 안고 얘기를 나누며 그림을 그리고 있는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강하성은 작은 손에 화판을 들고 방실방실 웃고 있었으며 화판에는 강하성과 윤성아가 그린 그림이 담겨있었다. 남자아이와 여자의 뒷모습이었다.남자아이는 멋져 보였으며 강하성과 닮아 있었고 여자는 긴 머리에 가냘픈 모습이었다. 윤성아와 많이 닮아 있었다.그들은 바람을 맞으며 논과 해돋이를 보고 있었다. 그림 속에서 여자의 큰 손이 남자아이의 손을 꼭 쥐고 있었다.강하성은 이 그림을 너무 좋아했다. 그는 깔깔거리며 말했다.“이모, 작은 애는 나고, 큰 사람은 이모예요.”윤성아가 대답했다.“맞아.”맑은 날씨였다.따스한 햇볕이 창문을 통해 들어와 윤성아와 강하성의 얼굴을 비췄고 그 둘은 훈훈한 모자 사이처럼 보였다.강주환은 잠시 멈칫했다.이렇게 훈훈한 장면을 강주환은 생각하지도 못했다. 그리고 또 강주환은 오랫동안 강하성이 이렇게 즐겁게 웃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강주환은 그 모습을 그대로 두고 싶었다.심지어 강주환은 훈훈한 이 장면에 끼고 싶었다.특히 강하성과 윤성아가 서로 마주 쳐다볼 때, 강주환은 심장이 빨리 뛰며 강렬하게 직감했다. 눈앞의 여자는 5년 전 그가 잃어버렸던 그녀, 윤성아라고.다만…강주환은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가 없었다.왜 촬영 당시 이 여자를 봤을 때 심장이 미친 듯이 빨리 뛰지 않았는지.강주환은 자신이 본 두 여인이 서로 다른 여인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녀가 한 말은 모두 사실이었다.윤성아는 강주환을 차갑게 쳐다보며 말했다.“왜요? 강 대표님은 환영하지 않는 것 같네요?”그녀는 지금 당장 돌아갈 생각이 없었다. 그녀는 강주환에게 말했다.“강 대표님 전에 아이 보러 가자 하셔 놓고 아이 보러 안 가고 저를 우롱하셨잖아요. 지금은 우연한 기회로 제가 하성이를 만났네요. 강 대표님께서 환영하지 않으셔도 저는 조금 더 있다가 가야겠어요.”강주환이 말했다.“환영해.”그가 왜 환영하지 않겠는가?강주환은 그녀가 여기에 온 목적이 하성이를 빼앗아 가려고 온 게 아닌 걸 알았지만 그녀가 하성이에게 잘해주는 것을 보아 그녀는 다른 목적이 있는 것 같아 보였다.심지어 그녀는 안씨 가문을 도와 하성이를 빼앗아 가려고 할 수도 있었다.강주환은 안씨 가문의 모든 사람을 환영하지 않았다. 안씨 가문의 모든 사람을 내쫓을 수도 있었고 하성이에게 접근을 못 하게 할 수도 있었다.그러나 눈앞에 있는 이 여자만은 예외였다.그녀가 강주환을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강주환은 그녀가 자신에게서 아이를 빼앗는 것을 동의 할 수 있었다.강주환이 물었다.“뭘 하고 싶은 거야?”“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냥 하성이 보러 왔어요.”윤성아가 차갑게 대답했다.강하성은 강주환과 윤성아를 번갈아 쳐다보다가 이내 무엇인가 깨달은 듯이 말했다.“아빠, 이모, 두 분 아는 사이예요?”‘그러니까 이모가 사실은 아빠와 예전에 바닷가에 있는 별장에서 함께 살았다는 그 여자인가? 할머니와 고모가 계속 말하던 그 여자? 그렇지만 이모는, 잡지에 실린 그 이모가 아니라고 말했어.’강하성은 어안이 벙벙했지만 더는 생각하지 않았다.강하성은 강주환을 쳐다보며 확신에 차서 물었다.“아빠, 아빠가 말씀하신 고양이, 이모예요?”강주환과 윤성아는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들 눈빛에서 강하성은 자신이 생각이 맞았음을 확신했다.“으, 진짜 이모예요?”강하성이 작은 소리로 물었고 윤성아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강주환이 가까이 다가왔다. 그러자
강주환은 애석한 눈길로 윤성아를 바라봤다.“그동안 내가 너에게 많은 상처를 준 것 같아. 나도 내가 잘못했다는 걸 알아. 미안해…”강주환이 윤성아에게 사과했다.그의 눈빛에는 진지함과 비통함이 묻어났다.“내 잘못을 깊이 깨달았어, 네가 없는 이 4년 동안 난, 사는 게 지옥이었어. 윤성아, 다시 내게로 돌아와 주면 안 돼?”윤성아는 미간을 찌푸리며 차갑게 말했다.“강 대표님, 몇 번을 말해야 해요? 저는 안효연이에요.”“그래.”강주환이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네가 일부러 나를 화나게 하려고 나엽을 만나고 있다는 것을 알아. 우리 5년을 만났어, 그런데 네가 어떻게 나를 안 좋아할 수 있어?”강주환이 이어서 말했다.“네가 안효연이든 아니든 중요하지 않아.”강주환의 검은 눈동자가 더욱 짙어졌다. 그는 윤성아의 손을 덥석 잡으며 말했다.“그러니까 나를 모르는 척하지마, 네가 윤성아라는 것도 부정하지 말고, 나는 네가 윤성아라는 것을 알아. 내 몸과 마음이 네가 윤성아라고 말하고 있어.”그는 결코 달콤한 말을 내뱉는 것이 아니라 사실대로 윤성아에게 말하고 있었다.“너를 찾지 못하고 잃어버린 줄 알았어. 네가 진짜 4년 전에 화재로 잘못 된 줄 알았어. 내 심장도 그때부터 차가워졌어. 그런데 너만 보면 지금처럼 심장이 미친 듯이 뛰어. 내 몸도 오직 너한테만 반응해.”그래서 강주환은 지금 의심하고 있었다. 그 의심은 거의 확신으로 바뀌었다. 그는 눈앞에 나타났던 안효연이 두 사람일 거라 생각했다.지금 눈앞에 있는 사람은 윤성아다.그녀의 옷을 벗겨 등 쪽에 있는 모반을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그녀가 그에게 주는 느낌은 틀림없이 윤성아였다.전에 촬영할 때 그 사람은…강주환은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보기로 했다.윤성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강주환의 말을 믿지 않았다.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는 왜 안효주와 그녀를 구분을 못 하겠는가? 나엽은 안효주와 윤성아를 확실하게 구분했다.그리고…강주환은 이미 안효주와 잠까지 잔 사이 아
“그래요”윤성아가 대답하자 강주환이 기쁜 듯 웃었다.윤성아는 방에서 나와 하성을 찾았다. 뒤따라 나오는 강주환은 무시한 채 하성이와 놀아주기 바빴다.저녁이 되고 성아는 약속대로 강 씨 부자와 함께 식사했다.어릴 적부터 강주환과 살아서 그런지 하성은 외모부터 행동거지까지 강주환을 꼭 빼닮았다. 윤성아는 하성을 물끄러미 보며 이렇게 닮은 걸 첫 만남 때 알아차렸어야 했다고 생각했다.“아줌마, 이거 맛있어요.”하성이 윤성아에게 반찬을 집어주며 말했다. 그러자 강주환도 이에 질세라 거의 동시에 반찬을 집어주며 말을 보탰다.“잘 먹어야지! 앞으로 여기에서 살면 나와 하성이를 볼 기회는 많을 거야.”그러자 하성이 보석 같은 눈망울로 윤성아를 바라보며 물었다.“아줌마 여기 살아요?”기대와 놀라움으로 가득 찬 그의 눈빛을 보며 윤성아는 마음이 약해졌다. 이 가련한 눈망울을 보고 어떻게 거절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아니.”윤성아의 대답에 하성은 실망했다.“하지만 아줌마가 보고 싶다면 언제든 하성이 보러 올게!”풀이 죽은 하성이를 보고 윤성아는 다급히 말을 보탰다. 그러자 금세 다시 웃음을 띠는 하성. 그는 다시 초롱초롱한 눈으로 윤성아를 보며 말했다.“그러면 아줌마 앞으로 꼭 저 보러 자주 와야 해요!”“그래.”윤성아는 하성이와 새끼손가락을 걸며 약속했다.“걱정 마, 아줌마가 앞으로도 꼭 하성이 보러 자주 올게.”저녁 식사를 마치고 윤성아는 다시 강하성의 방으로 들어갔다. 이번에도 뒤따라오는 강주환을 보며 성아는 미간을 찌푸렸다. ‘이 인간은 왜 이렇게 날 주시하는 거야?’윤성아는 아무 일도 없는 척 계속 하성이와 놀아주다가 기회를 틈타 슬쩍 화장실로 가 방문을 잠갔다. 세면대에 놓인 빗을 찾아내 하성의 머리카락 한 올을 조심스레 종이로 싸매서 자신의 호주머니에 넣고는 다시 자연스럽게 방으로 돌아가 한참을 하성이와 놀아주고 나서야 집을 나섰다.하성은 아쉬움 가득한 얼굴로 성아를 배웅했다. 하성은 성아를 보내
안효연은 엄마의 성의를 거절할 수 없어 알겠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녀를 끌어안고 있던 나엽은 잔뜩 뾰로통해진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는 안효연이 전화를 끊지도 않았는데 가까이 다가와 그녀의 목을 살짝 물었다. 안효연은 깜짝 놀라 토끼 눈을 하고 나엽을 보았다. “알겠어요. 엄마. 저녁 전에 돌아갈게요.”효연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그녀는 목소리가 이상하게 나가지 않게 애써 추스르며 말을 이었다.“저 지금 급한 일이 있어서 이만 끊을게요.”다행히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지 못한 서연우.“그래.”안효연은 엄마의 말이 끝나자 재빨리 전화를 끊었다. 핸드폰을 내려놓기 바쁘게 거칠게 입을 맞춰오는 나엽. 둘의 숨이 하나로 엉키며 주변의 공기를 더 뜨겁게 달궜다.사실 그전에도 두 사람은 한창 나엽이 꾸며둔 온실에서 쏟아지는 햇살을 맞으며 사랑을 나누고 있었다.그들은 한참을 서로의 숨결에 빠져있다가 나엽이 드디어 안효연의 입술을 놓아줬다. 그리고는 심술을 부리는 아이처럼 구는 나엽.“이번 주는 다른 사람들 방해 없이 모든 시간을 날 위해 쓰기로 하지 않았나?”안효연은 이 남자의 날카로우면서도 끈적한 눈빛에 매료되었다.나엽의 큼지막한 손이 온실 속 가장 아름다운 백장미를 꺾었다. 그의 눈동자는 백장미보다도 하얀 그녀의 살갗을 집요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꽃잎이 부드럽게 그녀의 살을 스치자, 효연은 살에 닿은 곳마다 전류가 흐르는 듯 몸을 파르르 떨었다. 그는 나엽의 손을 꾹 누르며 앙큼하게 말했다.“안 갈게.”지금 이 순간, F 국의 작은 섬에서 나엽에게 붙잡힌 그녀는 어차피 그가 놓아주기 전엔 절대 그의 곁을 떠날 수 없다. “어머니와 약속한 건?”“성아 있잖아. 나와 똑같이 생겨서 엄마 아빠도 못 알아볼 거야. 게다가 난 기억을 잃었고. 그리고 밥 한 끼 먹는 건데 뭘.”나엽도 효연의 말에 동의했다. 그는 바로 윤성아에게 전화를 걸었다.“성아 씨, 효연이가 성아 씨에게 부탁할 일이 있어서요.”“무슨 일인데요?”“엄마가 글쎄 나더러
왜인지 나이에 비해 더 초췌해 보이는 두 분을 보며 성아는 마음이 짠해졌다. 한창 젊게 사실 나이인데 어머님은 몸이 안 좋고 아버님은 벌써 머리에 서리가 앉으셨으니 말이다. 그때 선연우가 성아의 붉어진 눈가를 발견하고는 깜짝 놀라며 물었다.“효연아, 눈이 왜 붉어졌어?”성아는 그제서야 눈가에 눈물이 맺힌 것을 발견하고 황급히 웃음을 띠며 말했다.“아무 일도 아니에요. 엄마가 해주신 음식 오랜만에 먹어서 그런지 너무 맛있어서요.”“그럼 많이 먹어.”서연우는 성아의 말에 피식 웃고는 반찬을 집어 성아의 밥그릇에 올려놓으며 말했다.“감사해요.”“고맙긴.”선아는 따뜻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식사 내내 서연우와 안진강은 성아를 극진히 챙겨주며 반찬을 이것저것 집어주느라 바빴다. 모든 것이 넘치게 따사로웠다. 안효주가 나타나기 전까진 말이다.집으로 돌아온 안효주는 윤성아와 가족들이 즐겁게 모여 있는 모습을 보고 질투를 느꼈다. 그녀는 삐딱한 말투로 물었다.“엄마, 아빠. 나도 딸이라는 거 잊었어요?”서연우의 표정이 순간 어두워졌다. 안진강은 냉소를 터뜨리고는 차갑게 쏘아붙였다.“강주환과 결혼하든가 아니면 그냥 파혼하고 그 아이를 데려오든가 하라고 했을 텐데. 너 내 말대로 했니?”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이어서 안효주를 매섭게 노려보며 말하는 안진강.“내가 분명 똑똑히 말했을 텐데. 내 말 대로 하지 않으면 넌 더는 내 딸이 아니라고.”안효주는 분노로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언니가 돌아와서 이러는 거예요? 그래서 이제 난 필요 없는 거죠? 그냥 내쫓아버리고 싶은 거죠?”“너...!”안진강이 호통을 쳤다.“효연이도 왔는데 이러지 말아요.”서연우가 그를 살짝 잡아당기며 말하자 그제야 안진강은 화를 삭이며 안효주를 보고 말했다.“앉아서 밥 먹어라.”효주는 배가 고프지도 않고 입맛이 없어 그냥 가버리려고 했으나 윤정월이 그녀를 말렸다.“아가씨, 사모님 회장님 화나게 하지 마세요.”효주는 그의 만류에 별수 없이 식탁 앞에 앉았다. 그녀는
남서훈은 싱긋 웃었다.아직 임신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맥으로 정확히 짚어 낼 순 없었지만 느낌은...“아마 남동생일 거야.”“아... 남동생...”양나나는 눈을 굴리더니 남서훈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남동생도 좋은 것 같아요. 동생 태어나면 저랑 엄마가 동생한테 의술도 가르쳐주고 아빠랑 사업하는 것도 배우고요. 그리고 남자애는 너무 응석 받아줄 필요도 없고 내가 맘껏 부려 먹을 수 있잖아요.”자기 뒤꽁무니를 쫄랑쫄랑 따라다니며 누나, 누나 하고 부르는 장면을 상상하니 양나나는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갔다.어떻게 생긴 남동생이 엄마 배 속에서 태어날까, 양나나도 잔뜩 기대하고 있었다.그러나 남서훈이 임신 다섯 달째로 접어드는 어느 날, 양나나는 실종됐다.양준회와 남서훈은 매일 안절부절못하여 속이 타들어 갔다.둘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세력을 동원해 전 세계 각 곳을 샅샅이 뒤졌지만 여전히 양나나의 행방을 찾지 못했다.양나나는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그때 양나나는 이미 8살이었다.남서훈은 딸을 찾지 못해 날마다 눈물로 얼굴을 적셨다. 그녀는 점점 야위어갔다.그걸 보는 양준회는 마음이 너무 아팠다. 그는 아내를 꼭 끌어안고 침통한 목소리로 말했다.“나나는 똑똑한 아이야. 당신이 의술과 독 쓰는 법도 잘 가르쳐줬으니까 별일 없을 거야. 나나는 너와 내가 낳은 딸이야. 전에 풍운파에 혼자 몰래 들어가서도 그 안을 마구 헤집고 다녔잖아.”아무튼 그는 양나나가 어디에 가서 어떠한 상황에 부딪히던 자신을 잘 보호할 거라고, 아무 일 없이 잘 살아 있을 거라고 남서훈을 위로했다.남서훈도 굳게 믿고 있었다. 양나나의 시체를 보게 되지 않는 한 그들의 딸은 세상 어딘가에 꼭 살아있을 거라고.그 후 넉 달이 지났다. 9달이 된 배는 불룩하게 튀어나왔다.양나나는 아직도 찾지 못했고 아무런 소식도 없었다.그러다 남서훈은 아들을 낳았다. 강보에 싸여 품에 안겨있는 아들을 보며 남서훈은 양나나를 그리워했다.“나나야, 대체 어디 있는 거야... 네 뒤꽁무
그리고 바로 그날 오후.양준회와 남서훈, 그리고 백나연과 성진훤, 이렇게 네 사람은 백무산을 찾아갔다.그를 만나자마자 양준회와 성진훤은 백무산한테 사과부터 했다.어리둥절한 백무산은 그들이 왜 갑자기 찾아와서 사과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그 후 양준회는 남서훈의 어깨를 와락 감싸안았고 성진훤도 보란 듯이 백나연의 손을 꼭 잡았다. 성진훤은 원래 양준회처럼 백나연을 확 끌어안고 싶었지만 미래 장인어른이 될 사람 앞이라 행동을 조심스럽게 하는 것이 좋을 듯하여 손만 잡았다.백무산은 더 혼란스럽고 얼떨떨해졌다.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그는 눈알이 튀어져 나올 듯하게 그들 넷을 번갈아 쳐다봤다.그때 양준회가 입을 열었다.“어르신, 우리 서훈이는 남자가 아니라 여자입니다. 남씨 집안의 특수한 사정으로 어릴 때부터 남장을 했던 것이고, 백나연 씨와의 혼약도 그저 소동극이었습니다. 이 일은 서훈이한테 책임 묻지 말아 주셨으면 합니다. 노여움이 있으시면 저한테 푸세요.”그 말에 백무산은 눈살을 찌푸렸다.남서훈이 여자라니... 어떻게 그런 일이?여자가 그의 딸과 약혼했다니, 막장도 이런 막장이 없었다.대체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란 말인가.백무산은 불같이 화를 냈다.그러자 백나연이 나섰다.“아빠, 이 일은 서훈이 탓이 아니에요, 제가, 제가 꼭 도와달라고 했어요.”“뭐야? 널 도와줘?”“네.”백나연이 설명했다,“아빠랑 오빠가 자꾸 소개팅 주선하는 바람에 제가 너무 골치 아파서 서훈이한테 도와달라고 부탁한 거예요, 나랑 약혼하자고. 그럼 아빠랑 오빠가 나한테 선 자리를 더는 강요 안 할 거 아니에요. 서훈이는 싫다고 했는데 내가 억지 써서 해주기로 한 거예요.”백나연은 자기 잘못이라고 매우 강조했다.그녀의 눈빛에 아픔이 언뜻 스쳐 지나갔다.“전 그때 결혼할 생각이 없었어요... 그리고 저랑 서훈이는 서로 약속했어요. 누가 먼저 운명의 상대를 만나게 되든, 그때 되면 파혼하기로요. 절대 서로의 앞날을 방해하지 않기로 했어요. 이제
그 순간 용준의 눈에서 눈물이 뚝 떨어졌다. 한 번 떨어지기 시작한 눈물은 그칠 줄을 모르고 펑펑 쏟아졌다.이게 얼마 만인가.그녀를 품에 꼭 끌어안고 싶은 생각을 항상 했었지만 엄두가 나지 않았다.그는 오늘 끝내 그녀를 안을 수 있었다. 팔을 뻗어 그녀를 껴안고 얼굴을 그녀의 어깨에 파묻은 채 용준은 또 한참을 울었다.예서는 그가 평생 사랑한 유일한 여자였다.그는 품속에 있는 그녀를 부드럽고 진실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난 네가 고마워. 넌 너무 용감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용감해. 옛날 일은 이미 다 지나갔어. 넌 이것만 기억해. 난 널 사랑하고, 네가 있어야만 내가 살 수 있어. 네가 있으니까 내가 괴물로 변하지 않은 거야. 아니면 난 모든 걸 다 망가뜨렸을 거야. 스스로도 혐오하는 그런 나쁜 인간으로 돼버렸을 거야.”예서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도 알고 있었다. 남자가 하려는 말이 뭔지 그녀는 모두 알고 있었다.이날, 둘은 아주 오랫동안 얘기를 나눴다.예서는 더는 용준을 불편해하지 않았다. 용준이 있으므로 하여 그녀는 더 빨리 회복될 것이었다.그렇게 예서가 하루하루 나아지고 있을 때. 남서훈과 양나나는 한 번 나가 돌아다니기로 했다.한 거리의 상가 앞을 지나가고 있는데, 남자애 몇 명이 갑자기 튀어나와 양나나를 에워쌌다.그들은 매우 들뜬 소리로 말했다.“대장! 살아 있었어요?”“너무 잘 됐어요!”“대장, 대장을 그 사람들이 데려간 후로 우린 계속 대장의 소식을 기다렸어요. 대장도 그 애들처럼 상처투성이가 돼서 돌아오지 않을까 하고 걱정했다고요.”“지금은 어떤 상황이에요? 대장이 후계자가 된 거예요?”양나나는 고개를 저으며 아니, 라고 대답했다.그리고 주변을 둘러싼 남자애들한테 말했다.“난 후계자 되는 것에 관심 없어. 풍운파에 지금 남아있는 건 의술을 배우기 위해서야.”양나나는 시선을 남서훈한테 향하며 그들한테 남서훈을 소개했다.“이분이 내 스승님이야, 우리 스승님 엄청 대단해!”그날, 양나나는 그
지난 날에 발생한 그 끔찍한 과거를 스스로 입에 올리는 용준은 피가 흘러나올 듯이 눈이 시뻘겋게 물들었고 감정이 폭발할 한계치까지 다다랐다.그는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애써 가라앉혔다.몇 분 후에야 그는 비로소 다시 입을 열었다.“그놈들은 죄다 죽여버려야 할 놈들이에요. 예서가 이쁘니까, 내 앞에서 예서를... 그때 예서는 이미 내 아이를 임신했는데...”용준의 온몸에서 난폭한 기운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그는 갑자기 돌아서서 주먹으로 나무를 세게 한 방 내리쳤다. 그 바람에 나뭇가지가 흔들리며 낙엽이 우수수 떨어졌다.그 큰 나무가 흔들릴 정도면 얼마나 센 펀치를 날렸는지 알 수 있었다.그의 손마디도 살이 찢겨나가 새빨간 피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는 감각을 느낄 수 없는 사람처럼 상처에 무덤덤했다. 아마도 손보다 마음이 더 아팠을 터였다.용준은 그때 일만 생각하면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지고 심장이 뜯겨나가는 것처럼 아팠다. 예서가 피투성이가 된 채 텅 빈 눈으로 누더기 인형처럼 맥없이 쓰러져서 누워있던 참혹한 장면만 머릿속에 떠올리면 그놈들을 무참하게 도륙을 내고 싶었다.그리고 그는 그렇게 하였다.풍운파의 보스가 된 후 첫 번째로 한 일이 바로 예서의 복수를 하는 것이었다.그놈들의 범죄증거를 전부 찾아내 한 명도 빠짐없이 직접 처단했다.그때 그들은 무릎을 꿇고 울며불며 용서를 빌었다. 막다른 길에 몰려 살려고 해도 안 되고 죽으려고 해도 죽지 못할 때, 그들은 찌질이같이 눈물 콧물을 쥐어짜며 애원했다. 제발 살려달라고, 잘못했다고.정작 그들은 용준이나 예서한테 그런 자비를 베푼 적이 없는데 말이다.용준의 목소리는 점점 차가워졌다.“그것들이 나와 예서의 모든 것을 망치고 날 시궁창에 몰아넣었죠. 여전히 난 이렇게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생지옥에서 살고 있어요. 그것들은 백번 죽어도 마땅해요!”그러나 그놈들이 죽는다고 해서 상처가 아무는 것은 아니었다.용준은 피로 물든 주먹을 으스러지게 잡으며 계속 말을 이어갔다.“그들은 예서가 그들이 한
용준은 원래 정직한 사람이었고, 금호의 일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그는 어둠이 없는 밝은 햇빛 아래에서 사는 반듯한 사람이었다.그러나 일부 국제조직에서는 용준을 불안하게 여겼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고, 심지어 그가 의심되어 오랫동안 그에게 전자발찌를 채웠다.아무 일도 저지르지 않았지만 그는 범죄자 취급을 당했고, 그리하여 생활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더더욱 생각지도 못한 건, 그 당시 그와 깊은 사랑에 빠져있었던 여자친구마저 누구한테 몹쓸 짓을 당하게 된 것이다.그러므로 용준이 점점 나쁘게 변하여 나중에 어떤 일을 저지르게 되었던, 모두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다.요 몇 년 동안 풍운파는 용준의 관리하에 동남아에서 제일 큰 폭력조직으로 성장하였고, 닥치는 대로 무슨 일이나 다 저지르는 편이었지만 딱 한 가지 철칙이 있었다. 그건 바로 노약자와 여자, 아이들은 건드리지 않는다는 거였다.의리도 지켰다.하지만...“그건 중요하지 않아요.”남서훈이 말했다.“이 세상은 원래 흑과 백으로 나뉘는 게 아니니깐요. 동남아는 원래 상황이 어수선하잖아요. 무장세력과 폭력조직이 공존한다는 사실을 일시적으로 바꿀 수도 없어요. 오히려 풍운파와 같은 조직이 있다는 게 더 도움이 될지도 몰라요.”양준회가 그 말에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어떤 측면으로 보면 용준은 꽤 마음에 드는 구석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 둘은 원수지간이다. 양준회가 그의 아버지를 죽였다. 비록 지금까지는 아무 짓을 안 했어도, 또 그가 원래 정직한 사람이었다고 해도, 풍운파를 이렇게 여러 해 동안 다스린 용준이 지금은 어떤 사람인지 누구도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그리하여 양준회는 안심할 수 없었다. 여전히 남서훈과 같이 풍운파를 즉시 떠나려고 했다.“하지만 나나도 여기 있어요.”남서훈이 예상치도 못한 폭탄을 터트렸다. 양준회는 깜짝 놀랐다.양나나가 여기에 있다는 건 상상도 못 했다.하지만 놀란 것도 잠시, 그는 바로 말했다.“그럼 나나도 같이 떠나면 돼.”갇힌 두 달
강하영이 부케를 내던지는 일순간 우양주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 부케를 향해 몸을 날렸다. 공중에서 부케를 잽싸게 낚아채는 그의 모습이 정지화면인 양 사람들의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부케를 손에 쥔 그다음 순간, 그는 부케와 함께 바다에 떨어졌다.모두가 경악했다.강하영은 크루즈 난간 쪽으로 달려가 바다에서 허우적대는 남자를 보며 입을 떡 벌리고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선원들이 즉시 튜브를 던졌고, 또 어떤 사람들은 즉시 뛰어내려 구조하려 했지만 강주환이 그들을 말렸다.왜 구하지 말라는 건지 이해 안 된다는 듯한 눈빛으로 윤성아는 강주환을 쳐다봤다.그러다 팔로 물살을 가르며 바다에 둥둥 떠 있는 우양주가 크루즈 위에 있는 강하영을 향해 큰 소리로 외치는 걸 듣고 왜 그러는지 알 것만 같았다.“여보, 어쨌든 내가 부케 받았으니까 당신 나랑 결혼식 치러야 돼요! 안 그러면...”그 뒤엔 위협적인 말이 따라야 하는데 우양주도 무엇으로 강하영을 협박할 수 있을지 몰랐다. 남은 건 자신의 이 몸뚱이 하나뿐인데...“안 그러면 나 안 올라갈 거야. 여기 바다에 계속 있을 거야, 결혼식도 못 하는데 그냥 빠져 죽지 뭐.”강하영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바다에 빠진 남자를 까만 눈동자로 차분하게 내려다보며 끝내 입을 열었다.“빠져 죽고 싶으면 그렇게 해요. 안 말려요.”“...”우양주는 서럽게 그녀를 쳐다봤다.역시나 아내는 매정했고 자신에 대해 애정이 없었다.그러나 그때 윤성아 곁에 서있는 강주환이 무덤덤하게 한마디 했다.“내 기억이 맞다면, 이 바다에 상어가 출몰한다고 했어요. 식인 상어.”강주환은 고개를 돌려 강하영한테 말했다. “지금 아직 상어가 오지 않아서 그렇지, 나타나기만 하면 한꺼번에 열 몇 마리씩 무리 지어서 나올 거예요. 그게 게네들 습성이라. 이야... 쟨 아마 그러면 뼛조각도 남지 않겠네.”“...”그 말에 강하영이 급해 났다. 말투도 전처럼 차분하고 담담하지 않았다.난간에 기대어 우양주를 향해 내리 소리 질렀다.“뭐
미리 준비한 축사를 울먹이며 끝까지 다 읽고는 원이림을 향해 볼멘소리를 했다.“너 이 놈 자식, 내가 죽을 때까지 네가 결혼하는 걸 못 보는 줄 알았다. 아이고... 드디어 결혼하는구나. 너도 이제 가정이 생겼어.”“너 똑바로 들어. 은진이한테 평생 잘 해줘야 돼, 아내한테 잘 하는 건 우리 집안 내력이야. 나도 네 엄마 말을 엄청 잘 들었어. 너도 똑같아, 알겠니? 오늘부터는 은진이한테 더 잘해야 돼, 말도 잘 듣고, 은진이부터 생각하고 배려해 주고. 은진이가 조금이라도 맘고생을 하게 되는 날엔 내가 너 가만 두지 않을 거야, 알겠어?!”원이림은 새카만 눈동자로 여은진을 깊게, 애틋하게 들여다보며 그녀와 깍지를 낀 두 손에 힘을 더 주었다.“걱정 마세요. 난 평생 우리 여보 맘고생 안 시킬 거예요.”여보라는 호칭이 지금 이 시각부터 명실상부하게 되었다.원이림은 그녀의 손을 잡고 크루즈 가장자리로 걸어갔다. 그리고 미리 준비된 데이지 꽃을 바다로 뿌렸다. 하얀 꽃잎들이 파도에 실려 멀리 떠내려갔다.둘은 거기에 선 채 눈물을 머금고 울먹이며 말했다.“어머니, 아버지. 저 너무 행복해요. 우리 너무 행복해요.”결혼식의 마지막을 장식할 부케 토스하는 시간이 다가왔다.강주환과 윤성아, 그리고 나엽과 안효연은 모두 기혼자로서 나가지 않고 구경만 했다. 하객 중에 미혼인 사람들이 많이 몰려들었다.우양주도 강하영의 손을 잡고 그리로 향했다.강하영은 몸을 뒤로 빼면서 말했다.“우린 결혼했는데 왜 부케를 받으러 가요? 다른 사람한테 갈 좋은 축복을 왜 우리끼리 받겠다고 달려들어요, 쓸데없이. 그렇게 할 일 없고 힘이 남아돌면 내가 다른 일 하게 해 줄게요.”“무슨 일?”강하영은 푸른 바다를 향해 눈을 힐끔 하더니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당신 수영 좋아하잖아요. 내가 엉덩이 확 걷어찰 테니까 바다로 들어가서 수영이나 할래요?”“...”저번에 강하영과 같이 수영하면서 그녀가 자신한테 새빨간 수영팬티를 사줘 창피를 당하고 나서부터 우양주는 수영하는
여은진은 부드러운 눈빛으로 예쁘게 미소 지었다.“나 다 알아요.”지난 1년 동안 그가 어떻게 해왔는지 잘 아는 그녀는 더 이상의 맹세와 언약 같은 건 필요 없었다.“응!”여은진을 안은 채로 원이림은 그녀의 여린 입술에 쪽쪽거리며 뽀뽀를 했다.장내의 플래시 세례가 정신없이 터지는 가운데 그는 돌아서서 무대 아래에 앉아있는 모든 사람한테 당찬 목소리로 선포했다.“오늘 저의 이 행복한 순간을 지켜본 여기 계신 모든 증인 분들한테 제가 선물을 준비할 생각입니다. 나중에 저희 베린 그룹에 가셔서 선물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번 달 20일에 저와 은진이의 결혼식이 있을 예정이니 여러분들께서 모두 와주셨으면 좋겠습니다.”말하고 나서 그는 여은진을 안고 시상대를 내려가려 했다.여은진이 내려달라고 했지만 그는 내려놓지 않았다. 그렇게 안은 채로 시상식장을 걸어 나와 차에 올라탔다.럭셔리한 롤스로이스가 천천히 내달리고 있었다.여은진은 아직도 그의 품에 안긴 채로 있었다.“이번 달 20일에 결혼한다고요? 그럼 열흘밖에 안 남았는데, 너무 촉박하지 않아요?”그녀가 눈을 들어 바라보며 물었다.“아니, 전혀.”그녀의 얼굴에 시선을 떨구며 원이림이 말했다.“시간이 모자라지만 않았으면 내일에라도 당장 결혼식 치르고 싶어.”반년이 넘는 동안, 그는 매일 결혼식에 관한 모든 것을 준비하고 있었다.결혼반지, 웨딩드레스, 그리고 결혼에 필요한 모든 물품과 디테일한 사항들을 전부 준비하고 체크했다. 그녀가 결혼을 동의하는 그 순간만 기다리고 있었다.그리고 그 순간이 끝내 다가왔다.웨딩사진을 찍는 것 외에는 크게 시간을 들일 일도 없었다.다만 여은진이 임신했기 때문에 너무 빠듯하게 스케줄을 잡지 않고 싶었을 뿐이다.결혼식에 참석할 하객을 초대하는 일도 있긴 하지만 10일이면 충분했다.촉박하지 않을뿐더러 시간적 여유가 있는 편이었다.“여보, 우리 지금 바로 혼인신고 하러 가.”원이림은 한시라도 더 기다리고 싶지 않았다. 기사한테 얘기하여 구청으로 가자
원이림은 금방 샤워를 마친 여은진한테로 다가가 그녀의 팔을 끌어당겨 품에 꼭 끌어안았다. 그다음에는 당연히 침대로 향했다.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수순을 밟아갔다.한창 격렬해지려던 찰나, 원이림은 짧게 비명을 질렀다. 크게 지르진 않았다. 본능적으로 소리를 내질렀지만 그는 이내 입을 다물었다. 여은진이 알아차리지도 못한 새에 살에 푹 찔린 그 가는 물건을 빼내야겠다고 머릿속으로 빨리 반응했다.하지만 역시 늦었다.여은진이 몸을 일으켜 스탠드를 켰고, 어두웠던 방안은 환한 빛으로 채워졌다.이어 급히 그를 살피던 여은진은 원이림의 엉덩이에 바늘이 하나 꽂혀있는 걸 발견했다.짧고 가는 옷을 꿰맬 때 쓰는 그런 바늘이었다.여은진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는 얼굴로 남자를 보며 물었다.“어떻게 바늘에 찔릴 수 있어요? 침대에 왜 바늘이...”“...”꽂힌 바늘을 빼며 원이림은 이야기를 얼버무렸다.“괜찮아, 그냥 바늘인데 뭐. 별로 아프지도 않아.”그러고는 또 다짜고짜 몸을 뒤집으며 여은진을 몸 아래로 깔았다. 고개를 돌리지도 않고 손을 뻗어 스탠드를 끄고 그녀의 입술을 거칠게 탐했다. 잠깐 벌어진 에피소드를 그녀의 머릿속에서 지워버리고 진행 중이었던 일을 마무리하려는 의지였다.하지만 여은진은 그의 키스를 받아내면서도 오후 그의 당황스러운 표정과 난데없이 침대에 나타난 바늘을 함께 떠올렸다. 정신을 쏙 빼놓으려는 지금의 행동도 분명 그것과 연관이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잠깐만.”여은진은 원이림을 밀어내고 다시 한번 스탠드를 켰다.의심이 부풀어 오른 눈으로 빤히 그를 노려봤다. “똑바로 말해요. 아까 그 바늘로 수작 부린 거 맞죠? 말해요, 몇 개나 찔렀어요?”“...”끝내는 발각되었다. 원이림은 이실직고했다. 강주환이 원흉이라고, 그가 시켜서 했다고 불었다.“여보, 나 며칠 전에 운봉 비즈니스 회담에 참석했는데 거기서 강주환을 만났어. 그 자식이 날 비웃는 거야. 그리고 이렇게 하라고 아이디어를 내줬어. 바늘로 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