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정재는 조용히 모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시선이 점점 모호해졌다.너무 넋을 잃은 바람에 손에 쥐고 있던 캣 백팩이 땅에 떨어지면서 샴고양이가 몇 번 울부짖더니 발톱으로 백팩을 긁기 시작했다.이때 힘센 팔 하나가 나타나면서 윤정재를 부축했다.윤정재는 어안이 벙벙하여 고개를 돌려 최연준의 복잡한 눈빛과 마주쳤다.“너...”“회장님.”최연준이 백팩을 주워 들고 물었다.“안 들어가세요?”윤정재의 눈시울은 아직도 붉어 있었고 몇 번이나 심호흡하고서야 기분이 안정되었다.최연준은 왠지 모르게 그를 동정했다.사실 강서연이 이 일을 꾸밀 때부터 마음에 걸렸지만, 흥분한 그녀의 모습을 보고 차마 방해할 수가 없었다.오늘은 윤정재와 윤문희가 만나는 날인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 계속 여기서 지켜보고 있었다.방금 윤정재가 충격을 받고 참회하는 모습을 보니 최연준의 마음속에는 오묘한 감정이 뒤섞였다.최연준이 항공 사고를 당한 후 윤정재는 그에게 특효약을 보내 치료해 주었다.입으로는 임씨 가문의 일에 상관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임수정의 병을 치료해 줬다.할아버지가 쓰러지던 날에도 처음에는 모른 척하더니 또 바로 약상자를 들고 최씨 빌라로 달려왔다.강서연을 위해서였지만 최재원의 위기를 모면해 준 것도 사실이다.윤제 그룹이 매년 생산하는 그 값싸고 좋은 약품들이 얼마나 많은 생명을 구했는지는 말할 것도 없다.그러고 보니 윤정재는 좋은 사람이다.윤정재의 악행은 아마 윤문희만 몸소 겪었을 것이다.사람은 정말 복잡해서 한두 가지 일로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딱지를 붙일 수 없다.어른들의 세계에는 원래 명확한 흑과 백이 존재하지 않으며 대부분은 회색이다.“나...”윤정재는 한동안 침묵을 유지하고 다시 입을 열었을 때 목이 메어 있었다.“나는 안 들어갈게. 서연이가 이 고양이를 좋아할 것 같은데.. 네가 대신 전해주렴.”“이 고양이를 좋아하는 건 서연이가 아니에요.”최연준은 의미심장하게 윤정재를 바라보았다.“고양이를 좋아하는 건 저의 장모님 윤문희예
“그래요...”강서연이 크게 실망했다.“회장님께서 다음에 만나자고 했어.”최연준은 장인어른을 대신해 말했다.“다음에 컨디션이 좋아지면 꼭 장모님이랑 만나서 고양이 키우는 법에 관해 얘기할 거야.”“알겠어요.”강서연은 입을 삐죽 내밀고 핸드폰을 꺼내 들여다보며 곤혹해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아저씨께서 안 오면 문자라도 보내줬어야지...”“아마 회장님께서 너무 바빠서 잠시 깜빡했을 수도 있어.”최연준은 갑자기 강서연을 품에 안고 그녀의 머리를 주물렀다.강서연은 남자의 뜨거운 기운이 느껴졌지만 공공장소에 있는 강서연은 조금은 민망한 듯 그를 째려보았다.“놔주세요!”“서연아.”“왜 그래요?”최연준은 마음이 짠해 왔다.강서연이 흰 웨딩드레스를 입고 비바람 속에서 진흙탕 길을 걷는 모습을 떠올렸다.강서연이 판잣집에서 몸을 움츠리고 겁을 먹은 모습을 떠올렸다.강서연이 어머니의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대신 시집을 가겠다고 했다는 것, 혼수가 없어서 몰래 최연준의 가보를 팔려고 했지만 마지막 순간에 의연하게 되찾았다는 것...최연준은 강서연을 더 꽉 껴안았고 코끝이 시큰거리는 느낌이 들었다.“서연아.”최연준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당신이 전에 못 받은 사랑, 앞으로 내가 다 보상해 줄게.”“뜬금없이 무슨 소리 하는 거예요?”강서연은 어안이 벙벙했다.최연준은 웃으며 그녀를 진지하게 바라보았다.최연준도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몰랐고 그저 마음이 아플 뿐이다.멀지 않은 곳에 있던 윤문희가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윤문희는 미간이 약간 찌푸려졌는데 오늘따라 심장박동수가 매우 비정상적인 것 같다.모든 게 이상한 것 같다......첫 만남이 불발되자 강서연은 두 번째 만남을 계획했다.그러나 최근에 일이 바쁜 데다가 자질구레한 일이 많고 스트레스가 많았기 때문에 이 일을 잠시 뒤로 미뤘다.이날 어진 엔터테인먼트에 들어가자마자 바로 하 매니저가 강서연과 인사를 나누었다.“좋은 아침이에요.”강서연이 웃으며 말했다.“매니저님은 항
강서연은 얼마 전 김자옥이 건네준 리스트가 생각났다.위에 적힌 이름은 모두 어진 엔터테인먼트에서 잠재력이 있는 연예인들이고 아직 대스타로 이름을 날리지 않았지만 앞날을 기대할 수 있는 유망주들이다.강서연은 이번 오디션이 리스트에 적힌 연예인들을 위해 준비된 것이라고 단번에 알아차렸다.“네, 알겠습니다.”강서연이 하 매니저를 보며 말했다.“그런데 한 가지 더 여쭤볼 게 있습니다.”“말씀하세요.”“김 대표님께서 어떻게 이런 사람과 손을 잡을 생각을 했을까요?”강서연이 인상을 찌푸리자 하 매니저가 웃으며 설명했다.“김 대표님께서 같이하고 싶어 하는 게 아니라 시장이 선택한 것이에요. 이번에 투자한 작품은 대작이기 때문에 국제에서 수상하려면 반드시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감독을 써야 해요. 오승준이 찍은 영화는 볼품이 없지만 그래도 같은 말을 하고 싶어요... 이번에 운이 좋아서 대상을 한 번 받고 유명해졌어요. 오승준은 카메라 다루는 데에 있어 확실히 재기가 남보다 뛰어나서 곽보미 감독조차도 공개적으로 극찬을 했었어요.”“그렇군요...”강서연이 생각에 잠긴 듯 고개를 끄덕였다.곽보미가 칭찬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재능 면에서는 문제가 없을 것이다.그러나 문제는 대부분 사람은 덕망이 지위에 걸맞지 않은 것이다.“서연 씨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하 매니저가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이 영화는 공동 제작이어서 감독 한 명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곽 감독도 참여했고 정섭 엔터테인먼트의 지분도 있어서 그쪽에서도 사람을 보낼 것입니다. 오승준은 그중 한 명일 뿐이지 큰 그림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그럼 다행입니다.”강서연이 웃었다.그녀는 이런 감독을 데려와서 어진 엔터테인먼트의 이미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까 봐 걱정하는 것은 사실이다.며칠 뒤면 연예인 오디션 사전미팅이 열리는데 강서연이 직접 사회를 본다.강서연은 일찌감치 치밀한 사전 계획을 세워 사전미팅 당일에 전체 분위기를 컨트롤하고 차분하고 태연하게 오디션 절차부터 소개를 시작
회의는 곧 끝나갔다.심호흡하던 강서연은 갑자기 자신을 계속 지켜보는 이상한 눈빛을 느꼈고 주위를 둘러보던 중 오승준의 웃는 것 같기도, 웃지 않는 것 같기도 하는 표정과 눈이 마주쳤다.그 순간 강서연은 마음이 매우 불편했다.오승준은 강서연을 향해 웃었고 예의상 강서연도 억지로 웃으며 서류를 들고 황급히 자리를 떴다.“강서연...”오승준은 자리에 앉아 그녀가 떠나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역시 어진 엔터테인먼트답게 실속이 있는 곳이다.오늘 본 여자 연예인은 전부 각자의 매력 포인트가 있지만 오승준이 보기에는 다들 강서연보다 눈부시지 않았다.여러 작품을 촬영하며 만난 미녀들도 불계기수지만 정작 강서연처럼 이목구비도 예쁘고 몸에는 잔잔한 소외감이 있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웃지 않을 때는 차갑고 도도하며 웃으면 겨울날의 부드러운 햇살 같다.오승준은 강서연의 이름이 귀에 익다고 생각했다.알아보니 강서연 역시 강주 출신이었다. 그제야 강명원에게 두 딸이 있었던 것 같고 그중 한 명이 바로 강서연이었다는 것이 문득 떠올랐다.오승준은 건물에서 나와 아무도 없는 빈터를 찾아 전화를 걸었다.“형님.”오승준이 웃자 얼굴이 온통 살덩어리로 뒤덮였다.“요새 잘 지내고 있어요?”“대 감독님께서 저한테 연락을 해주다니?”오승준은 전화기 너머에서 히죽히죽 웃었다.오승준과 강명원은 예전부터 아는 사이다. 오승준이 아직 유명하지 않을 때 강명원이 몇 푼을 투자한 덕분에 영화를 찍을 수 있었다.비록 극장에서 상영되지는 않았지만 일부 성인 사이트에 올려 적지 않은 돈을 벌었다.오승준이 유명해진 이후로는 강명원과 연락을 끊었고 한때 강명원에게 배은망덕이라고 욕을 먹기도 했다.이제 다시 강명원에게 전화를 걸자 오승준은 그의 목소리에서 비꼬아 말하는 것을 들었다.“형님, 무슨 말을 그렇게 하세요!”오승준이 웃으며 말했다.“제가 요즘 좀 바빠서 시간이 없어서 연락을 못 했어요.”“요건만 말하세요. 저랑 이런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요
오승준은 회의 중 몰래 찍은 강서연의 사진을 강명원에게 보냈다.선명하게 나오지는 않았지만 강명원은 사진 속의 사람이 강서연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지금의 강서연은 못난 오리가 백조로 거듭난 것처럼 고귀하고 예쁜 모습으로 자랐다.강명원은 화가 나서 하마터면 숨이 넘어갈 뻔했고 떨리는 손으로 사진을 꺼버렸다.“형님 딸 맞죠? 내가 사람 하나는 잘 봐서요.”“맞아요.”강명원은 말투가 덤덤했다.“왜 물어보는 거예요?”“별일 아니에요. 그냥 궁금해서 물어봤어요.”“흥.”강명원은 이 궁금함 안에 얼마나 많은 의미가 담겨 있는지 알고 있다.“서연이는 이미 시집갔어요. 요새 어떻게 지내는지 모르겠어요.”“네?”오승준은 미간을 찌푸렸다.“이렇게 젊은 나이에... 시집을 갔다고요? 어느 집안에 시집갔어요?”강명원은 이를 악물고 말했다.“범죄자예요!”오승준은 그 말을 듣고 더욱 충격을 받아 말을 잇지 못했다.전화가 끊어질 때까지 한참 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오승준은 몇 년 동안 강명원과 왕래하는 상황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예전에 술자리에서 강명원이 술에 취해 하소연했던 적이 기억난다. 어르신들끼리 혼약을 맺었는데 지금은 그 집안이 산산이 흩어져 버렸고 분발하지 않은 아들 하나만 남아 싸움질을 하다가 걸핏하면 감옥에 들어가곤 한다...오승준은 갑자기 마음속으로 기뻐했다.그는 진작부터 강명원이 이 혼외자식을 싫어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싫어할 줄은 생각도 못 했다!자기 딸이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걸 보고만 있다니!그렇다면 그 여자는 틀림없이 범죄자 남편 곁에서 탈출하기 위해 오성으로 도망쳐온 것이다.자신의 우월한 조건과 재능으로 어진 엔터테인먼트에 채용되어 오늘에 이르기까지 차근차근...강서연은 배경이 없고 심지어 친정집조차도 그저 장식에 불과하다.오승준이 강서연을 어떻게 해도 그녀는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어쩌면 돈 때문에 굴욕을 참고 그를 따라갈지도 모른다.오승준은 강서연에게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고 주름이 가득한
오승준은 갑자기 등 뒤가 으스스한 것을 느꼈다.뒤돌아보니 아무것도 없었고 녹화 현장에는 질서가 정연했다.오승준은 심호흡을 하고 방금 최연준의 눈빛에 놀랐다고 생각했다.하지만 멀리 있는 방에서는...“이 쓰레기야?”육경섭은 다리를 꼬고 양가죽 소파에 기대앉아 있다. 손에는 위스키를 반쯤 마신 술잔을 들고 있었고 입가에는 경멸한 웃음이 피어올랐다. 최연준이 물었다.“이 사람 아세요?”“오승준이죠?”육경섭이 웃으며 말했다.“전에 강주에 있을 때 아는 형제에게서 들은 적이 있어요.”최연준이 궁금해서 물었다.“어떤 사람이에요?”“그런 영화를 찍는 사람이 무슨 좋은 사람이겠어요!”육경섭은 얼굴이 일그러지면서 말했다.“이 사람이 종종 감독의 신분으로 여대생들을 속였다고 들었어요. 많은 예술 학원 학생들이 오승준의 말에 넘어가서 돈도 뜯기고 노출도 당했대요. 그 일을 당한 여학생들은 사회의 여론에 못 이겨 경찰에 신고하지도 못하고 흐지부지됐대요.”“뭐라고요?”배경원이 크게 소리를 질렀다.“이렇게 역겨운 사람이 있다니! 경섭 형님은 왜 그런 사람을 그냥 놔뒀어요?”육경섭은 가볍게 웃으며 위스키를 가득 채웠다.“그 사람 영화 제작비 누가 대줬는지 알아요?”배경원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고개를 저었다.육경섭은 최연준을 바라보며 또박또박 말했다.“강명원이에요!”최연준은 눈빛이 어두워지고 순간 컵을 쥐고 있던 손가락에 힘이 들어갔다.육경섭이 이 사람 이름을 말하지 않았더라면 최연준은 거의 그 존재를 잊어버렸을 것이다.“설마... 강명원이 서연이에게 또 무슨 음모를 꾸미고 있는 것일까?”최연준은 경각심을 가지고 말했다.“강명원이 오승준을 보낸 것일까?”“형은 걱정이 너무 많은 것 같아요.”유찬혁이 최연준을 보며 웃었다.“강명원이 최근에 경제적인 소송을 몇 개 치렀고 그 회사도 망해가서 곧 은행에 넘길 지경이라고 강주 쪽 로펌 사람들에게서 들었어요.”그제야 최연준의 긴장된 얼굴이 겨우 풀렸다.다른 세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웃음을
강서연은 방금 샤워를 마치고 머리가 아직 마르지 않은 상태여서 향기를 머금고 욕실에서 나왔다.강서연이 남자를 향해 한 번 웃자 최연준의 세상은 순식간에 현란하고 다채로워졌다.“왜 이렇게 늦게 왔어요!”강서연은 사랑스럽게 최연준 옆에 다가가 두 팔을 그의 허리에 감쌌다.“내가 가서 야식을 만들어 줄게요!”“괜찮아. 지금 배고프지 않아.”최연준의 눈빛은 그윽했고 목소리는 낮고 매혹적이었다.홈웨어의 질감은 부드럽게 강서연의 몸에 밀착되어 있고 불빛 아래에서는 약간의 솜털 같은 질감도 있었다.최연준은 미동도 하지 않았는데 몸 안에 짐승이 꿈틀거리는 것 같았다.“왜 그래요?”강서연이 물었다.최연준은 말을 하지 않고 웃기만 했다. 머리카락에 물이 뚝뚝 떨어지는 것을 보자 욕실로 들어가 헤어드라이어를 꺼내 강서연을 편안하게 소파에 앉히고 자신은 뒤에 서서 머리카락을 말려줬다.최연준의 두 손은 평소에는 강인하고 힘이 세지만 그녀를 대할 때는 항상 부드러웠다.강서연은 따뜻한 바람에 약간 졸음이 몰려왔다.그녀는 눈을 지그시 감고 있었고 헤어드라이어가 멈추자 최연준의 손이 어깨 위에 얹힌 것을 느꼈다.강서연은 웃으며 최연준의 손을 잡으러 갔고 서로 호흡이 맞게 깍지 손을 꼈다.최연준은 강서연을 끌어올려 품에 안았다.“졸려?”최연준은 총애한 눈빛으로 웃으며 그녀를 안고 침실로 성큼성큼 걸어갔다.동작은 부드럽게 큰 침대 위에 놓아 줬다.그다음엔 최연준은 그녀의 위로...강서연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마치 잘 익은 복숭아처럼 최연준을 꼬드겼다.그러나 막 입맞춤을 하려던 찰나 강서연이 무언가를 떠올려 급히 최연준을 밀어냈다.최연준이 반응도 하기 전에 품에 안고 있던 사람이 달아났다.“서연아... ”“보여줄 게 있어요!”강서연의 정신은 다른 데에 팔려있는 게 분명했다.최연준은 한숨을 내쉬며 주먹으로 침대를 한 번 치고는 강서연이 돌아올 때 간신히 미소를 지었다.“뭘 보여 준다고?”“이거예요!”강서연은 서류 한 장을 건네며 뿌듯하게 웃
“오승준이 이번에 또 이상한 장면을 찍어서 작품 전체에 영향을 미칠까 봐 조사해 봤어요!”강서연은 똘망똘망하게 최연준을 바라보며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우리가 이 영화에 투자한 돈이 얼만데요! 저런 사람 때문에 어진 엔터테인먼트의 이름에 먹칠하면 안 돼요! 그래서 뒷조사를 해보고 싶었는데 정말 뭔가를 찾을 수 있을 줄은 몰랐어요! 역시나 정직하지 않고 상까지도 속아서 받은 거예요!”최연준은 고개를 끄덕였다.이때 유찬혁도 핸드폰으로 자료를 보내왔다.대충 훑어보니 강서연이 알아본 것과 기본적으로 같은 상황이었다. 그 뒤에는 몇 가지가 더 있었는데 바로 그 젊은 감독들의 실명 제보가 통하지 않았던 이유가 적혀있다.당시 오승준은 이미 상을 받았기 때문에 언론에서는 소란을 피우지 않으려고 너도나도 암암리에 이 뉴스를 덮어버렸다.양심이 있는 극소수의 언론만 이 사실을 폭로했다.하지만 그 매체들은 소형 기업들이라 힘이 없어서 더 많은 관심을 끌지 못했다.사실 최연준에게 있어서 이 사람의 표절 여부는 부차적이다.주요하게는 강서연을 바라보는 눈빛이 최연준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그는 속으로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답안이 나왔다.최연준은 고개를 돌려 여자를 보더니 손으로 끌어와서 그녀를 품에 안았다.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여자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당신 참 대단해!”강서연은 먼저 멈칫하고는 바로 달콤한 미소를 지었다.사업상의 성공은 그녀로 하여금 상당히 성취감을 느끼게 했다.그러나 최연준의 시시각각 쏟아지는 칭찬만이 그녀로 하여금 마음속 깊이 행복하게 만들었다.“당신 언제 이렇게 말을 잘하게 됐어요?”강서연은 두 손을 내밀어 최연준의 얼굴을 잡고 좌우를 보았다.남자는 변함없이 조각상같이 잘생겼고 미간에는 범상치 않은 포스가 풍겼다.이 입은 예전에 비해 많이 달아져서 매일 꿀을 바르고 말하는 것 같았다.“당신은 예전에 말수가 적었어요.”강서연이 웃으며 말했다.“그래?”“맞아요. 당신은 온종일 뾰로통하게 있었고 신혼 첫날부터 아침밥을 만들
“정 선생님, 아직도 진실을 말할 생각이 없으신가요? 영미가 대체 얼마나 좋은 조건을 내걸었기에, 백인서를 모함하는 데 가담한 거죠?”정대명은 눈동자를 굴리며 머뭇거렸다. 어디까지 입을 열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당신이 인서의 양아버지라는 말은 사실입니까?”“그... 그건 두말할 필요도 없이 진실이야!”“그렇다면 딸을 키운 정도 있을 텐데 왜 모함하려 하신 거죠?”정대명의 몸이 떨렸고 시선은 다른 곳으로 향했다.“정 선생님, 이제 영미조차도 당신을 지켜줄 수 없습니다. 진실을 말하지 않으신다면 감옥에서 나올 수 없게 될 겁니다!”그때, 바깥에서 소연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강소아는 정대명을 매섭게 노려본 뒤, 사람을 시켜 문을 잠그도록 지시했다.소연화는 최군형과 최지용을 데리고 들어왔다.“여보!”최군형은 강소아를 보자 반갑게 웃으며 말했다.“권온유와 정승우, 두 아이 모두 찾았어!”“정말인가요?”“그래.”최지용도 후련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드디어 인서의 억울함을 풀 수 있게 됐어.”“인서는 원래부터 결백했어요!”강소아가 웃으며 말했다.“누가 아이들을 찾았나요?”“아이들이 어찌나 영리하던지, 스스로 빠져나왔더군.”최군형이 미소를 지으며 설명했다.“그날 밤, 우리가 정대명을 찾았을 때, 정대명의 머리가 다쳐 있었던 거 기억하지? 그 틈을 타 도망쳤대. 길에서 착한 운전사분을 만나 도움을 받았고 그 운전사가 집까지 데려다줬어. 차 안에서 정승우가 휴대전화를 빌렸는데 다행히도 권온유가 자기 엄마 전화번호를 기억하고 있어서 덕분에 바로 연락할 수 있었어. 아마 20분 후면, 두 아이 모두 안전하게 권씨 집안에 도착할 거야.”“정말 놀랍군요...”강소아는 감탄이 담긴 눈빛으로 답했다.“이렇게 어린아이들이 그런 상황 속에서 침착함을 잃지 않았다니. 역시 아이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겠어요! 저도 이제부터 가원이에게 제 전화번호를 외우게 해야겠어요!”“그런 말 하지 마!”최군형이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집으로 돌아온 영미의 마음속엔 불안이 가득 찼다. 그러다 문득 시장 선거의 마지막 대결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는 사실이 스쳤다.지금이라도 폭탄 같은 뉴스가 터진다면 사람들의 관심은 순식간에 다른 곳으로 쏠릴 것이 분명했다.그리고 그 뉴스가 백인서와 관련된 것이라면 금상첨화일 것이다.영미는 잠시 생각하더니 입가에 자신감 넘치는 차가운 미소를 띠며 휴대전화를 들었다. 사람들의 눈을 피해 조용히 기자와의 약속을 잡았다.“조순철 씨의 외손녀가 실종된 사건, 알고 계십니까?”카페의 한구석, 눈에 잘 띄지 않는 자리였다. 영미는 얼굴을 거의 가릴 만큼 넓은 모자를 쓰고 있었다.맞은편에는 기자는 커피잔을 천천히 저으며 영미의 말을 주의 깊게 들었다.“이건 단순한 어린이 실종 사건이 아닙니다. 누군가 계획적으로 벌인 일입니다.”“영미 씨.”기자가 녹음기를 켜며 말했다.“아시는 내용을 모두 말씀해 주세요. 자료는 제가 정리해 영미 씨 말씀대로 보도하겠습니다.”“좋아요.”영미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제가 알고 있기로, 권씨 가문의 어린 딸을 데려간 사람은 바로 그 공익학교 프로젝트에 있던 한 학생입니다. 그리고 그 학생은 백인서의 지시를 받았죠!”녹음기를 쥔 기자의 손이 떨렸고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강소아는 방문 앞을 서성이며 초조함을 감추지 못했다.그 방에는 정대명이 갇혀있었는데 강소아가 아무리 질문해도 정대명은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육경섭은 딸이 안절부절못하는 것을 보고 희철을 시켜 예전 식으로 정대명을 다루려 했지만, 강소아가 막아섰다.현재 육씨 가문은 이미 정식 사업가로 자리 잡은 상황이었다.과거의 폭력적인 방식은 더 이상 적합하지 않았다.강소아는 육경섭을 설득해 물러서게 한 뒤, 다음 수를 고민하고 있었다. 그때 소연화가 급히 뛰어왔다.“아가씨, 이것 좀 보세요!”소연화는 휴대전화를 내밀었다.화면에는 뉴스가 떠 있었고 제목은 눈에 띌 정도로 충격적이었다.[조씨 공익학교에서 터진 충격적인 추문, 관리직
가끔 차가 지나갔지만, 정승우가 필사적으로 손을 흔들어도 아무도 멈춰 서지 않았다.어둠이 내려앉았고 기온은 점점 내려가고 있었다.며칠 동안 육체와 마음이 지친 권온유는 이제 무너질 듯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었다.정승우는 어쩔 수 없이 온유를 등에 업고 비틀거리며 길을 걸었다.“오빠...”권온유는 울먹이며 말했다.“해가 졌어요. 저... 무서워요.”“괜찮아.”정승우는 뒤돌아 미소를 지었다.“오빠가 집에 데려다줄게.”“오빠, 우리 그냥 돌아가요...”“뭐라고?”권온유의 시선이 정승우의 피로 물든 발에 닿았다.“발이 많이 아프죠?”권온유의 작은 얼굴 위로 눈물이 두 줄기 흘러내렸다.“오빠, 저 내려주세요. 그냥 돌아가요...”“온유야?”권온유는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그 집이 낡고 춥긴 해도... 오빠 발에서 피가 나진 않잖아요!”정승우는 멍하니 잠시 굳어 있다가 그 어눌한 말 속에 담긴 다정함을 깨달았다.이 작은 아이는 납치당했던 그 집으로 다시 돌아가서라도 정승우가 이렇게 고생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정승우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며 피식 웃음을 지었다. 작은 새들이 집으로 향해 줄지어 날고 있었다.정승우는 온유를 데리고 반드시 집으로 돌아갈 거라고 다짐했다.“바보야.”정승우는 온유를 내려놓지 않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난 하나도 안 아파. 그리고 그곳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어.”“그 사람이... 우리를 때릴까요?”“그럴 거야.”정승우의 눈빛이 어두워졌다.어린 시절, 정대명에게 맞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탈출할 때 그의 뒤통수를 내려친 한 방은 그동안의 빚을 모두 갚은 셈이었다.“그런데 오빠, 그 사람은 오빠 아빠잖아요?”권온유는 작은 눈썹을 찌푸리며 물었다.“하지만 오빠가 아프다고 제가 말했을 때 오빠 아빠가 들어왔었잖아요.”정승우는 쓴웃음을 지었다.자신이 아프다는 말을 듣고 정대명이 들어온 것은 아마 걱정해서가 아니라, 자기가 죽으면 함께 나쁜 짓을 할 사람이 없어질까 봐서였었다.정대명은 단지
차 안의 모든 사람이 깜짝 놀랐다.영미는 조용히 걸음을 옮겨 정대명에게 다가갔다. 그의 머리 아래로 어두운 핏자국이 퍼져 있었고 그 흔적은 이미 굳어 있었다. 영미는 정대명의 코 밑에 손을 가져다 댔다.아직 숨이 붙어 있었다.영미는 떨리는 마음을 억누른 채 차가운 눈빛으로 정대명을 내려다보다가 거칠게 발길을 휘둘렀다.“일어나요!”강소아와 최군형도 다가와 공장 안을 살폈지만 안은 고요히 비어 있었다.“아이들은요?”“아이고...”정대명은 간신히 몸을 일으켜 비틀거리며 서 있었다.“살려줘, 살려줘... 저 괘씸한 녀석이!”“정대명 씨!”영미의 목소리에는 분노가 가득했다.어쨌든 이번 일은 영미가 자신 있게 권온유의 행방을 안다고 장담한 일이었다.영미는 정대명과 정승우가 백인서와 함께 권온유를 납치했다고 확신에 차 말했다.그런데 지금... 정대명은 다쳐 쓰러져 있고 두 아이는 사라졌었다.백인서를 함정에 빠뜨리려던 영미의 계획이 완전히 틀어져 버린 것이다.그제야 상황을 이해한 정대명은 도움을 청하려다 영미가 눈짓을 주는 것을 보고 잠시 멈칫했다. 영미의 눈길을 따라 보니 최군형과 강소아도 함께 와있었다.정대명은 예전에 영미가 했던 경고가 떠올랐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아는 척을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정대명은 머리를 살짝 숙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당신이 정대명인가요?”최군형이 다가가 물었다.정대명은 말끝을 흐리며 최군형의 눈을 마주치려고 하지 않았다.“백인서의 양아버지시고?”최군형은 다시 물었다.“당신이 당신 아들과 함께 권씨 가문의 딸을 납치한 게 맞나요?”“아니야, 나 아니야!”정대명은 크게 당황하며 손을 흔들었다.“이봐, 동생, 난 억울해! 내 아들 녀석이 나를 해치려고 했어! 내 머리를 봐, 그 자식이 벽돌로 내리쳤다니까!”“그만해요!”영미는 정대명의 말이 길어질수록 상황이 불리해질 것을 우려해 정대명을 노려보며 더 이상 말을 못 하게 했다.강소아는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그들의 서툰 수법이 한심하기만
경찰서 밖에서 최지용은 초조하게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한참을 걷다가 고개를 들어 보니, 젊은 경찰관이 안에서 뛰어나오고 있었다. 최지용은 급히 다가가며 말했다.“정호야!”정호라는 젊은 경찰관은 최지용을 보자 반가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이 녀석!”최지용은 정호에게 다가가 가볍게 주먹을 툭 날리며 말했다.“도대체 무슨 일이야? 왜 사전에 알려주지 않은 거야?”정호는 멋쩍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방금 최씨 집안에서 백인서를 데려간 사람 중에 정호도 있었다. 최지용도 놀라웠지만, 영미 역시 경찰이 직접 찾아올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한 듯했다.떠나기 전, 정호가 살짝 눈짓을 보냈고 최지용은 그의 의도를 알아채 경찰서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지용이 형.”정호는 작은 소리로 말했다.“걱정하지 마세요, 형수님께서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잘 구분하고 계시니 문제없을 겁니다!”“도대체 누구 지시로 백인서를 여기로 데려온 거지?”“소아 아가씨예요!”정호는 어깨를 으쓱했다.“소아 아가씨가 갑자기 지시한 거라 사전에 전할 시간이 없었습니다.”최지용은 살짝 놀랐다. 강소아의 지시라니.“형수님께서도 이번 사건과 관련이 있으니까요. 그 아이가 실종되기 전에 형수님께서 만난 적이 있거든요. 경찰이 형수님을 데려가서 조사하는 건 당연한 절차입니다.”최지용은 잠시 생각에 잠긴 뒤, 피식 웃음을 지었다.강소아가 이런 ‘당연한 절차’를 이용해 백인서를 경찰서로 보낸 이유는 경찰서야말로 가장 안전한 곳이기 때문이었다. 만약 또 누군가가 음모를 꾸며 백인서에게 덮어씌우려 한다 해도 경찰서에서는 통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경찰서 안에는 일을 봐주는 사람들도 있으니 백인서가 여기서 며칠 지내는 동안 힘든 일 없이 외부의 소란도 피할 수 있는 셈이었다.최지용은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저었다.강소아는 정말 자매를 위한 배려가 남달랐다. 이렇게까지 배려심 깊은 방안을 생각해 내다니!“지용이 형.”정호가 계속해서 말했다.“도련님께서
영미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살짝 입꼬리를 올렸다.“소아 언니, 저를 믿지 않으세요?”“난 오직 사실만을 믿어.”“권씨 가문의 딸이 실종된 사건에 백인서 씨의 양아버지와 남동생이 관련되었어요, 그게 바로 사실이에요!”강소아는 순간 멍하니 있다가 어이없다는 듯 미소를 지으려 했다.세상에 이렇게 뻔뻔하게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 다 있나 싶었다.호텔 뒷뜰에 있는 그 CCTV가 정말 완전히 고장 났다고 생각하는 걸까? 육씨 가문과 최씨 가문이 힘을 합쳐 그 고장 난 CCTV 하나도 못 고칠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최군형은 강소아의 어깨를 가볍게 눌러 안심시키며 슬며시 휴대전화를 건넸다.강소아는 화면을 확인했다. 최군형의 부하가 보낸 메시지였다.“도련님, CCTV 데이터를 복구 중입니다. 곧 진실이 밝혀질 겁니다!”강소아는 조용히 웃음을 지었다.영미가 이렇게까지 백인서를 몰아세우는 걸 보니 마음 한구석에 무언가 꺼림칙한 게 남아 있는 것 같았다.어차피 꼬리가 저절로 드러날 것이었기에 그저 상황을 조용히 지켜보기로 했다.바로 그때, 집사가 다소 당황한 얼굴로 방에 들어섰다. 집사의 뒤에는 몇 명의 제복을 입은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은 신분을 밝힌 후 방 안을 둘러보며 엄숙한 목소리로 물었다.“여기 백인서 씨가 계십니까?”표아정은 등을 꼿꼿이 펴고 대답했다.“경찰관님께서 여긴 무슨 일로 오셨나요?”“당신이 백인서 씨인가요?”“저는...”“백인서 씨가 납치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신고를 접수했습니다!”“뭐라고요?”백인서는 얼굴이 창백해졌다.“백인서 씨, 조사에 협조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저희와 함께 가 주셔야겠습니다.”...권온유가 납치된 지 하루가 지났다.그동안 정대명은 단 한 번 음식을 가져왔는데, 그것도 차갑게 식은 죽 한 그릇과 딱딱한 빵 한 조각뿐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귀하게 자란 권온유에게 이런 음식은 처음이었다. 울고 싶었지만, 감히 울지 못하고 그저 눈물을 참으며 빵을 조금씩 뜯어 먹고 있었다.정승우는 그런 온유의 모습을 보고
“아줌마, 아직도 모르시겠어요? 그럼, 제가 알아낸 사실을 전부 말씀드릴게요!”영미는 입가에 교만한 미소를 띠며 백인서를 차갑게 한 번 쳐다보았다.“백인서 씨의 친어머니인 백홍은 인신매매범이었다는 사실, 모두 아셨나요? 백인서 씨의 어머니는 백인서를 정대명의 집에 맡겼고... 흥! 정대명의 아내도 백홍이 납치해 왔다는 소문이 있어요.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잖아요. 제 생각엔... 인신매매범의 딸이라면 그런 일쯤은 익숙하지 않을까요? 여러분은 권온유의 실종이 정말로 백인서 씨와 무관하다고 생각하시나요?”“영미!”강소아가 나서며 분노를 가득 담아 소리쳤다.“허위 사실을 퍼뜨리지 마!”“소유 아가씨, 억울하네요!”영미는 강소아를 바라보며 말했다.“제가 이렇게까지 조사한 건 다 아가씨를 위한 거예요! 딸도 있는 사람이 백인서를 곁에 두고도 마음이 놓이세요?”“그만해!”최지용이 크게 소리쳤다.백인서는 몸을 떨며 믿기지 않는 눈으로 최지용을 쳐다보았다.그러나 최지용의 얼굴에는 의심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최지용은 굳건한 눈빛으로 뒤에 있는 백인서를 지키고 있었다.여전히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보물처럼 백인서를 아끼고 있었다.백인서는 코끝이 찡해지며 본능적으로 최지용의 손을 꼭 붙잡았다. 최지용의 따스한 손은 백인서에게 큰 용기를 주었고 그 온기가 어둠의 두려움을 잊게 해주었다.최지용은 백인서에게 부드럽게 미소 지어 보였고 다시 영미를 바라볼 때는 눈빛이 한층 더 깊어졌다.“영미야.”최지용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두 집안의 관계를 생각해서 그저 넘어가는 거야. 더 이상 선을 넘지 마.”최군형도 나서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래요, 백인서가 어떤 사람인지 우리가 모르겠어요? 영미 아가씨, 우리 최씨 가문 사람들을 바보로 생각하는 건 아니죠?”영미는 순간 긴장했다. 최군형의 말 속엔 어딘가 숨은 뜻이 있는 듯했다.최군형의 깊고 복잡한 눈빛을 파악하기 어려웠다.표아정은 천천히 일어나 어깨에 걸친 숄을
백인서는 복잡한 눈빛으로 최지용을 바라보며 조용히 입술을 움직였다.그때 최지용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전화를 건 사람은 표아정이었고 다급한 목소리로 서둘러 돌아오라고 재촉했다.최지용은 결국 어머니의 말에 따라 백인서를 데리고 최씨 집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넓은 거실에는 최군형과 강소아도 나와 있었고 모두 엄숙한 표정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백인서가 들어서자, 표아정이 백인서를 올려다보며 무언가 말하려는 듯했다.강소아는 백인서와 눈을 마주치며 단호하게 미소 지었다.백인서가 의아해하던 찰나, 영미가 천천히 밖에서 걸어 들어왔다.“아줌마, 지용 오빠. 제가 권온유의 행방을 알아냈어요. 어디에 있는지 알아요!”“뭐라고?”최지용이 놀라서 물었다.“네가 어떻게 아는데?”영미는 은근한 미소를 지었다.“지용 오빠, 특수부대 출신이라고 정보가 우리보다 더 빠를 거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최씨 가문은 만능이 아니에요, 최씨 가문도 모르는 정보가 있다고요.”표아정은 가볍게 기침하며 차분히 상황을 지켜보았다.최군형과 강소아는 서로를 바라보며 어떤 일이 일어날지 주목하고 있었다.최지용의 이마에는 점점 깊은 주름이 새겨졌다.미의 눈에는 한 줄기 교만한 빛이 번졌다.영미는 오는 길에 이미 모든 계획을 짰다. 정대명의 말이 맞았다. 누구를 훔치든 상관없었다. 인신매매범의 딸인 백인서가 아이들을 해치러 다닌다는 누명을 씌우면 그만이었다. 그렇게 하면 백인서는 모두의 신뢰를 잃게 될 터였다.영미는 이제 한 아이의 엄마가 된 강소아가 인신매매범을 곁에 둘 리 없다고 믿었고, 최지용 역시 이 사실을 알면 더는 백인서를 소중히 여기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그래서 영미는 정대명을 배신하기로 마음먹었다.영미는 권온유를 넘기고 정대명과 정승우가 백인서와 한패가 되어 권온유를 납치했다고 주장할 계획이었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백인서는 변명의 여지도 없이 궁지에 몰릴 것이었다!“지용 오빠.”영미는 고개를 돌려 최지용을 바라보며 한 글자씩 천천히 말했다.“권온유는 정승
“그... 괜찮아!”정승우는 억지로 미소 지으며 권온유에게 말했다. 정승우는 이곳에서 권온유를 반드시 데리고 나가겠다고 결심했다.그런데 이때, 공장 문이 “쾅” 하고 열리더니 곧바로 하이힐 소리가 들려왔다.정승우는 재빨리 권온유에게 눈짓했고 권온유도 알아채고는 즉시 땅바닥에 쓰러져 의식이 없는 척했다.정승우는 벽에 기대어 눈을 반쯤 감았다.“이 아이인가요?”영미의 목소리에는 차가운 위압감이 서려 있었다.“맞아.”정대명은 영미를 흘깃 노려보며 묵묵히 대답했다.영미는 두 걸음 앞으로 다가서서 희미한 빛 속에 있는 아이를 살펴보더니, 곧 얼굴빛이 확 변했다.“이 아이... 혹시 권씨 집안의 막내딸 아니에요?”정대명은 멍하니 고개를 들었다. 애초에 아이를 훔쳐 올 때 이 아이가 누구의 자식인지 알 리가 없었다.“정대명 씨.”영미가 차갑게 웃으며 돌아보았다.“제가 최씨 가문 집안 아이를 훔쳐 오라고 했지, 권씨 집안 아이를 훔치라고 했나요? 이러고도 저를 속이지 않았다고요?”“그게...”정대명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영미 아가씨, 어차피 목적은 백인서를 곤경에 빠뜨리는 거잖아? 그러니 누구를 훔쳐 오든 상관없지 않아? 아이를 훔치기만 하면 유괴범이 되는 거니까.”이 말은 영미에게만 충격을 준 게 아니었다. 정승우의 귀에도 또렷이 들어왔다.“좋아요.”영미는 깊은숨을 들이마신 뒤 분노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이 아이는 잘 지키고 있어요, 제가 다시 연락할 테니까.”...한편, 권씨 집안은 완전히 뒤집혀 있었다.권욱은 조순영을 탓하며 아이 하나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고 했고, 조순영은 오열하며 남편을 원망했다. 조순영은 권욱이 바깥에서 여자와 부적절하게 얽히지 않았다면 이런 일이 없었을 거라고 했다.“헛소리하지 마! 사람들이 나한테 어떤 소문을 퍼뜨렸는지 잘 알잖아. 결혼 생활 내내 너한테 부끄러운 일 한 적 없어.”“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까. 정말 떳떳하게 행동했다면 왜 사람들이 당신만 가만두지 않는 건데?”며칠 전까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