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단지 최연준이 임나연과 통혼해야 하는 이유뿐만 아니라, 임나연이 그녀 앞에서 몇 번이나 위세를 떨친 이유이기도 하다!이것이 바로 튼튼한 가문이 있는 자의 여유다!강서연은 입술을 깨물고 있었고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져서 그를 밀어냈다.최연준은 조심스럽게 그녀의 표정을 살피고 얼굴의 어떤 사소한 표정도 놓치지 않았다.“무슨 일이야, 여보...”“괜찮아요.”강서연은 무표정하게 대답했다. 사실 최연준을 밀어낸 순간 그녀는 후회했다.그녀는 자신이 또 억지를 부렸다는 것을 알고 있다.그런데 그녀는 다른 여자가 자기의 남자를 노리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최연준은 그녀의 환심을 사려고 환한 미소를 지었고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괜찮다면... 우리 일찍 잘까?”“저는 아직 일이 남아서 먼저 자세요.”“일이 남았어?”최연준은 음조까지 변했다.강서연이 그를 힐끗 쳐다보자, 최연준은 곧바로 성질을 죽이고 억지로 웃음을 짜내어 그녀의 작은 손을 잡고 상냥하게 상의했다.“서연아, 이렇게 늦었는데 오늘은 일하지 말고... 당신 평소에 그렇게 열심히 하는데 가끔 쉬어도 괜찮아.”“안 돼요.”강서연의 태도는 상의할 여지도 없다.최연준은 떼를 쓰기 시작하여 뒤에서 그녀를 꼭 끌어안고 턱을 그녀의 목덜미에 괴었다.“여보, 이번 달 용돈이 부족해서...”“네?”최연준은 음흉하게 웃었다. “나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줄 기회를 줘야 담뱃값이라도 벌 수 있지!”“연준 씨, 당신...”그녀가 말하기도 전에 최연준은 그녀를 안고 침실로 뛰어 들어갔다.“최연준!”그는 강서연의 말을 전혀 듣지 않고 이불속에 들어가 제멋대로 옷을 벗기 시작했다.“나도... 당신한테 어울리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열심히 일하는 거예요... 전에 당신의 세계가 이렇게 금빛 찬란한 것을 누가 알았겠어요... 나의 이 혼수는 다음 생까지도 모을 수 없을 것 같아요!”최연준은 그녀의 살짝 붉어진 눈시울을 보고 가슴이 아팠다.인제야 그는 강서연이 그를 밀어낸 것은 ‘통혼’ 이
다음날 강서연은 시리고 아픈 몸을 이끌고 출근했다.김자옥은 또다시 그녀에게 많은 임무를 맡겨줬고, 그녀의 불편한 모습을 조금도 눈치채지 못했다. 강서연도 이런 얘기를 하기가 부끄러워 억지로 피곤함을 참으며 일을 했다.한편으로는 바쁘면서도 한편으로는 남몰래 감탄했다. 앞으로는 절대로 이 남자의 감언이설에 감동하여 그의 무리한 요구를 들어주어서는 안 된다!갑자기 누군가가 그녀의 책상을 두드리면서 우렁차게 말했다.“왜 그래? 몸이 안 좋아?”강서연은 눈을 들어 김자옥이 그녀 앞에 서 있는 것을 보았다.김자옥이 수시로 그녀를 부를 수 있도록 강서연의 자리를 대표님 사무실 바로 밖에 배정했다.“아니에요.”강서연이 어색하게 고개를 저었다.김자옥은 실눈을 뜨고 입꼬리를 치켜올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혹시... 어젯밤에 너무 피곤했어?”강서연은 놀라서 얼굴이 후끈 달아올라 벌떡 일어섰다.“대표님...”“괜찮아, 나한테 부끄러울 게 뭐 있어!”김자옥은 웃으며 말했다.“이렇게 하자. 반차 쓰고 돌아가서 푹 쉬어...”“괜찮아요!”강서연은 급하게 거절했다.‘반차 쉬고 집에 가면 연준 씨가 절대로 가만 안 둘 거야!’이를 생각하니, 그녀는 갑자기... 마치 매번 김자옥이 휴가를 준다고 했을 때, 최연준은 모두 집에 있었던 것 같다...최연준은 집에서 뭘 하겠는가? 당연히 ‘용돈 달라’ 고 한다!강서연은 다시 김자옥의 교활한 미소를 보며 순간 깨달았다...‘역시 친엄마야!’“당연히 쉬어야지!”김자옥은 직접 그녀를 일으켜 세워 반달 모양의 눈웃음을 하며 그녀를 바라봤다.“몸이 건강해야지! 네가 잘 쉬어야 나도 빨리 손자를 볼 수 있지... 아니! 내 말은... 회사에 더 많은 가치를 줄 수 있지!”‘앗, 또 내 본심을 말해버렸네!’강서연은 할 수 없이 웃기만 했고 김자옥이 핸드폰을 꺼내는 모습을 지켜봤다.“어이, 아들? 뭐야? 집에 없어? 경매장? 알겠어!”김자옥은 고개를 끄덕이며 계속 말했다.“내가 서연이를 너한테 보내줄게!
“잔다고? 좋아!”최연준은 웃으며 말했다.“내가 같이 자줄게.”“연준 씨!”강서연은 강하게 얘기하려고 했지만 전혀 사납지 않았다.“내가 말하는 것은 진짜 잠을 자는 것이지, 당신이 말하는 그런 것이 아니에요...”“내가 뭐랬어?”“...”강서연은 또 그에게 당해 말을 하지 않았다.최연준은 그녀의 가녀린 허리를 껴안았다.몇몇 외국인들이 그들 곁을 지나가자, 최연준은 잔을 들고 미소를 지으며 인사했다.그가 잔을 들어 올리는 동작은 딱 마침 강서연을 막았다.방한서는 계속해서 한숨을 쉬었다. 그들 곁에 있는 것이 실수라는 것을 깊이 깨달았다.‘혹시 도련님과 의논해서 앞으로 직원 복지에 한 가지를 더 추가할 수 있을까? 여자친구 찾아줌... 에휴...’그때 멀리서 로제 색 그림자가 샴페인 잔을 들고 두 사람을 향해 다가왔다.최연준은 떠나려 했지만, 강서연이 그를 잡고 눈치를 줬다.‘임나연 아니야? 무슨 무서운 맹수도 아니고...’강서연은 삐죽거리고 곧바로 전투태세로 전환했다.“임나연 씨.”강서연은 웃음꽃을 피우며 인사했다.“강서연 씨도 있었네요!”임나연은 턱을 치켜들고 체면을 유지하고 있었다.최연준은 임나연과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아 강서연에게 속삭였다.“저쪽에 친구들이 몇 명 있는데 내가 소개해 줄게.”“연준 씨.”임나연은 그에게 다가갔다.“마침 마주쳤네요. 연준 씨와 서교 땅 프로젝트에 관한 것을 의논하고 싶어요.”최연준이 냉랭하게 그녀를 힐끗 보았다. “왜요?”“공사가 지금까지 진행되어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어요. 다만 두 곳의 협력업체가 근무 시간이 너무 길다고 생각하여 조기 퇴출하고 싶다고 선언했어요.”“큰 문제가 아니에요.”최연준은 담담하게 말했다.“만약 절차가 모두 계약에 부합한다면, 그들이 물러난다고 해도 우리는 막지 않을 거예요.”“네.”임나연이 조용히 말했다.“하지만 그렇게 되면 공사가 지연될 수 있어요. 이를 방지하기 위해 제가 두 곳의 협력업체를 추천했는데 명단과 자료는
임나연은 얼굴이 굳은 채 질투가 가득한 눈빛으로 강서연을 노려봤다.최연준은 강서연을 데리고 다른 곳으로 향했다. 임나연은 두 사람의 뒷모습을 보며 귓가에 갑자기 임씨 가문 사모님의 차가운 말이 귓속에서 울려 퍼졌다.“너한테는 임씨 가문의 피가 흐르지 않아. 다시 말해 너는 최연준이랑 어울릴 자격도 없다는 말이야.”“그때 널 보육원에서 데려오지 말았어야 했어, 너는 임씨가 아니야!”임나연은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고 화가 치밀어 가슴이 터질 것 같아 몇 번이나 심호흡을 한 후에야 조금 진정이 됐다.“또 망신당했어요?”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임나연은 뒤를 돌아보았는데 최지한이 위스키 한 잔을 들고 건들거리며 서 있었고 그녀를 향해 웃고 있었다.최지한의 곁에는 강유빈이 아니고 이번에는 미니 드레스를 입은 모델이다.“무슨 상관이세요!”임나연은 그를 보면 짜증이 났다.“연준이 곁에 그 여자가 있는 한 나연 씨는 평생 최씨 가문에 들어올 수가 없을 거예요!”최지한은 그녀를 비웃었다.임나연은 그를 한번 흘겨보고 떠나려고 했지만, 최지한은 계속해서 말했다.“오늘 밤, 이 경매에 나연 씨가 만나야 하는 중요한 인물이 있어요.”임나연은 걸음을 멈췄다.최지한은 웃으며 손으로 모델의 몸을 몇 번 만지작거리고 먼저 떠나게 했다.“임나연 씨. 임우 그룹이 지금 겉으로는 강해 보이나 속은 텅 비어있다고 들었어요. 화려하게 보이지만, 실제로는 사대 가문 중에서 제일 허약한 가문이죠!”“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예요?”“지금 당신이 통혼하고 싶은 것도 임씨 가문의 입지를 공고히 하기 위해서가 아니에요? 하지만 임씨 가문의 입지를 굳히기 위해 굳이 통혼까지 할 필요는 없어요.”최지한은 손에 든 술잔을 흔들며 잠시 멈췄다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제가 한 사람을 소개해 줄게요.”임나연은 눈살을 찌푸렸다.“누군데요?”“윤정재.”임나연은 생각에 잠겼다.이름은 익숙한데 남양 쪽에 잘나가는 세력인 것 같다. 전에 최진혁이 이 사람과 꽤 친하다고 들은 적이 있
임나연도 은근슬쩍 그 방향을 바라보았는데, 그가 응시하고 있는 것이 뜻밖에도 강서연이라는 것을 발견했다.그녀는 깜짝 놀랐지만 드러내지 않고 담담하게 그에게 물었다. “윤 회장님, 곧 경매가 시작되는데 어떤 소장품을 낙찰하실 건가요?”윤정재는 눈살을 찌푸렸다.그의 마음은 이미 강서연한테로 날아갔다. 그는 멀리서 그녀를 바라봤는데 한 남자가 보배처럼 강서연을 껴안고 있었고 그녀도 함박웃음을 하며 행복이 넘쳐보였다...그는 갑자기 코끝이 시큰해져서 울고 싶은 기분이 목구멍을 타고 올라왔다.‘정말 문희를 많이 닮았구나. 미간의 그런 여느 여자들과는 다른 분위기는 나를 닮고.’윤정재는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마음은 한바탕 울적해졌다.그는 윤문희에게 절대 그들의 삶을 방해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그 레시피가 그들 사이의 모든 감정을 끊어버렸고, 윤문희가 남양을 떠나는 순간 그들은 남남이 됐다.윤정재의 술잔을 움켜쥔 손가락은 너무 힘을 줘서 뼈마디가 하얗게 보였다.“윤 회장님, 왜 그러세요?”“네?”그는 정신을 차리고 임나연을 쳐다봤다.“아무것도 아니에요.”“윤 회장님께서 미인을 봤어요?”임나연은 반농담인 척 말했다.“저 여자만은 피해 다녀야 해요!”윤정재는 눈살을 찌푸렸다.“방금 뭐라고 했어요?”“방금 강서연 씨 보는 거 아니었어요?”윤정재는 잠깐 멈칫했다.강서연, 그 이름이다... 그때 윤문희가 강씨 집안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이 아이가 강명원의 아이라고 거짓말을 했다. 그래서 딸의 성이 강씨가 되었다.윤정재는 주먹을 꽉 쥐고 손톱이 살 속 깊이 파고들었다.“임나연 씨. 방금 강서연에 대해서 무슨 얘기 해주고 싶었어요?”“저 여자요!”임나연은 그녀를 깔보며 웃었다.“저 여자는 재주가 뛰어나요. 작은 집안에서 나온 혼외자식 주제에 오성 최씨 가문의 셋째 도련님을 꼬셨어요!”“저분이 셋째 도련님, 최연준이신가요?”“네, 맞아요!”윤정재의 안색이 변했다.임나연은 계속해서 말했다.“윤 회장님, 저 여자를 무시하지 마세요. 셋
임나연은 너무 화가 나서 제자리에 서 있었다.경매가 시작되자 하객들은 자리를 찾아 앉았다. 맨 앞 로열석에는 최연준과 강서연이 앉았다.반면 윤정재는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고 2층에서 적당한 자리를 찾아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앉은 자리는 딱 마침 강서연의 옆모습을 볼 수 있는 각도였다.임나연은 이것을 보고 윤정재, 이 늙은 색마가 강서연을 좋아한다는 것을 더욱 확신했다.‘윤정재는 강서연이랑 말 한마디도 섞지 않았는데, 그렇게 강서연을 옹호하다니!’임나연은 밤새도록 그와 같이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 계집애보다 못하다니...그녀는 화가 치밀어 자리에 앉지도 않고 구석을 찾아가 전화를 걸었다.“수정이는?”그녀의 목소리에 화난 감정이 너무 많아 심호흡하고 다시 음산한 목소리로 말했다.“언니가 경매 끝나고 보러 간다고 전해줘!”“아가씨, 그게...”전화너머로 집사의 말투가 초조했다.“또 무슨 일인데? 그냥 그렇게 말해!”“아니에요, 아가씨!”집사가 급하게 말했다.“수정 아가씨가... 없어졌어요!”임나연은 하마터면 핸드폰을 놓칠 뻔했다.“뭐라고?”그녀는 잠시 말 없다가 소리를 지르며 물었다.“사람이 왜 없어졌다는 거야!”“그게... 오후에 수정 아가씨가 햇볕을 쬐고 싶다고 해서 간호사가 데리고 나갔어요. 그런데 차고에 가서 차를 보고 싶다고 해서 간호사도 별생각 없이 밀고 갔는데... 없어졌어요!”집사의 횡설수설에 임나연은 어리둥절했다.그러나 그녀는 집사의 단편적인 말에서 임수정은 오후에 실종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실종되었을 때, 그녀는 경매장에 오려고 준비하고 있었다...‘설마 임수정이 내 차에 숨어 있는 것은 아니겠지?’임나연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말했다.“당장 사람을 붙여서 찾아내! 엄마 아빠는 이 일을 알고 있어?”“두 분께서는 아침 일찍 싱가포르로 가셨어요. 무슨 그룹 융자 때문인지 한두 달은 있어야 한다고 했어요!”임나연은 그제야 한시름 놓았다.이렇게 되면 그녀는 여기저기 찾을 시간이 있다.가장 먼저 의심되는
그는 바지를 안 입었다!“아아!”‘망했다!’배경원은 계속해서 비명을 지르며 허둥지둥 옆에서 옷 한 벌을 가져와 가렸다.소녀는 겁에 질려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바로 그때 탈의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배경원은 비명을 멈추고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했는데 밖에서 소리가 들렸다.“안에 사람이 있습니까? 지금 들어가도 됩니까?”남자 목소리다.배경원은 어리둥절했다.그는 막 문을 열려고 하는데 갑자기 무엇에 발목을 잡혔다.고개를 숙여 봤는데 소녀가 그의 앞에 엎드려 그의 다리를 잡고 있었고 눈에는 물안개가 한층 가라앉았다.“제발”그녀는 애원했다.“제가 여기 있다고 말하지 마세요...”“네?”배경원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이게 무슨 상황이에요?”“제발요!”밖에서 노크 소리가 더 커졌다.배경원은 생각할 시간이 별로 없었다. 밖에서 누군가가 문을 쾅 차고 들어오는 순간 그는 몸에 걸친 옷을 벗어 던지고 소녀를 바닥에 눕혔다.그는 그녀의 등에 손을 얹고 차가운 바닥과 닿지 않도록 막아줬다.그의 건장한 몸은 작은 그녀를 꽁꽁 싸맸다.몇 명의 남자들이 뛰어 들어와서 눈앞의 이 광경을 보고 경악했다.“뭐 하는 거야?”배경원은 살짝 고개를 돌리고 어두운 표정으로 그들을 쳐다보았다.“도대체 어디서 나타난 놈들이야! 죽고 싶어?”이 사람들은 전부 임씨 집안의 집사여서 배경원을 알아봤다. 다들 너무 놀라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배씨... 도련님...”“당장 꺼지지 못해! 지금 바쁜 거 안 보여?”“네. 네...”사람들이 허둥지둥 뛰쳐나갔고 문 닫는 것도 잊지 않았다.발소리가 멀어지자, 배경원은 그제야 몸을 추스르고 조심스럽게 소녀를 일으켜 세웠다.“괜찮아요?”소녀는 기침을 많이 해서 말할 힘조차 없었다.“안색이 안 좋아 보이는데...”배경원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병원에 데려다줄게요.”“괜찮아요...”그녀는 겨우 이 말을 내뱉었다. “제 몸은 제가 잘 알아요.”
“이름이 수정이에요?”배경원은 볼을 불룩하게 하고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그럼 성이 뭐예요?”임수정은 시선을 아래로 보며 묵묵부답했다.어차피 그녀의 성이 무엇이든 이름은 암호에 불과할 뿐이라고 생각한 배경원은 웃으며 말했다.“알겠어요. 그럼, 마당에 산책하러 갑시다!”말이 끝나자마자 그는 문밖으로 나가려고 했다.“아니, 그게...”그는 밖으로 나가기도 전에 임수정에게 붙잡혔다.배경원은 멍하니 고개를 숙였는데...‘바지를 안 입었잖아!’그는 순간 얼굴이 붉어지고 놀란 눈으로 임수정을 바라보면서 우는 것보다 더 볼썽사나운 웃음을 지어냈다.임수정은 배경원 덕분에 웃었고 창백하던 작은 얼굴에 마침내 핏기가 돌았다.배경원은 황급히 탈의실로 뛰어 들어가 서둘러 바지를 입은 뒤 임수정을 데리고 마당으로 산책하러 나갔다.가을밤은 아름다웠다. 마당은 하루 종일 햇볕을 쫴서 아직도 따스한 햇볕 냄새가 난다. 마당은 조용했고 때때로 작은 새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왔고 반딧불도 날아다녔다.임수정은 깊게 숨을 들이쉬고, 가볍게 눈을 감았다.이렇게 마당에 서서 자유롭게 숨을 쉬는 건 전생에나 있을 법한 일이다.“너무 좋아요.”임수정은 웃으며 눈을 뜨고 짙푸른 하늘을 바라보았다.“네?”배경원은 못 알아들었다.“제가 이렇게 마당에 서서 신선한 공기를 마실 수 있는 것은 이미 저에게는 흔치 않은 일이에요.”“...”배경원은 더 이해가 안 갔다.“평소에 숨 안 쉬어요? 혹시 인공호흡기를 차고 살아요?”임수정은 그를 보고 싱긋 웃었다.오늘 처음 만난 사람이었지만 오래 알고 지낸 것 같았다.임수정은 오랫동안 웃지 않았는데 오늘 밤의 웃음은 모두 배경원이 선사해 준 것이다.방금 전 그는 그녀를 그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그대로 바닥에 눕혔고... 그 순간 그녀의 심장박동이 빨라졌고 지금까지 이어지는 것 같았다.임수정은 배경원 셔츠에서 나는 맑은 냄새를 맡았고 그의 남자다운 기운을 느꼈다.그녀의 마음속에 오랫동안 봉인되어 있던 문이 갑자기 그
배현진은 마치 자신의 영혼이 몸을 떠나 허공을 떠도는 듯한 기이한 감각에 사로잡혔다.그는 허공에 떠 있는 듯 응급실의 광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의사들이 급히 자신을 응급처치하는 모습과 생명이 위태로운 상태로 누워 있는 자기 육체를 바라보며 깊은숨을 내쉬었다. 이상하게도 모든 것에서 해방된 듯한 감각이 그를 감쌌다.의식은 또렷했지만, 살아남겠다는 의지는 조금도 없었다.그날, 배현진은 오강호와 싸웠다.송윤희와 이혼 후 더 나락으로 떨어진 오강호는 그날 술집에서 술에 취해 있던 배현진과 우연히 마주쳤다.말다툼은 곧 몸싸움으로 번졌고 오강호는 배현진이 배씨 가문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아채자, 송윤지를 언급하며 조롱을 쏟아냈다.배현진은 격분하여 주먹을 휘둘렀다. 그러나 먼저 손을 댄 쪽이 그였음에도 불구하고 건장한 오강호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배현진은 오강호에게 몇 대 얻어맞고는 응급실로 실려 가고 말았다.지금도 배현진의 귀에는 오강호의 말이 메아리처럼 맴돌고 있었다.“배씨 가문의 아들이라더니 별수 없군. 여자를 제대로 붙잡지도 못하고 결국 임지강에게 뺏겼다지? 하하하...”“배 도련님, 혹시 속았다고 생각해 본 적 없어? 임지강이 송윤지에게 접근한 건 처음부터 다 계획된 거였을 거야!”“너 같은 쓰레기가 무슨 남자야. 약혼녀도 남에게 빼앗기고 말이야.”배현진의 가슴 한구석이 세게 내려앉는 느낌이 들었다. 그 순간, 강한 힘이 그의 영혼을 다시 육체로 끌어당겼다.옆에서 심전도가 삐 울리더니 직선이 다시금 움직이기 시작했다.의사들은 제세동기를 정리하며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았다.“환자가 심장박동을 회복했습니다. 약물을 투여하세요.”배현진의 꼭 감겼던 두 눈이 살짝 떨렸다.그를 때린 사람이 임지강과 송윤지의 일을 어떻게 그렇게 자세히 알고 있는 걸까?혹시, 그 둘 사이에 정말로 숨겨진 비밀이 있는 것은 아닐까?그는 알아내야 했다.죽을 수 없었다. 배현진은 자신이 겪은 모든 수모를 반드시 임지강에게 똑같이 되돌려주겠다고 다짐했다....
임지강은 고개를 살짝 숙이며 말했다.“제가 누나랑 형부께 누를 끼쳤네요.”“그렇게 생각하지 마.”임우정은 부드럽게 말했다.“사람 사이의 만남과 헤어짐은 결국 운명 같은 거야. 따지고 보면 이 일의 원인은 나야. 내가 처음에 송윤지를 현진이에게 소개하지 말아야 했어.”“저 때문에 누나가 곤란해진 거예요.”임지강은 진지하게 말했다.“솔직히 말하면, 이번에 제가 조금 비겁한 방법을 썼어요. 누나,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배씨 가문을 어떻게 하려는 건 아니에요. 그리고 배현진이 은행에 진 빚은...”임지강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임우정이 임지강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경원이와 수정이는 모두 사리 분별을 할 줄 아는 사람들이야. 빚을 갚는 건 당연한 일이니까, 빚진 돈은 은행에 분할해서 납부할 거야.”“그럼 이자는 받지 않을게요.”임우정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안도와 약간의 무력감이 섞인 표정을 지었다.“하지만 배현진에 대해서는.”임지강은 계속해서 말했다.“저는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예요. 그가 윤지를 괴롭힐 때부터 이런 날이 올 거라는 걸 예상했어야죠. 지금 정신 상태가 좋지 않다거나, 심지어 정말로 정신이 나갔다 해도 그건 자업자득이에요.”“됐어, 봐줄 줄도 알아야지. 너도 완벽한 사람은 아니잖아...”임지강은 고개를 들어 임우정을 바라봤고 두 사람은 잠시 눈을 마주친 뒤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이게 무슨 냄새예요?”갑자기 집 안에서 송윤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임지강은 놀라며 황급히 돌아섰다. 잠옷 차림에 슬리퍼를 신은 송윤지가 급히 주방으로 달려 들어왔다.임지강도 곧 이상한 냄새를 맡았다.“아이고, 이거 다 태웠네요!”송윤지는 놀라 외치며 불을 껐다. 그런 다음 행주로 냄비 뚜껑을 열었다.“이건 뭐예요?”“제가 만든 당근 소고기 스튜예요...”임지강은 난감하고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송윤지에서 한번 잘하는 모습을 보여주려 했는데 결과는 역시나 이 모양이었다.“물 안 넣었어요?”송윤지는 코를 찡그리며 물었다.“당근
임지강은 송윤지의 세계에 다시 한번 깊숙이 들어가게 되었다.임지강은 이제 송윤지의 아파트에서 종종 머물렀다. 겉으로는 송윤지를 지키고 보호하기 위해서라 했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는 그녀와 가까워지고 싶은 간절함이 자리하고 있었다. 송윤지는 몇 번 거절하려 했지만, 임지강의 고집을 꺾을 수 없어 결국 그냥 놔두기로 했다.임지강은 비록 소파에서 자야 했지만, 그것조차도 행복했다.임지강은 언젠가는 송윤지의 곁에서 함께 아침을 맞이할 날이 올 것이라 믿었다.임지강은 대부분의 시간을 송윤지와 함께 보내며 집안일을 도맡아 했다. 그는 세 끼를 직접 준비했고 그 과정에서 송윤지가 과거에 자신을 위해 했던 일들이 얼마나 힘들고 정성이 담긴 것이었는지 깨닫게 되었고 과거 송윤지의 사랑을 조금이나마 가늠해 볼 수 있었다.가끔 송윤지는 집 안에서 바쁘게 움직이는 임지강의 모습을 보며 묘한 감정을 느끼곤 했다. 이해할 수 없는 꿈이 자꾸 송윤지를 괴롭혔지만, 송윤지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임조강이 곁에 있으면 훨씬 마음이 놓인다는 것을.임지강은 배현진과는 완전히 달랐다.배현진은 늘 ‘나중에’, ‘기회가 되면’, ‘앞으로’ 같은 말로 막연한 미래를 약속하곤 했다.반면, 임지강은 ‘내가 있잖아’, ‘나한테 맡겨’, ‘두려워하지 마’ 같은 말로 송윤지에게 확신을 심어주었다.임지강의 말 속에는 사랑을 드러내는 직접적인 표현은 없었지만, 행동 하나하나에서 송윤지를 얼마나 아끼는지 충분히 느껴졌다.그날은 송윤지가 쉬는 날이었다. 임지강은 주방에서 당근과 소고기를 넣은 스튜를 끓이고 있었다.이 요리는 임지강이 새로 배운 것이었다. 임지강은 요리의 모든 과정을 조심스럽게 진행했고 조미료를 넣는 것도 마치 화학 실험을 하듯 정밀하게 측정했다.잠시 후, 요리의 향기가 퍼져 나갔고 그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냄비 뚜껑을 덮고 불을 약하게 조절했다. 그때 초인종이 울렸다.그가 문을 열자, 임우정이 문 앞에 서 있었다. 임우정은 복잡한 표정으로 임지강을 바라보았다.“누나?”
배현진은 바닥에 주저앉아 임지강을 올려다보았다. 그의 눈에는 두려움과 분노가 뒤섞여 있었다.“소중히 여겨야 할 때 외면했으니, 이제 와서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어.”임지강은 손가락으로 배현진의 코앞을 가리키며 차갑게 말했다.“다시 내 여자를 건드리면, 소피아와 함께 감옥에서 만나게 될 거야.”임지강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없이 송윤지의 손을 잡고 방을 나갔다.방 안에는 이제 배현진과 배윤아 두 남매만 남아 있었다.배현진은 멍하니 바닥에 앉아 허공을 응시했다. 그의 얼굴에는 깊은 후회와 절망이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그런 배현진의 모습을 보며 배윤아는 가슴이 아파 눈물을 흘렸다.“오빠...”배윤아는 조심스럽게 배현진을 부축하며 말했다.“사실, 오빠는 소피아가 어떤 사람인지 진작에 알아봐야 했어. 소피아가 없었다면, 우리 집이 이렇게까지 망가지진 않았을 거야.”배현진은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눈을 감았다. 그는 벽에 기대어 머리를 부딪치며 자신을책망했다.“오빠.”배윤아는 애써 배현진의 마음을 다독이며 말했다.“내 생각엔 임지강 씨는 오빠에게 교훈을 주고 싶었던 것뿐이야. 진심으로 오빠를 망하게 하려는 의도는 아닐 거야. 이미 송윤지의 복수를 한 거나 다름없으니, 더는 오빠를 괴롭히지 않을 거야. 게다가 다행히도 오빠가 진 빚은 임지강 씨의 은행에서 대출받은 거니까, 그에게 시간을 좀 더 달라고 부탁하면 좀 봐주지 않을까?”“봐준다고?”백약곡의 쓴웃음은 공허하고 힘이 없었다.“지금 나는 아무것도 없어. 완전히 끝났어...”“오빠에겐 아직 나랑 부모님이 있잖아!”배윤아는 울먹이며 말했다.“우리는 여전히 가족이야! 오빠, 집으로 돌아가 부모님께 잘못했다고 해. 오빠가 진 빚은 부모님이 분명 해결하려고 하실 거야.”“내가 은행에 진 빚은 수천억이라고.”배현진은 힘없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게다가 이 모든 걸 뒤에서 조종한 사람은 임지강이야. 그 사람은 절대 날 그냥 놔두지 않을 거야.”“오빠...”배윤아가 더 말을 이어가려 했
“현진 씨, 제발 내 말 좀 들어봐!”소피아는 두려움에 질려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이렇게 한 건... 다 우리 미래를 위해서였어. 당신 부모님은 모든 걸 여동생에게 넘겼잖아.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하라는 거야? 나랑 제임스는? 당신이 제임스를 친아들처럼 여기겠다고 했잖아. 그런데 우리에게 아무것도 없다면, 제임스를 어떻게 키우겠어?”“그만해!”배현진은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며 소리쳤다. 지금, 이 순간까지도 소피아는 오직 자신과 제임스의 미래에 대해서만 말하고 있었다.소피아는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배현진이 제임스를 친아들처럼 대하려 했던 건 소피아를 사랑해서지, 빚진 마음 때문이 아니었다.“현진 씨...”소피아는 눈물을 흘리며 슬픈 표정을 지었다.“내가 잘못한 거 알아. 하지만 정말 우리 미래를 위해서였어. 당신 부모님이 나를 인정해 주길 바랐고 우리가 순조롭게 결혼하길 원했을 뿐이야. 그래서 내가...”“네가 원하는 건, 배씨 가문을 차지하는 거잖아?”“당신...”“윤아는 내 친동생이야! 그런데 네가 어떻게 내 등 뒤에서 이런 짓을 벌일 수 있어?”배현진은 분노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소피아는 배현진의 외침에 놀라 멍하니 서 있다가 이내 소리쳤다.“배현진! 앞으로 네 여동생이랑 살 거야? 아니면 나랑 살 거야?”그 말에 배현진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배현진은 소피아의 뺨을 세게 때리며 속에 쌓여 있던 모든 후회와 분노를 폭발시켰다.소피아는 비명을 지르며 배현진의 얼굴을 긁으려 달려들었다. 두 사람은 몸싸움을 벌이며 뒤엉켰고 배현진의 얼굴에는 소피아에게 긁힌 상처가 선명하게 남았다.그때, 경찰이 방으로 들이닥쳐 두 사람을 강제로 떼어놓았다. 차가운 수갑이 소피아의 손목에 채워졌다.배현진은 그 자리에서 멍하니 서 있었다. 소피아가 경찰에게 끌려 나가는 순간, 그의 마음속에서 어떤 감정도 명확히 정의되지 않았다. 마치 영혼이 빠져나간 듯, 그의 존재는 산산이 흩어져 버렸다. 온몸이 퍼즐 조각처럼 부서져 다시는 하나로
임지강은 대출 증명서를 꺼내 들었다. 서류에 선명한 배현진의 서명과 붉게 찍힌 도장은 마치 피로 얼룩진 조롱처럼 그의 어리석음을 비웃는 듯했다.“제 생각엔, 이 일은 이렇게 마무리하는 게 좋을 것 같네요.”조 회장이 말했다.“지강아, 빨리 돈을 배 도련님 계좌로 송금하고 그 두 광산을 사들여라. 그리고 배 도련님, 빚을 갚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임 선생님이 이렇게까지 너그럽게 대해주고 있는데, 도련님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 건 말도 안 되죠. 흥! 약속을 어기는 일은 배씨 가문의 품격에도 맞지 않잖아요, 안 그래요?”배현진은 아무 말도 못 하고 고개를 숙였다. 후회와 절망이 그의 마음을 홍수처럼 휩쓸고 있었다.“배씨 가문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요.”임지강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오늘 제가 데려온 사람이 있습니다. 아마 배 도련님도 보고 싶었을 겁니다.”임지강이 손뼉을 두 번 치자 룸의 문이 열리며 배윤아가 천천히 걸어 들어왔다.배현진은 배윤아를 보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의 놀라움은 곧 걱정과 초조함으로 변했다. 배현진은 재빨리 배윤아에게 다가가 손을 꽉 잡으며 물었다.“윤아야, 괜찮아?”“나 괜찮아.”배윤아는 눈가가 붉어졌다. 가족과 떨어져 지낸 시간이 고작 사흘뿐이었지만, 그 시간은 마치 몇 세기가 흐른 것처럼 길게 느껴졌다.그러나 배윤아의 시선이 소피아를 향하는 순간, 증오가 담긴 눈빛이 소피아를 사로잡았다. 배윤아는 이를 악물며 소피아를 가리켰다.“오빠, 바로 저 여자가 사람을 시켜 날 해친 거야!”“뭐라고?”배현진은 몸을 떨며 경악했다.소피아는 그제야 충격에서 벗어나 발악하듯 배현진 곁으로 뛰어들며 변명했다.“아니야! 내가 아니야! 윤아야, 너 그렇게 말하면 안 돼! 네가 사라진 동안, 난 네 소식을 찾으려고 정말 애를 썼어. 난 정말로...”“거짓말하지 마세요!”배윤아는 울부짖으며 소리쳤다.“소피아 씨가 사람을 시켜 날 폭행하고 내 물건을 훔쳐 간 건 분명해요! 그리고 소피아 씨가 가장 원했던 게 배씨
“조 회장님, 이건 도저히 납득할 수 없어요!”소피아가 단호한 목소리로 항의했다.“우리가 그 광산을 사느라 얼마나 많은 돈을 들였는지 아시잖아요. 대박을 기대했는데, 지금 헐값에 팔면 원금도 못 건질 뿐만 아니라 엄청난 손해를 보게 된다고요. 게다가 그 돈은 전부 은행 대출입니다.”“그렇다면 다른 방법이 있나요?”조 회장은 다 피운 담배꽁초를 재떨이에 비벼 끄며 비웃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그런데 이건 아가씨가 주도한 일 아닌가요? 제 기억으로는 배 도련님이 처음엔 그 두 광산에 별 관심이 없으셨던 걸로 압니다만.”“조 회장님...”“배 도련님.”조 회장은 표정을 진지하게 바꾸며 말했다.“자신의 판단을 믿지 않고 오히려 추악한 수단으로 올라선 여자의 말을 믿었으니, 그 손해는 당연히 본인이 책임져야죠.”“지금 말 다했어요?”소피아는 벌떡 일어나며 격분해 외쳤다.조 회장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소피아를 짓누르듯 바라보았다. 그때 주변에 있던 부하들이 한 발 앞으로 다가섰고 소피아의 기세는 단숨에 꺾였다.“배 도련님, 매입자가 누군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배현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조 회장은 부하에게 매입자를 데려오라고 지시했다. 잠시 뒤 문이 열리며 모습을 드러낸 사람을 본 배현진은 그만 충격에 말을 잃고 말았다.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바로 임지강과 송윤지였다.배현진은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서다 테이블을 건드렸고 접시와 그릇이 바닥으로 떨어지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임지강은 송윤지의 손을 잡고 미소를 지으며 송윤지를 위해 의자를 빼주고 임지강도 옆에 나란히 앉았다.“배 도련님, 아는 분이시죠?”조 회장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제가 따로 소개해 드려야 할까요?”배현진과 소피아는 그 자리에 굳어버린 듯 움직이지 못했다.“배 도련님.”임지강은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제가 듣기론 도련님이 투자하신 두 광산이 이제 3200억밖에 안 한다고 하더군요. 제가 3400억에 사들이겠습니다. 도련님이 이 위기를 넘길 수 있도
화면에 띄워진 데이터는 충격 그 자체였다.두 사람은 멍하니 눈을 크게 뜬 채 서로를 바라보았다. 마치 머릿속에 벼락이 내리친 듯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배현진은 혼란스러운 눈빛으로 소피아를 바라보며 물었다.소피아 역시 어찌 된 일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소피아는 너무 당황한 나머지 제대로 된 말을 꺼내지도 못했다.“우리가 1조를 들여 산 두 광산이라고! 무려 1조라고!”배현진이 소리쳤다.“가격이 분명 오를 거라고 했잖아! 그런데 왜 지금 3200억으로 폭락한 거냐고!”“나도... 나도 모르겠어...”소피아는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그럴 리가 없어! 광산의 시장 가격을 철저히 조사했었단 말이야. 그 두 광산은 운산시에 있는데, 지금 운산시 광산 가격이 상승세잖아. 분명 손해 볼 투자가 아니었어.”“하지만 지금 상황 좀 봐.”배현진은 입술을 떨며 소리쳤다. 그의 이마에서는 굵은 땀이 흘러내리고 있었다.“소피아, 그 1조는 전부 은행 대출금이야. 지금 난 은행에 수천억 빚을 졌고 이자도 엄청나다고.”“현진 씨, 진정해.”소피아는 급히 배현진을 달래며 말했다.“이 일은 조 회장이 중간에서 소개한 거래잖아. 조 회장에게 물어보면 모든 게 밝혀질 거야. 내가 직접 물어볼게.”...배현진과 소피아는 약속된 시간보다 훨씬 일찍 호텔 룸에서 조 회장을 기다리고 있었다.배현진은 오늘의 만남을 위해 호텔 매니저에게 최고의 음식을 준비하도록 특별히 부탁했다. 테이블 위에는 호텔의 대표 메뉴들이 가지런히 차려져 있었다.조 회장이 방에 들어서자, 배현진은 그가 풍기는 차가운 기운을 바로 느낄 수 있었다. 조 회장의 눈빛은 마치 코너에 몰린 쥐를 노리는 고양이 같았고 배현진과 소피아는 그 쥐가 된 듯한 압박감에 사로잡혔다.“두 분이 너무 과하게 준비하셨네요.”조 회장은 자리에 앉으며 테이블 위의 술잔을 힐끗 보더니 살짝 미소를 지었다.“이렇게까지 준비하실 필요는 없었어요. 나이
이른 아침, 소피아는 천천히 눈을 뜨며 옆에 누운 남자의 맨가슴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배현진의 입술에 살며시 입맞춤했다.배현진은 그녀의 키스에 미소로 답하며 부드럽게 눈을 떴다.하룻밤의 열정에 지친 두 사람의 얼굴에는 희미한 피곤함이 배어 있었다.“제임스는 아직 안 깨어났어?”“이 시간엔 절대 안 일어나요.”소피아는 부드럽게 웃으며 손가락으로 그의 가슴 위를 장난스럽게 쓰다듬었다.“그럼... 우리 한 번 더?”“아니.”배현진은 소피아의 손을 잡아 입술에 가져다 댄 뒤 가볍게 입맞춤하며 말했다.그는 정말로 피곤했다. 소피아는 도대체 어떻게 매일 밤 이렇게 지칠 줄 모르는 에너지를 뿜어낼 수 있는 걸까?소피아는 송윤지와 완전히 달랐다. 송윤지는 늘 조용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그가 바라볼 때만 순수한 미소를 띠곤 했다.배현진은 문득 송윤지를 떠올린 자신이 이상하게 느껴졌다.그는 고개를 저으며 스스로 미쳤다고 생각했다.“자기야, 무슨 일이야?”“아, 별거 아니야.”배현진은 억지로 웃어 보였다.“맞다, 나 현진 씨랑 상의할 게 있어.”소피아는 배현진의 얼굴을 자신을 향해 돌리며 말했다.“제임스도 점점 크고 있어. 가정교사를 불러서 집에서만 공부시키는 건 이제 좋은 방법이 아닌 것 같아. 또래 아이들과 학교에서 어울리는 게 필요하지 않겠어? 어쨌든 앞으로는 제임스가 배씨 가문의 사업을 물려받을 사람이 될 테니까, 그렇지?”“음...”배현진은 잠시 고민하다가 다소 난처한 표정으로 소피아를 바라보았다.“그런데 장래의 일은 어떻게 될지 몰라... 부모님이 이미 가업을 전부 윤아에게 넘겼잖아.”소피아는 미소를 띠며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흡족해했다.배윤아 같은 풋내기는 소피아와 겨룰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미 배윤아를 기절시켜 조 회장의 카지노 앞에 던져 놓았기 때문이다.조 회장이 배윤아를 데려갔으니, 모두가 배씨 가문의 딸을 납치한 범인이 조 회장과 임지강이라고 믿을 것이다.혹시 조 회장이 색욕에 휘둘리는 사람이라면 더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