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원은 한순간 심장이 멈칫한 것을 느꼈고 자신이 주체할 수 없었다.임수정의 청아한 얼굴은 마치 마법이 있는 듯했고 그 두 눈은 마치 신비로운 세계처럼 그를 유인했다.그는 그녀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분위기가 갑자기 조용해졌고, 온 세상의 빛이 그녀에게 집중되는 것 같았다.시원한 바람이 불어오자, 임수정은 기침을 몇 번 했다.배경원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외투를 벗어 그녀에게 덮어 주었다.“괜찮아요!”“어서 걸치세요!”배경원은 옷을 그녀에게 걸쳐 주었다. “몸이 안 좋다면서요? 그럼 더더욱 감기에 걸리면 안 돼요!”임수정은 입술을 깨물고 조용히 그를 바라보았다.이때 경매장 안에서 소리가 들려왔고, 사람들은 문밖으로 걸어 나왔다.“다 끝난 것 같네요.”배경원이 가볍게 기침을 두 번 하고 말했다.“제가... 집까지 데려다줄게요. 어디 사세요?”임수정은 잠깐 멈칫하더니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조금 전의 모든 것이 마치 꿈인 것 같았다. 이제는 꿈에서 나올 무렵이 됐고 그녀도 현실로 돌아가야 한다.현실은 임씨 가문의 알려지지 않은 딸로 돌아가는 것이다. 자신이 언제까지 살 수 있을지, 자신에게 미래가 있을지 전부 미지수다...임수정은 몸을 돌려 천천히 걷고 있었고 멀지 않은 곳에서 임씨 가문 집사들이 자기를 찾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걸음을 멈추고 배경원을 돌아보며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고마워요.”그에게 감사해야 한다.방금 이 꿈은 모두 그가 선사해 준 것이다.배경원은 잠시 멍하니 서 있었다.“괜찮아요!”배경원은 퉁명스럽게 굴었다.“다음에 또 산책하고 싶으면 저를 찾으세요...”그러나 말소리가 채 떨어지기도 전에 임수정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배경원은 눈을 크게 뜨고 그녀의 흰 그림자가 그에게서 점점 멀어져 가는 것을 지켜만 보았다....최연준은 강서연에게 은근슬쩍 말했다.“경원이 연애하는 것 같아.”강서연은 뚱냥이한테 고양이 밥을 주고 있었는데, 이 말을 듣자마자 머리가 잠깐 안 돌아갔다.“경원 씨가 연애한
강서연은 얼굴을 붉혔다. 최연준이 정신이 산만해진 틈을 타 황급히 그의 품에서 빠져나와 집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방한서는 등골이 오싹해져 도망치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최연준의 그 얼굴은 너무 어두워 잉크를 짜낼 수 있는 정도다.그는 대문까지 몇 걸음 걸어가서 철문을 쾅 하고 열어 얼음장처럼 굳은 눈으로 방한서를 노려보았다.방한서는 입꼬리를 씰룩이며 억지웃음을 지었고 심장은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무슨 일이야?”최연준은 차갑게 한 마디를 내뱉었다.방한서는 하고 싶은 말을 다 잊어버리고 멍하니 그를 쳐다만 봤다.몇 초간의 침묵은 마치 몇 세기처럼 길었다.그리고 강서연은 방에서 누군가의 포효를 들었다.“방한서!”박경실은 채소를 반쯤 다듬다가 이 소리를 듣고 깜짝 놀라 주방에서 뛰쳐나왔다.“도련님, 왜 그러세요?”강서연은 소파에 앉아 몰래 실실 웃었다.“이 방비서가 또 무슨 사고를 쳤길래!”박경실은 한숨을 쉬고 고개를 저으며 주방으로 돌아가 혼잣말했다.“도련님께서 목이 너무 무리한 것 같은데, 이따가 탕을 끓여서 몸보신을 해줘야겠어.”마당에서 뚱냥이는 밥을 몽땅 먹어 치우고 몸을 비틀거리며 두 남자 사이로 파고들어 갔다. 이리저리 살펴보고는 울음소리를 냈다.최연준이 고개를 숙여 뚱냥이를 보고 나서야 어두운 얼굴이 그나마 조금 풀렸다.그는 방한서를 째려보았다.“너는 고양이보다도 못해!”고양이도 용돈 받는 것을 방해하면 안 된다는 걸 알고 있다!“네, 네...”방한서는 사과하는 내내 진땀이 났다.그때 갑자기 머릿속에 번뜩 스치는 게 있었다. 이곳에 온 목적이 생각난 방한서는 황급히 주머니에서 낡은 핸드폰을 꺼냈다.바로 전에 인지석 방에서 발견한 그 폰이다.“도련님, 핸드폰의 데이터가 복구되었습니다. 한 번 확인해 보세요!”최연준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핸드폰을 받고 뒤적였다. 그 안에는 최연희와 인지석의 채팅 기록이 남아있다.그는 얼굴빛이 어두워지더니, 성큼성큼 집으로 걸어 들어갔다.최연준은 핸드폰을 강서연
“네, 도련님.”방한서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러나 윤정재는 신비한 존재고 대중 앞에 나서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경매장에도 그는 모습만 드러냈을 뿐 자리에는 나타나지 않았고, 그의 참모습을 본 사람도 몇 명 되지 않았다.“우리의 이름으로 초대하면 아마 거절할 거야.”최연준은 일찍이 이를 생각하였다.“그러면... 영감님 이름으로 요청할까요?”“그럴 필요는 없어.”최연준은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냥 할아버지가 보고 싶어 한다고 전해줘!”방한서는 잠깐 멈칫했다.“네, 이것도 방법이네요! 어차피 영감님 위신이 거기에 있으니, 윤정재가 거절할 수는 없을 거예요.”최연준은 웃고 있었는데 갑자기 안색이 안 좋아졌다.그는 몸을 굽혔고 다리 관절이 뭔가에 갈라지는 것 같아 통증이 심해서 낮은 소리로 신음했다.“도련님, 괜찮으십니까?”방한서가 많이 당황했다.최연준은 강서연이 주방에 있어 조용히 하라고 눈길을 줬다.“괜찮아. 큰 문제 아니야.”그는 몸을 움직이면서 통증을 완화했다.“예전에 입었던 상처가 재발한 거예요?”방한서가 걱정 가득한 말투로 물었다.항공 사고 후, 최연준은 상처를 입었다. 다른 곳은 괜찮았는데, 두 다리의 부상만이 후유증을 남겼다.“그렇게 심각하지는 않아.”최연준은 몸을 곧추세우고 담담하게 말했다.“요즘 날씨가 추워져서 가끔 아픈 거야. 날씨에 적응하면 괜찮을 거야.”“신 의사님께... 한 번 더 여쭤볼까요?”최연준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때 그는 온몸에 붕대를 감고 있었고, 뼈는 한 조각 한 조각 강제로 떼어진 것처럼 몇 번이나 아파서 죽을 지경이었던 기억이 났다.신석훈은 그의 옆에서 지극정성으로 보살폈고, 그의 썩은 표정을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그가 회복할 수 있었던 것도 신석훈 덕분이다.그리고 최연준이 어렴풋이 기억하기로 신석훈이 그에게 일종의 약을 사용했는데 효과가 아주 좋았다. 지금 다시 재발했으니 그 약을 다시 한번 먹으면 금방 나을지도 모른다....다음날 최연준은 의학연구센터에 찾아갔다.
“네.”최연준은 엄숙한 표정으로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 말했다. “서연이 몰래 온 거라서 비밀로 해주세요...”“무슨 일인데요?”“제 다리 상처가... 최근에 아프기 시작했어요.”신석훈은 깜짝 놀라 그를 진찰실로 데리고 가서 제대로 검사하려고 했다.“그럴 필요는 없어요.”최연준은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고질이에요. 전에는 한 번도 아픈 적이 없었는데, 요즘은 날씨가 추워지면 심하게 아파요. 그때 석훈 씨가 저한테 약 처방을 했잖아요. 반은 내복, 반은 외용으로 기억하고 있는데 효과가 아주 좋았어요... 그래서 오늘 온 것도 그 약을 더 처방해 줬으면 하는 거예요.”신석훈은 좀 난처해서 한참 동안 말을 안 했다.“왜 그래요?”최연준은 궁금했다. ‘의사가 약을 처방하는 것이 어려운 건가?’“연준 씨.”신석훈은 그를 보며 입술을 깨물면서 우물우물 말했다.“사실 저는... 그게 무슨 약인지 몰라요.”“무슨 소리예요?”최연준은 의아했다.“석훈 씨가 저한테 준 약이잖아요!”“제가 쓴 거는 맞는데 약은 다른 사람이 준 거예요!”최연준은 더욱 의심스러웠다.신석훈은 한숨을 내쉬고 사실을 전부 털어놓았다.“연준 씨, 생각해 보세요. 그때 제가 의대를 졸업했지만, 의사가 된 지 얼마 안 됐어요. 혼자서 수술도 안 해봤는데 어떻게 당신을 치료해 줄 수 있었겠어요? 저는 당연히 연준 씨를 치료하고 싶었지만, 능력이 부족해서... 그때 연준 씨는 상처투성이였고, 상처가 감염되어 고열을 일으켜 엄청 위독한 상태였어요. 저는 당신이 구제 불능이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이 일을 하면서 처음으로 내 손에 죽은 부상자라고 생각했단 말이에요. 그때 제가 속수무책이었을 때 어르신 한 분이 저한테 그 약을 주면서 연준 씨 상처를 치료할 수 있다고 해서 제가...”“어르신?”최연준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네.”신석훈은 고개를 끄덕였다.“이 일에 대해서 제가 연준 씨에게 말하지 않은 것은 저의 허영심 때문이에요. 어떤 의사도 자신이 다른 사람을 치료할
“정말 비겁하기 짝이 없군요!”윤정재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최진혁은 교활한 눈빛으로 그를 보며 입꼬리를 씩 올렸다. 그의 머릿속에는 온통 나쁜 생각밖에 없는 것 같다.최연준이 전용 비행기를 탔다가 사고가 났었던 사실을 윤정재는 모르고 있었다. 그때 그와 최진혁은 연회에서 알게 된 사이인데 기껏해야 고개나 끄덕이며 인사한 정도였다.남양의 윤제 그룹은 제약 회사 말고도 민용 공항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남양 지역의 몇몇 대형 공항도 전부 윤제 그룹이 관리하고 있었다.하여 최진혁은 윤정재에게 사실을 숨기고 기술 직원을 매수하여 최연준의 전용 비행기에 손을 썼던 것이었다...그러고는 윤정재에게 엄청난 금액의 보험증명서를 보여주면서 거기에 적힌 수천억에 달하는 보험금이 그의 것이라고 했다.윤정재는 자신이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에 휘말리게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회장님, 이 일이 만약 퍼져나가기라도 한다면 다른 사람들은 회장님의 변명을 들으려 하지도 않고 회장님의 부하가 최연준을 해쳤다고 생각할 거예요. 그때가 되면 회장님이 평생 쌓아온 명예도 함께 무너지겠죠!”윤정재는 숨을 깊게 들이쉬며 보험증명서를 혐오스럽게 힐끗 보고는 자리를 떠났다.그러다가 나중에 죄책감이 들어 최연준의 행방을 찾아다녔다. 그가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소식을 알게 된 윤정재는 이건 하늘이 그에게 준 기회라고 생각했다.하여 사람을 보내 최연준이 얼마나 다쳤는지 상태를 몰래 알아보게 했고 또 약까지 보내줬다. 그때 보낸 약으로 거의 이삼 년은 버틸 수 있었는데 이제 그 기한이 거의 된다...“최진혁 씨.”그의 눈빛에 짜증이 섞여 있었다.“난 좋은 사람은 아니지만 당신 같은 나쁜 사람과 손을 잡지도 않아요.”“하하, 윤 회장님.”최진혁이 코웃음을 쳤다.“어디서 고상한 척이에요? 회장님이 무슨 짓까지 해가면서 그 자리에 앉았는지 모르는 사람이 없어요.”“아무리 그래도 사람들은 내 앞에서 대놓고 얘기하진 못해요. 왜인 줄 알아요?”윤정재는 뒷짐을 지고 카리스마를 뽐냈다
강서연이 눈살을 찌푸리며 목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렸다.화려한 치장에 선글라스를 끼고 과한 귀걸이와 목걸이를 한 여자가 흐느적거리며 걸어왔다.“프로 매니저팀이 있다고 하지 않았어요?”선글라스를 벗고 강서연을 쳐다보는 그녀의 태도는 쌀쌀맞기 그지없었다.“어디 있는 거죠?”하 매니저는 강서연과 눈빛을 주고받고는 고개를 슬쩍 끄덕였다.그러자 강서연이 먼저 웃으며 악수를 건넸다.“문나 씨죠? 저는...”문나는 오만함이 하늘을 찌를 기세였고 그녀가 건네는 악수도 가볍게 무시했다. 강서연은 허공에 머무른 손을 멋쩍게 거두어들였다.하 매니저가 한 걸음 나서서 말했다.“문나 씨, 이분은 어진 엔터테인먼트의 수석 비서 강서연 씨입니다. 연예인 관리를 담당하고 있으니, 앞으로 문제 있으면 서연 씨와 얘기하시면 돼요.”“아, 강서연 씨!”문나는 새로 한 크리스탈 네일을 보며 말끝을 길게 늘어뜨렸다.“서연 씨는 경험이 있어요? 전 아무나 케어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에요.”“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문나 씨. 강 비서님이 이 바닥에서 일한 지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업무 능력이 아주 뛰어나요.”“업무 능력이 뛰어난가요, 아니면 남자를 달래는 능력이 뛰어난가요?”하 매니저는 일그러진 얼굴로 강서연을 쳐다보았다. 강서연은 여전히 아무 말이 없었다.조금 전 문나는 임나연의 추천으로 들어온 사람이라고 하 매니저에게서 들었다.‘의도가 불순한 걸 보니 날 노리고 온 거 맞네.’하지만 근래 문나의 인기가 높은 건 사실이었다. 대표작이 없어도 팬덤만으로도 평생 경제적으로 부족함이 없이 넉넉하게 살 수 있었다.이게 바로 어진 엔터테인먼트가 그녀와 계약한 이유겠지.숨을 깊게 들이마신 강서연이 뭔가 얘기하려던 그때 휴대 전화가 진동했다. 먼 유럽에서 걸려 온 김자옥의 전화였다.강서연은 그 핑계로 자리를 피하여 김자옥의 사무실로 들어와 문을 걸어 잠갔다. 방음 효과가 좋아 밖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대표님.”그녀는 전화를 받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강서연이 물잔에 물을 따르고 한 모금 마시려다가 하마터면 뿜을 뻔했다. 전화를 끊은 강서연은 사무실에서 나왔다.문나는 밖에서 조급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그녀를 째려보았다.“대체 뭐 하는 거예요? 이러면서 프로라고 할 수 있어요?”문나가 목청 높이 소리쳤다.“어진 엔터테인먼트는 그래도 업계에서 실력 있는 큰 회사인데 이런 매니저가 있다는 게 말이 돼요? 오자마자 연예인을 혼자 내팽개치기나 하고. 정말 예의라곤 없네요!”더는 참을 수 없었던 하 매니저가 입을 열었다.“그러는 문나 씨는 예의가 있고요?”문나는 하 매니저를 째려보았다.“강 비서님은 김 대표님의 수석 개인 비서예요. 모든 연예인들의 활동과 그 외 많은 일을 담당하고 있어요. 나석진 씨마저도 강 비서님의 말을 따라야 하는데, 문나 씨 설마 자기 지위가 나석진 씨보다도 높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죠?”하 매니저의 말은 그녀의 정곡을 찔렀다. 문나는 하는 수 없이 뒤로 한 걸음 물러섰지만 얼굴에는 언짢은 기색이 역력했다.강서연은 웃으며 책상 위의 서류를 집었다. 서류에 몇몇 연예인들의 스케줄이 적혀있었다.“이건 문나 씨 스케줄이에요.”강서연은 서류를 문나에게 건넸다.“이 프로그램에 출연하려면 주의 사항이 몇 가지 있어요. 나중에 문나 씨 매니저한테 미리 얘기해 둘게요.”“이건 무슨 프로그램이에요?”문나는 서류를 대충 훑어보고는 다시 옆으로 휙 던졌다.“저 안 나가요!”“이건 회사의 지시예요.”강서연은 그녀를 싸늘하게 쳐다보았다.“회사 지시? 강 비서님, 전 유명한 감독님과 대형 프로젝트를 보고 어진 엔터테인먼트랑 계약한 거예요. 지금 저한테 영화나 드라마를 주는 게 아니라 예능프로에 출연하라고요?”“문나 씨는 팬덤이 큰 연예인이라서 얼굴을 자주 비춰야 해요. 그리고 지금 문나 씨한테 어울리는 작품이 없어요.”“지금 일부러 이러는 거죠?”문나는 그녀를 아니꼽게 노려보았다.“문나 씨.”강서연이 옅은 미소를 지었다.“문나 씨가 벌어들인 돈은 전부 회사에 들어가는데 제가
강서연은 웃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문나의 얼굴에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곽보미는 업계의 유명한 감독이고 작품마다 거의 다 국제상을 받았다. 그녀는 국내의 연예계에 큰 돌풍을 일으켰고 국제 영화계에서도 이름을 날렸다.하여 연예계에 종사하는 사람들 모두 곽보미의 팀에 들어가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다.물론 문나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천재인 곽보미는 평소에도 기고만장한 성격이라 대표작은 없고 팬덤만 큰 연예인을 별로 눈에 차지 않아 했다. 그런데 방금...“정말 곽보미 감독님한테 전화한 거예요?”“네.”하 매니저는 그녀를 힐끗 쳐다보았다.“곽 감독님 요즘에 새 작품을 기획하시는데 나석진 배우도 출연한대요. 강 비서님은 줄곧 곽 감독님과 연락을 취하고 있었고요.”문나는 후회막심했다.“강... 강 비서님.”문나가 강서연을 보며 말했다.“곽 감독님도 이 프로그램에 출연하세요? 곽 감독님은 절대 예능에 출연하지 않는다던데요!”강서연은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이거 그냥 일반 예능프로 아닌가요?”약이 바싹 오른 문나와 달리 강서연은 입술을 적시며 담담하게 말했다.“괜찮아요. 우리 회사는 항상 연예인의 선택을 존중하거든요. 문나 씨가 이 프로그램에 출연하지 않겠다고 했으니, 다른 사람을 찾으면 돼요. 아니면 제가 위약금을 내도 되고요. 꽤 많은 액수이긴 하지만 김 대표님한테는 별거 아니에요. 소속 연예인의 행복이 무엇보다 중요하잖아요.”“잠깐만요!”문나가 황급히 그녀를 불렀다.곽보미도 이 프로그램에 출연한다고 했으니, 그녀와 안면을 틀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였다. 나중에 조연 역할이라도 주어질지 누가 알겠는가?강서연은 돌아서서 웃으며 물었다.“또 다른 일 더 있어요?”“저...”문나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이 프로그램 나갈게요!”“정말이에요?”“네. 회사의 지시에 따를게요.”문나는 갑자기 태도를 확 바꾸었다.“예능에 출연하는 게 나쁠 것도 없죠. 방금 비서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화면에 자주 얼굴
“어떻게 소피아라는 걸 확신하죠?”배윤아는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말했다.“부모님이 회사의 핵심 자료를 제게 모두 맡기셨어요. 그런데 그걸 받은 지 이틀 만에 공격을 당했죠. 이게 단순한 우연일까요?”임지강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고 눈빛이 점점 어두워졌다.“그 자료들은 어디 있어요?”“아마 소피아가 가지고 있을 거예요. 그 자료들은 너무 중요해서 항상 제 곁에 두고 다녔거든요. 하지만 그날 제가 기절하고 다시 깨어났을 때, 가방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어요. 다만...”“다만 뭐요?”“법인 도장은 가방 안에 없었어요.”배윤아는 미소를 지으며 약간 능글맞은 표정을 지었다.“법인 도장은 본사가 모든 자원을 움직일 수 있는 권한이에요. 엄마가 제게 주자마자 저는 바로 군성이에게 맡겼어요. 지금 법인 도장은 최씨 가문에 안전하게 보관되어 있어요.”“그렇다면 소피아가 자료를 손에 넣더라도 아무 쓸모가 없겠군요?”배윤아는 확신에 차서 고개를 끄덕였다.“똑똑하네요!”임지강은 미소를 지었다.“배씨 가문 사람들도 다 무능하진 않나 보네요.”“임 선생님...”배윤아는 고개를 약간 숙이며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오빠가 송윤지에게 잘못한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저는 임 선생님이 우리 가문에 복수하려고 저를 납치했을 거라 생각하지 않아요. 선생님은 그런 수준 낮은 사람이 아니니까요.”임지강은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확실히 똑똑한 사람이네요.”그러나 배윤아의 눈빛은 점점 어두워졌다.“그런데... 정말 우리 오빠에게 복수하고 있는 건가요?”임지강은 대답하지 않았다. 잠시 후, 임지강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가족들에게 안부 전화라도 주세요. 걱정을 많이 하고 계실 거예요.”“이미 군성이에게 연락을 했어요.”배윤아가 말했다.“군성이에게 조용히 아빠에게 알려 드리라고 했어요. 엄마는 충격을 받으시면 안 되니까요... 하지만 제 상황을 오빠에겐 비밀로 해야 해요. 오빠와 소피아는 제가 조 회장님에게 잡혀 있고 선생님이 일부러 복수를 위해 조 회장님을
“설마...”“소피아!”두 사람이 동시에 말했다.이름을 입에 올린 뒤, 둘은 서로를 바라보며 쓴웃음을 지었다.“정말 소피아일 줄이야.”임지강이 담배를 꺼내 들었다. 조 회장이 눈짓을 하자 부하가 공손히 불을 붙였다.방 안은 금세 니코틴 냄새로 가득 찼고 임지강은 잠시 침묵하며 담배 재를 털어냈다.“아마... 조 회장님도 지금 저와 같은 처지겠죠. 배씨 가문의 딸을 납치했다는 누명을 쓰게 됐으니 말이에요.”“그러게 말이야.”조 회장은 차갑게 웃었다.“겉으로는 온갖 아부를 떨면서도 뒤에서는 이런 음모를 꾸미고 내가 배윤아를 납치했다고 소문까지 퍼뜨리고 있더군.”“회장님과 제가 가까운 사이라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은 의심의 화살을 제게도 돌리겠죠.”임지강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이런 식으로 일이 진행되면, 연루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질 겁니다. 저 때문에 저의 매형까지 연루되면, 배씨 가문과 육씨 가문의 사이도 틀어질 거고요.”“그 여자는 이런 식으로 우리 모두를 자기 손바닥 위에서 가지고 놀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걸까?”“조 회장님 생각은 어떻습니까?”“웃기지 말라 그래.”조 회장은 아무런 표정 변화도 없이 평온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임지강은 조 회장의 꽉 쥐어진 주먹을 발견했다. 그의 손등에는 화가 잔뜩 난 핏줄이 도드라져 있었다.“조 회장님.”임지강은 잠시 침묵한 뒤 부드럽게 말했다.“운산시 광산의 가격을 조작하도록 제가 이미 사람을 보냈습니다. 그 두 광산은 이제 그렇게 가치 있는 자산이 아닙니다.”“알고 있어.”조 회장은 임지강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이 일은 원래 자네 복수를 위해 시작한 일이야. 자네의 화가 조금이라도 풀린다면 내 수고도 헛된 게 아니야. 하지만 문제는...”조 회장은 손짓으로 방 안을 가리켰다.그때 방 안에서 배윤아가 몸을 뒤척이며 눈을 몇 번 깜빡이고는 천천히 일어나 앉았다.임지강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배윤아와 단둘이 대화를 나누고 싶습니다.”조 회장은 잠시 망
임지강은 입술을 굳게 다물고 차가운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그를 철저히 파산시키고 싶습니다.”“배씨 가문 전체를 함께 무너뜨리겠다는 뜻인가?”조 회장이 묻자, 임지강은 잠시 망설이다가 고개를 저었다.“솔직히 말하면, 예전의 저라면 그렇게 했겠죠. 하지만 지금은...”“지금은 마음이 약해졌다는 건가?”조 회장이 비웃듯 웃으며 말했다.“내가 알던 임지강은 그런 자비를 베풀 인물이 아닌데?”임지강도 미소를 지었다.그 웃음 뒤로 누군가의 맑은 눈빛과 깨끗한 얼굴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이번 일은 송윤지가 부탁해서 오게 된 것이었다.송윤지는 배윤아의 실종 소식을 듣고 매우 걱정하고 있었다. 비록 배현진과 부부의 연을 맺지 못했지만, 배윤아와는 과거에 친하게 지냈던 사이였기에 친구로서 걱정되었기 때문이다.임지강 자신도 이곳에 올 이유가 있었다. 하나는 송윤지의 부탁 때문이고 또 하나는 배윤아의 납치 사건이 왜 갑자기 자신에게 덮어씌워졌는지 직접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임지강은 배윤아와 거의 만난 적이 없었다. 두 사람은 사실상 서로 모르는 사이였다.“조 회장님, 전 자비를 베푸는 게 아닙니다.”임지강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단지 이 세상에 아름다운 것들이 이미 많은데 한낱 파리 한 마리와 얽혀서 진흙탕 싸움을 벌이는 건 시간 낭비라고 생각해서입니다. 그 녀석에게 적당히 벌을 주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게다가 저는 배씨 가문의 다른 사람들과는 아무런 원한도 없으니, 배씨 가문을 완전히 망가뜨릴 필요는 없습니다.”“흠...”조 회장은 차를 한 모금 마시며 고개를 끄덕였다.“1조라... 적지 않은 금액이지. 배현진은 은행에서 전 재산을 담보로 대출받았다고 하더군. 이 일이 발각되면 한동안 꽤 고생하겠지.”“조 회장님, 사실 오늘 제가 온 이유는 다른 목적도 있어서입니다.”임지강은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약간 굽히며 공손히 말했다. 그러나 조 회장은 손짓으로 그를 제지하며 미소를 지었다.조 회장은 아무 말 없이 손짓으로 따라오라는
배현진은 병원 복도에 있는 긴 의자에 앉아 두 손으로 머리를 움켜잡고 고개를 푹 숙인 채 완전히 무너진 모습이었다.“그럴 리가 없어...”한참 동안 앉아 있던 배현진은 갑자기 고개를 들며 말했다.“연준 아저씨와 서연 이모는 소피아와 함께 지낸 적이 없잖아요. 소피아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니 그렇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소피아는 절대 저를 배신하지 않을 겁니다.”“이 녀석아, 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고집을 부릴 거야.”최연준이 엄하게 꾸짖었다.배경원은 아무 말 없이 아들의 손을 잡았다. 그의 눈에는 깊은 절망이 서려 있었다.“그만해요, 셋째 형님...”배경원은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지금 수정이가 응급실에 있는데, 이 아이와 더 이상 다투고 싶지 않아요. 그냥 없는 아들이라고 생각하려 합니다.”“아버지!”“꺼져버려!”배경원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그 눈빛 너머에는 모든 걸 놓아버린 듯한 깊은 허무가 스며 있었다.배현진은 잠시 망설이다가 결국 돌아섰다. 떠나기 전, 그는 다시 돌아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아버지,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윤아를 반드시 무사히 데려올게요. 엄마도 무사할 거예요. 우리 가족은... 예전처럼 다시 행복해질 거예요.”배경원은 아들에게 단 한 번도 시선을 주지 않은 채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잠시 후, 응급실의 불이 꺼졌다. 배경원은 화살처럼 뛰어가며 아내의 이름을 크게 외쳤다.의사가 땀으로 흠뻑 젖은 마스크를 벗으며 가까스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배 선생님, 사모님께서는 일단 생명에는 지장이 없습니다.”“뭐라고요?”강서연은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일단 생명에 지장이 없다는 건, 앞으로 위험이 있을 수도 있다는 말인가요?”“다들 진정하세요.”의사는 부드럽게 설명했다.“사모님의 상태가 많이 복잡합니다. 곧바로 특수 병동으로 옮길 예정이라 당분간 면회는 어려울 겁니다. 이번 주가 아주 중요한 시기이긴 하지만, 제 판단으로는 이 고비를 무사히 넘기실 가능성이 큽니다.”세 사람은 안도의 숨을 쉬며 그나마
“아내라고?”강서연이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현진이와 정식으로 결혼한 적 있니? 다른 사람과 약혼한 상태에서 끼어든 건 너잖아. 명분도 없는 관계에 ‘아내’라는 말을 쓰다니, 웃음거리밖에 안 될 거야.”“최 사모님...”“갑자기 생각난 건데.”강서연의 눈빛이 미세하게 흔들렸다.“수정 씨가 쓰러졌을 때 네가 침대 옆에 있었던 거 맞지?”“아, 네.”소피아는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제가 현진 씨를 대신해 효도하러 갔던 거예요. 하지만 어머님 건강이 그렇게 나쁘실 줄은 몰랐습니다.”“수정 씨가 쓰러지기 직전에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말해보렴.”소피아는 순간 멈칫하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말할 수 없는 이유라도 있니?”강서연은 한 발짝 다가가며 소피아를 몰아붙였다.“수정 씨는 평소 건강관리를 철저히 하던 사람이야. 그런 사람이 쉽게 쓰러질 리 없지. 분명 큰 충격이 있었을 거야. 쓰러지기 직전 병실에 너 혼자 있었다며? 뭔가 숨기고 있는 게 분명해.”“서연 이모, 그렇게 말씀하지 마세요!”배현진은 소피아를 자신의 뒤로 끌어당기며 소피아에게 나가라는 눈짓을 보냈다. 소피아는 고개를 끄덕이고 복도를 따라 빠르게 사라졌다.소피아가 사라지자, 배현진은 조심스럽게 말했다.“서연 이모, 소피아는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배현진!”강서연은 배경원이 아들을 두 번이나 때린 이유를 이제야 완벽히 이해한 듯, 분노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너 어떻게 이렇게 사람 보는 눈이 없니? 네 엄마는 지금 저 안에 누워 있어.”“정말로 소피아와는 아무 관련이 없어요...”배현진은 조심스럽게 입술을 핥으며 설명했다.“서연 이모, 사실 소피아도 자책하고 있어요. 그날 소피아도 윤아의 안전을 걱정하다가 엄마 앞에서 그만 실수로 말을 흘리고 만 거예요. 그래서...”“뭐라고?”최연준이 눈을 부릅뜨며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터뜨렸다.“배현진, 네 엄마 쓰러졌을 때 넌 방에 없었잖아.”“소피아가 제게 그렇게 말했어요.”“너...”최연준은 순간
병원 응급실 밖.배경원은 의자에 주저앉아 힘없이 고개를 숙였다. 충혈된 눈으로 응급실 문을 응시하며 한숨을 길게 토해냈다. 한때 당당했던 그의 어깨는 지금 축 처져 있었다. 뒷모습만으로도 절망감이 고스란히 드러났다.배경원은 주먹을 단단히 쥐었지만, 온몸은 떨리고 있었다.적막이 흐르는 복도는 불길한 정적마저 감돌았다.결국, 억눌렀던 감정이 터져 나와 눈물이 조용히 뺨을 적셨다.“경원아!”멀리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배경원이 고개를 들자, 최연준과 강서연이 급히 달려오고 있었다. 힘이 풀려 바닥에 쓰러질 뻔한 배경원을 최연준이 재빨리 부축했다.강서연은 응급실 문을 바라보며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걱정하지 마세요. 치료는 연희 씨와 신석훈 씨의 제자들이 맡고 있어요. 모두 실력이 뛰어난 사람들이에요. 수정 씨는 평소 건강을 잘 관리하셨으니 금방 회복될 겁니다.”“어쩌다 이렇게까지 된 거야?”최연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왜 갑자기 병세가 심각해진 거야? 그리고 윤아는...”배경원은 떨리는 손으로 최연준의 팔을 붙잡으며 애타는 목소리로 말했다.“셋째 형님, 제발 윤아를 찾아주세요. 딸은 사라지고 아내는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어요. 둘 다 잃으면 저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정말 모르겠습니다...”“그런 바보 같은 말 하지 마세요. 둘 다 무사할 겁니다.”강서연이 단호히 말했다.“윤아는 우리 집안의 며느리예요. 누가 윤아를 해치려 한다면 최씨 가문에서 가만히 있을 리 없어요. 그 결과가 어떤 건지 모를 리도 없고요. 그리고...”강서연은 순간 무언가를 떠올린 듯 말을 이어가려다 복도 끝에서 배현진이 소피아와 함께 급히 다가오는 모습을 보고는 말을 삼키고 배현진을 노려보았다.“연준 아저씨, 서연 이모...”배현진은 어딘가 죄책감이 깃든 목소리로 말했다. 배현진은 배경원에게 다가가 팔을 살며시 부축하며 조심스레 말했다.“아버지...”그 순간, 배경원이 배현진의 뺨을 내려쳤다.배경원은 분노로 가득 찬 눈빛으로 배현진을 노려보며
임수정은 갑작스러운 기침을 하며 침대 옆 경보 벨을 향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그 손은 소피아에 의해 단호히 막혔다.“사모님, 제 말을 듣는 게 좋으실 겁니다.”소피아는 부드럽지만 섬뜩한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다.“제가 만든 음식이 그렇게 형편없지도 않고 독을 넣을 만큼 제가 어리석지도 않아요. 안심하세요. 이 모든 재료는 사모님의 건강을 생각하며 준비한 겁니다. 오늘 이 자리에 온 이유는 진심으로 사모님을 돌보고 싶어서예요.”임수정은 가슴을 움켜쥔 채 힘겹게 몸을 일으켜 앉았다. 임수정의 눈엔 불신과 경계심이 서려 있었다.요즘 배경원은 외출이 잦아졌고 이유를 묻자, 회사 일 때문이라며 안심하라는 대답뿐이었다.그럼에도 임수정의 마음속엔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점점 커져만 갔다.깊게 숨을 들이마신 임수정은 마음을 가라앉히며 겉으론 소피아의 말을 따르는 척 고개를 끄덕였다.“사모님, 잘 생각하셨어요.”소피아는 임수정에게 쿠션을 건네며 은은하게 웃었다.“우리 결국엔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될 사이잖아요. 지금부터 제 존재에 익숙해지시는 게 좋을 겁니다.”“흥! 내 아들이 눈이 먼 게 분명해.”임수정은 비웃음 섞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어떻게 너 같은 사람에게 속을 수 있는지...”“저를 깔보지 마세요. 저는 이혼하고 아이도 데리고 있지만, 현진 씨를 향한 제 진심은 변하지 않아요. 저는 현진 씨와 평생을 함께하고 싶습니다. 누구와는 달리 겉으론 순수한 척하면서 남자를 유혹하는 짓은 안 한다는 건 알아주셨으면 해요.”“너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임수정은 언성을 높이며 노려보았다.소피아는 눈썹을 치켜세우며 더욱 날카롭게 말했다.“사모님, 제가 말하는 사람은 바로 사모님의 그 옛날 며느리가 될 뻔했던 그 사람이에요.”“헛소리하지 마!”임수정은 화를 내며 목소리를 높였다.“그 일은 우리 배씨 가문이 송윤지에게 잘못한 일이야. 그 애의 명예를 더럽히지 마.”“사모님, 사람은 겉모습만 보고 판단할 수 없는 법이에요.”소피아는 태연한
“너와 상관없다고?”임우정은 다급하게 외쳤다.“네 형부가 이미 윤아의 통화 기록을 조사했어. 윤아가 실종되기 전에 조 회장이랑 통화했던 게 드러났다고! 지강아, 너와 조 회장이 어떤 관계인지 나한테도 숨길 작정이었어?”임지강은 미간을 찌푸렸다. 이 사건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고 머릿속에서 실타래처럼 엉켜 있었다.“그래요. 저와 조 회장이 가까운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저와 배윤아 사이엔 원한이라곤 없잖아요... 누나, 왜 저를 의심하는 거예요?”“지강아!”임우정의 목소리가 더욱 절박해졌다.“너, 송윤지 일 때문에 배현진을 미워하는 건 알아. 하지만... 네 말대로라면 윤아한테까지 증오를 전가하면 안 되잖아!”“누나, 정신 좀 차리세요!”임지강의 목소리는 차갑고 날카로웠다. 어둠이 깃든 그의 얼굴은 단호함을 더했다.“무슨 근거로 저를 의심하시는 건데요?”전화기 너머로 침묵이 흘렀다. 임지강의 강경한 태도에 임우정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한참 후, 임우정은 낮고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그렇다면... 배씨 가문을 좀 도와줄 순 없겠니?”임지강은 코웃음을 치며 전화를 끊었다.수화기를 내려놓고 고개를 돌리자 맑고 투명한 송윤지의 눈빛과 마주쳤다.“배씨 가문에 무슨 일이 생긴 건가요?”...요양원 병실 문 앞.소피아의 하이힐 소리가 텅 빈 복도를 울리며 퍼져 나갔다. 소피아의 손엔 보온 도시락이 들려 있었고 문 앞을 지키는 경호원들에게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제가 사모님께 식사를 가져왔습니다. 안으로 들여보내 주세요.”경호원들은 서로 눈치만 보며 말없이 서 있었다.“이건 도련님께서 지시하신 거예요.”소피아는 휴대전화를 꺼내 그들에게 일부러 화면을 보여주며 말했다.“전화를 걸어 확인해 보실래요? 아시다시피 사모님 건강이 좋지 않으세요. 세 끼 제대로 챙겨 드시지 못하면 여러분들이 책임지실 겁니까?”경호원들은 난처한 얼굴로 머뭇거리다 결국 길을 내주었다.“이제야 말이 통하네.”소피아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앞으로
송윤지는 겨우 한 모금을 마시고 사레가 들어 술을 뱉을 뻔했다. 마신 술이 얼굴에 스며든 듯 송윤지의 뽀얀 볼은 어느새 매혹적인 와인빛으로 물들었다.임지강은 그런 송윤지를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임지강은 송윤지에게 다가가 가볍게 등을 두드리며 입가에 묻은 술자국을 부드럽게 닦아주었다.“임 대표님...”송윤지는 조심스럽게 임지강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려 애썼다.하지만 임지강은 말없이 송윤지의 손을 잡아 통유리창 앞까지 데려갔다.송윤지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임지강을 바라보았다. 임지강이 손뼉을 두 번 치자 깊고 짙은 밤하늘에 수많은 불꽃이 터지기 시작했다. 잘게 부서진 불빛들이 반짝거렸다.불꽃은 색과 모양을 끊임없이 바꾸며 꿈같은 광경을 만들어냈다.송윤지는 멍하니 그 장면을 바라보며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마음에 들어요?”임지강의 낮고 매력적인 목소리가 송윤지의 귀에 스며들었다.“잠깐 눈 좀 감아 봐요.”“네?”임지강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제가 별을 따다 줄게요.”마지막 불꽃이 빛의 궤적을 남기며 밤하늘로 사라지고 다시 평온한 고요가 찾아왔다.송윤지는 미소를 지으며 임지강의 말을 따라 눈을 감았다. 그러자 따뜻하면서도 약간 서늘한 남자의 손길이 송윤지의 손을 잡더니 손바닥 위에 무언가가 놓이는 느낌이 들었다.송윤지는 깜짝 놀라며 눈을 번쩍 떴다. 그녀의 손에는 정말로 ‘별’이 있었다.“이건...”그것은 목걸이였다. 펜던트는 별 모양으로 깎아낸 다이아몬드로, 완벽하게 다듬어져 찬란한 빛이 퍼지고 있었다.“제가 해줄게요.”임지강은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안 돼요. 이건 너무 비싼 거라서 제가...”“받아줘요.”임지강의 눈빛은 따스하고도 단호했다.“그리고... 사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송윤지는 고개를 숙였다. 귀 끝까지 붉어진 송윤지의 얼굴은 마치 열이 오른 듯했다.임지강은 미소를 지으며 송윤지의 귓가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살짝 정리해 주었다.“사실,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저 윤지 씨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