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서연이 눈살을 찌푸리며 목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렸다.화려한 치장에 선글라스를 끼고 과한 귀걸이와 목걸이를 한 여자가 흐느적거리며 걸어왔다.“프로 매니저팀이 있다고 하지 않았어요?”선글라스를 벗고 강서연을 쳐다보는 그녀의 태도는 쌀쌀맞기 그지없었다.“어디 있는 거죠?”하 매니저는 강서연과 눈빛을 주고받고는 고개를 슬쩍 끄덕였다.그러자 강서연이 먼저 웃으며 악수를 건넸다.“문나 씨죠? 저는...”문나는 오만함이 하늘을 찌를 기세였고 그녀가 건네는 악수도 가볍게 무시했다. 강서연은 허공에 머무른 손을 멋쩍게 거두어들였다.하 매니저가 한 걸음 나서서 말했다.“문나 씨, 이분은 어진 엔터테인먼트의 수석 비서 강서연 씨입니다. 연예인 관리를 담당하고 있으니, 앞으로 문제 있으면 서연 씨와 얘기하시면 돼요.”“아, 강서연 씨!”문나는 새로 한 크리스탈 네일을 보며 말끝을 길게 늘어뜨렸다.“서연 씨는 경험이 있어요? 전 아무나 케어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에요.”“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문나 씨. 강 비서님이 이 바닥에서 일한 지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업무 능력이 아주 뛰어나요.”“업무 능력이 뛰어난가요, 아니면 남자를 달래는 능력이 뛰어난가요?”하 매니저는 일그러진 얼굴로 강서연을 쳐다보았다. 강서연은 여전히 아무 말이 없었다.조금 전 문나는 임나연의 추천으로 들어온 사람이라고 하 매니저에게서 들었다.‘의도가 불순한 걸 보니 날 노리고 온 거 맞네.’하지만 근래 문나의 인기가 높은 건 사실이었다. 대표작이 없어도 팬덤만으로도 평생 경제적으로 부족함이 없이 넉넉하게 살 수 있었다.이게 바로 어진 엔터테인먼트가 그녀와 계약한 이유겠지.숨을 깊게 들이마신 강서연이 뭔가 얘기하려던 그때 휴대 전화가 진동했다. 먼 유럽에서 걸려 온 김자옥의 전화였다.강서연은 그 핑계로 자리를 피하여 김자옥의 사무실로 들어와 문을 걸어 잠갔다. 방음 효과가 좋아 밖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대표님.”그녀는 전화를 받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강서연이 물잔에 물을 따르고 한 모금 마시려다가 하마터면 뿜을 뻔했다. 전화를 끊은 강서연은 사무실에서 나왔다.문나는 밖에서 조급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그녀를 째려보았다.“대체 뭐 하는 거예요? 이러면서 프로라고 할 수 있어요?”문나가 목청 높이 소리쳤다.“어진 엔터테인먼트는 그래도 업계에서 실력 있는 큰 회사인데 이런 매니저가 있다는 게 말이 돼요? 오자마자 연예인을 혼자 내팽개치기나 하고. 정말 예의라곤 없네요!”더는 참을 수 없었던 하 매니저가 입을 열었다.“그러는 문나 씨는 예의가 있고요?”문나는 하 매니저를 째려보았다.“강 비서님은 김 대표님의 수석 개인 비서예요. 모든 연예인들의 활동과 그 외 많은 일을 담당하고 있어요. 나석진 씨마저도 강 비서님의 말을 따라야 하는데, 문나 씨 설마 자기 지위가 나석진 씨보다도 높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죠?”하 매니저의 말은 그녀의 정곡을 찔렀다. 문나는 하는 수 없이 뒤로 한 걸음 물러섰지만 얼굴에는 언짢은 기색이 역력했다.강서연은 웃으며 책상 위의 서류를 집었다. 서류에 몇몇 연예인들의 스케줄이 적혀있었다.“이건 문나 씨 스케줄이에요.”강서연은 서류를 문나에게 건넸다.“이 프로그램에 출연하려면 주의 사항이 몇 가지 있어요. 나중에 문나 씨 매니저한테 미리 얘기해 둘게요.”“이건 무슨 프로그램이에요?”문나는 서류를 대충 훑어보고는 다시 옆으로 휙 던졌다.“저 안 나가요!”“이건 회사의 지시예요.”강서연은 그녀를 싸늘하게 쳐다보았다.“회사 지시? 강 비서님, 전 유명한 감독님과 대형 프로젝트를 보고 어진 엔터테인먼트랑 계약한 거예요. 지금 저한테 영화나 드라마를 주는 게 아니라 예능프로에 출연하라고요?”“문나 씨는 팬덤이 큰 연예인이라서 얼굴을 자주 비춰야 해요. 그리고 지금 문나 씨한테 어울리는 작품이 없어요.”“지금 일부러 이러는 거죠?”문나는 그녀를 아니꼽게 노려보았다.“문나 씨.”강서연이 옅은 미소를 지었다.“문나 씨가 벌어들인 돈은 전부 회사에 들어가는데 제가
강서연은 웃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문나의 얼굴에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곽보미는 업계의 유명한 감독이고 작품마다 거의 다 국제상을 받았다. 그녀는 국내의 연예계에 큰 돌풍을 일으켰고 국제 영화계에서도 이름을 날렸다.하여 연예계에 종사하는 사람들 모두 곽보미의 팀에 들어가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다.물론 문나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천재인 곽보미는 평소에도 기고만장한 성격이라 대표작은 없고 팬덤만 큰 연예인을 별로 눈에 차지 않아 했다. 그런데 방금...“정말 곽보미 감독님한테 전화한 거예요?”“네.”하 매니저는 그녀를 힐끗 쳐다보았다.“곽 감독님 요즘에 새 작품을 기획하시는데 나석진 배우도 출연한대요. 강 비서님은 줄곧 곽 감독님과 연락을 취하고 있었고요.”문나는 후회막심했다.“강... 강 비서님.”문나가 강서연을 보며 말했다.“곽 감독님도 이 프로그램에 출연하세요? 곽 감독님은 절대 예능에 출연하지 않는다던데요!”강서연은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이거 그냥 일반 예능프로 아닌가요?”약이 바싹 오른 문나와 달리 강서연은 입술을 적시며 담담하게 말했다.“괜찮아요. 우리 회사는 항상 연예인의 선택을 존중하거든요. 문나 씨가 이 프로그램에 출연하지 않겠다고 했으니, 다른 사람을 찾으면 돼요. 아니면 제가 위약금을 내도 되고요. 꽤 많은 액수이긴 하지만 김 대표님한테는 별거 아니에요. 소속 연예인의 행복이 무엇보다 중요하잖아요.”“잠깐만요!”문나가 황급히 그녀를 불렀다.곽보미도 이 프로그램에 출연한다고 했으니, 그녀와 안면을 틀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였다. 나중에 조연 역할이라도 주어질지 누가 알겠는가?강서연은 돌아서서 웃으며 물었다.“또 다른 일 더 있어요?”“저...”문나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이 프로그램 나갈게요!”“정말이에요?”“네. 회사의 지시에 따를게요.”문나는 갑자기 태도를 확 바꾸었다.“예능에 출연하는 게 나쁠 것도 없죠. 방금 비서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화면에 자주 얼굴
윤정재는 유리창을 통해 눈도 깜빡이지 않고 온 오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아침에 강서연이 종종걸음으로 출근하는 모습을 보았고 10시가 조금 지나서 커피 사러 내려왔다가 다시 올라가는 걸 보았다. 그러고는 지금까지 강서연은 건물 밖을 나온 적이 없다.윤정재의 얼굴에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대로 그냥 가기 아쉬운지 손가락으로 무릎을 툭툭 두드렸다.“회장님, 계속 기다리실 건가요?”부하 진용수는 그의 밑에서 일한 지 오래되어 그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다가가고 싶어도 다가갈 수 없는 그 기분은 말로 이루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웠다.“회장님.”진용수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왜 직접 가서 만나지 않으시는 겁니까? 사실 오랜 시간 동안 회장님은 두 분을 계속 마음에 품고 계셨잖아요...”“그만 얘기해.”윤정재가 목소리를 내리깔았다.어찌 쉽게 내려놓을 수 있겠는가?윤문희 말고 평생 다른 여자를 사랑한 적이 없었고 강서연은 또 두 사람의 귀한 딸인데.젊었을 때 그는 나중에 딸이 생기면 사랑을 마음껏 주면서 예쁘게 키울 거라는 상상을 얼마나 했는지 모른다...윤정재의 눈시울이 점점 붉어졌고 마음이 칼로 도려내듯 아팠다.“그럼... 회장님.”진용수가 또 물었다.“최연준 도련님한테는 언제 약을 가져다줄까요?”윤정재는 잠깐 생각하다가 한마디 툭 던졌다.“급할 거 없어.”“네?”진용수가 화들짝 놀랐다.“하지만 도련님의 약이 기한이 다 됐을 텐데요...”“기한이 다 돼도 목숨에는 지장이 없잖아!”윤정재는 진용수를 노려보았다.“오늘따라 왜 이렇게 말이 많아?”진용수는 더는 아무 말이 없었다.“최연준이 우리 서연이한테 어떻게 하는지 잘 보고 치료해 줄지 결정해야지, 안 그래?”진용수는 잠깐 놀라는가 싶더니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표정을 지었다.의술로 세인을 구제한다면서? 의사의 자애로운 마음은 어디로 간 걸까?다른 사람에게는 한없이 베풀면서 자기 사위는 지켜보겠다고 한다.“회장님, 만
진용수는 계속하여 말했다.“오성에서 그 땅을 눈독 들인 대가문이 여러 집 있는데 다들 콩고물이라도 얻어먹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어요. 그러니까 연합 병원 프로젝트는 꽤 할 만한 프로젝트예요.”“그래, 알았어.”윤정재가 어두운 목소리로 말했다.지금 그에게 있어서 병원은 둘째였다. 가장 중요한 건 강서연과 만나 말이라도 몇 마디 하면서 마음껏 지켜보고 싶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할 것 같았다.사실 강서연을 만나기 전에 그는 이미 오성대에 가서 윤찬을 몰래 봤었다.기세가 드높은 아들은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머리가 좋고 공부도 열심히 하여 장차 아주 훌륭한 인물이 될 기질이 보였다. 게다가 의학원에 들어가 연구까지 하는 걸 보면 뭔가 타고난 재능이 있는 게 확실했다.그 모습에 윤정재는 무척이나 뿌듯했다.하지만 무슨 이유인지 그는 아들보다 딸을 더 예뻐했다...남자애는 시련을 겪어도 툭툭 털고 일어나야 하기에 과하게 친절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자애는 애지중지하며 예쁘게 키워야 한다.윤정재의 침착하고 차가운 얼굴에 따뜻한 웃음이 지어졌다.“일단 내가 아직 누구랑 손을 잡을지 결정하지 못했다고 알려.”그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때가 되면 그 사람들이 먼저 날 찾아올 거야.”진용수는 잠깐 망설였다. 다른 가문은 그래도 말이 잘 통하지만 유독 최씨 가문만 예로부터 기고만장하여 상대하기 쉽지 않았다.“최연준 도련님은 먼저 연락하지 않을 겁니다.”진용수가 웃으며 말했다.“도련님은 아마 회장님께서 먼저 고개를 숙이시길 기다릴걸요?”“지금 장난해?”윤정재의 낯빛이 어두워졌고 목소리도 아까보다 훨씬 높아졌다.“그 새X 눈에 장인어른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회장님, 제 기억이 맞는다면 그날 최진혁이 도련님을 새X라고 했을 때 회장님께서...”“내가 그러는 건 괜찮아!”윤정재가 두 눈을 부릅떴다.“하지만 다른 사람은 안 돼!”진용수는 웃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윤정재는 이 사위를 그래도 인정하는 눈치였다.
“전화한 건 맞지만 그저 안부 전화였을 뿐이에요.”문나의 낯빛이 창백해졌다.그렇다. 강서연은 단 한 번도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없었다. 그리고 아까 곽보미와 통화할 때도 그저 문나의 상황을 솔직하게 얘기했을 뿐이었다.이게 다 문나가 너무 조급했던 탓이었다. 곽보미의 새 작품에 출연하려고, 유명 감독 앞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뽐내려 했기 때문에 강서연의 꾀에 넘어간 것이었다.문나는 너무도 화가 나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녀는 이를 꽉 깨물고 말했다.“날 엿먹였다 이거죠?”강서연은 진지한 표정으로 그녀를 싸늘하게 쳐다보았다.“회사 규정도 따르지 않고 여기서 소란을 피우는 게 옳은 일이라 생각해요? 팬이 좀 있다고 해서 진짜 공주라도 된 줄 알아요?”“강서연, 당신...”“팬은 당신을 높이 치켜세울 수 있지만 감옥에도 처넣을 수 있다는 거 잊지 말아요.”강서연의 한마디 한마디는 마치 무거운 돌덩이처럼 그녀의 마음을 마구 때렸다.문나는 분통이 터졌지만 할 수 있는 거라곤 아무것도 없어 제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그리고 저.”강서연은 팔짱을 끼고 담담하게 웃었다.“문나 씨가 여기서 마구 행패를 부리는 건 참을 수 있어요. 하지만 당신이 가진 모든 걸 잃게 할 수 있다는 것도 명심해요! 못 믿겠으면 어디 한번 해보시든지!”문나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가라앉히려고 연신 심호흡을 했다.그녀의 몇몇 매니저들이 다가와 귀띔했다.“문나야, 강 비서님은 김 대표님을 모시는 수석 비서이자 어진 엔터테인먼트의 총괄 매니저란 말이야. 강 비서님을 건드려서는 절대 안 돼.”“왜? 저런 사람을 내가 겁내야 해?”“그럼요! 당연히 겁내야죠.”그때 책장 뒤에서 갑자기 인기척이 들려왔다.화들짝 놀란 문나는 인기척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책장이 양쪽으로 열리면서 박경실이 웃으며 걸어 나왔다.그녀는 휴대 전화를 흔들며 강서연에게 말했다.“서연 씨, 저 이러다가 아주 촬영 쪽으로 전향하겠는데요?”강서연은 박경실의 팔짱을 끼고 애처럼 귀엽게 애교를 부렸다.문
문나는 순간 두려움이 밀려와 두 다리에 힘이 풀릴 것만 같았다.조금 전 내뱉은 말은 홧김에 머리를 거치지 않고 나온 말이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다시 생각해 보니 아무리 임나연을 위해 나선 거라고 해도 이 타이밍에 나서서는 안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강서연이 어떻게 나올까? 설마 따귀를 때리진 않겠지?’문나는 고개를 들고 주변을 힐끔거렸다. 마침 문 앞 복도에 서 있어 멀지 않은 곳에 CCTV가 있었다. 그녀는 그제야 시름을 놓았다.만약 강서연이 손이라도 댄다면 살을 더 보태 CCTV 영상을 공개하여 팬들의 악플 세례를 받게 할 생각이었다.“왜요? 제 말이 틀렸어요?”문나는 다시 의기양양했다.“4대 가문에서 그 자리를 어떻게 지켰는지 알아요? 서로 혼약을 맺고 자원을 교환하면서 지금까지 지킨 거예요!”문나가 코웃음을 쳤다.“나중에 연준 도련님한테 무슨 어려운 일이라도 생기면 나연 씨는 도련님을 도울 수 있지만 서연 씨는 발목만 잡을 거예요! 서연 씨는 남자한테 빌붙어 사는 거 말고 할 줄 아는 게 뭐예요?”“그래요.”강서연이 덤덤하게 대답했다.“전 연준 씨한테 빌붙어 살아요. 그런데 왜요? 어떤 사람은 빌붙고 싶어도 못 빌붙는데!”말문이 막힌 문나는 그녀를 노려보기만 했다.강서연은 상 위에 놓인 산세베리아를 만지며 씩 웃었다. 눈빛이 어찌나 그윽한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무지 가늠할 수 없었다.“저한테 배경이 없는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전 연준 씨만 있으면 돼요. 그리고 결혼에 관하여 연준 씨가 저한테 뭐라 했는지 알아요?”그녀가 피식 웃었다.“제가 최씨 가문에 시집가는 게 아니라 저한테 장가오는 거랬어요!”문나는 놀란 나머지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문나 씨, 우리 결혼 때문에 걱정 끼쳐서 정말 미안해요.”강서연은 여전히 무표정이었다.“하지만 앞으로는 일에 더 많이 신경 썼으면 좋겠어요. 저랑 연준 씨 일은 문나 씨가 신경 쓰고 싶어도 기회가 없을 겁니다!”...최연준이 집에 돌아와 보니 강서연은 뚱냥이를 안은 채
강서연이 어리둥절해하며 두 눈을 깜빡였다.최연준은 그녀의 손을 잡고 방으로 돌아와 서랍에서 서류 몇 개를 꺼냈다. 서류를 본 강서연은 저도 모르게 가슴이 움찔했다.“이건 서교 땅 기획도이고.”최연준은 하나하나 차근차근 그녀에게 설명했다.“이건 다 프로젝트 협력안이야.”그가 마지막 페이지를 펼쳐 보이자, 강서연의 사인이 떡하니 있었다.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최연준을 쳐다보았다. 최연준은 그녀 앞에 웅크리고 앉아 그녀의 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으며 씩 웃었다.지난번 연회의 대기실에서 그녀에게 서류 몇 장에 사인하라던 때가 떠올랐다. 자신과 함께 맞서 싸우고 리스크를 부담하자면서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댔었다...그때 그녀는 최연준을 철석같이 믿었기에 사인한 서류가 무슨 내용인지 제대로 보지도 않고 망설임 없이 사인했었다.“사실 리스크를 함께 부담하자는 거 아니야.”최연준이 부드럽게 말했다.“프로젝트 리스크는 내가 다 평가해 봤어. 당신한테 사인하라고 한 건... 이 프로젝트가 당신 것이기 때문이야. 난 그저 당신 밑에서 일하는 부하니까 당연히 대표의 사인을 받아야지.”“뭐라고요?”강서연은 머릿속이 하얘졌다. 최연준의 따뜻한 눈웃음 속에는 온통 그녀의 모습뿐이었다.“이 땅뿐만이 아니야.”최연준이 계속 말했다.“이 몇몇 회사들.”그러고는 다른 서류를 꺼내 그녀에게 일일이 보여주었다.강서연은 가슴이 쿵쾅거렸다. 서류에 큼지막하게 적힌 자신의 이름을 보며 저도 모르게 숨을 죽였고 이 모든 게 마치 꿈만 같았다.‘동명, 레이안, 웨스턴... 이게 다 연준 씨 회사 아니었어?’“이젠 다 당신 거야.”최연준은 그녀를 묵묵히 쳐다보았다. 강서연의 입가가 파르르 떨렸고 뭐라 얘기하고 싶었지만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당신 뒤에 아무도 없는 게 아니야. 내가 말했잖아, 당신은 내가 있다고.”강서연은 고개를 숙인 채 한참 동안 입을 꾹 다물었다. 하고 싶은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결국 이 한마디만 내뱉었다.“미안해요...”최연준은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