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서연은 웃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문나의 얼굴에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곽보미는 업계의 유명한 감독이고 작품마다 거의 다 국제상을 받았다. 그녀는 국내의 연예계에 큰 돌풍을 일으켰고 국제 영화계에서도 이름을 날렸다.하여 연예계에 종사하는 사람들 모두 곽보미의 팀에 들어가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다.물론 문나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천재인 곽보미는 평소에도 기고만장한 성격이라 대표작은 없고 팬덤만 큰 연예인을 별로 눈에 차지 않아 했다. 그런데 방금...“정말 곽보미 감독님한테 전화한 거예요?”“네.”하 매니저는 그녀를 힐끗 쳐다보았다.“곽 감독님 요즘에 새 작품을 기획하시는데 나석진 배우도 출연한대요. 강 비서님은 줄곧 곽 감독님과 연락을 취하고 있었고요.”문나는 후회막심했다.“강... 강 비서님.”문나가 강서연을 보며 말했다.“곽 감독님도 이 프로그램에 출연하세요? 곽 감독님은 절대 예능에 출연하지 않는다던데요!”강서연은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이거 그냥 일반 예능프로 아닌가요?”약이 바싹 오른 문나와 달리 강서연은 입술을 적시며 담담하게 말했다.“괜찮아요. 우리 회사는 항상 연예인의 선택을 존중하거든요. 문나 씨가 이 프로그램에 출연하지 않겠다고 했으니, 다른 사람을 찾으면 돼요. 아니면 제가 위약금을 내도 되고요. 꽤 많은 액수이긴 하지만 김 대표님한테는 별거 아니에요. 소속 연예인의 행복이 무엇보다 중요하잖아요.”“잠깐만요!”문나가 황급히 그녀를 불렀다.곽보미도 이 프로그램에 출연한다고 했으니, 그녀와 안면을 틀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였다. 나중에 조연 역할이라도 주어질지 누가 알겠는가?강서연은 돌아서서 웃으며 물었다.“또 다른 일 더 있어요?”“저...”문나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이 프로그램 나갈게요!”“정말이에요?”“네. 회사의 지시에 따를게요.”문나는 갑자기 태도를 확 바꾸었다.“예능에 출연하는 게 나쁠 것도 없죠. 방금 비서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화면에 자주 얼굴
윤정재는 유리창을 통해 눈도 깜빡이지 않고 온 오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아침에 강서연이 종종걸음으로 출근하는 모습을 보았고 10시가 조금 지나서 커피 사러 내려왔다가 다시 올라가는 걸 보았다. 그러고는 지금까지 강서연은 건물 밖을 나온 적이 없다.윤정재의 얼굴에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대로 그냥 가기 아쉬운지 손가락으로 무릎을 툭툭 두드렸다.“회장님, 계속 기다리실 건가요?”부하 진용수는 그의 밑에서 일한 지 오래되어 그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다가가고 싶어도 다가갈 수 없는 그 기분은 말로 이루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웠다.“회장님.”진용수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왜 직접 가서 만나지 않으시는 겁니까? 사실 오랜 시간 동안 회장님은 두 분을 계속 마음에 품고 계셨잖아요...”“그만 얘기해.”윤정재가 목소리를 내리깔았다.어찌 쉽게 내려놓을 수 있겠는가?윤문희 말고 평생 다른 여자를 사랑한 적이 없었고 강서연은 또 두 사람의 귀한 딸인데.젊었을 때 그는 나중에 딸이 생기면 사랑을 마음껏 주면서 예쁘게 키울 거라는 상상을 얼마나 했는지 모른다...윤정재의 눈시울이 점점 붉어졌고 마음이 칼로 도려내듯 아팠다.“그럼... 회장님.”진용수가 또 물었다.“최연준 도련님한테는 언제 약을 가져다줄까요?”윤정재는 잠깐 생각하다가 한마디 툭 던졌다.“급할 거 없어.”“네?”진용수가 화들짝 놀랐다.“하지만 도련님의 약이 기한이 다 됐을 텐데요...”“기한이 다 돼도 목숨에는 지장이 없잖아!”윤정재는 진용수를 노려보았다.“오늘따라 왜 이렇게 말이 많아?”진용수는 더는 아무 말이 없었다.“최연준이 우리 서연이한테 어떻게 하는지 잘 보고 치료해 줄지 결정해야지, 안 그래?”진용수는 잠깐 놀라는가 싶더니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표정을 지었다.의술로 세인을 구제한다면서? 의사의 자애로운 마음은 어디로 간 걸까?다른 사람에게는 한없이 베풀면서 자기 사위는 지켜보겠다고 한다.“회장님, 만
진용수는 계속하여 말했다.“오성에서 그 땅을 눈독 들인 대가문이 여러 집 있는데 다들 콩고물이라도 얻어먹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어요. 그러니까 연합 병원 프로젝트는 꽤 할 만한 프로젝트예요.”“그래, 알았어.”윤정재가 어두운 목소리로 말했다.지금 그에게 있어서 병원은 둘째였다. 가장 중요한 건 강서연과 만나 말이라도 몇 마디 하면서 마음껏 지켜보고 싶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할 것 같았다.사실 강서연을 만나기 전에 그는 이미 오성대에 가서 윤찬을 몰래 봤었다.기세가 드높은 아들은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머리가 좋고 공부도 열심히 하여 장차 아주 훌륭한 인물이 될 기질이 보였다. 게다가 의학원에 들어가 연구까지 하는 걸 보면 뭔가 타고난 재능이 있는 게 확실했다.그 모습에 윤정재는 무척이나 뿌듯했다.하지만 무슨 이유인지 그는 아들보다 딸을 더 예뻐했다...남자애는 시련을 겪어도 툭툭 털고 일어나야 하기에 과하게 친절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자애는 애지중지하며 예쁘게 키워야 한다.윤정재의 침착하고 차가운 얼굴에 따뜻한 웃음이 지어졌다.“일단 내가 아직 누구랑 손을 잡을지 결정하지 못했다고 알려.”그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때가 되면 그 사람들이 먼저 날 찾아올 거야.”진용수는 잠깐 망설였다. 다른 가문은 그래도 말이 잘 통하지만 유독 최씨 가문만 예로부터 기고만장하여 상대하기 쉽지 않았다.“최연준 도련님은 먼저 연락하지 않을 겁니다.”진용수가 웃으며 말했다.“도련님은 아마 회장님께서 먼저 고개를 숙이시길 기다릴걸요?”“지금 장난해?”윤정재의 낯빛이 어두워졌고 목소리도 아까보다 훨씬 높아졌다.“그 새X 눈에 장인어른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회장님, 제 기억이 맞는다면 그날 최진혁이 도련님을 새X라고 했을 때 회장님께서...”“내가 그러는 건 괜찮아!”윤정재가 두 눈을 부릅떴다.“하지만 다른 사람은 안 돼!”진용수는 웃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윤정재는 이 사위를 그래도 인정하는 눈치였다.
“전화한 건 맞지만 그저 안부 전화였을 뿐이에요.”문나의 낯빛이 창백해졌다.그렇다. 강서연은 단 한 번도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없었다. 그리고 아까 곽보미와 통화할 때도 그저 문나의 상황을 솔직하게 얘기했을 뿐이었다.이게 다 문나가 너무 조급했던 탓이었다. 곽보미의 새 작품에 출연하려고, 유명 감독 앞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뽐내려 했기 때문에 강서연의 꾀에 넘어간 것이었다.문나는 너무도 화가 나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녀는 이를 꽉 깨물고 말했다.“날 엿먹였다 이거죠?”강서연은 진지한 표정으로 그녀를 싸늘하게 쳐다보았다.“회사 규정도 따르지 않고 여기서 소란을 피우는 게 옳은 일이라 생각해요? 팬이 좀 있다고 해서 진짜 공주라도 된 줄 알아요?”“강서연, 당신...”“팬은 당신을 높이 치켜세울 수 있지만 감옥에도 처넣을 수 있다는 거 잊지 말아요.”강서연의 한마디 한마디는 마치 무거운 돌덩이처럼 그녀의 마음을 마구 때렸다.문나는 분통이 터졌지만 할 수 있는 거라곤 아무것도 없어 제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그리고 저.”강서연은 팔짱을 끼고 담담하게 웃었다.“문나 씨가 여기서 마구 행패를 부리는 건 참을 수 있어요. 하지만 당신이 가진 모든 걸 잃게 할 수 있다는 것도 명심해요! 못 믿겠으면 어디 한번 해보시든지!”문나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가라앉히려고 연신 심호흡을 했다.그녀의 몇몇 매니저들이 다가와 귀띔했다.“문나야, 강 비서님은 김 대표님을 모시는 수석 비서이자 어진 엔터테인먼트의 총괄 매니저란 말이야. 강 비서님을 건드려서는 절대 안 돼.”“왜? 저런 사람을 내가 겁내야 해?”“그럼요! 당연히 겁내야죠.”그때 책장 뒤에서 갑자기 인기척이 들려왔다.화들짝 놀란 문나는 인기척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책장이 양쪽으로 열리면서 박경실이 웃으며 걸어 나왔다.그녀는 휴대 전화를 흔들며 강서연에게 말했다.“서연 씨, 저 이러다가 아주 촬영 쪽으로 전향하겠는데요?”강서연은 박경실의 팔짱을 끼고 애처럼 귀엽게 애교를 부렸다.문
문나는 순간 두려움이 밀려와 두 다리에 힘이 풀릴 것만 같았다.조금 전 내뱉은 말은 홧김에 머리를 거치지 않고 나온 말이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다시 생각해 보니 아무리 임나연을 위해 나선 거라고 해도 이 타이밍에 나서서는 안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강서연이 어떻게 나올까? 설마 따귀를 때리진 않겠지?’문나는 고개를 들고 주변을 힐끔거렸다. 마침 문 앞 복도에 서 있어 멀지 않은 곳에 CCTV가 있었다. 그녀는 그제야 시름을 놓았다.만약 강서연이 손이라도 댄다면 살을 더 보태 CCTV 영상을 공개하여 팬들의 악플 세례를 받게 할 생각이었다.“왜요? 제 말이 틀렸어요?”문나는 다시 의기양양했다.“4대 가문에서 그 자리를 어떻게 지켰는지 알아요? 서로 혼약을 맺고 자원을 교환하면서 지금까지 지킨 거예요!”문나가 코웃음을 쳤다.“나중에 연준 도련님한테 무슨 어려운 일이라도 생기면 나연 씨는 도련님을 도울 수 있지만 서연 씨는 발목만 잡을 거예요! 서연 씨는 남자한테 빌붙어 사는 거 말고 할 줄 아는 게 뭐예요?”“그래요.”강서연이 덤덤하게 대답했다.“전 연준 씨한테 빌붙어 살아요. 그런데 왜요? 어떤 사람은 빌붙고 싶어도 못 빌붙는데!”말문이 막힌 문나는 그녀를 노려보기만 했다.강서연은 상 위에 놓인 산세베리아를 만지며 씩 웃었다. 눈빛이 어찌나 그윽한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무지 가늠할 수 없었다.“저한테 배경이 없는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전 연준 씨만 있으면 돼요. 그리고 결혼에 관하여 연준 씨가 저한테 뭐라 했는지 알아요?”그녀가 피식 웃었다.“제가 최씨 가문에 시집가는 게 아니라 저한테 장가오는 거랬어요!”문나는 놀란 나머지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문나 씨, 우리 결혼 때문에 걱정 끼쳐서 정말 미안해요.”강서연은 여전히 무표정이었다.“하지만 앞으로는 일에 더 많이 신경 썼으면 좋겠어요. 저랑 연준 씨 일은 문나 씨가 신경 쓰고 싶어도 기회가 없을 겁니다!”...최연준이 집에 돌아와 보니 강서연은 뚱냥이를 안은 채
강서연이 어리둥절해하며 두 눈을 깜빡였다.최연준은 그녀의 손을 잡고 방으로 돌아와 서랍에서 서류 몇 개를 꺼냈다. 서류를 본 강서연은 저도 모르게 가슴이 움찔했다.“이건 서교 땅 기획도이고.”최연준은 하나하나 차근차근 그녀에게 설명했다.“이건 다 프로젝트 협력안이야.”그가 마지막 페이지를 펼쳐 보이자, 강서연의 사인이 떡하니 있었다.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최연준을 쳐다보았다. 최연준은 그녀 앞에 웅크리고 앉아 그녀의 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으며 씩 웃었다.지난번 연회의 대기실에서 그녀에게 서류 몇 장에 사인하라던 때가 떠올랐다. 자신과 함께 맞서 싸우고 리스크를 부담하자면서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댔었다...그때 그녀는 최연준을 철석같이 믿었기에 사인한 서류가 무슨 내용인지 제대로 보지도 않고 망설임 없이 사인했었다.“사실 리스크를 함께 부담하자는 거 아니야.”최연준이 부드럽게 말했다.“프로젝트 리스크는 내가 다 평가해 봤어. 당신한테 사인하라고 한 건... 이 프로젝트가 당신 것이기 때문이야. 난 그저 당신 밑에서 일하는 부하니까 당연히 대표의 사인을 받아야지.”“뭐라고요?”강서연은 머릿속이 하얘졌다. 최연준의 따뜻한 눈웃음 속에는 온통 그녀의 모습뿐이었다.“이 땅뿐만이 아니야.”최연준이 계속 말했다.“이 몇몇 회사들.”그러고는 다른 서류를 꺼내 그녀에게 일일이 보여주었다.강서연은 가슴이 쿵쾅거렸다. 서류에 큼지막하게 적힌 자신의 이름을 보며 저도 모르게 숨을 죽였고 이 모든 게 마치 꿈만 같았다.‘동명, 레이안, 웨스턴... 이게 다 연준 씨 회사 아니었어?’“이젠 다 당신 거야.”최연준은 그녀를 묵묵히 쳐다보았다. 강서연의 입가가 파르르 떨렸고 뭐라 얘기하고 싶었지만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당신 뒤에 아무도 없는 게 아니야. 내가 말했잖아, 당신은 내가 있다고.”강서연은 고개를 숙인 채 한참 동안 입을 꾹 다물었다. 하고 싶은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결국 이 한마디만 내뱉었다.“미안해요...”최연준은 그
에덴 밖에 서 있던 마이바흐의 불빛이 깜빡였다.조금 전 윤정재는 최연준이 강서연을 쫓아 나오는 걸 보았다. 그러다가 둘이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 다시 그녀의 손을 잡고 안으로 들어갔다.잠시 후, 거실의 불이 꺼졌다.진용수는 고개를 돌려 윤정재를 보며 웃었다.“회장님, 아무래도 화해했나 봐요.”“그래.”윤정재가 낮게 깔린 목소리로 대답했다.“저 자식 사람을 달래는 건 선수인가 보네!”그는 한숨을 내쉬고는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가 씩 웃으며 은침을 다시 거두어들였다.“용수야, 그만 가자.”“네.”진용수가 차에 시동을 걸었다.“회장님, 다음엔 뭘 할까요?”윤정재는 아무 말이 없었다. 이번에 오성에 와서 꽤 오래 있을 계획이었다.첫 번째는 연합 병원 프로젝트 때문이고 두 번째는 이곳을 떠나기 점점 아쉬워서였다. 멀리서 그들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그리고 그 사람은... 그의 마음속 영원히 아물지 않는 상처가 되었다.“회장님.”진용수는 그의 생각을 단번에 눈치챘다.“윤문희 씨가 지금 살고 계시는 주소를 알아냈어요. 알려...”“싫어.”윤정재가 어두운 목소리로 그의 말을 가로챘다.미치게 보고 싶지만 또 그녀를 만나는 게 두려웠다.이십여 년 동안 그는 윤제 그룹을 휘황찬란하게 발전시켰다. 이미 돌아가신 그의 아버지, 주주, 그리고 약 사 먹을 돈도 없는 가여운 사람들을 포함한 모든 이의 앞에서 떳떳하게 다닐 수 있었지만... 그가 유일하게 미안한 사람이 바로 윤문희였다.그때 윤문희가 남양을 떠난 후 윤정재는 여전히 그녀를 놓지 못했다. 그녀를 찾았을 때 윤문희는 자신이 강명원의 여자가 되었다고 했었다.윤문희가 딸을 낳았다는 소식을 듣고 그는 몰래 그녀를 보러 강주로 갔었다. 그런데 그녀가 말했던 것처럼 행복하게 지내지 못했다.윤문희는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했었다. 하지만 몰래 유전자 검사를 해본 결과 강서연은 그의 친딸이었다. 하여 지금까지 매달 윤문희의 계좌에 돈을 입금했다.강서연과 윤찬이 무럭무럭 성장할 수 있
그녀는 모든 화살이 강서연에게 쏠리는 걸 원치 않았다. 이런 방식으로 강서연을 지킨다면 귀찮은 일이 많이 줄어들 것이다.예를 들어 지금처럼 문나는 대체 무엇이 문제인지 도무지 몰랐다...잠깐 생각하던 그녀는 뭔가 깨달은 듯했다.‘이게 다 나연 씨 탓이야!’“다른 일 없으면 그만 나가봐.”김자옥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 앞으로 다가가더니 어깨를 툭툭 쳤다. 몸을 부들부들 떠는 문나의 안색이 별로 좋지 않았다.“문나 씨.”김자옥이 웃으며 말했다.“사람은 자신을 정확히 아는 게 중요해! 이 점을 놓고 봐도 문나 씨랑 임나연은 많이 배워야 해!”문나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마음속에서 분노가 끓어올랐지만, 무서운 그녀 앞에서 티를 낼 수도 없었다.그녀는 대표 사무실 밖의 테이블을 쳐다보았다. 강서연이 마침 자리에 없었다.“왜? 강 비서한테 무슨 볼일이라도 있어?”김자옥의 위엄있는 목소리에 문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아닙니다, 아니에요...”“그래, 그럼 가서 일이나 해. 문나 씨가 요즘 출연해야 하는 예능이 몇 개 있어. 매니저한테 얘기해 놓았으니까 출연하지 말지는 문나 씨가 알아서 결정해.”문나는 당연히 거절할 용기가 없었다. 하지만 그 예능들은 전부 시청률이 낮은 프로그램이라 한물간 연예인도 출연하지 않았다.그런 프로그램에 출연한다는 건 스스로 자기 무덤을 파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하지만 김자옥이 원하는 게 바로 이거였다.연예인 하나가 내리막길을 걷든 말든 상관없었다. 어진 엔터테인먼트에는 연예인이 부족하지 않으니까.그리고 회사가 입을 손해도 두렵지 않았다. 김자옥은 그깟 돈이 부족한 게 아니니까.하지만 그녀의 며느리를 괴롭히는 자라면 팬덤이 얼마나 크든 절대 용서할 수 없었다. 그 돈으로 강서연을 괴롭힌 사람을 처리하는 건 전혀 아깝지 않다고 생각했다.문나는 잿빛이 된 얼굴로 사무실을 나섰다. 김자옥이 코웃음을 치고는 계속 일에 몰두하려던 그때 휴대 전화가 갑자기 울렸다.“여보세요? 아들.”최연준은 오늘 회사에 나가지 않
“어떻게 소피아라는 걸 확신하죠?”배윤아는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말했다.“부모님이 회사의 핵심 자료를 제게 모두 맡기셨어요. 그런데 그걸 받은 지 이틀 만에 공격을 당했죠. 이게 단순한 우연일까요?”임지강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고 눈빛이 점점 어두워졌다.“그 자료들은 어디 있어요?”“아마 소피아가 가지고 있을 거예요. 그 자료들은 너무 중요해서 항상 제 곁에 두고 다녔거든요. 하지만 그날 제가 기절하고 다시 깨어났을 때, 가방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어요. 다만...”“다만 뭐요?”“법인 도장은 가방 안에 없었어요.”배윤아는 미소를 지으며 약간 능글맞은 표정을 지었다.“법인 도장은 본사가 모든 자원을 움직일 수 있는 권한이에요. 엄마가 제게 주자마자 저는 바로 군성이에게 맡겼어요. 지금 법인 도장은 최씨 가문에 안전하게 보관되어 있어요.”“그렇다면 소피아가 자료를 손에 넣더라도 아무 쓸모가 없겠군요?”배윤아는 확신에 차서 고개를 끄덕였다.“똑똑하네요!”임지강은 미소를 지었다.“배씨 가문 사람들도 다 무능하진 않나 보네요.”“임 선생님...”배윤아는 고개를 약간 숙이며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오빠가 송윤지에게 잘못한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저는 임 선생님이 우리 가문에 복수하려고 저를 납치했을 거라 생각하지 않아요. 선생님은 그런 수준 낮은 사람이 아니니까요.”임지강은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확실히 똑똑한 사람이네요.”그러나 배윤아의 눈빛은 점점 어두워졌다.“그런데... 정말 우리 오빠에게 복수하고 있는 건가요?”임지강은 대답하지 않았다. 잠시 후, 임지강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가족들에게 안부 전화라도 주세요. 걱정을 많이 하고 계실 거예요.”“이미 군성이에게 연락을 했어요.”배윤아가 말했다.“군성이에게 조용히 아빠에게 알려 드리라고 했어요. 엄마는 충격을 받으시면 안 되니까요... 하지만 제 상황을 오빠에겐 비밀로 해야 해요. 오빠와 소피아는 제가 조 회장님에게 잡혀 있고 선생님이 일부러 복수를 위해 조 회장님을
“설마...”“소피아!”두 사람이 동시에 말했다.이름을 입에 올린 뒤, 둘은 서로를 바라보며 쓴웃음을 지었다.“정말 소피아일 줄이야.”임지강이 담배를 꺼내 들었다. 조 회장이 눈짓을 하자 부하가 공손히 불을 붙였다.방 안은 금세 니코틴 냄새로 가득 찼고 임지강은 잠시 침묵하며 담배 재를 털어냈다.“아마... 조 회장님도 지금 저와 같은 처지겠죠. 배씨 가문의 딸을 납치했다는 누명을 쓰게 됐으니 말이에요.”“그러게 말이야.”조 회장은 차갑게 웃었다.“겉으로는 온갖 아부를 떨면서도 뒤에서는 이런 음모를 꾸미고 내가 배윤아를 납치했다고 소문까지 퍼뜨리고 있더군.”“회장님과 제가 가까운 사이라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은 의심의 화살을 제게도 돌리겠죠.”임지강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이런 식으로 일이 진행되면, 연루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질 겁니다. 저 때문에 저의 매형까지 연루되면, 배씨 가문과 육씨 가문의 사이도 틀어질 거고요.”“그 여자는 이런 식으로 우리 모두를 자기 손바닥 위에서 가지고 놀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걸까?”“조 회장님 생각은 어떻습니까?”“웃기지 말라 그래.”조 회장은 아무런 표정 변화도 없이 평온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임지강은 조 회장의 꽉 쥐어진 주먹을 발견했다. 그의 손등에는 화가 잔뜩 난 핏줄이 도드라져 있었다.“조 회장님.”임지강은 잠시 침묵한 뒤 부드럽게 말했다.“운산시 광산의 가격을 조작하도록 제가 이미 사람을 보냈습니다. 그 두 광산은 이제 그렇게 가치 있는 자산이 아닙니다.”“알고 있어.”조 회장은 임지강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이 일은 원래 자네 복수를 위해 시작한 일이야. 자네의 화가 조금이라도 풀린다면 내 수고도 헛된 게 아니야. 하지만 문제는...”조 회장은 손짓으로 방 안을 가리켰다.그때 방 안에서 배윤아가 몸을 뒤척이며 눈을 몇 번 깜빡이고는 천천히 일어나 앉았다.임지강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배윤아와 단둘이 대화를 나누고 싶습니다.”조 회장은 잠시 망
임지강은 입술을 굳게 다물고 차가운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그를 철저히 파산시키고 싶습니다.”“배씨 가문 전체를 함께 무너뜨리겠다는 뜻인가?”조 회장이 묻자, 임지강은 잠시 망설이다가 고개를 저었다.“솔직히 말하면, 예전의 저라면 그렇게 했겠죠. 하지만 지금은...”“지금은 마음이 약해졌다는 건가?”조 회장이 비웃듯 웃으며 말했다.“내가 알던 임지강은 그런 자비를 베풀 인물이 아닌데?”임지강도 미소를 지었다.그 웃음 뒤로 누군가의 맑은 눈빛과 깨끗한 얼굴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이번 일은 송윤지가 부탁해서 오게 된 것이었다.송윤지는 배윤아의 실종 소식을 듣고 매우 걱정하고 있었다. 비록 배현진과 부부의 연을 맺지 못했지만, 배윤아와는 과거에 친하게 지냈던 사이였기에 친구로서 걱정되었기 때문이다.임지강 자신도 이곳에 올 이유가 있었다. 하나는 송윤지의 부탁 때문이고 또 하나는 배윤아의 납치 사건이 왜 갑자기 자신에게 덮어씌워졌는지 직접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임지강은 배윤아와 거의 만난 적이 없었다. 두 사람은 사실상 서로 모르는 사이였다.“조 회장님, 전 자비를 베푸는 게 아닙니다.”임지강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단지 이 세상에 아름다운 것들이 이미 많은데 한낱 파리 한 마리와 얽혀서 진흙탕 싸움을 벌이는 건 시간 낭비라고 생각해서입니다. 그 녀석에게 적당히 벌을 주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게다가 저는 배씨 가문의 다른 사람들과는 아무런 원한도 없으니, 배씨 가문을 완전히 망가뜨릴 필요는 없습니다.”“흠...”조 회장은 차를 한 모금 마시며 고개를 끄덕였다.“1조라... 적지 않은 금액이지. 배현진은 은행에서 전 재산을 담보로 대출받았다고 하더군. 이 일이 발각되면 한동안 꽤 고생하겠지.”“조 회장님, 사실 오늘 제가 온 이유는 다른 목적도 있어서입니다.”임지강은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약간 굽히며 공손히 말했다. 그러나 조 회장은 손짓으로 그를 제지하며 미소를 지었다.조 회장은 아무 말 없이 손짓으로 따라오라는
배현진은 병원 복도에 있는 긴 의자에 앉아 두 손으로 머리를 움켜잡고 고개를 푹 숙인 채 완전히 무너진 모습이었다.“그럴 리가 없어...”한참 동안 앉아 있던 배현진은 갑자기 고개를 들며 말했다.“연준 아저씨와 서연 이모는 소피아와 함께 지낸 적이 없잖아요. 소피아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니 그렇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소피아는 절대 저를 배신하지 않을 겁니다.”“이 녀석아, 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고집을 부릴 거야.”최연준이 엄하게 꾸짖었다.배경원은 아무 말 없이 아들의 손을 잡았다. 그의 눈에는 깊은 절망이 서려 있었다.“그만해요, 셋째 형님...”배경원은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지금 수정이가 응급실에 있는데, 이 아이와 더 이상 다투고 싶지 않아요. 그냥 없는 아들이라고 생각하려 합니다.”“아버지!”“꺼져버려!”배경원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그 눈빛 너머에는 모든 걸 놓아버린 듯한 깊은 허무가 스며 있었다.배현진은 잠시 망설이다가 결국 돌아섰다. 떠나기 전, 그는 다시 돌아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아버지,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윤아를 반드시 무사히 데려올게요. 엄마도 무사할 거예요. 우리 가족은... 예전처럼 다시 행복해질 거예요.”배경원은 아들에게 단 한 번도 시선을 주지 않은 채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잠시 후, 응급실의 불이 꺼졌다. 배경원은 화살처럼 뛰어가며 아내의 이름을 크게 외쳤다.의사가 땀으로 흠뻑 젖은 마스크를 벗으며 가까스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배 선생님, 사모님께서는 일단 생명에는 지장이 없습니다.”“뭐라고요?”강서연은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일단 생명에 지장이 없다는 건, 앞으로 위험이 있을 수도 있다는 말인가요?”“다들 진정하세요.”의사는 부드럽게 설명했다.“사모님의 상태가 많이 복잡합니다. 곧바로 특수 병동으로 옮길 예정이라 당분간 면회는 어려울 겁니다. 이번 주가 아주 중요한 시기이긴 하지만, 제 판단으로는 이 고비를 무사히 넘기실 가능성이 큽니다.”세 사람은 안도의 숨을 쉬며 그나마
“아내라고?”강서연이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현진이와 정식으로 결혼한 적 있니? 다른 사람과 약혼한 상태에서 끼어든 건 너잖아. 명분도 없는 관계에 ‘아내’라는 말을 쓰다니, 웃음거리밖에 안 될 거야.”“최 사모님...”“갑자기 생각난 건데.”강서연의 눈빛이 미세하게 흔들렸다.“수정 씨가 쓰러졌을 때 네가 침대 옆에 있었던 거 맞지?”“아, 네.”소피아는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제가 현진 씨를 대신해 효도하러 갔던 거예요. 하지만 어머님 건강이 그렇게 나쁘실 줄은 몰랐습니다.”“수정 씨가 쓰러지기 직전에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말해보렴.”소피아는 순간 멈칫하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말할 수 없는 이유라도 있니?”강서연은 한 발짝 다가가며 소피아를 몰아붙였다.“수정 씨는 평소 건강관리를 철저히 하던 사람이야. 그런 사람이 쉽게 쓰러질 리 없지. 분명 큰 충격이 있었을 거야. 쓰러지기 직전 병실에 너 혼자 있었다며? 뭔가 숨기고 있는 게 분명해.”“서연 이모, 그렇게 말씀하지 마세요!”배현진은 소피아를 자신의 뒤로 끌어당기며 소피아에게 나가라는 눈짓을 보냈다. 소피아는 고개를 끄덕이고 복도를 따라 빠르게 사라졌다.소피아가 사라지자, 배현진은 조심스럽게 말했다.“서연 이모, 소피아는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배현진!”강서연은 배경원이 아들을 두 번이나 때린 이유를 이제야 완벽히 이해한 듯, 분노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너 어떻게 이렇게 사람 보는 눈이 없니? 네 엄마는 지금 저 안에 누워 있어.”“정말로 소피아와는 아무 관련이 없어요...”배현진은 조심스럽게 입술을 핥으며 설명했다.“서연 이모, 사실 소피아도 자책하고 있어요. 그날 소피아도 윤아의 안전을 걱정하다가 엄마 앞에서 그만 실수로 말을 흘리고 만 거예요. 그래서...”“뭐라고?”최연준이 눈을 부릅뜨며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터뜨렸다.“배현진, 네 엄마 쓰러졌을 때 넌 방에 없었잖아.”“소피아가 제게 그렇게 말했어요.”“너...”최연준은 순간
병원 응급실 밖.배경원은 의자에 주저앉아 힘없이 고개를 숙였다. 충혈된 눈으로 응급실 문을 응시하며 한숨을 길게 토해냈다. 한때 당당했던 그의 어깨는 지금 축 처져 있었다. 뒷모습만으로도 절망감이 고스란히 드러났다.배경원은 주먹을 단단히 쥐었지만, 온몸은 떨리고 있었다.적막이 흐르는 복도는 불길한 정적마저 감돌았다.결국, 억눌렀던 감정이 터져 나와 눈물이 조용히 뺨을 적셨다.“경원아!”멀리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배경원이 고개를 들자, 최연준과 강서연이 급히 달려오고 있었다. 힘이 풀려 바닥에 쓰러질 뻔한 배경원을 최연준이 재빨리 부축했다.강서연은 응급실 문을 바라보며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걱정하지 마세요. 치료는 연희 씨와 신석훈 씨의 제자들이 맡고 있어요. 모두 실력이 뛰어난 사람들이에요. 수정 씨는 평소 건강을 잘 관리하셨으니 금방 회복될 겁니다.”“어쩌다 이렇게까지 된 거야?”최연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왜 갑자기 병세가 심각해진 거야? 그리고 윤아는...”배경원은 떨리는 손으로 최연준의 팔을 붙잡으며 애타는 목소리로 말했다.“셋째 형님, 제발 윤아를 찾아주세요. 딸은 사라지고 아내는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어요. 둘 다 잃으면 저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정말 모르겠습니다...”“그런 바보 같은 말 하지 마세요. 둘 다 무사할 겁니다.”강서연이 단호히 말했다.“윤아는 우리 집안의 며느리예요. 누가 윤아를 해치려 한다면 최씨 가문에서 가만히 있을 리 없어요. 그 결과가 어떤 건지 모를 리도 없고요. 그리고...”강서연은 순간 무언가를 떠올린 듯 말을 이어가려다 복도 끝에서 배현진이 소피아와 함께 급히 다가오는 모습을 보고는 말을 삼키고 배현진을 노려보았다.“연준 아저씨, 서연 이모...”배현진은 어딘가 죄책감이 깃든 목소리로 말했다. 배현진은 배경원에게 다가가 팔을 살며시 부축하며 조심스레 말했다.“아버지...”그 순간, 배경원이 배현진의 뺨을 내려쳤다.배경원은 분노로 가득 찬 눈빛으로 배현진을 노려보며
임수정은 갑작스러운 기침을 하며 침대 옆 경보 벨을 향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그 손은 소피아에 의해 단호히 막혔다.“사모님, 제 말을 듣는 게 좋으실 겁니다.”소피아는 부드럽지만 섬뜩한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다.“제가 만든 음식이 그렇게 형편없지도 않고 독을 넣을 만큼 제가 어리석지도 않아요. 안심하세요. 이 모든 재료는 사모님의 건강을 생각하며 준비한 겁니다. 오늘 이 자리에 온 이유는 진심으로 사모님을 돌보고 싶어서예요.”임수정은 가슴을 움켜쥔 채 힘겹게 몸을 일으켜 앉았다. 임수정의 눈엔 불신과 경계심이 서려 있었다.요즘 배경원은 외출이 잦아졌고 이유를 묻자, 회사 일 때문이라며 안심하라는 대답뿐이었다.그럼에도 임수정의 마음속엔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점점 커져만 갔다.깊게 숨을 들이마신 임수정은 마음을 가라앉히며 겉으론 소피아의 말을 따르는 척 고개를 끄덕였다.“사모님, 잘 생각하셨어요.”소피아는 임수정에게 쿠션을 건네며 은은하게 웃었다.“우리 결국엔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될 사이잖아요. 지금부터 제 존재에 익숙해지시는 게 좋을 겁니다.”“흥! 내 아들이 눈이 먼 게 분명해.”임수정은 비웃음 섞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어떻게 너 같은 사람에게 속을 수 있는지...”“저를 깔보지 마세요. 저는 이혼하고 아이도 데리고 있지만, 현진 씨를 향한 제 진심은 변하지 않아요. 저는 현진 씨와 평생을 함께하고 싶습니다. 누구와는 달리 겉으론 순수한 척하면서 남자를 유혹하는 짓은 안 한다는 건 알아주셨으면 해요.”“너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임수정은 언성을 높이며 노려보았다.소피아는 눈썹을 치켜세우며 더욱 날카롭게 말했다.“사모님, 제가 말하는 사람은 바로 사모님의 그 옛날 며느리가 될 뻔했던 그 사람이에요.”“헛소리하지 마!”임수정은 화를 내며 목소리를 높였다.“그 일은 우리 배씨 가문이 송윤지에게 잘못한 일이야. 그 애의 명예를 더럽히지 마.”“사모님, 사람은 겉모습만 보고 판단할 수 없는 법이에요.”소피아는 태연한
“너와 상관없다고?”임우정은 다급하게 외쳤다.“네 형부가 이미 윤아의 통화 기록을 조사했어. 윤아가 실종되기 전에 조 회장이랑 통화했던 게 드러났다고! 지강아, 너와 조 회장이 어떤 관계인지 나한테도 숨길 작정이었어?”임지강은 미간을 찌푸렸다. 이 사건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고 머릿속에서 실타래처럼 엉켜 있었다.“그래요. 저와 조 회장이 가까운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저와 배윤아 사이엔 원한이라곤 없잖아요... 누나, 왜 저를 의심하는 거예요?”“지강아!”임우정의 목소리가 더욱 절박해졌다.“너, 송윤지 일 때문에 배현진을 미워하는 건 알아. 하지만... 네 말대로라면 윤아한테까지 증오를 전가하면 안 되잖아!”“누나, 정신 좀 차리세요!”임지강의 목소리는 차갑고 날카로웠다. 어둠이 깃든 그의 얼굴은 단호함을 더했다.“무슨 근거로 저를 의심하시는 건데요?”전화기 너머로 침묵이 흘렀다. 임지강의 강경한 태도에 임우정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한참 후, 임우정은 낮고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그렇다면... 배씨 가문을 좀 도와줄 순 없겠니?”임지강은 코웃음을 치며 전화를 끊었다.수화기를 내려놓고 고개를 돌리자 맑고 투명한 송윤지의 눈빛과 마주쳤다.“배씨 가문에 무슨 일이 생긴 건가요?”...요양원 병실 문 앞.소피아의 하이힐 소리가 텅 빈 복도를 울리며 퍼져 나갔다. 소피아의 손엔 보온 도시락이 들려 있었고 문 앞을 지키는 경호원들에게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제가 사모님께 식사를 가져왔습니다. 안으로 들여보내 주세요.”경호원들은 서로 눈치만 보며 말없이 서 있었다.“이건 도련님께서 지시하신 거예요.”소피아는 휴대전화를 꺼내 그들에게 일부러 화면을 보여주며 말했다.“전화를 걸어 확인해 보실래요? 아시다시피 사모님 건강이 좋지 않으세요. 세 끼 제대로 챙겨 드시지 못하면 여러분들이 책임지실 겁니까?”경호원들은 난처한 얼굴로 머뭇거리다 결국 길을 내주었다.“이제야 말이 통하네.”소피아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앞으로
송윤지는 겨우 한 모금을 마시고 사레가 들어 술을 뱉을 뻔했다. 마신 술이 얼굴에 스며든 듯 송윤지의 뽀얀 볼은 어느새 매혹적인 와인빛으로 물들었다.임지강은 그런 송윤지를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임지강은 송윤지에게 다가가 가볍게 등을 두드리며 입가에 묻은 술자국을 부드럽게 닦아주었다.“임 대표님...”송윤지는 조심스럽게 임지강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려 애썼다.하지만 임지강은 말없이 송윤지의 손을 잡아 통유리창 앞까지 데려갔다.송윤지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임지강을 바라보았다. 임지강이 손뼉을 두 번 치자 깊고 짙은 밤하늘에 수많은 불꽃이 터지기 시작했다. 잘게 부서진 불빛들이 반짝거렸다.불꽃은 색과 모양을 끊임없이 바꾸며 꿈같은 광경을 만들어냈다.송윤지는 멍하니 그 장면을 바라보며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마음에 들어요?”임지강의 낮고 매력적인 목소리가 송윤지의 귀에 스며들었다.“잠깐 눈 좀 감아 봐요.”“네?”임지강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제가 별을 따다 줄게요.”마지막 불꽃이 빛의 궤적을 남기며 밤하늘로 사라지고 다시 평온한 고요가 찾아왔다.송윤지는 미소를 지으며 임지강의 말을 따라 눈을 감았다. 그러자 따뜻하면서도 약간 서늘한 남자의 손길이 송윤지의 손을 잡더니 손바닥 위에 무언가가 놓이는 느낌이 들었다.송윤지는 깜짝 놀라며 눈을 번쩍 떴다. 그녀의 손에는 정말로 ‘별’이 있었다.“이건...”그것은 목걸이였다. 펜던트는 별 모양으로 깎아낸 다이아몬드로, 완벽하게 다듬어져 찬란한 빛이 퍼지고 있었다.“제가 해줄게요.”임지강은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안 돼요. 이건 너무 비싼 거라서 제가...”“받아줘요.”임지강의 눈빛은 따스하고도 단호했다.“그리고... 사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송윤지는 고개를 숙였다. 귀 끝까지 붉어진 송윤지의 얼굴은 마치 열이 오른 듯했다.임지강은 미소를 지으며 송윤지의 귓가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살짝 정리해 주었다.“사실,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저 윤지 씨 좋아